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두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같은 책을 읽고 두 아이가 이야기 할 때 소외감(?)을 느껴 아이들이 읽는 책을 읽고 나도 이야기에 끼여든다 ㅎㅎ 이럴 때마다 열심히 공부를 안하고 책을 깊이 있게 읽지 않은 것을 땅을 치며 후회한다. 떴다! 지식 탐험대는 교과와 관련이 있는 책이라 엄마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나도 처음 이 책을 읽고 ’과학 공부에 딱이다!’ 라고만 생각했다. 읽으면서 메모까지 해가며 옛 기억을 되살려 외우며 공부를 하였다. ’식물은 민꽃식물과 꽃식물로 나뉘고 꽃식물은 속씨식물과 겉씨식물로 나뉘고...’ ’쌍떡잎 식물은 그물맥이고 곧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외떡잎 식물은 나란히맥이고 수염뿌리를 가지고 있다... ’공책에 그림을 그려가며 열심히 공부(?)하는 나와는 달리 아이는 책을 읽기만 하는 것이다. 부모 욕심에 내용을 다 기억할 수 있냐며 공책에 메모를 하라고 강요까지 하였다. 며칠 후 도서관을 가다가 길에 피여있는 이름모를 들꽃을 보며 아이가 "엄마, 저건 쌍떡잎 식물이네." "어..저건 겉씨 식물이구나..."라고 이야기 하였다. 난 책을 보며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였는데 아이는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고 거리에 있는 꽃이나 산에 있는 나무를 보며 자신이 읽은 책 속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바보스러운 엄마이다. 같은 책을 읽고 내용을 외우려고만 했던 나와는 달리 아이는 즐기면서 읽었던 것이다. 이 책은 책 속의 내용을 기록하지 않아도 아이가 실생활에서 자신이 스스로 알아가는 장점을 발견한 것이다. 책 속의 내용을 공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로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가 바라는 친구와 엄마가 바라는 친구는?? 어릴 적엔 함께 뛰어놀고 웃으며 이야기하고 떡볶이를 먹는 우리는 다 친구라 생각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너무도 변해버렸다. 아이가 친구를 데려오면 넌지시 공부를 잘하는지 반에서는 어떠한지 물어보게 된다. 우숩게도 아이가 이왕이면 공부를 질하고 모범(?)적인 친구를 사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친해지고 싶은 친구와 엄마가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친구는 많이 다르다. 아이를 믿어주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입장에서 지시하고 조정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아니라 현실적인 눈으로 바라보며 잣대를 사용해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했던 것이다. 반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우진이.싸움도 잘하고 게임, 운동까지 잘하는 우진이의 생일에 유일하게 초대받은 승호...승호는 2,000원으로 우진이에게 어떤 선물을 사줄까를 고민.적은 돈으로 멋진 선물을 사려다 결국 쥐똥을 선물하는데... 쥐똥이지만 진심을 담은 선물이여서 그런지 싹은 틔우지는 못했지만 우진이의 소원은 이루어졌다. 승호의 진심이 통해서일까? 우진이와 승호는 친구가 된 것이다. 이 둘의 우정을 보면서 순수하지 못한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가 승호 같은 친구를 데리고 온다면 선뜻 반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의 마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겉모습과 환경만 보고 판단하는 내가 되었다는 것이 많이 부끄러웠다. 아이들과 동화를 읽으면서 아이보다는 내가 많이 생각하고 느끼게 된 책이다.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보태어 그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고,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함께 웃으며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어린이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작가의 말中 뉴스나 신문에서 집단 따돌림에 관한 기사를 보면 순수한 아이들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행동을 하고도 죄의식이 전혀 없는 아이들을 볼때면 ’성악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서운 생각마저 든다. 아이들은 ’한 번 왕따는 영원한 왕따’라는 말을 한다. 큰 아이의 초등학교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는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그 친구는 중학교에 가서도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그 아이를 따돌림한 아이들은 새로운 반이 되면 그 사실을 모르는 친구들에게 알려주어 모든 반 아이들이 동참(?)하도록 만든다. 일부는 집단 따돌림을 하고 일부는 그 아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면 자신도 따돌림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무관심으로 일관한다고 한다. 큰 아이는 다른 반인데도 불구하고 점심 시간에 함께 식당에 가는 등 그 친구와 함께 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은 계속 왜 같이 다니냐등의 이야기를 하며 큰 아이를 대놓고 그 아이와 있을 때 데리고 갔다고 한다. 결국 큰 아이도 주위의 끝없는 방해(?)로 그 아이와 이야기 할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바뀌기 힘들지만 조금씩만 마음을 나눈다면 그런일이 없을텐데... 사람은 같을 수는 없다. 생김새도 성격도 좋아하는 것도...무조건 나와 다르다고 외면하며 살 수 있는 것일까? 더군다나 여러명이 한 사람을 외면하는 것은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아무 걱정도 없을 것 같고 늘 행복해 보인다. 나도 그 시절을 보냈는데 그 때의 기억은 하지 못하고 지금의 내가 되어 아이들을 평가하고 있다. "네가 무슨 걱정이 있니? 해 달라는 거 다 해주고 학원도 보내주고..." 등의 이야기를 하며 아이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스트레스는 어른들만 받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도 무언가를 잘 하려고 할 때, 앞에 나가서 발표할 때, 생각대로 잘 되지 않을 때...하지만 아이들은 이럴 때 드는 감정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하는지 방법을 몰라 더 혼란스러운 것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느낌이 들 때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님에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아이의 이야기들 진심으로 들어주고 아이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맛있는 것을 먹거나 음악을 듣거나 운동을 하거나 아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가 있다. 아이들도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어떨 때 마음이 편해지는 이야기를 나눈 후 아이가 평화로운 마음이 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들의 욕심으로 아이가 더 스트레스를 받는지도 모른다. 뛰어 놀고 싶은 데 학원을 가라하고 쉬고 싶은 데 성적을 올려 자신의 기쁨보다는 부모님의 기쁨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 아이들...자신의 행복보다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공부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는 당장의 성적향상을 위해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빼앗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한다.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쓸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인것 같다. 작가는 조카 융이를 생각하며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엄마의 빈자리를 이겨내고 슬픈샘에서 웃음꽃을 피우라고 말해주는 작가. 어린 나이에 남들이 겪지 않을 슬픔을 안고 가는 융이와 같은 아이들에게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바란다. 교통 사고로 사랑하는 엄마를 잃고 답게의 아빠는 다리를 다쳐 장애인이 된다. 어린 답게는 의젓하게도 아빠의 슬픔을 헤아리는 아이다. 슬픔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씩씩한 아이다. 우리 아이들의 반 친구들 중에도 답게와 같이 엄마나 아빠가 계시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부모님과 함께 살지 못하는 친구들의 슬픔은 누구보다 클 것이다. 그 친구들이 원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기에 그 슬픔이 더 클지도 모른다. 우리는 진정으로 그들의 슬픔을 감싸 안아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사람들은 그들의 슬픔을 이해하기 보다는 함께 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더 궁금해한다. 그런 생각들이 그들의 슬픔을 더 깊게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가? 가끔 사람들은 엄마 없이 커서 버릇이 없다느니 아빠없이 자라 그렇다느니 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정작 자신의 아이들은 어떠한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우리는 그들에게 손가락질 할 자격이 없다. 세상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내 자식만 잘 되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조금만 더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 보았으면 좋겠다.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그들은 살아갈 용기가 생기고 우리가 보내는 따뜻한 눈빛 때문에 그들은 세상을 아름답다고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