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발견>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소한 발견 - 사라져가는 모든 사물에 대한 미소
장현웅.장희엽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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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라는 말에는 그 대상에 최소한의 수긍할 만한 가치가 숨겨져 있다는 말이 포함될 것이다. 가령 명품 핸드백, 최신형 컴퓨터, 자동차 등에 관심이 있다는 말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가 단추, 변기, 옷걸이, 종이컵 따위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대개는 의아해 하거나 실소 할 것이다. 사소한 것은 존재 자체가 홀대 받아 왔던 오랜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명한 김춘수의 시 <꽃>에서 말하는 것 처럼, 그 사물에 대해 관심을 갖는 순간 그 사물은 자신에게 특별해진다. <사소한 발견>은 저자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준 사소한 사물들에 대한 단상을 담고 있다. 단추, 지구본, 가위, 안경, 칫솔, 선풍기, 지우개, 성냥, 열쇠, 알약 등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그래서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수많은 사물들에 얽힌 작은 이야기들을 풀고 있다. 또 그 사물들을 직접 찍은 감각적인 사진을 함께 실어 사진 에세이로 꾸며 놓았다.

잦은 라식수술로 인해 버려져 가는 안경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우리 인생에서 버려지는 수없이 많은 것들을 떠올린다. 또 사라져 가는 모기향을 떠올리며 그 섬세한 디자인에 감탄하기도 하고, 함께 걸어온 긴 추억들 때문에 버리지 못하는 낡은 운동화에 대한 심회를 털어 놓기도 한다. 소포를 감싼 뽁뽁이나 이름을 외우기 힘든 빨간약에 대한 추억 같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도 많다.

이러한 관조적인 시선과 단상들은 새삼 주위의 사물들에 눈을 돌리게 한다. 무심코 놓여 있고, 때로는 그것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리곤 하는 사물들이 우리 주위에는 얼마나 많은가. 그 모든 것은 언젠가 무슨 사정에 의해 내 손을 거쳐 그 곳에 놓여 졌을 것이다. 이 책은 이렇듯 주위의 모든 사물에 대한 사색의 시간을 주고, 나아가 자신의 삶을 관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또 지금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추억의 물건들에 대한 단상들은 옛 추억에 젖게 해준다. 사물이 지닌 지시적인 의미와 실용적인 가치만을 좇고 있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이 책은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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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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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귀가한 사람들이 집집마다 불을 밝히는 시간에 종종걸음 치며 바삐 걸어가는 몇몇 사람들만 남은 거리를 홀로 걸어본 적이 있는가? 임영태의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에서는 그런 텅 빈 거리를 헤매는 듯한 쓸쓸함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순간 문득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줄 것 같은 안도감 또한 느낄 수 있다. 인간이란 타인의 위안이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가.

소설은 지극히 단조로운 일상에서 시작해 몽환적인 세계를 헤매다 다시 일상으로 정착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의 직업은 대필작가다. 남의 인생을 누구보다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직업이다. 그 때문인지 도시를 하염없이 배회하는 그에게는 다른 이들의 인생이 보이기 시작한다. 작품에서는 그것을 죽은 사람이라고 표현 하고 있다. 주인공의 눈에 비친 죽은 사람들은 도시 곳곳을 하염없이 헤매며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무언가를 간절히 찾아 다닌다. 이런 죽은 사람들의 모습은 거리를 배회하는 주인공 자신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산 자나 죽은 자나 모두 그만의 삶의 무게를 지고 있으므로.

소설은 아내를 잃은 한 대필작가의 일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홀로 사는 중년 남자의 일상이란 예상하는 대로 조금은 힘들고 조금은 쓸쓸하다. 작품 전반에 애잔한 슬픔이 감돈다. 그러나 작가는 남자가 느끼는 공허감과 슬픔을 지나치게 부각하지 않고 일상에서 나타나는 허전함으로 이를 대신한다. 도시 곳곳을 헤매며 외로운 영혼들과 대면하고, 기억 곳곳을 배회하며 자신의 삶이 서성거리는 위치가 어디쯤인지 가늠해 본다. 기억 속은 또렷하지 않고 몽환적이다. 때로는 자신의 기억을 타자가 되어 들여다 보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의 기억 속을 탐색하기도 한다. 그의 기억은 후회로 가득 차 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기억들이지만 타인의 영혼과 독특한 교감을 이루어내며 그 안에서 위안을 찾는다.

잔잔한 물결같이 특별한 변화 없는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음에도 작품 전반에 걸쳐 긴장감이 감도는 것이 이 소설만의 장점이다. 많은 사건이 벌어지고 숨가쁘게 전개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작품 전체를 애잔한 슬픔과 공허함이 감싸고 있지만 결코 감정에 매몰되는 법이 없다. 수많은 상징들이 감추어져 있고, 풀릴듯 하면서 풀리지 않는 실마리들이 끊임 없이 흘러 나오며 끝까지 서사의 긴장을 유지한다. 이야기는 기억과 현실을 바삐 오가며 지치고 외로운 삶을 보듬는다. 삶에 지친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잔잔한 위로같은 소설이다.

중앙장편문학상은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을 제1회 수상작으로 선정함으로써 강한 실험 정신과 넘치는 패기보다 삶에 대한 좀 더 깊이 있고 진지한 접근을 선호하는 쪽으로 그 성격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장편 문학상의 트랜드가 '참신한 발상' 혹은 '대중성'으로 확연히 양분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아주 소신 있는 선택인 것 같다. 깊이 있고 진지하면서 삶의 대변이라는 소설의 본연의 역할을 매우 훌륭하게 해내는 작품들이 많이 발굴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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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초콜릿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남자는 초콜릿이다 - 정박미경의 B급 연애 탈출기
정박미경 지음, 문홍진 그림 / 레드박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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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도 메뉴얼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텔레비전을 틀면 채널마다 연애를 화두로 하는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온다. 연애심리를 분석하는 프로는 기본이고, 연애와 관련된 리얼리티 프로그램까지 속출하고 있다. 동성친구 두 명 이상만 모여도 연애에 대한 화제는 빠지는 법이 없다. 누구에게나 연애는 분명 가장 흥미로운 화제이며 오락거리임에 틀림 없다. 연애를 분석적으로 접근하든, 오락적으로 접근하든 연애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정박미경의 B급 연애 탈출기'라는 부제가 붙은 <남자는 초콜릿이다>는 한 여성학자가 쓴 연애 메뉴얼이다. 이 책은 30대 여성이란 뚜렷한 연령층을 겨냥하고 있다. 30대 여성이란 우리 사회에서 '노처녀'라는 특정 그룹으로 분류된다. 노처녀라는 명칭에는 외모나 성격 면에서 문제가 있는 낙오자라는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 결혼을 하지 '못한' 여자든 하지 '않은' 여자든 부정적인 선입견에서 자유로워지기 어렵다. 이 책은 30대의 비혼 여성에게 그런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좀더 당당해질 것을 요구한다.

책에는 7개의 생생한 연애 사례가 나온다. 저자는 실제 사례를 인터뷰 하여 자신의 입장에서 그 연애를 분석한다. 속칭 'B급 연애'로 규정지어진 그들의 연애는 대충 이렇다. 35세까지 처녀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여자가 처녀성을 버리기 위해 택한 연애, 연하남 혹은 제자와의 연애, 여러 남자에게 다리를 걸친 나쁜 여자 스타일의 연애 등. 저자는 이들을 모두 인터뷰 하고 '30대 여성'과 '한국 사회'와 일반적인 '남성성' 혹은 '여성성'이라는 사회가 규정해 놓은 틀들을 분석한다. 그래서 'B급 연애'라고 불리는 이 연애 사례들의 문제점과 원인을 그 속에서 찾으려 한다.

그러나 이 사례들은 어디까지나 누군가의 특수한 경험이다. 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섣불리 일반화 시킬 수 없는 여러 변수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연애가 'B급 연애에 머물게 된 것은 무수한 개별적인 것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무모한 연애와 부적절한 관계마저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잘못된 선입견 탓이라고 못 박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선입견을 부추기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이 책은 연애를 '분석적'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그 시각은 편협하다. '연애'라는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다룰 작정이면 차라리 '오락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나았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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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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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는 <심플 플랜>으로 유명한 스릴러 작가 스콧 스미스가 13년만에 발표한 호러소설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장편소설이지만 플롯은 단조롭고 줄거리는 단 몇 줄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서스펜스는 500페이지가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다.  재미로 시작된 행동이 걷잡을 수 없는 악몽으로 변해갈 때 독자는 이야기가 끌어당기는 힘에 완벽하게 매료된다.

이야기는 멕시코를 여행중인 젊은 미국인 남녀 두 쌍이 그리스인과 독일인 친구를 만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폐허를 찾아가는 것에서 시작한다. 지독하게 더운 멕시코의 날씨와 오래 길들어진 나태함 때문에 이들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다. 폐허를 찾아가는 동안 내내 수상한 기운이 감돌지만, 단 한번도 불가해한 현상과 직면해 보지 못한 현실적이고 모험심 강한 이 젊은 여행객들은 그들의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찾는 목적지로 보이는 한 언덕에 이르렀을 때, 무심하던 마야인들이 무기를 장전한 채 그들을 저지한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실수로 그들은 언덕에 발을 딛게 되고, 이를 계기로 그들을 저지하던 마야인들은 오히려 그들을 언덕 위로 몰아 넣기에 이른다. 언덕 위로 올라 온 여섯 명의 여행객들은 덩굴 밑에서 죽어나간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언덕 주위는 마야인들이 포위하고 있고 언덕 위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출구 없는 막다른 상황에 몰린 주인공들에게 본격적인 공포는 지금부터 시작된다.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밀실 공포물 같은 줄거리는 딱 헐리우드 영화감이지만, 단언컨대 이 작품은 소설로 읽어야 한다. 이 작품의 매력은 스토리텔링이 아닌 인물들의 변화해 가는 심리에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 뿐 아니라, 각각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세세하게 묘사한다. 이들의 내면 모습은 사건을 바라보는 네 개의 시선이 교차되며 때로는 장황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작가는 유일하게 그들의 소재를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리스인들'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이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심리를 더 없이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공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인간을 잠식해 가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이 소설의 무게는 공포를 유발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공포라는 감정 그 자체에 실려있다.

공포의 실체란 무엇인가?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공포를 유발하는 하나의 계기일 뿐, 공포 그 자체는 아니다. 공포는 인간 내면에 숨겨진 수많은 다른 감정들을 통해 드러난다. 강박관념, 질투, 무관심, 의혹, 자책, 절망 같은 내면의 감정들이 곧 공포의 실체다. 그런 것들이 점차 마음을 짓누르기 시작할 때, 그것이 공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폐허>의 공포는 급작스럽게 놀래듯이 찾아오지 않고, 서서히 온몸을 죄듯이 찾아온다.

작가가 묘사하고 있는 인물 각각의 성격과 심리는 공포의 실체를 해명하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 사건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물들의 성격은 곧 이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에이미의 철 없음이나 제프의 책임감, 에릭의 소심함과 스테이시의 나약함이 불러 일으키는 결과를 되새겨 보라. 이들의 운명은 결국 그들이 자초한 모든 것에 대한 결과임을 알게 될 것이다. 수준급의 심리 묘사 못지 않게 이를 줄거리에 교묘하게 짜맞추는 능숙한 솜씨는 <폐허>를 최고의 호러소설이라는 찬사에 어울리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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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물고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4월의 물고기
권지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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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 활자보다는 영상에 더 어울리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기욤 뮈소의 작품들이 그러했고, 다수의 일본소설과 장르소설들이 그러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재미는 있을지 모르나 활자 읽는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없다. 활자로 표현되는 내용은 보다 이지적이고 세밀하고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남녀의 사랑과 같은 이제는 한물 간 통속적인 이야기라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남녀의 운명적 사랑 이야기를 다루면서 보다 세밀하고 이지적으로 풀어낸 소설은 얼마든지 있다.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로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나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가 내게는 그런 작품들이다.

권지예의 신작 <4월의 물고기>는 두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린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사랑은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남녀 주인공은 예외 없이 아름답고 고독하며 마음 깊이 아픔을 안고 사는 인물이며, 우연한 만남을 통해 운명과도 같은 떨림을 느낀다. 서인과 선우가 만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작품 초반은 이처럼 특별할 것도 없이 흘러간다. 이러한 사랑 이야기는 갤러리, 카페, 펜션, 시나몬 파우더와 같이 90년대 초반에나 먹히던 도시적 감수성과 버무려져, 입맛에 맞지도 않는 에스프레소를 뽐내며 마셔야 할 때처럼 썩 유쾌하지 못한 기분에 젖게한다. 잔뜩 멋부린 흔적이 드러나지만 활자보다는 감각적인 영상미로 표현해 내는 편이 훨씬 좋았을 그런 기교로 가득 차 있다.

운명적인 이끌림이라는 케케묵은 주제를 들고와 통속적이지 않게 풀어내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다. 권지예는 이를 위해 소설에 스릴러를 가미하는 색다른 시도를 보여준다. 남녀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단조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았던 소설은 중반을 넘어가면서 묘한 긴장감에 휩싸인다. 주위에서 벌어지는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사랑의 방해물로 등장하고, 이해하지 못할 선우의 행동들이 숱한 수수께끼를 남기는 것이다. 이 수수께끼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분명 흥미진진하고 몰입이 쉽다. 그러나 정통 스릴러 수준의 서스펜스를 기대했다가는 결말에 이르러 실망하기 십상이다.

<4월의 물고기>는 연애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통속적이고 스릴러로 보기에는 너무 뻔하다. 이 소설에 대해 가능한 최대의 찬사는 '흡인력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런데 그 흡인력의 정체가 조금 다르다. 독자들의 뻔한 추측을 보란듯이 뒤엎는 작가의 멋진 한방을 기대하는 마음에서 오는 그런 흡인력이다. 너무 일찍 드러나 버리는 실마리가 혹시나 트릭이 아닐까 기대하는 마음이 책장 넘기는 속도를 더해준다. 그러나 아쉽게도 결말은 이러한 기대를 좌절시킨다. 소설의 중반에서부터 이미 누구나 예측 가능한 실마리를 던져주더니 그 실마리는 전복되는 법 없이 마무리된다. 작품 후반에 이르러서는 그간 깔아두었던 복선을 주워담기에 급급하여, 띄엄 띄엄 떨어진 사건들이 억지로 의미를 부여받고 허겁지겁 마무리된다. 서인과 선우의 시각이 교차되며 일관성 있게 진행되던 초점화 방식도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흐트러져 버린다. 무언가 다른 효과를 노렸다기보다 작가 스스로 선택한 초점화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을 읽는 재미는 여러 차원에서 나온다. '영화로 만들면 더 좋을텐데'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작품은 다시 말해 '소설적'재미를 완벽하게 구현하지 못한 작품이라는 말이다. 이야기라는 측면에서는 소설과 영화가 다르지 않지만, 그것을 표현해내는 방식에 있어서는 분명 차이가 있어야 한다. <4월의 물고기>는 스릴러에서 맛볼 수 있는 재미치고는 끝까지 미적지근하고 연애소설로 보기에는 작품이 기대고 있는 정서가 지나치게 감상적이다. 서술방식 또한 화끈거릴 정도로 감상적인 수사로 가득차 있다. 독창적인 수사는 기대하지 않지만 '숨은 소설제목 찾기'도 아니고 형용사 대신 갖다 쓴 소설제목들이 얼마나 많은지 청소년기 습작 소설의 문체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러나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획득하는 데는 성공했고 세련된 영상미를 갖추고 있음은 분명하다. 연애를 풀어나가는 구태의연한 발상이나 다소 김빠지는 서스펜스지만 영상화되어 보다 감각적으로 표현된다면 꽤 볼만한 작품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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