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
봉현 지음 / 미디어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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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 나는 계획녀였다. 매년 다이어리를 사고 매월, 매주, 매일마다 해야 할 일을 빼곡히 적기를 좋아했다. 공부는 물론이고 운동, 독서, 글쓰기 등 빼곡하게 계획을 세워나갔다. 

처음부터 거대하게 목표를 세우면 그 중 절반은 갈테니 무조건 목표는 크게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때는 몰랐다. 거창한 목표도 좋지만 무리함은 금방 지치게 한다는 걸. 매번 나는 작심삼일도 안 되어 두 손을 들었고 자기 회의감만 일으켰다. 그 회의감이 나를 덮칠 때면 나는 한없이 불행해졌다. 

 

봉현작가의 에세이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는 그런 나를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 프리랜서 작가로 불규칙한 일정과 수입으로 생활하지만 자신을 지켜나가는 루틴을 만들고 지켜나간다. 그리고 자신만의 루틴을 작가는 "단정한 반복"이라고 정의한다.  거창하게 세우기보다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지점을 찾는다. 적당히 게으르고 적당히 먹고 운동하며 무리하지 않는 것. 설사 오늘 지키지 못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는 것. 그래서 저자는 자기계발의 대가들이 말하는 성공의 지름길같은 공식을 말하지 말고 그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라며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한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같은 크고 무서운 말보다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같은 작고 귀여운 말과 함께 

매일 실천하는 힘이 더 크다. 


그동안의 나의 계획들을 돌이켜본다. 매번 매일 글쓰기, 매일 독서하기 등 나에게 무리한 것임을 알면서도 의지력으로 극복하지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하며 나를 몰아세웠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채찍질하고 나를 탓하기 바빴다. 이런 나의 계획이 '단정한 반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봉현 작가는 절대 자신을 무리하게 두지 않는다. 때로는 게으로기도 하고 휴식을 취한다. 몸의 에너지 등급이 높으면 열심히 속도를 내고 에너지 등급이 떨어지는 때에는 자기 몸의 휴식을 허한다. 그리고 난 이후 다시 예전의 루틴으로 돌아간다. 작가만의 단정한 반복을 세워간다. 

 

별다른 일 없이 똑같은 매일, 단정한 반복, 나쁜 일 없는 하루, 

혼자만의 평화, 소소하고 잦은 기쁨. 

내일을 기대하며 잠들고 아침을 맞이하며 기대를 채운다. 

그 기대들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한도 안에 있다. 

내  손안에 쥐어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것들.

그 이상은 기대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서, 가능한 만큼만 행복하면 된다.

 

8월, 나는 새벽기상을 시작했다. 예전같으면 나는 여러 목표를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엔 봉현작가처럼 나에게 여유를 허하기로 했다. 떄론 실패하고 때론 성공해도 실망하지 않는다. 여유가 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일찍 일어나서 시간이 많으면 원래 목표했던 일을 해나가고 늦게 일어나서 30분밖에 없으면 30분안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해나간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다음 날을 기약하니 작심삼일이 아닌 한 달 가까이 목표를 성공해간다.

 

 많은 자기계발 전문가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루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은 습관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부자습관'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루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바로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마음이 먼저 우리 안에 있어야 함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 역시 목표에 실망했을 때 의지박약인 나를 탓하며 왜 나는 이 모양일까라며 비판하기에 바빴다. 습관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습관은 과연 오래 갈 수 있을까? 나를 구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명확한 결과물이 없다 할지라도, 

매일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매일은 

꾸준하고 성실하며 가치 있다. 

그런 오늘의 나는 언제나 사랑스럽다. 

 

하루를 살아가는 모두의 일상은 반복들로 이루어져있다. 

매일 먹고 일을 하고 잠을 잔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행동들을 해 나간다. 어떤 반복이든 무의미하지 않다. 조금만 더 자신을 위한 방향으로 반복해나가기만 하면 된다. 오늘 하루도 수많은 반복을 하고 있는 나에게 잘해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그리고 작가만의 단정한 반복이 작가를 지켜낸 것처럼 나 또한 나를 위한 반복들을 새롭게 추가해가고 싶다. 그 조그마한 시도 속에 나는 성장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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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알면서 뛰어든 도박판이었죠." - P77

 사회는 그런 불안을 이용한다. 수많은 청춘들이 온갖 이유로 빚을지게 만든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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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아름답다. - P8

 나에게 맞을 것 같은여러 가지 방법을 추려 본 후 그걸 하나씩 시도해 봐야 한다.
- P66

다이어트는 운동할수 있는 체력이 밑바탕에 단단히 깔려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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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제 여성 신은 필요 없는 거야. 남자가지배하는 세상을 여성이 만들었다고 하면 말이 안되니까." - P42

 사람들은, 협박을 받는 여성들에게 왜 반항하거나 신고하지 않았냐고 묻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아니었다.  - P98

"가희야, 네가 지금 안나 서를 알고 있지 않니?
나도 안나를 기억하고 있고, 우리 모두 안나를 기억하고 지금까지 말하고 있어."
"네?"
"이게 바로 낙관이야. 우리는 낙관할 수 있어.
우리가 잊지 않고 있으니까."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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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 미군정기 윤박 교수 살해 사건에 얽힌 세 명의 여성 용의자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1
한정현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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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麻姑)는 한국 신화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유일한 여성 천지창조신이었다. 남성 신들이 파괴하며 세상을 창조할 때 여성 신은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세상을 만든 여성 신 마고. 그들의 존재는 조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지나 여성 신인 마고에서 마녀, 마귀할멈이 되었다. 역사는 그렇게 여성 신의 존재를 쫓아내었다. 일제가 조선의 역사를 왜곡하려고 한 것처럼 여성 신 마고도 마귀할멈으로 바뀌어갔다.

 

그냥 이제 여성 신은 필요 없는 거야.

남자가 지배하는 세상을 여성이 만들었다고 하면 말이 안 되니까.

 

한정현의 소설 《마고》는 역사에 의해, 시대에 의해 마귀할멈으로 취급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일제가 물러가고 미군정의 치하에 있는 남한. 미군정에 눈 밖에 나면 좌익으로 분류되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시대,

독립은 했다지만, 여성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지만 여전히 여성은 천대받고 불법은 판을 친다.

이 살얼음판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숨기고 여성 검안의로 살아가는 연가성.

책상 위에 수북히 쌓여 있는 사건들 속에서 수상한 살인 사건을 접한다. 친미 세력을 등에 업고 귀국한 윤박 교수의 살해 사건. 범인은 미군. 하지만 미군정은 이 살인 사건의 진짜 범인을 몰래 미국으로 내빼고 윤박 교수에게 원한이 있는 여성 세 명을 용의자로 내세우며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덮어씌우려고 한다.

미군이 주목한 용의자 세 명은 <모던조선>의 편집장 선주혜, 윤박 교수의 식모였다가 기생집에서 성매매 일을 한 전력이 있던 윤선자, 그리고 윤박 교수의 조수였던 한초의. 이 세 명은 모두 한 날 호텔 포엠에서 윤박 교수와 실랑이를 벌인 알리바이가 있다. 모두 윤박 교수에게 원한을 품을 일이 있다. 과연 이 중에 범인은 누구일까?

연가성과 함께 사는 룸메이트이자 오랜 지기인 곽운서와 함께 이 사건을 조사해가며 이들이 알게 되는 진실은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에게 드리워진 억압의 굴레이다. 시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여성 및 약자에게 가혹한 시대. 마고 신이 마귀할멈이 되었듯 여성들의 존재는 남성들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고 짓밟히는 모습이 목격된다.

 

사람들은,

협박을 받는 여성들에게

왜 반항하거나 신고하지 않았냐고 묻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만약 소설이 여성들이 시대에 의해 마귀할멈으로 짓밞히는 모습만을 그려냈다면 이 소설은 타 소설과 차별성이 없다. 한정현의 소설은 남성주의 역사에 맞서 여성들, 소수자들이 그려내는 사랑의 방식을 맞서 보여주는 데 있다.

서로를 짓밟고 죽이는 대신 연가성을 포함한 모든 여성들은 자신을 낮추더라도 함께 하는 방식을 택한다.

호텔 포엠의 사장이자 목격자인 에리카.

이 소설의 중심축인 연가성과 연가성을 끝까지 사랑하는 곽운서.

자신을 도와준 은혜를 잊지 않으며 끝까지 함께 하는 삶을 택한 카페 주인 송화.

그리고 윤박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여성 신주혜까지... 이들은 알고 있다. 남성들의 방식으로 남을 짓밟고 파괴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남을 구할 수 없음을. 마고신이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세상을 창조했듯, 자신의 것을 나누고 함께 할 때 모두가 살 수 있는 길임을 알고 함께 하는 길을 택한다. 태양처럼 강한 빛이 아니지만 태양의 빛을 나누는 은은한 달빛이 되는 삶을 택한다.

 

 

태양도 그냥 무수한 별 중에 하나래.

너무 밝아서 주변 별들의 빛을 다 가져가버리지만 말이야.

태양이 너무 빛나면 오히려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천지를 뜨겁게 태우는 태양의 존재는 강렬하지만 달빛에게는 그런 강렬함이 없다. 태양은 홀로 빛나지만 달빛은 별과 함께 빛난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모두 그러하다. 함께 빛나는 존재로 살아가길 택한다. 그래서 더 강한 태양의 존재에 죽임을 당하거나 사라져 가거나 마귀할멈으로 추락하기도 한다.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라고 묻는 연가성에게 스승은 답한다.

 

우리 모두 안나를 기억하고 지금까지 말하고 있어.

이게 바로 낙관이야.

우리는 낙관할 수 있어.

우리가 잊지 않고 있으니까.

 

비록 이 순간 우리가 지고 있는 것 같다 하더라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낙관할 수 있다는 것.

계속해서 말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희망이 있다.

지금은 아무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가 기억하는 한 희망의 불씨는 살아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고 기억하고 함께 해야 한다. 그게 마고의 신을 다시 복원할 수 있는 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 격동의 시기를 통과해 낸 많은 여성들과 소수자들의 삶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비록 지금까지 차별금지법은 통과되지않고 제자리걸음인 것 처럼 보여도 결국엔 서로의 연대가 우리의 끝없는 기억과 말들이 희망의 불씨가 되어 또 다른 불씨를 키워나갈 수 있음을 말해준다. 태양처럼 단번에 빛을 내진 못해도 느려도 함께 빛나는 삶을 택하는 마고들의 빛이 더 오래 은은하게 모두에게 비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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