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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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태고의 시간들』은 우리에게 낯선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축의 장편소설이다.

폴란드의 시간과 공간이 중첩되는 지점인 가상의 장소 태고(太古)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각 인물의 시간별로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설명해나가는 독특한 소설이다.

소설의 첫 시작은 마을 태고의 시간부터 시작된다. 흑강과 백강이 가로지으며 천사들이 겡계를 지키고 있는 마을의 시간을 설명하고 태고에서 방앗간을 운영하는 게노베파의 시간부터 인물들이 그려져간다.

1914년 여름, 러시아 군인에 의해 전쟁터로 떠나게 된 게노베파의 남편 미하우와 남편이 떠난 후 임신 소식을 알게 된 부인 게노베파가 홀로 전쟁을 견뎌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작가는 이 태고의 시간들에서 단 한 명에게만 시점을 제한하지 않는다. 게노베파가 딸 미시아를 출산 후 미시아의 시점에서 시간을 그려가며 돌아온 남편 미하우의 시점 그리고 또 다시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이즈도르의 시점 등 시간이 흐르면서 세대의 변화에 맞추어 그 주변 인물들의 시간을 설명해 나간다.

분명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공간인 마을이지만 실제 일어난 현실의 역사와 결합하여 시간들의 역사를 그려나간다.

특히 2차 세계대전 시 히틀러에 의해 폴란드의 많은 유태인들이 짓밟히며 총살을 당하는 모습과 집과 터전을 잃고 숲에서 벌벌 떨며 그 상황을 홀로 견뎌야만 하는 상황을 작가는 어떤 과장도 없이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독일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며 더 이상의 진군을 멈추길 바라는 독일인 병사의 시간 속에,

최전선을 준비하며 두려움 속에 하루 하루 버텨나가는 러시아 병사 이반 무크타의 시간 속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두려움에 지내야만 하는 미시아의 시간 속에 작가는 이 현실의 두려움을 각자의 시간 속에 설명해나간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가고 옛 세대가 병들고 죽고 또 다른 세대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이 마을 태고의 이야기는 박경리 작가의 소설 《토지》를 떠올리게 한다. 최참판댁 최서희를 중심으로 20권에 걸쳐 펼쳐진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이 『태고의 시간들』을 조금 더 자세하게 풀이했더라면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서유럽에 비해 동유럽, 특히 폴란드는 익숙하지 않은 나라이다. 폴란드의 문화, 신화 등에 무지한 나에게는 처음 다가온 수호천사며 에슈코틀레 성모의 존재 등 내게 낯설었다. 단지 한 인물의 시점이 아닌 커피 그라인더, 성모의 시간, 익사자 물까마귀의 시간등은 사실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 등이 다소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역사에 좀 더 익숙했더라면 더 잘 몰입했을텐데라는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이 "태고"라는 허구의 공간에 여러 세대를 통해 세계사의 역사를 대입하며 시간을 전개하는 능력은 정말 뛰어났다. 그리고 그 시점이 단 한 명의 시점이 아닌 여러 명의 시점에서 설명해감으로 인해 역사가 주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들어주었다.

다음에 폴란드에 관해 조금 더 공부를 한 후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그 때는 아마 더 풍부하게 이 책을 더 잘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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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 그들 - ‘그들’을 악마로 몰아 ‘우리’의 표를 쟁취하는 진짜 악마들
이안 브레머 지음, 김고명 옮김 / 더퀘스트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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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 그들 』은 미국 정치 컨설팅 싱크탱크 "유라시아 그룹"의 히장이자 <타임>지의 전(前) 편집장이자 현재까지 커버 스토리를 장식하는 칼럼니스트인 이안 브레머의 사회 속에 부각된 대립 구도를 분석한 책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모든 세계인들은 힐러리가 당선될 것임을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보호주의를 앞세우며 우리만 잘 살면 된다고 주장하는 트럼프의 공약은 세계패권국가인 미국의 대통령이 할 소리가 아니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막상 연 뚜껑은 트럼프의 승리였다.

장기간의 내전으로 초토화된 시리아. 목숨을 걸고 배를 타고 유럽으로 넘어오는 난민들. 그리고 그 속에서 시작되는 사회적 긴장감과 불안함. 그리고 그 긴장감을 이용하며 제목처럼 『우리 대 그들」 구도로 만들어가는 정치인들이 있다.

저자는 갈수록 대립이 심화되는 현 상황에서 이 좌절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그 시작점을 불평등으로 이야기한다.

세계주의의 수혜자들은 세계주의의 영향으로 기술력이 발달하고 서비스 및 금융 산업이 발전하고 개발도상국의 많은 사람들이 부유국들의 공장 이전으로 인해 많은 일자리를 얻는 등 혜택을 보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만이 부와 기회를 축적하며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싸움과 '병신'취급 받지 않으려는 패자들의 노력이 사회를 좌우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급성장하는 AI 인공지능과 업무의 자동화가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대신하여 이러한 대립구도를 악화시킬 주요원인으로 지목하는 부분에서는 최근 카카오사에서 승차공유 앱을 발표한 이후로 택시 기사들의 분신투쟁이 떠오르게 한다.

이 대립구도를 정치인들만큼 잘 이용하는 집단이 있을까? 정치계에서는 이 상황을 부풀려서 자신의 집단의 구미에 맞는 말로 단결하게 만든다. 보호주의와 장벽 건설을 주장하는 미국의 트럼프와 프랑스 이민자를 급격히 제한하기 위해 EU 탈퇴설을 주장했던 프랑스 대통령 후보자 르 펜 또한 대립구도로 자신들의 지지층을 형성해나갔다.

EU의 압박에도 난민에게 국경의 문을 열지 않는 동유럽 국가들등 국수주의와 보호주의로 가득한 대립구도는 정치인들에게 가장 좋은 수단을 제공한다.

한국의 정치사에도 대립구도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나뉘어 전라도인을 "빨갱이","공산분자"로 취급하며 온갖 선거때마다 이 대립구도는 매번 되풀이되었다.

최근 발생한 제주도 난민 사태에 대해 난민 입국을 거부하는 청와대 청원이 70만을 돌파하고 앞서 말했듯 인공지능의 성장은 또 다른 대립구도를 만들어낸다.

저자는 이러한 대립구도속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분리하기 위해 세운 장벽과 중국의 인터넷 검열 등 기타 변수를 제외하고 자신들의 체제를 공고하게 하기 위한 여러 장벽들을 말한다.



그 장벽들은 상대방, 즉 "그들", 집회의 자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누름으로서 자신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호한다. 오바마를 지지했던 유권자들 중 트럼프를 선택한 이유 또한 자신들의 집단의 정체성을 공고히하며 이익을 침해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사회가 불안할수록, 경제가 침체될수록 이러한 대립은 갈수록 커져간다. 그리고 그 속도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올 것이다.

대립구도를 어떻게 완화시킬 수 있는가. 불평등의 해소가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그 불평등의 해소 과정에 부정부패와의 싸움이 전제된다. 사회가 개혁되어야 하며 어느새 성큼 다가온 자동화 시기에 맞춘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한다. 너무 요원하게만 느껴지는 저자의 해결방안이 다소 실망감도 느껴진다.

한국의 곳곳에서도 대립구도는 갈수록 심화된다. 태극기부대와 촛불집회, 난민찬성과 난민입국반대, AI에 따른 실업위기 등등 앞으로 대립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카카오 승차 공유 앱에 대해 어떤 대책도 없는 정치계를 보며 저자가 말한 대로 철저한 상황 분석과 그에 맞는 교육의 시급화가 필요함을 다시 한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실시되고 있는 기본소득보장제 또한 AI 시대에 갈등을 완화할 수 있는 보완재 역할로 한국에도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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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 〈빅이슈〉를 팔며 거리에서 보낸 52통의 편지
임상철 지음 / 생각의힘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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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보면 <빅이슈> 잡지를 판매하는 판매원, 즉 빅판을 보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그들을 지나칠 때 봉사하는 셈 치고 한 부씩 구매하곤 했었지만 정작 빅판을 하는 분들에 대하여는 어떤 사연이 있는지, 그리고 그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도 관심이 없었다.

『오늘,내일,모레 정도의 삶』은 조형물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직장을 잃고 홈리스로 간간히 살아가다 <빅이슈>를 판매하는 임상철씨가 <빅이슈> 잡지에 자신이 그린 그림과 글을 삽입하였던 52통의 편지를 모은 글이다.

'홈리스',보통 우리는 길가의 벤치나 지하철 역에서 노숙하는 노숙자들을 볼 때 자립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사람들의 구걸만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왜 그들이 이 거리 한 복판에 내몰렸는지 아무도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그들의 무능력함과 게으름을 탓하며 변명하지 말라며 손가락질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과거 보육원에 보내졌던 슬픈 추억과 함께 여기 저기를 방황하는 모습을 솔직하게 그려낸다. 일용직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하루 하루 근근히 살아가는 삶. 제목 그대로 오늘,내일,모레 정도의 삶을 살아가기에도 힘겨운 홈리스로서의 생활을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집이 없이 떠도는 삶. 어디에도 환대받지 못하고 사람들의 눈초리와 소리 없는 비난 속에 살아가는 홈리스의 삶에 대해 저자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홈리스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결코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닌, 일어서고 싶어도 그들을 도와줄 보호막도 없이 내동댕이쳐진 삶,

추위와 폭력에 쉽게 노출되며 약해진 체력, 그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이야기해나간다.

미래를 꿈꿀 수 조차 없는 그들의 현실이 얼마나 팍팍하고 고달픈지 보여준다.

자신이 홈리스임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하며 잡지 판매를 하는 삶 속에서 결국 저자에게 힘이 되어 준 건 사람들이다. 자신의 생일날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며 28부 모두를 사 간 독자, 저자가 쓴 그림과 글을 유심히 읽으며 한국을 떠날 때까지 매번 <빅이슈>를 구매해 주었던 호주 독자,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가불을 요청하는 저자에게 자신의 돈으로 이십만원을 빌려준 이사님 등등. 한 명 한 명이 저자에게 빛이 되어 주었고 희망이 되어 주었다.



저자 임상철씨는 홈리스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배고픔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에게 두려운 건 바로 외로움과 무관심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이 현실 속에 더욱 외로워지는 이 현실이 가장 버겁다고 말한다.

동정이나 비난이 아닌 온전한 자신의 인생 그대로 바라봐주고 경청해주기를 저자는 정중하게 요청한다.

비록 홈리스로 오늘,내일,모레 근근히 살아가지만 자신의 인생 또한 소중한 인생이기에.


결국 사회를 바꾸는 힘은 각자의 이야기를 경청해 주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국회에서, 또는 사무실에서 탁상공론을 하는 한국의 정치계 또는 사회에서 우리는 판단하기만 급급할 뿐 각자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해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고 빛이 되어 줄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빅이슈> 구매를 자기만족으로만 생각했던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정말 중요한 그 사람에 대한 관심은 없이 기부한다고 생각한 건 나의 자만이고 큰 착각이었다.

동정이 아닌 각자의 인생 그대로 바라봐주며 들어주는 것. 그것이 진정 이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걸 깨닫게 해 준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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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가 없어도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정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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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업고 2백 미터 달리기 올림픽 금메달을 꿈꾸며 달리는 유망주 이치노세 사라. 

운동 선수들이 그렇듯 이치노세 사라도 모든 생활이 달리기 위주로 계획되어 있다. 

실업팀 소속으로 오전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오후에는 달리기에 열중하는 사라는 매일 자신의 기록을 갱신하며 하루 하루 자신의 꿈이 가까워오고 있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6월 선수권대회를 한 달 앞으로 다가오고 합숙에 들어가기 전 집에서 부모님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사라는 옆집 소꿉친구였던 사가라 다이스케의 차에 치여 왼쪽 다리를 절단하게 된다. 

자신의 모든 것이며 희망이였던 다리가 절단 된 후 절단환자들이 겪는 육체적인 고통은 차치하고 사라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달릴 수 없다는 깊은 좌절감과 두려움이였다. 

 

차츰 현실을 인정하고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던 중 가해자인 다이스케는 의문의 살인을 당하고 이누카이 형사는 모든 사람들이 용의자로 배제하는 사라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한편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했던 사라는 텔레비젼에서 의족을 한 육상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의 영상을 보게 되고 다시 달릴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게 된다.


《날개가 없어도》는 새롭게 시작하는 이치노세 사라의 꿈을 향한 도전과 다이스케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형사 이누카이 형사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대비하여 보여준다.다시 희망을 품기 위해 역경을 딛고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가는 사라의 모습과 이누카이 형사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모습이 대조되며 사라의 꿈이 하나씩 현실로 실현될 때마다 긴장감 또한 커져간다. 



책을 읽는 내내 사라에 대한 응원과 제발 범인이 아니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교차되며 끝까지 긴장시킨 순간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는 반전의 제왕답게 모두의 예상을 깨는 대반전과 함께 묵직한 감동을 안겨준다. 


절단환자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고통 그리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일본사회의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주며 그러한 장애 속에서 다시 희망을 품음으로 기적을 이루어가며 그 기적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라의 주변 사람들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데 과연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감성 미스터리, 미스터리와 감동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는 굉장히 힘들다. 

잘못하면 모든 걸 놓쳐버리는 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스터리의 거장답게 나카야마 시치리는 이 어려운 숙제 두 가지를 《날개가 없어도》를 통해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음을 멋지게 보여주었다. 


나카야마 시치리, 매번 진화하는 작가임을 이번 소설에서 증명해보여주었다. 

다음 이야기에는 또한 어떤 이야기로 찾아올 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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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톰 말름퀴스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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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남자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동시에 겪어야만 하는 잔혹한 운명 앞에 선 한 남자가 있다.

새 생명이 태어나길 손꼽아 기다리던 톰과 카린의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호흡 곤란 증세가 찾아오고 병원에 실려가면서부터 그들의 평온한 일상은 처절히 깨져간다.

임신 33주, 아이를 품은 상태에서 내려진 청천벽력 같은 '급성백혈병' 진단.

치료를 위해 예정일보다 이른 출산으로 딸을 품에 안은 저자 톰은 한 병원 안에서 의식불명인 아내와 이제 갓 태어난 딸 리비아를 동시에 오가며 서로를 보살펴준다.

아내 카린에게는 자신들의 사랑의 결실인 딸의 사진을 보여주며 딸의 존재를 일깨워주려하고 딸에게는 엄마의 온기를 느끼게 해 주려고 한다.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은 저자 톰 말름퀴스트의 자전적 소설로 사랑하는 아내를 갑자기 떠나보내야 했던 극심한 슬픔과 그 후 딸 리비아를 키우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담한 어조로 그려낸 소설이다.

나 역시 아이를 낳고 갑자기 닥친 장유착과 더불어 아이를 산후조리원에 맡겨놓고 응급수술로 한 달 가까이 입원해 있어야 했다. 그 시간동안 남편은 나와 아이들을 오가며 돌보기에 바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때의 긴급한 상황이 재현되었다. 갑자기 닥친 발병과 새 생명에 대한 두려움, 혼란과 불안함. 의료진들은 보호자에게 열심히 설명을 해 주지만 여전히 믿기지 않는 현실.. 그 당시 남편의 모습이 저자 톰의 모습이 겹쳐진다.

갓난아기 리비아를 돌봐야만 하는 톰에게는 아내의 죽음에 슬퍼할 충분한 마음의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죽은 사람은 그만 잊고 삶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 또한 딸이 있기에 살아야 하고 남겨진 가족 또한 슬픔의 일상을 살아간다.

법적으로 혼인한 사이가 아니기에 친부임에도 불구하고 법적 보호자 인정을 받기 위해 수십 번 복지국에 전화해 상황을 설명해야 하고 아내의 장례식을 준비해야 하며 투병 중이신 아버지도 보살펴드려야 한다.

저자 또한 그렇게 삶을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은 현실을 버텨 가는 일상과 아내 카린과의 추억에 대한 회상이 교차되어 보여준다.

집안 구석 곳곳에 새겨져 있는 아내의 추억과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힘든 일상 속에 아내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못했던 미안함과 그리움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너무 담담한 어조로 서술해 나가는 저자의 글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상황 속에서 묵묵하게 모든 슬픔을 홀로 감당해나가는 저자의 심정이 느껴진다. 마음껏 슬퍼할 새도 없이 아이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책임감 속에 꾸역꾸역 일상을 유지해 나가는 저자의 마음이 그려져 읽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갑자기 닥쳐온 불행. 사랑한다는 말도 충분히 못했고 추억도 더 이상 함께 느끼지 못하는 일상 속에서야 저자는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이 바로 사랑을 전할 때임을 말한다.

우리의 순간 순간 중 소중하지 않은 시간은 없다. 아내를 떠나보낸 저자는 그 순간을 알기에 홀로 남겨진 딸 리비아에게 아내의 몫까지 사랑하리라 다짐한다.

저자에게 어쩜 삶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의 죽음에 이어 찾아온 아버지의 사망..

이 상황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러함에도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의 존재를 저자를 통해 보게 된다.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삶이 유한하며 결코 많지 않음을 보게 된다. 저자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것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시간은 결코 충분치 않다.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순간, 그 순간에 더욱 사랑하도록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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