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호랑이
네주 시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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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그 순간은 시간 밖에 있고, 역사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다. 부조리로 가득 차 있고 의미가 너무 복잡해서 어떤 서술로 그 순간을 설명하고자 해도 그럴 수가 없다."(47쪽)

뭔가 급하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그 말이 너무 많고 정리가 되지 않아 목구멍에 턱 걸리는 바람에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급하게 헉헉거리기기만 할 때가 있다. 이 책을 읽은 느낌이 그렇다. 뭔가 말을 쏟아내고 싶고, 무슨 말이든 토해내야 할 것 같은데,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 정리도 되지 않아 목에 탁 걸려 있는 그런 느낌. 말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말이 엉키고, 목이 막히는 그런 느낌 말이다.

이 책 '슬픈 호랑이'는 프랑스 작가 '네주 시노'가 지은 책이다. 출판사 책 소개에 의하면 '어릴 적 의붓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적 학대를 당한 저자가 쓴 자전 소설이자, 에세이, 회고록이다. 저자는 증언 문학이 지닌 기존의 문법을 파괴하고, 여러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읽는 이를 단숨에 몰입시키는 서술과 첨예한 지적 통찰이 함께 소용돌이치는 독보적인 작품이다.'

그렇다. 이 책은 어릴 적부터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당해온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펴낸 책이다.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이나 뉴스에서 많이 접해온 이야기다. 너무나 자주 접해봤기에 익숙하다고 착각하면서도, 그 내용의 파괴력 때문에 실제로는 눈을 감고 귀를 닫은 우리들이 자칫 진부하고 상투적인 신파로 피해버리는 아동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의 비겁하고 무책임한 선입견과 달리 이 책은 뻔하고 반복적인 눈물과 상처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들의 편견과 외면에 무시 당하는 피해자를 빼놓더라도, 이 책은 정해진 답을 향해 달리는 교과서나 참고서가 아니다. 이 책은 문외한이고 방관자이고 구경꾼인 우리가 미처 짐작도 할 수 없고,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민과 사유를 담고 있다. 사회가 피해자에게 바라고 요구하는 정체성을 넘어서는 한 인간으로서의 사색과 사유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냉철하고 분석적인 시선으로 여러 문학 작품을 넘나든다.

뭔가 많이 떠들고 싶다. 그러나 내가 무슨 말을 떠들든 그것은 다 허공 중에 연기처럼 흩어질 것이다. 내 말은 다 헛소리가 되어 공허하게 부서질 것이다. 그보다는 작가의 말 몇 마디를 직접 소개하는 것이 나으리라. 그리고 떠들 시간에 차라리 작가의 사유를 곱씹고 되새기는 것이 나으리라.

그것이 내가 시작도 모르고, 끝도 모르고, 속도 모르고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얘기를 듣는 올바른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내가 구경꾼을 넘어서 목격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내가 방관자를 넘어서 증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내가 나 자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섬뜩한 깨달음을 직시하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단순히 아동 성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네주 시노'라는 사람의 '슬픈 호랑이'를 소개하고 싶다.

"강간과 관련된 모든 일은 별도의 차원, 즉 이상한 차원에서 전개된다. 물리적으로는 삶의 나머지 부분이 전개되는 차원과 비슷하지만, 견딜 수 없을 만큼 선명한 또 다른 차원이 거기에 겹쳐진다." (67쪽)

"버지니아 울프가 쓴 대로, 우리가 어떤 사건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사건이 진짜 고통에서 떨어져 나와 비현실의 양상으로 있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언어를 통해서 포착될 때에만 현실이 된다."(117쪽)

"그는 나라는 소녀에게 거부당하는 일을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자기를 사랑하려 하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고, 성행위야말로 나하고 접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허위적이고 병적인 변명이었다."(151쪽)

"그들은 자기 자신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아이를 강간한 남자를 변호하기 위해 행했던 그 증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를 돕는다고 해서 그들에게 이익이 될 건 전혀 없었다. 그들은 그 점을 잘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증언에 나섰다"(155쪽)

"요컨대 고소 사건의 10%만이 중죄 재판소나 소년 법원에 공소 제기가 되었고, 강간에 대한 유죄 판결은 지난 10년 동안 4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10% 중의 10%, 실제로 그건 많은 게 아니다. 1백 건의 강간 사건 중에 단 한 건이 판결을 받는다는 뜻이니까 말이다."(194쪽)

"괴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정상 상태에서 너무나 멀리 벗어나 있기에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고, 자신도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 그것이 괴물이 아닐까? 자기들의 발기된 성기를 자기네 아이들의 몸 속에 넣고,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들의 귀에 대고 세상에 있는 그 무엇보다 그들을 더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그자들이 바로 괴물이 아닐까?"(207쪽)

"강간은 흔히 성적인 욕구를 참지 못하고 성관계를 강행하는 것으로 표현되지만, 사실은 힘이나 분노의 문제를 표출하기 위해 성행위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강간은 사이비 성행위이고, 성 본능이나 성적 만족과 관계를 맺기 보다 지위, 적의, 통제, 지배와 더 밀접한 관계를 맺은 성적 행동의 총체이다."(214쪽)

"내 의붓 아버지는 바로 그런 식으로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무언가가 그에게, 우리에게 일어난 것이지, 자기가 뭔가를 하고 싶었다거나 의도적으로 계획한 게 아니라고. 자기는 그런 점에서 피해자라고, 가해자는 자기가 아니라 소녀라고, 자기와 함께 살면서 자기 안에서 그런 기계 장치 같은 게 작동하게 만든 소녀가 가해자라고"(237쪽)

"그들이 강간을 저지르는 것은 그들이 할 수 있기 때문이고, 사회가 그들에게 그 가능성을 주기 때문이며, 사람들이 허락을 했기 때문이다."(248쪽)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는 한낱 시련이나 살다가 겪는 사고가 아니라, 존재의 근거 자체를 파괴하는 극도의 모욕이다. 한번 피해자가 되면 피해자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한번 피해자는 영원한 피해자인 것이다. 설령 우리가 그 역경에서 벗어난다고 해도, 진정으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259쪽)

"강간과 관련해서는 승리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아니 어쩌면 아주 작은 것들이 있을 수는 있다. 서로 가는 길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는 오로지 신뢰할 수 없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이에, 강간당했고, 모욕당했고, 배신당했다."(339쪽)

" 그 세계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여 있는 세계다. (...) 그 세계의 문턱에 머무는 법을 배우라. 그렇게 도전하라. 우리 운명들의 줄 위로 곡예사들처럼 걸어라. 비틀거릴 수는 있지만,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떨어지지 말라, 떨어지지 말라, 떨어지지 말라"(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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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번역가의 이중생활
알라 알카이시 지음, 서제인 옮김 / 글항아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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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내밀한 속을 찬찬히 느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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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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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을 서양인의 시각에서 본다. 그리고 그 시선은 도식적이고 기계적이다. 많은 경우 우리의 시선과 생각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고, 우리 스스로는 그걸 못 느낀다. 다양하고 다층적이고 불규칙적인 세상이 불편하기에 우리는 종종 규칙적이고 정합적인 이론의 틀 안에 세상을 억지로 끼워 넣으려고 하고, 그것이 맞춰질 때 우리는 안도한다. 실제는 그게 아닐지라도.

'모든 것의 새벽'이란 책에서 인류의 발달이 '국가'라는 중앙집권체계를 향한 기계적이고 필연적인 '발전'의 결정론이 아니라 다양하고 역동적인 '선택'의 결과였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 책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아프리카의 문명이 '원시적'이고 '미개발'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보다 자유로운 공동체 문명이었음을 알려준다. 아프리카가 서양인들에 눈에 비쳐지는 것처럼 검은 대륙이 아니라 다채로운 대륙임을 알려준다.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를 짓밟기 시작한 것은 500년도 더 전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서부 아프리카에 도착하면서부터 였다. 아메리카와 많은 아시아 지역들에서도 유럽인들은 착취자이며 압제자였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수백만,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붙잡혀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끌려가 평생 그곳에서 노예로 살아야 하는 일은 없었다. 노예 생활의 트라우마는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아프리카는 물론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도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다.

맨 먼저 상인과 모험가들이 왔다. 이어서 기독교의 영혼의 구원자와 가난한 이들을 돕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아프리카의 세속 지배자와 정신적 지배자 사이에서 아주 훌륭한 협동 작업이 이루어졌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나라를 빼앗기고 가난해지고 권리를 잃어버리면, 선교사가 와서 유럽 사람들의 양심의 가책을 달래주고 동시에 아프리카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가난할 뿐만 아니라 가난함 속에서도 평화를 지니고 살도록 도움을 주었다.

아프리카에서 처음 기독교를 전파할 때 나타난 다양한 사고방식을 이해하게 되면,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원조 형식을 깨닫게 된다. 이웃 사랑의 정신에도 불구하고 이런 원조 형식은 흔히 대화나 동반자 관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구원자라는 태도와 의존을 장기적인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무렵 아프리카의 다양한 저항 세력의 반대가 너무 강해지자 식민지 지배자들이 물러났지만, 그들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가장 부패한 아프리카 정치가들이 권좌에 오르도록 도움을 주었다. 겉으로는 '독립'이라는 깃발을 내걸었지만, 유럽 열강이나 미국과 소련이 자국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꼭두각시 정권을 만드는 경우는 흔했다.

한편, 아프리카의 사람들은 그렇게 엄청난 규모의 노예 매매가 아랍과 아프리카의 상인들 그리고 자국민을 팔아 부자가 된 정치 지도자들의 협조 없이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쓰라린 진실을 바라봐야만 한다. 이런 엄청난 규모의 파국에 결정적으로 도움을 준 아프리카의 권위적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도 앞으로 반드시 이뤄져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해마다 개발 원조로 받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서방에 빚으로 갚고 있다. 빚은 해마다 늘어만 간다. 서방 국가에서는 온갖 하찮은 것에도 관세를 매기고, 대부분의 의약품은 부유한 서방 국가들보다 가난한 아프리카에서 훨씬 비싸다. 그리고 개발 계획에서 가장 좋은 일자리는 다시 서방에서 온 사람들 차지다. 오늘날 아프리카에는 옛날 식민 시대에 유럽 출신의 관리보다 더 많은 서방의 개발 원조자들이 있다.

아프리카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아직은 알 수가 없다.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인다. 한편에서는 아프리카와 그곳의 주민을 지속적인 희생자로 바라보는, 또는 그보다 더 나쁘거나 그와 비슷한 비판적인 시나리오들이 있다. 에이즈 재앙과 언뜻 보기에 전혀 어찌 할 바를 모르는 정부의 반응과 폭도의 싸움이나 내란을 피해 도망친 수백만 난민들이 바로 그 상징이다.

그에 반해 아프리카 사람들이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독자적인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노예 제도와 식민 지배라는 경제적, 심리적으로 심각한 결과에 수십 년 동안이나 흔들리고 난 다음, 이제 아프리카 르네상스의 시간이 왔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와 그곳 사람들의 자의식에 넘친 가치 의식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어느 쪽 말을 믿어야 옳을까? 다행히 이것은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아프리카와 나머지 세계가 동반자 관계를 이루고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20세기의 해방 운동은 용기와 끈기와 지혜로움으로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유럽의 착취의 사슬을 끊었다. 21세기에는 젊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어린이나 청소년으로서, 여성으로서, 다양한 종족과 소수 무리의 대표자로서 서로 민주적인 대화를 통해 자신들의 개인적인 자기 결정권을 실현하고, 그로써 빈곤과 질병과 전쟁에 맞선 싸움에서 개인적으로도 책임을 떠맡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유럽 사람들은 자기들 나라에서 아프리카에 대한 선입견으로 이국적인 원시림과 비참함만을 생각하는 일을 넘어서야 한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꿈을 바라볼'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는 제목이 알려주는 것처럼 아프리카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러나 326쪽의 이 얇은 책 한 권에 담기에 아프리카의 역사는 너무나 길고, 너무나 다양하고, 너무나 복잡하고, 너무나 굴곡진 역사다. 이 책은 보통의 딱딱하고 빡빡하고 꽉 채워진 역사책들하고는 좀 다르다. 이 책은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이야기 책이다. 아프리카의 시작과 문명과 사람을 이야기하는.

약 5억 5000만년 전 모든 대륙 중에서 첫째로 생겨났고, 약 300만년 전 최초의 원시인이 두 발로 걷기 시작했고, 약 10만년 전 작은 호모 사피엔스 그룹이 떠나갔고,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의 파라오 제국이 생겨났고, 한 때 유럽의 식민지였었고, 이제 힘겹게 해방의 시대를 만들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네덜란드계 독일인 '루츠 판 다이크'가 글을 쓰고, 가나 사람 '데니스 도에 타마클로에'가 그림을 그린 이 책은 따뜻하고 다채로운 이야기 책이다. 글에서는 아프리카의 사람들과 문명을 향한 따뜻한 애정과 아프리카의 역사와 분쟁을 향한 아픔과 아프리카의 미래를 향한 기대와 희망이 느껴진다. 글의 중간 중간 삽입된 삽화들은 마치 그림책의 그것들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고 다채롭다. 그렇다. 다채로움이 바로 이 책을 관통하는 시선이자 주제이다.

사실 나는 2005년에 이 책을 구입했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책의 서술이나 전개 방식이 많이 낯설고 어색해서 집중을 하기가 어려웠다. 아프리카의 역사가 궁금했지만 너무 막연하고 모호했다. 결국 그 책을 중고에 팔았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이 책을 다시 읽을 때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러다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책을 다시 중고로 구입해서 이번에는 끝까지 읽고 말았다. 이번에는 편하고 수월하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다. 20년 전의 '낯설음'이 이제는 '색다름'으로 느껴졌다. 아마도 그만큼 지금의 내가 20여 년 전의 나에 비해 도식적이고 기계적이고 일방적인 사고를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박제된 아프리카가 아니라 원래의 아프리카를. 설사 진실에 미치지 못할 지라도, 최소한 아프리카 속으로 들어가서 아프리카인들 자신의 눈으로 보여지는 아프리카에 관한 이야기를.

아쉬운 것은 이 책의 원본이 2004년에 출간되었다는 점이다. 20여 년의 시간에 대한 공백이 있다. 예를 들면 현재의 아프리카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국에 관한 얘기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서구 문명의 눈으로 비춰진 단편적인 선입견만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프리카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프리카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프리카의 다채로움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좋은 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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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제국: 권력, 자본, 노동 - 샘 올트먼과 오픈AI의 빛과 그림자
카렌 하오 지음, 임보영 옮김 / 생각의힘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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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미국 국회의 AI 청문회에 참석한 컴퓨터 과학자 '데보라 라지'는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들 중 AI 업계와 재정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사람은 자기 하나 뿐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자리의 대부분은 샘 올트먼(오픈AI CEO), 일론 머스크(테슬라 CEO), 사티아 나델라(마이크로소프트 CEO),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메타 CEO), 선다 피차이(구글 최고 경영자), 잭 클라크(AI 기업 엔트로피 창업자)를 필두로 여러 빅테크 기업의 임원들이 채우고 있었다.


라지는 빅테크 기업 임원들이 AI의 약속과 위험에 대한 근거 없는 화려한 주장을 늘어놓으며 중간 중간에 시의적절하게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을 양념처럼 뿌리고, 그럴 때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상원의원들이 귀를 기울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무엇보다도 라지가 가장 충격받은 부분은 청중들 중 많은 이들이 빅테크 임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그는 옆에 앉은 빅테크 임원들과 그들의 거대한 정책팀들이 너무도 오랜 시간 워싱턴 내 메시지를 독점한 나머지 이제 정책결정자들이 그들의 말을 복음처럼 떠받들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지는 말한다. "그 자리를 통해 저는 정말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나서 '사실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 이 말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얘기였다. 내가 오랫동안 여러 편의 AI 책 리뷰를 올리고, 주변 사람들에 AI 이야기를 떠들고 다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합니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고 세상이 인공지능으로 떠들썩 할 때, 현직 프로그래머였던 나는 속으로 혼자 의문을 품었었다. '알파고가 진짜 인공지능이 맞는건가? 일반 컴퓨터 프로그램과 뭐가 다른 거지?' 먹고 살기 바쁜 처지에서 그 의문을 금방 잊었지만, 사법부의 행태에 실망한 많은 사람들이 'AI 판사'를 외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 의문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볼 때 바둑과 재판은 전혀 달랐다. 경우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집 수가 많으면 이긴다는 한 가지 규칙을 가진 바둑과 법규를 원용하고 사회를 반영하여 사람의 삶과 생명을 판가름하는 재판은 결코 같을 수가 없었다. 재판은 게임이 아니었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인공지능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미디어에서 인공지능에 대해 떠드는 이야기들은 찬양 일변도의 미래 세계 이야기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개연성 떨어지는 엉성한 SF 소설 같은 이야기들 일색이었다. 나는 인공지능의 원리를 알고 싶었다. AI는 정말 인공지능일까?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 '인공지능과 딥 러닝', '기계는 어떻게 생각하고 학습하는가' 등 나는 AI의 원리를 쉽게 설명한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책들을 찾아 읽을 수록 나는 인공지능이 지능이 아니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거칠게 말하면, AI는 데이터 패턴 분석이었다.


그런 생각이 강해지면서 나는 이른바 학자, 전문가와 언론인이라는 사람들에게 많은 회의와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들이 미디어로 쏟아내는 말과 글은, 이런저런 현란한 어휘와 인문학적 사유로 포장했지만, 결국에는 빅테크 기업들의 홍보 문구의 변주일 뿐이었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있는 걸까? 저들은 나만큼의 의혹도 품지 않고, 천편일률 똑같은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화려한 세상, 찬란한 미래.


그럴수록 나는 더 많은 책을 찾아 읽었다. 그러다가 만난 책 'AI 지도책'은 인공지능에 관한 나의 생각을 확장시켜 주었다. 이전까지 AI가 지능이 아니라는 생각에만 꽂혀있던 나는 AI 판타지 뒤에 그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공지능 학자 케이트 크로퍼드가 지은 AI 지도책은 지능이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서 시작하여, 지구적 차원의 자원 추출, 인공지능을 떠받치는 인간 노동과 착취, 무분별한 데이터 유출과 감시 자본주의, 편견과 차별의 확대, 부정확한 지식의 확산, 국가 권력의 도구화, 무책임성 등 AI 산업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를 지적한 뒤 묻는다. AI는 누구의 이익에 봉사하는가?


이 책을 접한 이후로 나는 AI를 좀 더 넓은 관점에서 살펴보게 되었다. 그 후로도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데이터 그랩', '박태웅의 AI강의', '천개의 뇌' 같은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이 책, 'AI 제국:권력, 자본, 노동'을 읽으면서 AI 뿐만 아니라 이 테크놀로지 세상이 안고 있는 편견과 위험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빅테크 기업들과 미디어들이 보여주는 깨끗하고 하얀 무균실의 영화 같은 인공 지능의 모습 뒤에서, 아래에서, 먼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자연과 사람의 실제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내 얘기가 진실은 아니다. 세상은 복잡하다.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번개 같다. 누구도 따라잡기 쉽지 않다. AI 산업의 종사자들도 서로 다른 생각과 서로 다른 예측을 하고 있다. 이 AI 세상에서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물며 AI 산업과 아무 관련도 없고, 수학 한 줄 모르는 내가 AI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겠는가? 내가 하는 얘기는 그저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얘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만은 명확하게 단언할 수 있다. '현실은 저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그리고 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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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싱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18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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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의 갈림길' 보다 출간은 늦었는데, 내용상으로는 그 이전의 이야기다. 그래서 검색했다. 원서 기준으로 크로싱은 2015년, 회생의 갈림길은 2020년 출간이라고 한다.

이러면 안되지. 이제는 해리 보슈 시리즈와 미키 할러 시리즈가 사실상 통합된 모양인데, 순서를 바꾸면 내용이 이어지지가 않지.

두 시리즈 모두 RKH 코리아라는 동일 출판사에서 순서에 맞게 출간해오던 것인데, 이건 큰 실수라고 본다. 사실상 하나의 시리즈인 내용인데, 출간 순서를 바꾸다니.


그와 상관없이 내용은 꽤 재미있다. 오랫만에 만난 해리 보슈 시리즈 혹은 미리 할러 시리즈. 뭐든 반갑다. 이렇게 길고 오래 탄탄한 시리즈를 선사해주는 마이클 코넬리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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