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 임진왜란에 관한 뼈아픈 반성의 기록 클래식 아고라 1
류성룡 지음, 장준호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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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에 관한 뼈아픈 반성의 기록

 

아르테에서 출판한 유성룡 선생의 <징비록>은 임진왜란에 관한 반성의 기록이다아르테에서는 젊은 학자들로 하여금 고전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클래식 아고라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고그 첫 번째는 <징비록>이다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요즘 제 2의 임진왜란을 경계하며 선생이 남긴 기록을 통해 무엇을 준비하고 경계해야 하는지 알리는 책이 징비록이다.

 

조선 성종시기 신숙주는 일본과의 관계를 평화적으로 유지하라고 왕에게 유언하였고조선의 사절단을 보내게 된다일본으로 가는 도중 대마도의 날씨가 나빠 배편으로 더는 나아가지 않고 머물며 돌아왔다.

 

이후 1586년 일본의 사신 다치바나 야스히로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편지를 가지고 조선에 왔다.

 

야스히로는 예조에서 베푼 연회에서 후추를 한 줌 뿌리고 악공들과 궁녀가 이를 줍자 너희 나라는 이토록 기강이 해이하니 머지않아 망할 것 같다고 한다본국으로 돌아간 야스히로는 히데요시에게 끌려가 목이 잘렸다.

 

쓰시마의 소 요시시게는 충격으로 사망하고 아들 소 요시토시는 근심에 빠졌다다행히 유력한 가문 고니시 가문은 가까웠고 고니시 유키나가(1558~1600)가 적극적으로 쓰시마를 도왔다.

 

아시카가 다카우지(1305~1358)가 1336년 교토의 무로마치 막부를 창건하고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미쓰(1358~1408)에 이르러 중국 중심의 국제 체계에 들어서게 된다무로마치 막부는 15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1537~1597)가 1573년 오다 노부나가(1534~1582)에 의해 막부가 있는 교토에서 추방당하면서 237년 만에 멸망했다전국시대 말기에 등장한 노부나가는 거의 일본을 통일할 뻔하며 오늘날에도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영웅으로 회자된다그의 심복 가운데 하나가 바로 히데요시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1582년 심복의 반역으로 횡사하자 히데요시가 경쟁 관계가 된 가신들과 지방의 강자들까지 차례로 격파한 다음 규슈까지 정복해 일본을 통일했다.

 

명의 태조 주원장(1368~1398)이 법전 형식으로 저술한 <황명조훈>의 내용 가운데 이성계는 이인임의 아들이라는 대목이 있어 조선을 이를 바로잡고자 변무사를 지속적으로 보냈다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의 바탕이 되는 <대명회전>에 이성계는 고려 왕을 네 명이나 죽이고 즉위한 자라는 대목이 발견되어 조선 왕실의 정통성을 짓밟는 상황이 벌어졌다선조에 이르러 명이 <대명회전>의 오기를 수정해주겠다는 약조를 받고 선조는 물론 조선 전국이 미친 듯 날뛰었다.

 

정여립 역모사건은 동인의 영수인 우의정 정언신(1527~1591)에게 책임을 맡김이후 정철((1536~1593)을 불러 역모의 수사를 맡아 반역이 기정사실로 전환된다.

 

선조의 건저사건 전쟁이 임박해 세자를 책봉하자서인 정철은 광해군을 천거하지만 선조는 두 번째 후궁 인빈 김씨가 생산한 사형제 중 차남인 신성군을 총애했다배필로 신립(1546~1592)의 딸을 들임공빈 김씨가 낳은 임해군은 성미가 포악하고 둘째 광해군은 세자로 적격이다.

 

건저 사건으로 정철을 위시한 서인이 밀려나고 동인이 득세하지만 동인은 분열함제대로 보복하자는 이산해 등의 북인과 조정에 인재가 없으니 보복을 최소화하자는 류성룡의 남인으로 분열한다.

 

류성룡이 군무를 담당하는 좌의정으로서 인사를 담당하는 이조판서까지 겸했다는 점이다전라좌수사의 보임은 좌의정이 병조와 협의할 사아인 데다 이조판서의 전결이 있어야 가능하다.

 

가장 안타까운 장면은 원균이다그는 가지고 있던 판옥선 100여 척과 200년 동안 모았던 관고를 불지르고 육지로 도망간다.

 

이일은 적이 다가왔다는 보고를 한 농민을 오히려 목을 베 군이 전멸하고 자신은 도망친다.

 

문경새재에 도착한 고니시는 새재를 지키는 병사가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다.

 

3군의 구로다 나가마사(1568~1623)가 좌측의 추풍령으로 가고 2군의 가토 기요마사가 우측의 죽령으로 향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문경새재에서 돌파구를 열어야 했다홀로 도망친 이일이 문경새재를 지키던 군사들과 함께 도망쳤기 때문이다.

 

1592년 4월 28, ’탄금대전투‘ 당시 신립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을 벌였다지켜야 할 제래를 포기하고 주력인 기병을 활용하기 곤란한 곳에 진을 치고 결정적인 패착을 연달아 반복했다.

 

히데요시가 임진전쟁을 일으킨 원인은?

 

히데요시가 쓰루마쓰를 이용해서 신분을 세탁하고 장차 새로운 막부의 창시자가 될 계획을 세웠지만쓰루마쓰가 죽었으니 후계 구도가 원상으로 돌아갔다히데요시의 천한 가문 출신은 끝까지 그를 괴롭혔다무엇보다 자신이 죽고 나면 칼을 뽑고도 남은 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 중 가장 두려운 존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상대적으로 젊고 건강했으며 아들들까지 많아 기회가 오면 가만있을 인물이 아니었다동쬭의 호죠를 멸망시킨 다음 중앙 지역에 있던 이에야스에게 영지를 늘려준다는 구실로 호죠의 영지로 이전하게 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는 좀더 완전한 방법으로 이에야스를 통제해야 했다임진전쟁은 히데요시가 이에야스를 제어하기 위한 방책이었던 것이다.

 

곽재우를 비롯한 의병의 활약에 일본군은 당황했다그들 개념에서 의병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곽재우가 전공을 올리자 김수는 그를 역적으로 모함한다김수박홍원균은 책임조차 추궁당하지 않으며 관직이 높아졌다.

 

이순신은 전투에 집중할 것을 주문하지만 원균은 물에 빠져 죽은 적의 목을 베기에 바빴다원균은 항상 이순신의 덕택에 공을 얻으면서도 오히려 시기하고 모함했다.

 

5월 17일 일본군은 행동에 나섰다조선 왕의 도주라는 생소한 개념은 그들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했고지도부인 상인 가문 출신의 행정전문가 고니시와 히데요시의 인척이자 무장인 가토는 수시로 알력다툼을 벌였다.

 

임진강에서 가토는 조선군을 유인하자 김명원한응인은 추격할 것을 명한다유인책인 것을 눈치챈 유극량의 만류에 신할은 그의 목을 베려한다.

 

매복에 걸려든 무수한 군사들이 임진강에 몸을 던지거나 무의미하게 전사했다.

 

또한신각은 도성 북방의 해유령에 매복하고 있다가 약탈을 마치고 돌아가던 적을 기습해 수십 명을 베었는데규모가 작지만 육전에서 최초로 거둔 승리였다그런데 신각이 받은 것은 포상이 아니라 사형이었다도주하던 김명원이 모든 죄를 신각에게 덮어 씌웠다그것을 믿은 조정에서 관리를 보내 신각을 처형했다진상을 알게 되었지만김명원에 약간의 추궁조차 없었다제정신으로는 믿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파직된 류성룡이 복권된 후 명에서 파견된 무관 임세록을 맞이했다류성룡은 명에게 원군을 요청할 생각이었지만명은 임세록을 통해 조선이 명을 배신하고 일본과 야합한 상황으로 의심했다일본에 통신사를 보낼 때 조선이 통조하지 않은데다불과 20일 만에 도성이 함락되는 등 의심받을 여지는 충분했다.

 

선조가 6월 22일 국경 의주에 닿았는데놀랍게도 훨씬 이전부터 명으로 망명할 결심을 밝혔다신하들은 경악했다. ‘왕이 국가인 당시에서 왕이 나라를 떠나는 것은 국가의 멸망과 다르지 않았다신하들이 당파를 초월해 반대했지만선조의 결심은 갈수록 굳어갔다신하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힌 선조는 왕위를 광해군에게 물려주고 명으로 가려했다.

 

그토록 망명을 원했던 선조는 안타깝게도 계속 조선의 왕으로 남아야 했다선조가 잇달아 사신을 보내 망명을 애걸했지만명의 반응은 싸늘했다.

 

히데요시는 이순신이 없어야지 서해 보급로를 확보하고 전쟁을 승리로 가져갈 수 있음을 알았다그는 가토 기요마사가 부산포로 언제 오는지 고니시를 통해 조선의 조정에 정보를 전한다.

 

이순신은 거리상 부산포로 적을 맞기가 어려웠고고니시가 비록 가토와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지만적장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이순신이 자리를 지키자 선조는 이순신을 없앨 기회로 여기 그를 삭탈관작한다.

 

원균은 다시 한번 삼도수군을 일시에 날려버린다.

 

적을 마주하기 싫었던 원균은 권율의 명령으로 어쩔수 없이 출전하여 세계 해전 사상 초유의 사태라 할 수 있는 삼도수군을 일시에 날려버린다사실상 조선 수군은 괴멸했다원균의 명을 어기고 십여 척 빼돌린 부하장수의 배가 조선 수군의 모든 것이었다.

 

히데요시는 가토를 이용한 절묘한 한수로 조선의 조정을 이용해 이순신을 제거했다이후 보여주는 명량해전에서 승리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일본군 130척이 실재와는 달리 이순신 장군이 적선을 최소화해서 보고했다고 짐작한다선조는 이미 이순신을 어떻게든 죽이려 마음을 먹었다는 것을 이순신은 짐작했고자신의 공적을 제대로 전달하면 자신의 목숨이 단축되리라 생각했다고 저자는 짐작한다.

 

근거로 명량에서 출전한 일본군 함선이 1,000여척에 이르고 실록에 등장하는 일본군 함선이 명량 앞바다를 가득 메웠다고 보아 130여 척은 제대로 된 기록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명량에서 대승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은 판옥선의 특징 때문이다원거리에서 함포 사격이 가능하고백병전을 가능한 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징비록을 읽는 동안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았던 사실을 믿기 힘들었지만실재로는 훨씬 더 비극적이고 선조를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심유경과 고니시와의 거짓 조약을 히데요시는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히데요시는 어떻게 해서든 이에야스를 출전시켜야 했기에 그가 출전하지 않으면 자신의 가문이 멸문하리란 사실을 직감했다고 여긴다.

 

결국 선조가 성을 버리고 파천하고자신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의병과 성을 버린 군주를 아무도 죽이지 않는 점등 히데요시가 이해하지 못한 사실로 이에야스는 결국 출전하지 않는다.

 

이는 결국 이에야스의 동군과 히데요시 측근으로 구성된 서군의 1600년 세키가하라 전쟁으로 에도 막부가 탄생하고 히데요시 가문은 멸문한다.

 

명 역시 요동 지역의 지배력을 공백이 있음이 밝혀지고 청이 발원하기로 이른다.

 

역설적이게도 류성룡의 <징비록>은 17세기 후반 왜관을 통해 일본에 흘러들어 출판되어 조선의 정치붕당육군수군 편재를 연구하는 교재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일본은 <징비록>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대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신경썼다숙종 때 통신사가 일본에 가서 <징비록>이 출판된 사실을 확인한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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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의 역사 - 생명의 음료, 우유로 읽는 1만 년 인류문명사
마크 쿨란스키 지음, 김정희 옮김 / 와이즈맵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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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는 어떻게 인류의 운명을 바꿔 왔는가

 

와이즈맵에서 출판한 마크 콜란스키 작가님의 <우유의 역사>는 우유가 세계사에 끼친 영향과 우유를 활용한 요리법을 담고 있어 인류 문명을 우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우유는 인류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음식이다그래서 먹거리 중에서 가장 심한 규제를 받는 품목 중 하나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우유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이다원유가 해마다 10만 톤씩 남지만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지 않다 보니 가격을 여전히 비싸고 소비자는 국내 우유를 외면하는 지경에 이르러 매년 상당량의 우유를 폐기하고 있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대두분의 학생들은 우유 급식을 통해 하루 한 통의 우유를 당연히 섭취하여야 하고우유는 반드시 먹어야 할 완전식품으로 인식되었다언제부터인지 국내에서 우유 섭취가 몸에 좋은 것은 아니라는 여론이 일어나더니 고등학생인 자녀가 우유 급식을 신청하고자 했지만반에서 우유 급식을 원하는 학생이 10%도 되지 않아 결국 우유 급식이 취소되었다.

 

          Photo by Eiliv-Sonas Aceron on Unsplash

우유가 과연 음식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던 차에 <우유의 역사>는 인간이 우유를 먹어왔던 1만 년의 역사를 조망하고 있어 많은 부분의 궁금증을 알 수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모유를 먹어야 하고그렇지 않다면 우유를 먹어야 한다는 점에서 우유는 생명의 음료로 인식된다하지만 인간이 우유를 마실 수 있는 것은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기본적으로 포유류는 유당불내증이 있는 것이 자연적이다우리는 유럽인 대부분이 우유를 마시고그들 중 유당불내증을 가지고 있는 비율이 낮아 우유와 유제품 소비를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간이 우유를 마시는 것이 이례적인 점이다.

 

우유를 마시기 위해서는 당분이 락타오스를 소화할 수 있는 락타아제가 있어야 하고 인간은 태어나면서 락타아제를 가지고 태어나지만유아기가 지나면 락타아제 생산을 중단시켜 더는 우유를 섭취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유럽인중동아프리카인도아대륙 사람의 몸에는 무언가 이상이 생겨 특정 유전자가 결핍되어 락타아제 생산이 멈추지 않아 성인이 되어서도 우유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동물의 젖을 얻기 위해 다양한 동물의 젖을 얻으려 했다인간의 젖과 가장 유사한 동물의 젖을 찾는 과정은 시행착오를 거쳤다인간이 소젖을 아이에게 먹이기 이전에 낙타늑대염소오록스산양의 젖을 거쳐 기르기 쉽고많은 양의 젖을 얻을 수 있는 동물을 소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젖을 먹는 행위는 창조 신화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그리스 창조 신화부터로마 제국의 신화몽골 제국 건설인도 식민지배와 냉전 미사일 위기까지 우유는 언제나 종교적경제적사회적영양학적 이유로 상징적인 식품인 동시에 끊임없는 분쟁의 원인이었다.

 

우유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유제품이 등장하며 우유는 상품의 원재료로 활용이 증가했다. 1929년 마침내 유럽의 기술을 습득한 미국인 보든은 앵글로-스위스 회사를 운영했고네슬레 회사와 합병을 통해 층이 분리되지 않는 균질 우유를 만들었다우유의 대량 생산 시대가 열렸다.

 

               Photo by Angelina Litvin on Unsplash

우유의 대량 생산은 공장형 낙동 산업을 일으켰다대량 생산된 우유는 가격이 낮아져 회사는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은 소로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해야 했다미국인은 더 넓은 평야를 찾아 더 많은 젖소를 키우게 되었다.

 

인간은 우유로부터 치즈버터요거트아이스크림에 이르는 유제품을 누리게 되었다세계 전역에서 우유와 유제품은 다양한 영역에서 역사의 파도를 함께 했다.

 

인류 문명사를 한 가지 주제를 통해 확인하는 과정은 언제나 흥미롭다저자는 전작인 <대구>를 통해 인류 문명사를 고찰했으며이번 저서 <우유의 역사>를 통해 요리법과 함께 방대하고 박학다식한 입담을 선보인다세계사와 문명사에 우유가 관여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우유의 역사>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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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경영하라 - 국내 최고 디지털 전략 전문가가 제안하는 인공지능 활용법
이준기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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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 디지털 전략 전문가가 제안하는 인공지능 활용법

 

인플루엔셜에서 출판한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이준기 교수님의 <AI로 경영하라>는 AI 활용법에 관한 도서이다데이터 및 AI를 통한 경영 전략을 연구하며 이 분야를 개척한 국내 최고 디지털 전략 전문가로 알려진 저자는 학교에서 빅데이터 전문 과정을 통해 빅데이터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신기술이 등장해 잠깐 주목을 받다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를 지배할 기술로 AI와 빅데이터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다인공지능에 관한 정확한 이해와 이를 산업과 경영 전략에 어떻게 활용하는지 방법을 분석하고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한 만큼 <AI로 경영하라>는 AI기 술을 활용할 방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Photo by Possessed Photography on Unsplash

AI는 지금도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스며들고 있다.

2021년 1월 네덜란드 내각은 인공지능으로 인해 내각이 총사퇴했다국세청에서 아동수당을 부정으로 지급받았다고 생각한 사람을 선별하는데, AI 알고리즘을 활용했고, AI는 알고리즘을 통해 국적을 주요한 변수로 판단한 사실이 알려지며 국민의 분노를 샀다.

 

한국에 인공지능이 가장 충격으로 다가온 사건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일 것이다저자는 알파고가 천하의 바둑 1인자 이세돌을 꺾었고 인터넷에는 인공지능에 관한 기사로 넘쳐났다.

 

인공지능 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알파고의 등장으로 대중에게 충격을 주었고, 1년도 지나기 전에 알파고 마스터로 업그레이드된 알파고는 바둑 세계 랭킹 1위인 커제 9단에 완승을 거둔다.

 

놀라운 사실은 알파고 제로는 인간의 기보를 학습한 것이 아니라 강화학습이라고 불리는 자체 학습 알고리즘으로 발전했고서버급 컴퓨터 1대에서 운용되었다는 점이다. ‘알파고 포비아라는 말이 ‘AI 포비아와 혼재되어 인공지능이 인류는 지배하는 날이 성큼 다가온 듯 넘쳐났다.

 

그런데도 AI의 특성을 파악하고 협업을 통해 인간 기술이 향상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알파고 이후 국내외 바둑기사는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맞수로 활용해 실력을 쌓을 수 있다.

 

인공지능 의사가 인간 의사를 대체할 거라는 소식도 넘쳐났지만실상은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인간 의사를 병을 진단하고 정확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Photo by Michael Dziedzic on Unsplash

인간으로 이루어진 팀인공지능 팀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팀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한 결과협업을 이룬 팀이 가장 높은 성과를 보여주는 것은 인간과 인공지능은 서로 상호보완할 점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우리 생활에 막대한 편리를 제공하겠지만이와 동시에 해결해야 할 조건도 다양하다인공지능이 알고리즘을 통해 무한한 동작을 반복하며 자기학습을 할 수 있지만 라는 질문을 통해 창의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은 부족한 점이 있다.

 

강한 인공지능의 출현에 대해서는 대중의 걱정과는 달리 전문가 집단에서는 여전히 기술이 도래할 시점이 멀다는 점과 기술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점을 토로한다.

 

인공지능 시대가 다가온 것을 분명한 사실이고우리는 문제해결 능력에 인공지능을 활용해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저자는 이에 대해 그리스 신화의 반인반마 현자인 케이론의 이름을 빌려 케이론 모델이라 부르며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 모델을 소개한다.

 

인공지능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만들어 기업의 실무진과 경영자가 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 협업 프로세스를 분석하여 인공지능이 해결하는 부분과 인간이 해결해야 하는 지점을 정확하게 디자인할 수 있어야 한다.

 

<AI로 경영하라>는 불안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이라는 모델을 소개함으로써 동전의 양면에서 인공지능의 밝은 점을 바라볼 수 있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AI로경영하라, #이준기, #인플루엔셜, #인공지능, #빅데이터,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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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 서울 1
이문열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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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재조명된 거장 이문열 작가의 대표적 풍자소설

 

알에이치코리아에서 출판한 이문열 작가님의 <오디세이아 서울>은 1992년의 대한민국을 그리고 있어 한세대 30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40년간 민음사와 함께 한국문학을 견인한 이문열 작가님이 알에이치코리아와 계약한 이후 그의 작품을 새로이 단장해 독자에게 선보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학창 시절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이기에 그의 소설은 독자에게 당시 사회를 돌아보게 했다.

 

기 소르망은 한국 사회를 드러내는 대표하는 작가로 이문열을 꼽는다이번 작품을 읽으며 한국의 정치 상황이 30년이 지나도 크게 바뀌지 않았으며경제적 위기와 주식 시장의 하락세도 지금과 비슷해 기시감을 드러낸다.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오디세이아 서울>은 고대 그리스의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차용한 작품이다풍자소설인 만큼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몽블랑 만년필이다일견 프랑스 제품처럼 다가오는 몽블랑은 독일 제품으로 판매과정에서 독일 사회를 분석하는 글로 몽블랑의 탄생과 함께 이야기는 시작된다.

 

프랑스 공항의 면세점 유리 진열장에 놓인 몽블랑은 한국에서 온 골프 일행 중 한 명인 김왕홍 씨의 주머니에 담겨 한국으로 떠난다.

 

이야기는 몽블랑이 느끼는 김왕홍 씨 일가를 통한 한국 사회를 바라본 이야기다소설의 배경이 1992년이다 보니 이때는 3김 시대의 가장 치열한 정치 지형이 완성돼 대통령 선거전에 온 나라에 매몰되었다김영상김대중 후보의 선거는 지역 갈등을 일으켰고양당은 원수처럼 지냈으며 경제계 후보로 정주영 후보가 나왔던 때이다.

 

김왕홍 씨와 그의 친구들은 사업가공무원이다그는 면직물 사업으로 부를 일구었고가족은 아내와 아들딸이 있다아내인 한 여사는 우수한 여고를 졸업했지만대학을 나오지 않아 그녀의 기준에서는 좋은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으로 대한다.

 

김왕홍 씨를 둘러싼 중산층의 풍류(?)를 즐기는 모습은 당시 중산층의 허위의식을 고발하고 그에게 벌어지는 사건을 예견하게 한다자신의 정부에게 뒤통수 맞고 재산을 날리는 모습으로 이어지며가족 구성원에게 불행이 밀어닥친다.

 

이 모든 과정을 몽블랑은 김왕홍 씨의 가슴에서 차분하게 내려다본다.

 

의미 있는 점은 30년 전 대한민국 서울의 사회상이다평균 임금과 주택 가격주식 시세를 확인하는 것은 올라버린 물가를 실감하게 했고, 30년 동안 정치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3김 시대가 끝나면 한국 정치는 더 성숙한 단계에 들어설 것으로 기대했으나작가는 준엄한 목소리로 정치를 꼬집는다.

 

한국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인 이문열 작가님이 경험한 1992년과 2022년의 대한민국을 비교하며 지난 아버지 세대가 궁금한 사람에게 <오디세이아 서울>은 참고할 도서이다.

 

<오디세이아 서울> 1권을 읽게 되었는데, 2권에서는 어떤 계층을 대변하는 누구의 이야기가 등장할지 궁금하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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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 뮤지컬 《순신》, 영화 《한산》 《명량》 《노량》의 감동을 『난중일기』와 함께
이순신 지음, 장윤철 옮김 / 스타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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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산>, <명량>, <노량>의 감동을 <난중일기>와 함께

 

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나의 애를 끊나니

 

스타북스에서 출판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장윤철 님의 번역으로 새롭게 선보인 도서이다부끄럽지만 난중일기를 이번에 처음으로 읽게 되어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어떻게 준비하고 해전을 어떻게 치렀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책상에서 부산포 해전이 일어났던 바다를 매일 바라보며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다면 지금은 히라가나를 사용하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한다통영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산 견내량의 모습은 그날의 치열한 전장이 그려졌다장군의 업적은 영화와 픽션으로 꾸며도 과할 정도로 전장에서 놀라운 무공을 보여준다.

 

이순신 장군의 연대기를 알고 <난중일기>를 보면 그가 전쟁을 준비하는 데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매일의 날씨를 기록하고 일기로 남기며 전황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기록을 남겨 작성한 난중일기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장군은 화살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고지방 군사들과 작전을 통해 전쟁 수시에 박차를 가하고 전선을 방비하기 위해 비가 오는 와중에도 비를 맞으며 배에서 밤을 지새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동시에 개인적으로 부모에 효도하고 심지어 부산포에서 벌어진 고니시 유키나와의 계략에 말려 가토를 공격하지 않았다는 구실로 고문을 겪으며 백의종군할 때 어머니가 돌아가신다당대 통신 연락을 고려하면 장군을 어머니의 부고를 이틀 후 듣게 되는데돌아가신 당일에도 전쟁 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 안타깝다어머니의 상을 치르고 한양에서 남도로 내려올 때의 처참함은 그의 인간성을 돌아보게 한다.

 

궁금했던 전황을 기록한 일기는 전황이 위급해서인지 <한산>, <노량>은 기록에 남기지 못했다노량은 당연하고 한산대첩의 경우멋진 무공을 기대했지만 약간은 아쉬움이 남았다.

 

반면명량대첩은 기록을 상세히 남겼는데알려진 대로 그는 칠천량 전투로 원균에 의해 초토화된 조선 수군의 남은 열두 척으로 전쟁에 임한다이 열두 척도 경상 우수사 배설이 원균에게 퇴각 요청을 했음에도 들어주지 않자 휘하함대를 이끌고 칠천량에서 퇴각하고 남은 유일한 전력이었다말 그대로 조선 수군은 궤멸했었다.

 

선조는 이에 이순신 장군을 수군통제사로 삼고수군을 파하고 육전에 힘쓰라고 전했다장군은 이에 장계를 올려 그 유명한 말을 남긴다.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열두 척이 남아 있나이다.

나아가 죽기로 싸운다면 해볼 만하옵니다.

 

전선의 수는 비록 작지만

신이 죽지 않는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옵니다!

 

명량대첩의 치열한 전황을 살펴보자.

 

조선 수군 열두 척과 왜군 130여 척의 대립은 사실상 규모의 싸움이 되지 않는다사실상 초반에서 초중반까지는 이순신 장군의 대장선 홀로 적군과 싸운다다른 부장 선은 회피할 계책을 강구해 2마장 밖으로 나가 있었다대장선은 노를 급히 저어 돌진하며 지자포현자포 등 각종 총통을 쏘아 적선의 접근을 막았다.

 

뱃머리를 돌리며 빗발치듯이 포를 쏘아 세 배에 이르는 적을 섬멸했으며항복한 왜인 준사는 안골포 진지의 적장 마다시를 지목해 장군은 마다시를 잡아 그를 토막을 내어 자르게 하니 적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적선 31척이 부서지자 적선들은 피하여 퇴각하고 다시 접근하지 못했다.

 

이순신 장군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다른 나라의 해전을 참고해봐도 알 수 있다물론 세계 해군학교에서 세계4대 해전과 도고 제독이 이순신 장군을 존경했다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는 말이거니와 일본의 해군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인 발언이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순신 장군의 인간성다른 장군과의 친화성전장에서는 상황 판단 능력뛰어난 전공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올해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영화 <한산>과 <노량>이 상영된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통해 장군의 마음을 느껴보자.

 

이순신이 없었다면 전쟁에 패했을 것이고 류성룡이 업었다면 나라가 망했을 것이다.”라는 말처럼 이순신이 직접 쓴 <난중일기>, 서해 류성룡이 쓴 <징비록>을 통해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치욕의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7)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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