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 번째 들어가며
책을 읽지 않고 구매만 했던 시절의 남은 10권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은 책탑이 아니라 열반님의 영업으로 구매한 엘리베이터 독서대에 올려 보았다.
왠지 장엄하다. <마징가 제트>의 추상버전 인 듯 하기도....ㅎㅎ
2. 채워지지 않는 지적 허영을 자본주의 방식으로 축적하기 위하여.
인문학 분야의 책들은 어쩌면 읽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다가가고 싶은 마음과 한줄한줄 밑줄 그어 나가는 재미를 느끼고 싶어서 고이 모셔왔을 것이다.
(11) 신의 전쟁(카렌 암스트롱)
올 초에 읽었던 저자의 <축의 시대>는 BC 900년부터 BC 200년 사이에 중국, 인도, 중동, 그리스 지역에서 종교와 철학의 역사적 기원과 전개 과정 등을 면밀하게 서술한 걸작이었다.
700여 페이지의 두꺼운 양장본에 빛나는 이 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당연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웅장한 사상․종교의 장엄한 흐름만은 고이 간직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소개하는 개념중 <케노시스>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 말은 ‘비움’이라는 의미로 영적으로는 자기를 비우거나, 자기 중심주의를 벗어버리는 것을 묘사하는데 쓰는 말이라고 한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인간의 본성이 성악설 기반하기 때문에 인간은 몸에 박힌 악의적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종교 등 제의의식을 만들고, 철학을 발달시켰다는 내용인 듯 하다.
참고로, 지금 우리가 신체단련으로 수행하는 요가도 이러한 케노시스를 제거하기 위한 고행의 수단중 하나였다.
개인적으로 성선악 융합설이 타당해 보이지만, 일어나는 엉뚱한 생각은 인간이 자신의 몸, 마음, 정신 등에 이식된 악을 제거하기 위해 고행, 제의(祭儀), 철학 등을 발전시키고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 존재라는 측면에서 보면 성선설이 더 타당한 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여하튼 <축의 시대> 정말 명저 중의 하나이다.
이 저자의 신작 <신의 전쟁>이 나왔다고, <축의 시대>의 번역을 맡았던 정영목 선생님의 번역이라 믿고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책은 책장을 정말 품위 있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보기만 해도 므흣하다.
ㅇ (처음)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매년 속죄일이면 대제사장이 염소 두 마리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 (마지막) 종교적인 사람이든 세속주의자든 우리 모두 현재 세계의 상태에 책임이 있다......중략.....희생양 의식은 공동체가 그 비행과 맺고 있는 관계를 끊으려는 시도였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해법이 될 수는 없다.
→ “인류 종교역사 초기의 희생의식이 오늘날 잘못 해석되어 내려오면서 인류가 종교의 깃발아래 폭력을 자행하고 있으나 이것은 극히 잘못된 행동임을 700여 페이지에 걸쳐 서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내가 왜 이런데 관심이 있지?”하는 생각과 “내가 왜 샀지? 하는 생각”이 복합적으로 교차한다.
“책은 읽을 책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산 책중에 읽는다”는 도서구입계의 진리를 음미한다.
(12)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시몬 비젠탈)
부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목과 더불어 책표지에는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라는 글귀와 베를린에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표지사진으로 등장한다. 뒷표지를 보니 “용서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라는 글귀도 있다.
이런 제목과 표지 문장이라면 구입할 수 밖에 없다.
ㅇ (처음) 아르투르가 어제 뭐라고 했더라? 나는 다시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였음이 분명했다. 어제 내가 그렇게 피곤하지만 않았어도!
ㅇ (마지막) “나는 당신이 어떻게 해서 이 무시무시하고 잔인무도한 집단에 속하게 되었는지 이해합니다. 물론 당신 스스로도 자기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겠지만,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 또한 당신과 똑같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 마지막 문장이 어마어마한 무게도 다가온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에 갔을 때, 그 많던 사람들이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쪼그리고 앉아 바닥의 글귀를 읽으며 숙연해 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유대인박물관 독가스처형장의 싸늘한 적막감과 절망과 구원이 교차하며 하늘에서 내려오던 한줄기 흐린 빛의 느낌도 잊을 수 없다.
어디 멀리 베를린에서만 시대의 아픔을 되뇌일 수 있을까?
만약 이 책을 완독한다면 광주 5․18 묘역을 꼭 방문해 보고 싶다. 그리고 제주 4․3항쟁 추모공원도.
(13) 헤세와 융(미구엘 세라노)
몇 년전 40대의 사춘기가 와서 방황(사실 요즘도 하루하루가 사춘기지만)할 때, 읽었던 몇권의 헤세는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그렇지만, 방황을 완전히 가라앉히지 못했는지 툭하면 여전히 방황한다.
어설픈 핑계지만 데미안의 끝부분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고 믿고 싶다).
어디서 흘려 들었는지 모르지만, 헤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융의 심리학을 조금은 알아야 한다고 한다. “애라! 헤세가 뭐라고 융 심리학까지 이해하면서 읽냐? 않읽고 말지!” 했는데, 이 책 제목만 보고 구매해 버렸다.ㅠ.ㅠ
만일 내 기대대로 이 책이 도움을 준다면, 데미안을 다시 제대로 이해해 보고 싶다. 그리고, 책장서 잠자고 있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까지 달릴 수 있을까? 내 친구 자칭 문학소년은 청소년기를 벗어나면 헤세는 보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인생이 사춘기 진행중이니 40대까지는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ㅇ (처음) 1961년 1월22일, 나는 몬타뇰라에 있는 헤르만 헤세의 집을 방문했다. ..(중략)...경치에 시선을 돌리다가 나는 식탁의 저쪽 끝에 앉아 있는 헤세의 맑고 푸른 눈과 마주쳤다.
ㅇ (마지막) 우리는 사물뿐 아니라 인간에 대해서도 의무가 있으며, 메시지는 대대로 전달되어야만 한다.
→ 작가님, 제발 그 의무감을 가지고 저에게도 제대로 전달해 주세요!!!
(13) 불교개론(마스타니 후미오)
언제부턴가 불교철학을 이해해 보고 싶었다. 나의 거친 이해로 알고있는 본질적인 나란 없으며 모든 것이 변화하는 여건 속에 던져진 내가 존재한다는 연기설에 대해 깊이 있게 보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었다.
그리고, 군생활 때 최인호 작가님의 <길없는 길>을 읽으며 느꼈던 묘한 정신적 세계에 체계적으로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에서 구매했는데 괜히 했나 싶기도 하다. 다만, 얇아서 자신감 충만해지는 묘한 마음이 든다.
ㅇ (처음) 현대의 사상이 펼쳐지는 속에서 불교의 본질을 살펴보는 일, 이것이 이 책에 주어진 사명의 하나이다. 나는 먼저 이 과제부터 다루고자 한다.
ㅇ (마지막) 이런 업적들은 모두 불교의 중국화를 나타내는 현상이다.....(중략)....이러한 중국 불교의 영향 밑에 있어 온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겠다.
→ 작가님은 소명의식을 가지고 이토록 어리석은 나를 이해시키셔야 합니다. 엉뚱한 생각이겠지만 구조주의 철학과 불교의 철학은 서로 교감하는 지점이 있을까? 하는 망상을 해본다.
(14) 특강 욥기(권지성)
강유원 선생님의 고전읽기 시리즈를 좋아한다. 오래전에 읽었던 <문학고전강의>에서 읽었던 욥기편은 나에게 아무도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지만 이해하고 싶은 숙제였다.
어설프게 이해하는 욥은 신에게 절대 순종하는 인간, 자신에 주어진 고난의 무게를 삭히고 참아내는 인간 같은데, 과연 신의 절대적 명령(혹은 운명)에 인간은 어떻게 맞서는지, 어떻게 순응하는지, 그속에서 느끼는 마음이나 생각은 어떠한 것인지, 이런게 왜 궁금한지 모르겠지만 알고 싶었다.
그리고, 신은 자신에게 그토록 순종하는 욥을 왜 시험하는 거지? 하는 것도.
일단, 표지의 글이 좋다. “고통, 정의, 아름다운에 관한 신의 드라마”
신 내지 절대의식의 존재와 부조리의 공존은 철학이나 문학에 있어 좋은 문제의식이고, 이런걸 알면 문학이나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허영심이 내 궁금증의 상층부에 자리잡고 있겠지!ㅎ 다만, 구매 이후 궁금증을 풀어야 한다는 간절함은 현재로선 겸손 상태다!
책 추천해주신 김민우님께 감사드려요!
ㅇ (처음) 우리는 욥기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욥기를 직접 읽거나 설교를 통해 접해 본 이들은 아마도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의 창대하리라” 혹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를 그 핵심 메시지로 기억할 것이다.
ㅇ (마지막) 욥은 세상의 모든 고통 받는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고통속에서 정의를 울부짖는 자들, 불의한 일을 경함한 공동체의 슬픔과 탄식의 소리가 계속되는 한 욥기는 계속 읽혀질 것이다.
→ 오!!!! 마지막 문장 대박! 왠지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와 맞닿아 있을 것 같다.
3. 그리고, 강렬했던 플친님들의 유혹하는 페이퍼들!
플친 고수님들의 리뷰는 통장 잔고를 순삭시키는 훌륭한 금고털이이다. 북플 휴식기동안 용돈이 많이 굳었는데, 요즘 나의 통장잔고는 북플에 좋아요 누르는 숫자만큼 반비례하여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덕분에 술값도 같이 줄었다는 걸로 위안을 삼고 있다. 다시 북맥매니아로!
(15) 사무라이(엔도 슈사쿠)
서점 민음사 코너에 가면 이상하게 몇 해전에 읽은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에 눈길이 간다. 지금은 당연히 기억이 안나지만, 중년 남성이 갠지스강에서 삶과 죽음을 바라보던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몇 달전 우연찮게 <침묵>은 영화로 보았다. 다만, 맥주마시면서 봐서 <테이큰>의 주인공이 여기서 왜 나와? 하는 정도의 감상만 남아 있다.
여하튼, 작가와의 이 정도의 만남이라면 올해 엔도 슈사쿠 작품을 한번 읽어야지 하는 마음먹고 있다가 스캇님의 사무라이 리뷰를 보고 말았다.
그리고, 오늘 스캇님의 사무라이 리뷰를 잊을만 하니 페넬로페님의 강도 높은 리뷰가 콤보 공격으로 더해졌다.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고, 구입하길 잘했다는 확신마저 든다. 두 분 감사해요! 덕분에 책 사서 돈 없다고 버텨서 선배에게 욕도 먹고 술도 잘 얻어 먹었습니다.ㅎ
책 표지의 파도가 격정적인게 소설이 너무나 기대된다. 언제 읽을지는...ㅠ.ㅠ
ㅇ (처음) 눈의 내렸다.
ㅇ (마지막) 거품을 일으키며 해변을 덮치는 파도가 옥졸이 떠내려 보낸 거적을 삼키고 부딪치며 물러간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겨울 햇빛은 긴 모래사장에 내리쬐고 바다는 바람소리 속에 여전하게 펼쳐져 있다. 대울타리 안에 이제 관리나 옥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마지막 문장은 영화 <침묵>의 초반부 향기를 느껴 본다.
(16) 벨아미(기 드 모파상)
이 책은 2주 전 쯤인가 미미님과 새파랑님의 콤보 리뷰에 영화부터 보았고, 강렬한 느낌에 휩싸여서 다음날 동네 책방을 3군데나 돌아지만 없어서 결국 알리딘 주문했다.
우리 지역 사람들은 이런 불륜형 막장 소설을 좋아하나 보다. 전문서적이나 인문학 서적은 절대 없는 경우(우리 동네 모서점에는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 건강코너에 꽂혀 있다.ㅠ.ㅠ)가 많지만, 고전이 없는 경우는 처음 겪었다.
영화가 책의 내용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모르겠지만, 진정한 사랑 내지 사랑의 도덕적 한계를 모르고 육체적 사랑만으로 승승장구한 야심가가 사랑을 알게 되었으나 그 사랑에 배신 당했을 때, 복수의 화신으로 변신하여 어느 선까지 복수할 수 있는지 느낄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서양 도덕의 한계(오이드푸스 라인라고 부르면 문학적일 것 같은데)를 넘어서 복수와 야심을 성취하여 오이디푸스를 참칭하고도 또 다른 육체적 탐욕을 기대하는 남주의 눈빛은 정말 강렬했다.
야심과 복수심이 깊어 갈수록 변해가는 남주의 눈빛 연기는 거의 아카데미 급이었다.
ㅇ (처음) 조르주 뒤루아는 계산대 여자에게 100수짜리 주화로 거스름돈을 받고는 레스토랑을 나왔다.
ㅇ (마지막) 강렬한 햇빛 때문에 가늘게 뜬 그의 눈앞에는, 드 마렐 부인이 침대에서 나올 때면 언제나 마구 흐트러지는 귀여운 곱슬머리를 거울 앞에서 매만지던 영상이 어른거렸다.
→ 세계문학에 당당히 포함된 막장의 고전은 어떤 향기를 품고 있을지!
(17) 나는 고백한다 1(자우메 카브레)
팔스타프님 등 많은 분들이 극찬을 하셔서 심하게 흔들렸다.(무려 3권) 그러나, 서점으로 달려 갈 수 밖에 없게 만든 행복한 책읽기님의 한마디 “여러분! 이 책 꼭 읽으셔야 합니다”....“넵”이라고 하는 순간 교보문고 포스에 내 카드가 끍어지고 있었다.
“인간 마음속의 악의 본질!” 이거 또한 내가 좋아하는 주제이지! “보여다오! 나의 맘속에 또아리 틀고 있는 거대한 악이여! 너의 실체를 보여주라고!”
ㅇ (처음) 어젯밤 발카르카의 비에 젖은 거리를 걸으며 비로소 나는 내 가족 중 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실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ㅇ (마지막) 슈투트가르트행 표를 사며 나는 이러한 순수의 시절이 끝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 나의 가족이 비정상적이라서 나의 실수는 정상이라는 것인지, 아니면, 나의 가족이 정상이지만 내가 비정상인 것이 가족에게 실수라는 것인지 알수는 없다....일단 마지막 문장으로 전자의 경우로 추단해 본다...근데 무려 3권...다들 재밌다고 하시지만 언제쯤...ㅠ.ㅠ
(18) 밝은 밤 (최은영)
내 인생에서 본격적으로 단편소설의 맛을 느끼기 시작한게 작년 추석 즈음이었고, 나를 단편의 재미로 이끌어 준 우리나라 여성작가 3인방이 최은영, 김금희, 김애란이었다.(다만, 단편입문은 레이먼드 카버...특히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되는”이라고 해야 이 형님이 서운하지 않으실 듯하여 밝혀둔다.)
그 즈음 읽었던 <쇼코의 미소>는 여리지만 여운이 강했다. 그래서, 작가님의 장편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올라오는 좋은 리뷰들은 주저함을 없에 주었다. 그리고, 최근 그레이스님의 <쇼코의 미소>리뷰는 그때의 감정선을 충분히 끌어주었다.
ㅇ (처음) 나는 희령을 여름 냄새로 기억한다.
ㅇ (마지막) 할머니는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안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표지가 아름답다. 옅은 노을에 배3~4척이 떠 있는 풍광이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책 날개에 오정희 작가님이 쓰신 “슬픔을 위로하고 감싸자는 더 큰 슬픔의 힘”이라는 헌사가 맘에 머문다. 그 힘의 정체가 궁금해 진다.
그리고, 보고싶은 나의 외할머니!
4. 그리고, 팬심으로!
(19)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김금희)
나는 금희 작가님 참 좋다. 그냥 참 좋다. 장편 <경애의 마음>은 읽지 않았지만, 작가의 단편들에 뭍어나는 금희의 마음이나 느낌이 정말 좋다. 그래서 나는 금희 작가님 책 수집가이다.
단편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는 문학상 작품집에서 이미 읽었지만, 금희작가님의 단편집에 묶여 나와서 버틸수 없었다. 많은 분들이 시쿤둥 하시던데 나는 페퍼로니를 좋아한다. 잘 숙성했다가 마음이 다가설 때 꺼내 볼 예정이다.
ㅇ (처음) 지난봄 오랜만에 일산에 갔을 때 나는 그곳이 내가 살았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다.
ㅇ (마지막) 인터체인지들은 내비게이션이 아니라면 길을 잃을 것처럼 복잡하게 얽혔고, 그 순간 나는 만월의 여름밤을 달려 여전히 상경 중이었다.
→ 단편이라 첫문장과 끝문장으로 내용을 짐작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떠냐 금희작가님이다.
(20) 지렁이 울음소리(박완서)
올해가 박완서 선생님 타계 10주년이다. 우연찮게 유시민작가님의 알릴레오북스를 듣다가 <엄마의 말뚝>을 통해 선생님을 처음 뵈었고,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기나긴 하루> 등을 읽었다.
마냥 해맑을 것 같은 선생님의 모습과 달리, 전쟁이나 분단을 바라보는 서늘한 시선, 자식을 잃은 부모의 절절한 심정 등을 흔들림없이 직시하고 뼈져리게 그려내는 작품들이 가슴깊이 남아있다.
다만, 모두 전자책으로 읽어서 종이책의 감성으로 선생님의 기억하고 싶었다.
<지렁이 울음소리>는 그렇게 내 책장에 들어왔다.
ㅇ (처음) 남편은 TV채널 돌리는 데 독특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ㅇ (마지막) 나는 내 어머니의 죽음으로 내 오랜 얽매임을 풀고 자유로워질 실마리를 삼아 볼 작정이다.
→ 알라딘 특별판이라서 만듦새가 참 이쁘다. (까칠한 사춘기) 소녀같은 선생님의 감성이 묻어 난다. 선생님의 마음과 생각을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5. 마치며
책을 한권 구매하고, 읽고, 서재에 후기를 올리고, 여기서 다른 분들의 후기를 읽고, 또 다른 책을 구입하거나 빌려서 읽어나가는 연속의 행위가 어릴적 했던 핀볼 게임 같은거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핀볼게임은 처음에 은색공으 한발 쏘아 올리면 최대한 많이 부딪치며 게임의 공간속에서 오래 머물다가 와야 높은 득점을 할 수 있는 그런 게임이다.
내가 쏘아 올린 한 권의 책이 서재의 다른 누군가에 영적 점수에 영향을 미치고, 나도 이 한권에 꼬리를 무는 다른 책을 소개해 주신 소중한 플친분들의 선한 영향을 받고, 책 한권이 그렇게 그렇게 이리저리 튕겨져 헤메다가 커지고 단단해져서 마지막으로 내게 다시 돌아 왔을 때 더 큰 감동과 즐거움으로 좀 더 성숙한 나의 한자리로 자리 잡아 가는게 아닐까 한다.
그런 마음으로 20발의 핀볼을 준비했으니 이제 이제 불꽃을 쏘듯 한발 한발 어딘가로 이 작은 공을 쏘아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