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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빈스키 - 종(種)의 최후 ㅣ 현대 예술의 거장
정준호 지음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평점 :

첫문장- 이고르 표도로비치 스트라빈스키는 1882년6월1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의 필란드만 안쪽 오라니엔바움에서 태어났다.

발레곡 <불새>와 관현악곡 <봄의 제전>으로 잘 알려진 러시아 태생 미국 음악가 [스트라빈스키]는 을유문화사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로 협찬 받은 책입니다. 2021년 올해 스트라빈스키 타계 50주년을 맞아 음악계에서도 많은 공연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기회가 될 때 마다 한권씩 구입해 읽고 수집하고 있는 시리즈입니다. 세계 음악사의 거장의 전기(평전)을 읽으면 음악 감상에 한층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클래식 음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남은 음악이다. 살아남았다면 다 클래식이다. 죽은 음악을 양분 삼아, 잊힌 음악과 맞서 여전히 전하는 것이 클래식이다.
p.11 스트라빈스키조차 인정했듯이, 위대한 베토벤도 멜로디 위주의 작곡가는 아니었다. 스트라빈스키는 그 점을 시인하면서도 무리하게 멜로디 주도론을 이어간다.‘반독일/친 이탈리아 프레임’의 핵심이 바로 멜로디 즉 선율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주장을 통해 자신의 초기 성공작인 [불새], [페트루시카], [봄의 제전] 3부작이 5인조의 중심인물이자 스승이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숨긴다.
p.41 림스키코르사코프가 대위법을 등한시하고 화성학을 집중적으로 교육한 것은 그의 음악 취향을 반영한다. 그가 푸가나 변주곡처럼 건축적인 방식을 주로 사용했던 고전주의자 브람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브람스와 반대로 화성의 극한을 탐험하기를 즐겼던 바그너 또한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그너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 프란츠 리스트는 졸아했다.
p.65 댜길레프와 스트라빈스키의 진정한 협력은 발레[불새]를 통해 이루어졌다. 스트라빈스키는 사실 1908년부터 한스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원작을 가지고 오페라 [나이팅게일]을 만들고 있었다. 원래 3막으로 구상하던 이 곡은 1막이 완정될 무렵 스승의 죽음으로 멈췄다가 작곡을 재개한 작품이었는데, 다길레프를 만나면서 또 중단된 상태였다. [나이팅게일]을 통해 스트라빈스키는 오히려 자신이 오페라를 쓸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대신에 발레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인생이 무엇인지 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인생이 무엇인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고르는 내가 그의 목표에 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부와 명성을 추구한다. 나는 부와 명성을 바라지 않는다. 스트라빈스키는 훌륭한 작곡가지만 인생에 대해 쓰지는 않는다. 그는 아무런 목적 없는 소재들을 창안한다. 나는 목적 없는 소재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자주 그에게 목적이 무엇인가를 이해시키려고 애썼지만, 그는 나를 한갓 어린아이라고 생각했다.
p.123 만년까지도 스트라빈스키는 봄의제전에 만족하지 못했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더 손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봄의 제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정통 으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봄의 제전을 쓰면서 어떤 체계도 따르지 않았다. 당시 내가 흥미를 갖던 다른 작곡가들, 곧 쇤베르크, 베르크, 베베른에 대해 생각해 보면 그들의 음악은 훨씬 ‘체계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위대한 전통에 의해 지탱되었다. 봄의제전을 씀녀서 내가 믿을 거라고는 내 귀뿐이었다. 나는 들었고 내게 들리는 것을 적었다.”
p.215 드뷔시는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음악은 좋아하지 않았다. 드뷔시는 그를 가리켜 “최악의 자생 악파”라고 말했다. 그러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제자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도 고개가 갸웃했을 것이다. 드뷔시는 스트라빈스키를 친절히 대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다른 생각을 비추기도 했다. 두 사람은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나란히 앉아서 본 직후 《봄의 제전》 초연을 관람했다. 당시 극작가 르노르망이 본 드뷔시의 얼굴은 고통으로 가득했다. 과연 르노르망의 시각은 정확했다.
“그것은 억제하지도 감추지도 못하는 슬픔이었다. 자신과 전혀 다른 세계 앞에 놓인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것은 뒤에 남은 슬픔이자,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는 새로운 형식을 마주친 예술가의 고통이었다.”
을유문화사에서 협찬해 주신 책입니다.
첫문장- 이고르 표도로비치 스트라빈스키는 1882년6월1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의 필란드만 안쪽 오라니엔바움에서 태어났다.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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