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차 - 빈곤과 불평등의 세기를 끝내기 위한 탈성장의 정치경제학
제이슨 히켈 지음, 김승진 옮김, 홍기빈 해제 / 아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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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이거나 경제학자일 것" - 데이비드 애튼버러(동물학자)

내가 이 구절을 읽고 든 생각은, '세상은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경제학자와 미친 사람.' 그래, 우리는 모두 미쳐있다. 우리는 모두 성장이 계속될 거라고 믿고 있다. 기하급수적 성장을 무한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친 생각이다. 다행히 이 책을 읽으면 제 정신을 찾을 수 있다.

글로벌 경제가 연간 4.5% 성장률을 유지하면 물건이 16년마다 2배고 되고 32년마다 4배가 된다. 고대 이집트가 1세제곱미터 부피의 소유물로 시작해 연간 4.5%씩 성장했다면, 3000년에 걸친 문명이 끝났을 때 그들의 소유물을 저장하려면 25억 개의 태양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성장에 매달리면 기다리는 것은 지구의 파멸밖에 없다. 

연말이 되면 수 많은 미디어들이 '올해의 ~'를 선정한다. '올해의 책'도 그 중 하나. 나는 1인 미디어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만 2023년도부터 나 개인의 '올해의 책'을 선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당해년도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좋은 책 하나를 선택하는 거다.

2023년에는 케이트 크로퍼드의 'AI 지도책'을 선정했다. 올해 2024년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지만 나는 이 책 '격차'가 나의 2024년 올해의 책이 될 거라는 성급한 예감을 느낀다. 남은 두 달 동안 이 책 보다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을까? 어려울 거라 본다. 나는 경솔하다.


'AI 지도책'이나 '격차'나 나의 눈을 띄워주는 책이다. 나에게 빛을 주는 책이다. 막연하고 직관적인 의문을 확인 시켜주는 책들. 이 책들은 상세한 자료를 통해 나의 의심이 진실의 한 단면임을 알려준다. 나는 세상에 속기 싫다. 날마다 처맞고 살지언정 그 내막이라도 알고 싶다. 'AI 지도책'도 '격차'도 세상의 비밀을 알려주는 천기누설 책이다.

이 책은 2017년에 처음 출간되었다. 한국어판은 2024년 7월 19일 초판 1쇄가 발간되었다. 그 동안에도 좋아진 건 없다. 작가는 한국어판 후기에서 말한다.

"우리가 만들어내야 할 변화는 개혁적인 것이 아니라 혁명적인 것입니다. 혁명에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현 상태의 경제가 부과하는 제약과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 생각해야 하고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를 그려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혁명에는 조직화와 투쟁의 힘든 노력 또한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결론을 위해 작가는 이 많은 이야기를 한 거다. 이 아픈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많은 자료를 이용하여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핵심은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 압축적으로 다 나와 있다. 책의 본문은 그 핵심에 대한 근거와 설명과 사례다.

세상은 잔인한 불평등으로 찢겨져 있지만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일으키는 결과물이다. 자본주의의 특징은 '반민주주의'다. 자본주의는 거대 기업과 주요 금융 자본과 1%의 상위 투자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무엇을 생산할지, 노동과 자원을 어떻게 사용할지, 누구를 위해 사용할지 자본이 결정한다. 자본의 목표는 사회의 진보가 아니다. 이윤의 극대화다.

자본은 지속적으로 축적의 규모를 키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 토지, 에너지, 자원과 같은 투입 요소를 저렴하게 공급해야 한다. 이것을 지속하기 위해 자본은 언제나 '식민지'를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제국주의'를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가 발흥한 15세기부터 서구 열강은 늘 주변부(남미, 아시아, 아프리카)의 자원과 노동과 생명을 약탈했다. 주변부 지역의 산업들을 파괴하고, 중심부의 필요에 따라 주변부의 생산을 강제로 재조직했다. 이를 통해 주변부는 극심한 박탈과 비참한 여건에 처했고 대대적으로 목숨까지 잃었다. 그동안 중심부는 전례없는 부를 쌓았다.

그런데 20세기 중반에 혁명이 일어났다. 반식민주의 운동이 식민 지배를 전복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들은 곧바로 자신의 생산력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 일에 착수했다. 이들은 자국민의 필요와 발전을 위해 자신의 생산을 조직했고,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중심부의 열강은 이를 반기지 않았다.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중심부 열강은 무력을 동원해 독립 국가의 정부를 전복하고 그 자리에 꼭두각시 정권을 세웠다.

이에 더해 1980년대부터는 글로벌 남부 전역에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부과했다. 이는 글로벌 남부에서 국가가 통제하던 산업을 해체했고, 노동과 자원의 가격을 다시 낮추었고, 생산은 중심부를 위한 수출에 집중하도록 재조직되었다. 구조조정은 점령을 하지 않고도 제국주의를 복원했다.

그 결과가 오늘날의 모습이다. 글로벌 남부에서 빠져나가는 노동, 자원, 제품의 방대한 순유출이 중심부 국가들의 경제적 풍요와 성장을 떠받치고 있다. 이 불균등은 매우 극단적이다. 자본주의 세계 경제를 작동하는데 필요한 자원의 80%와 노동의 90%를 글로벌 남부가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 남부의 좋은 주거, 영양가 있는 음식, 의료를 제공하는 데 쓰였어야 할 막대한 생산 역량이 중심부의 기업과 소비자를 위해 쓰이고 있다.

최근의 연구들은 우리가 전 세계 80억 인구 전체의 빈곤을 영원히 종식시키고 그들에게 좋은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충분한 생산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현재 사용하는 것보다 더 적은 자원과 에너지를 사용해도 이를 이룰 수 있기에 생태적 목적까지 추가로 달성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 생산이 자본의 축적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위해 조직될 경우에 그렇다.

그렇게 되려면 전 세계의 다수 인구가 생산 수단에 대한 민주적 통제력을 회득해야 한다. 이것은 싸움이다. 이것은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투쟁이다.

그래, 투쟁이다. 좋은 책을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답은 늘 내 안에 있다. 내 삶이 답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나는 답을 풀지 않는다. 늘 문제만 찾고 찾고 또 찾는다. 그건 도피고 방황이다.


나는 작가의 '감사의 글'을 매우 인상적으로 읽었다. 작가가 자기의 애인 '구디'에게 전한 감사의 말. "구디가 없었다면 나는 그저 한심한 한 인간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그저 한심한 인간에 불과했을 것이다. 근데, 이 책의 저자 '제이슨 히켈'과 내가 다른 점은, 나는 여자 친구가 있음에도 여전히 한심한 인간이라는 것. 그러니 나는 여자 친구마저 없었으면 한심조차 할 수 없는 인간으로 살았을 거다. 여자 친구가 이 글을 읽을 일은 없지만, 어쨌든 나도 여자 친구에게 감사하다.

너무 뚱단지같은 소리인가? 삶이 잔혹할 수록 매달릴 건 사랑밖에 없지 않나? 사랑이 삶을 구원할 것이다. 나는 늘 그렇게 믿어왔다. 그럼 세상은? 세상이 잔혹할 수록 매달린 건 분배밖에 없다. 분배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성장이 아니라. 이 책을 읽고 나면 그렇게 믿고 싶어진다.

저자는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에게 책을 바친다. 나는 책 앞에 나오는 추천사 중 한 구절을 저자에게, 그리고 사람들에게 바치고 싶다.

이 책은 '팩트, 분노,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불꽃이 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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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차 - 빈곤과 불평등의 세기를 끝내기 위한 탈성장의 정치경제학
제이슨 히켈 지음, 김승진 옮김, 홍기빈 해제 / 아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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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기에서 서문을 읽었다. 안 살 수가 없다. 그 짧은 서문에 모순과 위기의 본질이 담겨있다. 본문에서 그 상세한 전말을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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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리 테일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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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스티븐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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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대한 열 가지 신화 - 유대인 역사학자의 통렬한 이스라엘 비판서
일란 파페 지음, 백선 옮김, 이희수 감수 / 틈새책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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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주장은 명확하다. 시온주의는 식민주의고, 이스라엘이 저지르는 짓은 인종 청소라는 거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범죄를 뒷받침하는 견고한 10가지 신화에 균열을 일으킨다. ‘강에서 바다까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제 자리를 되찾고, 평화가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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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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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알게 된건 유시민 때문이다.
2022년인가? 자신이 그 해에 읽은 책 중에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다.
관심 목록에는 넣어뒀지만 딱히 읽고 싶지는 않았다.
빨치산이라니, 생각만 해도 버거운 단어.

근데 내가 하는

독서 토론에 이 책이 채택되었다.
독토 핑계로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시대가 변했구나'
이런 책을 수용하고,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세상이구나.
80년대 비해서 우리 사회는 이렇게 여유가 생겼구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80년대가 90년대라면 나올 수가 있었을까?
그런 책을 쓸 엄두를 낼 수 있었을까?
그 당시에 이 책이 나왔다면
좌파든 우파든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거다.

우파는 빨갱이 책이라고 비난했을 거고,
좌파는 변절자 책이라고 비난했을 거다.

80년대에 이 책을 썼다면
결국은 태백산맥이나 남부군 되었을 거다.
근데 지금 세상은 그 만큼의 여유가 생긴 거다.

책을 읽으면서 유시민이 재미있게 읽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보다 몇 년 앞서긴 하지만 60년대에 태어났고,
사회주의 혁명노선이 지배했던 80년대 학생운동권이었던
유시민이라면 당연히 재미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공동체 의식을 가진 부모에게 냉소적인
개인주의적이고 씨니컬한 작가에게 공감이 갔다.

나는 이 책이 화해에 관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좌파와 우파가 싸웠던 시대에 대해,
농촌과 도시가 벌어졌던 전통에 대해,
아버지와 자식이 틀어졌던 가족에 대해.

빨치산의 딸로서 겪었을 숱한 고난과 노고를 속에 담아두고서
훈훈하고 먹먹한 인간애로 외피를 감싸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역량은 탁월하다.

마치 진한 사골 국물에 고기 만두를 넣어서 끓여진,
맛있는 만두국을 먹는 듯하다.
뜨겁고, 진하고, 계란까지 풀어져 있고, 파도 동동 떠있다.
국물은 진하고 만두는 고소하다.
근데, 그 만두 속 한 가운데는 빨간 매운 속이 살짝 들어가 있다.
빨갱이라는.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빨치산이었던 아버지가 놓아준 순경이,
아버지의 부대에 합류하려고 할 때,
순경을 쫓아낸 아버지와
먼 훗날 다시 만나서 나눈 대화.
두 사람이 나눈 대화다

"왜 그랬능가요? 참말로 한 번 반동은 영원한 반동이라 그랬능가요?"
"질 줄 알았응게"
"예?"
"질 게 뻔한 전쟁이었소. 우리야 기왕지사 나선 몸이제만 그 짝은 사상도 읎고 신념도 읎는디 멀라고 뻔히 질 싸움에 끼울 것이오"
"은혜를 갚을라는 것은 신념이 아닝가요?"
"아니오. 그것은 신념이 아니오. 사람의 도리제. 그짝은 순겡을 그만둔 것으로 사람의 도리를 다했소. 글먼 된 것이오. 긍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고 자개 앞가림이나 함시로 잘 싸시오."

그렇다.
나는 가장 기본이고,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의 도리, '인간애'라고 생각한다. 이념이건 혁명이건 정치건 연애건 인간에 대한 애정이 시작이고 끝이다.

근데 사람의 도리나 인간애란 말은 너무 막연하다. 그래서 나는 그걸 약자에 대한 연민, 어려운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이라고 한정 짓는다. 그게 알파고 오메가다. 그게 없이 지식이고 신념이고 종교고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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