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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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름살의 깊은 골짜기로 산산함 대신 우수가 흐르고, 달라지고 퇴락한 사물들을 잔인하게 드러내던 광채가 사라지면서 사물들과 부드럽게 화해하는 시간,
나도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 p.257

현존하는 작가 중에 이 정도의 문장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2011년에 타계한 박완서 작가는 죽지않고 살아서 그 문장이 읽는 이로 하여금 거부할 수 없는 추억 열차에 탑승하게 하고, 말할 수 없이 놀라운 정서로 흠뻑 젖게 한다.

2000년대 박완서 작가가 본인의 산문집에 실었던 수필 660편 중 35편을 추려 책으로 엮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을 읽어보았다.

이미 노령이었던 작가가 세상을 발견한 여러가지 일화는 아직은 젊은 축에 속하는 내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
몰랐던 친절을 발견하게 되는 일, 오해로 빚어진 아둔함에 대한 반성부터 시작해 보통의 무게,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양가감정, 문학과 작가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 나와의 관계, 신과 본인과의 교통 등을 진솔한 문장으로 정직하게 빚어놓은 산문들을 한 번에 보는 일은 마흔을 바라보는 나에게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었다.

모두가 자기의 피해사실에 목소리를 높일 때 이만하니 나는 좋다며 입을 다물 줄 아는 이에게서 배우는 삶의 철학. 그것이 비단 많이 '알아서' 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

박완서의 문장은 세세히도 아름다웠고, 눈부셨다. 독자인 나는 별다른 노고를 취하지 않고도 그의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손녀 딸과 함께 엎드려 동화책을 보던 해묵은 시절을 문질러 바라보고 있는 노인 작가의 따뜻한 카디건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가 그의 등에 어른거리는 참척의 슬픔에 코끝이 찡했다. 작가가 말한대로 아름다운 것 뒤에는 왜이런 뜻 모를 슬픔이 비추는가.

작가가 가진 정서가 부럽다가도 자식을 잃은 슬픔이 간간이 비칠 때는 너무 가슴 아팠다. 그러나 그것마저 누구나 겪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성품을 지닌 사람, 그전보다 시린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결코 따뜻함을 잃지 않고 숭고한 인간애를 창작할 수 있는 사람이 박완서 작가였다. 사라졌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못하겠지만 곁에 있는 것으로 이겨내었다고 말해주니 나 역시 사는동안 비견할 슬픔을 만나거든 곁에 있는 것으로 이겨내보자 다짐해 보기도 했다. 엄마 생각도 났고.

우리는 종종 곁에 있는 것에 대해 염증을 느낀다. 그럴 때 부서지고 깨지기 쉬우니 잠시 떠나있는 것도 답이다. 작가는 여행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관계를 읽었다.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지 않을까. 잠시 모른 척 해주는 일, 친절한 친척집보다 불친절한 여관방이 편한 것처럼.

작가는 또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우연히 잃어버린 여행가방 속 물건들을 함부로 적치한 본인에 대한 혐오가 잃어버리지 않은 것에 대해 좀 더 정리할 필요를 느끼게끔 한다. 곁에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
박완서 작가가 좋아하는 단어는 '넉넉하다' 인데 이유가 남다르니 나도 오늘부터는 '넉넉함' 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감사로 살아보겠다 다짐해봤다. 이거 무슨 신앙고백 같네! 그만큼 좋았던 수필들이 가득하다. (실제로 작가는 크리스찬이니 이점 염두하고 글을 읽으시길)
박완서 작가의 책은 다는 아니어도 많이 읽은 편에 속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였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독자 역시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작가는 성공한 거 아닌가?
마흔에 소설가가 되고서야 습작을 시작했다는 이상한(?) 이력의 소유자 박완서 작가. 지금은 물리적으로는 곁에 없지만 내 인생 전반에 있어 가장 존경하는 작가로 여전히 남아 있는 분! (앞으로도 그럴.)
2021년이 되자마자 만나게 된 그녀의 문장들이 느낌이 좋다. 글 우물에 갇혀 남의 글만 탐독하는 나에게 색다른 자극이 되어준 책.
올해는 안 읽어본 작품과 산문들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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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 강의 - 개정판 프로이트 전집 (개정판) 1
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임홍빈.홍혜경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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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가 심리학의 대가인 것은 익히 알았지만 어째서 그러한지 , 그의 이론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잘 몰랐다. 사실은 책이 어려웠지만 그래도 열심히 읽었다. 꼭 완독하고 싶었다. 이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강의록 형태기 때문에 다른 책들과는 달리 존칭을 썼다. (나는 그 존칭형 어미가 읽기에 좋았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정신분석 이론을 주창하기 위해 세 가지 방법을 썼다. 간단한 정리와 함께 알아보자.


1. 실수 행위들

모든 정신적 행위들은 그 자체가 무의식이며 의식적인 행위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실수 행위나 망각 행위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정신적 운동이지 우연이 아니다. 어떤 실수 행위는 매우 깊은 의미를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계획을 잊는 것은 그 계획을 실행하고 싶지 않은 의지가 숨어있기도 하다. 


2. 꿈


옛날 사람들은 모두 꿈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징조와 전조를 찾았다. 모든 꿈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우리가 잠을 자고 있따는 것. 꿈과 수면 사이에는 더욱 깊은 관계가 성립돼 있다. 수면은 어머니의 자궁으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따뜻하고, 어둡고, 자극이 없는 상태다. 우리는 꿈이 숙면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숙면을 꿈이 지켜주는 셈. 

프로이트는 모든 꿈이 상징적이라고 말한다. 꿈은 욕구의 해소와 소원 성취의 통로다. 어느 것도 우연인 것은 없다. 꿈은 다양한 상징성으로 해석되지만 특히 성적인 욕망과 관계가 깊다고 한다.


3. 신경증

모든 신경증 성향도 리비도가 행하는 무의식적인 정신 활동이다. 강박증이나 과민증은 모두 해소되지 않은 욕구나 불안 증세의 상징적 행동이며 성적 행위가 기저에 깔린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의 성생활부터 성인의 성생활, 성도착증을 파헤쳐야 한다.



이 책은 본인의 방대한 이론을 설명하는 개요에 불과하다. 상당히 어렵지만 28개의 챕터가 모두 어려운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부분이 지루하지만 여러 내담자들의 상황이 예시가 돼서 완독 후에는 결국 가닥이 잡히는 형태를 띈다. 그가 제시하는 정신분석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면 프로이트 전집을 읽어보면 된다. 그렇지만 생에서 프로이트를 완독해야 할 피치 못할 이유나 특별한 도전의식이 없는 분이라면 [정신분석 강의] 만으로도 충분히 프로이트 이론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으로 먼저 맛보기를 추천한다.


물론, 쉽게 읽는 프로이트 판도 있겠지만 한번쯤 이런 완역본을 읽어보는 것도 독서인생에 있어서 대단한 기쁨일 수 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내가 좋아하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모든 꿈과, 실수와 , 신경증에 대해서 통찰력이 생긴 기분이다. (이제는 어려운 독일 소설 속 인물들도 프로이트적으로 다 파헤쳐버리겠다. ㅎㅎ)

두께도 상당하지만 말도 어려워서 읽는 내내 고생 좀 했다. 그렇지만 반복되는 문장과 적절한 예시들이 이해를 돕고 자꾸만 뒤로 가도록 채찍질 했다. 친구들도 한 몫 했다. 같이 읽으니까 독려하면서 끝내 완독하게 만들었다. 친구들이 정리한 써머리를 보는 것도 도움이 됐다. 총 3부로 나눠진 이 책의 1개의 부가 끝날 때마다 서로 카카오톡으로 토론 한 것도 이해에 도움이 됐다.  역시 뭐든지 함께 하면 좋은 법이다. 프로이트 박사도 주변에서 그를 돕는 사람이 있었을까?


 들리는 말로는 그 당시 프로이트의 이론이 너무 센세이션해서 프로이트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눈을 흘기거나 두려워서 도망갔다고 한다. 현대 여성인 내가 읽어도 놀라웠는데 그 시대에는 어떨까 싶다. ㅎㅎ 어쨌든 대단한 사람이다. 좋은 기회로 그의 책을 만나 볼 수 있게 돼서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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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28가지 세계사 이야기 : 사랑과 욕망편
호리에 히로키 지음, 이강훈 그림,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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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닿으면 꼭 읽어보려고 하는 책이 있는데 미학에세이와 세계사다. 특히 몇가지 사건들로 구성된 이야기 형식의 단편적인 세계사들을 좋아한다. 특별한 사건이나 자극적인 이야기도 좋지만 유명한 인물들의 몰랐던 뒷 얘기나 처음 알게된 인물을 탐구하는 것도 좋다. 그러니 이 책이 나를 사로잡지 않을 수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개구쟁이 같은 그림이지만 자세히보면 기괴하기 짝이 없는 그림들! 막상 열어보니 엄청 그로테스크 한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또 그런 이야기가 흥미를 끄는 법 아닌가.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이야기부터 명사들의 다소 변태적인 욕망까지!!!

너무 재밌었다.

28가지 이야기가 있다. 책을 딱 덮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 몇 편을 골라보면 역시 피카소를 빼 놓을 수 없다. 피카소의 그림이야 상당히 많이 접했고 예술 사조적으로 대충 알고는 있지만 이정도로 여성편력이 심했을 줄은 몰랐다. 아니 중년 아저씨일 때도, 할아버지가 돼서도 애인이 모두 이십대면 어쩌라는 겁니까. 거기에다 애 낳고 살기까지 하고 버리고. 그나마 한 번은 버림받았다고 하니 좀 후련한데 그러면 뭐해 또 여성을 갈아치우기 바빴는데!!! 성욕이 해결돼야 작품이 나온다는 말도 안되는 자기만의 루틴을 가지고 아주 몹쓸 인생역사를 써내려간 피카소의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았다.

두번째로 기억에 남는 것은 코코샤넬 이야기다. 나는 지금까지 샤넬이 얼마나 멋진 여자였는지 같은 여자로서 부럽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왠걸, 그게 아니었다. 루이제린저의 [삶의 한가운데 ] 속 여주인공처럼 남성에게 기대지않고 독야청청 살아왔었겠거니 싶었나보다. 나의 환상을 완전히 박살냈다. 그녀는 남성의 재력과 자신의 재능을 적절히 섞어서 한발씩 나아갔다. 다만 결혼이라는 제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뭔가 신여성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역시 남성의 재력에 기대지 않고는 혼자 커리어를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말년에는 조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고 망명지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는데 내가 잘 알아보지도 않고 착각 속에 살았다는 생각에 조금 움츠러들었다. 그래도 죽을 때 하녀에게 '잘봐 죽는 건 이런거야.' 라는 말을 남겼다니 희한하고 특이한 사람인 것은 확실하다. 뭐 사생활이 중요하나 그녀의 업적이 길이 남은 것은 확실하니까 뭐 ㅋㅋ

또 기억에 남는 사람은 루돌프 황태자의 동반자살 사건이었다. 나는 루돌프 황태자는 잘 몰랐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그는 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탓에 풍운아처럼 살다가 간 사람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자살을 결심하면서 별로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 메리를 자살상대로 결정한다. 메리는 황태자를 사랑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더 아쉬운 마음이다. 황태자 나쁜놈!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는 살게 두고 별로 안 사랑하는 여자를 데리고 같이 죽다니. 게다가 총으로 그녀를 먼저 쏘고 지도 죽었다니까 참 독하기 짝이없는 사람이다. 희대의 동반자살로 남았기에 이 <사랑과 욕망 편> 에 엄청 잘 어울리긴 하지만 여자로서 뭔가 기분 나빴던 것은 사실이다 ㅎㅎ

또, 모차르트의 처가 악처로 소문났었다는 것과 그녀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편을 들어주는 저자의 말하기 방식도 재밌었고, 아인슈타인의 뇌를 200조각으로 잘랐다는 말에 경악해 그 페이지로 달려가기도 했다. 차례만 봐도 너무너무 흥미로우니까 궁금한 사람은 직접 만나보길 바란다.

그래도 꼭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인 외제니였다. 그녀는 남편의 외도와 붕괴되는 제정을 보면서 철저히 무너졌던 여잔데 본인의 삶에 대한 회의와 일말의 희망을 개인의 영달에 쓴 게 아니라 여성의 인권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노력하고 여성도 바칼로레아 시험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등의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다고 한다. 물론 죽음도 그녀를 피해갈 수 없었지만 아흔이 넘는 나이를 사는 동안 풍진 세월 속에서도 끝내 의로운 일을 했다는 것이 가슴에 남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지만 존경심이 확 드는 그런 사람이라 소개하고 싶었다.

이 밖에도 재밌는 내용이 많다.

저자 호리에 히로키의 저서는 이 것이 처음인데 이렇게 참신한 시각을 가진 사람의 저서라면 다른 책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번역할 때 '추정된다' 라는 동사가 너무 많이 쓰여서 읽는데 부자연스러웠다. 물론 원서를 보지 못해서 어떻게 번역이 된건지 모르지만 약간 의역처럼 느껴졌다. 그저 개인적인 생각이다.

세계사를 알고 싶지만 지루한 사람들에게 한 챕터씩 읽어보라고 권유해주면 좋을 것 같다. 역시 예나지금이나 가십거리가 제일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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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열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김현화 옮김 / 마시멜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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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내가 많이 기다린 소설이다. 일단 기대평에서부터 광고 심지어 먼저 읽은 사람들의 리뷰까지!! 완전 흥미진진했다. 구미가 당겼다.

솔직히 선전빨(?)인 책도 많기 때문에 기대반 의심반이었지만 왠걸!

진짜로 다 읽어버렸다. 잡은 자리에서 단숨에!!



난도질 하는 장면 따윈 없다, 지독한 성폭력도 없다. 일본 소설 특유의 그로테스크도 없다. 그저 깊은 슬픔만 있을 뿐인데 다음 장면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주인공 사키코의 내적갈등이 독자의 호기심에 소용돌이 친다. 그녀 심리의 기승전결에 쉴새없이 빨려들어 갔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 이런 기분이군?



줄거리야 많은 사람들이 알 것 같아서 상세히 적지는 않겠다만 간단히 말하자면 얼마전 남편을 잃고 언론의 회초리까지 맞게 된 사키코가 남편을 죽인 살인범으로 지목됐지만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된 히데오의 유죄를 밝히고자 신분을 세탁해 그와 결혼을 하면서 일어나는 몇 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복수라는 것은 해피엔딩일 수가 없다. 이미 망가진 삶을 되돌리려는 노력은 하지않고 외려 파국으로 치닫아 더 큰 후회를 남기는 법이다. 증오하는 사람 앞에서 연신 웃으며 아내를 연기해야 하는 사람의 심리를 정상이라고 여길 수는 없다. 그러나 그녀가 그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었던 내면은 조실부모한 유년기의 환경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부모를 잃은 모든 유년이 그렇게 점철됐다고 하면 비약이라고 손가락질 할지도 모르고, 부모가 부모답지 않았을 때보다 없는 것이 낫다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을테지만 가장 1차적인 보호처가 파손됐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한 사람의 일생이 어떤 형태의 길이 될지 가늠하기란 어렵지 않다.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결말은 절대로 말할 수 없지만 반전이다. 솔직히 놀랐다. 죄라는 것이 사회가 지정한 처벌없이 스스로를 단죄하고 용서할 수 있는가, 다른 어떤 수단으로 그 죄를 처리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결말이다. 그러나 소설은 또 그렇게 열린채로 끝이 난다. 결말이 났음에도 모든 죄과가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좀 찝찝하다. 그런데 재밌다. 이건 무슨 심리인가.



띠지에 "2시간 짜리 서스펜스 드라마 같은 이야기" 라고 돼있었는데 진짜 그랬다. 재밌는 영화 한편을 가장 가까이에서 본 기분이랄까? 생각보다 흥미롭고 빠른 전개에 마구마구 책장이 줄어드는 것을 경험했다. 옆에 있던 가족이 그림만 보느냐고 물을 정도로 ㅎㅎ (평소에 좀 속독하는 편이긴 하지만)



하도 빨리 읽어서 (심지어 받은 날) 사람들이 완독 안하고 리뷰쓰는 거 아닌지 의심할까봐 겁날 지경이다.



다만 굳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자면 동반자살이라든가 민간인 사찰, 거짓과 사기와 모략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설정하고 그에 따른 아무런 처벌이 없어서 -죄책감도 없고- 윤리적 판단이 불완전한 어린 학생들이 읽기에는 조금 적절치 않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미친 속도감과 이야기의 완결성을 위해서 봐주기로 한다. 소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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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 대한 인간의 예의 -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이소영 지음 / 뜨인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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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보았을 때 꼭 읽고 싶었다. 예전에는 네 발달린 짐승은 무섭고 징그러워서 가까이도 안갔었는데 고양이 집사가 얼떨결에 되면서 동물 애호가가 된 나이기 때문에 이런 책은 관심이 많이 갔다. 동물보호 단체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이 직접 겪은 일을 쓴 것 같아서 더 읽고 싶었다.

결과는 더 충격적이었다.


동물을 학대하는 충격적인 실태때문이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사람들의 혐오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안에 나도 아직 발담그고 서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누가 누구에게 뭐라고 하는 건가.


이 에세이는 저자의 진솔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애니멀 호더에게 갇혀있는 몇 마리의 고양이나 강아지들, 아니면 식용 개들을 구조하는 작업만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식당의 좁은 수조에 갇혀서 남의 눈요기가 되고 있는 악어, 서랍 속에 갇혀있는 뱀, 동물원에서 쇼를 하는 원숭이들을 구조하기 위해서 전력투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가는 그렇게 고백한다. '뱀 따위는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하고 싶었다고. 원숭이나 개, 고양이 같은 포유류에게 우리 인간은 거울뉴런을 작동시켜 지극한 애정과 긍휼을 발동하지만, 뱀이나 개구리 같은 상대적으로 징그럽게 느껴지는 동물에 대해서는 별로 불쌍한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 그런 심정을 솔직하게 고백한 저자에게 마음이 확갔다. 이런 성향을 종차별주의자라고 한다. 나도 그런적 많은데!!


사람들은 동물을 포함한 모든 대상에 관해 스키마를 갖고 있다.

우리가 특정 동물을 어떻게 분류하는지에 따라

'사냥할지, 도망칠지, 박멸할지, 사랑할지, 먹을지' 가 결정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동물을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으로 분류한다. p.37

-멜라니 조이[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중에서


어떤 동물인가보다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저자. 생각해보면 나도 동물에 대해 나름의 긍휼한 마음을 가졌다고 하면서도 정말이지 내가 마음이 가는 동물만 불쌍히 여기고, 그렇지 않은 - 혐오스러운 외관을 가진 - 동물들의 안전이나 종 보전은 그저 되면 좋고 안되면 말게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육식을 중지해야하는 것은 알지만 끊지 못했으며, 그것의 원래 생김새나 어떻게 죽는지의 과정은 알고 싶지가 않다. 언제나 마트에서 다 포장된 깔끔한 것을 사다가 구워서 먹은 후에야 만족을 경험하면서 학대받는 동물군에 대해서는 열을 올리는 모순과 위선이 다시 한 번 생각났다.


그렇다면 나같은 사람은 동물을 생각하면 안되는가. 지금 당장 비건이 되기 전까지 이런 책도 읽으면 안되는가.


저자는 지금 당장 오리털 점퍼를 다 갖다 버리고, 바로 채소만 먹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한번이라도 육식을 제외한 식사를 차려보라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캣맘, 캣대디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는 가운데 있다. 일각에서는 동물 보호 차원인데 이해해 줘야 한다고 하지만 내 집 베란다 바로 밑이 길고양이 밥상이라면 고양이를 원래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서는 스트레스일 수 밖에 없다. 좋아하는 것을 강요할 필요가 있는가? 그렇다고 혐오의 방망이를 흔들어 폭력을 가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지만 싫은 것을 싫다고 말했다고 악랄하다고 호도당할 필요는 없다. 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도 본인이 옳은 일을 한다는 것에 취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될 것이다. 그런 일이 있다면 신속히 시정돼야 한다.



개가 짖는 게 싫다고 그 개의 성대를 수술하자고 하지말고 개가 짖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공원 한켠에 반려견 놀이터를 만들었다고 '내가 낸 세금' 운운할 게 아니라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시각을 조금만 더 길러줬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견주들도 '우리 개는 안 물어요.' 대신 '배려해줘서 고맙습니다' 라는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고. 상생하는 사회 아닌가. 저자는 그런 목소리를 치우치지 않는 시선으로 전개하고 있다. 참 마음에 드는 책이다.


동물을 쉽게 사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적인 문제를

몇몇 개인의 '좋은 마음' 으로만 해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화가 나고 기분이 상할수록 그 질문을 시민단체나 개인이 아닌

정부나 국회에 던져야 한다.

개인들이 서로의 한계를 탓하는 것으로 달라질 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p.180


이 책을 읽고 나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나도 동물 구조는 119에서 해도 유기견 구조나 동물 학대의 문제는 동물보호연대에서 해결 하는 줄 알았다.  안타깝게도 구청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걸 몰라서 동물보호연대에 전화해서 업무태만을 운운하거나 뜻모를 분노를 표출하는 것의 무례를 저자는 지적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만 가질게 아니라 정책도 잘 알아두어야겠다. 그리고 제발 아무 지자체나 전화해서 적은 분노를 아무렇지않게 표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거리를 많이 던지는 책이다. 독서모임에서 다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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