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직접 운영하는 블로그 : (https://blog.naver.com/pianocl)
설 연휴가 시작되기 바로 전날(21.2.10) 오후였다. 공장의 후배 녀석이 메신저를 날린다.
"형! 고향도 못 내려가고 우울한데, 짜장면 먹으러 가요! 가고픈데가 있어요!ㅎ" 느낌 싸했지만 일단 콜했다.퇴근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지만 명절 연휴 전날 근무시간이 너무나 지겨웠다.
후배랑 나는 가끔씩 금요일 오후 느지막에 조퇴를 해서 우리 공장 인근 지역(?)의 중국집을 가보곤 한다. 장소를 물색하는 것은 주로 그 녀석이 "중국집"이라는 책의 저자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탐색해서 결정한다.
작가의 블로그에서는 중식외에도 다양한 음식을 다루지만, 작가가 선택하는 중국집은 주로 노포를 방문하고, 대체로 (간)짜장과 짬뽕을 드시는 듯 하다. 소화제(소주)를 곁들인 사진도 시선을 사로 잡는다.
우리도 대체로 요리 한가지와 (간)짜장면, 짬뽕 중 한가지를 주로 먹는 편이다. 운전을 못하는 그 녀석은 주로 장거리 중국집을 찍어서 언제나 만만한 나를 픽 한다.
그날의 목적지는 매운맛의 대명사인 청양고추의 산지이자 콩밭메는 아낙네가 칠갑산에서 격하게 호미질 한다는 충남 청양에 위치한 <태풍루>라는 식당이었다.
그러나, 공장에서 중국집까지 거리는 약 50분!ㅠ.ㅠ...'그래! 바람 쐬러 간다고 생각하자!", '짜장먹다 죽은 귀신은 제사때도 중식코스로 제삿상 받을꺼야!"라고 위로하며 차를 밟는다. 그나마 '점심을 부실하게 먹은게 다행'이라고 위로까지 해본다.
식당 근처에 도착하니 청양이라는 동네의 시골스런 풍경과 설명절을 준비하는 청양시장의 분위기가 활기차서 맘이 들뜬다.
청양에 있는 <태풍루>라는 식당 문 앞에 세월의 무게를 견딘 노포의 포스를 잠깐 느껴 본다.
(후배가 직접 촬영함)
식당으로 들어서서 나는 당연히 청양짜장, 후배녀석은 짬뽕을 주문하고 둘러보는 가게에는 요즘 중식당에서 느끼기 힘든 고풍스런 느낌이 스멀스멀 풍겨 나오는 듯 하여 노포집 짜장면에 대한 기대를 한 것 부풀려 준다.
청양짜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 간짜장과 비슷하다. 오히려 생각보다 양파가 덜 보여서 약간의 의구심도 들었지만, 향긋하게 볶아진 짜장을 면에 넣고 좌삼삼, 우삼삼, 종합적 삼삼으로 비비고 나니 제법 먹음직스런 자태를 드러낸다.
젓가락으로 돌돌 말아서 후루룩, 후루룩 입속으로 가져간다. 짜장면이나 라면은 입으로 씹는 것이 아니라, 위장이 씹는 기능과 소화기능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게 나의 지론이다. 입은 맛을 느끼는데 집중해야지 쓸데없이 많이 씹어서 맛의 집중도를 떨어뜨릴 필요는 없다. 그야말로 "이빨은 거들 뿐이다!"
여하튼, 처음엔 그냥 간짜장 맛이었는데, 그릇이 절반쯤 비워질 무렵부터 청양고추의 매운 맛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고추를 먹을때 같은 매운 맛은 아니고, 정의할 수 없는 깊은 알싸함이 그릇의 마지막을 비울때까지 입술, 입안, 식도, 위장을 지배한다. 하지만, 결코 강한 지극이 아니라 은은한 약간 무거운 느낌이다. 소주가 간절하지만 참는다..ㅠ.ㅠ.
(사진은 블로그 푸하하크림빵 참조)
후배녀석의 짬뽕은 국물만 맛보았는데, 짬뽕이라고 하기엔 약간 맑은 느낌이랄까? 지리같은 느낌의 매운탕이라고 할까? 아뭏든 짬뽕은 짬뽕인데, 그것도 빨간맛 짬뽕인데 맑은 느낌이 새로웠다.
깔끔하게 완짜 및 완뽕을 한 후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매운 맛을 진정시키며 다시 차에 오른다.
10여분을 달리니 후배녀석은 코를 골기 시작하고, 강하진 않지만 화끈거리는 느낌이 돌아오는 50분내내 입술 주변에 가득해서 이 짜장면을 절대로 잊을수는 없을 것 같다.
어두운 국도를 달리며 문득 어린 시절 친구들과 맛있게 먹었던 짜장면을 회상한다. 그떄는 가난해서 운동회가 아니면 명절날 용돈받고 나면 먹을수 있었던 것이 짜장면이었다.
내가 살던 부산의 하꼬방 동네에서 자갈치 시장까지 대략 40~50분을 걸어가서 짜장면(약 500~800원?) 한 그릇 먹고, 롤라스케이트장에서 신나게 놀다가 떡볶이로 마무리하는게 어린 시절 명절을 기다리는 또 하나의 큰 즐거움이었다.
그 시절에 50분을 걸어서도 갔는데, 지금은 차로 편하게 가면서도 짜장면 한 그릇 먹자고 이렇게 해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니 나도 이젠 경제적으로 제법 배가 부르긴 한가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 800원짜리 짜장면이 무슨 맛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지금도 입가를 까맣게 물들여 가며 그릇 바닥에 붙은 짜장을 숟가락으로 박박 긁어대며 먹었던 그때 그 짜장면이 가끔씩 참 그립다. 오죽했으면 냅킨으로 입을 닦기 전에도 혀로 입술 주위를 몇바퀴씩 돌려대었던가?ㅎ 내가 먼저 먹어버리면 기다리기가 곤혹스러워서 천천히 천천히 800원짜리 한 그릇을 얼마나 음미음미 했던가?ㅎ
가끔씩 부산에 내려가면 그 시절 짜장면을 함께하던 친구들과 중식당에 가곤 한다
이제는 탕수육, 양장피도 큰 부담이 없을 정도로 먹을 수 있고, 그 시절에 침만 꼴깍거리며 바라보던 사이다 대신 연태고량주나 소폭을 함께 곁들이기도 할 만큼 다들 많이 늙어 있다. 하지만, 중식당에서는 언제나 그 시절 맛나게 먹었던 짜장면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40대 후반의 꼰대 아자씨들은 산복도로를 뛰어 다니던 소년으로 돌아가게 된다.
술이 제법 얼큰하게 들어간 후 마무리는 짬뽕이 제격일 듯 한데, 친구들은 소리친다. "야! 짜장은 추억으로 먹는거야!"하는 누군가의 주정이 나오면, 짜장면에 고추가루 흩날려 주고 마무리 소맥을 몇 잔 들이켜야 2차로 발길을 옮기곤 하였다.
오늘 점심에는 이 작가가 포스팅한 노포 중국집 중 우리 공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들러서 간짜장을 먹었다. 맛나게 먹고 나오면서 생각하니 부산에서 친구들과 만난지도 꽤 오래되어 가는 것 같다. 이번 설에도 가지 못했고! 사는게 뭐라고!ㅠ
올해는 봄이 오고 코로나의 위험이 좀 풀어지면, 반드시 부산에 가서 중국집으로 옛 친구들 소집하구선 따끈한 탕수육에 소폭을 진하게 돌려야 겠다.
하지만, 부산에서 중국집을 찾을때 이 책 저자의 도움은 필요 없을 듯 하다. 자갈치나 남포동 근처에 있는 아무 중국집에 들어가도 맛나게 먹을 수 있을 것은 확신이 있기 떄문이다. "짜장은 추억으로 먹는 거니까!"
간만에 먹은 짜장 한그릇이 별별 추억을 다 소환하는 저녁이다. 오늘 10시경에 짜파게티나 끓여서 소주 마실까 보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