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아서 잘 살겠습니다 - 어느 페미니스트 부부의 좌충우돌 성장기
차아란 지음 / 텍스트칼로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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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아이들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전과 다르다. 강요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이 풀어가야 한 문제다. 결혼과 출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까닭은 우리 세대보다는 (경제규모는 성장했지만 소득 양극화의 심화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출산을 꺼리게 만드는 사회적 시스템 따위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이들의 삶의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그 아이들 자신뿐이라는 생각이 최근 굳어졌다. 그건 부모의 무책임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아이들의 생각이나 의지를 지배하기는 어렵다. 물어오면 내 삶에서 얻은 꼰대의 지혜를 들려주긴 하겠지만, 내가 먼저 아이들의 삶이 걱정되어 말한다면 그건 그냥 아이들에게는 잔소리일 뿐이다.


<우리가 알아서 잘 살겠습니다>는 90년생, MZ 세대인 차아란 작가의 주도적 삶을 살게 되기까지의 성장기이다. 그의 성장기에서 온갖 사회적 이슈가 모두 등장한다. 금수저를 제외하고 그 세대들은 누구나 겪는 문제니 당연하다.

부모의 관계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 대입 문제, 장녀가 갖는 부담감, 계약직, 직장 내에서 흔히 벌어지는 편견과 상사의 갑질, 결혼에 대한 사회적 정의, 자녀 출산에 대한 사회의 참견, 특히 여성들에게 확보되지 않은 안전과 그에 따른 공포, 성차별 따위들 모두를 작가는 짧은 삶에서 마주한다.

'그런 글들을 통해 나 또한 조금씩 내가 입고 있던 ‘여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코르셋을 인지하게 되었다. ( p. 48)'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란 여성 개인을 지우고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며느리, 누군가의 엄마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환경에서 과연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p. 71)'

'여성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공포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더욱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p. 88)'

'신체의 자유는 모든 개인에게 인정되는 당연한 권리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임신만큼은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의지가 많이 반영된다. 여성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풍조. 은연중에 이런 인식이 강요되면서 결혼한 여성들의 취업 문이 더 좁아진 것은 아닐까. (p. 132)'


차아란 작가는 어려움은 겪는 과정에서 대견스럽게도, 그리고 내 아이들이 살았으면 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냈다. '외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주도하는 삶'이다.

'나에게 있어 페미니즘은 수동적이고 방어적이었던 과거의 내가, 외부의 영향에서 벗어나 진짜 내 모습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삶’의 기제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J가 있었다. 우리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우리가 안정적으로 함께 있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고, 그 안에서 '계속된 성장과 발전’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에게 페미니즘은 라이프 스타일이다. (p. 189)'


작가는 디자인과 영상 관련 개인 사업자이며, <뭐라도 프로젝트> 운영하고 있다.

'<뭐라도 프로젝트>는 ‘니트 컴퍼니’라는 사회 공헌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니트족, 즉 현재 무업 상태에 있는 청년들을 위한 가상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었다. 회사의 운영 방식은 단 한 가지, 직원들이 사무실로 출근해 공부나 취업 준비 등 각자 할 일을 하는 것. 무업 기간 동안 청년들은 혼자 고립되는 경우가 많은데, 니트 컴퍼니는 바로 그런 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격려와 지지를 받고, 무업 기간 중의 활동을 지원받아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단체다. (p. 180)'

처음 알게 된 플랫폼인데 그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이런 커뮤니티는 우리 정부가 진지하게 받아들여 확대했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다.


'가끔 우리 부부가 사는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 말을 한마디 얹는 사람 등 조금은 부정적인 시선을 내비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하는 인생은 우리 둘만의 것. 우리가 알아서 잘 살게요! (p. 191)'

우리 세대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잔소리를 하려고 입술부터 쫑긋 되며 안달하는 모습을 본다면 무시하기를. 처음이라 생경해서 그런 거니, 보란 듯 알아서 잘 살면 된다. 이들 부부의 라이프 스타일을 존경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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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찾아드립니다 - 루틴을 벗어나, 나만의 속도로 사는 법
애슐리 윌런스 지음, 안진이 옮김 / 세계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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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기 위해 우리는 시간을 내어준다. 회사원, 자영업, 작가 모두 마찬가지로 시간과 돈을 바꾼다. 게다가 과거의 시간까지도. 학창 시절 내 시간을 들여 터득한 경험, 지식 따위들 모두를 직장에서 일하면서 써먹고 있으니 말이다. 시간과 돈은 따로 떼어놓지 못하는 성질의 것들이다.


사회심리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대학교 경영 대학원 교수인 애슐리 윌런스는 우리는 '왜 매번 시간 관리에 실패하는지', '시간 대신 돈을 선택했을 때 치르는 대가가 무엇인지' 두 가지 질문으로 <시간을 찾아드립니다>를 시작한다.

1장은 시간 빈곤을 겪는 이유 6가지를 제시하고, 2장에서는 시간 풍요에 대해서, 3장은 시간의 덫을 피해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 4장에서는 미래를 위해 시간을 계획하는 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5장에서는 시간 빈곤이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사회가 구조적으로 시간 빈곤을 만들고 있으니 사회 전체의 시간 풍요를 위한 정책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특히 기업의 조직문화와 공공기관들의 구조가 시간 빈곤이라는 질병의 가장 큰 원인이니 개인이 변화를 꾀하듯이 이들 기관들도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5장의 접근은 신선했다.


'미래의 시간은 약속과 위험으로 채워져 있다. (p. 247)'

성인이 되어 부모와 만나 대화가 없는 경우는 어릴 적 부모와 같이 시간을 보내며 만든 추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부모가 있다면 자식들과 바람직한 관계를 형성하며 노후를 보내고 있을 확률이 높다.

내 아이들이 어릴 때 사회적 분위기가 정시 퇴근은 이기적으로 보이기 십상이었다. 야근을 밥 먹듯 하며 뿌듯해했다. 가족을 위해, 가족의 미래를 위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여겼다.

세월이 흘러 그때의 미래인 현재, 결과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내 기억에서 통째로 날아갔고 후회만 가득할 뿐이다. 그때는 아이였지만 현재는 청년이다. 내 자식들이 아이였던 시간은 이제 만나지 못한다.


'우리의 사회적 처지는 우리의 시간과 돈에 관한 결정을 좌우한다. (p. 255)'

직장의 분위기, 경제적 여건과 같은 여러 가지가 시간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지에 끼어든다. 그래서 시간의 풍요를 얻어 나만의 속도로 사는 길은 동일하지 않고 제각각이다. 처지에 따른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사회 전체가 시간을 우선시하는 분위기여야 한다. 이웃들의 행동이 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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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 아를르캥과 어릿광대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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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중앙은행의 한자와 나오키 과장. 업무총괄부장 다카라다와의 갈등으로 오사카 서부지점으로 좌천성 인사이동 조치된다.

어느 날 본사로부터 오사카 서부 지점의 주요 고객인 미술 전문 출판사 센바공예사 M&A를 추진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센바공예사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은 자칼의 사장 다누마 도키야. 한자와는 왜 자칼의 사장 다누마가 작은 출판사에 불과한 센바공예사를 노리는지, 자신과 갈등이 있었던 다카라다가 왜 이 M&A에 발 벗고 나서는지 의문을 품는다.

니시나 조는 현대 미술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일본의 화가로 그의 평생의 주제는 '아를르캥과 피에로'다. 회화라기보다 만화의 캐릭터처럼 가벼운 터치로 그린 그림에 화단이 열광하면서 니시니 조의 대명사가 되었다. (p. 34)

한자와는 센바공예사의 대표 도모유키의 외숙부가 남겨놓은 유품에서 힌트를 얻어 센바공예사 지하 창고 벽에서 '아를르캥과 피에로' 낙서를 발견한다. 그런데 그 낙서의 사인은 니시나 조가 도지마상점에서 일할 당시 친한 동료였던 사에키 하루히코의 것이다. '아를르캥과 피에로' 그림은 또 있었다. 한자와는 고인이 된 사에키 하루히코의 형의 집에서 똑같은 그림을 발견한다.

빈정거리는 눈길에 미소를 짓고 있는 아를르캥과 멍한 표정의 피에로, 익살스러운 만화 터치지만, 그와 동시에 니시나 조의 주특기인 그림과 비슷했다. (p. 234)

자칼의 사장 다누마는 니시나 조의 후원자였고 그가 컬렉션 한 그림은 모두 니시나 조의 작품이다.

한자와는 다누마가 '아를르캥과 피에로' 낙서가 발견된 센바공예사를 M&A 하려는 이유, 본사 다카라다가 꾸미는 음모, 니시나 조와 그의 동료이자 '아를르캥과 피에로' 그림의 원작자로 추정되는 사에키 하루히코 사이에 숨겨진 모든 미스터리를 하나하나 밝혀나간다.


"미술계에서 모방이 완전한 악이냐 하면, 그렇게 몰아 불일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죄 없는 모방이냐, 악의적인 도작이냐... (p. 267)

이 소설을 읽으며 2016년 사회적으로 논란이 됐던 조영남 씨의 대작 사건이 생각났다. 당시 조영남 씨는 ' 관행을 따랐을 뿐이었다'라고 주장했다. 1심에서는 조영남의 유죄, 조영남 씨의 창작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2심에서 '화투'라는 소재가 조영남 씨의 아이디어임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에서도 2심의 결과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 결과와 관계없이 이러한 논란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예술의 세계이니. 창작과 함께 스킬의 영역도 포함하는 예술의 세계이니까.


나는 이케이도 준의 작품이 처음이지만, 이미 <변두리 로켓>시리즈, <한자와 나오키>시리즈로 알려진 은행원 출신의 작가였다.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는 주로 직장인들의 애환과 사회적 이슈를 엮어 다룬듯하다. <한자와 나오키: 아를르캥과 어릿광대>도 M&A와 은행이라는 직장 내에서 흔히 있는 갈등을 다뤘다.

'현대 사회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어도, 세상의 본질은 공생과는 거리가 먼 약육강식이다. 평소에는 윗사람에게 순종하며 규율을 잘 지키는 월급쟁이라도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으면 매장될 수도 있다. 한자와에게 그것이 '지금 이 순간'이다. (p. 179)'

직장 내에서 대부분의 갈등은 업무가 많다거나 어려움은 아니다. 인간관계, 특히 상사와의 불편한 관계다. 이로 인해 이직을 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을 통쾌하다. 뻔하지만 부조리한 상사를 상대로 하는 앙갚음은 언제나 진리다. 현실에서는 흔히 보지 못하는 광경이어서 더 그렇다. 권선징악 스토리의 소설을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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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변호사가 되어보니 말입니다 - 어느 생계형 변호사의 일상 기록 일하는 사람 6
오광균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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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 시리즈', 기상예보관, 피디, 환경감시선 항해사, 관광개발연구원, 사운드 디자이너에 이은 여섯 번째, 어느 생계형 변호사의 일상 이야기다. 이들은 무슨 일을 할까? 누구나 궁금해할법한 직업들이다.

'사실 대개의 변호사들은 그냥 변호사 자격을 가진 회사원 또는 자영업자다. (p. 7)'

10여 년 전, 보통 총무팀의 일이었던 법무 업무가 별도의 팀으로 조직되며 변호사가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변호사가 회사에 있으니 법적인 문제는 그가 모두 해결하리라 기대가 컸었다.

웬걸? 컴플레인이나 명도 소송이 있어 법적인 자문을 구하면, 답변은 원칙적인 누구나 그 정도는 할만한 이야기만 했다. 실망이 컸었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일은 보면 상사에게 결재 올리고 뭐 그냥 이 책의 저자인 오 변호사의 말처럼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변호사의 일이라는 것은 그냥 사무직 회사원과 별 차이가 없는 것도 같다. 주로 앉아서 컴퓨터 앞에서 일하고, (...) 회사에서 시켜서 봉사 활동한 것을 어디에서 자랑하기 민망한 것처럼, (...) 보수를 받고 한 일을 거론하면서 공익 변호사 흉내를 내고 싶지는 않다. 그러고 보면 '직업'으로서의 변호사는 참 특별할 것이 없기는 하다. (p. 65, 66)'


'욕을 하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려면 가해자 변호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사실관계는 수사를 하는 검사와 방어를 하는 변호사 사이의 공방에서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해자에게 충분한 방어권을 주어서 더 이상 다른 소리를 하지 못할 정도로 사실관계를 확실히 하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깔끔히 내릴 수 있게 된다. (p. 52)'

왜 나쁜 사람도 변호인이 필요한지, 저자의 합리적인 글에 궁금증을 말끔히 해소됐다.


'줄임말이 아니라 일상적인 어휘인데 다른 뜻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앞에서 언급한 상황처럼 '선의'라고 하면 '어떠한 사실을 모른다'라는 뜻이고, '악의'라고 하면 '어떠한 사실을 안다’라는 뜻이다. 착하고 나쁜 것과는 관계가 없다. (p. 77, 78)'

법조인이 사용하는 언어, 도무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들을 왜 쓰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그들만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장벽인가? 아님 그들 나름의 내세울 만한 권위인가?


'나는 저 의뢰인이 지문이 닳아 무인 발급기로는 민원서류를 못 떼는 것도 알고 이사 갈 곳이 어디인지, (...) 어쩌면 적어도 맡긴 사건에 대해서는 가족보다 가까워지는 사이, 그게 바로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p. 159, 160)'

자기들만 알아듣는 말을 하는 평범한 자영업자인 변호사! 우리는 이들을 찾고 의지할 수밖에 없다. 룰을 모르고 그 룰 안에서 무엇이 정의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항의할 줄도 모르니 나 대신 항의하며 편들어줄 이들을 가족보다 더 의지할 수밖에... 판사의 판결문이 납득되지 않으면 더 억울한 법이다. 때론 아쉬움이 남지만 이들이 친절하게 이해시켜 준다면 덜 억울하지 않을까?

'변호사는 참 좋은 직업이지만 눈물을 흘리는 의뢰인에게 냉정하게 사실 관계를 따져 묻고, 그런 의뢰인에게 법이 그러하니 패소할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참 잔인한 직업이기도 하다. (p. 191)'

정치적인 야망과 자신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변호사들 말고, 의뢰인의 감정적인 오해와 억울함을 이성적으로 법적으로 풀어주는 변호사들.... 이들이 필요하고 그들은 존경받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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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Time for 클래식
김흥식 지음 / 그림씨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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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을 섭렵한 회사 후배가 있었다. 그저 그런 후배라 여겼는데, 영화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를 듣고 너무 인상적이라 음정도 안 맞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다 우연히 그 후배에게 이게 무슨 노래인지 아냐고 별 기대 없이 물었다. 헨델의 오페라 아리아로 울게 하소서란 곡인데... 어쩌고저쩌고 계속 설명이 이어졌다. 후배의 클래식 지식에 깜짝 놀랐고 그 이후로 더 이상 그저 그런 후배가 아니었다. 달라 보였다. 클래식은 사람을 달리 보이게 하는 마력이 있다.


'도대체 음악은 왜 듣는 걸까? (...) 하나는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서겠지요. (...) 다른 하나는 정신의 정화를 위해서일 것입니다. (p. 289, 290)'

나는 학창 시절에 있어 보이려면 클래식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들은 음악일 뿐이었다. 그나마 KBS 제1 FM에 주파수를 맞춰 들으면 눈만 스스로 감겼던 음악이었다.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회사 후배는 분명 즐거움과 정신의 정화를 위해 클래식을 듣겠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뭘까? 졸기만 했던 나와 차이는?

'그러니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다른 사람의 말을 너무 의식하지 말 일입니다. 좋아서 듣다 보면 시간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자신이 좋아하는 연주가의 소리가 귀에 들어오게 됩니다. 바로크 음악과 고전파 음악, 낭만파 음악의 구분도 듣다 보면 누구나 할 수 있게 됩니다. (p. 241)'


<A Time for 클래식>은 클래식을 벗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 클래식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는 시간적(시간대별) 상황과 정서적 상황에 따라 들으면 좋은 음악들을 선별하여 101곡(함께 듣기 129곡 포함 총 230곡)을 소개한다. QR코드를 찍으면 해당 클래식 음악을 듣기가 가능해 짧게나마 음악을 들으며 책 읽기도 가능하다.

아침에 딱 어울리는 곡 중에 하나는 조시프 이바노비치의 <도나우 강의 잔물결>이다.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으며 듣기 좋은 음악은 이탈리아 작곡자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인 캄파놀리의 음악이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BWV1004>는 방문을 닫은 후 불을 끄고 혼자서 볼륨을 한껏 키워 들어야 이 곡이 왜 뛰어난 음악인지를 느끼게 된다.

쇼팽의 <녹턴>은 말 그대로 '야상곡夜想曲'이니 밤에 들어야 제맛이다.

또한 곡에 대한 해석과 작곡가, 악기에 얽힌 에피소드로 많은 상식을 전해주어 클래식에 친숙해지도록 한다.

<넬라 판타지아>로 친숙한 오보에는 사람의 목소리와 소리 영역이 가장 비슷하고 오케스트라 악기 조율 시 오보에 A음에 맞춘다.

상대성이론은 발표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유튜브에 찾아보니 아인슈타인 바이올린 연주한 곡들이 수두룩하다.

모차르트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미제레레>를 듣고 곡을 암기한 후 집에서 그 음악을 악보에 옮겨 적었다. 그때 나이는 열다섯이었다.

바이올린 교사로 근무했던 비발디는 학생들을 위하여 수많을 작품을 작곡했고, 많을 학생이 연주에 참여하 기회를 주려고 협주곡을 많이 만들었다.

9번 교향곡을 쓰다가 사망한 베토벤, 슈베르트 때문에 9번 교향곡을 쓰다가 자신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밀러는 9번의 저주를 피하려 9번을 10번 교향곡이라고 하며 작곡했지만 결국 이 곡을 작곡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4악장 마지막에 바이올린 연주자 2명만 남아 연주를 마치는 <교향곡 45번 '고별'〉은 휴가를 갈수 없었던 악단들을 위해 하이든이 기지를 발휘해 작곡한 곡이다. 하이든의 의도를 알아차린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악단원들에게 휴가를 주었다.

아직도 못다 한 클래식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A Time for 클래식>은 첫 곡으로 0시 0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3악장으로 시작하여 맨 마지막 곡으로 24시 0분(이는 곧 0시 0분이기도 하다)에 다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전곡을 들으면서 맺음 한다. 저자는 이러한 배치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수학적으로는 동시에, 다른 곡을 듣는 셈입니다. 그러나 그건 평범한 사람의 시각일 뿐입니다. 신의 시간, 자연의 시간, 영원의 시간에서는 두 시간은 겹치면서 독립적입니다. 그러하기에 그 시간에 우리는 '포함되어 있으면서 다른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음악을 듣느냐는 우리들의 자유입니다. 우리는 그런 '자유'를 누릴 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 p. 426, 427)'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히포크라테스의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인생의 하프타임을 넘었는데도 클래식을 즐거움을 모르니. 예술은 길다고 하니 끝을 알 수 없는 남은 여정이라도 클래식과 친해볼까? 즐기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풍부한 클래식의 이야기가 그 시간을 앞당겨 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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