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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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스러웠다.

책을 읽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인간의 일반적인 감정을 갖고 있지 않아서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고 사회의 이질적인 존재이면서,
편의점에서만 자신의 존재 의미와 역할을 찾는 주인공에 관한
짧고 단순한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일본 사회가 많이 병적이구나 하는 것과
또 하나는 일본 문학의 깊이가 많이 부족하구나 하는 거였다.

타인과 공감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감정과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이 되었다.
주인공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나도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위화감과 이질감을 많이 느껴 왔으니까.

그렇지만 주인공을 대하는 사람들의 과도한 배척과
그에 대처하는 주인공의 자세는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책에 나오는 모든 이들은
획일적이지 않은 주인공의 삶을 불량이나 고장으로 취급하고
정상으로 돌아오기를 강요한다.
그게 너무 지나치다.

소설이라서 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이 문학상까지 받은 것을 생각하면
이 책의 내용이 터무니없는 과장은 아닐 것 같다.
어느 정도 현실성이 담보되었을 것 같다.

정말 그렇다면 일본 사회는 매우 병든 사회일 것 같다.
개인의 자유와 개성에 대한 강한 배제와
획일화된 집단주의를
건강한 시민 사회의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배타적인 사람들을 대하는 주인공의 선택 또한
이해하기도 동의하기도 어렵다.
자신의 자유나 개성이나 존엄성에 대한 생각이나 주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잔소리 듣기 싫고 간섭 받기 싫을 뿐이다.
책의 주제 자체는 생각해 볼만한 것이지만,
그 주제에 대한 어떤 사색이나 사유가 느껴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냥 미성숙한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는데,
내가 책을 보며 느낀 것은 작가 또한 그 수준인 것 같다.
개성과 자유에 대한 사색과 사유와 고민 대신,
그저 잔소리와 간섭을 피하고 싶을 뿐이다.
어린 아이 수준의 고민과
어린 아이 수준의 대처만 보인다.

그나마 결론에서
주인공이 편의점을 선택함으로써
주체적인 선택을 하는 성숙한 사람으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는 건
작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이런 책이 문학상을 받았다는 건
그 소재나 주제를 떠나서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 책의 이야기는 너무 단선적이다.
좋은 소설이라면 가져야 할
이야기가 없다.
풍성한 이야기도 진한 이야기도 없다.
어찌 보면
동화책이나 만화 스토리 수준의 이야기다.
소설에서 이야기를 제일 중요시하는 나에게는
실망스러운 책이다.

이야기도 빈약하고
사유도 앙상한
이런 책에 문학상을 준다는 점에서
나는 일본 문학을 의심하게 된다.

문학의 '수준'을 논하는 것이
너무 편협한 발상이라면
나와 일본 문학은 맞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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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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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었다.
뒤의 '옮긴이의 글'도 읽는데, 저자 클레어 키건이 번역자에게 한 말이 눈에 띄었다.
"저는 두 번 읽어서 결말 부분이 앞으로 밀려와 다시 서사가 한 바퀴 돌아가기 전에는 이야기를 다 읽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나도 다시 한 번 읽어볼까?
첫 페이지를 다시 펼쳤다. 싫다. 다시 읽기 싫다. 책을 덮었다.

주인공 '펄롱'을 보면서 많은 공감을 했다. 나와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했고,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달랐다.

펄롱은 부인과 함께 다섯 명의 딸을 키우는 아버지다. 하루 하루를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성실하면서도 가정적인 사람이다. 가족에게 다정할 뿐만 아니라 이웃들에게도 베풀 줄 알고 과욕을 부리지 않는 사람이다.
'주고 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렇게 성실하게 살아가면서도 가끔은 또 다른 삶을 상상하기도 한다.
'여기 이 집에서 저 사람을 아내로 삼아 사는 삶은 어떨까 하는 상상으로 흘러가도록 두었다. 최근에 펄롱은 가끔 다른 삶, 다른 곳을 상상했고 혹시 그런 기질이 자기 핏속에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자기 아버지도, 갑자기 불쑥 영국행 배를 타고 떠나버린 건 아니었을까?'

석탄 판매를 하면서 부유하지는 않지만 불경기 속에서도 빚 안지고 살아가는 자영업자면서도 종종 막연한 불안에 빠지곤 한다.
'펄롱은 마음 한 편이 공연히 긴장될 때가 많았다. 왜인지는 몰랐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갑자기 무언가가 목구멍에서 울컥 치밀었다. 마치 이런 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일요일 밤에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심란한 걸까?'

때로는 압박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달아나고 싶은 충동이 펄롱을 사로잡았고 펄롱은 홀로 낡은 옷을 입고 어두운 들판 위로 걸어가는 상상을 했다'
'펄롱은 외투를 걸치고 마당으로 나오면서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 밖으로 나와서, 강을 보고, 바깥 공기를 마시니 얼마나 좋은지'

펄롱의 불안과 압박감을 보면서 '불안'을 쓴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생각났다. 그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권해 주고 싶었다. 당신이 모르는 불안이 여기 있다고. 보고 느끼고 사색하라고.

펄롱은 때로는 삶에 대한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은 어떨까,'
'펄롱은 자기가 아일린에게 좋은 대화 상대가 못 된다는 생각, 긴 밤을 짧게 만들어주는 재주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아일린도 다른 사람하고 결혼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할까?'

펄롱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도와주고 싶어하고, 또 실제로 도와준다.
'막 시노트네 애가 오늘 또 땔감을 주우러 길에 나와 있더라고. 장대비가 내렸잖아. 차를 세우고 태워주겠다 하고 주머니에 있던 잔돈을 좀 줬어. 한 백 파운드는 얻은 것처럼 좋아하더라. 애 잘못은 아니잖아'
'펄롱은 수차례, 돈이 있을 때는 자신에게 땔감을 구입하곤 했던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문 앞에 장작 자루를 두고 왔다'

그런 펄롱이 수녀원에 석탄을 납품하러 갔다가 학대받는 소녀들을 목격한다.
'저한테는 아무 것도 없어요. 그냥 물에 빠져 죽고 싶어요. 우리한테 씨발 그것도 못 해줘요?'
'내 아기 어떤지 물어봐 주시겠어요? 배고플 텐데, 누가 젖을 주죠? 14주 됐어요. 아기를 데려가 버렸는데 만약 여기 있다면 다시 젖을 먹이게 해줄지도 몰라요.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펄롱은 충격을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모든 걸 잊고 안온한 자신의 일상을 지키고 싶어진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또 다시 펄롱의 마음 한편에서는 그냥 모른 척하고 집으로 가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녀원장은 펄롱을 은근히 압박하고, 이에 펄롱은 반감을 느낀다.
'조금 전 까지는 여기를 뜨고만 싶었는데 이제는 반대로 여기에서 버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버티고 뻗대는 모든 이여, 힘 내소서!

이웃과 아내는 잊어버릴 것을 요구한다.
'자네 정말 열심히 잘 살아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딸들도 잘 키우고 있고, 알겠지만 그곳하고 세인트마거릿 학교 사이에는 얇은 담장 하나 뿐이라고'
'교단은 다르지만 다 한통속이야. 어느 한쪽하고 척지면 다른 쪽하고도 원수 되는 거야'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펄롱은 괴로워 한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 광에 갇혀 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펄롱은 수녀원으로 가서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대가를 치르게 될 터이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필롱이 구하는 아이는 어쩌면 자신의 어머니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펄롱의 선택과 실천은 감동적이다. 낙관적이고 건강한 마음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지고.

어쩌면 여기가 펄롱과 내가 갈라지는 지점 아닐까? 어려운 사람들을 보고 마음 아파하고 도와주고 싶어하는 건 나와 펄롱이나 똑같다. 근데 나는 결국 외면한다. 펄롱은 실제로 도와준다. 나에게 결국 그들은 남이다. 펄롱은 그들과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

펄롱과 나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부자집 하녀의 아비없는 아들로 태어났지만, 피 한 방울 안 섞인 부자집 마님의 애정과 지원 덕분에 잘 자라난 그의 성장 배경이 그를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든 것일까? 그럼 부모님의 부족함없는, 때로는 과한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자란 나는 왜 베풀 줄 모르는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성장 배경이 뭐든 간에 펄롱은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인 것이다. 나는 망설이고 투덜거리는 사람이고. 펄롱은 실천하고 행동하기에 자기와 접촉한 사람들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거다. 나는 망설이고 투덜거리기에 나만의 동떨어진 세상을 살아가는 거다. 펄롱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이고, 나는 세상을 비웃는 사람이다.

펄롱과 나를 가르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믿음 아닐까?

책은 저자가 말했듯이 많은 부분 절제와 암시로 이루어져 있다. 문장은 압축적이고 많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역자는 '이 짧은 소설은 차라리 시'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아니, 그렇기에 내 취향이 아니다. 책 값은 아깝지 않은데, 이 새 책이 이렇게 한 번 읽혀지고 내 책장 귀퉁이에서 잊혀지고 말 것이 아깝다. 만화책을 포함해서, 책을 읽을 때면 종종 느끼는 것인데, 작가에게 미안하다. 나도 여운을 위해서 이 애기는 여기까지만.

이 소설의 문장은 함축적이고 내용은 감동적이다. 그렇지만 구성은 단순하고 줄거리는 단조롭고 캐릭터는 평면적이다. 이른바 '문학성'이나 '작품성'이란 측면에서 이렇게 큰 칭찬을 받는 것은 나에게는 좀 놀랍게 느껴진다. 단순한 구조와 함축적인 문장속에서 삶의 울림과 감동을 담은 이야기들은 이 소설 말고도 많다.

독토에서 다른 회원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졌다. 그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걸 느꼈을지, 왜 이 책이 이렇게 많은 찬사와 인기를 얻고 있는지. 나는 못 보는 걸 보고, 나는 못 느끼는 걸 느끼는 여성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아, 남성들의 얘기도 들어보고 싶다. 편견은 숨겨야지. 넘어설 수 없다면.

책 겉 표지에는 비평가들의 추천사가 적혀 있다. 그 글을 읽으며 내가 왜 문학 비평을 외면하는지 그 이유를 다시 깨달았다.

이 책은 막달레나 세탁소를 소재로 한 책이다. 작가는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고통받았던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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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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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베란다에 손바닥만한 작은 화분을 하나 놓았다고 치자(참, 이 책에 의하면 베란다가 아니라 '발코니'다). 거기 씨앗을 하나 심었다. 씨앗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햇볕과 물이 필요할 터인데, 햇볕 잘 드는 남향의 거실이라면 햇볕은 걱정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물이다. 조리개에 물을 조금 담아 조심스럽게 주어야 할 터이다. 화분의 흙이 물을 머금을 수 있도록. 근데 이런, 양동이로 물을 들이 부었네?

이 책을 읽는 기분이 그러하다. 목이 말라서 물을 청하니, 우물가의 규수는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서 물을 주는 게 아니라, 머리 위에서 물을 들이 부었다. 내가 원한 건 등목이 아니라 한 모금의 식수일 뿐인데. 온 몸이 젖었지만 갈증은 해소가 되지 않는다. 물에 잠겼지만 목으로 들어와 갈증을 해소시키는 물은 없다. 남은 것은 쫄딱 젖은 몸 뿐이다. 할 수 없다. 그 물이라도 핥아야지.

건축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나에게 이 책이 말하는 내용은 너무 방대하다. 쉽고 평이한 문장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무려 30개의 건축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독토를 위해서 쫓기듯 페이지를 넘긴다. 건축에 관한 이야기들이 눈으로 들어왔다가 하품으로 나간다. 책은 읽지만 머리 속에 남는 건 없다. 그저 나를 통과할 뿐이다. 책의 이야기는 지식이 아니라 바람이고, 나는 통풍구가 되어 버린다.

나 같은 건축의 문외한에게 책의 활자만으로는 그 입체적인 공간이 느껴지지 않는다.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느끼거나, 아니면 촬영 영상이라도 봐야 감이 오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어렵다면, 오랜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씹어가면서 읽어야 할 것 같다. 근데 아쉽게도 그렇게 씹어가며 읽기에는 맛이 부족하다. 건축에 관한 이야기는 편하고 부담 없다. 불편한 건 작가의 세계관이다.

작가는 현학적이다. 건축 이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한다. 비교하고, 비유를 들고, 맥락을 설명한다. 작가는 많은 지식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행간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역사 의식이나 사회 의식은 거칠고 빈약하다. 책을 씹고 음미하기 보다는 건축에 관한 이야기만 후다닥 읽고 빨리 지나가고 싶어진다.

책을 읽으면서 제목에 나오는 '인문학'이란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왜 우리 사회는 그렇게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할까? 내 생각에는 인문학은 도구이다. 인문학적 지식은 세상을 알아보고, 삶을 통찰하고, 스스로를 성찰하기 위한 도구이다.

80년대 대기업 공채 필기 시험에서는 '영어'와 '상식'이 거의 필수 과목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졸 취업 준비생들은 영어 공부 말고도 두꺼운 '일반 상식'책을 놓고서 공채 시험을 준비했다. 4지 선다형의 객관식 시험. 잡다한 토막 지식을 물어보는 시험이었고, 그를 위해 신문을 많이 읽는 것이 권유되던 시절이었다.

이른바 문사철, 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중심으로 많은 지식을 쌓으면 그것이 저절로 인문학인 걸까? 고민과 사색과 사유와 반성과 성찰이 없는 인문학이라면, 시험을 위해 달달 외우던 일반 상식과 뭐가 다를까? 객관식 시험용 일반 상식이 아니라 주관식 시험용 일반 상식일까? 인문학은 허식과 겉치레와 유행에 불과한 것일까?

책의 중간쯤에서 작가는 말한다. "원래 하수들이 어려운 철학을 가져오고 구구절절 설명이 길다" 포스팅을 할 때 마다 주절주절 많은 말을 늘어놓는 나는 뜨금하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다행히 나는 작가가 아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늘어놓는 아마추어일 뿐이다. 나는 하수라도 괜찮다. 그래, 나는 하수다.

내가 하수임을 인정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어진다. 당신은 그렇게 자신 있는가?

책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건축의 문외한이 건축이라는 낯설고 신기한 이야기를 뒤집어 쓰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경험이다. 이물질도 좀 묻을 것 같지만 털어버리면 그만이지. 세계의 유명 건축가와 건축물과 그 철학과 맥락에 대한 얘기를 한 번 들어봤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가? 머리 속에 남아 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건 나의 무지와 무식의 탓이다. 건축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 어디인가? 건축 이야기에 쫄딱 젖어볼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이건 그저 시작일 뿐이다. 이야기를 내 속에 담아내는 건 앞으로 나의 할 일이다.

어쩌면 이 책에서 새로운 세상의 입구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건축이라는 그 세상은 충분히 흥미롭고 경이로울 것이다. 이 책을 시작으로 건축에 관해 많은 지식을 쌓고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길 바란다. 앎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같다. 그렇지만 그것은 또 다른 시작이고, 결국은 순환의 한 고리일 뿐이다.

건축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무량무변의 거대한 우주에 대해서도, 심지어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양자라는 미시 세계에 대해서조차 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있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건축의 소재인 물질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도시의 환경은 건축 기술 뿐만 아니라 그 환경을 둘러싼 물질들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손에 잡은 <물질의 세계>라는 책의 '모래' 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제는 물질에 대해서도 알아가야 할 때일까?

아는 것은 너무나 적고, 모르는 것은 너무나 많다. 세상의 지식은 너무나 많고, 세월의 변화는 너무나 빠르다. 한 개인으로서는 평생을 쫓아간다 한들 그 꽁무니조차 쫓을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나는 학자가 아니다. 모르는 것에 괴로워하는 대신, 알아가는 것에 즐거워 할 일이다. 평생에 걸쳐서 앎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그저 책 몇 권 읽는 것 만으로도.

책을 계속해서 읽다 보면 맨 처음 느꼈던 서먹함과 어색함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책의 후반부 즈음에 가면 어느새 건축의 이야기에 적응하고 재미를 느끼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권의 책에서 변하는 자신을 느끼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다.

이 책의 건축 이야기에 한 번쯤은 젖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다만, 물들지는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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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 자본주의에 숨겨진 위험한 역사, 자본세 600년
라즈 파텔 외 지음, 백우진 외 옮김 / 북돋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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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만물이 그로 인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21세기에 마블 유니버스가 생겨났다. 마블 유니버스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초인적인 힘을 지닌 슈퍼 히어로들이 필요했고, 그래서 '어벤져스'가 필요했다. 어벤져스는 '지구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지구를 대신해서 복수하겠다. '는 뜻이고, 그 주제는 '어벤저스는 슈퍼히어로 혼자서는 맞설 수 없는 적과 싸운다'는 것이다. 구성원으로는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 헐크, 캡틴 마블, 미스터 판타스틱, 스파이더맨 등등이 있고, 이들의 힘에 의해서 지구는 지켜진다.


15세기에 자본주의가 생겨났고, 자본세(Capitalocene:자본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자본주의는 그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을 저렴한 비용으로 추출해야 했고, 그래서 '프런티어'가 필요했다. 프런티어는 자본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을 만나는 지점이고, 자본가와 국가와 제국의 권력이 자연을 적은 비용으로 동원하기 위해 폭력, 문화, 지식을 활용하는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장소다. 그 내용으로는 자연,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돈, 생명의 7가지가 있고, 이들을 저렴하게 추출해서 세계는 유지된다.


맛보기로 닭과 인간의 자본주의적인 관계를 살펴보자.


오늘날 우리가 먹는 닭은 한 세기 전에 소비된 닭과는 매우 다르다. 오늘날의 닭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2차 대전 후 유전자를 재조합한 결과물이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가슴 근육이 부풀려진 닭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공간에서 몇 주 안에 성체가 되어 도축되는데, 연간 6백억 마리가 넘는다. 이를 '저렴한 자연'의 표지라고 생각하자.


닭고기는 전 지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육류다. 그만큼 아주 많은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미국에서 판매되는 패스트푸드 치킨 1달러당 양계 노동자의 몫은 2퍼센트에 불과하다. 재소자를 시급 25센트짜리 노동력으로 쓰는 양계업자도 있다. 이를 '저렴한 노동'이라고 하자.


미국 가금류 산업에서 날개 자르는 일을 하는 노동자의 80%는 통증에 시달리고 고용주들은 이런 고통을 무시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다치고 나면 10년 동안 소득이 15% 감소한다. 일을 쉬는 동안 노동자들은 가족과 지원 네트워크에 의존한다. 이를 '저렴한 돌봄'이라고 생각하자.


배는 부르지만 불만족스러운 음식들이 이러한 산업으로 생산되어 싼값에 팔려나간다. 이것이 '저렴한 식량'의 전략이다.


닭을 사육하는 대규모 양계장을 따뜻하게 유지하려면 연료가 많이 든다. 미국 가금류 산업의 탄소 발자국에서 연료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다. 프로판, 즉 '저렴한 에너지'가 풍부하지 않다면 저비용 닭은 생산할 수 없다.


한편 가공한 닭고기를 상업적으로 판매하는 사업에는 특권과 보조금이 투입된다. 닭 사료용 콩을 재배할 토지에서 소기업 대출에 이르기까지 공공 자금을 투입해 사적인 이익을 뒷받침한다. 이는 '저렴한 돈'의 한 측면이다.


마지막으로 앞의 여섯 가지를 저렴하게 만드는 것은 동물은 물론이고 여성, 식민지인, 빈민, 유색인, 이주민 같은 인간의 특정 범주를 배격하는 지속적인 쇼비니즘 행위이다. 이것이 바로 '저렴한 생명'이다.


우리의 저렴한 것들은 스스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사회와 자연, 식민지 정복자와 피정복자, 남성과 여성, 서구와 나머지, 백인과 비백인, 자본가와 노동자같은 이분법을 통해서 등장했다. 이 이분법 각각을 통해서 거의 모든 인간과 나머지 자연의 생명이 저렴해졌고, 권력자들은 이 이분법의 경계를 뚜렷하게 유지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여왔다.


노예, 원주민, 여성, 노동자는 애초부터 연결되어 있는 이들 이분법에 맞서 저항해왔다. 자본가들의 전략에 대응해 성공하기 위한 탁월한 가르침 같은 것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본주의 생태계의 산물이고, 이 생태계의 상태 변화를 제대로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다행히 라 비아 캄페시나, 흑인생명운동, 장애인권리운동,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운동, 빵과 장미(Pan y Rosas) 등 자본주의의 프런티어에 저항하면서 복합적이고 체계적인 탈자본주의의 대응을 하는 운동들이 있다.저자들은 이 운동들을 보완할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바로 미래의 인간을 포함한 우리 인간이 자본세 이후 지구의 나머지 부분과도 함께 번성할 수 있는 '보상 생태'이다. 보상 생태는 인식, 보상, 재분배, 재상상, 재창조를 포함한 프로그램이다.


책은 매우 의미있고 인상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왜 세계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었는지 그 과정의 역사를 설명하는 책이다.' 그러나 내 지식 수준에서 읽기 편한 책은 아니다. 글이 상세하고 친절하기 보다는 함축적이어서, 많은 경우 '유추'를 해야 했다. 자본주의와 유럽 역사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간결하고 명쾌하겠지만, 내 수준에서는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넘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간신히 책이 말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주제와 개괄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관찰과,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은 숙고가 필요할 듯 하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한편으로는 책이 어려운 것에 번역도 약간의 책임이 있는 것 아닐지 의문이 든다. 책에서 사용되는 '보상'이란 단어. 책의 내용 상 보상이 아니라 배상이 되어야 할 것 같다. 'reparation'을 네이버 영어 사전에 찾아보았더니 배상이라고 나온다. 보상과 배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번역자가 과연 이 책의 내용을 온전하게 소화한 것이 맞을까?


재미있는 내용도 많다. 그 중의 하나. 밀은 토양을 걸신들린 듯 집어삼켜 정기적으로 휴경하게 만들고, 그 결과 가축 사육을 하게 만든다. 유럽은 밀을 재배했다. 그 결과로 늘 농업과 축산업을 병행하게 되었고, 육식을 하게 되었다. 쌀은 집중적인 재배 형태로 발전해서 동물을 위한 공간을 내줄 수 없었다. 쌀 재배 지역의 식단에 고기가 그렇게 적은 이유이다.


저자는 라즈 파텔, 제이슨 무어 공저. 그 중 라즈 파텔은 박사이면서 반세계화 활동가라고 한다. 72년생, 나이도 어린데 어찌 그리 똑똑할까? 나 만화책 보면서 희희낙락 거릴때, 그는 공부하면서 싸웠나 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틈틈이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을 봤다. 책이 어렵거나 지루해지면 만화를 보고, 만화로 배가 불러지면 다시 이 책을 읽었다. 진격의 거인은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러일전쟁을 자위전쟁으로 보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일본의 극우적 가치관을 바닥에 깔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 만화이다. 나도 만화를 보면서 그런 의심이 들었다.


탈자본주의 서적과 일본 우익 만화를 동시에 읽고 있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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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들 - 방탕하고 쟁취하며 군림하는
루시 쿡 지음, 조은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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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이고, 흥미진진하며, 놀라운 사실들로 가득하다. 책에 소개되는 풍부하고 다양한 사례들이 나의통념을 깨부순다. 직접 읽어 봐야 이 책의 진정한 재미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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