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여행 - 다르게 시작하고픈 욕망
한지은 지음 / 청어람장서가(장서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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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만큼이나 내외적 변화로 혼돈스러운 시기가 있다면 '서른 즈음'일 것이다. 제도화된 교육 하에 천편일률적인 길을 걸어왔던 또래들이 비로소 각각의 다른 길을 향해 분산되어 가는 시기이며, 결혼과 자아 실현의 중대 과업 사이에서 조화와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비로소 나이에 대한 압박이 느껴질 때이므로 30이라는 숫자는 사람의 일생에서 여러모로 중요하다. 

<서른 여행>은 특별한 서른을 맞이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대한민국의 한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다. 서른을 앞두고 있던 차에 반복되는 일상에서 삶의 의미마저 희미해져 갈 때, 작가는 용기있게 사표를 던진다. 이 충동적인 행동으로 행복의 가치를 깨닫게 되고 지금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있다는 작가는 8개월 간의 긴 여행 체험과 여행지에서의 단상과 깨달음을 조심스럽게 풀어 놓는다.

이 책은 '서른을 맞이하기 위한 여행'이라는 점에서 특별하지만 평범하고 친숙한 이야기에 가깝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여행하는 인도와 동남아라는 여행지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행지에서 겪는 일들도 대체로 누구나 겪을 법한 여행의 체험이다. 여행지가 독특하거나, 작가의 개성이 유난하다거나, 그도 아니면 책의 구성이 독특한 소위 '튀는' 여행기들 속에서 꽤 조신하게 섞여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튀지 않음이 공감의 폭을 더 넓혀 준다. 

대부분의 여행기의 시작이 그렇듯 여행의 시작은 일상에 대한 환멸에서 시작된다.이는 일상에서의 도피로 이어지고 여행 중 겪는 갖은 사건 사고들은 삶에 대한 깨달음의 지침이 된다. 이는 지극히 상투적이지만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또 상당 부분 공감할 만한 것이다. 여행의 체험은 각기 다르지만 그 효용에 대해서는 누구나 수긍할 만큼의 보편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책은 주요 여정과 여행지에서의 핵심적인 체험의 서술에 치중하고 있다. 여행자에게 흔히 벌어지는 돌발적인 상황이라든지, 여행지에서 만났다 헤어지는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지역과 지역을 이동하는 동안 일어났던 이야기들 중의 상당부분은 생략이 된 것 같아 아쉽다. 이를테면, 다르질링에 있던 작가가 다음 순간 바라나시로 이동해 있는데, 바라나시로의 이동을 결정하게 만든 고민의 과정들이 생략되어 있어 두 번째 찾은 바라나시에 대한 경험은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읽다 보면 일행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데, 어떤 경로로 일행을 만나고 헤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어 여행의 체험이 추상적으로 느껴지기 쉽다. 한정된 지면에 개인적 체험과 보편적 체험 사이의 절절한 균형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지만, 여행기의 생생함이 다소 줄어들어 아쉬운 감이 있다. 인도-네팔-태국-캄보디아-베트남-라오스로 이어지는 긴 여정을 고스란히 다 담기에 책 한 권은 부족하지 않을까.  

여행 에세이를 찾다보면 의외로 산문이 중심이 되는 진솔한 여행기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메끈하게 잘 찍힌 사진과 책 자체의 비주얼에만 신경을 쓴 듯한 책들은 오히려 여행지의 생생함을 반감시킨다. 긴 여행에 비해 다소 짧은 내용이 아쉽지만, <서른 여행>은 최근 보기 드문 진지한 산문 여행 에세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책이다. 서른 맞이 여행이라는 의미 부여는 중요하지 않다. 일상의 반복에 지친 한 젊은이의 용기 있는 결정에 대해 느끼는 대리만족으로도 책은 충분히 재미있다. 물론 시간과 돈과 열정이 최소한이나마 뒷받침 되었어야 가능했을 일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누구나 꿈꿔봄직한 일에 대한 용기있는 실천이다. 그래서 이 책은 서른 즈음이라는 상황적 특수성이 아니라, 특별한 결정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을 유발한다는 점에서도 잘 쓰여진 여행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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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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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면서 맹목적이고 순수한 감정일진대, 언제부터인가 통속적이라는 오명을 쓴 채 보다 고차적이고 수준 높은(?) 주제 뒤켠으로 물러나 있다. 최근에는 소위 순문학이라고 칭해지는 작품들 중 '사랑'이라는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시간을 거슬러가면 사정이 다르다. 과거 셰익스피어를 비롯해, 괴테, 빅토르 위고, 제인 오스틴 등 수많은 작가들이 사랑의 본질적 순수함에 대해 이야기해 왔고, 이들 작품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감정은 시공을 초월한 힘을 가졌다는 말일 것이다.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은 한 남자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이다. 그것도 삼각관계, 불륜, 집착으로 점철된 사랑 이야기다. 이쯤되면 지극히 통속적이라는 오명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 모든 것들을 '순수'라는 범주 속에 묶는다. 이는 작가가 문학 분야의 가장 권위적인 상으로 여겨지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라는 데서 오는 당당함 때문만은 아니다. 이 사랑이 순수한 이유는 내외적 조건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 흔들림 없는 사랑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사랑이라는 감정을 밑바닥까지 탈탈 털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사랑을 위해 인생을 모두 건 남자의 이야기다. 1970년대 터키 상류층 사회에 단단히 자리잡은 30세 남성 케말은 완벽한 여자와의 약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재회한 어린 친척 퓌순과 강렬한 사랑에 빠지고 만다. 모든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만나는 완벽한 약혼녀와 주저 없는 열정을 분출할 수 있는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던 케말은, 예정된 대로 약혼식을 올리게 되고 약혼식 이후 퓌순은 케말에게서 모습을 감춰버린다. 이후 떠나버린 퓌순의 빈 자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표류하는 케말의 처절한 고독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케말의 지극한 사랑에 대한 묘사는 퓌순이 떠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작가는 일체의 제약을 벗어던진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더없이 치밀하게 묘사해낸다.

작가는 소설이라는 하나의 독서물을 교묘하게 박물관으로 둔갑시킨다. 한 남자의 사랑에 대한 긴 토로를 읽는 독자는 어느 순간 그 사랑이 거쳐온 모든 기록이 전시된 박물관을 관람하는 관람객이 된다. 소설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케말은 사랑의 환희, 고통, 상흔까지도 박물관에 진열한다. 퓌순의 입술이 닿았던 물건, 그녀의 손이 스친 물건, 그녀가 스쳐지나간 모든 흔적들은 케말이 품어왔던 극진한 사랑의 구체적인 형상들이다. 진열된 물건들은 평생 지속되어 온 한 여자를 향한 사랑의 흔적들을 '순수'라는 이름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 전시물에서 단순히 사랑의 흔적만이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 중반, 변화의 흐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당시 터키인들의 머뭇거림을 볼 수 있다.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성과 결혼에 대한 풍속도에는 당시 터키사회가 겪었던 문화적 혼란이 내재되어 있다.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곤 하지만 그 적나라한 길이가 여전히 불편한 사회, 자유연애를 인정하면서도 혼전 관계에 대해서는 완전히 너그럽지 못한 사회, 이런 터키인들의 이중적 시선 속에서 순수한 사랑이 용인되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작가는 치밀하게 그려낸다. 서구사회에 대한 동경과 이슬람 사회의 전통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겪는 터키 상류층들의 아노미는 케말의 맹목적인 사랑의 감정과 대비되며, 순수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완성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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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 지음, 문세원 옮김 / 양철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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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소설 속의 어른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좋은 영향을 미치거나, 나쁜 영향을 미치거나. 물론 이 도식적인 분류가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들의 세상에서 어른은 어떤 의미로든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1982년생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신진 작가 크레이그 실버가 쓴 성장소설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Jasper Jones)>에서도 실상 문제는 '어른들'이다. 이 책은 아이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어른들의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거부하는지를 그리며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1960년대 오스트레일리아의 작은 탄광 마을, 짧은 여름 동안 일어난 사건을 그리고 있다. 찰리, 재스퍼, 제프리, 일라이저 등 네 명의 소년 소녀에게 일어난 일들은 한 여름의 추억이 대개 그렇듯이 달콤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잔혹하다. 이야기는 찰리가 우연히 방문한 재스퍼를 따라가 재스퍼의 연인이었던 로라의 시체를 수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른 찰리에게 그 여름은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죽이 잘 맞는 친구인 제프리와 첫사랑 소녀 일라이저의 존재가 가져다 주는 위안도 일시적이다. 아이들은 로라를 죽이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공포와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처럼 소설은 로라의 죽음을 맨 앞에 배치하면서 그 죽음에 대한 원인을 찾아 가는 추리적 기법을 따른다. 그러나 본질은 로라의 죽음과 범인을 밝혀나가는 미스테리에 있지 않다. 바로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다양한 문제의식, 거기에 있다. 아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 어른들에게는 문제아에 지나지 않은 재스퍼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문제는 정작 재스퍼가 아닌 어른들이다. 다시 말해 소설은 아이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오히려 잔혹한 어른들의 세계를 더 집중적으로 내비춘다. 이기적인 어른들의 세계가 아이들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소설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호주의 뿌리 깊은 백호주의를 비롯해서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각종 편견들을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그려낸다. 이기적인 어른의 세계가 만들어 낸 이런 상처들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견뎌내려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삶의 진실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재스퍼에 대한 편견은 어른들의 자기 중심적 사고를 극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소설 말미에 재스퍼가 사라진 사실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자 비로소 재스퍼의 존재에 대해 자각하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을 통해 오래된 편견과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미성숙함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고 있다. 어른들의 이러한 편견 어린 시선을 정확히 꿰뚫어 본 재스퍼의 통찰은 오히려 그가 결국은 자기만의 틀에 갇혀 있는 보수적인 어른들에 비해 훨씬 성숙해 있음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어른의 편견어린 시선을 고스란히 따르는 듯하다. 잭 라이어넬에 대한 왜곡된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 유년은 얼마나 영향받기 쉬운가. 그러나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마주한다. 결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른들에 의해 영향받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만큼 유연하게 사고한다. 찰리와 제프리의 끝없는 재담은 세계를 보는 아이들만의 독특한 사유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두 명의 친구는 사랑과 우정 미래와 꿈 등에 대해 끊임없이 늘어 놓는다. 이 재담을 따라가다 보면 삶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과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대한 무언의 빈정거림을 들을 수 있다.

이 소설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에 바치는 오마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어른들의 냉혹한 세계에 대한 고발이라는 주제면에서 <앵무새 죽이기>와 통할지 모르나, 대부분의 모티프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혹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빚지고 있는 느낌이다. 한 여름날 벌어지는 미스테리하고 동화 같은 모험이 미시시피 강을 배경으로 소년들 간의 우정과 낭만을 그린 위의 작품들과 유사한 분위기를 준다. 특히 재스퍼 존스는 허클베리 핀의 완벽한 화신으로 보인다. 작가 스스로도 작품 속에서 찰리 아버지의 입을 통해 마크 트웨인에 대한 찬사를 그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영향관계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 소설은 결코 마크 트웨인의 낭만적인 동화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만신창이가 된 로라의 영혼과 육신은 구원할 길이 없는 채로 묻혀진다. 결국 성장통을 달래 주어야 할 어른의 부재가 이 소설을 더욱 신랄하고 냉혹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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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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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유리를 통해 내다보는 현상은 몽환적이면서 아름답다. 설령 그 바깥에 있는 것이 악취가 풍기는 쓰레기 더미라고 해도 말이다. 문학 작품에서 이런 간유리의 반투명성은 현실을 색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황홀한 언어의 향연과 서정성이 현실의 비정함을 여과하여 비춰준다. 그런데 반투명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이 현상들은 독자의 상상 속에서 더 지독한 고통으로 탄생한다.

1944년 소련의 공격을 받은 루마니아는 나치 독일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고, 루마니아에 거주하던 독일인들을 소련의 강제 수용소로 넘긴다. 나치에 의해 파괴된 소련의 재건을 위한다는 명목이다. 명목이야 어찌되었든 많은 죄없는 사람들이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용소로 추방된다. 참혹한 역사의 한 장면이다. 직접 이 불합리한 추방을 겪지는 않았지만 헤르타 뮐러는 한 시인을 통해 수용소 삶에 대한 생생한 체험을 전해듣고 소설을 쓰기에 이른다. 날카로운 펜 끝으로 고발하는 참혹한 현실은 뜻밖에도 몹시 서정적이다. 비극적인 역사가 생생하고 구체적인 언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유미적이고 압축적인 언어로 묘사된 까닭이다. 서사는 간결하지만 그것을 묘사해내는 언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서정적이다.

그러나 작가는 이 황홀한 언어로 독자를 기만한다. '숨그네, 배고픈 천사, 빵의 법정, 양철키스'와 같은 아름다운 조어(造語)들이 안내하는 곳은 지독한 허기와 고독에 잠긴 비극적인 현실 속이다. 마음껏 언어의 향연에 취해있는 사이 현실의 비참함이 가슴을 먹먹하게 쳐올린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처럼 극한의 고통 속에서 보는 아름다운 환각을 연상케한다. 성냥불이 꺼지는 순간 참혹한 현실은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절묘한 대위법은 수용소의 현실을 하나의 심상 안에 가두어 두지 않으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수용소의 비정함을 고발한다.

반복되는 '배고픈 천사'의 공식 속에서 끊임없이 '심장삽'을 움직이는 수용소의 생활들. 여분의 옷 한벌과 그가 숨겨 놓은 빵 한 조각의 의미만을 갖는 죽은 사람들. 수용소로 추방당한 17세 소년 레오는 최소한의 존엄조차 사라진 이러한 수용소 내부의 풍경 앞에 담담하다. 그는 자신이 닥친 상황 앞에서 울부짖거나 부당함을 토로하지 않는다. 대신에 당시에 사용하던 사물들 속에 깃든 수용소의 기억들을 실을 풀어내듯이 끄집어낸다. 명아주와 시멘트, 슬래그벽돌, 실크스카프 등의 사물에 깃든 레오의 기억은 상황의 처절함을 오히려 담담하게 비춰준다.

소설은 아름다운 언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묘하게 사실적이고 생생하다. 고통은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굴복해버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더 생생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주운 돈으로 사먹은 음식들을 몽땅 게워낸 뒤, 식당에 아직 양배추 수프가 남았을까 걱정하는 레오의 모습은 비극의 또렷한 이미지를 새긴다. 어느새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나약한 인간의 모습에서 좌절보다 더 깊은 충격을 받게 된다. 한밤에 불시에 불려나갈 때나, 문득 다른 일자리에 배정을 받을 때면 언제나 총살 당할 두려움에 떨면서도 이들은 어느덧 허기와 익숙함의 노예가 되어 늘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배고픈 천사'의 품으로.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던 '뼈와 가죽의 시간'이 끝난 뒤, 갈망하던 세계조차 사라질 때 비극은 심화된다. '너는 돌아올 거야'란 할머니의 말을 주문처럼 가슴에 새기며 버텨왔던 세월의 끝에, 레오는 그 '돌아옴'의 의미조차 상실해버린다. 수용소의 시간과 수용소 밖의 시간은 그 질량이 다르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수용소 안의 시간이 멈추어어있는 동안 밖의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5년 만의 생환에도 불구하고,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레오가 끝없이 수용소의 삶을 그리워하도록 만든다.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는 고통의 세월,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할 고통의 세월을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이들은 결국 수용소에서 함께 지내왔던 동료들 뿐이라는 사실은 고통의 종결조차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여러 편의 수필을 모아 놓은 것 같이 관조적인 서술에 의존한 각각의 이야기들은 수용소의 비참한 삶을 관통한다. 비참함은 구체적이기보다 상징적이다. 50년도 더 된 시절의 동유럽에서 일어난 이 비극적인 사건이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공감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구체적인 역사적 공간이기보다 비참함이 형상화된 상징적인 공간에서의 일처럼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숨결을 그네뛰게 하는 <숨그네>는 제목 그대로 독자들의 호흡을 뒤흔든다. 사물을 향해 내뱉는 참신한 비유와 같은 낯설게 하기, 처참한 상황 속에 내던져진 나약한 인간들의 실존, 무한한 서정으로 가득찬 상처받은 주인공의 내면.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 책은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경지를 내보인다. 책장을 덮는 순간 깊은 꿈에서 깨어난 듯한 '몽롱한 각성상태'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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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 2010-08-06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문학동네 편집부의 고우리입니다.

이번에 제작하는 소책자 <헤르타 뮐러 스페셜북>에 독자님의 리뷰 일부를 게재하고 싶어 사용 허가 요청 드립니다. ^^ 보시는 대로 답글 또는 메일kupsch@naver.com로 허락 여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용하려는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날카로운 펜 끝으로 고발하는 참혹한 현실은 뜻밖에도 몹시 서정적이다. 비극적인 역사가 생생하고 구체적인 언어를 통해서가 아니라 유미적이고 압축적인 언어로 묘사된 까닭이다.


고맙습니다.


깐짜나부리 2010-08-06 12:51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제 서평의 일부지만 실어주신다면 저에겐 영광이죠^^
사용하셔도 됩니다.^^
헤르타뮐러 스페셜북 소책자가 다시 제작되는건가요?
이전의 소책자도 알찬 내용이 많았었는데, 새 책도 궁금하네요^^

문학동네 2010-08-09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깐짜나부리님 ^^ 감사합니다!!
이번에 헤르타 뮐러의 <마음짐승>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가 출간되면서 스페셜북도 이른바 '개정판'이 출간됩니다. 책 좋아하시는 분이면 쉽게 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젊은 날의 깨달음>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젊은 날의 깨달음 - 하버드에서의 출가 그 후 10년
혜민 (慧敏) 지음 / 클리어마인드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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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에서의 출가 그후 10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혜민 스님의 에세이 <젊은 날의 깨달음>은 종교서적이 아니다. '하버드'와 '출가'라는 이질적인 단어와 성당 안에서 찍은 젊은 스님의 사진은 무언가 부조화스럽다. 이 책은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종교나 교육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종교니 교육이니 하는 문제를 모두 포괄하여 살아가는 법에 대해 깨달은 점을 알려주고 있다.  

저자인 혜민스님은 버클리 유학시절 우연히 만난 티벳 승려의 영향으로 종교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하버드에서 종교학 석사과정을 공부하는 중에 출가하여 승려가 된다. 이후에도 오랜 유학생활을 거쳐 미국의 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 책은 이러한 저자의 인생 역정을 그려낸 책도 아니다. 이러한 인생을 걸어가는 동안 깨달은 모든 것에 대한 기록이다. 그 기록들은 거창하지 않고, 우리의 삶에 직접적으로 닿아있다. 한국인의 교육관에 대한 따끔한 비판, 명품에 집착하는 풍조에 대한 질책, 행복에 대한 사색들, 심지어는 자신이 터득한 외국어 공부법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어 있다. 몇 가지의 주제로 엮은 여러편의 글을 통해 사회현상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드러내기도 하고, 사물에 대한 관조적 시선을 내비치기도 한다.   

책 제목에 '하버드'를 내세우는 책들이라면 대개 하버드 입성을 위한 가치있고 실용적인 조언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저자의 성공적인 유학경력과 미국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 까지의 길을 성공담의 형식으로 풀어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이다.    

모든 글이 하나의 통일된 주제를 향해 집약되지는 않지만, 글들은 한결같이 세상과 자신의 삶에 대한 조언으로 보인다. 불자들을 향한 깨우침에 치닫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종교, 교육, 모든 사물들과 사회현상은 결국 인간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것들이다. 스님은 결국 자신의 인생역정을 통해 온 모든 것에서 삶의 가치와 깨달음을 발견해 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모든 것의 경계를 허무는 '삶' 그 자체에 대한 깨달음에 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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