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말들의 편 가르기, 차별의 말들 - 무심코 쓰는 말에 숨겨진 차별과 혐오 이야기
태지원 지음 / 앤의서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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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라 글을 남긴다'라며 작가 표범 씨가 사회복지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2018년 SNS에 올려 화제가 됐던 일화다.


'어느 날 교육봉사센터에 한 시민의 항의가 들어왔다. 그는 돈가스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동네의 기초생활수급 대상 어린이가 와서 밥 먹는 광경을 봤다. 가격대가 낮지 않은 유명 체인점이었는데, 누나와 둘이 와서 한 사람당 한 메뉴씩을 시켜 먹는 것을 보고 기분이 불쾌해 항의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pp. 149, 150)'


"저 비싼 돈가스를 나눠 먹어야지, 각자 하나씩 먹네?"

항의 전화를 한 어른(이라 할 수 없지만)이 한 말이다.


이런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건 '가난한 사람은 불쌍하고 부족하게 보여야 한다'는 가난에 대한 편견이 밑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은, 가진 식권으로는 가격이 모자라, 아이들을 예쁘게 본 음식점 주인이 공짜로 돈가스를 준 것이었다.


사회 문제와 인권 문제를 꾸준히 다루어 온 태지원 작가가 이번에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에 숨겨진 '차별과 혐오"에 관해서다. 정상, 등급, 완벽, 가난, 권리, 노력, 자존감, 공감이란 여덟 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차별의 말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차별의 말을 환대의 말로 바꾸려면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저자는 편가르는 날 선 말이 '생각의 틀'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오래전부터 인류는 인지적 편리함을 추구해왔다. 살아남으려면 적인지 우리 편인지, 판단이 빨라야 했다.


'덕분에 마주하는 상대를 판별하기 위한 틀을 장착하게 됐다. 상대의 피부색이나 눈빛, 출신 지역이나 민족을 보며 범주화하면 가까이해야 할 이와 멀리해야 할 이를 구분할 수 있었다. 아군과 적군을 가르는 잣대는 갈수록 다양해졌다. 성별, 연령대, 민족, 인종 등으로. (p. 5)'


'생각의 틀' 속에 차별이 숨어있어 나도 모르게 편견과 혐오의 말을 쏟아 놓는다.

"이런 나는 정상일까요? 비정상일까요?" 흔한 질문이다.


"너 어디 살아?" 초등학교 아이들마저 하는 질문이다. 어디에 산다는 대답 하나로 재산 등급이 까발려지고 계급이 형성된다.

"그러게 왜 이태원엔 놀러 가서..."

"가난해서 키울 능력도 없으면서 애는 왜 낳나"

"바쁜 출근 시간에 거동도 불편한 사람이 왜 돌아다녀서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나"

"맘만 먹으면, 왜 일할 데가 없어. 게으른 거지"

"그런 쓸모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마"

"너 T야? 왜 그리 공감 능력이 없냐?"


'세상에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명확한 선이 있을까? 그 선은 누가 만드나'라는 식의 해석과 시선으로 새로운 질문을 하면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사라진다.


달동네 사는 사람은 모두 실패 등급을 받아야 하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뭔가.

'미국 작가 수잔 케인은 자신의 책 <콰이어트>에서 행복과 성취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건넨다. "삶의 비결은 적절한 조명이 비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브로드웨이의 스포트라이트가, 누군가에게는 등불을 켠 책상이 그런 장소일 것이다." (p. 69)'


이태원에서 노는 사람을 가치 없다고 평가하면서 애도의 자격까지 박탈해도 되나. 노는 시간 없는 빡빡한 삶만이 정답은 아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그들의 삶을 마구 지워도 되나. 그들도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이다.


'비장애인이 숨 쉬듯 누리는 일상 속 권리, 이것이 단순히 비장애인을 위한 성역으로 남게 되면, 결국 누군가에게는 그 화살이 돌아온다. 장애인, 교통약자, 노인이 될 미래의 나와 가족을 위한 당연한 권리가 되어야 한다. (p. 176)'


게으르다고? 주어진 여건과 타고난 것이 제각각인데 무조건 동일한 출발선에서 경쟁하는 것이 옳다는 능력주의 경쟁 시스템의 잘못은 없는 건가?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타인을 쓸모없다고 폄하할 수 없다.

공감하는 능력이 모든 걸 해결하는 만능키가 아니다. 감정은 금방 시들해지고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집단에 속해야 안심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속성은 따돌림당하는 사람을 볼 때 내가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다수 집단이기를 바란다. 상대적으로 소수 집단을 좋지 않게 보고 차별의 선을 긋는다. 하지만 소수 집단에는 자신의 선택에 따라 또는 주어진 조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속해 있는 등 여러 사람이 섞여있다. 바꿔 말하면 선택에 따라 혹은 조건이 바뀌면 나도 소수 집단에 속하게 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언제든 나도 소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의 틀'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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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리전스 랩 - 내 삶을 바꾸는 오늘의 지식 연구소
조니 톰슨 지음, 최다인 옮김 / 윌북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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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배웠다 싶은 사람을 '인텔리'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교양도 갖춰야 했다. 남들에게 인텔리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좋은 방법이 인물을 Full Name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를테면 교향곡 5번 '운명'을 만든 작곡가가 누구였더라?'라고 물을 때 '베토벤'이 아니라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라고 답하는 식이다.

약어도 모두 기억하면 좀 있어 보인다.
"'오늘날 GPS, (즉, Global Positioning System)이 우리가 이동하는 방식과 일상생활을 바꿔 농(p. 231)'은 것 같아."

학력고사 만점자라면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몇 년도에 학력고사 보셨나요?" "아~ 저도 그 해에..."
분명히 몇 점이었냐고 물을 테고
"그해 학력고사가 좀 쉬웠잖아요. 만점이었어요"

이 책을 읽었다면 위의 대화 응용이 가능해진다.

"우리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뭐라고 생각해?"
"난 바퀴라고 생각해. 거의 모든 발명품은 자연에서 힌트를 얻었지만 바퀴처럼 회전축이 있는 둥근 모양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거든. 기원전 3500년경에 최초로 바퀴가 등장한 것도, 또 세계 곳곳에서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도 불가사의한 일이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뭐부터 쳐다봐?"
"난 몇 시인지 확인하려고 시계를 보게 되더라고. 그런데 시계가 참 흥미로운 게, 대부분의 기술이 우리가 사는 방식에 맞춰지거나 우리 삶을 편하게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잖아. 시계는 좀 다르더라고. 우리가 시계에 맞춰 살잖아. 유일하게 반대의 경우인 셈이지.


철학 개념을 정리한 <필로소피 랩>의 저자 조니 톰슨이 펴낸 신간 <인텔리전스 랩>은 평소에 알고 싶었던 지식을 가벼운 마음으로 재밌게 읽은 다음 인텔리인척 할 수 있는 책이다. 생물학, 화학, 물리학, 의학, 사회, 정치, 기술, 문화, 종교와 신앙,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꾸거나 큰 영향을 끼친 개념과 지식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

앞으로 펼쳐질 세상엔 또 어떤 기술과 혁신이 우리 삶을 바꿔놓을까? 이 책에서 다룬 개념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것이 없는 일상을 생각하며 비교하면서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인텔리인척하는데 모양 빠지지 않도록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교양>에서 얘기한 조언을 하나 하자면...

교양까지 갖춘 인텔리가 되려면 상대방이 당혹감을 느끼는 질문을 하면 안 된다. 지식 자랑, 상대방 망신 주기를 위한 질문은 절대 금지다. 이런 질문에 현혹돼서 이 책의 오남용 사례의 주인공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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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성향 - 행동, 습관, 인간관계를 푸는 마법의 키워드
그레첸 루빈 지음, 윤희기 옮김 / (사)마인드랩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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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저 사람은 왜 저러지?'
많이 하는 질문이다. 나와 남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물음이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나 현상이 펼쳐질 때만큼 답답한 경우가 없다. 미칠 지경이다.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때 종종 오해도 뒤따라온다. 그 오해로 불신이 쌓이고 종국에는 관계에 금이 간다. 반대로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되면 답답함이 사라지고 관계가 더 나아진다. 그래서 우리는 나 또는 남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인간 성향과 변화를 연구하며 글을 쓰는 그레첸 루빈은 나와 남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에 맞게 대처하기 위해서 준수형, 질문형, 의무형, 반항형의 4가지 성향을 이해한다고 설명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외부에서 나에게 거는 '외부의 기대'와 스스로에 거는 '내면의 기대', 두 종류의 기대 사이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두 종류의 기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준수형: 외부의 기대와 내면의 기대에 모두 부응한다.
질문형: 내면의 기대에만 부응한다. 모든 기대를 의심하고, 정당하다고 판단해야 따른다.
의무형: 외부의 기대에만 부응한다. 외부의 기대가 내면의 기대에 우선한다.
반항형: 외부의 기대와 내면의 기대를 모두 거부한다. (P. 16)'

'준수형'은 '눈치 없는 원칙주의자'다. 이들은 규칙과 같은 정해진 틀 안에 있을 때 편하다. 성실하고 꾸준하며 야무지다. 반면 융통성, 눈치와는 거리가 멀다. '질문형'은 의심 많은 합리주의자'다. 이유에 살고 이유에 죽는다. 이유를 설명해 줘도 잘 듣지 않는다. 직접 조사하고 납득해야만 한다.

'의무형'은 '마음 약한 이타주의자'다. 이들은 온화하고 성실하며 헌신적이다. 하지만 화를 감추고 있어 언제 그 화가 폭발할지 모른다. '반향형'은 '불만 많은 자유주의자'다. 이들은 제멋대로에다가 참을성도 없다. 자유를 위해서는 모든 규칙과 규범을 거부한다.


나는 어떤 성향일지 궁금해 테스트해 봤다. 결과는 주 준수형, 부 질문형이었다. 내친김에 아내와 딸도 테스트해 본 결과, 아내는 의무형, 딸은 주 반항형, 부 질문형이었다.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있던 행동들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내가 안쓰러웠는데 의무형인 아내의 성향이었다. 아내는 나에게 차갑고 이기적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하는데 준수형인 나는 내면의 기대와 외부의 기대가 충돌할 때 내면의 기대를 먼저 채우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아내와 딸은 서로 힘들어한다. 의무형과 반항형이 만났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두 성향의 관계는 물과 기름이다.


공개토론에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생각을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멤버들의 성향이 드러났다. 대부분 의무형이었고 일부는 준수형이었다. 질문형은 소수였다. 책을 읽고 리뷰하는 것이 의무형에게 최적화된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의무형인 사람이 제일 많다고 하니 확률에 따른 결과이지 싶다.

아무튼 토론 멤버들의 성향을 알았으니 그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 이유를 좀 더 잘 알게 됐다. 이해되면 잘 어울릴 수 있다. 타고난 본성을 어떻게 바꾸겠는가. 성향에 맞는 방식으로 마주한 상황을 바꾸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도록 영향을 미치려면 기억하자.
- 준수형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 질문형은 왜 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 의무형은 강제적인 책임 의식이 필요하다.
- 반항형은 자기 방식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성향마다 추구하는 가치를 알아야 설득할 수 있다.
- 준수형에게는 자기 절제와 규범 준수가 중요하다.
- 질문형에게는 정당성과 목적이 중요하다.
- 의무형에게는 의무와 협동이 중요하다.
- 반항형에게는 자유와 자기 정체성이 중요하다. (pp. 294,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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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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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네스 팰트로 주연의 영화 <슬라이딩 도어즈>에서 주인공 헬렌은 회사에서 해고당한다. 집으로 오는 길에 급히 떠나는 지하철을 놓쳤을 때와 간발의 차이로 지하철을 탔을 때의 삶, 헬렌은 이렇게 두 가지 타임라인의 삶을 산다. 별것 없는 시간 차이로 생긴 두 삶은 극적으로 엇갈린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시간의 마디마디를 만지며, 촉각을 포함한 오감으로 우주의 질감을 느껴보았다. 당신의 새벽, 나의 낮, 누군가의 밤 그리고 나아가 저마다의 과거와 미래가 기적처럼 조우하여 우리 존재를 바꿔놓는 순간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추천의 말, 소설가 구병모)'

물리학자이자 작가인 앨런 라이트먼의 첫 소설, 시간을 과학적 상상력이란 토대에 기발한 철학적 사유를 얹어 풀어낸 <아인슈타인의 꿈>이 새롭게 다시 출간됐다. 이 책에는 우리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시간 이야기 서른 편이 담겨있다. 작가의 물리적 상상 덕분에 우리는 서른 개의 서로 다른 시공간을 산책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물체의 시간은 느려진다는 시간 지연을 설명했다. 상상 속에서도 생각의 속도를 달리한다면 내 삶에서 경이로운 시공간 여행이 가능해진다.

가끔 삶이 되풀이된다고 여겨진다. 시간이 원圓이어서다. '아직 4시밖에 안됐어?' '벌써 4시야?' 기계시간과 체감시간이라는 두 가지 시간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살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희한한 일을 경험했다면 그 순간만큼은 원인과 결과가 일정하지 않은 세계에 잠시 머물렀다고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입맞춤하며 포옹을 풀지 않는 순간은 시간의 중심지인 곳, 시간이 멈춰있는 세계다. 움직일수록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세계에 사는 사람은 전속력으로 달리며 살아간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하루만 사는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끔찍하다. 영원히 사는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두 가지 종족으로 갈라진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 모든 일을 나중에 하는 나중족, 삶에 끝이 없으므로 상상할 수 있는 일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무엇이든 일찍 시작하는 지금족.

바쁜 삶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남해에서 잠시 느린 삶을 보냈다. 시간이 지역마다 다른 세계다. 시계 두 개를 붙여 놓으면 같은 속도를 똑딱거리지만 서로 떼어놓으면 놓을수록 속도는 더욱 차이가 난다.

선택의 자유가 없는 사람은 미래가 고정된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미래가 고정되어 있는 세계에서는 옳음도 그름도 있을 수 없다. 옳고 그름은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는데, 행동이 모두 미리 정해져 있다면 선택의 자유는 없다. 미래가 고정되어 있는 세계에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p. 150)'


상상의 대부분은 시간 여행이다. 과거로 미래로, 느리게 빠르게, 멈추기도 하고, 시간을 왜곡하기도 하고. 상상뿐일까? 사실 우리는 실제로 여러 시공간을 살아간다. 우리가 보는 별빛은 몇 백 광년 전의 빛이다. 그리고 내가 밝힌 빛은 누군가가 미래에 볼 빛이다. 지금 내 모습이 어떤 사람에게는 과거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미래다. 상대적이다.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 못된 심보를 가진 신의 딸 에아가 아빠 컴퓨터에 들어가 모든 사람들의 죽는 시간을 전송해버린다. 수명을 알게 된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어떤 사람들은 회의에 빠져 좌절을 느끼며 살아가는 한편, 또 어떤 사람들은 남은 시간을 즐기려고 한다.

시간은 상대적이다. 사람에 따라 상대적인 시간을 산다. 죽는 날 내가 산 세계는 어떤 시간의 세계일까? 어떤 시간의 세계에 산 삶이 제일 많고 어떤 세계의 산 삶이 제일 적을까? 서른 개의 서로 다른 시간의 세계에 내 삶을 집어넣어 보기 바란다. 그리고 어떤 시간의 세계에 살고 싶은지도 상상해 보고.

'한편 소설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느꼈던 부분은 이 시간의 끝, 즉 세계 종말을 앞둔 거리의 풍경이다. 예전에는 종말 직전의 모습이라고 하면 다소 관성적으로 폭동, 방화, 약탈 등 혼돈으로 가득한 거리를 떠올렸는데, 이토록 평등하고 장엄하며 고요한 음악과도 같은 마지막을 생각한다면 그리 비통하지만은 않을 듯하다. 이 세상을 통과하는 극히 찰나의 여행길을, 조금은 괜찮은 모습으로 다녀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추천의 말, 소설가 구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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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떡볶이 - '이건 맛있는 떡볶이다'라는 확신이 왔다 아무튼 시리즈 25
요조 (Yozoh) 지음 / 위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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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떡볶이를 좋아하는 편인가?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게다가 엄마와 자신이 만든 음식 다음으로 떡볶이를 많이 먹었고 그래서 떡볶이를 너무 과잉 섭취한 것 같다는 떡볶이 사랑 탑 티어 급의 요조 작가에 비하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우리 가족 가운데 나를 뺀 나머지 셋은 떡볶이를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물론 요조 작가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언제라도 나만의 비법으로 만들 수 있는, 소위 먹거리 레퍼토리 가운데 떡볶이 사촌쯤 되는 라볶이가 자리 잡은 것도 떡볶이를 좋아하는 가족에 대한 나의 끝없는 사랑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ㅋ 내 라볶이의 특징은 단, 짠, 맵 모두 잡았다는 것이다. 먹을 때마다 '오우 맛있어~'를 과도하게 남발하는 아내와 두 아이 모습을 보면 흐뭇하기 이를 때 없다. (그러는 속내가 따로 있지만 서로를 위해 모른 척한다.)


'아무튼' 시리즈 첫 번째 책으로 요조의 <아무튼, 떡볶이>를 고른 까닭이 있다. 3년 전 가을, 강원도 영월을 홍보하는 요조 작가의 <가끔은 영원을 묻고>라는 생활 에세이를 읽었다. 영월에서 가을 살기 하며 벌어진 에피소드를 담았는데 그때 요조의 글을 닮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름다운 표현에 적당히 유머가 곁들여진 힐링이 저절로 되는 글이었다.

'떡볶이가 등장했다. 떡의 모양새와 빛깔, 떡 위에 점점이 보이는 고춧가루 알갱이들, 서걱서걱 소리의 주인공인 파와 양파가 눈에 들어오면서 '이건 맛있는 떡볶이다'라는 확신이 왔다. (p. 51)'

이번엔 떡볶이를 가지고도 그런 글을 쓰는 요조 작가를 만났다. 착하고, 슬프고, 웃음 짓게 만드는 떡볶이 이야기.

'제주에 처음 홀로 와서 먹은 음식은 물론 떡볶이였다. 모닥치기가 시작이었다. '모닥치기'는 '여러 개를 한 접시에 모아서 준다'는 뜻을 가진 제주어라고 하는데 얼핏 들으면 무슨 운동 기술처럼 들리고 이 기술에 제대로 걸리면 뼈도 못 추릴 것 같은, 뭔가 결정적 한 방 같은 느낌이 든다. (p. 75)'


며칠 전 MBC <놀면 뭐하니>에서 너무 어려운 지경에 처한 자영업자를 응원하는 프로젝트로 이대 앞 즉석 불고기 떡볶이 맛집 '산타비'를 찾아가 돈쭐 내기 작전을 했다. 그날 15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는데, 3개월간 밀린 전기 요금 등을 낼 수 있게 됐다며 눈시울 적시는 사장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미어졌다. 마침 이대 나온 딸아이가 들어와 산타비를 아냐고 물었더니 잘 알고 여러 번 갔고 항상 붐비던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한산하다는 말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매번 비건 음식점을 힘들게 검색하지 않아도, 그냥 아무 음식점에 들어가도, 그곳의 메뉴판에 고기가 들어간 메뉴와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가 사이좋게 많았으면 좋겠다. 고기가 아니어도 만족스러운 식사가 더 쉽게 가능해졌으면 한다.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지구에게도 좋은 일일 것이다. (p. 100)'

요조 작가는 이대 앞 전골떡볶이 맛집 '덕미가'에서 비건 메뉴를 먹으며 베지테리언이 된 소회를 풀어놓았다. 글을 쓸 당시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딸아이에게 이곳도 아는지 물어보았다. 잘 아는 곳이라며 이곳 역시 붐비던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잘 되나?' 걱정 섞인 말을 이었다.

'떡볶이라는 주제를 벗어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것을 좋아하며 '기준'이 생긴 사람들은 그것에 반하는 영역을 거리낌 없이 거부했다. 멋있었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이 보여주는 딱 부러진 호와 불호의 오만함, 그 자체가 멋지고 근사해 보였다. 나도 그렇게 떡볶이를 좋아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오만이 없었다. (pp. 143, 144)'

떡볶이에도 갈라치기가 존재한다는 점을 꼬집으며 요조 작가는 그것을 오만으로 해석했다. 요조의 해석에 따르면 지금 우리 사회만큼 오만으로 가득한 적이 있었을까 싶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여자와 남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우리는 항상 기준을 마련하고 그 기준에 따라 우리 편 아니면 적으로 나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불행은 편가르기의 결과다.


요조 작가의 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요조의 글을 닮은 내 마음에 쏙 드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만약, 만약에 말이다. 내가 '아무튼' 시리즈의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꿈같은 이야기지만...) 어떤 소재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음~ 내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던 곳, 테마파크에 관한 에세이? ㅋ <아무튼, 테마파크>...

p.s.
상대방 기분을 최고로 더럽게 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끝낸 에피소드를 <아무튼, 연애>를 쓰게 된다면 공개한다고 했는데... 아직인가요? 요조 작가님? ㅎ <아무튼, 테마파크> 나오기 전에 <아무튼, 연애> 읽을 수 있겠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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