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핸드폰을 바꾸고 말았다.




2월 6일 오사카 출국을 이틀 앞두고 핸드폰이 말썽이여서 바꾸고 갈까 하다가 한번 해외에서 핸드폰을 분실하여 고생한 기억 때문에 새 핸드폰을 가져가 부정타 분실하지 말고 그냥 며칠은 버텨보자며 떠났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시차도 없건만 내 구형 스마트폰은 시차를 겪고 있었다. 자기는 절대로 지금 이 나라에서는 얼굴을 보여 줄 수 없다며 계속 꺼지기를 반복하더니 귀국 하루 전날 전자하셨다. 자기 혼자 켜졌다 꺼졌다 반복하면서... 사실은 아주 애를 쓰고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간헐적인 신호음을 보이더니 이내, 여기에서 자신의 생은 끝이라며 긴 효과음과 함께 더 이상 켜지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그냥 더 이상 켜려고 하지 않았다. 2년 약정의 시간을 지내고 그 약정의 절반의 시간을 보낸, 3년 동안 바닥에 10회 정도 떨어뜨리며 썼더니 핸드폰이 자신의 수명은 딱 이만큼이라며 그간의 사진, 음악, 기록들까지 모두 집어 삼키고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서울에 돌아와서 시체가 된 핸드폰과 하루 살아보고 다음날 가장 적당한 가격의 스마트폰의 2년 노예계약을 맺었다. 2년 약정 노예계약을 맺으면서 가장 고민스러웠던 요금 부분에서 나를 갈등시켰던 것은 요즘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책들이었다. 좀 더 싼 기기로 변경 한다면 그 일 년치 차액으로 박완서 작가의 산문집 세트와 현암사에서 나오는 나쓰메 소세키 시리즈, 무엇보다 지난 11월 20일 이전에 사지 못해 억울했던 로베르토 볼라뇨 컬렉션 17권을 살 수 있을 텐데.

 

 

 

 

 

 

 

 

 

 

 

 

 

 

 

 

 

 

 

 

 

 

비록 사 놓고 읽지 못하는 책이 읽은 책보다 많아지고 있는 요즘이라도 이렇게 핸드폰 월정액 요금을 비교하며 책을 사는 것을 생각하는 게 스스로 뿌듯한 것은 또 뭔가.

그래도 3G로 몇 년 잘 버텼다. 대리점 총각이 내 핸드폰을 보더니 “안 답답하셨어요?”라고 물어봐서 “저는 인내심이 많은 여자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앉아 있었던 그 순간은 같이 간 사람들에게 준 어이없는 즐거움을 준 것으로 만족하며 2년 또 잘 살아 봅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낭만인생 2015-02-12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3년 오래 쓰셨습니다. 알뜰하시고, 차분한 분이십니다.^*^

오후즈음 2015-02-13 23:56   좋아요 0 | URL
ㅋ 3년 오래 썼죠? 더 쓰고 싶었지만 요즘 핸드폰은 2년짜리로 만든다며..오래 쓴거라고 대리점 총각이 위로해 주더라구요.

후애(厚愛) 2015-02-13 1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핸드폰 사용한지 2년 2개월 되었네요.^^
작년에 계약이 끝났어요.
요즘 이상한 정상이 있어서 불안한데도 조금만 더 오래 쓰려고요.
감기조심하시고 행복한 하루되세요~^^

오후즈음 2015-02-13 23:57   좋아요 0 | URL
저도 약정 끝나고 더 쓰고 싶었는데..고장만 안 났어요 더 썼을거예요.
아쉽게 헤어져서 새로운 핸드폰을 장만했지만 이젠 데이터가 자유롭지 않아서 참...그렇네요. ㅠㅠ
마음껏 놀지 못하는 아이가 된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후애님도 감기 조심하세요 :)

꽃핑키 2015-02-13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맨날 휴대폰만 사고 나면 아이폰을 살 걸 그랬다며 후회 후회 하게 된다는요 ㅋㅋㅋ
오! 이번엔 오사카군요 ^_^ㅋ 즐거운 여행 하고 오세용 ♪

오후즈음 2015-02-13 23:58   좋아요 0 | URL
나도 늘 아이폰을 못 산걸 후회...담에는 꼭 ㅋㅋ

아, 오사카는 갔다 왔어~~
 
브리프 - 간결한 소통의 기술
조셉 맥코맥 지음, 홍선영 옮김 / 더난출판사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어떤 작가님의 얘기를 들었던 강의가 떠오른다. 드라마를 쓸 때 5분이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그 5분 동안 어떤 얘기를 할 것인지 핵심이 보여줘야 하고 나오는 주인공의 성격과 그 주변인물간의 관계를 알려줘야 하고 무엇보다 임팩트 있는 첫 장면과 대사를 통해 시선을 빼앗기지 않도록 작가가 가장 노력해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즉 핵심을 담은 요약본이 드라마 시작 5분 동안에 간결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 아침 연설에 쓰러져 나가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건강하지 못함을 부러워했었지만, 늘 왜 저렇게 교장 선생님들을 할 말이 많을까 궁금했던 적이 훨씬 많았다. 짧게 말하셨던 교장 선생님들을 만나보지 못하고 학창 시절을 보낸지라 사회생활을 할 때부터 늘 간결한 회의를 진행하는 상사를 만나는 것은 사회생활에서의 축복 중에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간결한 소통의 기술 [브리프]라는 책을 통해 그간 간결한 말을 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왜 임팩트 있는 말을 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사실 그들도 혹 그때 그 교장 선생님들은 간결함을 원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늘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 매주 월요일 아침 조회 시간을 다 쓰셨던 것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느끼는 사람의 상대적인 시간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 “간결하다는 것은 시간이 실제로 얼마나 걸리는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건 듣는 사람이 얼마나 길다고 느끼는 가죠"

그러니 ‘무조건 짧아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에 속지 마라. 시간을 최대한 아낄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 P 27

간결한 대화, 프레젠테이션, 문장과 글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모두 무조건 짧게 줄이고 써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을 얼마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즉 무조건 짧게 표현하는 것에 집중 할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메시지를 충분히 잘 전달하야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심금을 울리는 간결함의 조화를 찾아야 한다.


<브리프>는 회의에서 표현할 간결함을 찾는 방법이나 대화를 할 때 또한 간결함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극대화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좋은 소식이나 나쁜 소식 또한 간결하게 전달한다면 좋은 소식은 상상을 함으로 더 좋아질 수 있고, 나쁜 소식은 간결하게 전달함으로 상대방의 슬픔을 최소화 할 수 있다고 한다. 실행 편에서는 간결함의 원칙을 알려주고 있는데 회의 자료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제목 헤드라인만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간혹 이 모든 간결함은 너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 미디어에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너무 긴 침묵은 진실을 알려줄 수 없지만 많은 말들은 진실을 감추어 보이지 않게 하는 것 같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은 친구들은 늘 말실수를 하는 것을 느낀다. 조금 더 신중하게 한마디를 했다면 그 친구가 쏟아내는 무수한 말의 상처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나는 너무 많은 말로 누군가의 상처를 줘서 속상하게 한 적은 없는지 반성도 해 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꽃핑키 2015-02-13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되게 읽고 싶었던 책인데, 의외로 언니 별점이 짜서ㅋㅋ 더 검색해보고 결정해야겠다 싶어져요ㅋㅋ

오후즈음 2015-02-13 23:59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점수가 좀 야박했나?
사실 좀 너무 뻔한 얘기들이라서 말이지..
 
에세이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어느 날 새로 전학 온 친구와 가까워 졌는데 아버지의 전근으로 이사를 가서 전학을 다시 가게 되었다고 하며 떠났던 그 당황스러운 공백기처럼, 1월은 내게서 너무 빨리 왔다가 사라졌다. 나이 한 살 더 먹으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살아왔던 시간만큼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이다. 20대는 참 시간이 안가더니 30대 넘어가니까 3배 속도로 빨리 진다. 앞으로 더 빨라지겠지. 그런 날들에 나를 맞아주는 새로운 신간 에세이들을 들춰 본다.







1. 그때, 타이완을 만났다 - 삶이 깊어지는 이지상의 인문여행기

우리나라 배낭여행 1세대라고 한다. 사실 그의 책을 한권 《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읽어 봤던지라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여행을 했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그의 책을 한권 읽고 다음에 여행 에세이가 나온다면 다시 읽고 싶은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안내한 이 책은 타이완을 다녀온 여행기이다. 살짝 엿본 그의 얘기는 여전히 착하고 맑은 시냇물이 흐른다.







2. 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 가장 인상적인 세계 명작 속 요리 50

카메모 식당을 보면서 시나몬 롤을 만들어 먹고 싶어졌었다. 그때 발견한 <시네마 식당>을 읽으며 영화와 요리가 얼마나 근사하게 잘 어울리는지 느꼈는데 이번에는 문학 속에 있는 요리들이다. 간혹 작가의 묘사에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갔던 그 요리들을 눈으로 볼 수 있다니, 놀라워. 먹고 싶어!







3. 휘파람 부는 사람- 메리 올리버

그의 두 번째 에세이를 만나게 되었다. 첫 번째 <완벽한 날들>을 읽으면서 이 작가 왜 이제야 발견했을까 안타까웠는데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작가의 두 번째 에세이집이 나왔다. 간혹 이럴 때 보면 출판사가 작가를 발견하는 눈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느낀다.






4. 금요일엔 돌아 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아직 몇몇의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끝내지 못했다. 

그들은 금요일에 집에 돌아오는 날이었다고 한다. 아직도 서성이고 있는 그들이 빨리 돌아 오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크리스마스 선물이 배라며 사달라는 조카의 소원으로 백화점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적당한 가격과 비주얼이 있는 레고를 하나 사왔다. 같이 맞춰 보자며 한참 조립을 했지만 성질 급한 조카는 빨리 배가 만들어지지 않아 답답해했다. 빨리 가지고 놀고 싶은데 완제품이 아닌 조립 제품을 사가지고 왔다고 동생의 타박을 받으며 한참 조립을 하는데, 조카가 땀 흘리며 애쓰는 이모를 걱정하며 말했던 단어 하나에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립을 잘하지 않으면 배가 가라앉는다며 기다림을 강조하는 나의 말에 조카는 배가 가라앉는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물어 보았다. 나는 배가 물어 빠진다고 다시 설명해주니 그때 조카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세월호처럼?”




그때, 나는 한 달 동안 텔레비전을 지켜보며 안타까워했던 그 단어를 너무 쉽게 잊어버린 나를 발견하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기 시작했다. 그랬다, 세월호의 진상규명이 빨리 되어야 하고 자신이 몰았던 배를 버리고 끝까지 책임지지 않은 선장이 처벌 받아야 하며 아직 물속에 남아 있는 혹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남겨진 숫자의 아픈 사람들이 빨리 세상 밖으로 나왔으면 했다. 그리고 저 너머로 넘어가 있는 진실이 우리 앞에 도착하기만을 원했던 그 순간을 이렇게 빨리 잊고 말았다. 어쩜 세월호는 한 나라의 가장 가슴 아픈 현실과 직면한 슬픔이면서 나에게 직접 닿지 않는 아픔이란 생각에 나는 너무 쉽게 잊었던 것일까.




“ 내가 철저히 그녀의 고통 바깥에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한들 세상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고통과 그 고통이 담긴 타인의 몸이 있다는 걸 알았다. ” P 19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나처럼, 한 나라를 책임질 수장은 배를 버리고 저 혼자 살겠다고 도망간 선장처럼 책임감 없는 신년 새해 연설을 했다. 그분도 나처럼 자신의 가슴 아픈 고통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눈물을 흘리며 두 손 꼭 잡고 당신들의 아픔을 안다는 그때의 잠깐의 모습은 진실이었을지 몰라도 너무 쉽게 그 눈물 자국을 지워버렸다.


나와 같이 쉽게 잊는 사람을 위해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책이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소설가, 시인, 문학 평론가, 언론학자와 정신 분석학자까지 쉽게 잊으면 안 될 그날의 얘기를 다시 들려주고 있다. 이토록 얇은 책이 이렇게 무거운 얘기로 나에게 말해줬다. 나의 망각의 곡선 끝에 자리 잡은 그날의 일들을 다시 얘기해주고 있었다. 너무 쉽게 잊으면 안 된다고 혹은 잘못된 진실이었다면 다시 고개를 들어 차디찬 겨울에도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는 그들의 시린 손을 기억해 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분은 분명 성역 없는 수사를 하겠다고 말했고 최선을 다해 구조에 나서겠다고 말했었다. 배의 꼬리가 점점 보이지 않는 순간까지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기도했을 것이다. 정말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구조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단 한명도 차디찬 바다 속에서 살아오지 못했다. 차디찬 바다 속에서 온 몸의 온기를 다 빼앗기고서야 모습을 보인 그들을 위해 남겨진 사람들은 진실에, 거짓된 눈물에서 눈 떠야 하지 않을까?



“ 세월호라는 배를 망각의 고철덩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밝혀낸 진실을 통해 커다란 종으로 만들고 내가 들었던 소리보다 적어도 삼백 배는 더 큰, 기나긴 여운의 종소리를 우리의 후손에게 들려줘야 한다. 이것은 마지막 기회다.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P65 / 박민규_ 눈먼 자들의 국가




어느 날 세월호에 관련된 기사를 읽으며 분노했던 마음이 덧글을 읽으며 우울해졌다. 어떤 이가 써 놓은 덧글에는 이제 그만 세월호 얘기를 하라고 했다. 이정도 했으면 됐다고, 지겹다고 했다. 대체 지금의 일이 어느 정도껏 해야 하는 일인지 누가 정해 놓은 것일까. 한 달, 석 달, 일 년이 지나면 그 정도껏에 해당이 되는 것일까. 남이 죽는 것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픈 법이라지만 지겹다는 말은 너무 가혹한 것은 아닐까.



“진실에 대해서는 응답을 해야 하고 타인의 슬픔에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P230)" 우리가 예의를 갖춰 잊지 않아야 할 때가 지금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진실이 수면 위로 모두 올라올 때까지, 그 시간이 무거운 어깨를 누르고 있다고 할지라도 함께 지켜봐 줘야 하는 예의를 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3-24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4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명랑하라 고양이 - 가끔은 즐겁고, 언제나 아픈, 끝없는 고행 속에서도 안녕 고양이 시리즈 2
이용한 글.사진 / 북폴리오 / 201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난 길의 감식가야 평생 길을 맛 볼거야. 이 길은 끝이 없어. 지구의 어디라도 갈 수 있어> - 영화 <아이다호>

 

 

 

 

후미진 골목을 돌면 불현듯 나타나는 고양이, 언덕을 오르면 주차된 자동차 밑에 반짝이는 작은 두 눈동자, 공원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해 좋은 날 빌라 난간에 누워 잠을 청하는 고양이를 마주칠 때마다 아이다호의 기면증에 걸려 누워 잠이든 리버 피닉스가 떠오를 때가 있다. 고양이야 말로 길의 감식가가 아닐까.  

 

이곳으로 이사 온 날 그달에 가장 추웠던 날이었다. 어찌나 추웠는지 보일러를 틀어도 따뜻하지 않았다. 이삿짐을 풀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니 꽁꽁 얼어 있는 음식물 쓰레기를 발로 건들고 있는 노랑 고양이를 보았다. 모든 것이 다 꽁꽁 얼어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봉투는 단단하게 얼어 있었고, 녀석의 발톱으로 생채기를 내지도 못하였다. 집으로 들어가 녀석에게 국물용 멸치를 가져와 바닥에 뿌려 주었다. 나는 녀석이 편히 먹을 수 있도록 몇 마리 던져 놓고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저녁쯤 나와 보면 멸치는 없었다. 녀석이 먹었는지 다른 길고양이가 먹고 갔는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때부터 나는 녀석을 아주 가끔 볼 수 있었고 내가 나오면 후다닥 도망을 갔다. 어느 날부터 아주 조금 간격이 좁혀졌다. 도망은 가지만 정말로 아주 잠깐 내가 또 뭘 놓고 가는 것인가 확인을 하고 도망을 가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녀석이 나를 의식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삼 개월이 흘렀다. 이쯤 되면 나와 녀석이 좀 친해질 것도 같은데 그때쯤인가부터 녀석이 안 보였다. 여전히 멸치는 사라지지만 나와 눈인사를 딱 한번 했던 그 노랑이 녀석은 안 보였다.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를 읽고 길고양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나도 길의 감식가라는 길고양이 친구를 하나 만들고 싶었나보다. 그래서 처음 이사와 마주친 녀석을 나 혼자 짝사랑을 하고 있었나보다. 그 추위를 견뎌 이제 봄이 왔는데 녀석은 길고양이의 습성처럼 영역을 옮겼는지 혹은 고양이 별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명랑하라 고양이>속에 처음 등장하는 “언제나 옳다”는 노랑 고양이 ‘바람이’의 등장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내가 처음 정을 주었던 그 노랑이 녀석이랑 너무 닮았던 녀석이라서 더 반가웠다.

 

 

 

작가가 서울 생활을 접고 어느 공기 좋은 시골로 이사를 가고 그곳에서 만난 길고양이에 대한 기록을 남겨 놓은 이번 책은 지난번과 같이 계절별로 고양이들의 생활을 기록되어 있다. 화사한 봄을 지나 반짝이는 여름, 쓸쓸한 가을을 스쳐 눈처럼 사그라지는 겨울 속에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며 인간과 똑같이 삶을 살아가고, 자식을 낳고 자식이 올바로 자랄 수 있도록 지극정성 길러내는 모성애로 짧은 생애를 마치는 길고양이들의 얘기. 이것이 이 책의 내용이 전부 일지 모르겠다.

 

 

책속에는 우리의 삶과 똑같이 살고 있는 녀석들이 있다. 더 모질게 혹은 느긋하게 때로는 더 간절한 그들의 생활. 묘생이 전쟁일수록 더 많은 새끼를 낳아 희박한 생존율을 이겨낼 고양이를 낳는다는 축사 고양이들, 마치 애완견처럼 주인 할머니와 산책을 가고 배웅을 가거나 할머니가 마응 회관이라도 가시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같이 집으로 돌아가는 달타냥.<녀석이 삼총사의 그 달타냥이 아니라 하도 담을 넘어 여기 저기 쏘다니기 때문에 지어 주었다는 이름>, 자식을 낳고 어마라서 투정도 못 보리는 까뮈네 식구들. 이런 접대냥을 꿈꾼다면 여기 있다며 보여주는 봉달이, 봉달이를 따라 같이 뛰는 덩달이, 어미이기 때문에 섭씨 30도를 넘어도 긴 행군을 이어가며 자식들에게 먹이를 나르는 여울이, 전원 고양이들 얘기로 마치 그 마을만 가면 만나서 인사라도 나눌 것 같은 다정함이 생긴다.

 

 

내가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노랑이 녀석처럼 ‘바람’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부분에서는 눈물이 안 나는 것이 이상할 만큼 많이 속상했다. 녀석 그냥 그 집에 좀 빌 붙어 있지 어디를 며칠 동안 다녔는지 살도 다 빠져 나타나 그렇게 슬픈 모습으로 무지개다리를 건너냔 말이다.

 

 

시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진다. 달나냥을 만나서 좁을 길을 걷고 싶고...(나쁜 고양이는 없다에서 달타냥의 죽고 말았다.) 덩달이와 함께 개울도 걷고 싶고, 전원 고양이들과 인사도 나누고 싶다.

올 겨울도 참 춥다는데 우리 동네 고양이들 얼지 말고, 죽지 말고 봄이 오길 견뎌 내주길. 명랑하게 살아주길.

 

 

 

 

 

 

바람이가 작가의 집에 도착했다. 밥을 먹거나 혹은 먹고 나서 하는 행동.

 

 

 

 

요런 귀여운 길고양이인 바람이.

 

 

 

 

바람이가 죽고 바람이가 걸어 다녔던 길목에 바람이를 묻어 준곳.

그때 심어 주었던 민들레는 올 겨울을 견디고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