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적당양 이상의 돈이 없으면 상당히 괴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나야말로 또 인생의 새로운 포인트에 서 있다보니 여러가지로 이 책이 와닿았다.
이 책은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하고 있는 열세명의 직업인이 말하는 ‘돈’과 ‘일’에 관한 에세이다. 사람과 직업은 달랐지만 기본 정서는 비슷했다.
우선, 돈은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돈을 버는 것은 신성하고, 예술을 하든 소비를 하든 돈은 반드시 필요하니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벌라고도.
그리고 돈을 쓰라고 말한다. 모아서 부자가 되는 데 목표를 두지 말고 나를 위해 투자하라고 말한다. 돈이 적다고 안 쓰면 모이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남지 않으니 꿈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쓰라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즐거운 시간을 위해서라도 쓰라고.
가장 기억에 남는 작가는 배우 김의성 씨였는데, 문장이랑 생각이 좋았다. 실력을 키우라는 말, 나중에 잘해준다는 사람 말은 믿지 말라는 말, 진짜 잘해주는 사람은 지금 잘해준다고, 페이는 대우라고. 아는 말인데 읽는 이를 사로잡는 매력적인 말들이 많았다.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중의 하나, 내가 좋아하는 김중혁 작가의 꼭지를 읽었다.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분! 바로 위로 받은 문장 하나, 또 작가님 내 상황 어떻게 아시고 또 이런 격려의 문장을 남기셨는고.
현재의 나를 믿는다. 지금 무언가 하기로 선택했다면 잘한 일이다. 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면 잘한 일이다.p.168
현재의 나를 믿는다. 지금 무언가 하기로 선택했다면 잘한 일이다. 하지 않기로 선택했다면 잘한 일이다.
p.168
이 책은 금방 읽는다. 13인의 글을 읽으면서 나라면 이런 에세이를 어떻게 쓸까 생각한다. 김광혁 작가는 일이 돈을 담는 항아리라는데 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고민한다. 나는 ‘직업’을 작금의 상황과 여건에서 스스로 내 시간에 대가를 매기는 수단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직업에 다시 뛰어들고 있는 만큼 그 수단을 굴려서 따뜻하고 성실하게 항아리를 찰랑찰랑 채우고 싶다. 그러나 꽉 안 찰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도 돈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할 시간도 사고, 좋아하는 것들도 사들이고, 온기를 나눠야 하는 곳에 힘을 보태야 할테니까. 갑자기 떨리고 울린다. 가자, 돈 벌러! 🤭🤭
내 아이들은 다 자랐지만 지금도 자라고 있는 어린 아이들은소풍을 경험할 날이 많았으면 좋겠다. 건물 안에서 닫힌 교육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 나가서 뛰어 놀며 손에 잡히는 모든것을 체험하는 그런 경험이 많았으면 좋겠다. 좋은 기억은 오래도록 힘이 되니까. 하늘 아래 느끼고 경험한 모든 것이 좋아하는 김밥 재료처럼 맛있는 에너지가 될테니까. - P90
아들이 다 컸다고 버럭버럭 대어 들 때 하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한번씩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말했다. 어떻게 키웠는가 하니 스물 넷 어린 나이에 낳아서 길렀다. 나 중심의 삶에서 애 중심의 삶으로 바뀌었고 내 커리어 보다 누구 엄마 경력 쌓고 살아 온 시간이 더 깊고 짙었다. 그런 삶은 17년동안 지속 됐다. 그것이 생명을 가진 후에 나의 선택이었다.
"그러니까, 실수로 낳았다는 말이잖아."
사춘기 온 탑 찍는 아들을 보며 여느 때와 같이 던진 말- 그러니까 내가 널 어떻게 낳...- 에 그날따라 돌아온 칼날 같은 대답에 갑자기 멍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지. 실수로 낳은 건 아니지 이누무 자식이. (대답도 안 듣고 휙 가버렸다)
청소년 소설 [얼음이 빛나는 순간]은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사람은 누구나 시절을 보내며 선택의 버튼을 누른다. 버튼을 누르는 순간 인생의 새로운 장면은 펼쳐지고 버튼을 누르지 않았을 때의 장면은 사라지고 만다. 애초에 없었던 장면은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는 한 면을 선택했을 뿐이다. 선택은 사람을 나아가게 한다. 바로 후회하고 머뭇거리는 선택일지라도 결국엔 어디론가 나아간다. 돌이키는 건 대체로 어려우며 결국에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혹 누군가 내 버튼을 마음대로 누르려고 한다면 짙은 열패감에 휩싸여 원망하게 될 것. 결국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어한다. 마치 가능할 것처럼 도망칠 때도 있지만 결국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소설은 스스로 한 선택에 기꺼이 절망하지 않는 청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기숙 고등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때로는 아버지의 간섭을 피해서 멀리 떨어진 시골의 기숙학교에 온 동창생의 이야긴가 보다 하고 읽으며 방심했다. 그러다 충격적인 반전에 놀랐다. 내 이야기이기도 해서 더 놀랐다. (아니 작가님 이렇게 저를 후려치시깁니까...ㅋㅋㅋ)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누군가 내게 인생에 대해 깨달은 단 한줄을 말하라고 한다면 '부딪치고 깨지지 않으면 절대로 어른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하겠다. 이제 겨우 마흔일 뿐이지만 팔십이 돼서도 여전히 같은 대답일 것 같다. 성숙의 순간은 반드시 파쇄의 과정을 거친다. 얼음이 빛나는 순간은 녹을 때다. 얼음장은 깨지며 빛을 발한다. 마지막 장면들을 위해서 소설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그 장면은 독자를 톡톡히 위로 하기도 한다. 비틀린 순간들을 겪어내고 빛나는 한 때를 맞이하는 것은 비단 어린 학생들만이 아니다. 나는 이 소설을 청소년 소설이 아니라 인생 소설로 읽었다.
물가에 있어 보면 깨진 얼음장이 흘러가다 반짝하고 빛나는 순간이 있어. 돌에 걸리거나 수면이 갑자기 낮아져서 얼음장이 곧추설 때 그래. 그때 햇빛이 반사돼서 빛나는 건데 그 빛이 얼마나 이쁜지 몰라.얼음장이 그런 빛을 내려고 하면 우선 깨져야 하고 돌부리나 굴곡진 길을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하는 거야. 사람 사는 일도 마찬가지야. 인생은 우연으로 시작해서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거야. p.241원문의 사투리를 표준어로 고쳐서 적었습니다
물가에 있어 보면 깨진 얼음장이 흘러가다 반짝하고 빛나는 순간이 있어. 돌에 걸리거나 수면이 갑자기 낮아져서 얼음장이 곧추설 때 그래. 그때 햇빛이 반사돼서 빛나는 건데 그 빛이 얼마나 이쁜지 몰라.
얼음장이 그런 빛을 내려고 하면 우선 깨져야 하고 돌부리나 굴곡진 길을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하는 거야. 사람 사는 일도 마찬가지야. 인생은 우연으로 시작해서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거야.
p.241
원문의 사투리를 표준어로 고쳐서 적었습니다
그러니까 ㅈㅎㄹ 잘 들어. 나는 실수로 너를 가진 게 아니라 우연히 - 뭐 물론 우연이 너무 급하긴 했어- 너를 만나게 됐어.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거야. 그러니까 우리 사랑하면서 살자. (내가 대답하기 전에 어디 좀 가지마) ^_^씨익
오늘 좋은 소설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차례가 안 돌아와서 말은 못했지만) 독자를 움직이게 하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다.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말이 바뀌면 좋은 소설이라고. 질문자는 좋은 소설은 '질문을 많이 한 소설' 이라고 말했다. 작가가 '왜'와 '어떻게'를 던지면서 쓴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고. 이금이 작가님의 소설은 '왜'가 잘 돼 있었다. '어떻게'의 부분은 살짝 비현실적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좋았다. 주인공의 선택이 나의 선택과 비슷해서만은 아니다. 알차게 여물어 갈, 감히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이후의 시간이 기대돼서 좋았다. 행복했다.
소설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 또 한 번 힘을 얻는다.
인생은 우연에서 시작해서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기라 - P241
요즘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기분이 널을 뛴다. 어떨 때는 기쁘고 즐겁다가 어떤 때는 불안의 몸서리가 끝도 없이 치고 또 쳐서 혼자 소설을 썼다가 지웠다가 한다. 참 철이 없다. 본인은 아니라지만 가끔 나를 지갑으로 여기고, 고용된 기사쯤으로 여기고 식당 아줌마 처럼 생각하며 때론 인공지능이길 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님 홍길동이거나. 내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의 것을 들어 주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러면서 못해주는 것만 원망한다. 사춘기라고 넘어가기엔 내가 못견디겠다. 하루에도 열두번 아들을 포기했다가 다시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가 한다. 결핍이 없는 환경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일부러 내가 사라져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기 중심적인데다가 거의 이기적이기까지 한 아들을 (혹은 딸을) 그저 둘 수도 없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기어이 한해가 끝나 간다. 지나간 시간은 희한하게 ‘후회‘라는 옵션을 깔고 들어오지만 나는 깔린 정도가 아니라 뒤덮고 회오리친다. 애를 왜 이렇게 키웠을까. 하지만 흘러간 세월은 돌이키지 못하고 더 큰 후회를 쌓기 전에 사랑이라도 선택하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올 한해를 보냈다. 이금이 작가의 소설집 [벼랑] 속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애처롭다. 각자 다른 삶을 살지만 모두 순조롭지 못한 처지인 건 확실하다. 그들이 겪는 불안과 좌절을 엿보고 있자니 안쓰러우면서도 내심 서글픈 부러움이 생겼다. 동명의 단편 <벼랑>을 제외하고는 인물들이 일련의 시련을 겪으며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 아이들만 성장한 게 아니라 인접한 어른들까지도 말이다.🔖여행을 마음대로 계획할 수 있는 열여덟 살은 처음 보았다.현우의 열여덟 살은 대학을 위해 저당 잡혀 있었다. 현우뿐 아니라 현우가 아는 아이들은 거의 다 그랬다. 열여덟 살은 스무 살로 가는 길목으로써 존재할 뿐이다. p.141<생 레미에서, 희수>를 읽고 있자니 찔린다. 자유분방한 희수를 좋아하면서도 부러워하는 현우의 말인데 내게 계속 맴돈다.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열여덟 살은 대부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다. (희수는 부모가 사고로 죽었고, 은조는 아버지가 죽었고, 민재는 엄마가 유방암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의외로 자기 인생 결정에 진지하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부모는 늘 아이들을 앞서 간다. 마치 대단한 가이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아이들을 위한다면서 몇마디 훈계로 실패할 기회를-더러는 성공할 계기를 주지 않는다. 패배는 자명하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을 멈추고 자기를 잃는다.부모는 그늘이다. 따가운 햇살이 비출 때 열사병에 걸려 쓰러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시원한 그늘. 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햇살 아래서 더위를 견뎌낼 권리가 있다. 쓰러졌다가 일어나서 다시 걸으며 성장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시원한 그늘이 되겠단 포부와 달리 아이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만 지게 하면 어떡하지?힘이 되는 부모가 되어 주고 싶다. 부모 없이 더 잘 헤쳐나가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어딘지 머쓱하다. 정말 소설 속 아이들처럼 부모의 부재가 성장의 원동력일까? 벼랑 끝에 서기야 했겠느냐마는 현실의 아이들도 나름대로 고충을 끌어안고 매일 싸우며 나가는 중이다.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후회가 돌다리처럼 깔려 있더라도 그 길 끝에 서면 좀 더 넓은 마음이 들어차 있을 것이다. 함부로 내가 먼저 걸어주리라 다짐하지 말기, 마음대로 이 엄마가 다 닦아놓았노라 설치지 말기. 그저 아이가 먼저 내민 손만 마주 잡아주기. 한국에서 살아가는 만성 소화 불량 아줌마에게도 푸른색 말🐴이 가슴에 남았다. 다섯 편 모두 좋았다. 근데 대체 왜 청소년 소설을 읽고는 내가 결단을 하게 되는 거야? 2008년에 출간된 책을 2022년에 개정판으로 다시 냈다고 한다. 지난 번 북토크 때 개정판을 왜 내느냐는 물음에 달라진 감수성에 부응하기 위해 잘못된 표현들은 지우고 괜찮은 표현들을 더하는 작업을 한다고 작가님이 대답했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읽으면서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그리고 연작 소설이라서 인물관계 퍼즐 맞추는 것도 꿀잼
모든 노력은 목표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삶 자체에 의해 경로 이탈을 겪는다. 처음과는 다른 성질의 노력으로 변하고, 다른 목적에 쓰이고, 처음에 이루려 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래서 차라리 소박한 목표가 더 가치 있으니, 소박한 목표만이 온전하게 달성되기 때문이다. 만일 재산을 한밑천 모으려고 노력한다면 어떻게든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P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