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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당신들 ㅣ 베어타운 3부작 2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1월
평점 :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공약이 아니다.
많은 유권자의 표를 받아올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타자를 적으로 만들어 나누면 된다.
이 책의 제목 『우리와 당신들』처럼, 우리편과 네 편으로 갈라서 경쟁심을 부추기고 증오심을 키우면 된다. 그 후 나머지는 그들의 증오심이 스스로 결집할 것이다.
이제까지 많은 정치인들이 이 전략을 고수해왔고 현재도 같은 전략이 사용되고 있다.
소설 『우리와 당신들』은 프레드릭 베크만의 전작 《베어타운》의 후속작이다.
「오베라는 남자」,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등 유쾌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주로 써 오던 작가가 쓴 《베어타운》은 쇠퇴해가는 베어타운을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하키의 기대주 케빈이 단장 페테르 안데르손의 딸 마야를 성폭행하며 이를 둘러싼 공동체가 어떻게 분열되는지 보여주었던 소설이였다.
《베어타운》이 자신의 희망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는 이 때 과연 누구의 손을 잡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보여주었다면 후속작 『우리와 당신들』은 공동체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성소수자등 타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들여다보는 소설이다.
베어타운의 기대주 케빈이 마야를 성폭행 한 혐의가 증거불충분으로 무죄판결을 받는다.
케빈의 사건으로 케빈의 부모님은 서로 헤어지고 이웃 마을로 이사한다.
가해자인 케빈은 이사하고 난 후 새출발을 하지만 피해자인 마야와 그의 가족들은 긴 후유증에 휩싸인다.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페테르와 미라.
매일 케빈에게 총을 쏘는 꿈을 꾸며 불안해하는 마야.
누나를 도와주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가해자에 대한 증오심으로 피가 나도록 살을 긁는 동생 레오.
평소처럼 웃으며 이야기하며 연기하지만 이 얇은 유리판 위를 걷는 듯한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와 당신들』에는 이 마을의 갈등을 조장하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군소정당의 정치인, 리샤르도 테오.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베어타운 하키단을 돕겠다는 명분으로 페테르에게 접근한다.
의회로부터 배척당하고 거의 문닫을 위기에 처한 베어타운 하기단을 돕기 위한 후원자를 연결하며 페테르에게 조건을 제시한다. 이제까지 베어타운을 지킨 '홀리건'일당을 하키단에서 제외하라는 조건을 내건다.
<베어타운 대 나머지 전부> 글씨가 쓰여진 티셔츠를 입어 경쟁심을 부추기고 안으로는 '홀리건'일당들과 분리할 것을 조장하며 다른 정치인들까지 자신의 편으로 섭외하기에 바쁜 리샤르도 테오.
그는 사람들의 갈등을 조장하며 마을 사람들을 서로 경쟁하도록 만든다.
《베어타운》이 케빈의 성폭행 사건이 도화선이였다면 『우리와 당신들』은 하키팀의 주장 벤이의 성정체성이 마야의 친구 아나에 의해 폭로되는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준다.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한 순간에 사람들의 비난 대상이 되어버린 벤이의 모습은 마치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함으로서 그 상대방을 궁지에 빠뜨리는 모습은 과거든 현재든 도돌이표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황정은의 소설 <디디의 우산>에서 본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너와 나의 상식이 다를 수 있으며 내가 주장하는 식으로 네가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는 가정조차 하질 않잖아."
벤이는 자신의 성주체성으로 인해 본연의 자신을 외면당하고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를 배척하는 것에 너무 자연스러워한다. 우리는 그렇게 다르다는 이유로 남들에게 쉽게 고통을 가한다.
《베어타운》보다 더욱 세밀하게 한 공동체의 갈등을 표현한 이번 소설에서도 작가는 희망을 남겨놓는다.
완전히 무너졌던 공동체가 다시 일어서며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과연 우리를 지키게 해 주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한다. 적을 위한 증오심일까? 우리가 똘똘 뭉치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나는 바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각 개인 한 명 한 명이 이 공동체를 지키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개인을 존중해주는 것. 그 바탕 안에 우리가 진정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걸 소설은 말해준다.
무엇보다 마야의 성폭행 후 힘들어하는 그 가정의 긴장감과 불안함이 긴 여운이 남는다.
피해자는 한 명이지만 그 피해는 단지 한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
온 가족을 뒤흔들고 그들의 일상과 가정을 균열시키게 만드는 모습을 저자는 자세하게 그려내주었다.
이 다음 후속작을 볼 수 있을까? 만약 저자가 3편을 내게 된다면 이제는 회복하는 베어타운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