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아카데미>, <새드일루전>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뱀파이어 아카데미 - 내가 선택한 금지된 사랑 뱀파이어 아카데미 시리즈 1
스콜피오 리첼 미드 지음, 전은지 옮김 / 글담노블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머리를 비우고 빠른 속도로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았다. 특별히 장르소설을 가리지는 않지만 장르 소설에도 급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소녀취향의 로맨스물의 냄새를 풍기는 만화체 그림이 떡 하니 그려져 있는 이 책은 표지 부터가 썩 달갑지 않다. 스콜피오 리첼 미드라는 미국 작가가 쓴 뱀파이어 소설 <뱀파이어 아카데미>는 독서라는 활동에 뒤따르는 복잡한 사고 과정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딱 그만큼의 책이다.

뱀파이어 소설이라고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제외하고는 접해본 적이 없지만,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 속에서 꾸준히 변주되어 온 이야기들은 분명히 기억한다. 선과 악, 영원과 단절, 존재와 환상 같은 내용 말이다. 그러나 이 <뱀파이어 아카데미>는 그러한 선이해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뱀파이어'라는 것은 소설 속 세계를 이루는 인물 군단일 뿐, 그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해 들어가는 소재거리는 못 된다. (뱀파이어가 아니라 마법사이거나 초능력자여도 상관 없다.) 인간 세계와는 완전히 단절된 곳에서 펼쳐지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인간과 구별되는 뱀파이어로서의 고민이나 갈등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차라리 기숙학교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다룬 내용에 판타지를 가미한 스토리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 설명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떠올렸다면 정확하다. 조앤 롤링이 마법세계를 새롭게 창조했다면, 리첼 미드는 자신만의 뱀파이어 세계를 창조해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디테일 자체는 분명 <해리포터>에 훨씬 못 미친다. 마법세계 전반에 대한 놀라운 상상력을 펼쳤던 조앤 롤링에 비하면, 리첼 미드가 창조해 낸 새로운 세계는 뱀파이어 간의 세력 구도에 대한 단조롭고 빈약한 묘사에 그친다.

댐퍼, 모로이, 스트리고이는 뱀파이어 세계를 이루는 세 개의 종족이다. 인간과 모로이의 결합으로만 탄생하는 댐퍼는 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어 모로이를 지키는 수호인으로 활동한다. 모로이는 뱀파이어 세력의 중심부를 이루는 귀한 종족으로 마법을 쓸 줄 알지만, 선천적으로 약하다. 스트리고이는 어둠의 길을 걷는 악의 무리로, 모로이나 댐퍼가 누군가를 헤칠 경우 스트리고이로 변한다. 댐퍼인 로즈는 모로이 왕족인 리사의 수호인으로 뱀파이어 아카데미에서 리사와 함께 교육을 받는다. 로즈와 리사는 아카데미 안에서 여러 사건과 얽히게 되고, 그 사건을 해결하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이야기이다. 스트리고이는 댐퍼인 로즈와 모로이인 리사가 맞서야 할 최대의 적으로 그려진다.

<뱀파이어 아카데미>는 판타지의 옷을 입고 있지만 오히려 로맨스에 더 가깝다. 로즈는 같은 댐퍼인 디미트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리사는 모로이인 크리스티안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들의 사랑과 질투, 음모에 대한 이야기가 뱀파이어 아카데미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 중 한 부분을 크게 차지하고 있다. 그 로맨스는 순정만화에서나 그려질 법한 멋진 남녀 간의 운명적인 이끌림과 의도적인 외면 따위로 점철되어 있다. 소녀취향의 로맨스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면 애초에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시리즈를 거듭하는 동안 이들의 사랑에 무수한 장애물이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이 작가가 창조한 판타지의 세계와 작품의 주제에 잘 짜맞추어 풀어 나가길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 너무 못생겼어요."
코믹물에나 어울릴 것 같은 고백 아닌 고백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뜻밖에도 본격 연애물이다. 유쾌하고 발랄하기보다 진지하고 어둡다. 그러나 로맨스의 여주인공으로 '너무 못생긴' 여자를 택했다고 해서 대단한 발상의 전복을 이루어 내었다고 감탄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박민규가 인터넷 연재 소설의 형식으로 발표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결핍'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의 구체적인 화두인 '못생겼다'는 것은 결핍의 한 종류일 뿐이다. 잘생기고 섬세한 '나'에게도, 관조적이면서 여유로운 요한에게도 결핍은 있다. '그녀'의 결핍이 외모에 있다면 '나'의 결핍은 아버지에게 버림당한 아픔에 있고, 요한의 결핍은 뒤틀린 가족관계와 어머니에 대한 연민에 있을 뿐. 그래서 이 소설을 '못 생긴 여자를 사랑한 한 남자의 이야기'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 협소하다. 이 소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기만의 '결핍'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 그 결핍은 다른 무엇으로 채워질 수 있는지에 대한 해답이다.

박민규는 그 해답을 그들 간의 '관계' 속에서 찾고 있다. '내'가 '그녀'에게 느끼는 기묘한 끌림과 요한에게 느끼는 의지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세 사람 간의 유대, 그것이 작품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나'와 '그녀'의 사랑이 아니라. 이들은 '켄터키 치킨'에서 맥주잔을 기울이며 인생에 대해, 사랑에 대해 끊임 없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치유되어 간다. '관계'란 타인의 불완전함을 채워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완벽해 지는 것이다. '나'와 '그녀' 그리고 요한의 관계처럼.

이 책의 제목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라벨이 벨라스케스의 그림 속 왕녀 마르가리타의 모습에 영감을 받아 작곡한 피아노곡의 제목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라벨과 달리 그 '왕녀'가 아닌 못생긴 시녀에 집중한다.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구석진 곳에 서 있는 보잘것 없는 시녀는 곧 저마다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청춘들의 자화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포커스는 결국 저마다 자기만의 삶의 무게를 떠안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으로 옮겨진다. 작품 속 그들이 즐겨 찾던 '켄터키 치킨'의 호프(HOPE)가 그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이 책은 작가가 건네는 결핍된 청춘에 대한 따뜻한 위로인 셈이다.

이러한 연민의 시선을 따라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작가는 말미에 예상치 못한 반전을 마련한다. 얼핏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러한 반전은 라이터스 컷(Writer's cut)을 삽입한 독특한 서사 구조에 의해 드러난다. 라이터스 컷을 읽다보면 소위 '방심하다 당했다'싶은 기분이 드는데, 사실상 여기에서 이 소설의 참된 매력이 드러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올 2010-02-06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하 저, 누군지 알아요?(모른다면 블로그로 들어오삼^^)
캬~ 이 책 누가 추천해줬는지 모르지만 부리님, 읽었네요..^^
요샌 계속 싸이질 했는데 이제 블로그 키워볼까 해요.
우리 이웃해요^^

깐짜나부리 2010-02-06 17:13   좋아요 0 | URL
앗!
 
<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 중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스져춘 외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 작품을 고를 때 작가나 특정 계보를 많이 따지는 편이지만, 유독 중국문학만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무조건 손이 간다. 특별히 중문학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국 문화에 대해 열광하며 추종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중국문학에 유독 눈길이 가는 이유는 중국문학만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특질과의 궁합 때문이라고 해 두자.  

중국은 전통적으로 장편 서사문학이 발달했고, 그와 동일한 토양에 뿌리를 드리운 문학인만큼 현대에도 풍부한 서사를 담은 작품들이 유독 많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중국 문학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탈하고 진솔하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민초들의 삶을 때로는 적나라하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질펀하게 그려 놓는다. 민중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진솔한 육담 속에는 중국 근대사에 대한 예리하고 신랄한 비판이 있는가 하면, 어김 없이 비루한 민초들에 대한 동정과 애정이 스며있다. 관념보다는 주로 생활에 치중하기 때문에 술술 잘 읽히는 것 또한 중국 문학의 매력이다.

현대 중국문학을 전반적인 분위기를 이루는 이러한 특징들은 중국 근대로부터 형성된 것이다. 창비세계문학전집 중국편인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에는 이런 중국 근대문학의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단편들이 실려있다. 중국 근대문학의 시작을 알린 루쉰의 <아Q정전>을 비롯해, 위따푸, 쳔중원, 빠진, 마오뚠, 스져춘, 랑오셔, 띵링의 단편 9편이 실려있다.

아시아 대부분 국가의 근대문학이 그러하듯이 중국의 근대문학 또한 격변의 역사적 상황 속에서 탄생했다. 아편전쟁을 통해 싹트기 시작한 반봉건 의식은 신문화운동, 신해혁명을 거치며 보다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이러한 역사적 위기의식 속에서 루신과 같은 작가는 <아Q정전>, <고향> 등의 작품을 통해 반봉건의 기치를 강하게 내보이고 있다. <아Q정전>은 신해혁명을 배경으로 하여 아Q라고 불리는 한 무지한 백성의 파멸 과정을 그리며 중국인의 노예근성과 혁명의 무용함에 대해 통렬히 풍자한다. 위따푸는 <타락>이란 작품에서 청년들의 내면을 통해 중국인의 민족성의 회복하려는 시도를 보여주는가 하면, 라오셔는 <초승달>이란 작품을 통해 빈곤의 문제를 여성의 시각으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아나키즘을 내걸고 있는 빠진의 <노예의 마음> 또한 중국인의 정신적 전근대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편 쳔충원의 <샤오샤오>같이 역사와 민족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인간의 자연성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도 있으며, 표제작인 스져춘의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처럼 비 내리는 저녁 나절동안 벌어지는 한 남성의 심리를 파헤치면서 도시적 감성을 내비치는 감각적인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도 실려 있다.

중국 근대문학은 서구 문화와의 접촉을 계기로 위기 극복과 반성의 일환으로 촉발되었으나, 전통적으로 장편 서사문학이 발달했던 토양에서 싹튼 중국 문학만의 고유한 특질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근대 문학의 다양한 문예 사조를 망라하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당대 중국의 세태 및 역사 의식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 위화나 쑤퉁, 모옌 등 중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이러한 특질은 변함없이 발견된다. 이들의 작품 간의 영향관계를 추측하며 중국 근대문학의 대표작들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낮의 시선>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낮의 시선
이승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부재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과 달리 인식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식하지 않는다고 해서 부재한다는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 속의 결핍은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표면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결핍이 드러나는 순간, 그것이 모르는 사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이승우의 <한낮의 시선>은 내면의 부재를 깨닫고 그 빈 자리를 찾아 나선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때 아닌 결핵으로 요양을 하고 있는 29세 대학원생인 주인공은 우연히 노교수의 방문을 받게 되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내면 깊숙이 감추어진 아버지의 부재를 인식하게 된다. 그 동안은 인식할 필요가 없었던, 그래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에 대한 최초의 인식은 결핵균과 함께 표면으로 드러난다.

주인공을 둘러싼 두 개의 불완전함-육체적 불완전함과 정신적 불완전함은 서로 다른 두 개의 소설적 장치가 아니라 상호 밀접한 연관을 가진 채 작품 속에 기능한다. 폐병과 함께 아버지의 부재를 인식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불완전한 육체는 내면의 불안을 일깨우는 법이다. 아버지의 부재는 결국 자아의 일부가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며,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여정은 결국 자아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본능에 다름 아니다. 요컨대 문제는 아버지가 아닌 자기 자신인 것이다. 그에게 결핍된 것도, 그가 찾아 나서는 것도 온전한 자기 자신이다. 작품 말미에 주인공은 토혈과 동시에 글로써 자신의 내면 의식을 가열차게 쏟아낸다. 어렵게 찾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하는 것은, 오히려 주인공의 내면을 정화하는 계기가 된다. 일방적인 부정이 아닌 상호 간의 부정이라는 깨달음이 막연한 불안을 잠재우게 된다. 불완전한 부재가 완전한 부재가 됨으로써 주인공의 내면은 오히려 더욱 견고해진다.

이러한 역설은 작품 첫 머리에 인용한 말테의 수기 중 한 문장과도 이어진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이 도시로 모여든다. 하지만 내게는 도리어 죽기 위해 모인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에게 '휴전선에서 가까운 인구 3만의 작은 도시'는 결국 부재를 메우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부재를 분명히 하기 위한 공간인 것이다.

소설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그러하듯 지극히 사색적이고 철학적이다. 작가는 서사보다는 인물의 내면의식에 깊이있게 천착한다. 누구나 내면에 언젠가 한번은 맞닥뜨려야 하는 속사정을 지니고 산다. 그 감추어진 내면의식은 어떠한 계기로든 한번은 분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존재에 대한 증거일 때는 더더욱. 그러나 줄곧 부정하던 자신의 의식을 스스로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작가는 그 과정을 치밀하게 보여주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소설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하루에 한 줄씩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서처럼 작가는 주인공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사고를 단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포착하려는 치밀함을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의 행운을 시샘해 본 적이 있는가. 혹은 누군가가 행운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비카스 스와루프의 소설 <Q&A>는 말한다. 행운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 가는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어느 날 갑자기 십억 루피의 행운을 거머쥐게 된 주인공 람 모하마드 토마스는 그 행운의 대가로 엄청난 고초를 치르게 되고, 자신의 인생 역정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프랑스의 화폐 단위도 모를 정도로 일천한 지식을 가진 빈민촌의 고아 소년이 퀴즈쇼에 우승해서 거액의 상금을 손에 쥐게되기까지 과정 속에는 치열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소설은 빈민가의 한 소년의 인생 역정과 박진감 넘치는 퀴즈쇼를 교차시켜 보여주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사건이 어떻게 맞물려 가는지를 챕터마다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각각의 챕터는 그 자체로 독자적인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낱낱이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퍼즐을 맞추듯이 제자리에 돌려 놓으면 람 모하마드 토마스의 인생을 관통한다.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더라면 단조로운 권선징악의 스토리에 지나지 않았을 지 모른다. 그러나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는 가운데 각각의 장면을 해체시켜 재배열함으로써 역동적인 휴먼드라마로 탈바꿈한다. 비연속적으로 펼쳐지는 삶의 장면들은 오히려 더 큰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은 인도의 다양한 세태를 비추고 있다. 주인공 람은 고아원, 빈민촌 등을 떠돌며 하인이며 엉터리 관광가이드, 웨이터 같은 일로 연명을 하며 살아가는 동안 숱한 역경에 부딪힌다. 그가 거쳐가는 모든 길 위에는 인도의 암울한 사회상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람 모하마드 토마스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것처럼 다양한 문화가 혼재된 인도사회의 모습이 TV 다큐멘터리를 보듯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인도 하층민들의 고된 삶, 곳곳에서 자행되는 크고 작은 범죄의 굴레, 신분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등.

람은 영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 자신의 지식 수준이야 누구보다 자기가 더 잘 알 것이고, 도망자의 신분으로 신분을 감추며 지내던 처지에 퀴즈쇼의 출연에 운명을 건다는 점이 다소 개연성을 떨어뜨리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도는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고, 그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결말에 이르러서는 람의 선택 자체에도 그럴싸한 이유가 부여된다.  

마지막 챕터를 남겨두고 이야기는 쉴새 없이 전복된다. 결말 부분에서는 행운이 얼마나 논리정연한 인과법칙에 따라 찾아오는지, 운명론에 침잠하고 있는 듯한 인물의 내면이 어떻게 전복되는지,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는 아직까지도 얼마나 통쾌하고 멋진지에 대해 작가는 쉴새 없이 증명한다. 그 와중에 우리는 뚜렷한 주제의 핵심에 도달한다. 행운은 과연 값싼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남은 돈으로 사들인 로또복권이 우연히 당첨된 것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일까. 이 소설은 행운조차도 인생의 세세한 결정들이 모여서 이루어 낸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삶의 고비고비마다 어떻게 헤쳐나갈지를 결정한 사람은 결국 람 모하마드 토마스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사족이지만 <Q&A>는 순전히 영화를 보기 위해 읽기 시작한 책이다. 이 소설이 영화의 인기를 등에 업고 보다 많은 인기를 끌게된 면이 없지 않으나, 소설이 주는 감동이 영화보다는 단연 한수 위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영화의 홍보 차원에서 소설이 <슬럼독 밀리어네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재출간되었다. 원작이 오히려 영화에 종속되는 느낌이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일장일단이 있을 터인데, 좀 더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한 매체가 다른 매체를 잠식해버리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 하나의 문학작품은 내용 뿐 아니라 그 제목까지도 치밀한 작가의 의도 하에 만들어진 완결된 하나의 유기체다. 단지 상업적인 술책으로 인해 작가의 의도를 손상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띠지 하나 감는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