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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여신 - 사납고 거칠고 길들여지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외 지음, 이수영 옮김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평점 :
서문을 쓴 산디 토츠비그까지 합해 16명의 작가들이 힘을 합쳤다.
영국의 '비라고 (Virago)'출판사 50주년 기념 기획으로 이 기획의 목적은 명확하다.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가 더 많은 독자에게 닿기를 바라는 목적>이다.
<시녀이야기>로 유명한 마거릿 애트우드를 포함한 15명의 작가들이 발표한 현대소설 『복수의 여인』 의 컨셉은 독특하다.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여러 멸칭 (남을 비하할 목적으로 부르는 호칭) 들을 주제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에도 여성들을 낮춰 부르는 호칭이 많았다.
청에서 돌아온 여성들을 욕보이는 말 '화냥년'을 비롯해 현재의 '맘충이'까지 사람들은 여성들을 낮춰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현상은 한국에서만일까? 현대문학에서 출간되 『복수의 여신』은 이 현상이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었음을 말해준다.
'사이렌' - 아름답지만 유혹적인 '요부' '경보음'
출판사 이름이기도 한 '비라고' - 문제를 일으키는 호전적인 여자
'해러던' - 나이가 들어 사납고 보기 흉해진 여자 등등..
나이를 막론하고 여러 여성들을 부르는 호칭이 그렇게나 많단 사실에 놀라게 된다.
하지만 이 15명의 작가들은 그 호칭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오히려 그들의 단편 속에 새로운 서사를 부여넣는다.
먼저 마가렛 애트우드의 단편 <뜨개질하는 요물들>을 읽으면 이 책의 목적을 분명하게 밝힌다.
가상의 세계에서의 모임 '경계의 존재들 뜨개질 모임'
여기서 주목할 말은 바로 '경계의 존재들'이다.
'경계'란 문지방에 비유되기도 해.
너희도 잘 알다시피, 우리는 모두, 말하자면 문턱을 사이에 두고
양발을 하나씩 놓은 처지이지.
양발을 하나씩 놓은 처지.
하지만 이 현실에서는 '모' 아니면 '도'를 요구하기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소수자들이 있다.
그들은 이 사회에 존재하지만 앙쪽 모두 경계에 걸치기에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에 걸친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실종자'가 된다.
사라지는 존재들.. 그들은 우리의 암묵적 & 자발적 무관심과 배척 속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실종자'가 된다. 그래서 마거릿 애트우드는 소설 속에서 이 경계에 걸친 자들을 위한 뜨개질 모임을 만들고 그들이 존재하도록 해 주자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중 다수가 실종자들의 행방을
알거나 찾아낼 능력이 있다는 거야.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그들을 배척하지만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실종된 존재들을 찾아낼 수 있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것 뿐이라는 사실이다.
엠마 도노휴의 단편 <가사 고용인 노동조합> 또한 인상깊다.
이 단편은 '테머건트'라는 멸칭을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 테머건트 - 표독하고 거만하며 잘 싸우는 여자. 우리말로 '싸움닭'
이 테머건트라는 멸칭으로 우리는 소설 속 여성이 당당하고 만만치 않은 여성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가사 고용인이 싸움닭 같은 여자라면 이야기가 어느 쪽일지 더욱 짐작할 수 있다.
미스 시프섕크의 밑에서 일하는 캐슬린. 그녀는 좋은 주인을 만나서 배우기도 하며 소신도 뚜렷한 가사 고용인이다. 그래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도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도 뚜렷하다. 그래서 자신의 업무인 '화덕' 닦는 일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문제 많은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성을 내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 그래서 그녀의 이의를 제기함으로 그녀를 아끼던 고용주 미스 시프생크로부터 해고를 당한다. 좋은 고용주였고 더 좋은 곳으로 가서 일하라고 하지만 결국 고분하지 않다면 내칠 수 밖에 없다는 미스 시프생크의 말은 씁쓸함을 자아낸다.
유흥업 종사자를 성적이 아닌 직업적으로 고민하는 여성의 고뇌를 그린 <포르노 배우의 우월함>과 노화에 대해 젊은 세대들의 관점을 비교하며 노화를 비하하는 현 세태들의 이야기를 그린 <할망구의 정원>등 많은 문제들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통으로 일어나는 현상임을 이 소설은 알게 해 준다.
그래서 여러 멸칭으로 낮춰 불려야만 했던 그들이 제목 그대로 '복수의 여신'으로 태어날 수 밖에 없게 되었는지 이 소설집은 말해준다.
여성. 소수자들을 다룬 이 소설을 보면서 나는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작가가 인터뷰에서 한 말을 떠올린다. "속도는 아주 느리지만 우리는 분명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도 과연 옳게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분명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때 여성과 소수자들을 낮춰 부르는 멸칭들이 다시는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리라 생각해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