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테이프 스토리콜렉터 57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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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시 미쓰다 신조로군요. 페이지에 손을 대는 것조차 저어될 정도로 무섭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괴담의 테이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보니, 저는 확실히 공포 장르를 영화로 보거나 귀로 듣는 것 보다 는 책으로 읽을 때 더 무서움을 느끼네요. 아무래도 책은 다른 것들과 달리 한 가지 감각을 별도로 더 요구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바로 촉각 말이죠. 읽기 위해선 만져야 합니다. 손으로 책을 만지고 또 계속 페이지를 넘겨야 합니다.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뭔가 음험한 것이 도사린 그것을 말이죠. 영화는 멀리 떨어져 가만히 보기만 하면 됩니다. 듣는 것도 마찬가지죠. 머리로는 딴 생각을 하면서 듣는 시늉만 할 수도 있습니다. 요컨대 영화를 보고,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경우 모두 얼마든지 나와 상관없는 구경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책은 다릅니다. 책은 혼자 진행되지 않습니다. 나의 적극적인 행위를, 달리 말해 참여를 요구합니다. 저의 실제적인 개입이 있어야만 이야기가 흐릅니다. 무서운 것을 저 스스로 초래하는 것입니다. 내가 해야 한다는 것, 내가 거기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 그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는 것. 바로 그것 때문에 책이 다른 매체보다 더 공포감을 낳는 것 같습니다. 사실 몰입도 다른 것들 보다 훨씬 크구요. 물론 기억도 책으로 만난 공포는 오래 남지요. 이런 것들 때문에 여전히 많은 공포 소설이 나오고 또 그것을 자주 즐겨 읽는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만화도 비슷하네요. 문득 이토 준지의 만화들을 얼마나 힘들게 페이지를 넘겼던가 하는 게 떠오릅니다. 그림 때문에 손을 대기도 싫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어떻게 결말이 나는지 궁금하여 그것을 보려고 애써 손을 대어 끝까지 읽어버리는 저는 아무래도 이 장르에 매혹되어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미쓰다 신조의 공포 소설을 나오자마자 만났습니다. 이 작가의 공포 소설엔 뭐라고 분명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히 마음을 잡아 이끄는 매력이 있어서 작품이 나올 때마다 손에 잡게 됩니다. 지금까지 각종 매체로 허다하게 공포물을 접해 온 저입니다. 소재에 있어서도, 내용에 있어서도 '와, 이거 정말 새로운 걸!' 하는 것은 그다지 없는 편입니다. 최근엔 영화 '제인 도'를 보면서 그런 걸 느낀 적은 있습니다만. 물론 미쓰다 신조의 소설도 그렇게 새롭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나오면 기대하게 됩니다. 읽어보고 싶습니다. 아마도 그건 이야기 자체 보다는 신조 특유의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 분위기란 단적으로 정의하자면, '경계의 허뭄' 입니다. 여기서 경계란 허구의 이야기와 지금 제가 있는 실제 현실 사이에 놓은 경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조의 이야기는 자주 그것을 허뭅니다. 그것을 위해 그는 근대 초기의 소설들이 취했던 장치를 씁니다. 영국이나 유럽에서 나온 근대 초기 소설들을 보면, 수기의 형식을 빌린 것이 많습니다. 그 중 가장 많이 수기의 형식을 차용하는 게 바로 공포 소설입니다. 예를 들자면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이나 에드가 알란 포의 '어셔 가의 몰락'을 떠올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시겠지만 이런 소설들의 수기는 대부분 누구의 목격담, 증언으로 이뤄집니다. 그렇게 지금 재현되고 있는 이야기가 공상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란 것을 독자에게 납득하도록 만들죠. 다시 말해 수기의 형식은, 특히나 이렇게 인간의 이성으로 얼른 헤아리기 어려운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초래하는 공포를 다룰 때 이 때문에 가지게 되는  독자가 한낱 망상으로 치부해 버릴 위험을 '있음직한' 사실로 만들어 피해가는 것이죠. 그리고 그 '있음직함' 때문에 소설이 원래 노리던 공포를 더욱 극대화시킬 수도 있고 말이죠. 여기서 우리가 정녕 어떨 때 공포를 느끼는가 하는 게 밝혀지는 것 같습니다. 그건 바로 소설 속 이야기가 바로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느낄 때라는 게 말이죠.


 '경계의 허뭄'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영화의 스크린처럼 저편의 이야기와 이편의 내 삶의 절대적으로 나뉘지 않고 그 공포의 침입을 막아주는 스크린이 찢어진 것처럼 내 삶으로 침범하여 흘러든다는 것입니다. 나도 그 이야기 속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듯이 말이죠. 상기해 보시면, 무서운 이야기가 정말 무서워지는 것은 바로 그 때입니다. '아, 저 일이 내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겠구나!' 깨달을 때 말이죠. 미쓰다 신조도 그런 수기 형식을 빌려 왔습니다. 작가가 직접 등장해 아주 일신 상의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으며 마치 실제 있었던 일인양(어쩌면 정말 있었던 일 일수도 있습니다.) 독자에게 여기도록 한다는 것이죠. 여기에 주안점을 두고 읽다보면, 미쓰다 신조가 독자들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실제로 '있음직한' 느낌을 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보일 것입니다.


 저는 특히 두 단편, '괴담의 테이프'와 '우연히 모인 네 사람'에 주목하고 싶은데요, '괴담의 테이프'는 마지막 장면 연출이 정말 압권입니다. 마치 자신의 자살을 생중계 하기라도 하듯 자살하려는 사람이 자살할 때까지의 상황을 자신의 육성으로 녹음한 테이프가 이 이야기의 주된 소재인데, 원래 그것을 오래도록 모으고 그 중 특별히 세 편을 골라 책을 쓰기로 했던 저자가 그 세 편을 미쓰다 신조에게 보내오고는 실종되고 마는데, 나중에 실종된 그 작가가 미쓰다 신조에게 이제는 자신이 직접 고백하는 자가 되어 자살을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옵니다. 이 부분에서 작가의 연출이 저는 정말 좋더군요. '괴이'의 공포는 정체 불명에서 나오는데, 그 정체불명을 온전히 남겨두어 현실감과 무서움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연출이었습니다. 분명 공포의 효과에 조예가 많은 작가라 그런 연출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독자에게 더 큰 한 방을 주기 위해 다른 방향을 취할 것이거든요. 독자의 눈 앞에 괴이의 전모를 밝히는 것 같은.


 이런 '적절한 물러남'(저는 작가의 그런 연출을 이렇게 부르고 싶네요.)은 '우연히 모인 네 사람'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역시 결말 부분인데요. 솔직히 이 에피소드는 살만 좀 제대로 붙이면 얼마든지 장편으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아이디어도 좋고, 무대도 적절하며, 미스터리도 꽤 넣을 수 있거든요. 저 역시 읽으며 '아, 좀 더 긴 이야기로 읽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미쓰다 신조는 이 좋은 이야기를 그냥 단편으로 마무리 지어버립니다. 후반 부분을 풀어가면 충분히 무서운 쪽으로 더 매력적인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는데 그러지 않습니다. 물러나는 것이죠. 그래서 역시 현실감과 그 현실감에서 오는 공포를 얻습니다. 저는 미쓰다 신조의 이런 부분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픽션을 현실처럼 만드는 능력 말이죠. 실제 이야기처럼 느끼게 하여 '괴이'의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능력. 정말로 그 방면에 있어서 미쓰다 신조의 능력은 최상 입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무서운 것이죠. '괴이'가 책 속의 이야기로만 머무는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내 삶 속에 나타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에.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잡다하게 길게도 썼네요.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미쓰다 신조의 공포 소설이 갖는 매력을 꼭 한 번 말하고 싶었습니다.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 그건 모르겠지만.

 '괴담의 테이프'는 어떤 조우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미쓰다 신조는 미스터리 작가인 동시에 공포 소설 작가입니다. 두 방면을 그는 다 걸어가고 있지요. 이번 '괴담의 테이프'에선 그 둘이 조우하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를 들어 두 번째 단편, '빈 집을 지키는 밤'은 존 카펜터 감독의 영화 '할로윈'으로 대표되는 슬래셔 무비의 신조식 호러 변형판 같고, 그 다음의 '우연히 모인 네 사람'은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같은 클로즈드 서클의 호러적 변형 같습니다. 이렇게 미스터리에서 익숙한 소재들이 호러의 세계로 재탄생 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번 단편집은 지금까지 말한 점들이 넘치는 책입니다. 권태로운 일상의 균열을 일으킬 공포를 만나고 싶다면 '괴담의 테이프'를 한 번 돌려보시라 권해 드리고 싶네요.


 '괴담의 테이프'는 개인적으로 더 무서웠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테이프들엔 모두 괴이한 존재가 나타나는데, 그 출현의 신호가 하필이면 빗소리 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소설을 읽을 때는 정말 주구창창 비가 내렸습니다. 이야기와 현실이 이런 식으로 일치하니 좀 오싹 하더군요. 역시 무서운 것은 이야기만으로 안 됩니다. 그것이 현실 속으로 마구 침범해 들어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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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7-08-26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보면서 사진 속 책 맨 앞에 그림은 자세히 못 봤습니다 마지막에 빗소리가 나고 무언가 나타난다고 한 걸 보고 위로 올리다 책 맨 앞 그림을 보니 오싹했습니다 노란 우비 쓴 사람?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노조키메》에서는 책을 읽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면 그만 보라고도 하죠 책을 볼 때는 그런 말 그렇게 무섭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른 다음에 갑자기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수기형식이 무섭게 만드는군요 다른 사람 소설은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잘 몰랐습니다 미쓰다 신조 소설만 조금 봤어요 공포소설... 미쓰다 신조 소설을 보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서운 것만 봐야 할지, 다른 것도 생각해야 할지... 책을 보면 거기에서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할 때가 많아서... 별로 좋은 버릇은 아닌 듯합니다 알 수 없는 건 그것대로 두어도 괜찮다고 하지만...


희선

오드득 2017-08-26 02:48   좋아요 0 | URL
희선님, 잘 지내시고 계시죠? 오랜만에 뵙는 것 같아 일단 이렇게 안부부터 묻게 되네요^^
표지의 노란 우비 사람은 여자로 다섯번째 단편에 나오는 ‘괴이‘인데, 늘 비가 내릴 때마다 나타나 희생자에게 점점 더 다가오는 존재입니다. 저는 미쓰다 신조의 미스터리를 읽을 때는 이것저것 다른 거 많이 생각하는데, 공포 소설은 정말 다른 거 생각 못하겠더라구요.^^ 이야기 자체에 마냥 압도되어서... 그런데 영상으로 보면 아무리 무서운 것이더라도 어느 정도 객관적 관람이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책은 잘 안 되네요. 특히 이렇게 미국식 호러가 아니라 일본식 호러는... 왜 그럴까? 거기에 대해 조금 생각 중입니다. 여하튼, 저도 이렇게 이런 소설은 아무 생각없이 읽는답니다^^;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네T-T
수십 억 뇌물이 고작 5년?
일부러 5년 준 건가?
2심에서 집행유예 할 수 있도록?
여론 잠잠해지길 기다리겠다는 거네.
라면 10개와 현금 2만원 절도가
징역 3년 6개월 인데?
국정을 농단하고, 수조에 달하는 피해를 국민에게 안겨도 돈 있으면 그것 밖에 안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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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세계
무라타 사야카 지음, 최고은 옮김 / 살림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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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험이 성공하면 어떻게 될까?"

 "세상에서 '가족'이라는 개념이 사라질지도 몰라. 그런 예감이 들어."

 남편은 들뜬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게 훨씬 합리적이야. 그렇잖아, 우리도 왜 '가족'이 되었는지 잘 설명할 수 없다고. 단체 미팅에서 만나 조건이 맞고 성격도 맞는다는 이유만으로 결혼해 남매처럼 살고 있으니까."

취기가 올랐는지 남편은 혀 꼬인 소리로 말했다.

 "'가족'이라 명명한 존재가 남과 어떻게 다른지, 이제 아무도 설명하지 못해. 우리는 이미 그걸 잃어버린 거야." (p. 177)


 때로 상상해 본 적이 있을까? 사랑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지? '편의점 인간'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무라탸 사야카의 새로운 작품, '소멸세계'는 바로 그런 세상을 그린다. 제목 그대로 남녀 사이의 사랑이 소멸된 세계를 말이다. 여기엔 더이상 개인의 쾌락을 위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몸을 섞는 사랑은 그렇다. 부부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소설 속 세계에서 부부 관계란 오직 자녀의 양육이라는 하나의 목적만으로 성립되고 지속된다. 부부는 오직 그 하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동료나 협력 관계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랑이 아니라 오직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 결혼인 것이다. 진짜 사랑은 남편과 아내가 아니라 다른 데서 찾는다. 아니, 남편과 아내에서 사랑을 찾아서는 아니된다. 왜냐하면 이 곳의 부부란 같은 목적을 위해 서로 협조하는 친남매 같은 가족이기 때문이다. 남편이나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남매끼리 사랑을 나누는 근친상간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성교까지 하는 것은 변태 행위의 극치다. 지금 우리 시대의 상식인 부부 간 성교를 통해 자녀를 낳는다는 것이 이 세계에선 변태 중의 변태 행위인 것이다. 인공수정이 보편화 되어 육체간 성교를 통해 아이를 낳는 것까지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랑은 몸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섹스 해 본 적 있어요?"

 느닷없는 질문에 그는 놀란 듯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교미를 말하는 거죠? 애인은 있었지만, 그런 고풍스러운 행위는 해본 적이 없어요." (p. 119)


 때문에 사랑의 대상이 꼭 실제로 존재할 필요도 없다. 이 시대 사랑의 대상 대부분은 환영의 존재들이다. 드라마 속 인물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은 것들이 사랑의 대상이고 모두들 진정한 사랑으로 인정해 준다. 오타쿠들 중엔 미연시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들은 진짜 여자친구로 삼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연애하는 이들도 있다고 하던데, 그들은 이런 세계에 살면 좋을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니. 소설의 주인공 여성 아마네도 그러하다. 그도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사랑한다. 첫 경험이라고 할만한 것도 그를 통해서였다. 타인의 눈엔 자위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어차피 이 세계엔 자위와 사랑이 그렇게 구별 되지도 않으니 별 상관은 없다. 이렇게 '소멸 세계'가 그리는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과 비정상이 완전히 뒤바뀐 곳이다. 여기선 정상이 그 곳에선 비정상이며 그 곳에서 비정상이 여기선 정상이다. '소멸 세계'는 그를 통하여 도대체 정상과 비정상은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것은 아마네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엄마, 원시시대에는 다부다처제가 정상이었대. 섹스는 의식이고, 의식을 올리는 날이면 젊은이들이 모여서 집단 난교로 아이를 가졌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봤어. 하지만 지금을 사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하면 다들 정신이 나갔다고 하겠지? 엄마가 하는 행동이 바로 그거야. 시대가 바뀌었어. 정상의 기준도 바뀌었고, 고릿적 기준을 아직도 못 버리지 못하는 건 광기야.(p. 158)




 아마네는 태생부터 예외의 존재였다. 부부 간의 성교로 태어난 아이였으니까. 그는 그렇게 태어난 것을 남에게 숨겨왔다. 그렇게 태어나게 만든 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 이유에 대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널 낳은 건... 사랑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았어. 태어났을 때부터 이 세상은 미쳐 돌아갔어. 나만은 정상이고 싶었지.(p. 158)


 그녀는 아마네에게 기억하라고 한다. 자신이 그렇게 해서 아마네의 몸에 '올바른 세계'를 심어 놓았다는 것을. 그것이 광기인 세상에서 아마네를 바로 잡아줄 것이라 단언한다. 그 때문일까? 아마네는 세상과 잘 섞이지 못한다. 아니, 세계의 보편적인 모습과 닮지 못한다. 고풍스럽거나 악취미가 되어버린 육체의 성교에 집착하며, 남의 아이와 자신의 아이의 구별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 자신만의 아이에 집착한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는데, 그녀는 낡고 사라진 것에 집착한다. 마음은 그런 세계의 정상이 되고 싶은데, 되지 않는다. 그래서 괴로워한다. 세상과 점점 더 어긋나는 자신을. 그런 아마네에게 엄마는 말한다.

 "넌 원래 주변 영향을 잘 받았어. 지금도 세뇌된 것뿐이야. 엄마랑 같이 가자. 여기 보다는 원래 있던 세상이 훨씬 나아."

 아마네는 이렇게 항변한다.

 "엄마는 세뇌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어? 세뇌되지 않은 뇌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해? 그럴 바에야 이 세상에 가장 적합한 광기로 미치는 게 훨씬 낫지?(p. 271)

 그녀는 엄마를 원망한다. 자기 육체의 근본에 정상이라는 것을 심어 놓았기 때문에 자신은 계속 비정상으로 살고 싶은데도 결국 정상에게 따라 잡혀 정상으로 살게 된다고. 그녀는 이렇게 절규한다.

 어떤 세상에 있어도 완벽하게 정상으로 존재하는 나를 보면 미쳐버릴 것 같아. 세상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광기가 뭔 줄 알아? 바로 정상이라는 거야. 안 그래?(p. 272)

 어떻게 보자면, 이 소설 '소멸 세계'는 히스테리의 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상의 억압에 짓눌리는 것에 대한 저항으로써의 히스테리. 그것은 세상이 강요하는 자신의 모습이 아닌, 독립적이며 고유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자 하는 욕망의 발현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온전히 지키고자 하는 투쟁인 것이다. 이는 아마네가 소설 속 다른 인물들과 다르게 사랑의 대상으로 끝까지 이 세상에 실재하는 것이 아닌, 저편의 환영만을 고집하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이 역시 세상이 원하는 정상이란 것에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의지의 단호한 표현인 것이다. 앞서 '소멸세계'는 정상과 비정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는 말을 했다. 아마네의 투쟁을 통해 소설이 들려주는 대답은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여기는 것 또한 역사적으로 보면 특정 시기, 특정 장소에서 출현하여 지속되어온, 객관적 진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신화'에 불과하다. 토마스 쿤 식으로 말하자면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주눅들거나 자신을 부정적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이 고유한 주체성 속에서 어떤 길로 갈 것을 결단했다면 당당하게 걸어가라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네가 소설의 결말에서 이 세상에선 비정상적 행위의 가장 극단이라고 할 만한 행위를 태연히 저지르는 것에서 드러난다. 그렇게 그녀는 끝까지 비정상의 영역에 남는다. 히스테리를 히스테리 그대로 온전히 남겨둔다. 바로 거기에서 자신의 고유한 주체성이 태어나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마네의 모습은 그녀가 속한 실험 도시에서 누구의 아이도 아닌, 모두가 엄마가 되는 아이들의 모습과 얼마나 정반대인가? 그들은 모두를 엄마라 부르며 끝없는 보살핌을 받는다. 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자신의 삶에 주체가 되지는 못한다. 아마네의 남편도, 한 때 애인이었던 남자도 다 마찬가지다. 처음엔 아마네처럼 비정상을 향한 탈주를 감행했으나 결국 정상에게 따라잡혀 고유한 주체성을 잃어버렸다. 이로써 이 소설이 말하는 '소멸세계'는 정말은 무엇이 소멸된 세계인지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고유한 주체성이 사라진 세계라는 것을. 모두가 공장에서 똑같은 틀로 찍어낸 기성품이나 다를 바 없는 세계가 바로 '소멸세계'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왜 그런 세계를 그리는데 사랑을 주요 모티브로 삼았는가도 이제 알 수 있게 된다. 사랑이야말로 상대의 고유한 주체성을 존중하는 가장 대표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라는 게 말이다. 사랑은 무엇보다 개인과 개인 간에 일어나는 일이고 그런 면에서 두 고유한 주체성의 대면이라 할 만하다. 또한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기에, 역시 고유한 주체성이 발현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람은 사랑을 하는 한,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 그 사랑의 감정은 오직 자신만이 향유하는 것이기에. 사랑은 자신을 자신의 고유한 주체성과 늘 연결시켜 주는 '탯줄'이다. '소멸세계'가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두 가지 주요한 테마, 즉 사랑과 주체성은 이렇게 연결된다.

 '소멸세계'는 오늘의 세상과 완전히 정반대의 세계로 독자를 초대하여 상식으로 굳어진 것을 다시금 헤아려 보게 만드는, 이를테면 '사고 실험' 같은 소설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덕분에 오랜만에 정상과 비정상 그리고 주체성과 사랑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런 사유의 시간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이 세계의 문을 두드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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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라는 소설 1, 2

 

매력적이지만 불안한 남자와 착하지만 평범한 남자 사이에 선 여자 

이 시대에 사랑과 결혼이 지니는 의미를 찾는 가장 혁명적인 삼각관계!

가디언워싱턴포스트살롱, NPR이 꼽은 올해의 책!

살롱》 소설상 수상작미국 아마존 베스트셀러!

  

결혼의 현실적 문제를 반영한 책으로 마담 보바리안나 카레니나가 있었다면가장 최근엔 결혼이라는 소설이 있다.—《뉴요커

 

과거의 낭만적인 소설들을 읽으면서도 성적 혁명이 본격화된 현대의 나날을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연애 이야기.—《워싱턴 포스트

 

 

줄거리

  

브라운 대학교 영문과 재학 중인 매들린은 아버지가 모 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기도 한 중산층 집안의 차녀로,  영문학에 심취해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학자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4학년 마지막 학기에 들어간 기호학 수업에서 우연히 공대생 레너드와 사랑에 빠져 졸업 학기를 연애하느라 시간을 보내다 대학원 전형에 모두 떨어지고 만다.  레너드는 빛나는 지성과 함께 우울한 남성적 매력을 풍기는 남자로,  알코올중독인 부모님 밑에서 감정적 불안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명석한 두뇌 덕분에 브라운 대학에 입학한 수재다.  매들린과 레너드는 집안 분위기와 성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매개로 소용돌이 같은 사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졸업 후 레너드가 유명 생물학 연구소의 인턴 자리를 얻게 되어 매들린과 동거를 시작하지만,  레너드의 조울증이 점점 심해지면서 연애에도 점점 부정적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한편 매들린의 절친한 친구이자 순진한 심성의 종교학도 미첼은 매들린의 부모님께도 인정받는 모범생이다.  짝사랑했던 매들린이 레너드에게 푹 빠지게 되자,  그는 아르바이트로 경비를 모아 유럽과 인도로 여행을 떠나 다양한 사건을 겪으며 성숙해지는 시간을 갖는다.  그 와중에 진로와 사랑 모두 삐걱거리며 건강하지 못한 관계로 치닫게 된 매들린-레너드 커플은 답을 찾을 수 없는 막막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결혼이라는 무모한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이벤트 참여방법>

 

 

1. 이벤트 기간  :  8월 14일 ~ 8월 20일

    당첨자 발표  :  8월 21일 (월) 

    발송  :  8/22~차주 초 발송 예정 

2. 모집인원  :  10명 

3. 참여방법

 

- 이벤트 페이지를 스크랩하세요. (필수)

- 스크랩한 이벤트 페이지를 홍보해주세요. (SNS필수)

책을 읽고 싶은 이유와 함께 스크랩 주소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 무성의한 댓글 참여는 선착순에서 제외됩니다.

4. 당첨되신 분은 꼭 지켜주세요.

 

- 도서 수령 후, 7일 이내에 '개인블로그' 와 '알라딘'에 도서 리뷰를 꼭 올려주세요.

 * (미서평시 서평단 선정에서 제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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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병동 병동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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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을 무대로 벌어지는 땀내 나는 스릴러. 이 소설을 이렇게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 치넨 미키토의 '가면 병동' 얘기 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인건비를 줄이고 싶은 병원과 벌이가 시원치 않은 의사들이 서로 죽이 맞아서 야간 당직을 서는 의사를 정식으로 고용하지는 않고  7ㅕㅕㅕㅕㅕㅕㅕㅕㅕㅕㅕㅕㅕ65555555555(이건 전화 받는 사이에 정말로 저희 집 고양이가 누른 것입니다.ㅠ ㅠ) 다른 병원에 있는 의사들을 아르바이트로 쓰는 게 말이죠. 이 소설의 주인공이자 외과의사인 하야미즈 슈고도 그 중 하나 입니다. 선배 의사의 소개로 일주일에 한 번 요양 병원에서 야간 당직 서는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요양 병원이라고 하지만 거의 몸져 누워 있는 환자가 대부분인데다 위급 상황도 별로 없어서 스스로는 아무 것도 안 하면서도 돈은 벌 수 있는 그렇게 꿀을 빨고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원래 자기가 서는 날은 아니었지만 선배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그 대신 당직을 맡게 된 어느 날 밤, 그는 삶에서 가장 최악의 시간을 경험합니다. 모두가 퇴근한 뒤, 일하는 사람이라고는 여성 간호사 둘과 당직을 맡은 자신 밖에 없는 병원 로비에 피에로 가면을 쓴 범인이 권총을 든 채, 총상을 당한 젊은 여성 하나를 인질로 잡고 나타난 것입니다.


 소설은 바로 거기서 시작합니다. 이런 저런 사전 설명 같은 거 없이 단도직입으로 독자를 이야기 한 가운데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 뒤로 옆 한 번 안 돌아보고 이야기 끝까지 내처 달립니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하튼 범인이 다른 데도 아니고 병원에 찾아온 이유는 이것 때문입니다. 총상을 입은 여인을 치료해 달라는 것. 자기가 강도이긴 하지만 살인자까지 되기는 싫다고 말이죠. 총으로 위협 당해서가 아니라 의사로서 다친 사람을 외면하는 게 도리가 아니어서 슈고는 최선을 다해 부상당한 여인을 수술하고 결국 거동할 수 있을 정도로 살려냅니다. 슈고는 여성에 대한 치료를 마친 뒤, 이 같은 상황을 경찰에게 알리려 하는데 퇴근한 줄 알았던 병원 원장이 갑자기 나타나 신고하는 슈고를 말립니다. 경찰이 개입하면 범인이 더욱 궁지에 몰려 무자비한 짓을 벌여 환자들을 위험하게 만들지도 모른다고 말이죠. 슈고는 그래도 신고하려 했지만 두 명의 간호사까지 원장 편을 들자 어쩔 수 없이 신고하는 것을 그만둡니다. 강도까지 아예 지금 병원을 나가면 수색 중인 경찰에 잡힐 위험이 있으니 수색이 잠잠해지는 새벽 5시까지 기다리기로 합니다. 그 때가 되면 스스로 나갈테니 그 때까지 얌전히 인질이 되어달라고 부탁까지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되어, 병원은 누구도 들어가거나 나올 수 없는 밀실 같은 곳이 되어 버립니다. 띠지에 나온, 밀실 미스터리는 방이 아니라 병원 전체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방을 대상으로 하는 밀실 미스터리는 나오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하룻밤 새의 인질극만이 이 소설이 담고자 하는 이야기의 전부가 아니라는 게 곧 밝혀집니다. 병원에 있는 환자들에게 어떤 비밀이 존재하고 있다는 게 서서히 드러나기 때문이죠.



 제목의 '가면병동'은 바로 그래서 나온 것 같습니다.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병원이라는 것을 나타낸다는 뜻으로. 그런 의미에서 슈고는 그 밤, 두 가지 미션을 수행하게 되는 셈입니다. 하나는 인질범에게서 살아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갑자기 드러난 병원의 미스터리를 밝혀내는 것이죠. 소설은 이 두 가지를 기본 줄기로 하여 이야기를 끌고 나갑니다.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어요. 슈고 외에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비밀을 가지고 있고 병원이라는 공간 역시 그런 게 넘쳐나거든요. 


 이외에 독자의 흥미를 잡아끄는 부분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인질로 잡혀 온 여성 환자에 대한 것인데요, 이름이 미나미입니다. 그런데 꽤 미모의 여성이에요. 슈고는 주로 이 미나미와 많이 같이 있게 됩니다. 즉 젊은 총각 의사와 더 젋은 미인 여성 단 둘이 위험한 밤을 보내게 되는 것이죠. 이쯤되면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나요? 네, 그렇습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케미 입니다. 로맨스라는 향신료가 가미되는 것이죠.


 이런 저런 재료들이 따로 놀지 않고 잘 버무려져 있기 때문에 소설은 끝까지, 한달음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재미를 선사합니다. 깜짝 놀랄만한 반전까지 마련되어 있어 뒷 맛을 더욱 깔끔하게 만들어주더군요. 치넨 미키토는 그런 부분에 수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들을 재밌게 만드는 것에 대해서 말이죠. 현재 병원 의사라고 해서, 병원을 무대로 한 미스터리라 의료적인 지식으로 무장한 미스터리가 나오지 않을까 잔뜩 기대했는데, 그런 것은 없어서 그건 좀 아쉬웠어요. 이왕이면 자신의 전문 분야를 잘 살린 미스터리를 써 주었으면 좋겠어요. '아, 이런 건 정말 의사 밖에는 못 쓰겠구나'할 만한 미스터리를 꼭 한 번 보고 싶으니까요. 아무튼 그의 다른 작품은 어떨까 궁금해지긴 했습니다. 그만큼 치넨 미키토에 대한 첫 인상이라고 할 만한 '가면병동'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겠죠.


 다른 건 하나도 안 따지고 그저 재밌는 미스터리 스릴러 한 편 읽어보고 싶다는 분은 '가면병동' 한 번 만나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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