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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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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좋아하는 친구가 집에 놀러와 주방을 살핀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해줄 것인가 기대 했지만 그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주방을 살피는 것이 어느덧 취미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스테인리스 냄비를 길들여 놓은 것을 보면서 집주인의 부지런함을 알게 된다고 했다. 그 부분에서 게으른 모습을 들킨 것같아 화가 났다가 어느덧 얼룩져 걸려 있는 스테인리스 냄비 뚜껑을 보며 물기를 말려 닦아 놓을 시간을 투자하지 않은 것에 스스로 게으름을 인정했다.

 

 

 

친구와 같이 나도 지인의 집을 가거나 블로그에서 집을 공개하면서 보여주는 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유심히 보는 것이 서재이다. 서재의 정리정돈은 중요하지 않다. 그건 나도 못하기 때문에 관심두지 않는다. 예쁘게 꾸며진 집들을 소개하는 인터넷의 이런 저런 소개거리들을 보면서 서재가 없는 집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책을 읽고 꼭 몇 천권씩 장식하지 않는다고 해도 책장이 없는 집은 나에게는 아름다운 집이 아니다.

 

 

 

<헌 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라는 책으로 알게 된 지은이 윤성근의 또 다른 책이야기 <책이 좀 많습니다.>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서재를 찾아가는 기행문 같은 책이다. 책을 사랑하고 책을 좋아하는 23명의 책 얘기를 통해 그들의 서재를 한참을 구경하고 나왔다. 집이 좋아 발 디딜 틈이 없는 작은 거실이 몇 백만 원 소파와 러그를 깔아 놓은 수백평의 집보다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그냥, 책 때문이다. 그들이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포기하고 사들인 책,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들을 수집하고 읽으며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놓는 그 책을 향한 애정이 봄날의 꽃처럼 화사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지금껏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갖고 있는 책 양과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책을 아주 많이 갖고 있더라도 마음 깊이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서재라고 할 것도 없이 사는 사람인데 책을 향한 애정이 누구 못지않게 큰 사람을 많이 봐왔다. 책이 많다고 해서 모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우리는 무엇을 소유하는 것과 그 대상을 좋아하는 것이 같다고 말한다. 전혀 다른 얘기다. 어려운 철학책을 파고들 필요도 없이 사람을 만나고 그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조곤조곤 들여다보면 금세 안다. 무엇을 마음 깊이 좋아하는 사람은 그것을 가지려 하기보다, 자기 곁에 쌓아두려 하기보다 자유롭게 놓아주는 일을 즐긴다." P67~ 68

 

 

 

책이 있어야 아름다운 집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에 사실 이 부분에 가장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부분이었다. 내가 소유하려고 했던 책들은 어쩌면 읽으며 삶을 반성하는 대상이 아닌 그저 소유욕에서 비롯된 진열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어느 날부터 책장에 더 이상 꼽을 수 없어 점점 바닥으로 쌓여지고 있는 책들중 내가 감명 깊게 읽고 소장하고 싶은 책들, 그리고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들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책속의 인터뷰를 했던 한분의 말처럼, 평소 <논어>를 끼고 살며 읽는 직장 상사가 논어의 내용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며 그저 읽는 것으로 끝나는 독서는 필요 없다는 것에 공감하며 그동안 수집의 대상으로만 내가 책을 대한 것은 아니었나 반성해 본다.

 

 

 

“책 읽기는 무엇을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비우는 느낌입니다. 무위자연이라는 말도 있듯이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건 제 안에서 깔끔하게 소화돼 없어지는 겁니다.” P288

 

 

저자의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으며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알려주었다.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즐거워 보였던 신문사를 다녔던 이는 신문사를 그만두고 박사과정 공부를 하며 책 읽는 시간을 갖으며 행복해 하고, 컨테이너에 서재를 만들어 행복해 했던 이는 더 이상 컨테이너 서재를 가지고 있지 않게 되었다. 농부였던 이는 퇴촌 집을 정리했지만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농부로 남아 있기는 하다. 특별할 것 같았던 그들의 삶도 그저 책을 좀 더 사랑하고 애착을 갖는 사람일뿐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의 일상을 이어 나가고 있다.

 

 

 

내게는 한때 애서가라는 사람들은 수천 권의 책을 소장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애서가”라는 사람들이 꼭 수천 권의 책을 자랑하듯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단 한명의 작가를 좋아해서 그 작가의 책들만으로 책상 한 줄을 세워 놓고 수십 번씩 읽어 나가는 나의 지인은 집에 책이 별로 없다. 그러면서 자신은 책이 많이 있는 우리 집을 부러워했었는데 문득 나는 나의 지인이 부럽다.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면서 그를 통해 삶이 바뀌고 단정해지고, 부지런해지는 모습을 가질 수 있는 것, 그것을 책을 통해 이뤄냈다는 것으로 그는 진정한 애서가가 아닐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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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3-21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작가님의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라는 책도 있군요^^ 살펴봐야 겠어요 ㅎ

오후즈님의 글을 읽으며 따금거려 혼났어요 저희집 스테인레스 냄비나 주전자는 다른 사람이 보면 원래 검은 색인줄 알거 같아서요ㅋ 설거지만 후딱하고 책 한장 더 읽고싶어 모든걸 미루게 되는게 습관 처럼 되서 잘 안고쳐지내요 ^~^

오후즈음 2015-03-22 14:19   좋아요 0 | URL
저도 부지런하지 못하고 관리를 안하기때문에...스테인레스 냄비+ 주전자는 늘 그을려 있거든요.
청소보다 책, 저도 그래요. 뭘 투자해야 하는 시간에 책 한장을 더 읽자 뭐 그런..ㅋㅋ

cyrus 2015-03-2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친한 친구의 집에 가면 늘 항상 보는 것이 책장과 냉장고입니다. 이 집에 어떤 책이 있는지, 냉장고 안에 먹을 만한 것이 있는지 몰래 보는 겁니다. 냉장고에 먹을 음식이 없어도 읽을 만한 책이 있으면 그 자리에 읽는 편이에요. 그런데 지금까지 친구 집에 가면서 저를 만족한 책장과 냉장고를 본 적이 없어요. ^^;;

오후즈음 2015-03-22 14:21   좋아요 0 | URL
저도 늘 친구집에 가면 보는것이 책장과 화장실이예요.
화장실은 그집의 주인이 얼마나 부지런한지를 바로 보여주거든요.
그리고 책장, 이 사람은 어떤 책을 읽나 참 궁금해요. 가끔 작가별로 책을 모아서 읽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뭔가 월척을 낚은 그런 느낌이 들기는 하더라구요.
 
푼돈 재테크 - 삶을 바꾸는 작은 돈의 기적
장순욱 지음 / 더난출판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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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관념이 철두철미한 성격이 아니라서 매달 월급을 받으면 카드 값과 일정 금액의 적금을 빼고는 규모 있게 쓰겠다는 계획이 없이 사용했다. 씀씀이가 큰 편은 아니지만 일 년에 한 번씩 떠나고 있는 유럽 여행을 위해 일정 금액을 모아 놓고 살아가는 편이지만, 월급이 들어오기 전까지 전전긍긍하면서 사는 것이 싫어서 늘 통장에는 여우분의 돈을 두는 편이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여우분의 돈이 바람처럼 빠져 나가는 것을 경험을 하게 되었다. 카드 요금이 나와도 사실 이번 달 얼마 나왔군, 이라는 생각으로 보냈다가 그달은 소비가 많이 않았음에도 왜 여유분의 돈까지 모두 사라지게 했나 살펴봤더니 정말로 깜짝 놀랄 만큼의 작은 지출의 천지였다. 그동안 많은 지출이 한 번씩 있어서 카드 요금이 좀 많이 나왔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달에 느낀 지출의 크기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작은 바람이 나의 통장을 마구 드나들며 큰 구멍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푼돈 재테크]라는 책도 이런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푼돈은 5000원 정도의 돈의 미만을 말한다. 요즘 어디 오천원 정도를 가지고 시내에 나가면 점심 한 끼 사 먹기 힘들며,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는 우유가 들어가는 커피는 사 먹을 수 없다. 그만큼 오천원이라는 돈의 가치가 떨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천원, 오백원, 백원 정도의 차이가 난다면 다른 곳보다 조금 차이가 나더라도 그 정도의 차이쯤은 그냥 지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소비로 인해서 통장에 큰 구멍을 만들어 놓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푼돈을 모아 큰돈을 만드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것보다 우리가 몰랐던 푼돈의 여러 경우들을 말해주고 있다.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보다 회사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집에서 준비해와 마시거나 집에서 마시는 행위로 오천원이나 하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모을 수 있는 푼돈의 위대함도 알려준다.

“부지런하게 움직이면 푼돈이 모이고, 편하게 살면 푼돈이 나가기 때문이다. 즉 다섯 정거장을 걸어가면 버스비가 절약되지만, 그 길을 편하게 택시로 이동하면 택시 요금이 나가는 것이다. ” P107

"푼돈을 아끼기 위해선 많이 참아야 한다. 또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멀리도 굴려야 한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과정에서 나온 애씀과 노력이 돈과 돈 사이, 돈과 내 의식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워 푼돈의 집합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P32

버스비를 아껴 그 돈을 모아 자전거를 타고 출 퇴근을 할 수 있기도 하고, 커피 값을 아껴 장만하고 싶었던 물건을 살수도 있고, 여행 또한 저녁 기차나 버스를 이용해서 숙박 요금을 아낄 수 있고 2박 3일 일정을 일찍 출발해서 시간을 절약해서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 올수 있어 여행 경비도 줄일 수 있는 부분을 얘기하는 부분에서는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분명 푼돈을 큰돈으로 만들기 위한 부분은 부지런함이라는 것을 깔고 있다. 부지런하지 않다면 대여섯 정거장을 걸어 갈 수 없을 테고 좀 더 싼 가격으로 물건을 장만하기 위해 발품과 인터넷 손품을 팔지 않을 것이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살이 찌지 않는다면 살쪄 옷을 사야 하는 옷값 지출을 하지 않을 것이고, 신상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수선을 해서 신발을 신는다면 그것 또한 큰 지출을 피할 수 있게 되니 부지런함이 없다면 이뤄내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애쓰면서 살고 있는 직장 동료가 한명 있는데 그녀의 처절한 절약이 대체 왜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는 것일까 궁금할 때가 있었다. 나를 위한 것을 아끼는 것은 좋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할 때도 아껴서 문제가 종종 생기는 것을 볼 때가 있다. 간혹 회사에서 각출하게 되는 선물비용이나 축의금을 내는 부분에서 가장 예민한 사람이 그녀다. 돈을 아끼는 것은 좋지만 그녀가 행하는 그 아낌이 대체 어디까지 인지 한숨이 나와 그녀와 돈과 엮이는 부분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랄뿐이다.

저자가 말한 푼돈을 아끼는 일은 사실 재미없는 일이고 푼돈을 쉽게 여길 수 없고 그냥 지나쳤다가 언젠가는 푼돈의 위력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푼돈을 모으는 방법은 따로 없다고 한다. 그냥 조금 더 부지런하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늘 깨어 있는 의식을 유지하는 것, 이것은 푼돈이 목돈을 만들어주는 삶의 한 기적과 같은 일이다.(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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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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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소중한 친구들에게서 이제는 너와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하며 하루를 보내게 될까. 그것도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아니고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친구들이 그동안 함께 했던 모든 추억과 기억을 모두 지우고 더 이상 공유 할 수 없는 것들만 있다고 말한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다자키 쓰쿠루는 고향 나고야에서 도쿄로 대학을 가면서 친했던 고향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방학이면 늘 친구들을 찾아가 도쿄의 외로운 대학교 생활을 잊을 수 있었다. 다자키를 풍요로운 추억을 함께 하는 친구들은 아카(赤), 아오(靑), 시로(白), 구로(黑)이다. 모두 이름에 색을 가지고 있다. 붉은 아카, 푸른 아오, 흰 시로, 검은 구로 모두 색을 가지고 있는 이름이 있지만 다자키만 유독 색이 없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친구들은 다자키에게 색이 없는 아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늘 친구들 무리에게 자신만 소외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다자키를 따돌리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21살이 되던 그해, 다자키가 고행 나고야에 내려가면서부터 모두 전화를 받지 않고는 이내 더 이상 연락을 하지 말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때 이유를 물어 보았지만

“그 이유는 네가 더 잘 알텐데”라는 말을 들을 뿐이다.

 

 

 

분명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겠지만 완전하지는 않지만 치유는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다자키 쓰쿠루에게도 그랬다. 죽음을 앞둘 것처럼 먹지 않고 잠들지 못하고 말라가다가 결국 시간이 그를 치유시켰다. 수영을 하면서 말라갔던 근육에 생기를 넣고 어린 시절의 추억대신 현재의 시간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치유 된다고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잊고 있었던 일들을 다시 꺼내며 괴로워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어느 날 다자키 쓰쿠루는 그의 애인에게 자신이 잊으려고 했던 친구들의 얘기를 한다. 그때 그녀는 이제 16년의 세월도 흘렀으니 친구들이 왜 그런 말을 하고 연락을 끊었는지 이제는 그 진실과 마주하라고 하여 그가 친구들을 찾아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게 간단하면서 사설이 참 길다. 잘 지내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나를 따돌리며 이제 안 논다고 한다. 자존심 강한 나는 전화 한통에 알았다고 하며 친구들과 인연을 끊었다. 집에 찾아가서 왜 그런지 물어 보지도 않고 그간의 모든 인연을 끊는 주인공도 모질다는 생각도 든다.

 

 

 

색의 이름을 가진 친구들과 달리 이름 속에는 색이 없지만 가장 강렬한 색을 가졌던 다자키 쓰쿠루였을지 모른다. 친구들중 가장 선명한 색을 가지고 있었으니 나고야가 아닌 도쿄로 공부를 하러 떠났을 것이고, 생활 형편을 보아도 가장 부유해 보인 그는 어디서든 빛나는 윤택함을 지녔을 것이다. 그런 그가 정말로 색이 없어졌던 것은 그들과 인연이 끊기고 혼자가 된 후가 아니었을까. 혼자가 되어 그는 매일 수영을 했다. 물감으로 물들여진 붓이 씻기듯 물속에서 그의 색들이 모두 빨려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아무런 색이 없는 그런 무색의 남자로 변한 것은 아닐까.

 

 

 

소설의 핵심은 친구들이 왜 다자키 쓰쿠루에게 그런 말을 하고 연락을 끊었는지 그 미로 같은 진실을 찾으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름 생각했던 어떤 이유들을 떠 올려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너무나 반듯하게 살아왔던 다자키 쓰쿠루였기 때문에 뭔가 다른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네 명의 친구들중 두 명은 남자, 두 명은 여자였다. 혹시 이들 사이에서 뭔가 일어나면 안 되는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 생각했지만 역시나 다자키가 처음 친구를 찾아가 설명을 들었을 때는 사실 좀 어이없는 이유에 당황스러웠다. 모두 그 말이 진실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 결국 다자키는 진실이 아닌 거짓에 고립되었다.

 

친구 네 명을 모두 찾아다니다가 마지막 핀란드에 있는 친구를 찾아 가는 부분에서 사실 가장 흔들렸다. 마지막 친구는 정말로 왜 그토록 오랫동안 친구들과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 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역시 딱 그만큼의 이유를 알 수 있을 뿐. 그동안 헤어졌던 시간들은 공유 될 수 없으며 멀어졌던 시간은 그만큼 씁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하루키의 소설이 때로는 어느 부분 비슷하듯 친절하지가 않다. 다자키가 친구들에게서 고립되어야 했던 진실, 친구들은 그 진실을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결국 사실이 아닌 진실에게 외로워져야 했던 것은 다자키뿐이었다. 그 부분에서도 뭔가 속 시원하게 밝혀주는 것이 없다. 또한 그가 사랑하는 사라와의 관계도 그렇다. 어쩌면 그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얘기를 끝으로 책을 덮고 싶은 욕망으로 마지막 엔딩이 마음에 안든 것도 있다. 대체, 그 둘의 미묘한 그 관계는 또 어떻게 해결이 난다는 것인지. 그러니까 사라는 다자키의 청혼을 받아 준다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아, 답답해. 그리고 사라는 왜 이토록 다자키에게 친구를 다시 찾아주려 애를 썼을까, 그것이 다자키의 어떤 면을 다시 깨워 주려고 한 것일까.

 

 

 

어떤 이들은 하루키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하고 어떤 이들은 소설을 더 좋아하는데 나는 역시, 소설이 더 좋다. 하지만 하루키의 낡은 늘어진 셔츠를 입고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추억을 담아 버리고 오면서 여행가방의 무게를 줄이려다가 레코드를 가득 사와 오버 무게가 된다는 그의 투덜거리는 문장을 마주하게 되면 그 역시 또 좋아하게 된다. 그리고 난 역시 단편보다 장편의 하루키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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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3-11 0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하루키의 먼북소리 읽다가 다 못읽었어요 아직까지 제게 끌리는 부분을 못찾았거든요 그런데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서 이 책 구입했는데 왠지 이 책을 읽어도 미지의 세계에 빠질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오후즈음 2015-03-11 14:12   좋아요 0 | URL
저도 먼북소리는 사 놓고 못 읽고 있는 책인데요...재미있다는 분이 많지만 이상하게 읽을 책의 순위에서 벗어나게 되더라구요. 소설가보다 에세이스트로 더 좋아하는 분들도 많지만 ...때로는 이런 소설이 좋더라구요. 이책은 참 쉽게 읽혀요. 몇시간만에 다 읽어버렸어요. 역시 흡인력은 짱인 하루키인데도 사 놓고 못 읽는 책이 많은건 저에겐 참 아이러니 하네요.

꽃핑키 2015-03-1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같은 책을 읽어도 이렇게 훌륭한?ㅋㅋ 서평을 쓸 수 있는걸까요?ㅋㅋㅋ 언니글 읽다보니 대학때 절친에게 절교 선언 받았던 추억? 도 떠오르고ㅋㅋㅋ 옛생각 나요ㅋㅋ

오후즈음 2015-03-11 14:14   좋아요 0 | URL
훌륭하다고 말해주다뉘 ㅠ.ㅠ 고마워.
아, 핑키에게도 그런 추억이 있구나.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추억이 떠 오르는것들이 몇개 있어서 사실 좀 불편했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지난날을 억지로 떠 올려 봐야 한다는 그런 끔찍한 그런 생각...그들을 떠 올리고 싶지 않은데 말이지..

후애(厚愛) 2015-03-15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안하고 행복한 주말 오후되세요.^^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 공지영 에세이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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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일본 드라마 제목을 두고 친구와 얘기 한적이 있다. 제목이 SOS였는데 Strawberry On The Shortcake . 어떤 것을 먹을 때 아끼는 것을 먼저 먹을 것인, 아끼는 것은 나중에 먹을 것인가에 대한 담론이었는데 나는 아끼는 것은 나중에 먹는 편이다. 맛이 없는 것은 먼저 먹고 맛있는 것은 나중에 음미하며 먹는 편이어서 그런지 인터넷에 연재되고 있는 소설을 먼저 만나보는 일을 즐기지 않는다.


공지영의 에세이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또한 한겨레에 들락거리며 기사를 읽을 때도 슬쩍 지나쳐 읽고 잘 읽지 않았다.

일부러 남겨 놓은 딸기케이크위에의 딸기를 마지막까지 잘 지키며 먹는 것처럼 이렇게 옹골지게 한권의 책으로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즐거운 나의 집>에서 나는 제제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다. 위녕과 둥빈보다 제제에게 더 마음이 갔고 꼭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에서 또한 제제의 에피소드에서 가장 즐겁고 흥미로웠다.


피자 조각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애쓰고 뭐든 형과 누나가 오기 전에 자신의 몫보다 훨씬더 많이 먹어버리는 막내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왜 좋아한다는 말을 하라고 하니 제제의 답이 기막히다.


딸 : 사귀자고 해봐.

막내 : 그런데 내가 그런 말 했는데 걔가 난 다른 남자가 좋아, 그러면 어떡해?

딸: 그게 무슨 문제야? 네가 좋으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하고 용기를 내야지.

막내 : (갑자기 생각에 잠기다가) 이제는 다른 반이라 잘 만날 수도 없고...(시무룩하게) 걔가 만일 나를 좋아한다면 목걸이를 받고 나서 내게 더 잘해주었을 텐데. 그러지 않아...만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더 사랑한다면 그냥 그걸 인정해서 놔 두고 보내주는게 도리잖아.


우리가 잊고 있던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제제가 너무 사랑스럽다. 한번은 큰 딸 위녕이 한번은 장남 둥빈이 또 한 번은 제제가 유명한 엄마 공지영을 속을 새까맣게 태워 놓아도 이렇게 우리들에게 다시 한 번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글을 써 줄 수 있는 글감을 계속해서 준다면 우리는 둥빈과 위녕, 제제에게 더 엄마를 못살게 굴어 달라고 해야 하는것 아닐까?


작가 공지영은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작가지만 안티팬 또한 많은 작가로 알고 있다. 그런 그녀가 말하는 가슴에도 근육이 있어 탄력을 가지게 한다는 말처럼 인생의 아픔을 견디며 살면서 눈물도 흘리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에 공감한다.

어떤이가 말했다는 순교보다 더 위대한 일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한 말 한마디 하는 것은 고단한 삶에 필요하지만 정작 본인은 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인색한 현실의 삶속에서 공지영의 친구들 같은 사람들이 내게도 필요할 때가 많다.

그녀의 얘기 속에 등장하는 오토바이를 타는 강원도의 힘을 자랑하는 지인도 너무 부럽고 그녀와 아픔을 나누었던 친구들도 그리고 그녀가 봉사가고 있는 교도소에서 그녀를 응원해주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부러울 뿐이다.


우리에게 사소한 너무나 사소해서 깃털 같은 얘기로 우리는 가슴 무겁게 담아서 느낄 수 있는 얘기들이 더 쏟아지길 바란다. 간혹 제제의 사랑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그 사소한 얘기에 공감하고 감동받고 쓰린 하루를 위로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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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 웨잇...
제이슨 지음 / 새만화책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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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이 책을 읽었을까.

읽고 나서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여섯 컷 만화의 힘이란 대단하다.


노르웨이의 작가 제이슨의 여섯 컷 만화로 이뤄진 <헤이, 웨잇>은 표지 말고는 그 어떤 컬러도 요즘 만화책에서 많이 보이는 톤도 붙여있지 않는 아날로그식 만화다. 오로지 검은색과 흰 바탕의 여백으로 이미지들이 움직이고 살아난다. 아다치 마치루가 여백속에 보이는 잔잔한 의미를 전해 준다면 제이슨의 <헤이 웨잇>은 점프컷을 함께하는 여백이라고 볼 수 있다. 아픔을 표현하기 위한 여섯컷의 암흑으로 표현 한다거나 긴 공백을 나타내기 위해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여섯컷을 보여주며 상황으로 모든것을 전달한다. 흘려서 휘리릭 읽는다면 절대 작가가 의미를 주기위핸 비워둔 그 한칸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제이슨이라는 작가는 의미 없이 보이는 여백의 한컷에도 모두 의미를 준  계산된 작가라고 봐야 하는것일까?


 

어린 시절 우리는 꿈을 간직하며 어른이 되길 기다린다. 물론 어떻게 어른이 되었는지 알 수도 없이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도 있긴 하다. 그래도 분명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그림을 그렸었고 장래희망을 썼었고 그렇게 공부도 했었지만 이십대가 지나고 삼십대가 되어도 아직 이게 내가 원했던 인생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어쨌든 내 인생은 기대와는 달랐어요. 내가 값을 치르는 건 당연하겠죠? 만약 내가 나쁜 사람이었다면...하지만 난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는데.” (p 61)


비욘과 욘은 단짝 친구다. 둘은 베트맨 클럽을 만들기로 했다. 클럽을 가입하기 위해서 테스트를 하기로 한다. 하던 도중 비욘은 나뭇가지가 부러져 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혼자 남은 욘이 어른이 되고 죽은 비욘을 생각하고 그냥 그렇게 마흔이 되어 버린 자신이 발견하며 내 뱉은 이 한 마디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아, 우리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꼭 이렇게 나를 위한 변명도 해야 하고 위로도 해야 하고 스스로를 안아줘야도 하구나 싶은 마음이었다.

 

만약 비욘이 아직 살아있었다면 욘은 그렇게 살고 있었을까? 역시 살아남은 자들이 살아가는 인생이란 정답이 없고 어떤 정의도 내릴 수 없다. 가끔은 어떤 순간에 <잠깐만>이라고 욘처럼 외치고 싶지만 그것 또한 쉽게 멈춰지지 않는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즐거웠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 실수 했던 순간들이 있겠지만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돌이키고 싶은 마음으로 <잠깐만>이라고 외치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은 순간들을 태엽을 감은 시계를 풀어 버리고 싶을 때가 어디 인생에 한두 번일까. 악몽을 꾸듯 비욘이 잡고 흔들었던 나뭇가지를 떠올리는 욘처럼 누군가 잡고 흔들었던 그런 부러진 순간들이 있으니 더욱 간절한 외침이다. <헤이, 웨잇>


좋아하는 신일숙 만화가의 한 대사중에 “인생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라고 하지 않았나. 예측 할 수 없는 삶 속에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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