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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지음 / 창비 / 2019년 6월
평점 :
박상영 작가는 제9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인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게이와 영화감독을 소재로 슬픈 청춘의 삶을 밝은 톤으로 써내려 간 박상영 작가는 새로운 퀴어 문학의 작가로 명성을 다져갔다. 자신의 수상 작품명과 동일한 첫번째 소설집 이후로 펴낸 이후 두 번째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을 출간했다. 출간 전 출판사에서 선정한 두 편의 단편 소설 《재희》와 표제작 《대도시의 사랑법》 두 편 중 『재희』를 먼저 가제본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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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작 『재희』는 대학 동창인 재희의 결혼식에서 주인공이 재희와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시작된다.
게이인 주인공과 재희는 학과에서 일명 아웃사이더들이다. 골초인 재희는 일명 남자 동창 또는 선배들 사이에 심심찮은 이야기 소재가 되는 존재였고 주인공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면서도 거리낌없이 대하는 재희와 가까워진다.
남사친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은 함께 동거하며 서로의 파트너에 대해 품평도 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군입대 후에도 편지를 주고받는 둥 우정을 이어나간다. 재희는 주인공이 좋아하는 냉동 블루베리를 사 놓고 주인공은 재희를 위해 말보루 레드 담배를 사와 냉동 블루베리 옆에 놓아 둔다.
거칠것 없이 자유분방한 이 우정에 (사회적 관점으로) 지극히 표준적인 재희의 남자 친구의 등장으로 이들의 사이는 조금씩 균열이 간다. 이들의 동거 사실이 들통나고 결혼과는 거리가 먼 것 같던 재희가 결혼을 하면서 겪는 이들의 관계는 처음과 같을 수 없었다.
재희가 현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결혼하기까지 재희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주인공은 재희가 결혼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오히려 게이인 자신이 결혼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토록 자유로운 성생활을 하며 낙태도 감당했었던 재희가 지극히 건전한 관계를 맺고 (남자친구의 관점에서)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과연 재희의 달라진 태도는 어떤 걸 의미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내게 그 재희의 변화는 사회에서 비주류인 재희가 어쩔수 없이 사회의 주류에 편승하는 모습처럼 비추어졌다.
결혼이라는 행위도 결혼을 준비하는 행위에도 이 행위의 주체는 재희가 아닌 남자친구였다.
"내가 평생 자기를 웃겨줄 것 같아서 좋대."
"신랑 친구가 사회를 보는 게 관례라고 하네?"
사회의 관례대로 살길 거부하며 순결을 강조하던 산부인과 의사를 욕하던 재희는 사회의 관례대로 할 것을 종용하는 남자친구에게 맞추어 간다. 비주류로 살 수 있을 것 같던 청춘이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주류로 편승되어 가는 모습이 재희와 주인공과의 관계 변화에 함께 어우러져 나간다.
사회는 결코 인정해 줄 수 없는 그들의 모습, 주인공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말하며 양해를 구하는 재희의 모습과 결국 홀로 남겨진 주인공.. 과연 주인공은 끝까지 비주류로 남을 수 있을까?
『재희』는 박상영 작가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도 비주류로서 사회에 겪는 한계를 경쾌한 톤으로 이야기한다.
비록 한계를 이야기하고 씁쓸함을 남기기도 하지만 결코 좌절하지는 않는다. 젊은 청춘들이 표준을 강요하는 이 사회에 "우리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가!"라고 외치는 메아리같이 느껴진다.
특히 순결을 강조하는 산부인과 의사 앞에 도망쳐 나오는 재희를 보며 일종의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된다.
갈 곳 없는 비주류 청춘들을 향한 이 소설에서 저자의 통통 튀는 매력은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