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평점 :
부모가 된다는 건 뭘까? 가족이 된다는 건!!
'가족'이라는 게 혈연 중심으로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관념은 분명히 잘못 됐다. 피가 섞였다고 반드시 사랑해야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면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 자식이라서, 부모라서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니라 약한 자에게 힘을 주고 같이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 다짐하는 게 가족이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곳에서 어린 생명들이 함부로 취급당하고, 버려지고, 죽임 당한다. 아프고 속상하다.
문경민의 소설 [훌훌]을 읽었다. 주인공 유리의 엄마서정희는 유리를 입양 했다가 자기 아버지에게 버리다시피 맡기고 떠났다. 그후, 서정희는 어떤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애를 죽도록 패고 잘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죽었다. 고2인 유리는 죽어버린 엄마와 아픈 할아버지를 대신해 4학년 짜리 남자 아이를 떠맡게 되었다.
청소년 소설이고, 희망을 노래하는 건 알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이건 유리에게 너무 불리한 일이다. 가정 형편상 그 흔한 학원 한 번 못가며 열심히 공부하는데 집안일에 아이 양육까지 떠맡다니. 고1짜리 아들놈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 자기 먹은 밥그릇 하나 개수대에 담그지 않는, 너무도 편안하게 살고 있는 내 아이와는 감히 견주지도 못할만큼 유리가 안타까웠다.
그래도 참 잘 자라줬다. 삐뚤어지기 충분한 환경임에도 더 도약하려고 애쓰는 유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동생의 몸에 난 상처를 그저 보아 넘기지 않는 따뜻함 역시 어딘가 서글프게 느껴졌다. 형편상 너무도 빨리 비애를 알아버린 애어른 같아서 대견하면서도 가슴 아팠다.
하지만 무엇보다 속상한 것은 엄마를 죽였다는 오명까지 쓰고 재판정에 세워진 열한 살 연우였다. 그는 학대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유리벽에 부딪쳐 죽어가는 한마리 새처럼 거칠게 떨고 있었다. 때리고 할퀴던 엄마는 죽고 없는데 여전히 남아 온 몸에 번지고 있는 멍을 보면서 차라리 연우가 서정희를 밀어버린 것이래도 무슨 할말이 있을까 생각했다.
사회는커녕 가정에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는 항상 가슴을 저민다. 뉴스에서 왕왕 들려오는, 아이의 목숨을 부모라는 이유로 함부로 거둬들이는 사악하고 파렴치한 치들에게 보내는 혐오만으로는 연약한 아이들을 지켜내기 어렵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슴없이 자행되는 폭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오늘도 소설은 잔잔하게 갇혀버린 나의 심사에 묵직한 돌 하나를 떨어뜨린다. 비탄에 잠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혈연보다는 인간애가, 동료애가, 우정이, 사랑이, 연대가, 위로가 희망을 만들어 낸다.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생명에게 그것들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연우에게 유리가 그랬듯, 유리에게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이 그랬듯, 아니 할아버지가 그랬듯.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두 손주들이 그렇듯.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겠다. 어른이 같이 읽으면 더 좋고. 이런 좋은 책을 읽으면 독자는 할일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