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등위에서는 향기가 난다의 전작인듯 하다.
저자 말로는 10년전. 30세에 썼다고 한다
최악의 작품이라고 .. 보지 마란다

난...
그래 이런것도 가족이지~ 하면서 봤다
가족이라도 좀 더 이해가 잘 가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어긋나는 경우도 있다
낙관적인 성격이 있을 수 있고 비관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구성원들이 함께 모일수 있다.
한 핏줄이라고 하나의 모습은 너무 끔직하다

부모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노력하고
부모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받아줘야하고
부모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이해해주는 건 안되라고 말하는 건... 내가 부모이기 때문이겠지..
내가 자식의 입장에서는 이해받기만을 바랬으니까..
좀 더 사랑해달라고 징징?거리는 아이에게는 신경이 더 쓰이는 건 사실이고 얌전한 아이는 잘 지내겠지하고 하고 쓰윽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것도 사실이다.
나 같이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경우엔 더 그렇다
솔직히 아이들이 알아서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맘이 제일크다.
아이들의 행복보다는 나의 행복이 우선인편이니까..
그런 면에서 우리 애들도 마리처럼 나에게 불평. 불만을 토로 할지도 모른다.
그 아이들이 힘들다고 봐 달라고 손을 내미는데 내가 못 알아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있다.
어느정도 예민해질 필요가 있는데..

요즘 둘째가 자꾸 신호를 보내는데 솔직히 좀 귀찮다.
나도 좀 힘들다...니들이 이 엄마를 이해해주라
어째서 커가면서 더 엄마손을 필요로 하니..
좀 지친다~~~~ 고 투덜댄다.
그래도 끙~ 하고 몸을 일으키지만 타이밍이 늦을 때가 종종 있다.
후회도 하고 담엔 즉각 대응해줘야지~ 하지만....


그래서 작품속의 엄마도.. 아빠도.. 마리도.. 여동생도 그럴수 있겠다 생각한다.
성추행한 그 **놈 빼고~~


어째든 작가말마따나 등뒤의 향기보다는 좀 더 거칠고 좀더 적나라해서 좋다
덜 다듬어졌다는 느낌?
같은 사건인데 다른 시각.
서로에 대한 다른 시각들..
어째든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라하더라도
다름을 인정하고
무조건 이해하고 인정받을수 없을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자..
안되는 것을 붙들고 평생을 허비할수는 없으니까~~

표지 넘 맘에 든다. 꼭 나 사춘기때 모습같다 ㅋㅋㅋ 불만에 가득차있고 투덜 투덜 투덜 ㅋㅋ
여동생도 내 동생같다 ㅋㅋㅋㅋ
지금은 좀 관계가 달라졌지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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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 세번째
네메시스. 에브리맨. 그리고 울분
울분 Indignation 가장 가독력이 좋고 인상깊었던 작품.

한국전이 등장해서 뜨악.
왜 한국전이지? 잠깐 생각해보고는.
그럴수도 있겠다. 평범한 그들에게 뜬금없는 전쟁일수도 있겠다. 책속에 등장하는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을 하기에는 적합한 배경이 될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은 들었다.
우리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나라에 파병된다고 생각해보면...

이 작품은 전체 3부분이다.
모르핀을 맞고. 벗어나. 역사와 관련된 메모.
모르핀을 맞고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한 두장씩 정도...

작품속에서 계속 피이야기가 나온다
도축장에서의 피. 올리비에의 자살 그리고 피.
피에 절대 익숙해질수 없는 마커스에게는
아버지도 대학도 도축장과 같았을 것이다.
적합하고 적당한 닭을 잡아서 부드럽게 목을 꺽어서 죽이는 도축장처럼 아버지의 느닷없는 집착을 피해 들어간 대학도 이들을 닭처럼 적당하게 교육시켜 그들의 입맛에 맞게 도축하는 도축장.

울분은 무엇에 대한 울분인가?
아버지의 간섭을 피해서 울분을 터트리고 타대학으로 맞지않는 룸메이트에게 울분을 터트리고 방을 바꾸고
방을 자주 바꾼다고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호출한 학장에게도 울분을 아니 여기서는 토하기까지 하고-- 사르트르의 구토라는 작품이 연상되기도-- 마커스는 계속해서 울분을 터트리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적?? 을 피해 달아나다가 충수염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더이상 피할데가 없어지게 된다.
막다른 곳에서 공식적인 만인의 연인. 정신병력이 있고 자살시도까지 했던 올리비에와 어머니의 만남.
진정한 적은 어머니? 희생과 인내를 무기삼아 올리비에와의 만남을 정리하라는 어머니.
일방적이고 분노로 가득찬 아버지를 참아내겠으니 여자친구와 헤에지라는 어머니. 울분을 토해내지도 못하고 피할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
퇴원해서 나가니 이미 올리비에는 사라진 상태.
전쟁터로 가는 마커스.
부상으로 고통받는 마커스. 모르핀을 맞지 않으면 참을수 없는 상태가 된 마커스.
그 대학에서 유일하게 한국전에서 전사한 마커스.

마커스는 한국전에서 모르핀을 맞을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내에서 모르핀을 맞으면서 살아야했던것이 아닐까
모르핀을 맞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든 사회.
청춘들을 옭아매려는 사회의 거대한 담론들에 울분을 토해내봤자 미친놈 취급당하는 사회.
피하고 피해도 결국 벼터내지 못하면 의미없는 사회. 모르핀을 맞아가면서 그들의 담론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야 버텨낼수있는 사회.
아니 버텨내고 싶어도 미묘한 균열들에 의해서 튕겨져 나가는 아니 튕겨내는 곳이 사회가 아닐까?

이래저래 울분을 터트릴수밖에 없는 곳.
울분을 터트리고 싶어도 터트릴곳이 없는 곳.

술. 마약. 여자.
약자가 약자에게 울분을 터트리는 곳.

저자가 그리는 1950년대의 미국의 작은 도시의 모습과 현 우리사회의 모습이 별반 다름이 없음이 더 씁쓸하다.



- ˝아주 작은 일. 아주 사소한 일이 정말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지오. 아버지가 그걸 증명하시네요!˝

- 문이 없다. 오늘도 내일도 없다. 방향은 뒤로만 간다(지금만 그러한가?) 심판은 끝이 없다. 어떤신이 심판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 자신이 늘 내 행동을 집요하게 심판하기 때문이다. -66p

- 내가 나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인정하려면 뭘 더해야 한단 말인가 -101p

- 매우 평범하고 우연적인, 심지어 희극적인 선택이 끔찍하고 불가해한 경로를 거쳐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 2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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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8-21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핀을 맞지 않을 적에 견딜 수 없으면
아예 모르핀이 없이 지내면
이렇게 있는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네요......

지금행복하자 2015-08-21 15:08   좋아요 0 | URL
모르핀을 맞지 않고 버티려는 사람들 아직은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최근의 행태를 보면 더더욱 모르핀이 필요하지만 끝까지 눈 크게 뜨고 버텨야죠~~ 그래야 앞장 선 분들께 덜 죄송할것 같아요~~
인간된 도리로서요~~

2015-08-21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08-21 19:20   좋아요 0 | URL
네메시스 읽고 제 타입 아니라고 했는데 다른 책도 읽어보라는 말에 집에 있는 책부터 한권씩 읽어가고 있어요~ 그랬더니 벌써 세권째.. 차례로 다 읽어보려고 해요~

cyrus 2015-08-2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처럼 남북 긴장감이 형성되면 취직도 어려운데 그냥 전쟁이나 일어나서 김정은 모가지 따왔으면 좋겠다는 발언의 댓글이 많아요. 나라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애국심으로 전쟁에 임하는 것은 좋은데, 현실 도피로 전쟁을 원하는 생각은 별로에요. 전쟁이 무슨 게임이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해요. 필로 로스의 <울분>의 배경도 지금의 우리나라와 흡사해요.

지금행복하자 2015-08-21 19: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물론 가끔씩 이럴바엔 전쟁이라도 라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화들짝 놀라요. 절대 전쟁은 도피처가 되어선 안되요~ 누구 좋으라고요 ㅠㅠ 전쟁의 피해자는 실제 전쟁하고 상관없는 사람들이에요~

울분 읽으면서 너무 화가 났어요.
세작품중 가장 이입되었나 봐요.
 

그들의 등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난다
오사 게렌발


당연한건 없다
가족도 혈연도
벗어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가족과 혈연의 사회의 통념이 막고 있을 뿐.
가족은 이래야 해. 라고 만든 존재는 누구인지..

가족도 인간이고 혈연도 인간이다
부모자식에도 궁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힘든 부모사이는 정리할 수도 있어야 한다.
이는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달랐을 뿐.
이해하려고 들어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고 해서 무작정 잘못이라고 돌을 던질수는 없다
비난을 해도 뭘 잘못했는지 모를 확률이 높기 때문에.
`우린 최선을 다했어요. 저애가 너무 예민한거에요. 더 이상 뭘 더 해줘요~ `
그냥 옆에서
`부모라도 미워해도 돼. 떠나도 돼.
죄책감 느끼지 않아도 돼. 괜찮아 그런 느낌 가질수 있어. ` 이런 말 한마디면 충분했을지도 모른다.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모든 부모가 모든 자식을 사랑한다고. 이제는 이런 편견에서도 벗어 나도 될듯하다



데이비드 스몰의 《바늘땀》이 연상된다.
그때 읽고나서 온 몸의 소름이 지금도 생생한다

* ˝ 준비됐니? 네 어머니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미안하다, 데이비드, 하지만 사실이야, 널 사랑하지 않아˝






나 자신도 돌이켜 볼일이다.
내가 받은 결핍을 다시 내 아이에게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책속에서

* 하지만 표현할 수 없다면 그걸 진정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받는 사람 입장에서 거절당하는 느낌뿐인데도 그게 진정 사랑이라고? ..

엄마 아빠가 나한테 왜 그랬고 어쨋니 지금도 여전히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어째든 다 이유라는게 있기 마련이다.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유들. 엄마 아빠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유들. 그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유들. 내가 결코 알지 못할 이유들. 엄마 아빠가 결코 알지 못할 이유들. 거기에는 또한 어째서 우리가 결코 이유를 알지 못하는가에 대한 근거들이 분명 존재한다. -161p


* 엄마 아빠가 일부러 나에게 해를 끼치려고 그랬던건 절대 아니라는 걸 안다. 정서적 방치라고 하는게 진단하기 아주 어려운 이유중 하나는, 엄마가 되었든 아빠가 되었든 가해자쪽이 자기로 인해 피해자가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매번 거의 전적으로 자각하지 못해서이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늘 각자 나름대로 `할만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 용서하고 말것도 없다. 내가 누구한테 사죄를 받고 말것도 없다. 하지만 난 이제 더 이상 그런 것들에 휘둘리고 싶지않다. 그럴 여력도 없다.
오랫동안, 아주 아주 오랜 기간동안 나는 어두컴컴한 바다를 바라보며 해안가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바다에서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이 그러고 있는 것처럼. 나는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정황상 모든 게 분명할 뿐더러 구조를 시도했으나 전부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포기할 수 없었다. 해안가로 떠오른 몸체를 보기전까지는 모든게 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수 없었다. 결국 희망을 포기했을때 내게 자유가 돌아왔다. 나는 사고를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 잃었던 모든 것을 감수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내가 얻은 모든 것들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 168~169p

* 엄마 아빠일은 그만 다 잊자. 이제부터는 너와 나 둘뿐이야. 그러고는 어린 제니는 내가 데리고 갔다. 아이는 나의 일부인 것처럼 내게 꼭 매달려 있었다.
우리는 들판과 숲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리고 마을과 도시를 뚫고 지나갔다.
집. 학교. 주방 식탁. 아파트. 침대. 병원. 폭력. 상처, 그리고 고독을 함께 거쳐갔다. 그렇게 지나는 길에 있던 제니를 모두 함께 데려갔다.
마침내 우리는 꽤 멀리까지 벗어나 왔다. 여럿의 제니가 이제 모두 나와 함께 있다. 모두가 우리이고 우리긴 바로 나다. 나는 나다.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휴식뿐이다. - 177~ 1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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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8-20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사 게렌발`의 [7층]을 읽었었거든요. 그래서 이번 만화도 되게 끌리더라고요. 저도 봐야겠어요. 보면 서늘해 지려나요.

지금행복하자 2015-08-20 17:50   좋아요 0 | URL
저는 처음 접하는 작가인데 다른 작품도 궁금해지더군요~ 7층. 접수했습니다~

서늘해지기보다는 저는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중반이 너무 마음이 아팠거든요~~
 

누군가 그랬다. 내가 가족해체주의자라고.
농담이긴했지만 어느정도는 나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겠지.
종종 이런 말도..
내 sns에는 가족사진이나 이야기가 거의 없다고.
그건 아닌데
다른 사람들보다 비중이 많이 적을 뿐.
내 개인 사생활을 가지고 싶어하고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내 생활에 그들을 무조건 동반시키고 싶지 않고
또한 그들의 생활에 내가 끼어들고 싶지 않을 뿐.
나는 가족이라는것은 가족이라는 큰 집합속에 구성원이라는 작은 집합들이 최소한의 교집합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족내의 개인을 인정해주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인 힘을 휘두르지 말아야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사이좋게 지내야하고
가족이어서 존중해야하고
가족이어서 참아야하지는 말았으면 하는 쪽이다
가족이기 이전에 인간이기에
인간이기 때문에 사이좋게 지내고
인간이기 때문에 서로 존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가족이기에 당연한것은 없다
가족도 하나의 공동체 일뿐이다
더 조심해야하고 배려해야할 공동체이다
남은 안 볼수도 있지만 가족은 아무래도 힘들기 때문이다
안 보려면 비난까지 감수해야하니까

다정도 병이라는 말도 있고
아는 것이 병이고 모르는 것이 약일수도 있듯이
가족이라는 것도 결국엔 약으로 남으려면
약으로 만들 여러 노력들이 필요하다.

생각보다 가볍게 접근해서 좀 아쉽고 좀 뻔한 내용도 있지만 이미 지금의 과정을 거치고 왔고 지금도 거치고 있을 일본의 선례를 보는 맛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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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죽는다
가난한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여자도 남자도
삶에 열정적인 사람도
대강 대강 시간 때우며 사는 사람도
독재자도 평화주의자도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죽음에는 차별이 없다.
죽음을 맞이하고 겪어가는 과정은 차별이 있겠지만

요즘 트렌드는 어떻게 죽을까 인듯하다.
한동안은 어떻게 살까였는데
Well being 에서 Well dying 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인간은 아니 동물은 죽음을 의식하고 살고 죽음을 향해 살고 있다
여러 형태의 이름을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죽음을 향하고 있다.

에브리맨에서 접하게되는 죽음은 현대인의 중산층의 죽음이다.
병원과 수술과 요양으로 목숨을 연장해가는 과정.
이전같음 진작 죽음을 겪었을텐데
현대의학의 힘으로 5년. 7년. 9년.... 더 오래도 살 수 있겠지.
아님 책처럼 병원에서 수술실에서 죽음을 맞이할수도..

이런 죽어가는 과정을 격는 데에는 여러유형이 있겠지만 가장 흔한 유형이 처음에는 화들짝 놀라 세상 다 산것처럼 하다가, 예를 들어 평생 못 사던 밍크를 산다든지 점점 약과 크고 작은 수술들과 입퇴원에 익숙해지면서 이렇게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아~ 라고 수긍하면서 사는것같다.
적응도 못해보고 죽음을 맞이하는 분도 계실것이고~
죽음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것은 나의 입장이고 실제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점.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수긍하는 순간... 받아들이는 순간.. 진정한 well dying이 아닐까 뜬금없는 삼천포 같은 생각이 든다.
수긍해가는 과정이 아이러니하게 삶의 모습이고..
죽음과 삶의 공존하지만 서로 보이지 않는 손을 잡고 있지만 서로의 얼굴은 절대 마주할수 없는 아주 미묘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것들이다.
Well being이 well dying이다.

책속의 그가 자신이 버림받은 이유를 알게되고
엄마의 무덤에가서 무덤을 파준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알게되는 삶의 진실.
인생의 최대아이러니..
사람은 철들면 죽는다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스스로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죽음의 문을 향해 스스로 걸어가고 있는 셈이 되어버린 마지막 수술
머리로는 살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죽음을 준비했을 마지막 수술

비록 기다려주는 사람하나 없지만
반겨주는 사람 없지만
그 길을 가는 발걸음은 가벼웠을것 같다.
그 시기가 다가오면 본인은 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것 같다.
그래서 남은 자리를 정리하는 사람도 있다고..
우리 아버지가 그랬듯이..


얇은 이 책이 왜 이리 두꺼울까.
쉽게 읽힐거라 했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네메시스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그리 쉽게 휙휙 넘어가지가 않는다.
어렵게 쓰이지는 않았지만 매끄럽게 넘어가지 않는다. 읽는 도중 여러 생각들이 끼어들어와 그런가 싶기도 하고~~읽는 도중 내가 겪은 죽음의 모습들이 저절로 떠올랐으니... 책장넘기기가 더더욱 쉽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감상에 빠지게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것이 이 작가의 힘일까? 생각이 든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 그는 자신이 놓인 처지를 혐오하면서 내내 뮌가 안정적인 것에 굶주려 있었다. 그는 두 삶을 살고 싶어하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는 순응에 따르는 한계나 그것이 주는 안락 어느 쪽에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그는 특별하고자 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나약했고 공격에 무방비 상태였고 혼란에 빠져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인생윽 반을 발광상태에서 살지 않으려다보니 죄 없는 자식들에게 큰 박탈감을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곃국에는 자신도 사면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확신했다.. -- 39p.

그는 그저 살아있기 위해 그가 합리적으로 할수있는 모든 일을 다 할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도 대부분 그렇겠지만 그는 종말이 꼭 와야하는 순각보다 일분이라도 일찍 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 72p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여. 버티고 서서 오는대로 받인들여라. 다른 방법이 없어. - 83p

그가 본 것은 잠들어 있는 나이든 여자의 높은 돋을새김 윤곽이었다. 그가 본것은 돌이었다. 그 무겁고, 무덤같고, 돌같은 무게는 말하고 있었다.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그 이상이 아니다. -- 124p

지금 이것은 정체였다. 이제 모든 형태의 위로는 사라졌고 위안이라는 항목밑에는 황폐만이 있었으며 과거로는 돌아갈수 없었다. 이질감이 그를 사로 잡았다. -- 138p


자신이 없애버린 모든 것,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스스로 없애버린 모든 것, 더 심각한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의도와는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없애버린 모든 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한번도 가혹하지 않았던, 늘 그를 위로해주고 도와주었던 형에게 가혹했던 것을 깨닫자. 자신이 가족을 버린것이 자식들에게 주었을 영향을 깨닫자, 자신이 이제 단지 신체적으로만 전에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깨닫자,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그의 자책에 박자를 맞추어 쳤다. 심장제네동기를 불과 몇센티미터 차이로 비켜갔다.
-- 164p

나 떠나고 있다고! 다 끝났고 나는 이제 당신들을 모두 다 떠나고 있어! 그가 그에게서 사라지는 것과 똑같은 빠른 속도로 자신에게서 사라지고 있는 그 사람들이 고개만 돌려, 너무나 의미심장하게 소리 쳤다. ˝너무 늦었어!!˝
떠남. 그가 공포에 질려 숨을 헐떡이며 깨어나게 했던 바로 그 말. 주검의 포옹에서 살아 돌아오도록 구해준 말. -- 171p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 1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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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8-18 2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이 좀 무거운 소재를 다루고 있군요. 책 제목과 `죽음`을 연결하면 보부아르의 소설 <모든 인간은 죽는다>가 생각났어요.

지금행복하자 2015-08-19 10:07   좋아요 0 | URL
가장 무거운 주제가 아닐까 싶어요. 그래도 건조하게 쓰여져서 신파로 흐르지는 않지만 나이가 주위의 죽음을 여러번 겪은 터라 그냥 읽히지는 않았어요. 남 일이 아닌거죠}
보부아르소설도 제목에서 내용을 다 알려주는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