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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장할 우리 가족 - 정상 가족 판타지를 벗어나 '나'와 '너'의 가족을 위하여
홍주현 지음 / 문예출판사 / 2019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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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건 결혼한 후 부터였다.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 아닌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는 말 답게 시댁과 친정 사이를 저울질하기도 하며 온전한 내 입장보다 양가 부모님들의 입장에 맞추다 보면 어느새 내 자신은 정신적으로 지치곤 했다.
『환장할 우리 가족』 은 바로 "우리"라는 단어가 바로 남을 소외하고 개인을 옥죄는 배타성을 지닌다며 개인의 의사가 죽고 공동체만 살아남는 한국 가정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결혼 전까지 자신의 조건에 맞는 사람을 만나기 여러 조건을 따져본 후 조건에 맞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신혼 2년 만에 남편의 암 진단으로 인해 병간호를 하게 되면서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흔히 가족이라고 하면 우리는 가정의 따뜻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나를 마지막까지 품어줄 수 있는 곳, 나를 끝까지 지켜줄 곳, 평화롭고 안식이 있는 곳. 그 환상 속에 우리 한국 사회는 가족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구분한다.
그렇다면 정상인 가족의 기준은 무엇일까? 저자는 법적 부부와 자녀 2인을 둔 4인 가정이 사회에서 정해 둔 표준이라고 말한다. 실제 대출을 받거나 소득 기준율에서도 4인 가족을 기준으로 구분짓기도 한다.
가장 최상위인 3~4인 가족 서열 밑에 자녀 없이 부부만 사는 2인 가족, 다문화 가족, 장애가 있는 가족 구성원이 있는 가족 등등..
정상의 범위를 벗어난 여러 가족 구성원의 형태를 쉽게 납득하지 못하고 1인 가족에 대해 "미운 우리 새끼"라고 이름 붙이며 천덕꾸러기처럼 취급하는 방송 프로그램까지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빨리 정상 가족을 이루라고 재촉한다.
부부는 남성과 여성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결합한 뒤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하며,
아이 역시 그런 공식적인 제도를 통해 결합한 뒤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하며,
아이 역시 그런 공식 제도를 거친 사람에게서 태어나야 '정상'적인 존재로 인정받는다.
이 조건에 하나라도 부합하지 않으면 '비정상'이고,
사람들은 암암리에 나름의 기준에 따라 가족을 서열화한다.
책을 읽으면서 결혼 전 과년한 딸이 시집도 안 가고 있는 나를 부끄러워 하시던 부모님이 떠올랐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 사회의 기준에 따라 얼른 결혼할 것을 재촉하시곤 하셨던 부모님 역시 바로 내가 "정상"가족의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다양함이 인정되지 않는 형태, 사회가 말하는 비정상의 범위에 대해 배타적으로 대하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 준다.
저자는 '가족'이기에 모든 것을 공유해야하고 서로 잘 알아야 한다는 공동체성이 아닌 '개인'과 '개인', 즉 '너'와 '나'가 만나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묶으러 하기보다 개인의 자유와 의사가 보존되며 서로가 존중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부모는 자녀를 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자녀의 선택권을 침해해서는 안 되며 자녀 또한 부모의 인생을 존중해 주며 가족 구성원이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며 존중해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유교권 문화인만큼 효도를 중요시하고 부모의 권리만을 중요시하는 한국 문화에서 부모님세대가 이 글을 읽는다면 많은 공감을 받지 못할 수 있지만 자녀와 부모 세대 걸쳐 있는 세대인 나에게는 공감이 되는 문장이 매우 많았다.
자녀라는 이름으로 양가 부모님들께 맞추려고 하다보니 나의 마음과 감정은 지쳐가고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의 의사표현을 쉽게 제어하던 나 자신을 바라보게 해 주었다.
"우리"를 위해서 가족 구성원의 희생을 요구하거나 배제하는 방식이 아닌 "개인"을 존중해 주며 먼저 "나 자신"부터 명확한 의사 표현과 함께 나에 대한 배려를 갖추도록 주장하는 저자의 글을 보며 일종의 사이다 같은 쾌감을 느꼈다.
"가족"은 가족이 행복한 공동체가 아닌 "개인"들이 행복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개인'들의 선택이 인정받고 그들의 선택이 만들어낸 다양한 가족의 형태 또한 인정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환장할 우리 가족》에서 《행복한 나의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