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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섹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이화연.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4년 1월
평점 :
품절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까? 재미있는 소설이 나에게 주는 행복에 대해서.
어린 시절부터 회의적이고 염세적이었던 내가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처음 느낀 것은 첫사랑에 빠졌을 때다. 난생 처음 맞이하는 사랑의 혼돈과 열병에 비틀거리고 허우적거리던 나날 속에서도, 사랑이 안겨주는 순간 순간의 벅찬 감동과 평화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그리고 벼락 맞듯이 인생의 아름다움에 전율했다.
그 후로도 허무하고 우울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준 것은 사랑이었다. 커피숍에 앉아 그녀를 마주하고 커피를 마시던 어느 순간, 그녀와 손을 잡고 거리를 걸어가던 어느 순간, 공원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던 어느 순간 나를 찾아온 평안과 평화속에서 나는 그것이 행복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소설이 있었다. 재미있는 소설이 전해주는 따뜻하고 유쾌하고 편안한 충만감에 가슴이 뻐끈해지고 마음이 들썩거리면, 잠시 책을 덮고 그 즐거움과 행복감을 진정시켜야 했다. 나에게는 그 설렘이 소설의 힘이었다. 무슨 쟝르니, 형식이니, 주제니, 의미니, 메시지니, 교훈이니를 다 떠나서. 나를 몰입시키는 이야기 자체의 재미.
이 책 미들섹스를 읽으면서 또 다시 이야기의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무슨 특별하고 자극적인 사건이나 장치나 구성이나 비틀기가 없이도, 이야기 자체가 안겨주는 즐거움과 행복감.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재미있는 소설을 좋아했는지 기억이 되살아난다. 내가 소설을 읽는 것은 그 설렘 때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어떻게 얘기를 풀어가야 할까? 소설 미들섹스의 재미에 대해서? 이 반짝이고, 진솔하고, 따뜻하고, 세심하고, 섬세하고, 감성적이고, 현대적이고, 도회적이고, 포용적인 소설에 대해서. 이 소설이 보여주는 삶에 대한 지혜로운 통찰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포용과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초연한 낙관주의에 대해서. 독자를 물들이는 따뜻함과 여유로움과 관대함에 대해서. 그 모든 것을 담고서 반짝반짝 빛나는 재미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이럴 때면 나를 관념에 가둬 놓는 말과 글의 한계가 절절하게 느껴진다.
미들섹스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두 번 태어났다. 처음엔 여자아이로, ...그리고 ... 한 응급실에서 남자아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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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오페라는 여자 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칼이라는 남자로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그(또는 그녀)에게 '5알파환원효소 결핍증'이라는 단초를 제공하게 될 조부모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리스의 조부모가 미국으로 이민 오고, 정착하고,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고, 그 중에 칼리오페가 있고.
우리는 보통 성을 남성과 여성 2가지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성은 2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양성 또는 간성에 대한 이야기는 의외로 많은 지역에서, 그리고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우리가 별 생각없이 성을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한국 근현대 문학책에서도, 영화에서도 심지어 무협지에서도 간성이나 양성의 존재는 이미 다루어져 왔다. 어지자지니 남녀추니니 하는 좋지않은 어감의 단어들이 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영화로도 있었던 사방지는 그 실제의 인물이다.
이 책의 주인공 칼레오페가 바로 간성(間性) 또는 인터섹스(intersex)다. 그러나 기존의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그 사람들을 이형(異形)의 변질된 존재로 취급하면서, 성적인 흥미거리로 대상화 시키는 것과는 달리, 이 책은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보여준다. 신체가(또는 정신이) 약간 다르고, 쉽지 않은 고민과 혼란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예전에 인터섹스를 소재로 한 'IS,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이라는 일본 만화를 잠깐 본 적이 있다. 그 만화의 간성에 대한 진지하고 포용적인 관점에도 불구하고, 우울하고 답답해서 잠깐 보다 말았다.
그러나 이 책 미들섹스는 자연스럽고, 따뜻하고, 위트 넘친다. 사춘기를 맞이하는(하물며 염색체는 남자인) 10대 소녀의 불안하고 오묘하고 복잡한 감성을 섬세하면서도 따뜻하게 잘 그리고 있다. 나와는 너무 다른 소녀의 성장과 감성으로 나의 사춘기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어 준다. 큰 차이를 뛰어넘는 동감과 공감으로 나를 껴안는다.
섹스나 젠더를 떠나서 그 아리아리하고, 어질어질하고, 휘청휘청하고, 비틀비틀하고, 두근두근하고, 블랑블랑하고, 화끈화끈하는 모든 사춘기 공통의 서투름 속으로 나를 끌어안는다 . 이 소설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 작가가 사춘기를 맞이하는 소녀의 불안과 변덕과 기대와 희망과 혼란을 어찌 그리 잘 표현할 수 있을까? 남자인 내가 너무 몰라서 남자 작가의 제 멋대로의 상상에 속아 넘어 간 것일까?
책은 1, 2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권에서는 좀 지루하기도 하다. 책의 진짜 재미는 주인공 칼리오페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2권에서부터 그 빛을 발한다. 인상적인 구절들을 핸폰 카메라로 찍다가 나중에는 포기했다. 예리하게 번뜩이며 나를 자극하는 구절 구절들이 너무 많았다.
책의 후반부에 칼리오페가 칼이 되어 가출하여 샌프란시스코에 갈 때는, 생뚱맞게도 '누가 큐피드의 동생을 쏘았는가'라는 범죄 소설의 샌프란시스코가 떠올랐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아침마다 두터운 안개가 깔린다....안개가 도시를 덮은 건지 도시가 안개 위를 표류하는 건지 분간이 안 될 때도 있었다. ... 안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950년대가 되자 안개는 비트족의 머리 위에 카푸치노 거품처럼 남실거렸다. 1960년대 안개는 물파이프에서 오르는 마리화나 연기처럼 히피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칼 스태퍼니데스가 도착한 1970넌대에는 안개가 공원의 새 친구들과 나를 숨겨주었다' (미들섹스)
[샌프란시스코는 모든 사람의 도시라고들 말한다. 이곳 주민들만의 도시가 아니라 이곳에 여행을 왔다가 이곳과 사랑에 빠진 모든 방문객들의 도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만 위의 도시, 태평양 해안의 여왕, 빛의 도시, 서해안의 보석. 이곳은 또한 현기증의 도시, 욕망의 도시, 저속한 마력의 도시이기도 하다. ...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행방이 묘연해진 사람들은 모두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다음 세상의 매력을 모두 지니고 있는 즐거운 도시임이 틀림없다"] (누가 큐피드의 동생을 쏘았는가)
책의 내용에서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고, 두 책의 분위기가 유사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살짝 몽환적이고, 약간 혼미하고, 조금은 거품같은 이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어쩌면 이 비현실적인 몽롱함이 날카로운 현실을 감싸주고 품어주는 따뜻함 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책은 그저 나만의 취향을 저격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앞서 말한 모든 장점들에 위트까지 갖춘 이 소설의 재미가 그저 나만의 재미일지도 모르겠다. 자극적으로 보이는 제목이나 소재와는 다르게, 특별한 사건이나 연출 없이 담담하고 잔잔한 이야기가 보여주는 그 힘은 그저 나에게만 작용하는 힘일지도 모르겠다. 지혜롭고 위트있게 번뜩이는 문장들은 그저 내 취향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의 작가 제프리 유제니디스가 궁금해졌다. 그의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내가 이 책을 보면서 느낀 작가의 힘을 그의 다른 책에서도 느낄 수 있을 지 궁금하다. 이 따뜻하고, 포용적이고, 위트 있고, 감성적인 작가가 다른 책에서도 여전히 반짝거릴 지 궁금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소설의 힘을 느꼈다. 소설이 갖고 있는 이야기 자체의 재미를 다시 느꼈다. 그 동안 소설과 너무 멀어져 있었다. 이제 다시 가까워지고 싶다. 그 이야기의 힘을 또 다시 느끼고 싶다. 그리고 또 다시 설레고 싶다. 뻐근하고 뿌듯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