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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마종기 시작詩作 에세이
마종기 지음 / 비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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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가고 이념과 이상이 나를 괴롭혔을 때 선배가 내게 내민 것은 마종기의 시집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이었다. 그때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오는 시집들을 모두 읽어야지 했지만 나는 거리에 나와 활주하느라 시집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동료가 다쳤고 손가락 혈서까지 쓰는 일이 생기고 나니 더럭 내가 하는 일이 겁이 나서 한 달을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찾아온 선배의 손에 들려 있는 여러권의 책들 속에 있었던 책이 마종기의 시집이었고 나는 밤새 읽으며 울었다.

 

나를 다시 달리게 했던 시인이 벌써 50주년을 맞았다. 그 기념으로 자신의 시 50편을 추리고 그 시마다 시인의 주석을 달아주셨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고 잊지 못하는 그 시들도 실렸다. 아련한 그때의 추억으로 나는 다시금 김연수의 말처럼 끊어진 거문고 줄 소리를 들었다.

 

시인 마종기는 태어난 배경부터 남다르다.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으로 와서 20대에 미국으로 건너갔고 그 이후 30년동안 한국에 오지 않다가 다시 고국으로 와서 살다가 미국으로 오가며 살고 있고, 아동 문학가인 유명한 아버지를 두셨으며 한국 여성으로는 최초인 서양무용가로 활동한 어머니를 두셨다. 더욱이 연세대 의대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다시 미국에서 방사선과 전문의가 되고 1995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소아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셨고, 아들은 같은 의료직에 근무하는 의사고, 둘째 아들은 변호사에 셋째 아들은 사업가인 참 부럽고 동경의 대상이 되는 스펙을 가지셨다고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에 나는 그가 우리 아버지라면(나의 친 아버지에게 미안하게도) 얼마나 좋을까 했을 화려한 스펙이 부러웠지만 그의 시를 읽고 시에 대해 풀어주는 얘기들을 듣고 나니 더욱 더 그의 딸이 되고 싶어졌다.

이런 시를 들려주는 아버지는 어떨까?

어쩜 별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셨다는 시인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느낌이었지 않을까? 이해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긴 시간을 두고 다시 한 번 떠 올리며 아프게 그리워하는 딸이 되어 있지 않을까? (웃긴 상상이었다.)

 

고국을 너무도 오랫동안 오지 못했고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미국에서 살아온 시인의 당신은 혹시 떠나온 고국을 부르며 살았던 것일까 생각했지만 당신은 시인의 나라이며 가족들과 그때의 모든 그리움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안 보이는 사람의 나라> 중 (P65~69)

 

3. 대화 對話

아빠, 무섭지 않아?

아냐, 어두워.

인제 어디 갈 거야?

가봐야지.

아주 못 보는 건 아니지?

아니, 가끔 만날 거야.

이렇게 어두운 데서만?

아니, 밝은 데서도 볼 거다.

아빠는 아빠 나라로 갈 거야?

아무래도 그쪽이 내게는 정답지.

(중략)

-아빠, 갔다가 꼭 돌아와요, 아빠가 찾던 것은 아마 없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꼭 찾아보세요. 그래서 아빠, 더 이상 헤매지 마세요.

 

 

대화는 아빠인 나와 아들 혹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시인의 아버지와 자신이 얘기하듯 써내려간 시를 읽는 동안 애잔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었는데 그때 내가 가장 힘들었을 때 힘이 되어준 시이기도 한 이 시는 정말로 시인이 고국으로 돌아오기로 했었는데 가족들이 모두 미국으로 와버린 상황이라서 갈 수 없어 다시 고국 행을 포기하고 써내려간 시라고 했다. 역시 시(時)나 소설이나 모두 아픔을 가진 것들은 이렇게 타인에게도 고스란히 그 아픔이 전해오는 것이다.

 

유독 시를 읽는 동안 가족에 대한 아픔을 많이 느낄 수가 있었다.

특히 고국 행을 포기하게 했던 동생이 미국으로 건너오고 유독 자신을 잘 따랐던 동생이었고 자신을 닮고 싶어서 의대도 가고 싶다는 동생을 자신이 하지 못했던 문학을 하게하고 기자가 되었음 했던 그래서 그렇게 되어 주었던 동생이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버리고 형에게 와야 했던 그 동생의 죽음을 얘기하는 시인의 글자들에서 보이지 않는 눈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피붙이의 황량한 묘지 앞에 서면

생시의 모습이 춥고 애잔해서

눈 오시는 날에도 가슴 미어지는구나.

 

::

그렇다, 우리는 도저히 헤어지지 않는다.

네 숨결은 묘지 근처의 맑고 찬 공기,

하늘이 더 낮게 내려와 우리는 손을 잡는다.

어느새 눈이 그치고 바람이 자고 우리가,

_겨울 묘지 P187>

 

 

 

절대로 끝을 낼 수 없는 동생에 대한 애잔함, 쓸쓸함, 그리움이 시에서도 결국 마침표를 찍어내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50편의 시중에서 나는 최고를 꼽으라고 한다면 <악어>를 꼽고 싶다. 일흔이 넘은 시인이 제 나이에 걸맞은 삶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악어 시문 中234) 시인의 얘기에 어떻게 살아야 더 알 수 있다는 말일까 싶은 생각이 드는 시였는데 다 읽고 그의 얘기를 듣고 나니 그동안 읽은 시들을 느리고 낮은 포복으로 기어 다니는 악어가 모두 먹어버렸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지 못하고 사는 장남의 삶은 악어 같다는 시인의 자괴감이란 참 그것마저도 부럽구나,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그 죽음을 함께 해주지 못했던 시인이 가졌을 절대적인 슬픔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를 내치듯 다른 나라로 보냈던 조국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그리움이 이렇게 긴 시간을 보냈고 시인은 아직도 그것을 모두 당신이라 부르며 그리워하고 있었다.

어떤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슬픔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혹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공감하는 사람들이라면 시인의 시들이 모두다 꽃으로 피겠지. 그래서 나도 이렇게 그가 불러주는 그리움의 노래들에 혼자서 옛 생각을 떠올리는 것일지도.

그래서 그의 시들이 늘 멀리 있는 나라를 그리워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듯 나도 이렇게 위로하면서 그의 시를 읽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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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서 살다
조은 지음, 김홍희 사진 / 마음산책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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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달라지는 데는 반드시, 고통이 동반된다. 그것이 우리 삶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 고통은 평화로운 물처럼 흘러가지 않고 격랑을 몰고 오는 사랑에서부터 시작된다. - 사랑의 말 이곳 저곳에 대하여 P 51"

 

꼭 나이와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잘 맞춰진 옷처럼 내 몸의 이곳저곳을 잘 가려주는 듯한 옷을 입는다는 느낌이 드는 물건을 만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날 때도 나이와 연관이 있는 듯하다.

2002년 1판 4쇄에 발행된 <벼랑에서 살다>를 읽었을 때는 이십대 날것의 감성이어서 그랬는지 사실 어떤 감흥보다 시인 조은의 맛깔나게 글을 쓰는 것에 부럽다는 생각으로만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딱 8년이 지난지금 무심코 다시 들었던 책에서는 시간의 흐름만큼 나는 그녀의 집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책을 읽다가 뭔가 뚝 떨어져 화들짝 놀라보면 지네가 떨어져 있다는 그 황토로 지은 사직동 집에 들어가 여기저기 구경을 하면서 얘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는 밥 주는 주인의 손도 물어서 퉁퉁 붓게 해 야속하지만 안쓰러운 또또와 함께 사직동 밖을 거닐고 있다. 시인 조은의 얘기를 들으면서 함께 걷고 쉬고 웃고 햇볕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밤에 반짝이는 별도 함께 보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건강해야 한다는 시인 조은의 말에 화들짝 놀라서 열심히 밖을 뛰다가 들어와 지인들이 그녀의 집에만 오면 다들 왜들 그렇게 잠을 잘도 자고 가는지 모르겠다는 그 집으로 들어가 따뜻한 아랫목으로 이동해 목까지 이불을 덮고 잠이 들어 있기도 한다.

 

 

간혹 그런 밤이면 혼자 사는 여자라고 어린 그녀에게 대출 보증인으로 내세워 주지도 않는 돈을 줬다며 그녀를 원망 섞인 표정으로 보았던 그 때문에 억울해 울며 길을 걷다가 넘어진 그녀의 발을 다시 한 번 보며 어루만지고 다독이고 있다. 혼자 사는 여자들은 왜 이런 재물이 되는 것일까 같이 분개하며 두 손을 꼭 잡고 온몸을 흔들며 주저앉아 울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사는 것이 벼랑에서 마지막을 보내는 것처럼 애가 탄다.

 

 

하지만 그녀의 얘기들을 다 듣고 있노라면 그녀는 벼랑에서 사는 것이 아닌 좁다란 골목길이 즐비하게 놓인 작은 구멍가게를 지나 빌딩 속에 움트고 있는 황토방 같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분명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것은 그녀의 진실 된 표현의 공감에서 오는 애틋함 때문이다.

 

 

우리는 매 순간 벼랑에서 사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태롭다. 때로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추락하고 만다. 하지만 추락하는 그 시점에서는 분명 누군가 나를 잡아줄 사람이 있었고 때로는 그녀의 말처럼 내가 달라지길 바라며 고통을 이기며 벼랑 끝을 오르기도 한다. 그 벼랑이 대단한 것이 아닌 사소한 것으로 만들어진 벼랑일지라도 그 위험에 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삶의 본질인 것이다.

하지만 그 벼랑 끝에서 끝없이 자유롭고 행복한 조은을 느낀다. 그녀가 절대로 위태로워 보이지 않는다. 내게도 그녀처럼 그런 여유로운 아늑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책으로 몇 번씩 읽는 책을 다시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녀의 책은 시간이 지나서 그녀와 함께 사직동 집을 거니는 느낌을 주는걸 보니 몇 해 지나 또 다시 읽으면 혹시 이번에는 내가 그곳에 집을 짓고 그녀와 얘기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해 봤다. 또또와 함께 놀러온 조은을 .....상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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