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안토니오 G. 이투르베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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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된 후 책을 읽게 되었다. 쌍둥이를 키우면서 여행이 힘들어졌고 취미생활을 할 여유도 없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유일한 활동이 독서였다. 책을 읽으며 고단한 시간을 버텨나갔고 위로를 받았다. 책은 그렇게 힘든 시간을 버텨나가게 해 주는 약 같은 존재였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 또한 생애 가장 위험한 시기를 책으로 버틴 사람이 있다. 나에겐 그저 한 순간이였다면 이들은 당장 죽을 지도 모르는 2차 세계대전의 악명 높은 아우슈비스 수용소에서의 도서관을 지킨 디타 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의 저자 안토니오 이투르베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던 도서관 사서 디타 크라우스의 이야기를 듣고 다큐 형식으로 된 글을 기획한다. 하지만 역사 그 자체만 쓰기에 부족함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안토니오 이투르베는 수용소 안의 분위기와 공포 등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작가의 바램은 결국 디타 크라우스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며 작가가 수집한 여러 자료에 기초한 이 실화 소설로 출간되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말살시키기 위해 세운 악명 높은 수용소이다. 몇 만명의 유대인을 감금하여 가스실로 보내 학살하는 이 거대한 범죄가 매일 일어나던 곳, 죽음이 가까이 있는 그 곳에서 학교가 있었다. 유대인이자 구역장인 알프레드 허쉬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제안하고 뜻밖에 그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학교가 운영된다. 단 교육은 허용되지 않으며 단순한 놀이만 가능하다. 당연히 책은 이 수용소 안에 존재할 수 없다.

아이가 이 민족의 미래라고 생각한 알프레드 허쉬는 나치의 눈을 피해 아이들 교육을 가르친다. 책이 들어올 수 없는 공간에 비밀리에 입수한 단 여덟 권의 책을 보관하기 위해 허쉬는 14살 소녀 디타에게 사서가 되어줄 것을 제안한다. 책을 들키는 순간 목숨이 위험한 이 수용소에서 디타는 위험을 끌어안고 사서의 임무를 수행해나간다.

소설의 중심 인물은 이 여덟 권의 책을 빌려주고 보관하는 사서 디타 크라우스의 이야기지만 디타를 중심으로 수용소의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그려진다. 나치 장교와 유대인 수용소의 사랑, 유대인의 생체 실험을 진행하는 멩겔르 박사, 나치를 공격하는 비밀조직 레지스탕스, 레지스탕스를 색출하기 위한 나치의 비밀첩자 등 한 수용소에 벌어지는 여러 이야기들은 같은 아픔을 겪었던 우리의 역사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당장 지금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묻는다. 이렇게 배우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특히 정신적 지주였던 알프레드 허쉬가 죽고 함께 지냈던 사람들이 가스실에서 죽음을 당하고 난 후 디타를 포함한 많은 유대인들은 회의에 빠진다. 과연 이렇게 배움을 이어나가는 게 옳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이 학교마저도 세계의 눈을 피하기 위한 가림막 장치였음을 알게 된 디타는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만다. 자포자기한 디타에게 사람들은 말한다.

"네가 31구역의 사서잖니."

사서.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함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비록 친구들이 죽어 나갔지만 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나치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저항임을 그들은 깨우쳐나간다. 공포를 무릎쓰고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상황에 굴복하지 않도록 해 준다. 어떤 희망도 없던 디타와 학교 아이들에게 책은 이 불행의 도피처이자 위로였다. 단 여덟 권의 파손이 심한 책이지만 책이 지닌 의미를 알기에 디타는 끊임없이 책을 보수해가며 책을 빌려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며 책을 지켜나간다.

도서관은 이제 디타의 구급상자고, 디타는 자신이 웃음을 영원히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에게 웃음을 되찾아준 그 약을 아이들에게 나눠 줄 것이다.

소설은 디타가족이 나치 점령 후 아유슈비츠에 오기까지의 여정과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자세하게 그려놓는다. 특히 어렴풋이 알고 있던 유대인 학살 전모가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들에 대입하여 수용소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한다. 쌍둥이 생체실험을 하는 장면에서는 같은 쌍둥이 아이를 둔 엄마의 입장으로 공감하게 되고 유대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스파이와 암거래등은 일제 시대의 밀정들을 떠올리며 공감하게된다.

인간성이 사라지고 공포와 이기심이 난무하던 그 때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으려 책을 지키고 읽고 배운 그들의 이야기는 책 한 권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흔하디 흔한 이 책들이 어떻게 희망이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 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소녀 디타 크라우스가 있었음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책은 내게 외로운 시간을 견뎌낼 수 있는 존재였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서관』은 나의 책에 대한 존재를 뛰어넘어 그들의 희망이었다. 가장 작은 권수를 보유한 가장 작은 도서관이었지만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가장 큰 도서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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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 5인 5색 연작 에세이 <책장위고양이> 2집 책장 위 고양이 2
김겨울 외 지음, 북크루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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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링 구독 서비스인 「책장 위 고양이」 시즌 2가 출간되었다. 시즌 1에서는 참여한 필진 7명의 저자가 모두 작가였다면 시즌 2에서는 작가 김겨울, 이묵돌, 음악가 박종현, 보통 직장인 제리, 그리고 가수 핫펠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섯 명이 모여 '언젠가'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고양이 , 삼각김밥, 북극, 망한 원고, 후시딘, 눈, 지하철, 버리고 싶은, 게임 등 여덟 가지 주제에 맞춰 그들이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은 주제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

고양이를 떠 올리면 무엇을 떠 올릴까? 고양이를 떠올리는 작가들에게 고양이는 품어주어야 할 대상으로 그려진다. 김겨울 작가의 고양이 알레르기, 그 알레르기를 뛰어넘어 반려묘를 키우는 지인들의 이야기,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박종현 작가의 다짐, 반려견을 키우고 있음에도 자신에게 찾아온 새끼고양이를 품게 된 핫펠트의 이야기 속에 고양이는 동물이 아닌 함께 할 수 있는 존재로 다가오며 따뜻함을 자아낸다.

반면 삼각김밥은 편의점에서 홀로 때우는 이미지가 연상되어서일까 다섯 명의 작가들은 외로움을 이야기한다. 특히 이묵돌 작가는 연인과 헤어져 힘들어하는 친구가 울면서 삼각김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밥에 대한 의미를 복기한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을 해 주고 싶은 그 마음, 대충 먹는 삼각김밥이 아닌 정성이 들어간 밥과 반찬 속에 서로의 마음을 표현하자고 말하는 글 속에 한 끼의 식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여덟 편의 원고 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언젠가, 망한 원고'를 추천한다. 흔히 "망한 원고"를 말할 때 결과물로 나온 글 중 부끄러운 글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다섯 명의 작가들은 "망한 원고"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특히 이묵돌 작가와 핫펠트 작가는 '망한 원고'란 없다고까지 정의한다.


망한 원고라는 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147p



'망한 원고'라는 주제가 이런 위로가 될 수 있다니. 그리고 나는 얼마나 많은 망한 원고를 써 왔는지 생각해본다. 머리속에 떠오르지만 옮기지 못한 글들.. 더 이상 망하지 말자고, 빨리 시작해보자고 용기를 준다.

「책장 위 고양이 시즌 1」의 글들에 비해 다양한 필진들이 모여서인지 주제에 얽힌 이야기들이 다채롭다. 이묵돌 작가의 회사 폐업 후 방황에 얽힌 지하철 이야기도 공감이 되고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되도록이면 아주 늦게 버리고 싶다는 핫펠트의 글에도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흐뭇해진다.

다섯 작가들의 시즌2가 끝나고 시즌 3의 새로운 작가들이 더욱 기다려진다. 과연 어떤 주제로 어떤 이야기들이 그려질까. 시즌 3이 시작되기 전까지 시즌 1과 2의 책들을 재독하며 부재를 견뎌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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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축의 전환 - 새로운 부와 힘을 탄생시킬 8가지 거대한 물결
마우로 기옌 지음, 우진하 옮김 / 리더스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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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달만 지나면 새로운 해를 맞는다. 2020년도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연말을 향해 신나게 달려가고 있다. 올해 가장 큰 이슈라면 단연코 '코로나'일 것이다. 코로나는 전세계인의 일상을 바꿔놓았고 올림픽까지 연기시키며 무시무시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세상은 바뀌었고 그 변화의 속도는 매우 가파르다. 바로 내일조차 장담할 수 없는 시기에 많은 전문가들은 미래를 예언하기 주저한다.

『2030 축의 전환』의 저자 마우로 기옌 교수 또한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려움을 인정한다. 하지만 마우로 기옌 저자는 먼 미래는 말하기 힘들지만 곧 다가올 근미래 2030년도에 일어날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한다. 펜실베니아대의 와튼스쿨 국제경제학 교수이자 글로벌 트렌드 전문가인 마우로 F. 기옌은 자신의 모든 지식과 경험으로 2030년대에 일어날 수 있는 8가지 거대한 물결에 대해 설명하며 준비할 것을 조언한다.

저자는 먼저 현재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노령화, 인구 감소, 도시 성장, 기술 혁신 등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를 설명한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이 현상들을 따로 생각할 것이 아닌 이 현상들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어떻게 전개되어 왔으며 2030년대에는 어떤 형식으로 도달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한다.


먼저 저자는 미래의 변화를 저조한 출생률에서 시작한다. 한국에서도 이미 급격히 진행중인 저출산 현상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반면 저자는 아직까지 출생률이 거의 변동이 없는 아프리카 또는 남아시아 지역의 높은 출생률이 곧 미래에 소비 세력의 지형 구조가 바뀌게 될 것임을 예측한다.

낮은 출생률은 미래의 노동력의 부재를 예고한다. 출생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많은 국가들은 여러 수단을 동원한다. 한국 또한 출산비와 아동 수당을 지원하지만 역부족이다. 저자는 정부의 이런 정책들이 저출산 현상을 거스를 수 없음을 진단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책을 이민자들의 수용으로부터 찾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민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고 있는 각국의 조처와 우려에 대한 사실을 정확한 데이터를 통해 진실을 밝혀준다. 또한 노령 인구의 증가로 돌봄노동 수요가 급격한 이 공백을 이민자들을 통해 그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8가지 변화 중 여성에 대한 변화 또한 흥미롭다. 저자는 높아지는 여성의 교육열과 더불어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에 주목한다. 저자는 다양한 사회의 변화가 여성에게 유리하다고 말한다. 가령 동성 부부, 자발적 피임 그리고 무엇보다 남성들에 비해 수명이 더 긴 여성들이 유산 상속을 받아 부를 획득할 확률도 더 높다는 가능성 또한 제시한다. 이미 금융시장은 여성들에 맞추어 상품이 출시되고 주식 투자 또한 여성들의 투자 스타일에 맞게 투자가 이루어지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누군가는 반론할 수 있다. 아직도 유리천장은 건재하며 일과 가사를 병행한다는 건 굉장한 노동력을 요구한다.

저자 또한 그러한 현실을 무시하지 않는다. 아이가 있는 집과 없는 집의 격차가 크며 기혼과 미혼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현상을 인정한다. 그 차이가 2030년대에는 최고점을 그릴 수 있음을 예고한다.

2030년까지 낮은 출생률과

더 높은 교육 수준이라는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아이 없는 여성, 홀몸으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 기혼 여성, 이혼 여성이라는

네 부류의 여성들 간 차이점들은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

『2030 축의 전환』 166p


하지만 여러 장애와 차별을 딛고 일어서는 여성들이 점점 많아짐을 사회는 인식하고 있고 이미 많은 영역, 정치, 경제 여러 분야에서 느리지만 조금씩 영향력 있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물꼬가 트이면 그 이후에는 여성들의 부와 영향력은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미래의 가장 큰 소비 세력을 선진국에서는 실버 세대라고 보는 반면 '후진국'과 '낙후한 지역들에서는 어린 세대로 본다는 점이다. 선진국의 노령화는 노인들에 맞춘 소비 전략이 중요하고 아직까지 높은 출생률을 기록하는 후진국의 젊은 세대들이 미래를 이어나갈 세대들이므로 그들로부터 답을 찾을 수 있다. 저자가 2030년 변화의 첫 단추로 낮은 출생률을 제시한 것과 선진국과 후진국의 출생률 차이에 주목하는 건 바로 인구통계 변화를 제대로 알아야 미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그야말로 완전하게 바꾸고 싶다면

기술적 혁신은 반드시 거대한 인구통계학적

혹은 경제적 흐름과 궤를 같이 해야 한다.

『2030 축의 전환』 269p


이 밖에도 저자는 기후 변화, 기술 혁신과 새로운 화폐 등 미래를 예측해준다. 누군가는 이 변화들이 별로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기후 변화는 이미 심각한 문제이고 기술은 지금도 재빠르게 변화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현상들이 야기시킨 결과들을 수평적 기회로 바라봄으로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데 있다. 8가지 변화는 각자 따로 진행되지 않는다. 수평적으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다. 낮은 출생률은 노년층의 증가를 불러 일으키며 노년층의 새로운 소비 세력을 일으키고 인구 변화는 새로운 중산층을 불러 일으킨다. 이들에 맞춘 새로운 소비와 경제 형태가 일어난다. 그 연결점을 제대로 알아내면 우리는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2030 축의 전환』은 바로 그 방향성을 알려준다.

노년 증가에 대한 현상을 일본으로 예시한 부분이 인상깊었고 한국의 사례도 제시되어 흥미로웠다. 특히 여성, 여성 정치인에 대한 편견 등은 저자가 미래에 제시한 여성의 밝은 미래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우려도 있다.

이제 새해가 되면 2021년을 맞는다. 2030년이 되려면 9년이란 시간이 남았다. 결코 많지 않은 시간이다. 저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종을 울리며 빨리 변화의 흐름에 탈 것을 요청한다. 이 책이 미래를 바라보는 데 방향은 잡아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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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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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들에게 주말은 없다. 엄마 뿐이랴.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말은 무의미하다. 아이 또는 누군가를 돌보아야 하는 어제와 똑같은 날이다. 워킹맘인 내게도 마찬가지다. 평일은 회사에 가고 저녁에는 아이를 돌보지만 주말은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매여 있는 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내가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게는 시간을 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이들이 빨리 자야 서평을 쓸텐데... 시간이 나면 못 읽은 책을 마저 읽어야지... 하지만 시간은 쉽게 나지 않는다. 책은 같은 페이지를 맴돌고 내 노트북은 커서만 깜빡거리고 있다.

김이설 작가의 장편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은 집안일에 자신을 희생해 온 한 여인의 이야기다. 부모님 집에서 사는 주인공 나는 변변찮은 직업이 없이 조카들 육아와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제부의 폭력을 본 후 참다 못해 동생과 조카를 데리고 온 후부터 나는 두 조카들을 맡는다. 군식구가 늘면서 아버지는 경비일을 하고 어머니는 청소일을 한다. 동생은 회계사 사무실과 퇴근 후에는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가족들이 출근 후 아이들을 돌보는 일과 식사 빨래 청소 등 모든 일은 나가 맡아서 한다.

육아와 가사에는 퇴근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끝이 없고 매번 반복된다. 매번 닦고 밥을 차리고 씻기는 일이 반복된다. 퇴근이 없는 노동이지만 절대 티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는 공통점도 있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청소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집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밥순이, 집순이라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주인공 나 또한 마찬가지다. 집안 식구들을 깨우고 밥상을 차리고 조카를 온종일 돌봐도 바깥에서 일하는 동생만 대우받는다. 심지어 엄마는 일하는 사람이 잠을 잘 자야 한다며 나의 방을 동생의 방으로 바꿔버리고 나를 거실에서 자도록 한다. 집안일 까딱하지 않는 엄마는 매일 출근 전 온갖 집안일을 명령하지만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내게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항상 '24시간'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만을 위한 시간. 나에게 집중하고 온전한 휴식을 위한 시간. 엄마가 된 이후 나는 언제나 24시간이 고팠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에서는 필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시를 쓰고 싶어 공부했고 매일 시를 필사하는 밤을 조카들을 돌보며 빼앗겼다. 깨어있는 동안 조카와 집안일에 매여있어야 하는 나의 일상은 더욱 지치게한다. 주인공을 버티게 해 준 필사의 밤들이 빼앗기며 주인공 또한 흔들린다.



자꾸 주인공을 통해 나를 대입하게 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또는 돌봄노동의 당사자로서 쫓기는 시간들, 주인공의 채우지 못한 노트에는 시간에 쫓겨 글을 쓰느라 엉망이 된 나의 글들을, 그 고단함을, 필사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질수록 더욱 초조해지며 힘들어하는 날들은 책을 읽으려다 한 장도 다 못 읽고 잠들어버린 나의 날들에 대입해가며 순간 순간 울컥함이 치밀어 오른다.

이 일상 속에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동생만을 챙기는 엄마, 엄마는 주인공에게 말한다.

"너도 있으면 가. 안 말려, 아니지, 못 말리지. 내가 뭐라고 네 갈 길 막겠니."

엄마의 목소리는 남편의 목소리가 오버랩된다. 시간을 달라고 할 때마다 "쉬어. 내가 언제 못 쉬게 했냐!"라며 말하는 말은 헛웃음만 맴돌게 했다.

많은 엄마들이, 또한 많은 돌봄노동자들은 희생을 강요받는다. 이름 없이 살 것을 요구한다. 아이들을 낳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어머니가 뒤에서 나를 부르셨던 때를 기억한다. "xx애미야." 아이를 낳은 후 나는 내 이름을 잃었다. 자연스레 이름보다 oo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그 생활 속에 누가 자신을 불러도 알지 못한다는 우스개 소리는 이제 일상사이다. 시간과 꿈과 이름까지 잃어가는 게 당연한 일상이다.

조카 육아와 집안일에 함몰되어 가는 주인공에 무한 공감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짬을 내어 필사하고자 하는 몸부림에 응원을 하게 된다. 내가 힘들어 할 때 나를 응원해주었던 내 주변의 사람들처럼 주인공이 마침내 독립하며 자신의 삶을 찾아 걸어나갈 때 무한 박수를 치게 된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을 읽고 또 읽는다. 읽으면서 수십 번 주인공에 나를 대입해본다. 시를 비평할 재간도, 필력도 없지만 필사를 하며 버텨가는 주인공과 글을 쓰고 싶어 책을 읽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나를 본다. 이대로 포기해야 할까 갈등하며 초조해했다. 이 긴 시간 끝에, 주인공이 필사를 해 오며 쌓인 문장들 속에 머물지말고 자신의 시를 계속 써내려가야 함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을 보며 나 또한 남의 글을 읽는 데 머무르지 말고 나의 글을 써 내려가야 함을 함께 알아간다.

첫 장을 읽어나갈 때부터 주인공에 무한 공감을 해 가며 혹시라도 저자가 주저앉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 책의 해설을 쓴 구병모 작가와 이 책의 저자 김이설 작가 또한 육아로 글 한 편 제대로 읽지 못했던 날들의 고통을 호소한다. 시간이 날 때 쓰는 게 아닌 "쓸 수 있을 때 그냥 쓴다"는 작가의 글은 돌봄노동의 현실을 대변해준다.

그 고단함을 알기에 김이설 작가는 주인공에게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허락하는 결말을 주었나보다. 함께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힘내자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위로해 주는 글을 아버지의 통화 "주저앉지 마"라는 한 마디로 위로해주었나보다. 다행이다. 주인공이 포기하지 않았듯 나도 포기하지 않으련다. 주인공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써야 겠다고 말하듯, 쓸 수 있을 때 쓴다는 구병모 작가처럼, 오늘 밤에도 써야겠다는 김이설 작가처럼 나도 나만의 글을 쓰련다. 나는 아직 미처 피지 못한 꽃이니까..




-리뷰어스 클럽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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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집
래티샤 콜롱바니 지음, 임미경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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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럽의 여자 앵커가 팔찌에 찬 글귀가 화제였다. 코로나로 외출이 어려워진 집콕 시대에 집에 거주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가정 폭력이 증가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여자 앵커는 폭력을 반대하는 글귀였다. 이 영상은 많은 네티즌들에게 호응을 받았다. 재난의 시대, 전염병의 시대, 가정 폭력과 이혼율이 증가했다. 또한 최근 실업률 또한 여성 실업률이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재난은 여성에게 무자비함을 깨우쳐주는 각종 수치가 발표되었다.

『여자들의 집』은 사는 곳은 다르지만 동시대에 사는 세 명의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세 갈래의 길』로 감동을 선사한 래티샤 콜롱바니의 신작 소설이다. 전작에 이어 이 『여자들의 집』 에서는 재난에 쉽게 노출된 여성의 현실과 이들과 함께하며 나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소설은 잘 나가는 변호사 솔렌이 절친한 지인 생클레르의 변호를 했지만 최악의 결과와 함께 생클레르의 투신으로 모든 게 무너져버린 모습으로 시작한다. 생각지 못한 생클레르의 죽음으로 충격 받은 솔렌은 쓰러지고 의사로부터 '번아웃' 증후군 진단을 받는다. 모범생, 명문대, 유명 로펌, 능력있는 변호사, 넓은 아파트 등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던 솔렌은 갑자기 모든 것이 허무해진다. 휴일도 없이 일만 하며 바쁘게 살았던 일들이 무의미해지고 넓은 아파트는 생각만해도 외롭다. 일상으로 돌아가기 두려운 솔렌에게 의사는 남을 위한 봉사활동을 제안한다.

로펌 사직 후 의사의 제안에 따라 봉사활동을 알아보던 솔렌은 '펜연대'라는 협회를 알게 된다. 어렸을 적 작가가 꿈이었던 솔렌은 글을 써 주는 직업이라는 설명에 봉사활동을 신청하고 '여성들의 궁전'이라는 쉼터에서 편지를 써 주는 일을 시작한다.

소설은 솔렌이 '여성들의 궁전'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을 알아가며 변화해가는 이야기와 '여성들의 궁전'을 지은 구세군 블랑슈가 이 쉼터를 만들게 되기까지의 과거 이야기가 교차되며 전개된다. 이 쉼터에는 각국에서 온 여성들 뿐만 아니라 갈 곳이 없어 이 곳에 잠시 거처를 마련한 불우한 환경의 여성들이 쉬고 있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배낭으로 테두리를 정한 후 잠을 자고 어떤 사람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며 화를 내는 여성도 있다. 솔렌의 눈에는 그들이 이상한 여자들로만 보이며 거부감을 갖는다.

이해할 수 없는 여성들이 솔렌에게 다가오고 솔렌은 그들의 사연을 듣고 편지를 써 주며 뉴스에서 보았던 재난과 전쟁들을 비로소 체험하게 된다. 이방인으로 멀리서 그들을 보았을 때 가난, 전쟁, 재난 등이 추상적으로 다가오지만 이 재난들이 쉼터에 거하는 여자들의 이름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그 실체가 명확해진다. 이 단어들이 결코 추상명사가 아닌 동사로 다가오며 그들의 사연에 분노하게 되는 솔렌의 모습이 그려진다.

가령 이 '여성들의 궁전'에서 일하기 전에는 잘 알지 못했던 바느질 용품이 노력에 비해 얼마나 헐값을 받는지, 아프리카에서 딸에게는 할례라는 고통을 주기 싫어 아들을 두고 몰래 딸과 함께 프랑스로 피난 온 수메야를 통해 할례의 의미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정부 지원금을 받고도 빈곤에 허덕이는 여자들에게 단 돈 2유로 거스름마저도 얼마나 절실한 돈인지를 알게 되며 가난, 빈곤의 이름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나에게 일종의 신고식을 치르게 할 심산일까?

고작 2유로를 돌려받기 위해 편지를 써 달라니 …….

그 돈을 돌려받아 봤자 우편 요금과 봉투 값을 빼면 남는 게 없는데.'

여자의 요청을 거절하려는 찰나

그가 솔렌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말을 덧붙였다.

"내 앞으로 한 달에 50유로가 나와요.

그걸로 이곳의 원룸 임대료를 내고 공과금 고지서며 청구서들을

메우다 보면 식비가 빠듯해요."


재난과 빈곤으로 '여성들의 궁전'에 와서 숙식해야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점점 파리 중심가의 빈곤에 처한 여성들로 이야기가 옮겨진다. 화려한 파리 시내, 부유한 솔렌의 마을에 빵집 앞에서 구걸하는 한 소녀에게로 초점이 옮겨진다. 솔렌이 이 쉼터에 오기 전까지는 전혀 관심 없었던 빈곤의 실체가 이제 이웃의 이름으로 '릴리'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있었다.

접근하지 말라는 경계선, 일종의 폴리스 라인이었다.

완충지대, 무인 지대라고,

아무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막아서는 바리케이드였다.

그들 대부분은 여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저 요령 있게 피해 가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들에게 여자는 하나의 걸림돌, 그저 길을 가로막은 어떤 물체였다.


소설을 읽으면 김춘수의 시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이 유명한 구절을 이 소설에 대입해본다. 솔렌이 가난,재난,빈곤을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을 때 이 단어들은 하나의 추상명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쉼터에서 만난 여성들, 이웃들의 이야기가 될 때 가난, 재난은 추상명사가 아닌 하나의 실체가 되었다. 이웃의 이름으로 그 단어들이 다가왔다. 솔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솔렌이 이들을 만나 변화하며 함께 연대할 때 조금씩 변화가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책 표지의 "우리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라는 문장은 바로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 될 때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고통을 함께 나눔으로 그 고통은 혼자의 것이 아닌 모두의 고통이 된다. 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구원이 될 수 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이웃의 이름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움직일 수 있다.

우리가 상처를 치유하는 첫 걸음은 바로 그들의 고통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내 이웃, 가족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가 될 때 우리는 그들을 구원할 수 있다.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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