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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성 ㅣ 을유사상고전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정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9월
평점 :
0. 들어 가며.
몇일 전이었나? 프랑스어 판 <제2의 성> 표지의 강렬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생각 끝에 그 표지의 의도를 혼자 해석해 보고는 역시 프랑스는 예술과 철학의 강국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La Grande Odalisque, 1964, 아크릴릭, 천, 유리, 캔버스 위에 사진 배접, 130×97cm>
우리나라판의 표지는 어떤가?하고 살펴보니, 보부아르가 단아한 자세로 한줄 한줄 눌러쓰는 모습의 사진이 나쁘지는 않지만 프랑스어판 만큼의 메시지는 부족한 것 같았다.
그러다, 아래와 그림과 같은 1권의 삽화를 본 순간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물론 2권 삽화인 베리트 모리조의 요람도 정말 굿초이스라고 생각한다.)
이 그림을 보부아르가 선택해서 원본에 있다면 그녀는 정말 천재이다. 반면, 우리나라 판에 우리 편집자가 넣었다면 그 분은 프랑스 원본 출판사에서 상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래에서 그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풀어 놓아 보려고 한다.
1. 테세우스 신화 속 아리아드네 이야기
포세이돈은 크레타의 미노스왕이 자신을 능멸한 죄로 그 아내(파시파에)가 흰 수소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그 결과 아내는 머리가 소이고 몸은 사람인 미노타우르스(미노스의 황소라는 의미)를 낳게 된다.
이에 미노스왕은 만능 기술자 다이달루스에게 한번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나오지 못하는 지하궁전(미궁, labyrinth)을 만들게 하고 미노타우르스를 가두어 버렸다.
미노스왕은 아테나이로부터 매년 젊은 청년과 처녀를 각각 8명씩 공물로 바치게 하여 이들을 미궁속에 넣어서 미노타우르스의 양식으로 하게 하였다.
이에 아테나이의 왕자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르스를 무찌르기 위해 자신이 직접 제물이 되어 크레타로 향해 간다.
미노스왕에게는 아리아드네라는 공주가 있었는데 그녀는 첫눈에 테세우스에게 반하게 되고 그에게 붉은 실타래와 칼 한자루를 주어 미노타우루스를 무찌르도록 돕니다.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테세우스는 미궁 입구에 실을 묶어두어 그것을 풀면서 안으로 들어갔고, 미노타우르스를 무찌르고 나서는 그 실을 따라 무사히 미궁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미노타우르스를 물리친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를 데리고 크레타섬을 탈출하여 아테나이로 돌아간다. 아테나이로 향하는 도중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는 낙소스라는 무인도에 머무러 깊은 잠에 빠지게 된다.
이때 테세우스의 꿈에 아테나여신이 나타나서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가라고 경고하고, 급기야 테세우스는 아리아드네가 잠든 틈을 타서 낙소스섬에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떠나 버린다.
잠에서 깨어난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버린 사실을 알게 되자 절망에 빠지게 된다.
이때 그녀 앞에 낙소스섬의 주인인 디오니소스(바쿠스)가 나타나 첫눈에 반한 아리아드네를 위로하며 자신의 아내로 삼게 된다.
아리아드네와 바쿠스는 낙소스섬에서 오래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불사의 신인 디오니소스와 달리 인간 아리아드네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디오니소스는 아리아드네가 죽은 후 그녀가 쓰고 있던 왕관을 하늘로 던져서 아름다운 별자리인 왕관자리를 만들어 아리아드네를 영원히 하늘에 새기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2. 다시 쓰는 아리아드네 이야기
<제2의 성>에 삽화로 들어갔다면 기존의 이 신화속 이야기에 대한 내용은 아래와 같이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치하지만 지루하지 않다면 계속 읽어 주시길!ㅎ
크레타섬을 탈출하면서 긴장과 피로가 겹쳤던 아리아드네와 테세우스는 낙소스섬에 도착하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한참을 깊은 잠에서 헤매이던 그녀가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 보았다. 그런데, 옆에서 같이 잠들었던 테세우스가 사리지고 없었다.
고개가 돌려 멀리 바다쪽을 바라보니, 그녀가 타고 왔던 테세우스의 배가 돛을 활짝 펼치고 순풍을 가득 받으면서 아테나이 쪽으로 질풍같이 항해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크레타섬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여신은 그녀가 조국과 부모를 버리고 형제를 죽여 버린 배반자로 낙인 찍히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준다.
그녀는 순간 깨닫고 말았다. “나는 조국과 연인으로부터 버려졌구나!”
그녀는 극적으로 크레타섬의 미궁을 탈출했지만, 낙소스섬에서 절망이라는 미궁에 또 다시 갇혀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또 다시 낙소스섬 미궁의 장벽 앞에서 지난날 크레타섬에서의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며 고뇌하기 시작한다.
사실 그녀는 크레타섬의 공주로서 미궁에 갇혀 있던 반인반수의 미노타우루스를 엄청나게 저주할 수 밖에 없었다.
먼저, 신의 계략이라 할지라도 미노타우루스는 자신의 오라비가 아니라 어머니와 수컷황소의 수간(獸姦)으로 만들어진 반인륜•비도덕의 상징물에 불과했다.
아울러, 미노타우루스는 해마다 아테나이의 처녀•총각을 먹어 치우는 살인마이자 비열한 공포정치를 상징하는 괴물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녀는 미노타우루스라는 반인륜의 상징이자 공포정치의 살인마를 언젠가는 반드시 제거하고 크레타 왕국을 당당하게 바로 세우고자 하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테나이에서 테세우스가 공물로 바쳐진 처녀•총각을 구출하려고 크레타섬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여 비도덕의 비탄에 빠진 크레타를 구하고, 테세우스와 아테나이로 건너가 새로운 왕국의 당당한 여군주로서 삶을 개척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미노타우루스를 죽이는 이 혁명에 그녀는 지혜로서 참여하고 테세우스는 힘으로 참여한 혁명의 동지가 되었다. 두 사람은 마침네 합심하여 미노타우루스를 죽이고 함께 아테나이로 떠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평가는 달랐다.
첫째, 크레타왕국은 그녀의 존재와 행위를 타자화 시킴으로서 자신들의 도덕적 아킬레스건을 제거하고 對아테나이 투쟁의 제물로 삼을 수 있었다.
크레타의 왕과 시민(이 시기라면 시민은 남자를 의미함)들은 그녀에게 부모와 조국을 배반하고 오라비를 죽인 여자라는 멍에를 씌우는 방법으로 아테나이에 대한 패배와 모욕을 스스로 위로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인륜적인 반인반수의 살인괴물이 제거되었다는 사실만으로 크레타에서는 사실상 평화의 축제분위가 은밀하게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아울러, 아리아드네 이야기를 크레타왕국의 여성들에게 투영시켜 여성에 대한 남성지배 사상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고도 있었다.
한마디로, 그녀는 크레타의 정치 및 사회 지배 체제에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타자화되었고, 그녀의 혁명은 가치절하 되고 결국엔 조국과 부모의 배신자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둘째, 테세우스는 자신의 조국을 구하기 위해서 아리아드네를 철저히 이용했을 뿐 처음부터 그녀와 공동으로 크레타의 괴물을 처단하고 아테나이에서 새로운 질서를 확립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테세우스는 그녀를 배신한 것이 아테네여신의 명령 때문이라고 비겁한 변명을 늘어 놓는다.
그러나, 당시의 지배세력의 욕망, 법률, 관습 등은 어떤 형태로든 신화라는 형태로 투영되었고, 언제든지 기득권자에 의해 유리하게 조작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특히나, 보편적인 신화나 규율도 아니고 아테네여신의 계시라는 변명이 자신의 꿈속에서 나타난 것이라면 꿈꾸는 자(주체)에 의한 왜곡은 식은 죽먹기처럼 쉬운일이 아니었을까?
결국, 테세우스는 그녀를 자신의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오직 도로로서 철저하게 이용했을 뿐이고,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의 아테나이식 여필종부 및 삼종지도의 논리에 의해 철저히 배신당해 버리고 만 것이다.
그녀는 오랜 자기성찰 끝에 자신이 조국의 기득권 세력에 의한 정치적 논리와 가부장적 가족•사회제도에 의해서도 물론이고, 함께 혁명과 사랑을 꿈꾸었던 동지이자 남자로부터도 타자화되고 즉자화 상태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3. 아리아드네의 결심(제2의성 p30, p48, p358~360의 문장을 적절히 재구성)
그녀는 자신 앞에 드리운 낙소섬의 미궁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을 타자화 시킨 세력에 의해 공모를 제안 받는다. 이 미궁속에서 그들이 구축한 미궁의 질서에 복종하고 새로 만나는 남자의 사랑에 순종하면 행복한 삶을 살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홀로 성찰하고 자신이 나아갈 방향을 신중하게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생각한다. 어쩌면 이러한 버림받은 고독의 상태가 자유의 극한 순간이라는 점을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다.
그녀는 현 상황에서 얻을수 있는 행복은 쉽게 결심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이지, 자신의 노력이나 투쟁이 필요한 사안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다..
그녀는 철저한 자기 성찰을 통해서 진정한 자유는 자기를 구속하는 장애물 너머로 자기완성을 성취하려는 그 노력 자체(초월)를 의미한다(p357)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이 아닌 자유를 원했고, 스스로 초월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 하고 진정한 자유를 완성하고 싶었다.
남성권력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세력에 의해 그녀의 초월은 내재상태로 떨어져 자신의 존재가 ‘즉자(卽自)’상태로 퇴보하고, 자신의 자유가 사실성(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으로 타락하며, 결국에는 자신의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것은 결단코 원하지 않았다.
그녀의 잠자던 영혼이 미궁의 벽, 군주의 의지, 가부장제의 엄격성과 같은 적들에 둘러싸이자 드디어 야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신화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성문제에 있어 여전히 변함없는 중요한 테제중 하나인 "진정한 여성의 문제는 여성의 문제가 남성의 문제"라는 인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타자화와 즉자상태로의 전락이 자신이 동의한 것이라면 자신의 도덕적 과실이고, 기득권 세력에 의해 강요된 것이라면 박탈감과 억압의 형태를 띠게 될 것이므로 두 경우 모두 절대 악이라고 규정하기에 이른다.
이제 다시 그녀는 절대로 자신을 타자로 규정할 수 없었다. 스스로 타자로 규정하는 순간 자신은 결코 주체의 자리로 초월할 수는 없는 것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주체로 확립하는 주체에 의해서만 그녀를 배제해 버린 기득권 세력을 타자로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스스로 주체로 반전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타자의 낯선 관점에 복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그녀의 투쟁은 더 힘겨운 만큼 그 노력이 더 비장할 것이다.
4. 아리아드네의 선택
아리아드네는 이러한 결심을 통해서 자기를 스스로 가두었던 낙소스섬의 미궁에서 빠져 나왔다.
돌아보니, 멀리서 이 섬의 주인 디오니소스가 포도넝쿨로 만든 왕관가지고 그녀에게 청혼을 하기위해 요란한 행차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놀라거나 망설이지 않고 디오니소스의 청혼을 당당하게 받아드림 으로서 자신의 초월을 실천한다.
<티치아노, 바쿠스와 아드리아네, 캔버스에 유채, 177*191cm>
혹자는 이게 무슨 일인가? 그렇게 진지하게 성찰을 했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고작 선택한다는 것이 다른 남자를 선택하는 방법으로 현 상황을 초월하는 방법이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르다.
서양의 신화와 철학에서 디오니소스는 아폴론의 대척점에 있는 신으로 평가되며, 아폴론이 이성•법질서 등 합리성을 상징한다면, 디오니소스는 반이성•감성•탈주를 상징한다.
그녀를 타자화 시킨 것은 이성, 법질서, 거짓 신화 등으로 포장된 남성•가부장적 부권•배타적 사회제도 등 기득권의 이익을 수호하는 아폴론 신을 추종하는 자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항해서 그녀가 디오니소스적 반철학의 이념으로 진정한 초월을 통해서 자유를 쟁취하는 투쟁을 선택하는 것은 아리아드네의 너무나 멋지고 용기있는 선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주목할 점은 그녀가 죽자 디오니소스는 그녀가 쓰고 있던 왕관을 하늘로 던져서 아름다운 별자리인 왕관자리를 만들어 아리아드네를 영원히 하늘에 새겨 두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반철학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아폴론신이 주장하는 기득권의 본질론에 맞서 함께 투쟁한 인간 여성동지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와 진정한 인정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선택은 초월 그 자체이고 자유의 쟁취라고 해석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5. 글을 마치며.
창문을 열고 오늘 따라 유독 싸늘해진 밤하늘을 바라본다. 별자리 앱을 켜고 왕관자리를 찾아 보지만 날씨가 흐린탓인지, 이성도 반이성도 굴복시켜 버리는 대기오염의 영향인지 쉽게 찾아 지지는 않는다.
이제 <제2의 성>도 700p가량을 힘겹게 넘어선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스쳐 지나가던 여자 동료, 여자 선후배, 이모, 엄마라고 불리우던 존재들에게서 여성이라는 단어의 깊은 의미와 고뇌를 재조명 할 수 있는 시각을 얻어 나가고 있는 건 이 책의 엄청난 성과인 것 같다.
한분, 한분의 여성들의 마주침에서 여성을 덮고 있는 왜곡의 먼지들과 그 삶의 무게를 조금은 느끼고, 부족함이 많지만 약간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남성세력•기득권세력•정치제도•사회 및 가부장적 가족제도 등이 그녀들의 몸 구석구석에 한줄 한줄 메어 놓은 지독하게 왜곡된 편견의 질긴 끈도 조금은 바라 볼 수도 있게 된 것 같다.
한편, 그 끈에 매달려 진정한 자유를 잊고, 행복이라는 공모의 열매를 손에 쥐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마리오네트의 삶이 보이기도 하다.
물론, 남자인 내 삶도 많은 끈이 매달려 이리 저리 휘둘리고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 없는 독특한 색깔과 굵기의 끈이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녀들을 흔들어 대는 모습이 늦게 나마 보여서인지 조금은 더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다.
오늘은 왕관별자리를 찾아서 모든 여성에게 전하지 못하는 위로와 용서의 말을 넋두리라도 해 보고 싶은데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깊이 남는다.
어서 어서 책장을 넘기는 것이 위로와 용서를 전하는 것이라고 변명해 본다.
PS. 아직 완독은 안했지만, 쓰다보니 리뷰란에 쓴 관계로 별 5개를 주었습니다. 이 책은 왕관자리를 구성하는 별의 수만큼 별을 투척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서문만으로도 그 가치는 충분히 차고 넘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