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문보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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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라는 제목을 보고 과연 시인다운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20대의 젊은 시인이자 '임수영문학상' 수상 시인으로 주목을 받지만 문득 찾아온 불청객 우울증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낸 시절을 담은 산문집이다.




"슬픔과 명랑의 시인"이라는 명칭 답게 이 책은 젊은 작가처럼 명랑하며 발랄하다.

우울증 약을 먹으며 힘들게 일상을 평범하게 지내고자 분투하지만 결코 자신을 불쌍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통통 튀는 표현들에 웃으면서 편안하게 읽다가도 문득 밀려드는 슬픔이 함께 공존한다.




세상을 탈퇴하는 친구의 죽음,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브이로그를 하는 시인의 분투,

우울증으로 인한 일상의 어려움 등을

슬프지 않게 담담하고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 담담한 아픔의 일상이 시인의 어려움을 더 깊게 와 닿게 해 준다.

저자는 시를 왜 쓰냐는 질문에 시가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우울증을 안고 살아간 시인이 자신을 다정하게 대해주는 방식이라고 느껴졌다. 이 책이 그 힘든 시절의 자신의 일기 형식으로 쓴 글을 모아 만든 글이니만큼 자신이 글과 시를 써서 힘든 자신을 다정하게 대해 주는 것 같다.



글 곳곳마다 시인으로 사는 삶에 대한 경제적인 궁핍함과 어려움이 드러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며 살아가기 위한 저자의 상황과 결코 만만치 않은 문단의 지면권력 등으로부터 자신을 찾기 위해 브이로그를 하며 일기 딜리버릴 통해 글노동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인의 분투를 보며 나 역시 시인에게 힘내라고 안아주고 싶다.

힙합을 좋아하고 춤을 좋아하고 시보다 피자가 좋다는 시인.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다독여 나가는 과정이 담긴 이 책을 통해 내 아픈 모습을 어떤 다정한 방식으로 대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해 본다.





시인처럼 나 답게, 내 속도대로 나만의 방식을 찾아 다정하게 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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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
이훤 지음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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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단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줄 때가 있다.

전쟁의 고통을 백 번 말하는 것보다 전쟁으로 인한 폐허가 된 집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 전쟁의 고통을 더 절실하게 느끼곤 한다.

「당신의 정면과 나의 정면이 반대로 움직일 때」는 바로 그런 책이다.

글로 말하는 것보다 사진으로 말하는, 시인이자 사진가인 이훤님의 시진산문집이다.

책 서문에서 저자는 사물의 입장을 사진으로 읽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물의 지나간 마음을 사진과 간략한 텍스트로 모은 책..

사람의 마음이 아닌 사물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단순한 원형들로 보이는 패턴들이 서로 우리가 되자며 말하는 글이 매우 뭉클하다.

어떤 누구도 아닌 우리가 되자고 외치는 모습이 우리 자신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말하는 것 같다.

패턴의 크기에 상관없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외침은 바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놓치고 있었음을, 사물의 마음을 빗대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를 생각하게 한다.

저자는 똑같은 상황인데도 찰나의 순간 순간을 포착하여 의미를 부여한다.

비 내리는 거리, 사람들의 여러 걸음 소리, 그리고 그 순간에 느껴지는 거리의 마음..

바다의 파도 한 장면만으로 부서지고 다시 지어지는 모습으로 여러 의미를 만들어 내는 저자의 생각이 매우 신선하다.

사진마다 사물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부서질 것을 앎에도 다시 파도를 만들고,

폐허에도 다정이 있고 방식이 있고

내리거나 다시 사라진다해도 무리가 될 때까지 계속 내리는 눈들..

어쩜 저자는 사라질 것을 앎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물들처럼

우리에게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부서지고 깨어져고 계속해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힘들어도 앞으로 나아가자고 말하는 것 같다.

눈의 마음으로, 파도의 마음으로, 폐허가 된 사물의 마음으로, 물의 마음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풍경이지만 바쁜 일상 속에 잊고 지내던 사물들이 저자의 사진과 글을 통해 나를 위로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내가 그이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글처럼 사물 하나 하나 이름을 지어주고 의미를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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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장할 우리 가족 - 정상 가족 판타지를 벗어나 '나'와 '너'의 가족을 위하여
홍주현 지음 / 문예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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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건 결혼한 후 부터였다.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 아닌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는 말 답게 시댁과 친정 사이를 저울질하기도 하며 온전한 내 입장보다 양가 부모님들의 입장에 맞추다 보면 어느새 내 자신은 정신적으로 지치곤 했다.

『환장할 우리 가족』 은 바로 "우리"라는 단어가 바로 남을 소외하고 개인을 옥죄는 배타성을 지닌다며 개인의 의사가 죽고 공동체만 살아남는 한국 가정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결혼 전까지 자신의 조건에 맞는 사람을 만나기 여러 조건을 따져본 후 조건에 맞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신혼 2년 만에 남편의 암 진단으로 인해 병간호를 하게 되면서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흔히 가족이라고 하면 우리는 가정의 따뜻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나를 마지막까지 품어줄 수 있는 곳, 나를 끝까지 지켜줄 곳, 평화롭고 안식이 있는 곳. 그 환상 속에 우리 한국 사회는 가족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한다.

그렇다면 정상인 가족의 기준은 무엇일까? 저자는 법적 부부와 자녀 2인을 둔 4인 가정이 사회에서 정해 둔 표준이라고 말한다. 실제 대출을 받거나 소득 기준율에서도 4인 가족을 기준으로 구분짓기도 한다.

가장 최상위인 3~4인 가족 서열 밑에 자녀 없이 부부만 사는 2인 가족, 다문화 가족, 장애가 있는 가족 구성원이 있는 가족 등등..

정상의 범위를 벗어난 여러 가족 구성원의 형태를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1인 가족에 대해 "미운 우리 새끼"라고 이름 붙이며 천덕꾸러기처럼 취급하는 방송 프로그램까지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빨리 정상 가족을 이루라고 재촉한다.


부부는 남성과 여성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결합한 뒤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하며,

아이 역시 그런 공식적인 제도를 통해 결합한 뒤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하며,

아이 역시 그런 공식 제도를 거친 사람에게서 태어나야 '정상'적인 존재로 인정받는다.

이 조건에 하나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비정상'이고,

사람들은 암암리에 나름의 기준에 따라 가족을 서열화한다.

책을 읽으면서 결혼 전 과년한 딸이 시집도 안 가고 있는 나를 부끄러워 하시던 부모님이 떠올랐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 사회의 기준에 따라 얼른 결혼할 것을 재촉하시곤 하셨던 부모님 역시 바로 내가 "정상"가족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다양함이 인정되지 않는 형태, 사회가 말하는 비정상의 범위에 대해 배타적으로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 준다.

저자는 '가족'이기에 모든 것을 공유해야하고 서로 잘 알아야 한다는 공동체성이 아닌 '개인'과 '개인', 즉 '너'와 '나'가 만나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묶으러 하기보다 개인의 자유와 의사가 보존되며 서로가 존중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부모는 자녀를 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자녀의 선택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며 자녀 또한 부모의 인생을 존중해 주며 가족 구성원이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며 존중해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유교권 문화인만큼 효도를 중요시하고 부모의 권리만을 중요시하는 한국 문화에서 부모님세대가 이 글을 읽는다면 많은 공감을 받지 못할 수 있지만 자녀와 부모 세대 걸쳐 있는 세대인 나에게는 공감이 되는 문장이 매우 많았다.

자녀라는 이름으로 양가 부모님들께 맞추려고 하다보니 나의 마음과 감정은 지쳐가고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의 의사표현을 쉽게 제어하던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해 주었다.

"우리"를 위해서 가족 구성원의 희생을 요구하거나 배제하는 방식이 아닌 "개인"을 존중해 주며 먼저 "나 자신"부터 명확한 의사 표현과 함께 나에 대한 배려를 갖추도록 주장하는 저자의 글을 보며 일종의 사이다 같은 쾌감을 느꼈다.

"가족"은 가족이 행복한 공동체가 아닌 "개인"들이 행복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개인'들의 선택이 인정받고 그들의 선택이 만들어낸 다양한 가족의 형태 또한 인정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환장할 우리 가족》에서 《행복한 나의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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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에서 깊이로 (리커버 에디션) - 철학자가 스마트폰을 버리고 월든 숲으로 간 이유
윌리엄 파워스 지음, 임현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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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보급 후 사람들은 궁금증이 생기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네이버에게 물어봐." 

이제 질문이 생겨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레 스마트폰을 꺼내며 검색을 하며 답을 찾는다. 
영어 표현마저도 "Just google it!"이라는 동일한 표현을 배우고 난 후 스마트폰 등 디지털 도구가 우리의 사고를 얼마나 지배하는지에 대해서도 놀란 적이 있다. 

『속도에서 깊이로』는 사실 신간이 아닌 2011년 1쇄 발행 후 개정판으로 출간 된 책이다. 
변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이 책이 출간된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책의 내용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국의 4G 시대를 넘어 5G로, 무선 초고속을 자랑하는 한국의 디지털 사회에서 저자 윌러엄 파워스는 속도가 아닌 깊이를 강조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저자가 강조하는 속도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있다. 눈 앞에 클릭만 하면 곧바로 원하는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 멀리 떨어져 있는 지인과 언제든지 접촉할 수 있으며 자신의 게시물에 바로 피드백을 받는 초고속 사회. 하지만 과연 "깊이"가 무엇인지 그 의미는 다소 난해하다. 


"깊이"는 우리가 경험을 통해 흡수하는 '의미'라고 말한다. 

디지털 사회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한 가지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다. 항상 디지털 사회의 군중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게 되는 사회를 살아간다. 밥을 먹으면서 문자를 보내고 통화를 하고 앞의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깊게 생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지인을 만나도 지인과의 대화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온갖 요소가 다분하다. 이는 직장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넘쳐 나는 온갖 스팸메일과 고객 전화, 미팅 및 이러한 멀티 기능을 가능하도록 디지털 도구는 지원하며 풍성한 삶을 약속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여유'와 '의미' 그리고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는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속도에서 깊이로』는 바로 이 디지털 도구들이 앗아간 여유와 의미등을 찾기 위한 첫째,둘째, 셋째 걸음으로 인도한다. 


첫째 걸음, 거대한 방에서 벗어나는 문을 찾다. 


거대한 방이란 바로 스크린 세상을 의미한다. 그 스크린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유혹들, 한 화면에 끊임없이 우리에게 손짓하는 구독,좋아요 버튼과 팝업 뉴스 기사들, 스크린 세상은 우리에게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한다. 유튜브에서는 동영상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광고를 보게 되고 구독 버튼을 누르도록 유혹하고 페이스북 또는 SNS 등에서도 우리는 원치 않은 광고 배너 또한 기사를 접해야만 한다. 

너무 분주한 사회, 종일 스크린을 들여다보는 우리의 눈과 손짓이 얼마나 분주한지 저자는 강조한다. 그리고 그 분주함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낸 분주함이며 가장 최대의 적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고 이야기한다.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인정하자 가장 최대의 적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쉬고 싶어 먼 휴양지로 휴가를 왔지만 무선 인터넷이 제공되는지를 확인하는 아이러니와 휴대전화로 마음을 표현하는 현 세대의 모습을 저자는 결국 제 꼬리를 물려고 빙빙 도는 강아지 꼴이라고 표현한다.

우리의 일상이 보여주기식 과시로 비춰지지만 막상 일상의 깊이와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이 거대한 스크린 세상 속의 위험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우리 자신으로부터 스크린 세상을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첫째 걸음이다. 


둘째 걸음, 시간의 숲으로 들어가다. 


시간의 숲은 일곱 명의 철학자들을 통하여 대안을 찾아간다. 


시골의 거리를 걷는 소크라테스, 편지쓰기를 통한 세네카, 홀로 책 읽기를 통한 구텐베르크, 아주 중요한 책 한권에만 자리를 내줌으로 자신의 분주함을 해소한 세익스피어, 네트워크를 지향하지만 자신의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실천한 13가지 목표, 그리고 숲에서 자신만의 공간을 창조한 소로, 그리고 "우리가 자초한 소용돌이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것인가"라고 물드며 우리 안의 내부 온도를 낮출 방법을 찾을 것을 외치는 매클루언 등의 철학이 소개 된다. 


지금과는 다르지만 세네카의 시대에도 구텐베르크 시대에도 구두 언어에서 문자어로 전환되거나 인쇄술이 발달하는 등 기술혁명의 전화기가 있었다. 그 전환기에 그들 역시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기 위해 바쁜 시절을 보냈다. 항상 군중을 찾는 프랭클린이었지만 그들은 기술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 내적인 삶의 깊이를 잃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들의 철학은 아직까지 유효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셋째 걸음, 내 안의 윌든 숲을 발견하다. 


마지막 셋째 걸음은 둘째 걸음에 대한 일곱 철학의 현실적 방법을 제시와 동시에 저자 가족의 디지털 홍수 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48시간 "인터넷 안식일"이 소개되며 책은 마무리된다. 


많은 군중들과 가까워졌지만 막상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과의 대화가 단절되고 정작 깊이 있는 지식이 사라져 가는 지식의 보편화 시대 속에서 우리는 그 문제점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구글 및 네이버 등 정보통신 분야 기업들은 우리가 이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하도록 끊임없는 기술로 우리를 "끊임없는 영원한 접속상태"로 유혹하고 있다. 이 대안을 옛 철학자들의 방법에서 대안을 찾는 건 끊임없이 사고하며 대답을 찾아가는 그들의 철학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출간된 지 10년이 된 이 책의 내용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나의 디지털 의존도도 다시 한 번 점검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함을, 이제 새로운 미래는 빠름보다 깊이 있는 사람이 더 필요함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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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걸 - 노벨 평화상 수상자 나디아 무라드의 전쟁, 폭력 그리고 여성 이야기
나디아 무라드 지음, 제나 크라제스키 엮음, 공경희 옮김, 아말 클루니 서문 / 북트리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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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노벨평화상은 나디아 무라드라는 여성에게 수여되었다. 

이라크의 소수 민족인 야지디족으로 ISIS의 침략으로 인해 가족이 파괴되고 성노예로 팔려가 물건 취급 받으며 억압되던 중 극적인 탈출 후 전세계에 ISIS의 만행을 알리는 데 노력한 인물이다. 


《더 라스트 걸》은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 현재 ISIS의 만행을 폭로하며 이 성폭행의 근절을 위해 노력하는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에세이다. 


책의 초반부는 저자 나디아의 어린시절과 함께 공동체 야지디족의 종교 및 특색을 주로 그려져있다. 알라신을 믿는 수니파와 시아파 아랍인과 다른 대천사 타우시 멜렉을 믿는 야지디족은 그들만의 종교와 문화를 이루어가며 살아간다. 비록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집안일을 도와야 했지만 가족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은 평화로웠다. 


수니파인 독재자 후세인이 통치하던 이라크가 미국의 주도 아래 후세인이 쫓겨나고 시아파들이 집권과 함께 미국이 주둔하던 시절 야지디족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주로 농사일을 하던 생업에서 경찰 및 타지에서 일을 하게 되며 열심히 일하면 새로운 집을 짓고 잘 살 수 있을 거란 꿈을 꾸지만 이 꿈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더 라스트 걸》은 ISIS가 조금씩 그들을 봉쇄하며 야지디족을 몰살시키기 위한 과정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여준다. 다에시 (ISIS를 부르는 호칭) 가 몰살하기 직전, 오로지 침묵과 공포만이 자리잡고 있는 그 숨막히는 상황은 읽는 독자마저도 숨죽이게 만든다. 


마을 공동체를 극한의 공포 속에 몰아넣은 후 공동체 전원을 운동장에 소집 후 남자들을 총으로 몰살시키고 여자들은 사비야, 성노예로 끌러가며 제 2부가 시작된다. 


무슬림이 아닌 야지디족의 종교를 이교도라 하며 여성들을 성노예로 고문하는 상황은 일제 치하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떠올리게 한다. 어린 꽃다운 나이에 아무 것도 모르고 끌려와 성노예로 부역해야만 했던 소녀들과 야지디족들이 물건처럼 거래되며 채찍질과 강간으로 고통받는 장면은 시간이 흘러도 전쟁에서 여성을 유린하는 방식은 전혀 변화가 없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 나디아는 팔려가는 차 안에서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자문한다. 

자신들이 이런 고난을 당하는데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걸까. 왜 이토록 잠잠한 걸까. 

그리고 ISIS의 악행에 동조하지 않지만 침묵하는 것은 죄가 없는 것일까. 


저자의 질문은 故 김대중 대통령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惡)의 편이다"라는 어록을 떠올리게 한다. 

ISIS의 만행을 알고 고통받는 현실을 앎에도 침묵으로 그들의 악을 동의한 사람들을 과연 납득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만약 그 현장에 있었다면 ISIS에 저항할 수 있었을까라는 깊은 의문을 낳게 한다. 


전쟁은 한 공동체를 파괴시켰고 많은 사람들은 일생동안 그 후유증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이 이 희생의 마지막 여자가 되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으로 THE LAST GIRL 이라고 이름지었다. 

과연 저자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 고통받고 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 그리고 가해자들이 정당한 처벌을 받고 인간의 존엄성을 되살리는 길만이 또 다른 희생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저자의 수상 소감은 우리에게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지를 밝혀 준다..


《THE LAST GIRL》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우리가 악에 침묵할 때 얼마나 더 큰 악이 행해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이야기한다. 

미국의 대통령도, 이라크의 많은 국민들도 악에 침묵했다. 미국은 자신의 대사관이 있는 곳만 집중 보호했고 한 때 코초를 수호하던 KDP 페슈메르가는 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건 힘없는 야지디족들의 희생 뿐이었다. 이 땅의 정의를 위해 결코 침묵하지 않기를, 그리고 정의가 이루어지기 위해 가해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루어야 함을 말해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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