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김경집 지음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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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알고 보면 참 신기한 종교이다.

 원래 기독교는 저 변방의 그리 풍요롭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별달리 세력도 없는, 그것도 겨우 한 부족이 섬기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큰 종교 중의 하나가 되었으니 어찌 신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 야훼는 당시만 해도 세상에 널린 허다한 신들 중 하나였다. 물론 지금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절대 신의 위치에 서 있지만 말이다. 그가 그와 같은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어디까지나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한 데 있었다. 로마가 그러지 않았다면 기독교는 절대 지금과 같은 자리에 이르지 못했다. 그건 예수 부활 승천 이후 그의 제자들이 각지로 전도를 다녔던 여정을 기록한 사도행전만 봐도 알 수 있다. 거기 한 대목엔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그리스에서 전도를 한 기록이 나온다. 당시 그리스에선 사람들에게 뭔가 알리려면 언제나 아고라에서 행해야 했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고라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신이 믿는 기독교에 대해서 열심히 강론했다. 주로 유일신 사상과 원죄의 삶과 그 구원에 대해서였다. 그리스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한 마디로 비웃는다. 도대체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비아냥거린다. 당연했다. 그들은 제우스도 있고 헤라도 있으며 바다는 포세이돈, 태양은 아폴론 하듯이 여기저기에 많은 신들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 형편에 어떻게 신이 하나라는 말이 곧이곧대로 들어오겠는가? 또한 원죄의 삶과 구원이라는 것도 그들에겐 헛소리에 불과했다. 삶 자체가 어찌 원죄일 수 있단 말인가? 삶은 그저 사는 것이며 그냥 누림의 대상이 아니던가. 너무나 현실적이었던 그들은 원죄 운운하는 베드로의 말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장 논쟁을 건다. 철학에 능숙한 그들답게 증명해 보라고 소리친다. 그들 앞에서 베드로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할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원래 아는 것이 많지 않고 말솜씨도 별로 좋지 않은 그다. 철학과 화려한 수사로 무장한 그들 앞에서 설득은 이미 물 건너 가 버렸다. 그냥 믿으라고 외칠 뿐이다. 이처럼 초기 기독교가 전파될 때 말은 별로 힘이 못 되었다. 문명이 발달한 곳일수록 더욱 그랬다. 그렇다면 더욱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엇으로 기독교는 광대한 제국이었던 로마의 국교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로마의 황제가 불현듯 하나님의 위대함을 경험이라도 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알고 보니 기독교의 교리가 다른 것 보다 워낙에 월등한 것이라 여기기라도 했던 것일까? 모두 아니다. 기독교가 국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직접 사는 모습으로 기독교를 믿으면 얼마나 다르게 살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아주 부유한 자들조차도 가진 것들을 모조리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고 이웃들에게 언제나 친절하고 헌신적으로 대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보여주는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라 얼른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남아있는 당시 기록에 따르자면 분명 그랬다. 때문에 사람들은 기독교를 좋아했고 점점 믿어나갔다. 그들을 교화시켰던 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었다.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베드로의 그리스 전도 여행과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신앙인이 정말 무엇에 힘을 써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번지르한 말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행하는 실천이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는 어떠한가? 오로지 말로 하는 전도에만 힘을 쓴다. 생활속에서 기독교가 얼마나 삶을 바꿀 수 있게 만드는지 그걸 실천으로 보여주기 보다는 그저 찾아가서 전하고 억지로 오게 만들고 그런 것에만 힘을 쓴다. 신도들도 별로 다르지 않다. 삶에서 예수가 말하는 것을 실천하기 보다는 교회 내에서 높은 직분에 오르는 걸 더 힘쓰고 헌금이나 십일조 혹은 주일성수와도 같은 요식적인 것으로만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려 애쓴다. 내 이웃들에 대한 봉사와 헌신으로 신앙을 드러내기 보다는 나만 드러내고 높일 수 있는 것에만 헌신적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기독교는 감동이 없다. 믿는 자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 아무런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아니 오히려 더 못난 모습을 보여줄 뿐인데 어찌 믿게 만들 수 있을까? 해서 지금의 교회는 악을 쓴다. 삶에서의 실천으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이 궁극적인 원인이라는 건 깨닫지 못하고 이단이 많아서라는 둥 아직 전도와 선교가 모자라서라는 둥 악을 쓴다. 말, 말, 말만 넘쳐난다. 지하철 안에서 외치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들었을 때처럼 아무런 공감을 주지 못하는 말만큼 시끄러운 것은 없다. 지금의 기독교는 자꾸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해져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다고 하지만 정작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드는 것이 바로 현재 기독교의 모습이란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정말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그것이 종교의 궁극이다. 종교란 기복이 아니라 결국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삶의 변화는 말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로지 삶에서 실천으로 나타날 때라야 완성된다. 사람들도 그걸 안다. 그것으로 가짜 종교인과 진짜 종교인을 구분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기독교는 삶의 변화는 도외시한 채 여전히 외적인 것에만 치중한다. 교회를 더 크게 짓거나 그저 신자의 수만 불리려는 것으로. 그럴수록 자신의 입지만 더욱 줄어들게 할뿐인데도.

 

 

 그런 현실의 안타까움이 한 권의 책을 낳았다.

 

 카톨릭 대학에서 인간학과 영성 과정을 맡아 가르치는 김경집의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이 바로 그 책이다. 그는 단적으로 지금의 기독교가 눈이 멀었다고 말한다. 돈과 권세라는 세속적 욕망에 눈이 멀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 멀어버린 눈에게 다시 올바른 시각을 찾아주기 위해 쓰여 졌다. 기독교 안에서 이루어지는 비판은 여타의 다른 학문에 대한 비판과 다르다.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는 기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건 물론 성경이다. 교리에 대한 것이든, 그 신앙 태도에 관한 것이든 모든 건 다 성경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현실 기독교에 대한 날선 비판의 수리검을 날리는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은 기독교인들이라면 익히 잘 알고 있을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네 복음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오병이어'나 ''산상수훈'등 특히 잘 알려진 모두 18개의 예수 에피소드들을 대상으로 한다. 다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라서 '달리 새로울 게 없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김경집이 노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너무도 익히 잘 알려진 그 이야기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해석들이 원래 성경이 의미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고정관념처럼 그 의미가 굳어진 근저에는 평범한 신도들의 목사나 전문가들의 해석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을 강조하고 평신도들이 설교나 책 이전에 먼저 스스스로 헤아려 볼 것을 권유하기 위해 그는 오히려 아주 익숙한 것들에 새로운 해석의 물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역사적 실증이나 해석학등 인문학적 방법들을 동원해서 말이다. 다시 말 해,  이 책은 누가 더 성경이 말하는 원뜻에 맞는가를 두고 겨루는 진검승부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궁극엔 정말 중요한 것은 나만의 초식으로 성경을 해석해보는 것이며 바로 그 자발적 움직임을 고취시키는데 있는 것이다. 사실 이 같은 방향성에 대해 나 역시도 동의할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나와 같은 평신도들의 무비판적 추종이야말로 오늘날과 같이 부끄러운 기독교의 모습을 낳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믿음이 주가 되는 것이 신앙이지만 올바른 성찰이 수반되지 않은 믿음은 그저 맹종에 불과하다. 또한 변질과 부패로 가는 길에 있어 맹종만큼 빠른 지름길도 없다.

 

  앞서도 신앙의 완성은 실천이라고 말했지만 그 실천 역시도 이러한 성찰적 믿음에 근거할 때 제대로 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경집이 이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그것이다.  잘 알려진 예수의 행적들을 중심으로 그 참뜻을 다시금 밝혀 진정한 실천을 가로막는 방해물과도 같이 자신의 잘못된 신앙을 정당화하는 핑계 거리나 제공하는데 그치는 말들을 제거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책에서 날리는 모든 수리검은 오로지 삶의 실천으로 이끄는 자기 성찰적 믿음이란 과녘을 향하여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를 위해서 김경집은 성경의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모든 꼭지마다 거기에 더하여 그와 비슷한 비중으로 용산참사나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와 같은 지금 바로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현실까지 알알이 박아놓는 것이다. 왜 우리에게 그토록 성찰적인 믿음이 또한 그것이 바탕이 된 실천이 절실해질 수 밖에 없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때문에 읽는 이로서는 아무래도 태도의 변화에 대해 숙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걸 위한 것이다. 이 책이 성경 해석에 중점을 두고 있으므로 어쩌면 이 책에서 더러 해석상의 오류나 표현상의 잘못을 잡아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에 천착하는 것은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소한 잘못으로 무시하기엔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뜻이 너무도 당위적이고 신앙인이라면 더욱 절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기독교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 이들에겐 오래 만에 해갈을 하는 듯 한 기분을 느길 수 있을 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주일날 주보 대신 이 책을 돌리고픈 마음이다. 부디 이 책을 읽어서라도 우리가 정말 힘써야 하는 신앙의 모습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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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웃긴 사진관 - 아잔 브람 인생 축복 에세이
아잔 브람 지음, 각산 엮음 / 김영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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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저희 사진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들어가시기 전에 나중에 있을 오해를 미리 막기 위하여 먼저 알려드릴 말씀이 있는데... 네? 아! 소문을 듣고 오셨다구요. 그럼, 여기가 어떤 사진관인지 잘 아시겠군요. 다행입니다. 사실 잘 모르시고 오시는 분들이 꽤 계셔서 저희도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거든요. 여기는 사진을 찍는 곳이 아니라 보여드리는 곳인데 자꾸만 이런 저런 사진을 찍겠다고 찾아오셔서 저희도 꽤 난감한 처지라서요. 물론 설립자에게 저희도 몇 번이나 건의를 했었죠. 제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사진관이라는 이름은 바꾸자고요. 하지만 안된대요. 사진관이라는 이름 자체에 중요한 뜻이 담겨있다나 뭐라나. 그렇게 물으셔도 안타깝지만 저 역시 그 담긴 뜻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대답해 드릴 수가 없네요. 원래 스님이라서 그런지 그 속뜻을 여간 헤아리기가 쉽지 않아요. 어떤 땐 그 왜 있잖아요? 염화시중을 내가 직접 재현하고 있는 것 같다니까요. 아, 이런 저도 모르게 손님께 그만 실례를 하고 말았군요. 제가 그동안 좀 쌓인 게 있어서 계기만 있으면 이렇게 튀어나온다니까요. 그래도 손님께 넋두리를 하면 안되는 것인데 정말 죄송합니다.

 

 네? 설립자 이름요? 아잔 브람이라고 해요. 맞아요, 외국인이죠. 원래는 영국에서 살았다고 하더라구요. 역시나 놀라시는군요. 다들 그러시더라구요. 외국인인데 스님이라고? 흔하지 않는 케이스이긴 하죠. 염불이나 제대로 외우기는 하는 건가 라고 말하는 손님도 계시고. 그래도 호주 최초로 절도 세웠다고 하니 그렇게 능력이 없는 건 아닌가 봐요. 네. 호주에 사시지만 자주 이리로 오십니다. 오셔서는 이런 저런 좋은 말씀들을 들려주고 가시고는 하지요. 멀쩡하게 대학까지 다 나와서 그 때까지의 삶에 진력이 났는지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3년간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결국 안착하게 된 것이 불교였다고 해요. 자기 딴에는 17세에 학교에서 우연히 불교 서적을 읽고 바로 자신이 불교도가 될 운명이란 걸 알았다고 하지만. 뭐 그런 말은 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제가 6살 때 우연히 제가 찍힌 사진 앨범을 보다가 여기서 일할 운명이라고 일찌감치 깨달았다면 믿으시겠어요? 뭐라구요? 손님은 7살 때 저와 데이트 할 운명이란 걸 알았다구요. 한 술 더 뜨시는군요. 불행하게도 업무 중에 사교적인 행위는 일체 금지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흑심을 억누르기 위해서라도 얼른 저의 본직에 충실해야겠군요.

 

 제가 업무 중 누적된 불만으로 좀 비난조로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 사진관은 제법 내실 있다고 자부합니다. 왜 그런 사람 있잖아요? 능력과 성격이 따로 노는 사람. 사람은 좀 꽉 막혀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사람 마음 달래주는 실력 하나만큼은 참 뛰어나요. 그러니까 저도 늘 툴툴거리면서 아직도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죠. 사표 던지러 갈 때는 일도 양단의 굳은 각오로 가는데 그 앞에서만 서면 왜 그렇게 속절없이 허물어지는 것인지 원.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요. 아무튼 제가 늘 경험한 것이니까 믿으셔도 돼요. 어루고 달래는 능력만큼은 탁월하다는 것을. 입소문을 듣고 이 사진관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지 않겠어요?

 

 들어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안엔 모두 38장의 사진이 있어요. 아마 지금 당신의 마음이 어떤가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 다 다를거에요. 어떤 사진이든 당신 눈에 들어온 사진이 있으면 그 앞에 가서 가만히 서 계시면 되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래요 명상을 하듯이 말이죠. 그런 상태에서 귀를 기울여 보세요. 그럼 사진에서 아잔 브람의 목소리가 가만히 들려올 거에요. 저희 사진관은 그런 사진관입니다. 뭐 정확히 말씀은 안하셨지만 제가 추측해 보건대 아마 사진 앨범 같은 것에서 영감을 얻어 이런 사진관을 세운 게 아닐까 싶어요. 왜 그렇잖아요? 사진 앨범을 넘기다 보면 같은 사진이더라도 그 때 그 때 마음에 따라 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잖아요. 그저 재밌는 풋풋한 추억만 전해주던 사진이 슬플 때 보니 큰 위로가 되어주던 경우가 있지 않던가요? 또 어떤 사진들은 뒤늦게 그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알고 보면 그 날의 마음 상태에 좌우되는 것이거든요. 아마도 그런 경험이 이러한 모습의 사진관을 세우도록 한 게 아닐까 싶어요. 많은 분들이 이 곳을 찾아 오시는 또 하나의 이유는 편안함 때문이죠. 제가 감탄하는 설립자의 능력이기도 한데 이 사람 참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에 딱 알맞은 예화를 잘도 사진으로 담아 놓거든요. 덕분에 그가 하는 말이 더 쏙쏙 들어와요. 원래 유머가 있는 분이시라 그렇지 않아도 귀를 토끼처럼 쫑긋 세우게 되는데 말이죠. 그러니 부담 없이 둘러보세요. 38장의 사진 그 어디서든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머무르셔도 됩니다. 저희는 절대 야박하게 굴지 않습니다. 다른 데서는 손님을 왕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저희에게 손님은 신이에요. 뭐, 그런 마음으로 모시고 있다는거죠. 하하하!

 

 네? 아! 간판요? 사진관이라는 말만 있어 담백하다구요? 이런, 하하하! 아, 죄송합니다. 웃어서는 안되는 것인데. 너무 뜻밗의 말씀을 하셔서 그만. 사실 간판이 원래 그랬던 건 아니거든요. 그 앞에는 원래 다섯 자가 더 있었어요. 지난 태풍에 그만 날아가 버려서 그렇지. 그걸 여태 수리도 안하고 있었네요. 설립자께서 워낙에 느긋해야 말이죠. 아, 정식 명칭요? 원래 이 사진관의 이름은 '슬프고 웃긴 사진관'이었죠. 그렇죠? 저도 늘 이상하게 생각했다니까요. 도대체 왜 '슬프고 웃긴'이 들어간건지 도무지 모르겠다니까요. 물어봐도 뭐, 이제 그 결과정도는 예측하지 않으실까요? 염화시중. 차라리 태풍이 좋은 일을 해 준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아무튼 천천히 둘러보세요. 그럼. 데이트는 업무 끝나면 얼마든지 받아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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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07-22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을 보는 사진관, 이것도 나쁘지 않은데요
스님이 꽤 별나시네요 영국 사람인데 스님이 되고, 영국도 아닌 호주에 절을 세우다니... 마음먹는다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도 같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 마음을 어르고 달래주는 것도 잘하신다니...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죠 무엇이든 빨리빨리 흘러가는데, 이곳에서는 느긋하게 보고 있어도 괜찮군요
그 점이 참 좋네요


희선

ICE-9 2013-07-23 23:44   좋아요 0 | URL
좀 변칙을 부려봤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
봄날에 누워있는 나른한 곰처럼 느긋함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희선님의 말씀이야 말로 갓잡은 연어만큼이나 기쁘게 하는군요^ ^
 
순분 씨네 채소 가게 - 채소 장수 일과 사람 13
정지혜 지음 / 사계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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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어릴 때, 할머니는 동네 시장에 나가 좌판을 벌여놓고 채소를 파셨다. 이제는 재개발이 되어 아파트 단지가 되는 바람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집에서 한참 걸어가면 나오는 고개턱에 할머니가 매일 같이 나가서 알뜰살뜰 가꾸시던 채소밭이 있었다. 거기서 배추랑 무, 쪽파며 오이나 상추 같은 것들을 함지박 가득 담아다가 머리에 이고 오셔서는 파시는 것이었다. 사정이 있어 부모님과 떨어져 있었던 나는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는 게 싫어서 습관처럼 할머니를 밭으로 시장으로 따라 나섰다. 하루 중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그 곳들은 내게 놀이터와도 같았다.

 

 

 '순분씨네 채소가게'를 처음 보았을 때 한동안 눈길이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불현듯 그 때 시장에서 할머니 옆에 앉아서 종종 사주시는 과자나 아이스크림(대개는 '쭈쭈바'였다.)을 먹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 다리 바라보기를 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비록 좌판이었지만 '채소가게'는 그렇게 내 유년의 추억이 진하게 어려 있는 곳이다. 아직도 생생히 들려오는 듯하다. 여기저기서 흥정하는 소리. 손님 모으느라 고함치는 소리. 여름날에 늘 나를 꾸벅꾸벅 졸게 만들었던 자장가 소리와도 같았던 시장 끝 동사무소 안마당에 있는 커다란 소나무에서 맴맴 들려오는 매미소리 같은 것들이. 하여 읽었다. 그건 내게 그 유년의 기억들이 다시금 3D 입체영화로 상영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부터 알았다. 시장이 단순히 물건만 사고파는 곳만은 아니라는 걸. 할머니가 좌판을 하고 계시면 참 많은 사람들이 엉덩이를 붙였다 가곤했다. 물론 그 모두가 손님은 아니었다. 사실 채소를 사러 온 이들보다 안부나 묻고 일없이 잡담이나 나누러 온 이들이 훨씬 많았다. 거기서 귀동냥을 하고 있으면 가만히 앉아서도 마을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 있었다. 과자 먹는 것보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더 맛났다.

 그 맛 때문이었을까? 할머니께서도 채소 파는 걸 딱히 신경 쓰시지 않는 듯 했다. 그저 아는 얼굴 만나고 안부나 나누고 이런 말 저런 말 두런두런 나누시는 게 더 좋으신 것 같았다. 나는 나대로 좋았다. 들렀다 가는 어른들 때문에 별로 지루하지도 않았지만 언제나 그냥 가지 않고 내게 덕담을 해 주거나 더러 용돈도 주곤 했기 때문이다.

 

 시장이야말로 그 어느 곳 보다 진솔한 소통의 장이라는 걸 듬뿍 느꼈다. 주고받는 건 말 뿐이 아니었다. 그만큼 정 역시도 더운 김 몽글몽글 솟아오르는 양푼 가득 담긴 칼국수 마냥 오고가는 곳이었다. 그렇게 시장은 사람살이의 냄새가 숯불에 구운 갈치만큼이나 진하고 구수한 곳이었고 그건 오고가는 말과 정에 의해 더욱 멀리 멀리 퍼져나갔다. 바로 그 먹음직스런 향기에 취해 사람들은 시장으로 모여들었다.

타임머신처럼 날 유년으로 다시 데려다 준 '순분씨네 채소가게'에 나오는 시장도 그랬다. 이 책은 채소장수의 하루를 보여주지만 그보다 더 맛깔스럽게 그려내는 것은 정감 넘치고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시장의 모습이다. 꼭 흥정이 아니어도 손님과 가게 주인 사이에 일없는 잡담이 가능하며 기분 좋으면 '옛다!' 하고 푹 더 얹어주는 덤이 있다. 사람이 계산서에 찍히는 가격 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다. 오래도록 멀리서 찾아오는 단골이 어디 꼭 물건이나 가격 때문에 오는 것이던가? 그동안 쌓인 도타운 정에 이끌려 그걸 또 한 번 더 나누어 받겠다고 찾아오는 법이듯이.

 시장은 돈 냄새, 물건 냄새 보다 맞부딪히는 살 냄새가 더욱 가득한 곳이었다. '순분씨네 채소가게'는 어느 페이지를 들춰봐도 살 냄새가 한껏 느껴진다. 그 모든 자락마다 늘 얼굴을 맞대고 이빨이 드러나도록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꼭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들이다. 하기도 힘들다. 시장에서 그렇게 말을 나누고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피해 가지만 마트에서 그렇게 하면 좁은 통로에서 뭐하는 것이냐며 힐난 받기 쉽다. 시장은 사람이 가격 위에 있을 수 있지만 마트에선 절대 그렇지 못하다. 오고가는 흥정은 '삑'하는 바코드로 대체되고 '얼마입니다.' '일시불로 하실래요?' 외에는 별달리 나누는 말도 없다. 시장은 소통의 공간이지만 대형마트는 그냥 소비를 위한 공간에 불과하다. 시장은 말과 정의 나눔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 가치 또한 높일 수 있지만 대형마트에서 우리는 그저 물건 사는 단순한 소비자에 불과하다. 자판기에서 음료수 캔을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개인적으로 이 그림은 일과 사람 시리즈 첫 권인 '짜장면 더 주세요'에서 나왔던 신흥반점의 아저씨가 카메오로 나와서 더 좋았다.)


 그런 시장이 대형마트에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다니 정말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순분씨네 채소가게'에서 다시금 시장의 매력을 듬뿍 느끼게 된 지금은 더욱 그렇다. '순분씨네 채소가게'는 '일과 사람' 시리즈 중의 하나다. '일과 사람' 시리즈는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직업들이 있으며 그 직업들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나오고 있다. 그 직업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건 모든 직업이 그 나름대로 타인과 사회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모두가 그만의 고유하고도 소중한 경험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소중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대형마트에서 우리는 오로지 물건을 사는 경험만 할 뿐이지만 시장에서는 그것뿐 만이 아니라 다양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이라든지 사람과 사람이 서로 나누는 교감 등등 참으로 이런저런 풍성한 경험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물건 밖에는 없지만 시장에서는 사람을 본다. 모두가 저마다의 삶의 자리에서 함께 우리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말이다.

 시장이 없어진다는 건 그런 소중한 경험을 가져다 줄 장소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위 그림에 나오는 많은 목장갑들이 왜 우리가 시장을 보호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있다. 저 수 많은 목장갑 하나마다 깃들어 있을 사연과 추억을 생각한다면 시장이란 그야말로 이야기의 보고가 아닌가 싶다. 시장이란 그런 이야기를 듣거나 우리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곳이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이, 언젠가 미래에 문득 떠올리게 된다면 내가 정말 많은 이들과 추억을 쌓아왔구나 느껴져서 문득 누군가 아궁이에 불이라도 지핀 것처럼 마음의 아랫목이 따스해지는.

그런 시장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 목장갑의 몇 백배나 되는 이야기가 쌓일 수 있도록 아주 오랫동안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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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07-22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군요
사람과 사람이 정을 나눌 수 있었던 곳, 사라져가고 있다니 안타깝습니다
모두 없어지지 않으면 좋겠네요
사람들이 안부도 물을 수 있는 곳이라니, 그런 경험은 해 본 적이 없네요
헤르메스 님은 어렸을 때 좋은 경험하셨네요


희선

ICE-9 2013-07-23 23:46   좋아요 0 | URL
예전 어릴때 느꼈던 시장과 지금의 마트를 비교해보면 우리네 인간관계가 얼마나 삭막해져버렸는가를 단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리뷰에도 쓰려다가 빼버렸는데 요즘 아이들이 날이 갈수록 감정이 메말라가는 것도 이런 식으로 친밀한 교류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해요. 좀 더 이런 것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시장을 살려나가는 것은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
 
오직 독서뿐 - 허균에서 홍길주까지 옛사람 9인의 핵심 독서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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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나비 잡는 것을 보면 사마천의 마음을 얻을 수 있지요. 앞발은 반쯤 꿇고 뒷발은 비스듬히 들고, 손가락을 집게 모양으로 해 가지고 살금살금 다가가, 손을 잡았는가 싶었는데, 나비는 호로로 날아가 버립니다. 사방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고, 계면쩍어 씩 웃다가 장차 부끄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는, 이것이 사마천이 책을 저술할 때입니다. 

('오직 독서뿐' p. 228)

 

 정 민 작가의 새로운 책, '오직 독서뿐'을 읽다가 반가운 글을 만났다. 인용한 글이 바로 그것인데 참으로 오래만의 재회였다. 이 글은 본디 연암 박지원의 것으로 아주 오래 전 그의 문장 선집에서 첫 조우를 한 바가 있다. 그 때 이 글을 얼마나 감탄하며 읽었는지 모른다. 사마천이 책을 쓸 때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니 역시 당대의 최고 문장가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 때 부터 난 이런 문장을 쓰고 싶었다. 연암 박지원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닥치는 대로 찾아 읽기도 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내공을 내 것으로 만들기란 누구나 다 알다시피 그리 쉬운 게 아니다. 비록 그 문장은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였으나 이 글에 연암 박지원이 스며놓은 그 뜻만은 내 것으로 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읽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그 때부터 책을 벗할 때마다 드러난 문장 보다는 왜 하필이면 이렇게 표현했을까를 더 생각하게 되었다. 요 몇년 사이 리뷰를 인터넷 서점에 올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만인에게 공개된 곳이다보니 더러 내 리뷰에서 행한 해석을 두고 의문을 표해 오시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다. 굉장히 독특한 관점인데 어떻게 그렇게 읽을 수 있느냐를 비롯 그렇게 해석하는 근거는 무엇이냐는 질문도 받는다.(물론 자주는 아니고 거의 가뭄에 콩나듯 어쩌다이지만.) 그 때의 내 대답은 이미 예상하시는대로다. 작가가 하필이면 왜 이런 구성을 취했을까 혹은 왜 이런 표현을 굳이 쓴 것일까에 주로 천착하다보니 그렇게 해석하게 되었다고. 근거 역시 바로 거기에 있을 뿐 다른 건 없다고. 추리 소설을 보면 어떤 탐정들은 어떤 증거를 대할 경우 그 자체 보다는 왜 그게 하필이면 그렇게 놓여 있었는지 그 맥락을 먼저 따지는 경우가 있다. 내 리뷰 스타일이 바로 그와 비슷한데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이 연암 박지원의 이 글이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다시 음미해 보아도 여전히 좋은 문장이고 변함없이 좋은 뜻이다. '일침'에 이어 또 한 번의 옛 선조들의 좋은 글들을 모은 '오직 독서뿐'은 이렇게 엄선된 좋은 글들로 읽는 멋과 그 뜻을 음미하는 맛 모두가 좋은 책이다. 이번의 책은 주로 독서와 관련하여 조선 선비들의 글을 모았다. 그렇게 유명한 책벌레라고 소문났었던 '홍길동'의 허균, '성호사설'의 이익, '동사강목'의 안정복, '북학의'의 홍대용, 연암 박지원, 간서치 이덕무를 비롯하여 모두 9명의 내노라 하는 조선의 최고 책벌레들의 글이 여기엔 실려 있다. 책은 사람을 중심으로 그의 글들이 모여 있는 형국인데 그래서 읽노라면 저절로 저마다 다른 책에 대해 중시하는 부분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허균은 주로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흥취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이익은 그 자신 학자였던만큼 책을 통해 학문을 닦는 태도를 보다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글로는 처음 만나보는 백수 양응수는 좋은 독서에 대해 굉장히 구체적으로 알려주는데 어째 그 자신의 시행착오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듯한 느낌이 난다. 알아주는 책벌레이자 실학자이기도 한 안정복과 홍대용은 과연 그들답게 '잡서를 경계하라'나 '책 읽기의 못된 버릇'등 아주 실제적인 독서 방법들을 알려주며 박지원은 진짜 책읽기의 고수가 비법들을 들려주는 듯하며 책읽기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야말로 명실상부 책읽기의 대표자 간서치 이덕무는 그야말로 책읽기의 오타쿠만이 할 수 있는 말들을 들려준다. 이렇게 책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나, 책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데 있어서나 원칙이든 실제적 방법이든 새겨둘만한 참 좋은 말들도 많지만 이런 식으로 각 존재들의 개성적인 면모마저 드러나기에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요즘은 새삼 독서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어 좋은 독서에 대한 이런 저런 방법들을 알려주는 책이 참 많지만 진정한 책벌레였던 우리의 옛 선조들은 과연 어떻게 했는지 더하여 알아두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옛 글이지만 거기에 녹아있는 뜻은 전혀 지금 시대에도 떨어지지 않으니 보다 현명하고도 좋은 방법을 얻고자 한다면 오히려 이 책이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여겨지기도 한다. 이것은 내 실제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기도 한데, 사실 여기에 실린 글들 중 마음에 든 것은 기회 있을 때마다 다른 이들에게 들려준 적이 있었는데 호응이 꽤 좋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은 묵독 보다 낭독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원래 조선의 지식인들은 주로 글을 읽음으로써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비록 문장들이 한문을 풀이한 것이긴 해도 정 민 작가가 그 쪽도 염두에 두고 번역했음인지,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풀이를 해서 읽어도 그 맛이 나도록 썼음인지 그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소리 내어 읽는 맛이 제법 크다. 묵독하는 것보다 더 머리에 쏙쏙 잘 들어오는 것도 같고. 아무튼 낭독하기에 어울리는 책이다. 많은 이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낭독하고 그 뜻을 서로 같이 나누면 더욱 뜻깊은 독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동네 서점은 망하고 출판 시장은 계속해서 불황이다. 사람들이 책을 점점 읽지 않게 된 이유에 대해 어떤 이들은 다른 재밌는 거리가 많아서라고 한다. '오직 독서뿐'에 실려 있는 옛 선인들이 들었다면 참으로 기겁할만한 소리다. 그들이 그토록 책을 많이 읽게 된 것은 당시 별 다른 여흥거리가 없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직 독서뿐'에는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다양한 많은 말들이 나오지만 오직 한 가지만은 나오지 않는다. 그건 '왜 책을 읽는가?'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건 그들에게 불필요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책을 읽음에 있어 '왜?'라는 질문은 성립되지 않는다. 책은 그저 읽는 것이니까, 아니 읽어야만 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독서란 그들에게 필연이었다. 그러므로 읽었다. 무조건. 그것도 언제나 단정히 의복을 갖추고 바른 자세로. 아침에 일어나서는 가장 먼저 어제 읽은 것을 떠올리고 읽을 때는 그 뜻을 제대로 자기 것으로 만들 때까지 몇 번이나 암송하면서. 그렇게 읽었다. 그런 그들에게 우리는 도대체 책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묻겠지만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일단 읽어보라고. 그러면 언젠가 자연히 알게 된다고. 산이 있으니까 올라간다고 했던 한 산악인의 말과도 같이, '홍씨 맛이 나기에 홍씨라고 대답한 것 뿐이온데'라고 했던 어린 대장금의 말과도 같이 아주 단순하고도 자명하게 왜 '오직 독서뿐'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맞다. 진리는 늘 자명하다. 그 경지를 경험한 자들에게는. 그러니 '왜'라는 질문은 잠시 접어두고 그냥 닥치는 대로 읽어보는 건 어떨까? 그렇다고 그냥은 읽지말고 이 책에 실린 원칙과 방법들을 유념하면서. 그러면 자연히 알게 되리라. 독서가 왜 모든 것인지...

 

 독서는 순수한 몰입이다.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 있는 행위다. 의도를 가지고, 목적을 전제로 하는 독서로는 거둘 것이 없다. (...) 자발적 독서, 무목적의 몰입, 읽지않을 수 없어서 하는 독서만이 우리 삶을 들어올린다.  업그레이드시켜준다. (p.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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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에서 5.4운동까지 - 중국근대사 인간사랑 중국사 1
호승 지음, 박종일 옮김 / 인간사랑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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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나라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그 가장 좋은 길은 그 나라의 역사를 들여다 보는 것이다. 역사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오늘이 있기까지 어떤 경험을 겪었으며 그 와중에 어떤 것이 형성되었고 또한 무엇을 지향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까지. 역사란 단적으로 그 나라의 심층을 속속들이 살필 수 있는 나이테와도 같다. 그렇게 한 나라를 이해하기 위한 지름길인 것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으로, 전혀 다른 체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그들의 파워는 경제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미 앞으로의 세계 정세 판도가 중국을 중심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도 거세게 나오고 있는 참이다. 이러한 부상과 더불어 중국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그건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늘고 있는 중국 관련 서적의 출판 현황만 봐도 증명된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너무 많은 책의 존재는 오히려 우리의 걸음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도대체 어떤 책을 보아야 할 지 선뜻 가늠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감히 제안하건데,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의 역사를 한 번 들여다 보는 건 어떨까? 물론 그 기나긴 중국의 역사를 다 들여다보는 것은 부담이 되는 일임을 안다. 하지만 굳이 그 전부를 들여다 볼 필요는 없다. 지금의 중국을 낳은 것은 어디까지나 청 이후의 근대이므로 그 근대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했었던 현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중국학자 조너선 스펜서는 중국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된 그 시작을 청나라에서 찾고 있다. 청대 들어와서 형성되었고 정비된 모든 것이 그대로 지금 중국을 다지는 데 기틀이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할 때 우리는 흔히 '사관(史觀)'이라는 말을 듣는다. 독일의 해석학자 딜타이 이후로 역사도 사실의 기술이 아니라 하나의 해석이라는 게 널리 받아들여졌는데 사관이란 그 해석에 있어 기준이 되는 일종의 틀이라 할 수 있다. 같은 사실을 놓고서도 역사학자들이 서로 다른 견해를 표방하는 것은 가지고 있는 사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중국이 청대에 근원을 두고 있다는 조너선 스펜서와 전혀 다른 사관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현재 중국을 낳게 한 근원을 어디로 볼까? 난 그런 의문에서 전혀 다른 중국 역사를 말해줄 책을 찾고 있었고 이왕이면 조너선 스펜서와 같은 외부인의 눈이 아니라 그 내부의 눈으로 바라 본 중국을 들려주는 책을 보고 싶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게 바로 이번에 나온 '아편전쟁에서 5.4 운동까지'라는 책이었다.

 

 '아편전쟁에서 5.4 운동까지'는 호승(1918~2000)이란 사람의 책이다. 호승은 중국공산당의 핵심이론가이지만 중국사학자로 더 유명하다. 그런 그에게 '아편전쟁에서 5.4 운동까지'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중국공산당의 핵심이론가라는 그의 약력을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사관은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이다. 그런 입장에서 그는 조너선 스펜서와 같이 현대 중국의 시작을 청대에서 잡고 있는 것을 비판한다.

 

 소련의 일부 중국사 연구자들은 중국근대사의 기점을 17세기 중엽 청왕조의 건립 시까지 늘려잡고 있다. 이런 시대구분은 한편으론 서구 역사의 시대구분을 중국 역사에 무리하게 대입하는 것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중국 근대사의 주제를 중국 국내의 민족 모순에 국한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구분 방식은 비과학적이며 따라서 중국역사학계는 단연코 부정해왔다. (p.15)

 

 당시의 소련 중국사 연구자들 역시 호승처럼 마르크스 역사유물론적 입장에서 역사를 보아왔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호승의 말에서 보듯 중국역사학과 전혀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된 것은 어디까지나 외부의 눈으로 중국 역사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호승의 말은 중국 역사는 어디까지나 그 내부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그대로 내가 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나를 말해준다. 내부의 눈으로 본 중국의 역사란 또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보았을 때 중국의 역사는 어떤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는가? 일단 그것은 시작점이 다르다. 호승을 비롯한 중국 역사학자 내부의 시선들은 중국 근대사의 시작을 아편 전쟁에서 찾는다.

 

 왜일까? 이건 마르크스 역사 유물론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마르크스의 역사관에서 근대란 어디까지나 봉건이 아닌 것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어떤 생산 방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구분해왔고 거기서 봉건이란 쉽게 말하면 생산 방식이 소수의 손에 독점되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 거기서는 역사의 주체가 되는 민중이 자신의 노동으로 생산한 것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오로지 생산도구와 다를바 없는 존재가 되는데 그게 바로 봉건제도의 핵심이다. 봉건이냐 근대냐의 구분은 민중이 자기 노동을 통해 생산한 것을 전유할 수 있느냐로 구분된다. 청대에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므로 중국 근대사의 시작을 청대로 잡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아편전쟁인가? 그건 아편전쟁으로 서구 열강들이 본격적으로 중국을 침탈해 들어오면서 청대가 와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통적으로 군림하던 계급들이 와해되기 시작하면 항상 그것을 대체하는 계급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아편전쟁 이후로 중국에도 신흥계급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게 바로 서구 열강이 가져온 자본주의와 맞물리면서 생겨난 자본가계급이었다. 이는 생산의 주요 형태가 소작에서 임금으로 바뀌는 것을 뜻했고 그렇게 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즉 무산계급이 태어나는 배경이 되었다. 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출현 때문에 호승은 아편전쟁을 중국근대사의 시작으로 삼은 것이다. 그는 '아편전쟁에서 5.4 운동까지'에서 중국 근대사를 세가지 중요한 기점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그 스스로는 그것을 '혁명 고조기'라고 부르고 있다. 즉 그에게 중국 근대사란 그렇게 나타난 중요한 세 차례의 혁명 고조기를 통한 무산계급과 농민 계급의 역량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 시기인 것이다. 그렇게 세 차례의 혁명 고조기를 거쳐 무럭무럭 자라난 민중들의 역량으로 결국은 지금과 같은 사회주의를 이루게 되기까지의 과도기. 그것이 바로 호승이 바라보는 중국의 근대사다. 호승에게 있어 아직 사회주의가 도래하지 못한 중국의 근대사란 반(半)봉건, 반(半)식민의 시대다. 아직 무산계급이 여전히 자신이 생산한 것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봉건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수많은 서구 열강에 국토가 유린당하고 있으니 겉은 나라가 있으나 알맹이는 전혀 그렇지 않은 식민지의 상태라는 것이다. 진정한 중국의 현대는 오로지 그 반봉건과 반식민을 벗어난 상태에 있으니 그것이 바로 모택봉에 의해 이룩하게 되는 중국 사회주의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입장에서 그 현대로 나아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책의 내용대로 하자면 민중의 역량이 강화되었던 기점들인 세 차례의 혁명고조기는 중요한데 그렇다면 그 세 번의 혁명고조기는 과연 무엇일까?

 

 그걸 말해 본다면 이렇다. 제1차 혁명고조기는 1851년에 일어나 무려 15년간 계속된 태평천국의 난이며 제2차 혁명 고조기는 1898년 일어난 무술유신운동과 1900년에 일어난 의화단 운동 그리고 마지막 제3차 혁명고조기는 1905년의 동맹회 설립과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이다. 책은 이 세 차례의 혁명고조기에 무엇이 일어났던가를 보다 세밀하게 밝혀주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래서 '아편전쟁'에서 '5.4운동'까지 이 책은 주로 네 개의 시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 중 1부에 해당하는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운동까지의 부분은 아편전쟁이 일어난 당시의 중국 정치와 경제 상황과 그 전쟁으로 중국 내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밝혀 점차 혁명의 주요 주체가 되는 무산계급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그 역량을 강화해나가는가를 보여주는데 이 시기엔 무엇보다 태평천국을 일으킨 핵심 계층이기도 했던 농민들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다. 당시의 무산계급은 아직 역사의 주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지 못해 그 빈자리를 전통적으로 착취당하고 있던 농민 계급이 떠맡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러한 태평천국의 난으로 인해 봉건의 성격이 강했던 청 왕조는 급격히 와해되기 시작하고 내부적으로는 점점 성장하는 민중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회유책으로 외부적으로는 중국의 이권을 노리고 달려드는 열강의 강요로 체제 변화에 나서게 되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태평천국의 난으로 발아되었던 씨앗은 더 크게 성장하여 결국은 또 한 번의 농민들이 주축이 된 혁명운동인 '의화단' 흥기를 낳게 만든다. 의화단 흥기는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의 동학과 닮은 점이 눈에 띄는데 동학이 동학이란 종교가 그 바탕이 되었듯이 의화단 역시 '백련교'라는 종교가 바탕이 되었고 또한 동학혁명운동이 당시 농민에 대한 수탈과 학정으로 대변되는 봉건제도에 대한 반발과 일본에 대한 반제국주의 운동 모두가 합쳐진 것이었듯이 '의화단' 흥기 역시 두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의화단이 이토록 커다랗게 흥기할 수 있었던 것도 당시 격심해지고 있는 서구 열강에 대한 반발이 광범위하게 퍼져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많은 식민지 국가들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은 그 상황상 민족 해방 운동과 겹쳐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중국도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동학이 결국은 일본에 의해 좌절되었듯이 의화단 흥기 역시 이미 들어와있던 열강의 연합군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동학과 의화단 모두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혁명 운동이었고 거의 나라를 집어삼킬 정도로 막강한 힘을 발휘했으나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쓰러져버리고 말았는데 이로써 우리는 자발적으로 일어난 농민혁명의 한계를 보게된다. 물론 여기의 실패에는 열강의 막강한 군사력이 단단히 한몫하긴 했지만 동학의 우금치 전투에서 보듯 전략과 전술에 따른 일사분란한 대응이 없었던 것도 분명 그 대패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혁명의 역량을 결집하고 나아갈 방향을 일사분란하게 정해주는, 머리와 같은 하나의 선도적 존재의 필요성이 대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호승은 제2차 혁명 고조기에서 절실하게 느꼈던 것은 그들을 제대로 이끌어줄 선도적 조직, 즉 중국 공산당의 필요성이었다고 말한다. 제3차 혁명고조기는 바로 그와 같은 중국공산당의 형성으로 나아가게 되는 과정이다. 선도적 조직의 중요성은 상황 탓이다. 이제 중국 민중이 맞서 싸워야 할 것은 청 왕조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막강한 제국주의 세력들인 것이다. 강한 적을 상대할수록 무엇보다 중요해지는 건 적은 역량이나마 제대로 쓰여야 할 곳에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관리와 결집이다. 그래서 선도적 조직이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것이다. 그 시기 중국도 다르지 않았다. 비슷한 자각에서 중국 지식인들이 중심이된 동맹회가 1905년 결성된다. 말하자면 종국에는 중국공산당에 이르고말 그 일보라 할 수 있는 조직이 만들어진 셈이다. 그것이 나중에 가서는 결정적으로 청왕조를 무너뜨릴 신해혁명으로 이르게 된다. 결정적인 탈봉건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무려 8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을 중요한 내용만 발췌하여 이런 식으로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 주로 이 책이 어떤 내용의 책인지 알려주는데 중점을 두고 설명해 봤는데 얼마나 잘 전달되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호승의 '아편전쟁에서 5.4 운동까지'는 이런 사관 위에서 중국 근대사를 집대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방대한 분량만큼 내용은 정치와 경제를 막론하고 아주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논지가 확고한만큼 중언부언없이 말하고자 하는 맥락을 끝까지 잘 유지하고 있다. 호승이 이 책을 통하여 처음으로 주장한 세차례 혁명 고조기를 기준으로 중국 근대사를 보는 방법은 이 덕분에 중국 역사학계의 정설로 자리잡았다고 하니 그것만봐도 여기에 투영한 그의 논지가 얼마나 선명한가 하는 것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마르크스 역사 유물론적 입장이라 거기에서 비롯되는 호불호가 있을지 몰라도 중국근대사를 헤아리게 해주는데 있어 이만한 안내서는 또 없다고 생각된다. 중국근대사는 오늘날의 중국을 근본적으로 형성한만큼 중국을 알기위해서는 보아두지 않으면 안되는 영역인데 그를 위해서라면 이 책 역시도 그만큼 필독서가 아닐까 여겨진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적 역사관은 중국 사회주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도록 중국 역사를 바라보는 지배적 창구가 되어왔고 그만큼 다져진 내실과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보다 깊이 이해함에 있어서는 보다 다양한 관점들을 두루 보는 것만큼 더 좋은 것도 없다. 그러니 이런 관점의 역사도 한번쯤 보아두면 어떨까 싶다. 더구나 이 책은 굳이 그런 관점을 배제하더라도 중국 근대사에 대한 아주 상세하고도 충실한 설명을 담고 있으니 중국 근대사를 비행하는데 있어 더없이 좋은 항로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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