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팔레스타인 2 - 만화로 보는 팔레스타인 역사 아! 팔레스타인 2
원혜진 지음,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감수 / 바이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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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 유학 중인 이스라엘 국적의 학생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 전쟁에 참여했지만, 이슬람권의 학생들은 미국에 그대로 남았다는 말이 아무 근거 없이 오르내리곤 했던 적이 있다. 즉 애국심이 이스라엘 학생에겐 있었고 이슬람권 학생에겐 없었다는 말이다.

우리가 가진 이스라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박정희 군부 정권 때부터 뿌리내렸다. 사회적 반발을 달래고 애국심을 강조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성공사례로 가져왔다. 내가 배운 친미 성향의 교육에 따르면 유대인은 탈무드로 교육받아 지능이 우수하고, 고난을 극복한 위대한 민족이다. 그들의 키부츠 성공 사례는 근면, 자조, 협동을 생활화하는 새마을 운동으로 이어졌다.


나치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 집시, 장애인까지 학살했지만, 홀로코스트의 희생이 가져온 동정 여론은 온전히 유대인의 몫이었다. 신성불가침인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의 건국을 정당화하는 토대가 됐다. 또한 유럽은 암묵적으로 이스라엘 정책에 동의하며 유럽이 가진 반유대주의 죄의식을 씻고자 했다.

'엠지엠(MGM), 20세기폭스, 워너브라더스, 콜롬비아, 파라마운트 등 할리우드의 제작사 대부분은 유대인이 창립한 회사입니다. 그들은 홀로코스트나 과거 유대인의 핍박을 담은 대작 영화를 끊임없이 제작해 유대인의 비극을 전 세계에 계속 상기시킨다. (p. 134)'

친 이스라엘 정서와 달리 세계의 눈에 비친 팔레스타인의 이미지는 테러다. 그것도 자살 테러.
'우린 그걸 자살폭탄 공격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자살이라는 말은 삶을 포기한 매우 비겁한 말이며 이슬람에서는 그런 자살을 인정하지도 않아요. 그건 순교입니다. 팔레스타인을 위한 저항이죠. 그런 희생적인 저항은 세상 모든 나라의 역사에서 등장했습니다. (p. 43)'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교전이 벌어지는 것처럼 외신은 전하지만, 실상은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공격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이스라엘 집권 여당은 선거를 앞두고 대공습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까지 했다. 표를 많이 얻으려고 강경 노선을 걸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을 참혹하게 학살했다. 정도가 심해 소수이긴 하지만 이스라엘 내에 반정부 운동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스라엘 국내에서는 언론과 여론의 따가운 눈총에도 1,000여 명의 시민이 모여 가자 침공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이스라엘의 병역 거부 젊은이들은 동영상을 만들어 자신들의 주장을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p. 128)'


20세기 독일 나치는 유대인 거주 지역 게토를 설치해 유대인을 외부와 격리했다. 21세기에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가뒀던 게토처럼 장벽을 세워 팔레스타인인을 고립시켰다. 이스라엘은 이 장벽을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막기 위한 '보안 장벽'이라고 말하면서 감시탑을 세워 팔레스타인인들을 감시한다.

'그들의 말과는 다르게 이 장벽은 농부와 농토, 학생과 학교, 환자와 병원, 노동자와 공장, 서로 만나려는 가족과 가족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p. 76)'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신들의 나라는 없었다. 이스라엘 점령촌만 있을 뿐이었다. 나에게 이 사실은 너무 생소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동할 때가 허가증이 있어야 하고, 온갖 수모를 겪으며 검문소를 통과해야 하는 억압과 통제를 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점령촌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저지르는 폭력조차 전혀 처벌되지 않는다.

'이스라엘 점령촌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제4차 제네바 협약을 위반한 사례 가운데 가장 악랄한 경우 꼽힌다. (p. 162)'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경제도 통제하고 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 기업에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고 이스라엘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을 구매하는 등 팔레스타인 경제는 이스라엘에 철저히 종속된 구조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식민을 오히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귀환한 것으로 정당화하고 있었다면, 박노자 교수의 말처럼 지금부터는 팔레스타인을 '한국적 입장'에서 읽어야겠다.

일본이 한국을 점령했듯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했고, 한국이 일본을 공격하지 않고 저항했듯이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않고 저항했을 뿐이다. 윤봉길, 안중근 의사는 독립투사이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로 간주해 살해한 아메드 야신, 란티시, 아라파트도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외친 이들이다. 하마스는 엄연한 팔레스타인의 정당이다.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오긴 하는 걸까? 이스라엘 북부의 와디 아라(Wadi Ara) 지역에 설립된 두 민족, 두 언어가 공존하는 학교에서 이스라엘 아이와 팔레스타인 아이들은 같이 즐겁게 논다. 이런 풍경이 점차 많아진다면? 이 지역의 희망도 커지리라. 결국 다음 세대에게 실낱같은 기대를 걸어본다.

팔레스타인, 지구상에서 상처가 가장 큰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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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팔레스타인 1 - 만화로 보는 팔레스타인 역사 아! 팔레스타인 1
원혜진 지음, 팔레스타인평화연대 감수 / 바이북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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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의 이야기.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 없으면서 누구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 (p. 4, 추천의 글 - 박재동)'

'한 손에 칼, 한 손에 코란'. 이 메시지로 인해 크게는 이슬람 국가, 작게는 팔레스타인에 대해 우리가 가진 선입견은 폭력과 테러다. 이슬람 문화를 폄훼하려고 퍼뜨린 말이라는 사실엔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연신 웰컴을 외치며 사탕을 손에 꼭 쥐여주던 제닌 시장에서 만난 어느 노숙인과 차 한잔 마시면서 쉬었다 가라던 염소와 양을 치던 베두인 할아버지, 한국인을 만 났다는 이유로 꺅꺅거리면서 정말 행복해하던 지드래곤과 이홍기의 소녀 팬, 언젠가 돌아갈 고향 집의 낡은 열쇠를 보여주며 눈은 울고 입은 웃던 난민촌 할아버지까지. (p. 10, 개정판을 내면서 - 원혜진)'

우리의 고정관념대로라면 위의 풍경은 이스라엘에 좀 더 가깝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만화로 보는 팔레스타인 역사' <아! 팔레스타인>의 저자 원혜진이 첫 팔레스타인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이다.


2000년 9월 30일. 열두 살 소년 라미 자말 알두라가 아버지와 함께 중고차 시장에 다녀오던 중 시위대를 진압하던 이스라엘 군과 맞닥뜨린다. 총구를 겨눈 이스라엘 군을 향해 쏘지 말라며 아버지 자말 알두라는 절규한다. 수차례 총성이 울렸고 소년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 장면은 사건이 일어났던 바로 그때, 부근에 있던 프랑스2TV 카메라에 포착되어 텔레비전에 방송되었다. 맨몸인 아버지와 아들을 향해 총구를 들이민 이스라엘의 잔학한 행위를 두고 당시 팔레스타인 의회 의장이었던 아메트 케레이어는 "세상에서 인간이 목격할 수 있는 추악한 장면"이라고 말했다. (p. 22)'

이 장면에 원혜진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대해 갖고 있던 자신의 선입견에 의문을 가진다. 원혜진이 아는 이스라엘이 21세기에 이런 짓을 한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은 기원전 2100년경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차지하기 위해 25년간 여호수아는 가나안 토착민 필리스틴인을 몰아내며 정복 전쟁여호수아다. 20세기에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필리스틴인을 무참히 짓밟듯, 팔레스타인에 멀쩡히 살고 있는 원주민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했다. 야만인을 죽이는 것이 신의 명령인 양 아메리카 신대륙의 원주민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한 유럽 백인들과 흡사하다.


고등학생 시절 박영한의 소설 <머나먼 쏭바강>은 베트남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바꿔놓았다. 베트콩은 나쁜 놈들이고 미국은 좋은 나라라는 미국 관점의 내 생각을 베트남의 입장으로 바꾸고 보니, 베트남 전쟁은 베트남 주권을 빼앗으려는 미국에 대항한 독립 전쟁이었다.

'김구, 안중근, 윤봉길, 홍범도 등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싸우신 분들을 일본은 지금도 테러리스트라고 부릅니다.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는 그들 또한 미국과 이스라엘은 테러리스트라 매도하고 있습니다. (p. 12, 13 [초판] 작가의 말)'

만약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1945년에 우리나라가 독립하지 못했다면? 우리의 모습이 팔레스타인의 모습이지 않을까? 이스라엘 역사가 우리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아! 팔레스타인 1>을 읽으면 팔레스타인 역사가 우리와 더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민족', '혈통' 위주의 집단의식이 어떤 파멸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아! 팔레스타인>을 '한국적' 입장에서 읽기를 권장한다. (p. 8, 추천의 글 - 박노자)'

팔레스타인, 지구상에서 상처가 가장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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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파일 명화 스캔들
양지열 지음 / 이론과실천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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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법률 이슈와 그림이다. 변호사, 기자, 철학 세 가지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라면 쓰기 힘든 주제의 글들을 참 쉽게 써 내려갔다. (뒤표지, 신장식 변호사)'

<사건 파일 명화 스캔들>은 '김태현의 정치쇼'라는 라디오 프로그램 속 '살롱 드 지' 코너에서 양지열 변호사가 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 책이 흥미로운 건 한 폭의 그림에서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을 풀어내는 새로운 시도라는 점이다. 딱딱한 법이 말랑말랑해진다.


주세페 크레스피의 <큐피드와 프시케>. 프시케는 밤마다 찾아오는 남편의 정체가 궁금했다. 결국 언니들의 부추김에 곤히 잠든 큐피드의 이불을 걷어버린다. '사랑은 의심과 함께 머물 수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큐피드는 떠난다.

배우자 또는 상대를 의심해 개인정보를 돈을 주고 산다(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싹튼 의심이 생사람을 잡곤 해서 법적 분쟁 까지 가 아름답지 못한 결론에 이른다. 무엇보다 사랑에 필요한 건 신뢰가 아니까?

'의심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는 겁니다. (p. 32)'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판도라의 상자>. 제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에피메테우스가 못마땅했다. 골탕 먹이려고 아름다운 여인 판도라(최초의 여성)와 함께 상자를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낸다. 호기심에 판도라가 그 상자를 연다. 성경 속의 이브, 판도라, 왜 세상에 재앙을 불러온 이들은 모두 여성일까?

경찰 내부에서 여자 경찰관을 동료 경찰관이 성폭행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피해자가 합의금 요구를 거절하자 이 사건은 뜻밖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주변 동료들이 여자 경찰관의 말은 무시하고 오히려 비난하고 모욕을 주며 휴직을 요구했다. '그 여자 그럴 줄 알았다.' 등등의 2차 가해는 여성을 향한 뿌리 깊은 편견이 출발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에게 부당하게 가해진 저주로부터 이제는 벗어나야겠습니다. (...) '판도라'라는 이름 자체가 '많은 선물을 받은 여인'이라는 뜻인데요. 여성의 잠재적 재능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신화에 따르면 인간의 문명은 판도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p. 118)'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우르비노 공작 부부의 초상>. 특이하게도 옆모습인 초상화의 우르비노 공작 콧날 위쪽이 뚝 끊겼다. 결투를 벌이다 한 쪽 눈을 잃은 공작은 시야를 가리는 콧등을 잘라냈다. 이 그림의 비밀이 하나 더 있다. 마주 보는 부인의 얼굴이 창백한데 죽었기 때문이다. 공작은 부인을 무척 사랑했고 그림 속에서조차 아내를 그리워했다.

과장 광고, 잘 생긴 외모를 선호해 이미지 조작이 일상인 세상, 실제 모습과 진실이 숨겨진 세상에서 우리는 산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흔적을 자신의 신체 어딘가에 새기기 마련입니다. 그 흔적의 참된 의미를 어떻게 해야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외모로만 평가한다면 결코 진실한 모습을 발견할 수 없을 겁니다. (p. 182)'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림 오른쪽 아래에 왜소증 소녀가 눈에 들어온다. 당시 귀족은 장애인을 시종으로 부리며 때로 웃음거리, 구경거리로 만들었다. 수요가 늘어나면서 가난한 집 어린아이들을 납치해 일부러 기형으로 만드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벨라스케스는 왕의 총애를 받는 궁정화가이고 스스로도 높은 신분의 귀족이었지요. 그의 눈에는 모두가 평등한 것으로 보였답니다. (...) 적어도 그의 그림 속에서만은 모두가 평등한 존재였습니다. ( p. 202, 203)'


'법원은 과거를 심판할 뿐 미래의 설계도를 그리지는 못합니다. (p. 147)'

한 손에 저울, 다른 손에 칼을 쥔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가린 이유는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서다. 눈가림은 법 앞에서 누구나에게 공정하고 공평한 판단을 의미한다. 편견과 착각에 빠지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요즘 법을 집행하는 이들에게 눈가림은 없다. 오히려 눈을 크게 뜨고 자신만의 이익을 쫓고 차별을 일삼는다. 저울은 팽개치고 칼만 휘두른다. 서슬이 퍼렇다. 차갑다. 오싹하다.

이 책의 저자 양지열 변호사의 그림을 보는 눈과 그의 글은 따듯하다. 이런 법조인이 눈에 띄는 건 참 다행스럽다. 따뜻한 법 이야기를 읽게 돼 좋았다. 머리는 차가울지라도 법의 마음만은 따뜻했으면... 그런 세상을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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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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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미술관>의 저자 탁현규는 고미술계 최고의 해설가이다. 그는 이 책에 조선 문화절정기의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를 담아 특유의 해설로 특별한 순간을 이야기한다.

'풍속화가 사생활이라면 기록화는 공공생활이고 풍속화가 드라마라면 기록화는 다큐멘터리다. (p. 9)'

당시 그림은 사진을 대체했다. 통치자는 자신의 임무를 되새기기 위해 백성들의 사는 모습에 관심을 가져야 했고, 사람들의 풍속을 그린 풍속화를 보며 백성들의 생활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이 책 <조선 미술관>에 실린 50여 점의 그림과 탁현규의 설명을 통해 조선 후기의 백성들의 일상과 왕실, 상류사회의 성대한 잔치 모습을 우리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은 사람 구경이라고 했던가.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모습을 그린 풍속화는 산수화만큼 사랑받았다. (p. 12)'

저자는 그림 한 장에서 스토리를 찾아내고 신윤복, 정선, 김홍도를 비롯한 7인이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지 연출 의도를 알려줘 매우 흥미롭다.

<귀인응렵貴人鷹獵>에서 김홍도는 사슴 다리와 말 다리를 가려놓아 '다 그리면 재미없다'라는 법칙을 지킨다. 뒷배경도 나무 한 그루만 그리고 비워놓아 오롯이 말탄 선비에게만 집중해서 감상하도록 한다.

<밀희투전密戲投錢>에서 김득신은 패를 쥔 네 명의 손짓을 다르게 그려, 각자 속마음이 다른 도박판의 상황을 나타냈다.

정선 역시 <어초문답漁樵問答>에서 어부의 얼굴을 다 그리지 않아 '다 그리면 재미없다'라는 법칙을 어기지 않는다. 이 그림은 중국 것을 소재로 그렸지만, 멜대를 지게로 바꾸고 중국 그림에서 서있는 어부와 나무꾼을 땅바닥에 앉혀 느긋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그림으로 조선화化를 이끌어냈다.

노상에서 두 부부가 만나는 <노중상봉路中相逢>에서 신윤복은 눈빛 교환만으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삿갓 쓴 여인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에서 미모 경쟁을, 미모의 부인을 둔 남성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빛에서 시샘을, 남성의 눈빛에서는 자신감을 담아내 심리묘사를 극적으로 연출했다.


'풍속화와 더불어 조선인들의 삶을 볼 수 있는 또 다른 그림이 공공 모임을 그린 기록화이다. (...) 기록화 가운데 압권은 임금이 등장하는 궁중기록화이고 그 가운데 역시 희귀성에 있어 으뜸은 임금이 기소에 들어간 사건을 그린 기사첩耆社帖이다. (p. 156)'

기로소는 기로사耆老社 혹은 기사耆社라고도 하는데 70세 이상 정 2품 이상의 문신들이 들어가는 영예로운 모임을 일컫는다. 왕은 이들과 달리 60세가 되면 들어갈 수 있었다. 숙종과 영조의 기로소 입소 잔치 기록인 <기해기사첩>과 <기사경회첩>을 보며 당시 사회가 노인을 얼마나 우대했는지와 두 화첩의 그림으로 두 왕조의 문화 수준 차이를 가늠할 수 있다.

이를테면 숙종은 사치와 향락을 경계하였으므로 당시 기록 화첩에서는 기녀가 등장하지 않는 반면 영조에 이르러서 <본소사연도本所賜宴圖>에는 머리에 꽃을 꽂은 춤추는 기녀들이 등장한다.


도슨트 탁현규의 <조선 미술관>은 일종의 그림 '감상하기'를 알려주는 책이다. 미술관의 각종 오디오와 미디어로 작품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림을 찬찬히 응시한다면, 저자처럼 그림 한 장에서 스토리를 찾아 읽어내기가 가능하고 작가의 연출 의도를 끄집어내게 될지도 모른다. 제대로 감상하는 한 장의 그림이 선조들과 우리들을 이어주는 진정한 교감이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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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 Rock - A급 밴드의 B급 음반
사은국 지음 / 도서출판 11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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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시절에 내가 들은 음악은 온통 외국 팝송뿐이었다. 그것도 대부분이 ROCK. 대부분 이 책에 소개된 밴드들이다. 비틀스, 크림, 핑크 플로이드, 이글스, 딥퍼플, 본조비, 레드 제플린... 이들 밴드의 이름을 나열하기만 해도 그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대학가요제의 산울림,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고 나서야 우리 가요를 들었지 그전에는 한국 가요를 듣는다는 건 좀 촌스러운 느낌이랄까? 올드하고.

몰려다니며 주크박스에 동전을 넣어 팝송을 들었고, 돈을 주고 공테이프에 내가 좋아하는 밴드의 플레이리스트를 담은 후 놀러 가면 커다란 카세트 플레이어에 테이프를 넣고 크게 틀어 듣곤 했다. 대기하고 있다가 라디오 음악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래서 음악 방송 MC는 노래 중간에 절대 멘트를 넣지 않는 것이 요즘 말로 국룰이었다.

돈을 아껴 작은 사이즈의 팝송 책을 사기도 했다. 노랫말을 외우다 뜻이 궁금해 영어사전을 찾다 보면 영어 단어 공부에도 도움이 됐고, 코드를 보면 기타를 익혔다.


'이 책에서는 이해와 분류의 편의를 위해 과감하게 'A급 밴드'와 'B급 음반'이라는 기준을 적용했다. 'B급 음반'이라기엔 견고한 완성도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밴드의 이후 나아갈 길을 결정한 앨범도 이에 포함시켰다. 독자들의 너른 이해를 바란다. (p. 10)'

2021년 출간한 사은국의 <헤비메탈 계보도>가 헤비메탈 밴드와 음반의 이야기라면 <AB ROCK>은 록 음악 전반의 A급 밴드 20을 추려 멤버, 매니저, 프로듀서 사이의 이야기와 그들의 B급 음반에 얽힌 이야기를 담았다. B급이라 평가받는 음반들은 명반과 명반을 이어주기도 하고, 밴드의 성공 또는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됐다.

또한 이 책은 어디 가서 잘난 척하기에 안성맞춤인 스토리가 풍성하다.
'이번 책에서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는 정보뿐만 아니라 유튜브 자료, 영어 원서까지 참고해서 글을 쓰고자 하는 주제에 맞게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알찬 정보와 스토리가 글을 읽는 독자에게 전달되도록 신경 썼다. (p. 279)'


각 챕터를 읽을 때마다 해당 음반을 유튜브에서 찾아 들으면서 읽어나갔다. 그래야 이 책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림은 1960년대 중반부터 영국에서 싹트기 시작한 블루스 록이 사이키델릭 록을 거쳐 하드 록, 나아가 헤비메탈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에릭 클랩턴(기타, 보컬), 잭 브루스 Jack Bruce(베이스, 보컬), 진저 베이커 Ginger Baker(드럼) 세 명으로 구성된 크림은 록 역사에서 훗날 무수히 생겨나는 슈퍼그룹의 효시이자, 파워 트리오 포맷의 전형을 보여준 밴드였다. (p. 57)'

천재인 세 멤버가 크림의 장애물이었다. 라이브 공연에서 연주는 융합된 사운드가 아니라 개인기 대결로 변해버렸다. 팬들은 열광했지만 멤버들은 서로 진저리 쳤다. 짧지만 강렬했던 2년의 활동은 급정거하며 끝나 버렸다.

마지막 앨범 <Goodbye>는 매니저와 음반사의 돈벌이용 합작품이었지만, 크림의 장점을 살린 세 곡의 라이브와 세 곡의 스튜디오 신곡으로 구성돼 크림의 사운드를 맛보기 좋은 입문용 음반이 되었다.


믹 제거와 키스 리처드의 롤링스톤즈. '1960년대 록 음악 혁명을 진두지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롤링스톤즈는 1970년 4월, 비틀스가 해체하면서 왕좌에 올랐다. (p. 193)'

1960년대와 70년대 80년대까지 록 음악의 정점에 있던 롤링스톤즈. 베이시스트 빌 와이먼이 쉰둘이라는 나이에 열여덟 살의 맨디 스미스와 결혼하여 세상을 충격에 빠뜨리는 등 위기 속에서 음반 <Steel Wheels>로 발돋음하며 1989년 말 컴백 무대를 마련한다. 팔순을 눈앞에 둔 멤버들은 '롤링스톤즈'라는 밴드 이름에 걸맞게 지금도 멈추지 않고 굴러가고 있다.


영화 같은 삶을 산 프레디 머큐리의 퀸, 그래서 영화(보헤미안 랩소디)가 만들어졌겠지만. 영화 속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 재현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1985년 7월 13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동시에 열린 라이브 에이드 Live Aid 공연은 퀸이 부활한 전설적인 순간으로 기록됐다. 한물간 밴드란 소리를 듣던 퀸은 프레디 머큐리의 압도적인 무대 장악력과 퍼포먼스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퀸이 쇼를 훔쳤다"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로 라이브 에이드 무대는 대성공이었다. (p. 233)'

프레디 머큐리 생전 마지막으로 투혼을 불사른 앨범 <Innuendo>는 스완송으로 불릴만하다. 이 앨범에 수록된 <These Are the Days of our Lives> 뮤직비디오는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하기 6개월 전에 촬영했다. 흑백 화면 속의 그의 얼굴에는 병색이 완연하다. 1991년 11월 24일, 합병증인 기관지 폐렴으로 사망한 그는 마지막까지 퀸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 <Made in Heaven>의 보컬 트랙 녹음을 계속했다.


잠시 10대로 돌아가 추억을 즐기며 읽은 책이었다. 음악을 들으면 음악만 생각나겠는가. 음악과 연결된 사연들, 나이가 들었어도 그때의 일상을 기억하는 경험은 언제나 설렌다.

록이 생소한 요즘, 랩이나 K 팝에 가려져 록을 찾아 즐기기 어렵겠지만, 60년대부터 길게는 90년대까지 음악의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한 장르이니 만큼 관심을 가져봄직하다. 만약 관심이 있다면 입문서로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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