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경제학 - 립스틱부터 쇼츠까지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경제 이야기
조원경 지음 / 페이지2(page2)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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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인기가요 중 김국환씨가 부른 "타타타"가 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김혜자씨가 즐겨 부르며 드라마의 인기 상승과 함께 노래도 많은 이들에게 불리워졌다. 드라마에서 김혜자씨는 독단적인 가부장 남편이 아내인 자신과 가족들의 마음도 모르는 마음이 쌓여 노래를 따라불렀다. 그 의미에 많은 사람들이 가사의 의미에 동의하며 노래를 따라부르곤 했다.


예전에는 당연시되던 이 공식이 요즘에는 달라짐을 느낀다. 나는 나를 잘 모르지만 남들은 나를 너무 잘 아는 느낌. 나는 나를 몰라서 잘 속지만 남은 나를 잘 알기에 파고든다. 이해가 안 되는가?


그걸 설명해주는 책이 있다. 바로 조원경 교수의 《감정경제학》이다.

 


 

나는 이 책을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소비자'의 관점과 '생산자'의 관점이다.


1. 소비자의 관점 - 우리는 자신을 너무 잘 모른다.

 

인간은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존재이다.

 

소비자들 중 과연 몇 프로가 자신의 구매가 합리화하다고 생각할까? 우리는 모든 소비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감정 경제학』에서는 우리가 믿고 있는 똑똑한 소비의 기준을 와장창 깨뜨려준다. 소비자의 심리를 연구하는 마케터들은 모두 감정을 건드린다.

마트에서 흔히 쓰이는 1+1 전략, 재고가 있음에도 '한정판'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며 폐기 처분해버리는 '스놉 전략' "써 보고 결정하세요"의 체험단 전략 등. 온갖 마케팅 전략은 차고 넘친다.

저자가 설명한 전략들을 따라 읽어가다보면 느끼는 건 한 가지이다.

'체험단 전략'에서는 한 번 써보고 반품하길 귀찮아하는 나의 특징을 어쩜 저렇게 잘 알지?

지금 필요하지 않은데 '1+1'으로 지금 아니면 놓쳐버릴 수 있다는 마음을 어떻게 잘 이용하지?

'한정판'이라는 말에 무조건 프리미엄급처럼 생각하게 되는 내 마음을 관찰하게 된다.

그 모든 것들이 인간의 욕구를 치밀하게 연구하는 마케터들과 자기 자신을 제대로 모르는 소비자들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마케팅에 당하기 쉽다. 우리의 감정 하나하나 마케터들에 의한 표적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궁금할 수 있다.

왜 우리는 이토록 쉽게 마케터들에게 표적이 될 수 있는가?

그건 대부분의 소비자가 생각하지 않고 살아감을 알기 때문이다. 일명 '도파민 중독' 시대에 감정을 자극하는 것에 이끌려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들의 강력한 자극에 우리의 목표와 가치를 빼앗기고 만다.

그러므로 저자는 말한다.

소비하기 전에 생각하라.

이것이 내게 과연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단지 원하는 것인지 그 기준선을 확실히 해야 함을 강조한다.

우리는 한순간에 '눈 뜨고 코 베이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이 책은 말해준다.

 


 


2. 마케팅의 관점 - 소비자는 바보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 소비자의 감정을 이용하면 마케팅은 성공할 수 있는 것일까?

『감정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이용하여 실패한 여러 예시를 보여준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예시는 바로 NFT 홍보를 위해 불에 탄 프리다 칼로의 작품이다.

 


 

희소성을 강조하기 위해 1000만 달러짜리 그림을 불에 태우는 쇼를 벌였지만 끝내 실패한 쇼.

그들의 실패 원인은 바로 '본질'에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질'은 무엇일까?

바로 좋은 품질이라는 것이다. 좋은 브랜드, 믿을만한 품질이라는 점이다.

온갖 정보가 난무하고 감정에 잘 휘둘리는 게 인간이라지만 그 전에 신뢰가 먼저 성립되지 않으면 고객은 절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1000만 달러 짜리 그림을 불에 태웠던 브랜드는 물어봐야 했을 것이다.

자신의 제품이 1000만 달러짜리보다 더 희소하다는 가치가 있다고 믿게 할 수 있는가?

그 부분에서 철저한 객관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싸다고 하면서도 '스타벅스'를 사고 '코카콜라'를 이용하는 건 이 제품은 다르다는 생각이 있기 떄문이다. 비싸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떄문이다. 브랜드의 본질을 인정받는 제품만이 사람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다.

감정을 이용하는 마케팅은 바로 그 다음이다.

이 부분을 보면서 나는 퍼스널 브랜딩을 지향하는 사람들 역시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치는' 시대를 떠나 정말 자신이 남들에게 뭔가를 줄 수 있는, 가치를 줄 수 있는지 확신하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았다.

나 또한 생각해본다.

내가 과연 남들에게 다르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가령 <감정 경제학>을 검색하는 분들 중 타인에 의한 부분보다 내 글이 도움이 된다고 느껴지는 차이점이 있는가. 나는 차이를 만들어내는 글을 쓸 수 있고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

'좋아요'와 '구독'을 외치는 시대이지만 결국 먼저 나의 본질을 확실히 하는 게 먼저라는 걸 돌아보게 한다.

 

자본주의의 적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뼛속까지 스며든 욕망'이라고 했다. 

진정한 싸움은 소비자와 생산자에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자신의 욕망에 맞서

좋은 소비를 하는 습관을 길들이는 과정에도 있다. 

319p

 

다시 '타타타'로 돌아가본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마케팅에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너무 모르지만 생산자는 우리의 욕망을 너무 잘 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올바른 소비를 하는 첫 번째 단추는 바로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다. 알아야만 속지 않는다. 내가 나를 모를 때 나는 모든 것이 표적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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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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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기기의 침범으로 집중력이 떨어졌다는 건 이제 더 이상 논제가 아니다.

디지털 디톡스를 외치고 타이머를 설정하며 여러 방법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출간된다.

『도둑맞은 집중력』의 저자 요한 하리는 이 방법들에 의문을 표한다.

좋다.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혼자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가능한 것일까?

과연 이건 개인의 의지에 따라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그 점에 의문을 품은 저자는 집중력에 대한 원인과 해결책을 찾기 위해 심층 취재를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한 가지에 오래 집중하지 못할까?

 

이 부분에 대해서 나 역시 궁금했었다. 최근 우리는 한 가지 이슈가 생기면 냄비가 부글부글 끓듯 토론을 하지만 금새 식어진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행동하거나 또는 아주 먼 과거의 일처럼 행동하곤 한다. 왜 우리는 이렇게 빨리 잊어질까?

왜 세월호에 비해서 이태원 사건과 같은 건 더 빨리 잊혀졌는가?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그 원인에 대해 내 궁금증을 해소시켜 준다.

 

그저 시스템에 정보를 더욱 채우기만 하면 되었다.

정보를 더 많이 주입할수록 사람들이

개별 정보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었다.

 

정치권이 불리한 이슈가 나올 때 그 이슈들을 숨겨왔던 다른 이슈들을 덮는다는 논리를 기억하는가?

이슈를 또 다른 이슈로 집중을 돌리듯 현대 사회는 새로운 정보로 가득 채우며 중요한 쟁점에 깊게 토론하지 못한다. 인터넷 뉴스와 소셜미디어는 연일 우리의 눈을 현란하게 할 여러 영상들과 소식들을 들이붓는다. 매 초마다 들이붓는 홍수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깊이는 시간을 요구합니다.

깊이는 사색을 요구해요.

 

빠른 속도의 정보는 깊이를 주지 못한다.

속도에 쫓겨 왜 그러한 사태가 벌어졌는지 무엇이 원인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정보의 홍수는 집중하지 못하게 하며 우리를 산만하게 만든다.

 

이 문제를 자신들이 아닌 여러분과 내가 자제력을 더 발휘해서 해결해야 하는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도록 우리를 슬며시 떠밀고 있는 것이다.

 

산만함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된다. 하지만 저자 요한 하리는 이 점에 단연코 No라고 말하도록 한다. 그리고 우리의 집중력의 문제는 바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고 말한다.

 

우리의 집중력을 빼앗기기 위해 개발되는 알고리즘,

우리를 스크린에 체류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온갖 추천 사이트들,

연속 재생과 무한 스크롤..

실리콘벨리에서 만들어내는 온갖 기술들은 우리가 뭔가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이 책임을 떠넘기기에 이 집중력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떠넘김으로 책임 회피를 하는 현실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아무리 애쓴들 실리콘벨리의 천재들의 기술을 이길 수 없다.

개인적인 노력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백전백패 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싸워야 한다.

기술이 우리를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그들에게 요구하고 바꿔야만 한다.

『도둑맞은 집중력』에서는 집중력 문제를 사회적인 차원으로 깊게 관찰한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왜 우리는 집중력을 회복해야 하는가?

 

바로 우리가 집중해서 힘을 모아 해결해야 할 이슈들이 난제해 있기 때문이다.

 

급증하는 기후 위기들이 온갖 정보의 홍수에 밀려 집중력을 잃는다면 우리의 골든타임이 늦춰질 수 있다. 우리는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들을 깊이 몰입해서 해결해야만 한다.

이 이슈는 산만함과 멀티태스킹 사회에서는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모이고 집중력이 모여야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집중력은 개인의 능력을 구하는 게 아니다.

바로 이 세계를 구하는 일이다.

 

『도둑맞은 집중력』은 개인의 문제라고 여겨지던 집중력을 사회적인 문제로 재조명한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임을 밝히며 일반인들이 이 집중력을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한 해결책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개인의 책임을 전가하기 전 사회에게 똑바로 물어야 한다.

사회가 과연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는가 먼저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개인의 책임을 다하는 동시에 사회에도 변화를 요구할 것을 분명히 물을 수 있어야 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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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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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들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선택. 세상에 사소한 것은 없게 해 줌을 알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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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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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롱은 빈주먹으로 태어났다.

빈주먹만도 못했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15p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의 이름은 펄롱.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비록 미혼모인 엄마에게서 태어났지만 주인 미시즈 윌슨 부인의 친절로 모자는 생계에 대한 큰 걱정은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미시즈 윌슨 밑에서 함께 일하는 농장 일꾼 네드 또한 펄롱의 엄마와 펄롱에게 친절했다. 물론 순탄한 건 아니다. 아버지가 없고 남의 집에 거하는 식모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학교에서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석탄 야적장을 운영하며 살림꾼 아일린과 어여쁜 다섯 딸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엿한 가장인 펄롱. 그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이대로 평범하게 살아가며 딸들이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어엿한 사회인이 되는 것 뿐이다.

 

사람들마다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다. 그 터닝포인트는 기습적으로 찾아온다.

펄롱에게도 그렇다. 그날은 지극히 평범한 날이었다. 단지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을 뿐이었다.

배달 예정 시간보다 빨리 도착한 그는 거래명세서를 전달할 수녀님을 찾기 위해 예배당 문을 열다 뜻밖의 광경을 마주한다. 더럽고 초라한 행색을 한 소녀들이 예배당 바닥을 죽어라고 문지르고 있다.

뜻밖의 불청객처럼 나타난 펄롱을 보고 구세주마냥 다가온 아이는 말한다.

 

"아저씨, 우리 좀 도와주시겠어요?"

 

안 된다고 거절하는 그에게 때마침 수녀가 나타나고 일은 마무리되며 허겁지겁 수녀원을 나오는 펄롱. 충격어 너무 커서일까. 그는 익숙한 길이였지만 길을 잃어 길가에 있는 노인에게 길을 묻는다.

 


 

길을 잃은 펄롱에게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노인의 대답은 펄롱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펄롱은 과연 자신이 본 사실을 가지고 어떻게 하길 원하느냐.

 

다른 동네 사람들처럼 이 수녀원의 정체를 애써 무시하며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느냐.

아니면 위험하지만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진실과 싸우느냐.

 

《이처럼 사소한 것들》에서 펄롱은 끊임없이 고민한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가. 자신의 일상이 평온하고 행복할수록 그 고민은 더욱 깊어져간다.

 

펄롱은 혼자가 아니다.

펄롱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다섯 딸들이 있다.

펄롱에게는 그의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있다.

펄롱에게는 이 도시의 유일한 명문 여학교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졸업시켜야 할 딸들이 있다.

 

그의 평범한 소원.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무사히 이 난간을 통과해야 하는 그는 과연 어느 길로 가길 원하는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어느 길로 가길 원하는가?

 

펄롱의 터닝포인트는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하지만 그가 이 불편한 진실 앞에 답을 찾아가게 하기 위해 작가는 펄롱의 성장 과정을 내내 강조한다. 미혼모의 아들, 미시즈 윌슨 자택에서의 추억, 엄마의 죽음 등등...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어떻게 운이 좋을 수 있었는가?

 

미혼모인 엄마를 내치지 않고 한 가족처럼 대해준 미시즈 윌슨의 친절이 있었다.

자신에게 신발끈을 묶는 걸 가르쳐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준 네드의 친절이 있었다.

현재 자신의 모습까지 오는데 당연한 건 없었다는 걸 펄롱은 알고 있었다.

그 사소한 친절이 쌓여 현재 자신의 모습이 만들어졌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소설을 읽으면 또 다른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왜 사람들은 이 진실을 용기내지 못하는가?

 

현실에서도 용기를 내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니 진실에 눈감은 사람들을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당연한 과정으로만 받아들이는 사람들. 펄롱의 아내 아일린과 같이 타인의 불행을 타인의 이야기로만 결론짓는 사람들에게는 무모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길.

지금의 일상이 이어질 수 있고 때로는 혹독한 시련이 이어질 수 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용기를 내어 좁은 길로 선택할 수 있는 건 결코 큰 것들이 아니다.

작은 순간을 아는 사람들이 타인의 작은 순간들을 중요시하게 여길 수 있다. 세상에 사소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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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리커버 에디션)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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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서 매년 진행되는 50인이 뽑은 2023년 올해의 소설은 권여선 작가의 『각각의 계절』이다.

보통 단편소설집의 경우 여러 편의 단편소설 중 대표적인 이야기 제목, 표제작을 골라 책 제목으로 선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소설집 『각각의 계절』은 다르다.

책에 수록된 일곱 편의 단편 중 <하늘 높이 아름답게>의 마지막 문장이 책의 제목으로 채택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문장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 한 문장에 사로잡혔다. 봄,여름,가을, 겨울 사계절을 나기 위해서는 각 계절마다 각자의 힘이 든다는 문장에서 고단함과 외로움이 느껴졌다. 왜 그럴까? 왜 각자의 힘을 필요로 할까 하는 고민 속에 책을 읽어나갔다.


첫 번째 단편 <사슴벌레식 문답>에서 준희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친구 정원의 20주년 기념식에 참가한다. 대학 신입생 하숙 시절, 같은 하숙집에서 함께 어울렀던 준희, 경애, 부영, 정원. 이 네 명 중 정원은 이미 세상에 없고 그들과 함께 했던 경애와 부영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한 때 서로 의지하며 술친구가 되어주었던 친구들. 파릇파릇한 신입생 시절 만나 절친했던 4인방이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생각하던 중 준희는 그들 사이가 금이 가기 전 마지막 여행을 떠올린다.

경애의 생일 축하 겸 떠난 여행. 그 곳에서 정원은 방 청소를 하다가 사슴벌레를 발견한다.

어떻게 들어왔지 생각하며 집주인에게 묻는다.


 


 


"어디로 들어오는 거예요"

"어디로든 들어와."


집주인의 대답을 생각하며 이들은 사슴벌레식 문답이라 생각하며 다른 문답을 만들어간다.

"너 어떻게 그렇게 잔인해?"

"나 어떻게든 그렇게 잔인해."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우리는 언제부터든 이렇게 됐어."


사상의 암흑기에 우애는 친구의 배신에 한 친구의 가정이 무너지고 자연스레 무너져버린 이 관게 속에 주인공이 떠올린 '사슴벌레식 문답'은 결국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으며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음으로 관계의 진실을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워낙 티를 내지 않았던 파독 간호사 출신 마리아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부고 앞에 성당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삶을 회고한다. 남의 가정 집안일을 해주며 사모님이라고 존대하며 자신의 짐을 짊어지고 나갔던 마리아. 아이도 낳았지만 입양 보내야 했고 독일에서 한국으로 다시 쫓겨 들어와야 했으며 굴곡 많은 삶을 살았던 마리아를 안타깝게 여긴다. 태극기를 팔러 나가며 끝까지 쉽지 않은 생을 살았던 마리아. 그녀를 위해 뭐라도 하자고 사람들은 다짐하지만 결국 소설은 말한다. 이들의 결심은 곧 잊힐 거라고. 마리아의 죽음이 기억 속에 희미해지면 이 순간 서로 말했던 도움의 순간은 서로 잊힐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살아가면서 각각의 계절을 나기 위해서 각각 다른 힘을 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떻게든 끝나게 되어 있는 관계, 각자가 스스로 각각의 힘을 낼 수 밖에 없는 관계만을 말할까? 그렇다면 이 소설집은 씁쓸한 맛으로 끝날 것이다.


모녀 반희와 채운의 여행을 그린 <실버들 천만사> 에서는 딸에게 노년에 생기는 요실금 현상을 쑥스럽게 고백하는 반희의 모습이 나온다. 이혼 후 비정규직 청소 용역으로 일하며 홀로 살고 있는 반희는 딸이 자신을 닮지 않기를 바란다.

여행지에서 TV를 보던 중 살기 위해 머리를 젤리화하며 변형하는 물고기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알지 못했던 딸의 두려웠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면서 반희는 생각한다.



 


《각각의 계절》에서 가장 우울한 내용을 꼽으라면 첫 번쨰로 수록된 <사슴벌레식 문답>을 꼽을 수 있다. 어떻게든 꺠어질 수 밖에 없었던 관계, 어떻게든 배신할 수 밖에 없었던 관계. 그래서 결국 어쩔 수 없는 것인가라는 씁쓸함을 안긴다.


하지만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 「기억의 왈츠」는 사슴벌레식 문답 같은 현실 속에서 희망을 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힘들었던 대학원 1학년 시절, 자신의 힘든 상황에 매몰되어 친구 경서의 추억을 잊고 살았던 그 때를 기억해낸다. 힘들었던 자신에게 다가와 주었고 자신을 알아주길 바랬던 경서의 바램을 전혀 알지 못해서 친구를 허무하게 떠나보내야 했던 그 때를 기억하면 미안함으로 친구를 기억하게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며 끝까지 희망을 다짐한다. 자신이 인생의 암흑기를 지나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듯, 친구와의 끊어졌던 관계도 다시 아물고 회복할 날이 있을 거라고 희망한다. 그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며 도망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다.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

나는 서두르지도 앞지르지도 않을 것이다.

매년 새해가 되면 1월 23일의 음력 날짜를 꼬박 꼬박 확인할 것이다.

운이 좋으면 죽기 전에 한번 더 진정한 왈츠의 날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각각의 계절> 기억의 왈츠 - 241p

 

사슴벌레식 문답 같은 세상에서는 각각의 계절을 나기 위해서 각각의 힘을 내야 한다.

하지만 각각의 힘을 내게 하는 건 결국 우리가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

우리가 진정한 왈츠의 날을 추게 될 날이 언제일지 몰라도 끝까지 희망해야 한다. 설령 끊어진 관계의 끈이 다시 이어지지 않는다해도 살아있는 한 희망이 있으니 그날을 기다리며 견뎌야한다. 자신을 배신하고 간 친구일지언정 끝까지 기다리는 모습처럼,우리가 살기 위해 뇌를 젤리화하는 기형의 모습을 띠더라도 꿈을 꾸기를 포기하지 말아야한다.

 

《각각의 계절》은 인생의 떠오르는 슬픈 기억 속에서 머무르지 않게 한다.

지난 날들을 기억하는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씁쓸해하지만 마지막 희망을 이야기하는 소설 <기억의 왈츠>로 끝나는 건 그래도 이러한 슬픈 기억 속에서도 끝까지 꿈을 꾸며 살아가자는 작가의 다짐이라고 생각이 된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든다.

어떻게 힘을 내야 하는가?

그래도 끝까지 꿈꿔야 한다. 그래도 끝까지 희망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힘이 날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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