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나찌 점령하의 우끄라이나

 

1931년 일본군은 만주를 점령했고 쏘련의 국경을 따라서 주둔했다. 히틀러는 1933년에 권력을 잡았다.

 

1928년에서 1933년에 쏘련이 착수했던 공업과 농업의 재조직화 계획은 시의 적절했다. 모든 힘을 총동원하는 희생을 치르며, 오직 그들의 성공만이 나찌에 대한 저항과 승리를 허락했다.

 

역사적인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는, 나찌가 우끄라이나인 대학살과 쏘비에뜨 체제의 허약함에 대해 자신들이 지어낸 거짓말을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역사가인 하인츠 호네(Heinz Hohne)는 이렇게 썼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러시아에서 2년간 치러졌던 피의 전쟁47)(히틀러가 러시아인들을 비하하는 용어인 역자) 인간 이하 존재(sub-humans)에 대한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것을 잔인하게 증명했다. 일찍이 19428독일제국의 보고들에서 경찰보안대(SD, Sicherheit Dienst), 독일 인민들 사이에서 우리가 그동안 망상의 희생자들이라는 지각이 증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엄청난 양의 쏘련의 무기, 그들의 기술적 우수성, 그리고 공업화에 대한 쏘련의 거인과 같은 노력 등에서 깜짝 놀랄 만한 인상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은 쏘련에 대한 예전의 모습과는 뚜렷하게 대비되었다. “인민들은, 어떻게 볼셰비즘이 이 모든 것을 생산하게 했는지 자문하고 있다.” ’48)

 

1985, 미국의 교수인 윌리엄 만델(William Mandel)은 이렇게 적었다:

 

‘20년 동안 쏘련에 충성하던, 우끄라이나의 가장 넓은 동부 지역은 굉장히 활동적이었다. 50만의 쏘비에뜨 게릴라군이 있었다. .... 그리고 450만 명의 우끄라이나 민족은 쏘비에뜨 군대에서 복무했다. 만약 그 큰 집단 내에 근본적인 불만이 존재했다면, 명백하게 그 군대는 바탕에서부터 무력해졌을 것이다.’49)

 

역사가인 로만 스즈포룩(Roman Szporluk)조직화된 우끄라이나 민족주의의 활동 지역이 이전의 폴란드 영토에 국한되었다는 것을, 즉 갈리시아(Galicia) 지방에 국한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폴란드의 점령 하에, 우끄라이나인 파시스트 운동은 1939년까지 자신들의 기지를 가지고 있었다.50)

 

우끄라이나인 대학살이라는 거짓말은, 히틀러주의자들이 우끄라이나 영토의 정복을 준비하는 일환으로서, 그들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우끄라이나 영토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나찌 해방자들은 격렬한 저항에 직면했다. 알렉세이 표도로프(Alexei Fyodorov)는 전시에 25000명의 나찌를 물리친 한 빨치산 부대를 이끌었다. 그의 책, 행동하는 지하 위원회(The Underground Committee Carries On)는 나찌에 대한 우끄라이나인들의 태토를 훌륭히 보여준다. ‘스딸린주의자의 우끄라이나인 대학살에 대해 말하는 이들에게, 해독제로서 이 도서를 읽을 것을 강력하게 추천한다.51) (5부 끝) <노사과연>

 

번역 : 편집부

 

1) Douglas Tottle, Fraud, Famine and Fascism: The Ukrainian Genocide Myth from Hitler to Harvard (Toronto: Progress Books, 1987), pp. 5-6.

 

2) The Nation 140 (36), 13 March 1935, quoted in Tottle, op. cit. , p. 8.

 

3) 역자 주 : 원문에는 월터(Walter)라고 되어 있으나, 워커(Walker)의 오타로 보인다.

 

4) 워커의 원문에 하르호프(Kharhov)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는 우끄라이나 도시인 하르코프(Kharkov)를 워커가 잘못 쓴 것을 피셔가 그대로 원문대로 표기했다는 뜻이다.

 

5) Tottle, op. cit. , p. 9.

 

6) James Casey, Daily Worker, 21 February 1935, quoted in Tottle, op. cit. , p. 9.

 

7) Tottle, op. cit. , pp. 13, 15.

 

8) Ibid. , pp. 19-21.

 

9) Ibid. , pp. 23-24.

 

10) Ibid. , p. 25.

 

11) Ibid. , pp. 4-31.

 

12) 역주: 원문에는 `communist barbary'로 되어 있으나,`communist barbarism'의 오기로 보고 번역했다.

 

13) Ibid. , pp. 38-44.

 

14) Ibid. , p. 41.

 

15) New York Times, quoted in Tottle, op. cit. , p. 50.

 

16) Tottle, op. cit. , p. 51.

 

17) Ibid. , p. 61.

 

18) Ibid.

 

19) Ibid. , pp. 69-71.

 

20) Ibid. , p. 71.

 

21) Ibid. , p. 74.

 

22) Ibid. , p. 79.

 

23) Ibid. , p. 86.

 

24) Conquest, The Harvest of Sorrow, op. cit. , p. 334.

 

25) Tottle, op. cit. , pp. 111-112.

 

26) Ibid. , p. 112.

 

27) Ibid. , p. 113.

 

28) Ibid.

 

29) Ibid. , p. 115.

 

30) Ibid. , p. 118.

 

31) 역자 주: 우끄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UN, Organization of Ukrainian Nationalists)은 서부 우끄라이나에서 1929년 건설된 정치조직이다. 이 조직 산하에 무장조직인 UPA가 있다. 이후 OUN1940년 멜닉(Melnyk) 그룹과 반데라 그룹으로 분열된다. 주도권은 보다 전투적인 반데라 그룹이 쥐게 된다.

 

32) Ibid.

 

33) Ibid. , pp. 121-122.

 

34) Ibid. , p. 122.

 

35) Ibid. , p. 128.

 

36) Ibid. , p. 129.

 

37) Ibid. , pp. 58-59.

 

38) J. Arch Getty, Origins of the Great Purges: The Soviet Communist Party Reconsidered, 1933--1938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5), p. 5.

 

39) Tottle, op. cit. , pp. 93-94.

 

40) Ibid. , p. 94.

 

41) Ibid. , p. 91.

 

42) Ibid. , p. 92.

 

43) Ibid. , p. 96.

 

44) Ibid. , p. 97.

 

45) Ibid.

 

46) Ibid. , p. 100

 

47) 역자 주 : 1941622일 발발한 독-쏘 전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48) Ibid. , p. 99.

 

49) Ibid. , p. 101.

 

50) Ibid.

 

51) Alexei Fyodorov, The Underground Committee Carries On (Moscow: Progress 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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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혈맹. 평양, 하노이 그리고 베트남전쟁

베트남전쟁기 북한은 북베트남을 경제적으로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지원군도 파견할 정도로 긴밀한 관계였다. 따라서 베트남전쟁기 북한·북베트남 관계는 주목할 만한 중요한 주제다. 그러나 북한·북베트남과 관련된 자료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기에 양국 관계의 많은 부분이 아직도 베일에 가려 있으며, 이에 대한 충분한 해석과 연구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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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 -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 진짜 미국이야기 만화로 보는 교양 시리즈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 서평: 미국의 실체를 낱낱이 알 수 있는 명저

평창동계올림픽이 진행되던 2018년 나는 우연히 책 한권을 받았다. 그 책이 바로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였다. 당시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와 더불어 이 책을 읽었던 나는 미국여행을 하면서 책 한권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그렇게 해서 쓰게 된 책이 <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역사의 진실>이었다.

하워드 진 선생이 쓴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는 4년 전에 읽은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의 개정판이다. 이 책은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규정하며, 미국이 역사적으로 무수히 많은 범죄와 살인을 저질렀음을 보여준다.

자국의 자본과 기업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범죄와 더러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바로 미국이다. 그런 악행을 통해, 많은 이들의 생명을 잃어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 무수히 많은 군 기지를 소유하고 있고, 그 나라 보호를 명분으로 타국에게 막대한 주둔비를 요구하기도 한다.

1898년 미국이 쿠바를 독립국으로 만든다는 거짓 명분으로 일어난 미서전쟁은 미국의 쿠바 식민지 건설과 필리핀 식민지 건설로 이어졌다. 특히나 미국은 필리핀에서 수십만 명의 필리핀인을 학살하는 전쟁범죄를 저질렀고, 10세 이상의 필리핀을 죽여도 된다는 기준을 세워놓고 저지른 학살이었다.

특히나 미국의 중남미 정책은 정말 잔인했다. 니카라과에서의 콘트라 반군 지원과 엘살바도르에서의 친미정부에 의한 민간인 학살 등 미국은 자유라는 이름 하에 중남미의 독재자들과 학살자들을 지원했다.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유엔 헌법의 기준을 운운했지만, 미국은 절대로 이를 지키지 않았다. 뻔뻔스럽게도 레이건은 이란-콘트라 스캔들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사일 몇기만 팔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2,000기 이상 팔았고,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미사일을 팔지 않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미사일을 팔았고, 콘트라 반군에 자금을 주었다. 레이건은 거짓말을 한 것이다.

미국은 자국민에게 있어서도 폭력적이고 억압적이었다. 사업가 조지 풀건은 경제 불황을 핑계로 노동자의 임금을 25%나 삭감했지만, 주주에 대한 배당금은 올렸다. 이에 저항한 노동조합 운동가 유진 뎁스는 결국 감옥에 구금됐다. 1889년에만 22,000명의 미국 철도 노동자가 사고로 죽거나 다쳤다. 그런데도 자본가들은 이윤축적을 위해 이러한 현실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었다.

미국은 냉전초기 스탈린의 독재 체제로부터 나라를 지킨다고 운운하며, 자국 국민을 매카시즘으로 탄압했다. 또한 중국의 국공내전과 그리스 내전 그리고 전후 필리핀 문제에 개입하여, 각국의 민족 반역자들을 지원했다. 그리스 내전에서 미국이 지원한 세력은 과거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반역자들이 대다수였다.

우리는 미국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아마도 단편적으로 알 것이다. 특히나 외교와 정치 그리고 역사부분에 있어서, 6.25 전쟁과 함께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미국에 대한 비판은 ‘종북좌빨‘로 낙인 찍히기도 한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여 전쟁을 전개하고 있을 당시, 미국은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지화 하기 위한 전쟁에서 프랑스의 전쟁비용 80%를 지원했고, 이란의 지도자 모사데크가 석유산업을 국유화하자 그를 쿠데타로 축출하여 이란에 친미왕조 경찰독재국가를 세웠다.

이러한 점을 보았을때 미국의 정책이 과연 민주주의적이었는가? 하워드 진 선생이 쓴 책은 이점에서 많을 걸 생각하게 만든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쟁 이후 이라크에게 경제제재를 가하여, 125만 명의 이라크인을 아사시켰으며, 이런 경제제재를 통한 범죄행위는 현재 이란과 베네수엘라 북한 등에서 자행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워드 진 선생의 지적처럼 미국은 절대로 대외적으로 폭력적인 것이다.

그러나 하워드 진은 단순히 미국의 제국주의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미국이 베트남을 불법적으로 침략했지만, 미국인들은 전쟁에 반대하여 반전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차별받던 흑인들은 마틴 루터 킹을 포함한 인권운동가들과 더불어 민권운동을 전개했고, 많은 부분에서 권리를 쟁취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의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은 미국 민중이 함께 병행한 투쟁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투쟁과 불의에 대한 저항을 통해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하워드 진의 주장이다. 최근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미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는 많은 한국인들이 신경쓰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패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네오나치즘 세력을 버젓이 지원하고 있다. 단순한 인도적 지원이 아닌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미국이 하고 있다.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서 얻으려는 목적이 뭘까?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국은 현재 러시아를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의 가난에 허덕였던 러시아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선, 극심한 경제제재와 국제적 및 군사적 압박을 할 이유가 없다. 거기다 우크라이나 탈산업화 이후 이득을 본 것은 바이든을 포함한 미국의 군수산업과 민간기업들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았을때, 미국에 대한 비판은 매우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사회에선 미국에 대한 비판이 너무 약하다. 하워드 진의 <만화로 보는 하워드 진의 미국사>는 왜 우리가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해 비판해야하는지 그 답을 제공해 줄 것이다. 몇년만에 다시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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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역사의 기원은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B.C 1400~1000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로마는 현재 이탈리아 반도에서 발생했고, 고대 로마 주민 대다수는 인도유럽인으로 가장 중요한부류는 이탈리아 중부의 라틴인이다. 이 라틴인들이 세운 국가가 바로 로마다. 기원전 8세기부터 로마에는 새로운 이민의 물결이 이탈리아를 향해 들어왔고, 이민을 오게된 이들은 문명을 발전시켰으며, 기원전 7세기쯤 이들은 도시 국가를 세웠다. 당시에는 왕권이 약해서 도시 국가들로 분열되었다가 이후 로마가 일어나면서 도시국가들이 차례대로 정복당한다.

 

기원전 753년에 로마가 건립되었으며, 왕정 시대를 열었다. 왕정시대를 연 이들은 에트루리아인들이었으며, 기원전 510년에 귀족들의 봉기로 에트루리아 왕조가 명말했다. 그 후 두 세기 동안 로마는 내부의 계급투쟁과 외부로의 영토 확장에 몰두 했다. 에트루리아 왕정 시대가 끝나면서 로마에서는 이른바 공화국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 로마에는 왕이 존재하지 않았고, 대신 두 명의 집정관이 임기 1년간 국정을 살피는 식이었다. 하지만 계급적으로 정치적 권한을 가진 원로원의 구성원은 모두 귀족이었고, 이에 따른 내부의 계급적 갈등이 심각했다. 즉 로마의 공화정은 실질적으로 귀족 공화정이었다.


 

이 시기 로마는 정복 전쟁을 벌였으며 영토를 확장했다. 기원전 5세기와 4세기 동안 로마는 현재의 이탈리아 반도를 정복했고, 과거 자신들의 뿌리였던 그리스도 정복했다. 기원전 3세기에는 지중해 서부의 통제권을 놓고 카르타고 제국과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렀다. 카르타고와의 전쟁은 바로 포에니 전쟁인데 100년에 걸쳐 모두 세 차례 일어났으며, 이 전쟁에서 우리가 아는 카르타고의 장수 한니발이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하기 까지 했다. 한니발에게 많은 영토를 정벌 당하자 로마인들은 명장 스키피오를 지도자로 선출했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 군대에 맞서 승리했다. 이후 한니발은 패배의 굴욕을 참지 못하고, 1년 뒤에 자살한다.

 

100년간 전개된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146년 로마가 카르타고를 멸망시키며, 로마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로마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을 장악한 지중해의 맹주로 성장했으며, 이에 따라 로마 제국의 시대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 로마제국 시대에는 반란이 끊이질 않았다. 노예들의 반란이 자주 일어났으며, 계층들의 갈등도 극심했고, 대표적으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이를 잘 보여준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이후 후세대들에게 많이 알려진 바 있다. 이 반란은 실패했지만, 귀족 중심의 로마 지도층에게 막대한 충격을 주기엔 충분했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진압한 로마는 정계에 세 명의 인물을 등장시켰다. 스파르타쿠스 반란 진압에 공을 세운 크라수스, 해적 소탕에서 공을 세운 폼페이우스, 몰락 귀족 가문 출신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이들이 바로 로마 제국의 3두 정치체제를 구축했다. 당시 로마는 내전이 있었는데 카이사르는 내전에서 갈리아를 정복했고, 이후 자신의 경쟁자인 폼페이우스의 군대를 무찌르고 수도 로마로 진군하여 기원전 48년에 종신호민관에 선출됐다. 그러나 그는 4년뒤에 자신의 심복인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카이사르 사망 이후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최초의 황제로 등극했고, 동시에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갔다. 로마는 형식적으로 공화정을 유지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제군주정을 실시했다.다만 옥타비아누스가 선포한 원수라는 칭호는 세습이 되지는 않았다. 이 원수제는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은 시점부터 시작되어 기원후 284년에 끝났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의 이런 체제는 스스로 부패와 궁극적인 붕괴의 씨앗을 내포했으며, 경제나 사회 체제도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로마 제국의 확장은 기원후 1세기부터 급격히 둔화됐고, 2세기에는 완전히 정지됐다. 영토가 너무 넓어져서 지도층의 단합과 이들에게 바쳐지는 피호민들의 충성은 군대에서의 일반 사병의 희생이 있어야만 가능했고, 이런 시스템은 사치스런 소비와 국가의 후한 보조금이 있어야만 지속될 수 있었다. 당시 로마에는 콜로세움이나 대중 목욕탕, 경기장 등 온갖 오락 시설 및 유흥시설들이 로마 제국에 건설됐지만, 그에 따른 재정 부담이 경제적으로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했다.

 

로마 제국의 군사적 하락은 378년 현 불가리아의 아드리아노플에서 동로마제국의 전체 야전군이 고트족에게 패배하면서 확실히 나타났다. 당시 로마는 동부는 비잔틴 제국이라 불렸고, 서부는 서로마 제국이라고 불렸는데, 로마는 이민족들의 끊임없는 침입 하에 있었다. 410년 서고트인들이 로마를 함락시켰고, 455년에는 반달족이 다시 로마를 함락시켰다. 이어서 476년 게르만족 오도아케르가 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를 내쫓으면서 서로마 제국이 몰락했다. 이렇게 해서 로마 제국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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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2 - 51개 주제로 본 우리민족 절반의 이야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2
4.27시대연구원 지음 / 도서출판 4.27시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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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것저것 바쁜 일이 많아서 독서를 다소 게을리한 측면이 있지만, 작년 11월에 읽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2권을 펼쳤다. 사실 1권을 읽은 이후 2권을 바로 읽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바쁜 일들이 많아서, 지속해서 미뤘었다. 지난번 서평에서도 언급했던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라는 존재에 막연한 오만과 편견을 가지고 있다. 북한이라는 존재는 항상 부정적으로 생각되고 평가되며 판단되어야 할 존재일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인들 내면에 막연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일종에 왜곡된 인식이 편견과 오만을 양산한다고 할 수 있다.

 

탈북자들을 생각해보자. 국내 종편 언론 TV조선과 채널A에서 방영하는 모란봉 클럽이나 이제는 만나러 갑시다를 보면, 북한이라는 존재는 항상 남한이라는 존재보다 무조건 잘못되었다는 전제하에서 방송을 진행한다. 이 채널들은 탈북자들을 모아서, 북한에 대해 안 좋은 얘기만 양산해내며, 북한이라는 사회는 마치 인간이 살면 안되는 쓰레기 같은 곳으로 묘사한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adio Free Asia)이 하는 주장들과 똑같다. 대개 이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열악한 배급 사정, 전력 공급이 부재 등, 절대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얘기들 뿐이다. 나는 이만갑이나 모란봉 클럽이 양산해내는 북한에 대한 관점이 과거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타국을 악마화하는 수법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국 사회에서 나오는 북한에 대한 내용들을 상당 부분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대한민국 정부의 나팔수로서, 것 잡을 수 없이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일부 탈북자들이 증언에 더더욱 비판적이다. 예를 들면, 과거 북한군의 광주학살처럼 묘사된 송림 제철소 사건은 나중에 주성하 기자가 조사해본 바로는 상당 부분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을 정도다. 송림 제철소 사건이 한국 사회에서 과장된 이유에는 일부 탈북자들의 증언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비판적으로 보려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1>에 이어 이번에 읽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2>는 그런 거짓말들이 무분별하게 돌아다니는 한국 사회에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해주는 책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북한의 현대사를 쉽고, 제법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이것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1권이 일본이 패망하는 1945년부터 시작하여 1970년대까지를 다뤘다면, 2권은 북한에서 소위 전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선포하던 1980년부터 시작하여, COVID-19가 한참이던 2021년 북한에서 개최한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까지를 다룬다.

 

기존에 국내에서 출판된 북한 현대사 관련 서적들이 1950,60년대 북한 경제발전의 성과를 인정한다면, 1970, 80년대 경제에 대해선 비판하기 일쑤다. 그러나 이 책은 그것에 대한 반론을 담고 있다. 또한, 1956년 스탈린 격하 운동을 단행한 흐루쇼프의 수정주의와 고르바쵸프의 페레스트로이카 그리고 마오쩌둥 사후 중국의 개혁개방을 한 덩샤오핑의 모델을 비판하는 점도 책을 읽으며 눈에 들어왔던 점이다. , 이 책은 남한학계가 북한의 경제적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비교 대상으로 삼는 모델을 비판한 것이다. 국내에 나온 책들 중에 흐루쇼프의 수정주의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비판하는 책은 찾기 힘들다. 따라서 이런 점은 제법 반가울 수 밖에 없다. 책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겠다.

 

남측 학계가 북의 경제건설 노선을 비판하며 비교 대상으로 삼은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이른바 '글라스노스트(개방)',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노선은, 북의 입장에서 보면 흐루쇼프때 등장한 현대수정주의의 연장으로 외려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중단의 촉진제였다. 중국의 덩샤오핑이 내세운 이른바 '개혁ㆍ개방' 정책 역시 자본주의화를 수용한 수정주의 경향의 하나였다. 게다가 북은 미국과의 군사적 대치가 상수이다.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수정주의 확산으로 전체 사회주의진영에 악영향을 끼치고,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해야 하는 환경속에서 자체 역량으로 사회주의 건설을 지속해야 했던 북의 상황을 염두에 두는 게 합리적 시각이라 하겠다.”

 

출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2 p.24

 

중간중간에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의 자서전인 <세기와 더불어> 집필 과정이나,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주체사상에 대한 소개 및 그 나름의 해석 등도 제법 볼만했다. 책은 <세기와 더불어>가 이제는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다. 국내에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스탈린, 호치민, 마오쩌등, 아옌데, 카스트로, 체게바라 등의 자서전 및 평전은 있지만, 정작 김일성에 대한 책은 일단 검열부터 하고 본다. 물론 나는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 북한 측 입장에서 쓰인 책들을 막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극우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주장하는 민주주의적 가치에 어긋나기까지 한다. 따라서 책의 주장대로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자유롭게 읽혀야 한다.

 

1990년대 북한에서 겪었던 고난의 행군에 관한 서술도 흥미롭다. 물론 나는 고난의 행군 300만 명 아사설이 새빨간 거짓말임을 알고 있었지만, 책에서 체계적으로 아사자 수치를 반박하니 반가울 따름이다. 사실 고난의 행군은 너무나 끔찍한 참사였지만, 실질적인 책임은 의도적으로 경제제재를 가하여 사람들을 굶어 죽게 하여 그 나라를 망치려 했던 미국에 있다고 본다. 1932년에서 1933년 당시 소련 시기 우크라이나를 휩쓸었던 홀로도모르에 대해선, 스탈린의 학살이라 우기는 분들이, 정작 미국의 의도적인 고난의 행군 초래는 미국의 학살이 아니라고 보니 참으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책은 미국의 고립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명히 언급한다.

 

북이 1990년대 중후반기를 항일무장투쟁 때 고생이 막심했던 전투 행군에 비유한 것은 그만큼 간고했기 때문인데 난관은 "수백년래에 처음 보는 무서운 자연재해"만이 아니었다. 김 주석 서거 이후 확산된 이른바 '북 조기붕괴설'을 현실화하려 미국은 대북 봉쇄와 군사적 압박을 강화했다. 이는 소련 해체와 사회주의 시장 붕괴 이후 자본주의 나라들과의 주요 원료 및 물자 교역마저 가로막아 북의 경제난을 심화시켰다. 그런 결과로 고난의 행군을 하게 됐다는 게 북의 설명이다.”

 

출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2 p.129~13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1>이 순수히 김일성 시대만을 다뤘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현대사 2>는 김정일과 김정은 시대까지 다루고 있다. 책 내용 중에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7.1 경제관리개선조치(7.1조치). 책에 따르면, 이 조치는 사회주의 원칙을 확고히 지키면서 가장 큰 실리를 얻을 수 있는 경제관리방법이라 북에서 일컫으며, 내용의 핵심은 가격조정을 통한 사회주의 분배의 현실화. 전차(버스) 요금과 쌀 값이 급상승했는데, 이에 따라 일반 인민들의 생활비도 대폭 상승시켰다. 그리고 국가에서 지급하는 생활비는 노동의 특성과 기술 수준, 생산성 등에 따라 차등지급했다고 한다. 책을 통해 7.1조치에 대해 처음 알았다.

 

그 외에도 현재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의 성장과정이나 군 생활, 그리고 김정은 시대의 여러 이야기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 트럼프의 도발적인 대북 발언이나, 4.27 평화선언 그리고 북미 1,2차 회담 및 2021년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까지 현재 시점의 북한 이야기까지 다루니 흥미롭게 다가왔다. 물론 책을 재밌게 읽었지만, 책에 나온 내용을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대학시절 1,200여 편의 논문과 담화를 발표했다는 부분이나, 세습 관련 부분에 대한 입장 등이 그러하다. 그 외에도 내 생각과 상반되는 부분들은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분명 2권 또한 얻어가는 점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이 책은 북한의 입장을 이해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집필된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자칫 북한찬양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얘기들 중에는 우리가 북한에 대한 막연한 편견에 빠져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나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들을 알려준다. 또한, 반공주의자들이 양산한 거짓 자료에 대한 반박도 담고 있다. 한국 사회가 체제경쟁이 끝났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이러한 책의 출판과 판매의 자유를 훨씬 더 적극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말로는 체제경쟁이 끝났다고 하면서 정작, 북한 자료는 탄압하려는 이 사회 모순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번에도 북한 현대사에 대한 공부가 제법 됐다. 나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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