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어린 왕자 일력
미르북컴퍼니 편집부 지음 / 북엔(BOOK&_)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2021년 어린왕자 일력을 소개합니다
미르북컴퍼니에서 만든 북엔에서
예쁜 일력이 나왔어요!!
(빨간머리앤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우리 어릴 때 집집마다 일력 걸려있었는데
빨간 글씨 검정글씨로 이루어진 얇은 그 종이 아시나요??
추억이 새록새록!!
추억돋는 마음으로 어린왕자 일력을 열어보았어요!!
예쁜 상자를 열어 노란 껍질을 까니 보이는
엄청나게 이쁜 이녀석❤️
종이질도 주툼하니 넘 잘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걸 어찌 뜯죠!??
한장씩 쫘악 뜯어야 맛인데!!
너무 예쁜걸 어떻게 해용!!
뜯은 종이는 박스에 넣어서 보관할 수 있으니 그런 걱정은 노놉!
종이 한장한장마다
날짜 아래에 질문이 있고 줄이 쳐져 있어요
개인적으로 생각해보고 대답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늠 질문들이 매일매일 들어 있어요👍
여러분은 이 곳에 글을 쓰는 동안
몰랐던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거에요!!
너무 근사해요~
다 쓰고나면 저만의 일기장이 될까요,
에세이가 될까요??
수록된 질문 두 가지 답해볼게요
저의 인생 영화는 ....
음....생각해 본적 없는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저는 대화할 때는 듣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는데
상대가 원하는 게 뭔지 파악하고 하는 편이에요

근데 또 수다가 말도 못하기 때문에 조심하려고 하지요!!오늘부턴 아까워도 좀 적어봐야겠어요
뭔가 대답하고 싶어지네용
어린왕자처럼 순수하고 생동감 있게 저의 이야기를 적어볼게요!
여러분도 한 번 적어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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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어린 왕자 일력
미르북컴퍼니 편집부 지음 / 북엔(BOOK&_)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받자마자 너무 예뻐서 도저히 뜯을수가 없었던 어린왕자 일력이다

이 일력이 보통 일력보다 더 근사한 이유는

그림도 너무 예쁘지만 그 아래

질문이 적혀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다 적으면 한 권의 멋진 나만의 에세이가 탄생할 것 같다.

후회없는 1년 알찬 2021년을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일력!!!



세워두면 정말 예쁘다

책상이 환해지는 느낌이랄까

그림도 이쁘지만

글귀도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정말 행복해지는 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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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결정 - 행복하고 존엄한 삶은 내가 결정하는 삶이다 일상인문학 5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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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로 유명한 소설가 페터비에리는 소설가이면서 인문학자인데 그가 2011년 그라츠 아카데미에서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엮어 출간됐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길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존엄성과 행복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없이 본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법적, 도덕적 규범 위에 성립돼 있지만 자립적으로 살면서 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해야 한다. 그 결정에 나의 존엄성과 행복이 훼손되지 않아야 진정한 자기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외부의 압력이 있을 수도 있고, 내게 처한 여러가지 상황과 사회적 규범 때문에 다소 인내의 세월을 살아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을 결정함에 있어서 타인의 눈이나 외부적 시각 때문에 흔들리고 불행한 것과는 달리 독립적으로 살면서 내 내면세계가 갖는 지휘권을 내가 갖는다면 그것은 훌륭한 자기 결정이다.

이 모든 것을 위한 방법으로 페터비에리는 우리가 우리를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릴 줄 알아야 하는데 이 답은 말이나 글로 내릴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함에 있어서 성숙해지고 자립적이 된다고 하는 것은 맹목적인 언어 습관에 촉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각심을 통해 과연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 이를테면 자유, 정의, 애국심, 존엄성, 선과 악 등 중대한 주제를 접했을 때 본능처럼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바로 자기결정적인 삶이라고 한다. 그러니 나만의 생각, 나만의 소신으로 나의 말과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자기 결정인데 그 결정이 도덕적이어야 하며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것이어야 진정한 자기결정인 것 같다.


이런 자기결정을 확장하려면 인식된 경험을 세분화하고 인식되지 못한 것을 의식화 해야 한다. 이런 경험은 문학작품을 통해서 이룰 수도 있다.

인간이 삶을 이끌어 나가는 모습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알게 되면서 사고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단다.


실례로 나도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자기 결정력이 나아진 것을 느꼈다. 나는 남들이 '다독하시네요.' 할만큼 책을 읽은지 이제 5-6년이 되었다. [데미안] 의 싱클레어가 알을 깨고 나오듯이 나 역시 '나' 밖에 몰랐던 삶에서 '주위' 를 둘러보는 삶으로 점점 변하는가 하면, '좋은 게 좋은 것' 으로 대충 살아가던 나의 삶에 행복에 대한 고민삶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가는 보다 열린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 된 것이다. 그것이 독서의 힘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여전히 '나'를 찾는 과정으로 독서와 글쓰기를 이용하고 있다. 물론, 나를 일깨우는 여러가지 책이 있지만 무엇보다 문학작품, 특히 소설에서 나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아마 피터 비에리도 삶을 결정하고 명확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방법으로 문학의 독해와 문학의 창작을 제시하고 있을테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가 쓴 글이 어떤 울림을 가지는지 알아내는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이 울림을 통해서 자신이 얼마나 순수한지 아니면 냉소적인지, 얼마나 감상적인지, 실망스러운지 아니면 분노해 있는지 나타낼 수 있습니다.p.30


나는 지금도 글을 쓰고 있지만 글을 쓰고 싶어한다. 글을 쓰면서 나를 발견한 적은 터무니없이 많다. 그러나 그 글을 남에게도 읽힐 수 있느냐의 문제는 다른 일 같다. 그럼에도 계속 쓰려고 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미완성인 나를 완성해나가는 길이 글이기 때문은 아닐까.

페터 비에리는 자기 결정의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자기 인식을 뽑았지만 이 인식이 타인과도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흔히 자기 결정이라고 하면 '나' 하고만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우리는 타인과 분리해서는 절대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외부의 시선과 관계에 동요한다. 타인이 삶을 많이 차지할수록 자기 결정력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비에리는 타인을 존중하고 그들의 욕구를 배려하되 타인을 타자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기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단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타자와의 관계든 나혼자의 결정이든 '자기 인식'이 선행되어야 이 모든 일이 존엄성과 행복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피터 비에리의 강의록은 솔직히 말하면 좀 어려웠다. 얇은 책이라 얕봤는데 절대 얕지도 가볍지도 않았다. 두번 읽었고, 문장 하나를 여러번 읽은 적도 많았다. 결국 자기 결정이니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타고난 것들을 결정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살아갈 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고 한다.

왜냐면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혼자 살지 않으니 홀로만 즐거워서는 안되고 더불어 살면서 그 안에서 행복을 저당잡히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지 못하고 자기 비하를 하는 가장 첫번째는 타인과의 비교, 외부로부터의 억압이다. 이것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나'를 아는 것부터 해야한다. 나의 행복의 이유 , 삶의 이유, 내가 존엄해야 하는 이유를 먼저 알고나면 타인으로부터 내가 어떻게 내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를 인식하는 것이 잘 안되는 사람은 문학을 읽어라. 그러면 인물들의 세계 속에서 '나'와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글을 써라. 자기가 글을 창조해보면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바를 인식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이뤄지고 나면 타인을 타자로 인식하라. 타자는 내 삶을 흔들 수 없다. 그러면 우리는 존엄을 지키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


내가 이해한 것은 여기까지. 혹자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소외계층이나 소수자들은 자기 결정 자체가 불가능한데 무슨 소리냐고 따질 수도 있겠다.

이 책은 교육보다는 성찰과 관련이 있다. 그래도 그들보다는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먼저 존엄을 회복하고 나아가 타인의 존엄을 위해서도 일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더욱 행복해 질 수 있지 않을까? 누구나 자기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생기도록 보다 자유로운 우리가 더 많은 자의 그것을 위해 애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쨌든 우주의 중심은 '나' 니까. 인류의 행복도 '나'로 부터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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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1-13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결정에 대한 좋은리뷰 잘 보았습니다! 김영하작가님 라이브하기 전에 읽어야지하고 마음만 먹었는데 친절한박선생님의 리뷰보니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네요!ㅎ 즐건 저녁되시구요!
 
루터 - 근대의 문을 연 최후의 중세인 클래식 클라우드 26
이길용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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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리스찬이다. 클래식클라우드에서 루터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눈을 의심했다.

마르틴 루터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목사님이기 때문이다.

놀랐다.

인문학에서 종교를 다룰 땐 그저 역사의 획 수준으로, 제국주의의 도구 정도로 다루기 때문에

명사들의 발걸음을 찾아 떠나는 클래식클라우드에서 성직자 편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거의 선지자 수준으로 종교개혁을 이끈 혁명가 마르틴 루터에 대해서 덜 크리스찬적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을지 염려하면서 읽었다.
마르틴 루터가 태어나기 전 중세 종교계는 썩을 대로 썩어있었다. 요즘 철종 나오는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는데 배경이 되는 세도정치 60년의 세월과 닮아 있었다.



교황을 위시한 성직자들이 권력을 잡고 황제 위에 군림하였다. 교회는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됐다. 민중을 개돼지로 알았으며, 그들이 계몽할까봐 두려워서 어려운 말로 아주 적은 수의 성경을 자기네들끼리 읽었다.

교황과 바티칸의 도덕적 해이는 상식 수준을 넘었다.



게다가 페스트가 번졌다. 장례를 진행해야 하는 성직자들은 자연스럽게 노출이 자주 됐다. 그래서 많이 죽었다. 교황은 성직자를 우후죽순 뽑았고, 사제의 성품이나 실력이 되지 않는 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사치와 향락이 심해져서 교회에서는 면벌부를 팔았고, 성상을 세웠고, 성물이라며 돈을 받게 했다. 돌하르방의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류의 미신을 교회에서 자행하고 있으니 내 생각에 하나님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을 것이다.



그리고 루터가 태어났다. 루터는 자라서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명강사가 되었다. 그러나 자꾸만 파고들수록 신앙생활에 환멸이 있었다. 성서대로 살아야 하는데 교회가 정치하는대로 살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 어딘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이런 신앙은 잘못된 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만들었다. 그 유명한 95개조 논제를!!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성교회 문에 라틴어로 쓰여진 95개의 비판하는 조항이 붙었다.

면벌부 판매를 반대하고 죄와 회개의 문제는 오직 신과 자신만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고 천명하였다.

루터는 이 일이 있은 후 거대 세력의 미움을 샀다. 그러나 그의 용기가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중세의 끝자락에서 근대의 문을 열었다는 말처럼 진짜 그랬다. 때론 두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끝내 옳은 것을 향해 나갈 수 있었다.

칭의와 만인사제주의가 올바른 신앙의 길이라고 믿었다.



그리스도인의 '의' 란 두려움이 아니라 믿음에서 오는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루터는 믿음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읽음' 에서 왔다고 말한다. 성서를 읽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신앙에 대해 깨우칠 수 있었다.

루터는 그 선봉에서 어려운 라틴어 성경을 번역해 독일어로 출간했고, 값을 현저히 낮춰서 누구나 성경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읽으니 앎이 되었고, 앎이 또 행함이 되었다. 이 일에는 구텐베르크 활자의 영향도 컸고, 당시 유럽이 처한 상황도 잘 맞아 떨어졌다.

그 중세의 끝자락을 찾아가는 길에 이길용 교수가 있었다.



저자의 글은 처음 읽어본다. 그런데 문체가 좋다. 술술 읽힌다. 어쩌면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어도 석가의 생애와 관련된 글을 얼마든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러니 논크리스찬이어도 루터의 발자취를 얼마든지 즐겁게 따라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여정은 저자가 친절하게 설명해 두었다.

루터는 성직자이기 전에 선각자였다. 우매한 대중을 일깨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런데 어쩌면 성직자라는 이유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신앙고백서가 아니라 철저히 위인전의 형식을 띄고 있다. 그가 얼마나 많은 고뇌와 번뇌 속에서 결단하였고, 그것이 근대의 문을 여는 대단히 중요한 열쇠가 됐음을 배우지 못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좋은 책이다. 누구나 접할 수 있고, 흥미롭게 다가 갈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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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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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름살의 깊은 골짜기로 산산함 대신 우수가 흐르고, 달라지고 퇴락한 사물들을 잔인하게 드러내던 광채가 사라지면서 사물들과 부드럽게 화해하는 시간,
나도 내 인생의 허무와 다소곳이 화해하고 싶다." p.257

현존하는 작가 중에 이 정도의 문장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2011년에 타계한 박완서 작가는 죽지않고 살아서 그 문장이 읽는 이로 하여금 거부할 수 없는 추억 열차에 탑승하게 하고, 말할 수 없이 놀라운 정서로 흠뻑 젖게 한다.

2000년대 박완서 작가가 본인의 산문집에 실었던 수필 660편 중 35편을 추려 책으로 엮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을 읽어보았다.

이미 노령이었던 작가가 세상을 발견한 여러가지 일화는 아직은 젊은 축에 속하는 내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
몰랐던 친절을 발견하게 되는 일, 오해로 빚어진 아둔함에 대한 반성부터 시작해 보통의 무게,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양가감정, 문학과 작가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 나와의 관계, 신과 본인과의 교통 등을 진솔한 문장으로 정직하게 빚어놓은 산문들을 한 번에 보는 일은 마흔을 바라보는 나에게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었다.

모두가 자기의 피해사실에 목소리를 높일 때 이만하니 나는 좋다며 입을 다물 줄 아는 이에게서 배우는 삶의 철학. 그것이 비단 많이 '알아서' 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

박완서의 문장은 세세히도 아름다웠고, 눈부셨다. 독자인 나는 별다른 노고를 취하지 않고도 그의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손녀 딸과 함께 엎드려 동화책을 보던 해묵은 시절을 문질러 바라보고 있는 노인 작가의 따뜻한 카디건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가 그의 등에 어른거리는 참척의 슬픔에 코끝이 찡했다. 작가가 말한대로 아름다운 것 뒤에는 왜이런 뜻 모를 슬픔이 비추는가.

작가가 가진 정서가 부럽다가도 자식을 잃은 슬픔이 간간이 비칠 때는 너무 가슴 아팠다. 그러나 그것마저 누구나 겪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성품을 지닌 사람, 그전보다 시린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결코 따뜻함을 잃지 않고 숭고한 인간애를 창작할 수 있는 사람이 박완서 작가였다. 사라졌다고는 절대로 말하지 못하겠지만 곁에 있는 것으로 이겨내었다고 말해주니 나 역시 사는동안 비견할 슬픔을 만나거든 곁에 있는 것으로 이겨내보자 다짐해 보기도 했다. 엄마 생각도 났고.

우리는 종종 곁에 있는 것에 대해 염증을 느낀다. 그럴 때 부서지고 깨지기 쉬우니 잠시 떠나있는 것도 답이다. 작가는 여행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관계를 읽었다. 관계에 있어서도 그렇지 않을까. 잠시 모른 척 해주는 일, 친절한 친척집보다 불친절한 여관방이 편한 것처럼.

작가는 또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우연히 잃어버린 여행가방 속 물건들을 함부로 적치한 본인에 대한 혐오가 잃어버리지 않은 것에 대해 좀 더 정리할 필요를 느끼게끔 한다. 곁에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
박완서 작가가 좋아하는 단어는 '넉넉하다' 인데 이유가 남다르니 나도 오늘부터는 '넉넉함' 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감사로 살아보겠다 다짐해봤다. 이거 무슨 신앙고백 같네! 그만큼 좋았던 수필들이 가득하다. (실제로 작가는 크리스찬이니 이점 염두하고 글을 읽으시길)
박완서 작가의 책은 다는 아니어도 많이 읽은 편에 속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단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였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독자 역시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작가는 성공한 거 아닌가?
마흔에 소설가가 되고서야 습작을 시작했다는 이상한(?) 이력의 소유자 박완서 작가. 지금은 물리적으로는 곁에 없지만 내 인생 전반에 있어 가장 존경하는 작가로 여전히 남아 있는 분! (앞으로도 그럴.)
2021년이 되자마자 만나게 된 그녀의 문장들이 느낌이 좋다. 글 우물에 갇혀 남의 글만 탐독하는 나에게 색다른 자극이 되어준 책.
올해는 안 읽어본 작품과 산문들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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