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떨어진 화살을 굳이 가슴에 꽂지 마라 - 한·중·일 50만 독자를 위로한 신경 쓰지 않는 연습
나토리 호겐 지음, 이정환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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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참 뜻대로 안된다. 하긴 세상일이 내가 마음먹은 대로 척척 이루어진다면 그 또한 불만일 테지만 말이다. 그 어느 것보다 맘먹은 대로 안되는 게 부부 사이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은 내내 우리 부부 사이에 어떻게 적용하면 이 책이 우리 부부에게 처방전이 될까... 이런 생각으로 머리를 꽉 채웠다.


저자 나토리 호겐은 30년 넘게 수행을 삶으로 이어온 승려다. 이 책을 시작하면서 그는 "당신은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불교가 항상 묻는 물음이라고 한다.

이 질문에 2500여 년을 이어온 불교가 내놓은 대답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언제나 마음이 평온한 사람이 되고 싶다"이다. 저자는 불교를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마음이 평온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이들을 위해 설법하는 콘텐츠'라고 정의한다.

다툰 다음 넋두리하듯 아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그래~ 우리 집은 나만 입다물고 있으면 평온하지, 다 내 잘못이야 내 잘못...'

왜 이런 말을 할까? 혼란하기 때문이라 생각이 든다. 우선 뭔가 틀어지게 된 게 누구 때문인지 불분명하다. 그다음, 한쪽이 이해하고 참았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그럼 누가 참아야 했을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더욱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진 게 짜증 난다. 심하게 다투다 보니 서로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했고 그 결과 둘 다 상처를 입었으니 다투기 전 상황으로 되돌아가기도 글렀다.

'어디까지나 인간이 가진 지혜의 힘으로 마음의 평온을 얻자는 뜻에서 책을 썼다. 불교에서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자신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다. 그러니까 마음이 흐트러졌을 때야말로 그 능력을 발휘할 기회다.(p. 7)'

내게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그런 능력이 있다고? 그런데 허구한 날 다퉈서 평온을 깨뜨린단 말인가? 그 능력이란 걸 내가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발휘'할 수 없는' 능력임에 틀림없다.

이 책의 원제가 <신경 쓰지 않는 연습>이라고 한다. '연습',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뜻을 덧붙이면서 '발휘할 수 없는 능력'이라고 탓하지만 말고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능력을 발휘하는 연습'을 해보자고 한다. 가정을, 부부 사이를 평온하게 만드는 능력을 발휘해 보자고.


우리 부부는 왜 다툴까?

집착 때문이다. 아내가 내 맘을 몰라줄뿐더러 내 뜻대로 따라 주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포기하면 되지만 가까운 사이일수록 포기 대신 집착이 그 자리에 쌓여간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도 다툼의 원인이다. 칭찬해 주기 보다 상대가 먼저 칭찬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앞서는 게 문제다. 이런 마음을 포기하고 내가 먼저 칭찬하면 되는 데 '꼭 말을 해야 아냐'며 핑계 삼는다.

'바꾸어 말하면 칭찬받고 싶다는 욕구는 사랑받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도움이 되고 싶다는 세 가지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 충족된다. 사치스럽다는 느낌도 든다. (p. 74)'


서로 받은 상처를 어떻게 회복해야 할까?

지난 일을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말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분노해서도 안된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화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분노는 욕망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방종放縱, 마음의 집중을 잃어버리는 산란散亂, 위해를 가하려 하는 분忿, 다른 사람의 약점을 공격하는 뇌惱,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는 해害 등의 번뇌를 잇달아 발생시킨다. (p. 206)'


마음을, 부부 사이를 평온하게 만드는 능력을 발휘하는 방법으로 나토리 호겐은 습관을 바꿈으로써 '신경 쓰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라고 권한다. 느낀 대로 차분하게 긍정을 말하고, 삶의 태도는 정중하게 그리고 집착과 미련을 버리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무심하게 살기를 권한다. 무심과 무관심은 다르다. 외부 세계를 차단하는 것이 무관심이라면 무심은 무작정 차단하지 않으면서도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는 것을 뜻한다.


우리 부부는 만난 지 2개월 만에 결혼했다. 그래서 한때 결혼 상대를 놓고 오랫동안 고민하거나 결혼에 자신 없어하는 후배를 만나면 같잖게 바둑 격언으로 충고하곤 했다. '장고長考 끝에 악수 둔다고...'

'부부는 타인이다. 태어나고 자란 환경이 다른 만큼 둘이 생활하려면 어떻게 맞추며 살아갈 것인지 잘 타협해야 한다. 죽을 때 "당신과 결혼해서 정말 행복했어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두 사람이 가진 사고방식을 조정하고 타협하려는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 (p. 311)'

쉽고 다정하게 부처의 말을 전해주는 승려 나토리 호겐이 던진 "당신은 장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라는 질문, 아니 "어떤 부부가 되고 싶습니까?"에 답을 해보자면...

이제까지 굳이 가슴에 꽂지 않아도 되는 화살을 꽂으면 살았으니 이제부터라도 서로 맞추고 타협하는 연습을 해서 땅에 떨어진 화살을 굳이 줍지 않겠노라고 대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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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는 일
채수아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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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아 작가와 마주 앉아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듯이 읽어간 책이었다. 진솔한 이야기 88편을 영혼의 자서전, 에세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담았다.

당연히 작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내가 떠올랐다. 시어머니와 에피소드에서는 69세라는 비교적 짧은 인생을 사신 나의 어머니가 생각났다. 너무 닮은 삶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여자의 일생이 어쩜 이리 닮았을까. 참는 삶 말이다.

'나 하나만 참으면 되었다. 아주버님 부부도, 고모도, 남편도, 우리 아이들도 모두 행복해 보였다. 그 세월이 17년 동안 이어졌다. (p. 5, 프롤로그)'

'그래~ 우리 집은 나만 입다물고 있으면 평온하지. 다~ 내 잘못이야 내 잘못...' 내 아내가 자주 넋두리하듯 내뱉곤 하는 말과 너무 닮았다.


채수아 작가는 아버지 복이 있어 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는 딸이기도 했다. 자신의 꿈을 접고 아버지가 원하는 선생님이 된 것도 아버지 사랑의 결과였다.

하지만 결혼 후 작가는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시어머니의 짜증 섞인 말투, 남을 무시하는 험담, 부정적 기운, 게다가 습관처럼 하는 거짓말까지... 이토록 힘들었던 건 작가의 아버지와 너무 달라서였다.

결혼 전에는 작가의 마음에 미움이 자리 잡을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남편을 만난 후 미움도 배웠다. 한때 수녀가 자신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여길 정도로 상처 깊은 사람에게 온기가 되어줄 자신이 있었던 그였다.

작가는 힘듦, 미움, 상처... 사랑의 다른 모습으로 찾아온 그 모든 걸 회복해냈다. 사랑으로 치유했다.

'삶에서 가장 필요한 건 사랑이고, 가족의 사랑이 으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엄마는, 아내는 좀 더 힘을 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아내는 '집안의 해, 안 해이기 때문이다. 햇살이기 때문이다. (p. 217)'


채수아 작가와 마주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들은 후 아쉬움 마음이 앞섰다. 나의 어머니, 아내 그리고 채수아 작가 이들 셋이 닮은, 아니 많은 여자들까지도 포함해서 닮은 여자의 일생에서 남는 아쉬움이다.

작가와 여자들의 삶이 딸로서 부모 이야기, 며느리로써 시부모 이야기, 아내로서 남편 이야기, 엄마로서 아이들 이야기, 그리고 선생님으로서 학생들 이야기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내가 빠졌다. 내 이야기 있다손 치더라도 구석자리 웅크리고 앉아 얼굴을 다리에 파묻고 있다.

내가 참으니 아주버님, 고모, 남편, 아이들이 행복해 보였고, 나만 입 다무니 가정이 평온했다니. 그럼 난... 나의 행복과 평온함은 어디에 있나. 딸로서,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온 삶을 돌아보니 그 행복과 평온함이 희미해 '여자의 일생'이 허탈해한다.

'내 삶의 이야기를 읽은 당신과 마주 앉아 있는 기분이다. 당신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위의 댓글처럼 당신도 위로받고 힘이 났으면 좋겠다. 사랑은 참 힘든 일이지만, 결국은 늘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를 향한 사랑과 상대방을 향한 사랑은 둘 다 소중하다. (pp. 266, 267)'

나의 책 친구 채수아 작가도 나의 아내도 작가의 말처럼 '나를 향한 사랑과 상대방을 향한 사랑 둘 다 소중'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나를 향한 사랑을 상대방을 향한 사랑보다 더 많이 하고 소중하게 여기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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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 건강하고 청결하며 질서 정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왜 병들어가는가
구마시로 도루 지음, 이정미 옮김 / 생각지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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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전 위층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 왔다. 윗집에서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났지만 이사했으니 정리할 것이 많으려니 했다. 한편으론 걱정도 생겼다. 먼저 살던 사람이 이사 온 후 3개월 동안 조금씩 집을 고치면서 살아서 얼굴 붉히는 일이 생겼고, 서로 앙금이 싹 가시지 않은 채 이사 갔기 때문이다.

이틀이 지났는데도 쿵쿵거렸다. 관리실에 조치를 부탁했고 마무리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웬걸? 그다음 날은 밤 12시 넘어서까지 뭔가 조립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올라가 따질까 하다가 참았다.

층간 소음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불쾌감을 드러내는 데는 저의가 깔려있다. 아파트에 살면서 나도 예의를 지키니 당신도 예의를 지키는 것이 마땅한 도리 아닌가. 내가 지키는 것을 당신은 지키지 않는 건 참을 수 없다. 아파트에서 쾌적함을 누리려면 서로 지켜야 할 예의범절이란 틀에 군말 없이 밀어 넣어야만 한다는 생각,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정의가 됐다.


'말하자면 자본주의와 사회계약, 개인주의와 같은 근대 사상이 동아시아에 침투하면서 어떤 현상이 나타났는지를 추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p. 7)'

시골 마을에서 자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구마시로 도루는 과거의 시골과 현대의 도쿄를 오가며 변화를 발견했다. 그것은 현대사회가 예전보다 청결하고 건강하며 질서정연하지만, 서로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하는 어색함이었다. 자유롭지만 동시에 그 자유가 제약하며 부자유를 만들었다.

질서정연한 거리에서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눈총을 받는다. 식당에서 아이가 밥투정을 한다든지 운다면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조금만 산만해도 ADHD로 규정해 치료대상으로 분류한다. 정신의료가 환자의 편에 서야 하지만 사회 활동에 적격인지 부적격인지를 판단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자본주의 논리는 출산과 육아마저 비용 대비 효율에 가둬버린다.

'도쿄 같은 도시에서는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하는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 개개인이 오늘날의 질서에 맞는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한 결과, 도쿄와 그 주변 지역의 젊은 세대 상당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다. (p. 174)'

남학생 따로 여학생 따로 몰려 앉는 풍경이 요즘 대학교 강의실 모습이라고 한다. 누군가 옆에 앉을 때 '앉아도 될까요?'라고 물어보고 허락이 있어야 앉는 것이 요즘 청년들의 예의다. 무례함에서 벗어났지만 대신 그 자리에 따뜻함이라곤 전혀 느낄 수 없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싸늘한 친절함'이 자리 잡았다.

'일례로 여성과 사귀고 싶은 남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는 자신과 의사소통해 줄 만한 여성과 만나야 한다. 만약 그 남성이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조건을 여러 개 갖추고 있다면 의사소통은 쉬워진다. (...) 반면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한 남성은 여성들이 멀리하기 쉽고, 여성과 의사소통할 기회 자체가 줄어든다. (p. 238)'

요즘 홈트도 열심히 하고 그 좋아하는 탄수화물을 멀리한다. 매일 꼬박꼬박 영양제도 챙긴다. 건강을 위해서다. 아내가 내게 주문처럼 하는 말이 있다.
"건강해야 살아야 돼.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의료기술이 발달한 사회에 살다 보니 건강은 더 이상 삶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노화될 권리마저 잃어버렸다.


이틀 후 먹거리를 들고 미안하다며 위층에서 찾아왔다. 그리고 그날 이사 온 이웃이 우리랑 같은 교회 다니는 분들이란 이야기를 딸아이로부터 전해 들었다.

미안하다면 찾아온 위층 분이 얼마나 고마운지, 아내와 천만다행이라면 마음을 놓았다. 참지 못하고 올라가 따졌다면? 엘리베이터에서야 모른체하며 지낸다지만 교회에서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파트의 질서와 예의가 정의랍시고 그 정의를 정의롭게 실현했으면 어쩔 뻔했나. 먼저 살던 이웃처럼 앙금을 갖고 쭉 지냈을 게 분명하다.

아파트의 질서가 예의가 이웃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할리 없다. 가끔씩은 소음이란 불쾌함을 서로 받아들일 때 옛 시절에 이웃들과 나눴던 정을 되찾게 된다.

'나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살고, 부자유로 고통받는 사람이 적은 사회가 실현되길, 그리고 이러한 사회가 다음 세대에도 이어지기를 바란다. (p. 298)'

쾌적함을 위해 사회가 제시한 기준, 그 틀을 깰 때 오히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에서 벗어나 인간다움과 자유를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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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
찰스 킹 지음, 고광열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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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가 처음 내 관심 안으로 들어온 건 14세기 유럽 인구의 4분의 1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가버린 페스트가 흑해 크림반도의 카파를 통해 유럽에 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물론 사실인지는 불분명하다).

이상한 질병이 칸의 군대 사이에 퍼져 병사들이 쓰러졌다. 칸은 지휘관에게 죽은 병사들의 시체를 투석기에 실어 성벽 너머 도시 안으로 던지라고 명령했다. 카파 주민들이 병에 걸렸고, 증상이 칸의 병사들에게 나타났던 것과 비슷했다. 1347년 카파에서 출항한 배 한 척이 제노바로 향했다.

'데 무시는 여행 중에 선원들이 원인 모를 병에 걸렸고, 그들이 도중에 정박한 곳마다 - 즉 늦여름 콘스탄티노폴리스, 초가을 시칠리아, 1348년 1월 제노바의 - 항구에서 도시 중심부로 질병이 빠르게 번져나갔다고 보고했다. 타타르 군대를 괴롭혔던 바로 그 치명적인 질병이 이제 해상 항로를 따라 이탈리아 본토로 되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p. 176)'

흑해 최대 휴양 도시 소치가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는 편파 판정 의혹 속에 아깝게도 금메달을 놓쳤다. 다시 한번 흑해가 내 관심에 들어왔다.

'이는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흑해와 북카프카즈, 남부 러시아를 통합하는 전략적 투자였다. 소치는 아조프해에서 압하지야까지 이어지는 러시아 남부 해안의 핵심 거점이 됐고, 올림픽 이후에도 정상회담과 문화 행사가 끊임없이 개최되는 푸틴 체제의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p. 429, 옮긴이의 말)'


흑해가 내게만 관심밖에 있었던 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인에게도 흑해는 세계의 끝자락이었다. 그리고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다른 건 몰라도 흑해에 대해 두 가지는 알고 있었다. '하나는 그 바다를 항해하려면 강철 같은 의지와 그보다도 더 강한 배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p. 42)'

국제학 전문가이자 유라시아 지역 연구 권위자인 찰스 킹 교수는 그의 책 <흑해>에 흑해 지역의 2,700여 년 역사, 주변 민족들의 역사와 문화, 정치를 하나로 엮어 간결하게 담아냈다.

저자는 그 시대에 흑해를 지배했던 세력의 언어로 각 장의 제목을 삼았다. 기원전 700년부터 기원후 500까지 흑해 연안은 그리스 식민 도시들이 장악했다. 그때 흑해는 라틴어로 '폰투스 에욱시누스', 의미는 '환대하는 바다'이다. 그 이후 1500년까지 흑해의 주인공은 비잔티움과 제노바 베네치아 상인들이다. '큰 바다'를 뜻하는 이탈리아어 '마레 마조레'가 흑해의 이름이다.

오스만 제국이 흑해를 장악했던 1500~1700년 시기의 흑해는 튀르크어로 '검은 또는 어두운 바다'를 뜻하는 '카라 데니즈', 1700이후 1860년까지 러시아 제국이 흑해의 새로운 패권국일 때 흑해는 '검은 바다'를 의미하는 러시아어 '초르노예 모레'이다. 근대화 시기부터 두 차례의 세계대전, 냉전, 소련 해체까지를 다루는 6장이 돼서야 비로소 영어 '흑해 Black Sea'가 제목으로 등장한다. 마지막 7장에서 저자는 흑해의 미래를 전망하면서 그의 흑해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동부 지중해와 흑해를 바라보는 서양인 대부분의 머릿속에 박힌 잘못된 이분법 세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는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이분법이고, 둘째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이분법이며, 셋째는 문명과 야만 사이의 이분법이다. (p. 418)'

흑해는 이분법의 '경계'로 여겨져 왔을 뿐만 아니라 언제나 세계의 끝자락, 변방이었다. 하지만 찰스 킹이 각 장의 제목으로 삼은 다양한 언어의 흑해 이름으로 살펴봤다시피 흑해는 경계나 변방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곳이 아니었다. 시대마다 여러 문명권의 중심 무대였으며, 그 시기마다 역사가 시작되는 곳이었고 세계를 연결을 연결해 주는 바다였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함으로써 흑해는 다시 한번 세계가 바라보는 곳이 됐다. 꽤 오래전부터 러시아는 흑해에 집착했다. 러시아는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가 부족하다. 흑해만이 러시아 해양 진출의 길을 열어준다. 크림반도는 군사요충지이기도 하다.

러시아뿐만 아니라 흑해를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 조지아, 튀르키예, 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밖에 EU 회원국에게도 흑해는 갈등과 협력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알고 보니 흑해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략적 선택이 이루어졌고 또 앞으로도 이루어져야 할 바다였다.

'역사와 사회 연구에는 육지 중심의 편견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 우리는 역사와 사회생활이 땅 위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그러나 대양과 바다, 강들은 단순히 통로나 경계가 아니라 인간의 상호작용과 교류라는 독특한 이야기들의 핵심 주역으로서 자기만의 역사가 있다. (p.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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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 행동을 결정짓는 40가지 심리 코드
폴커 키츠.마누엘 투쉬 지음, 김희상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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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부분 '빠른 생각'으로 살아간다. 휴리스틱 Heuristic, 불확실하거나 여유가 없을 때 꼼꼼하게 따지기보다는 이제까지 경험이나 직관으로 어림짐작한다. 생존을 위해 휴리스틱이 효율적이라는 걸 우리 뇌가 학습한 결과다.

게다가 뇌는 게으르다. 될 수 있는데도 일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느린 생각'을 계속하면 뇌에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빠른 생각으로 주장한 것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 바로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느린 생각으로 빠른 생각을 정당화할 궁리를 한다.

사상 최초로 심리학자인데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커너먼이 그의 책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펼친 내용이다. '인간은 합리적'이라는 고전 경제학의 전제를 완전히 뒤집고 '인간은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커너먼과 마찬가지로 심리학을 공부한 폴커 키츠와 마누엘 투쉬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우리가 왜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선택과 감정, 인간관계가 무의식적인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지 40가지 심리코드로 설명하는 책이다.

퇴근하고 잠실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할 때마다 '스티커 하나만 붙여주시겠어요?'라는 부탁을 하며 접근하는 청년을 만나곤 했다. 이들이 사용하는 심리코드가 바로 누구나 거부할 수 없는 작은 부탁을 하는 '문간에 발 들여놓기 기법 Foot-in-the-door technique'이다. 스티커를 붙이는 순간 경계를 풀며 마음의 문을 열게 돼 더 큰 부탁까지 들어주게 된다.

얼마 전 전 정부의 국무총리 내란 혐의 재판에서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했다. 왜 그런 중형을 선고했는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여러 죄목 가운데 하나로 국무총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책무, 즉 비상계엄 선포를 적극적으로 저지했어야 할 '작위作爲' 행위를 하지 않은 '부작위不作爲'의 죄를 물었다.

'뇌는 대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 도덕적으로 더 낫다는 사실을 '안다.' 게다가 게으른 탓에 이런 앎을 모든 경우에 적용하는 일반화를 저지른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더 편안하게 여긴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자기 자신이 괴로울지라도 별다른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 pp. 124, 125 부작위 편향)'

12.3내란이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작위 하며 오히려 내란 세력에 가담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이 재판장의 판단이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꽤나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존재라고 여긴다. 하지만 대니얼 커너먼이 그리고 이 책의 저자들이 실험을 바탕으로 지적한 대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심리 코드에 따라 행동을 결정짓는다.

우리는 우리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느린 생각'보다 '빠른 생각'으로 살아가는 걸 더 편하게 생각하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타인의 말과 행동 뒤에 숨은 마음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선택을 잘못해 생기는 손해도 줄일 수 있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맡은 바 직무를 작위함으로서 불의에 맞서 정의를 실현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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