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덕 성령충만기
이기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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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소설가란 우선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이 탁월해야 한다. 글을 매끄럽게 쓰고, 주제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은 다음 일이다. 서사문학의 본질은 다름 아닌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기호가 이 방면에 있어 누구보다 뛰어난 소설가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까지 두 편의 소설집을 출간한 그의 소설들은 (비록 단편 뿐이지만) 역동적이다.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은 생생한 소설 속 세계는 독자들을 완벽하게 장악한다. 단편은 한 작가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의무적으로 읽게 되는 경향이 강한데, 이기호의 소설은 비록 단편 뿐이지만 소설 읽는 재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이기호의 첫 번 째 소설집이다. 작가의 등단작품 '버니'를 비롯해 개성있는 단편 8편이 실려 있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체로 하자 있는 인물들이다. 고교 중퇴자, 앵벌이, 본드중독자, 광신론자 등. 각기 다른 의미에서 비루한 삶의 언저리에 존재하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어수룩해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한다. 바로 여기에서 무수한 이야깃거리가 나온다. 이기호의 소설에는 수많은 '이시봉'들(최순덕이여도 좋고, 황순녀여도 상관없다)의 어수룩함이 빚어낸 우여곡절들이 때로는 코믹하고 때로는 절실하게 펼쳐진다.

작가의 상상력의 원천은 매우 다양하다. 티비 특종프로에서 다루어졌을 법한 뒤로 걷는 사나이, 뉴스에서 집중 보도되었을 보도방, 본드흡입, 앵벌이 문제, 이제는 아물어져가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까지 이야깃거리를 찾아 낸다. 거기에다 그 소재들을 자신만의 방식대로 독특하게 비틀고 다듬어 낸다. 때로는 기발한 판타지로, 때로는 우매한자가 벌이는 한 편의 촌극으로, 때로는 아이러니한 블랙코미디로 이야기를 완성시킨다.

이기호는 소설작법에 있어 하나의 방식만을 맹렬하게 고집하지 않는다. 소설 한 편을 전부 랩의 가사로 채우는가 하면(버니), 피의자 조서형식으로 꾸미기도 하고(햄릿 포에버), 성경의 의고체 어투를 흉내내어 쓰기도 한다(최순덕 성령충만기). 단지 형식적 실험을 위해서만 이러한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소설에서 이러한 형식의 파괴는 작품의 내용과 긴밀하게 연관을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랩의 가사를 흉내낸 것은 작품 속 인물 버니가 랩밖에는 할 줄 모르는 백치여서이고, 피의자 조서형식으로 꾸며낸 것은 작품의 주인공이 실제로 경찰서에서 조서를 작성하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또 성경의 어투를 흉내낸 것은 주인공이 광신도인 것과 관계가 있다. 이밖에도 이러한 형식적 파괴를 통해서 얻는 효과는 적지 않다. '버니'의 경우 랩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어서인지 활자에 리듬감이 부여되어 청각적인 효과를 거둔다. 성경을 흉내내어 의도적으로 다단편집을 해 놓은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문자가 지시하는 의미 뿐 아니라, 문자의 배열 상태에 따른 시각적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작가의 이러한 시도는 다음 소설집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에서도 꾸준히 이어진다. 이야기 자체 뿐 아니라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를 포함해) 이야기를 이루는 모든 것이 이야기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이기호의 소설을 기존의 소설 형식에 반기를 드는 말장난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소설들은 낯선 형식 속에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 이기호의 소설은 붓가는대로 끄적인 듯 하지만 한 편을 읽고나면 묘하게 질서정연함이 느껴진다. 마구잡이로 확산되는 상상의 나래가 산만하게 흩어지지 않고 결국은 하나의 구심점을 향해 되돌아 오는 느낌을 준다. 표제작인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광신론자 최순덕의 일대기를 성자의 삶에 빗대어 서술하고 있지만, 읽는 이를 숙연하게 만드는 성인의 전기와는 반대로 인물을 통렬하게 풍자하고 있다. '버니'와 '햄릿 포에버', '옆에서 보는 저 고백은' 등에서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을만한 인물들을 비난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적 아이러니가 나타난다. '백미러 사나이', '간첩이 다녀가셨다',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에서는 정치나 권력, 이데올로기에 대한 일종의 알레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번득이는 기발함, 수준 높은 풍자와 유머가 이기호의 모든 작품을 일관적으로 포용하는 특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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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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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더빙된 외화나, 번역된 외국 소설을 볼 때면 자연스럽게 새겨지는 그림이 있다. 항상 '하오' 내지는 '해'로 종결되는 권위적인 말투의 남자 주인공과 '해요'로 끝맺는 고분고분한 말투의 여자 주인공의 모습이다. 이런 모습은 특별히 의식하지 않으면 아무런 부당함도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남성우월의 무의식 속에 얼마나 뿌리 깊게 젖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 이미 여성인권 신장과 사회적 인식의 개선이 발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에 남성우월주의에 타격을 가하는 일은 더 이상 혁신적인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노출된 대중문화 속에서 조차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불공정함이 곳곳에 숨어있다는 것을 아는지?  

오현종은 대중문화 속에서 그동한 누구도 발견해내지 못했던 불공정함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에 당당히 항의하고 있다.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은 첩보영화의 대명사가 된 007시리즈를 경쾌하게 뒤엎는 소설이다. 말하자면 007 영화 속 본드걸의 후일담에 대한  것인데, 영웅적이며 거침없는 007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다가 다음 시리즈에서는 모습을 감추어 버리는 장신구같은 존재인 본드걸들 중 하나를 말한다. 이쯤되면 짐작할 수 있듯이 소설은 007의 마초같은 본성과 그가 걸치는 새로 산 셔츠나 다름없는 본드걸의 위상에 대해 열렬히 항의하고 있다. 이는 곧 우리의 무의식 속에 뿌리내린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이다.

이 소설은 주제와 형식을 포함한 다양한 부분에서 작가의 참신한 시도와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남성우월주의의 산물인 액션스파이영화를 통해 억압된 여성성을 발굴해내는 시도는 참신하다. 게다가 작품 아래 깔려있는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과 무관하게 소설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가볍고 경쾌하다. 액션영화처럼 빠른 전개, 전형적이지만 조금씩 뒤틀린 인물들, 솔직담백한 고백투의 어조 까지. 특히 톡톡 튀는 구어체는 가독성을 높이고 주제를 부각시킨다. 소설 속 화자인 미미는 독자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듯이 자신의 모험담을 독자를 향해 털어 놓는데, 이로 인해 독자는 미미의 시각과 미미의 입장에서 모든 사건을 바라보고 미미의 편에 서서 007을 비난할 수 있게 된다. 남성우월주의에 의해 희생된 아리따운 여주인공이 억울하다며 호소하는데야 마음이 동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는가.

서두에서도 거창하게 털어 놓았듯이 이 책의 본질은 페미니즘 소설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즘 소설로 보기에는 허점 또한 많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비꼼이 나타나지만, 독자적으로 여성 자신의 주체성을 개선시키는 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미미는 자신이 통렬하게 비판을 가하는 007의 뒤를 고스란히 밟는 것으로 자아를 성취했다고 믿는다.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식의 오기에서 비롯된 복수극을 남성의 그늘에서 벗어난 미미의 진정한 자아찾기의 과정으로 보아주기는 힘들다. 진정한 페미니즘이라면 남자와 동등해지려고 하기보다 남성과는 차별화되는 여성으로서의 자각과 주체성을 발견해 나가는 노력이 두드러져야 할 것이다. 차라리 미미가 언니의 갈비집에서 열심히 일한 끝에 갈비굽기의 달인이 되어 보란듯이 성공했다고 하는 편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007의 그림자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 미미의 선택은 이래저래 아쉽다.  

쉽게 읽히는 것에 비하면 큰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는 점도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첩보물이라는 소재 자체가 나에게는 크게 흥미를 끌만한 것이 아닐 뿐더러, 한국적이지 않은 소설 속 세계와 정서가 나와는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반전이라는 것도 독자의 허를 제대로 찌르지 못할 바에야 없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결국 발상의 기발함과 스토리텔링의 신선함을 제외하면 남는 게 없다는 이야기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나 발상의 기발함이야말로 우리 문학에 있어서 더없이 귀중한 재산이다. 무겁고 겉멋만 잔뜩 부린다고 결코 좋은 소설이 될 수는 없다. 평범한 일상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거의 다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마당에, 매우 독창적인 소재가 등장하면 괜히 반갑다. 소설이 이렇게도 쓰여질 수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은 성공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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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녘 백합의 뼈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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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온다 리쿠와의 첫 대면을 위한 작품으로 <황혼녘 백합의 뼈>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은 미즈노 리세 시리즈의 마지막 편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미즈노 리세는 다른 소설에서 이미 활약을 펼친 바 있다. 그러나 <황혼녁 백합의 뼈>는 전작과 그 어떤 긴밀한 연관을 가질 것 같지 않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하나의 이야기이다. 연작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파악해야 좋은 특정 장면이나 상징성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황혼녘 백합의 뼈>는 분명히 하나의 독립적인 플롯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시리즈라는 것에 구애받지 않고 007 시리즈의 최신작을 본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볼 수 있다.

소설은 미즈노 리세라는 신비한 분위기를 지닌 여고생이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백합장이라는 낡은 저택에 머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백합향이 불쾌할 정도로 이상하게 코를 찌르고, 주위의 동물들이 하나 둘씩 죽어나가는 백합장은 주위 사람들이 '마녀의 집'이라 부를 정도로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곳에 사는 인물들 또한 속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미스테리하다. 그들은 모두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가면 속에 어떤 진의를 감추고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누구를 믿어야 할 지 모를 미궁속에서 할머니가 남긴 주피터의 정체와 불길한 사건들의 주모자를 탐색해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소설은 선과 악, 미와 추의 경계를 미묘하게 허물어 버리고 있다. 이야기는 서정적으로 흘러가는 듯 싶다가 한순간 잔혹함을 드러낸다. 서구적인 저택 주변에서 풍기는 백합향은 도가 지나쳐 불쾌감을 자아내고 을씨년스러운 저택에는 그와 어울리지 않는 요정의 존재가 신비하게 감추어져 있다. 그런가하면 인물들의 아름답고 고상한 모습 뒤에는 헛된 욕망과 잔혹한 본성이 감추어져 있다. 아름다움을 추함으로 선량함을 악랄함으로 순식간에 전복시키는 번뜩이는 기교는 감탄할 만하다. 작가는 이처럼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드러내면서 아득하고 비현실적인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황혼녘 백합의 뼈>는 추리소설치고는 무척 풍부한 감성을 담고 있다. 일본의 현대소설이 감성에 지나치게 호소하는 경향이 있어 가볍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감성적이면서 서스펜스를 가미하여 다분히 소녀적 취향의 독서물의 경계를 가볍게 벗어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양한 복선들과 깜짝 놀래키는 반전의 묘미도 있다. 뒤통수를 치는 듯한 놀라운 반전은 그동안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이 책의 반전이라는 것은 크게 놀라운 것이 아닐지는 모른다. 그러나 충분히 허를 찌르는 구석이 있다. 또 그 반전의 내용이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서스펜스의 극한까지 몰고가는 작가의 구성력은 뛰어나다.

그러나 온다 리쿠의 지배적인 특징은 서스펜스나 예상치 못한 반전, 섬세한 필치같은 것에 있지 않다. 두뇌에 호소하는 긴박한 추리물을 잘 쓰는 작가라면 널려 있다. 소녀의 섬세한 감성과 미묘한 감정의 흔들림을 잘 묘사한 소설도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온다 리쿠의 소설에는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그 분위기는 이 한 편의 소설만으로도 충분히 감지된다. 서정적이면서 잔혹한 느낌의 제목과 안개 속과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 묘하지만 매력적인 인물들이 온다 리쿠만의 특별한 색깔을 이루고 있다. 인상적인 일러스트도 소설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한몫한다. 뛰어난 가독성이 대부분 일본 소설의 장점이라면 독서 후 감상이 길게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 단점일 것이다. 그러나 온다 리쿠는 그 독특한 분위기로 인해 쉽게 읽히고 쉽게 잊히는 다른 일본소설과는 달리 제법 오랫동안 인상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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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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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생 작가 김애란은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고루고루 환영받는 작가치고는 아주 젊은 축에 속한다. 장편 소설 한 권 발표하지 못한 작가가 이처럼 인기를 얻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 김애란을 대중에게 각인시킨 것이 바로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이다. <달려라, 아비>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들이 대부분 2004~5년 사이 발표된 것이니 소설을 쓸 당시 작가는 겨우 이십 대 중반에 접어들 때이다. 그럼에도 소설 속에서 세상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몹시 날카롭고 주제 형상화 방법에 있어서도 만만치 않은 내공이 느껴진다. 까놓고 얘기해서 열 권 남짓한 창작집을 낸 중견작가의 최근작보다도 더 느낌이 좋다. 같은 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데서 오는 동질감일 수도 있지만, 김애란은 세대론으로 규정짓기에는 제법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 내고 있다. 20대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국 사회를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달려라, 아비>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의 비루한 일상에서 출발한다. 최고도 최악도 아닌 평범한 인생을 살아 왔으나, 가장 왕성한 활동이 필요한 시기에 사회의 암초에 걸려버린 채 정지되어 버린 삶. 오늘날 이십대를 고스란히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과거 속에 머물러 있는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인물의 삶은 하나같이 비루하지만 지나치게 과장되지도 않았고 지나치게 범속하지도 않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투영되어 있기는 하나 이를 정면으로 문제삼지도 않는다. 다만 사소한 일상에서 포착해 내는 삶의 진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인물들은 별 볼일 없는 일상을 꾸려나간다. 작가는 이들의 일상을 마치 체험에서 우러난 것처럼 핍진하게 묘사한다. 이들이 사는 곳은 서울 한 귀퉁이의 자취방인 경우가 많다. 그 자취방은 반지하이거나 옥탑방, 때로는 1.5층이라는 비정상적인 공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방들은 좁고 음습할 뿐 아니라 더러는 균열이 생겨 무너져 내리기도 한다. 작가는 이런 비루한 생활 환경을 장판 위의 흠집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그러나 그럼에도 바닥까지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달려라, 아비>라는 표제작을 비롯하여, 이 소설집 속에는 아버지의 존재가 여러 차례 변주되어 나타난다. 대부분의 아버지가 가장으로서의 전통적인 권위와 무게를 내려 놓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피임약을 사기 위한 목적으로 밤거리를 질주한다든가, 딸의 자취방에 기식하면서 줄창 티비를 틀어 놓아 딸의 숙면을 방해해한다든가, 복어를 먹고 잠을 자면 죽는다는 식의 황당한 거짓말을 태연하게 늘어놓는 식이다. 주말 저녁에 방영되는 홈드라마의 보수적인 아버지의 모습이기보다 시트콤의 우스꽝스럽고 무능력한 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어 시종 가벼운 웃음을 자아낸다.  

이 같이 책에 실린 대부분의 소설에서 반복되는 화두가 나타나지만, 작품마다 제각각 독특한 개성을 보인다. 아프고 아련한 이야기를 짐짓 유쾌하게 풀어내려간 <달려라, 아비>, <스카이 콩콩>, 현대인의 익명성과 비정함을 잘 드러내는 <나는 편의점에 간다>, <노크하지 않는 집>, 섬세한 심리묘사가 압권인 <그녀가 잠 못드는 이유가 있다>, <영원한 화자> 등 어느 작품 하나 버릴 게 없는 책이다. 특히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기발하고 톡톡튀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이며 환상에 젖게 한다.

김애란의 소설 속에서는 평범한 일상도 특별하게 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 별볼일 없는 생활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발견해내는 힘, 이것이 젊은 작가가 세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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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게 한걸음 - 제1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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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간 붐처럼 2~30대 여성의 일과 사랑 따위를 그린 소위 '칙릿'으로 분류되는 작품들이 각종 장편소설상을 휩쓸며 세상에 나왔다. 이제 막 문단에 첫 발을 들여 놓는 신선한 작가들의 작품이 천편일률적인 색깔을 띄고 있다는 점도 놀랍지만, 그런 작품들이 대부분 고액의 상금과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등장했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그렇게 등장한 대부분의 작품들을 읽어 보았지만 그다지 새롭지도 않고, 별다른 문학성도 발견되지 않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심사위원들이 과찬이 민망한 수준의 작품들도 더러 있었다. '칙릿'이라는 가벼움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너무 평범해서 인터넷 소설을 조금 다듬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그 작가들이 자신의 첫 작품 앞에 달린 버거운 타이틀을 견뎌낼 역량이 있는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쿨하게 한걸음>은 제1회 창비소설상 수상작이다. 이 소설 또한 굳이 분류하자면 칙릿에 해당하지만 나름의 차별화 전략이 보이기는 한다. 무작정 가볍고 경쾌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진지한 성찰이 묻어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이루어 놓은 것 없이 30세가 훌쩍 넘어 버린 미혼 여성 연수의 삶 속에 보잘것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투영되어 있다. 별 것 아닌 이야기를 깊은 공감을 느끼며 읽을 수 있도록 풀어 놓은 글 속에 작가의 치밀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늦은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모색중인 주인공 연수를 비롯해 결혼 후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민경, 늦은 나이에 안정된 앞날을 위해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명희, 분방한 미혼의 삶을 정리하고 결혼이란 안전한 울타리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선영 등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에게서 그 나이의 여성이라면 한번 쯤 고민해봤음직한 문제거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소설은 지나치게 무미건조하다. 공감은 가지만 소설 읽는 묘미는 느껴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별다른 사건도 벌이지 않고 그저 의미없이 등장하여 '나 이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는 의미없이 퇴장한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일인칭 화자인 연수에 의해 소개되기 위해 등장할 뿐 소설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등장인물들 사이에는 별다른 유기적 관련성이 없어서 다만 오늘날 존재할법한 30대 초반 여성들의 모든 사례를 나열하기 위해 작위적으로 설정된 인물인 것 같은 느낌이다. 무려 다섯 명의 친구들을 무더기로 등장시킨 것이 그런 속셈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사건에 관여하기보다 그 나이의 여성상을 대변하기 위해 특정 부분에서만 한 번씩 등장하고 더 이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다섯 명의 친구들은 사실 세 명이어도 상관 없고 두 명이어도 괜찮다. 이야기의 흐름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여동생이나 사촌 자매들도 마찬가지다. 없어도 그만이다. 어느날 갑자기 집에 찾아온 사촌여동생은 사춘기를 심하게 앓는 반항적인 모습으로 등장하더니 그 후로 다시는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인물들이 이런식이다. 한 번 등장하여 '그녀는 이렇게 살고 있다'식의 장광설이 몇 페이지에 걸쳐 나오고 나면 화자는 혼자서 그 인물의 삶의 방식에 대해 역시 장황한 총평을 내리며 자신의 처지와 비교해보는 것이다. 당대 젊은 여성의 세태를 보여준다고 하기에도 소설적 재미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데다가 직접화법이 난무하고 결론마저 화자 스스로 지어 버리니 독자가 할 일이 참으로 없다.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소설적 사건이란 기껏 회사를 그만둔다든지 친구가 취업 실패로 자살한다든지 하는 게 전부다. 별 대단한 사건도 없지만 그나마도 사건이 하나 일어날 때마다 구구절절한 해설이 덧붙는다. 소설은 그런 해설로만 가득 채워져 있다. 30대 여성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결론을 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모든 현상을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통속적인 칙릿 소설이란 오명을 쓰고 싶지 않아 로맨스를 제거한 듯 보이지만, 차라리 로맨스라도 가미되었으면 소설적인 재미라도 있었을 뻔 했다.  

이 소설의 가장 강점은 강력한 공감대의 형성이다. 수상 후 인터뷰에서 작가는 30대 여성들에게 공감가는 내용을 쓰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런 의도라면 120% 성공한 셈이다. 주인공 연수의 독백은 청년 실업에 허덕이는 2~30대의 사고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이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다. 그런데 너무 공감이 가면 오히려 거북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의 경우가 그랬다. 마치 내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 같은 지나친 공감대는 내 속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것 같아 불쾌했다. 대학 도서관의 바뀐 시스템을 보고 느낀 자잘한 감상 조차 말이다. 이처럼 지나친 공감대는 내가 쓴 글이 아님에도 내 일기장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 같은 거북한 느낌을 갖게 한다. 그것이 소설이라는 허구 속에 각색된 채였다면 짐짓 아닌 척 할 수 있겠지만 허구적인 사건이 그다지 벌어지지 않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이다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작가의 첫 작품은 자신이 가장 쓰기 쉬운 소재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쓰기 쉬운 소재는 보통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 소설적 상상력을 간과하기가 쉽다. 소설은 분명 수필이나 여타의 잡문들과 달라야 한다. 경험에서 우러난 진솔한 이야기가 소설적 상상력 속에 적절히 녹아들어 있을 때 더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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