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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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중의 작가라는 비비언고닉의 신작을 티저북으로 받았다. 아마도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일 것 같은데 다 읽은 지금 본 내용이 너무너무 궁금하다.
요즘 나도 고전을 비자발적으로 ‘다시 읽기’하고 있는데 이 책도 작가가 ‘다시 읽기’ 한 책에 대한 내용이래서 기대가 크다. 어떤 책이든 처음 읽을 때와 후에 읽는 간극에 더 많은 경험과 생각의 변화가 쌓이므로 당시의 상태와 공기에 따라 감각 자체가 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고닉은 ‘새로운 감수성’으로 작품에 접근한 것 같다. 본 내용을 읽어봐야 알겠지만 서문만 보고도 고닉이 ‘내밀한 벗’이라고 부르는 그의 인생책을 빨리 알아보고 싶다. 고닉은 독서의 이유를 ‘삶의 압력을 느끼기 위함’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왜 책을 읽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인물을 만나는 게 짜릿해서 라고 종종 말하는데 ’제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기운들에 얽매이고 휘둘리는 주인공을 보려고 읽는다‘ 라고 말하는 고닉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그런 주인공을 통해 나 역시 간접 성장함을 느낀 적이 한 두번이 아님을 상기했다.
아직 완독은 못했지만 [사나운 애착]읽으면서 줄치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았는데 이 책은 서문만 읽고도 아예 내가 썼으면 좋았겠다는 문장이 거의 다였다. 아마 본문을 읽고도 그렇겠지? +_+

🔖위대한 문학은 통합된 실존이라는 업적이 아니라 그 위업을 향해 발버둥 치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각인된 분투의 기록이다.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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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한승혜 외 지음 / 문예출판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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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영 교수님 강연을 듣고 검색하다가 알게 된 책인데 고전을 많이 활용하는 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샀다. 어떤 고전은 읽을 때 여성혐오나 폄하가 너무 심해서 그만 읽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 불편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내가 너무 뾰족한 걸까, 그럼 읽지 마! 라는 말에 따라야 하는 걸까?

불편은 한데 뭐가 어떻게 왜 불편한지 정확히 모르는 작품들도 있다. 어느틈에 나도 모르게, 그 시대엔 어쩔 수 없었어, 지금은 다르잖아 하기도 한다. 그래도 될까?

이러한 물음에 있어 몇 가지 답을 준 게 바로 이 책이다. 명작이어서, 누구나 인생책으로 꼽아서, 수능에 나와서 혹은 삶의 지표를 주기 때문에 소소한 차별쯤은 시대상이라고 치부해도 되는 걸까? 물론 아니다. 그러다보면 명작의 시대가 아닌 지금 벌어지는 차별과 반목들을 , 특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쉽게 '그럴 수도 있지'의 자리에 서야 하는 몇 가지 행태들을 그저 두고 봐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디를 정확하게 꼬집어야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었다. 젖가슴으로 시작해서 젖가슴으로 끝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학적 가치를 배제 할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고민이 됐다. 사람들에게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나는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 그때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을 만났다. 어디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것을 알아내고 짚어내는 게 현대 사회에서 왜 중요한지, 여성 독자로서 어떤 담론을 끌어와야 하는지 좀 더 생각이 깊어졌다. 불편하다고 읽기를 주저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이 도움이 많이 됐다.

다다음번 모임은 [위대한 개츠비]다. 이미 수없이 읽은 작품이다. 그렇지만 다시 읽기 하기로 한다.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 목차에 개츠비가 등장하는 순간, 올 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개츠비가 사랑하는 데이지를 보면서, 개츠비의 순애보에만 초점을 맞췄던 내가 먼저 카프카식 도끼날을 맞은 후에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해야겠다. 이미 [그리스인 조르바]를 하면서 이 책을 추천해 두었다. 회원들이 읽고 오면 좋겠다. ^^

고전을 읽을 때 나는 반드시 '또 읽기'를 권한다. 독서에는 반드시 공기가 있다. 어느 시대 어떤 시간, 어떤 계절에 어떤 마음과 어떤 피로도로 읽는지에 따라 공기의 밀도와 색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또 읽기'는 중요한 독서법이다. 하지만 이젠 '다시 읽기'를 추천해야겠다. 아무 생각없이 서사나 묘사에 취해 즐겁게만 읽었던 작품들을 다른 시각으로 다시 읽어야 한다. 약자에 대한 시선, 여성에 대한 정의, 차별과 병폐와 폭력을 눈감던 규범들을 찾아서 다시 읽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책이 선구자적이라고 생각한다. 곁에 두고 때마다 자세히 들여다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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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곰
메리언 엥겔 지음, 최재원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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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부터 흥미진진했던 책. 메리언 엥겔이라는 사람은 잘 몰랐지만 충격적 울림이라고 후기를 남겼다는 마거릿 애트우드는 알았고, 1대 메리언 엥겔상 수상자 앨리스 먼로도 잘 알았다. 그 밖에 우리나라 작가들도 강력추천했다기에 안 읽을 이유는 없었다. 기회도 좋았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읽고 나서는 몰랐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솔직히 너무 충격적이었다. 혹자는 그것은 사랑이다,고 말했는데 그게 사랑이라고? 싶었다. 글을 읽고 난 후에도 어떠한 서정과 여성주의적 시각과 아름다운 서사, 그 어느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지저분한 욕정이고, 삐뚤어진 자기애였다. 자연과의 합일 뭐 이런 것도 아니고, 사회에서 염증을 느낀 주인공의 자기 위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까놓고 말하면 그냥 엄격한 수간이었다. -_-;;게다가 불륜도 서슴없이....;;;

이것이 자유에의 갈망인가? 이것이 사랑의 다른 모습인가? 사랑의 유형은 저마다 다르니 절대로 잣대를 들이대지 마라? 아니 동물에게도 그래요? 물어봤어요?? 사람이 함부로 그래도 된다고 동물도 동의했나요?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숲속 강가의 오두막, 그 옆에 눈부시게 쏟아지는 대자연 정도만 느끼고 돌아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번 양보해 그가 지난 사랑 혹은 사람들에게 너무 상처 입었고, 그래서 아팠고 속상했고 외로웠다 하더라도 나에겐 그 어떤 것도 진솔한 사랑의 이름으로 들이댈 수 없었고 주인공이 남자였고, 여자곰이었다면 그래도 우리가 이것을 사랑이라고 할지, 그것을 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읽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작가님이 돌아가셔서 못 물어봄 ㅠ)

내가 아직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리언 엥겔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고, 초역이라고 하니 다른 작품도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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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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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지켜내야 하는 건 무겁다. 처음부터 혼자라면 좀 나을까? 줄곧 함께라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어쩌다 혼자가 되고나면 몸서리치게 더 외롭다. 절대 고독을 이기고 내가 지켜야할 세계는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한다. 나는 그런 세계가 있을까? 있다손 치더라도 윤옥처럼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하고.

국어 교사 정윤옥은 뇌병변 장애 동생을 잃은 기억이 있다. 대학 때 운동권 선배를 지켜준 경험이 있고, 교사 초년시절에 촌지를 거절한 경험이 있고,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 학교를 상대로 저항한 적이 있다. 노조에 가입했다가 파면당한 적이 있고, 야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고, 풀뿌리 서점을 운영한 적이 있고, 선배와 제자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아차린 적이 있다. 그리고 수연의 아이를 맡아서 기른 적이 있다.

나이가 든 윤옥을 밀어내려는 학교와 학부모가 있지만 윤옥에겐 돌봐주고 싶은 학생이 있고, 문제가 있는 학생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싶은 열정이 남아 있기도 하다.

이 소설은 국어 교사 정윤옥의 일대기임과 동시에 돌봄과 지킴 사이에서 날카롭고 매몰찬 시대를 견뎌내야 했던 어른의 이야기다. 너무 어려서 지키지 못했던 동생에 대한 죄책감으로 같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시영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윤옥, 젊은 교사시절 지켜주지 못했던 학생 수연에 대한 죄책감으로 지금 만난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정윤옥, 옳음을 향한 수고를 절대 모른 체 하지 않은 교사 정윤옥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정 선생님은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구석이 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정 선생님을 좋아하지 않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라고 나쁜 사람으로 태어났겠어요? 아닙니다. 다들 사느라 그러는 거에요.

p.155

다들 사느라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말은 비단 윤옥을 괴롭히는 빌런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었다. 착한 사람도 어쩔 수 없이, 부지불식간에 부끄러움의 복판으로 내동댕이처진다. 사느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여기, 정윤옥보다 더 큰 죄책감으로 또 다른 삶을 짊어진 윤옥의 엄마가 있다. 나는 정윤옥에게도 그랬지만 그 엄마에게 더욱 마음이 갔다.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없다지만 누가 그 엄마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남편은 가산을 탕진한 채 죽었고, 혼자 기대 앉지도 못하는 뇌병변 아이를 포함해 자식 둘을 건사해야하는 여성가장이 윤옥의 엄마였다. 한 집안의 재난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가혹했다. 사회가 모른 체한 양육과 교육의 문제는 형벌에 가깝다. 하지만 그 엄마는 아이를 찾아냈고 더 큰 참변을 막기 위해 온 힘을 바쳤다. 가슴이 아팠다.

소설은 육십이 된 정윤옥이 차가운 도로에서 오래 방치 돼 1년을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다가 세상을 뜨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작가는 왜 정윤옥의 죽음까지 다루었을까? 무사히 퇴직하고, 상현과 나이들고, 새로운 가족을 안아보도록 그리지 않았을까? 내내 그것이 궁금했다. 독자에게 이미 그녀의 부고를 알리고 거꾸로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 이유가 알고 싶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생각도 났는데 구조는 비슷하지만 이 책은 영 웃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아마도 그것이 현실과 비슷해서일 것이다. 더 나아지는 쪽으로 가길 원하지만 그새 어긋나버리고 마는 인생과 비슷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희망을 보았다. 기어이 승리하고야 마는 정의를 꿈꾸었다. 정윤옥은 홀로 싸우다가 갔지만 따뜻했던 마음이 오래도록 도시 이곳저곳에 머물렀을 거라고 생각했다. 선생들 사이에서는 차갑고 불편했을지 모르지만 학생 곁에 책상을 두고 오래도록 머물렀던 눈길이 아이들에게는 평생 따뜻함으로 남을 거라고 믿었다. 처음 마음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

본 적도 없는 정윤옥에 대한 그리움이 내내 남았다.

누구에게나 지켜야 할 세계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사람을 살리는 세상이어야 한다. 시절에 따라서, '여의'에 따라서 손바닥 뒤집듯 변하는 세계, 개인의 영달을 위해 타인을 죽도록 모른 척하는 세계여서는 안된다. 정훈의 세상은 무너지고 윤옥의 세계가 도래하길. 수연처럼 포기하지 않길, 지호도 숨 쉬는 세상이 오길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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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에 관한 기록
단야 쿠카프카 지음, 최지운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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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살인자에게 서사를 부여 하지 말라지만 이 이야기는 너무 슬펐다. 주인공이자 연쇄살인마였던 안셀이 부모의 학대로 살인마가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아마도 생물학적으로 혹은 뇌과학적으로 사이코패스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 네 살 이전에 동물을 잔혹하게 살해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를 살인자로 몰았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가부장제의 희생양이자 잔혹한 아버지와 유약한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피해자였다.
어쨌든 이 소설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형수가 된 안셀파커를 2인칭으로 불러 현재를 서술하고, 안셀과 관련된 여성의 입장으로 과거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독특한 방식의 소설이다.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로 한 챕터씩 교차하고 현재는 안셀이 사형을 당하기 전으로 시간을 죽이며 흐른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과거의 일은 서술된다.
안셀의 아버지는 살인은 저지르지 않았지만 끔찍하고 잔혹한 가정폭력범이었다. 농장에 가족을 가두고 최소한의 양식만 제공했다. 엄마 라벤더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서 도망친다. 안셀은 가까스로 구조되지만 생후 2개월된 동생은 죽었고 그는 계속 어린아기 울음소리에 시달린다. 버림받은 후유증과 갖고 있던 살해욕구, 어기 울음소리 환청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다가 소녀 셋을 죽였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사건을 쫓는 형사가 9년만에 나타나는데 그건 바로 어릴 때 고아원에서 같이 자란 사프란 싱. 그녀는 안셀이 끔찍하게 죽인 다람쥐와 여우를 봤다는 이유만으로 잔혹한 표적이 되었던 경험이 있다.

더이상의 상세한 설명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하지 않겠지만 이 소설을 놀라운 점은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데 여러 가지로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다는 것과 안셀 이라는 한 남자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한 여러명의 여자가 있었다는 것과 살인자는 이미 감옥에 있는데도 마치 거대한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것처럼 굉장히 긴장되고 긴박하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장르 소설처럼 결과에만 집중해 달려가는 소설이 아니라 서스팬스와 함께 드러나는 소녀들의 이야기가 다 다른 공감을 이끌어 낸다. 처음에는 작가가 남성인가 싶었는데 읽을수록 여성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남성 범죄자의 이야기지만 잘 들여다보면 여성서사가 짙고 구조받지 못한 빈곤에 대한 문제의식이 나타나 있다.

몰입해서 읽을수록 두려운 마음이 더 커졌던 소설이다. 어떻게 이런 전개를 생각했을까 놀랍다.
너무 잔혹한 소용돌이에 읽기 힘든 구간도 있었지만 유의미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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