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일 침대맡 미술관 - 누워서 보는 루브르 1일 1작품
기무라 다이지 지음, 김윤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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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보는 루브르 11작품

 

한국경제신문에서 출판한 기무라 다이지 님의 <63일 침대맡 미술관>은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오늘 시기적절한 책이다.

 

전 세계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아가는 미술관은 파리의 루브르 미술관이다. 각종 미술품을 보관하고 있는 루브르는 6,000점 이상의 수많은 회화 작품을 보관하고 있는데, 이 책은 루브르에 소재하는 회화작품 중 1400년에서 1900년까지 르네상스 미술에서 인상파 전인 낭만주의, 신고전주의 시대의 주요 회화작품을 나라별 주제별로 정리해서 서양 미술의 흐름을 잘 파악하도록 한다.

 

저자인 기무라 다이지는 최근 한국에서 번역돼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비즈니스 엘리트를 위한 서양미술사>, <하루 5, 명화를 읽는 시간>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은 무엇보다 미술 작품을 주제에 맞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는 점이다.

 

"미술은 보는 것,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읽고 이해하는 것"이라는 그의 소신이 흥미롭다.

 

나는 언제 어디서나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서양 회화는 종교화에서 발전했고, 특히 19세기 이전에는 역사화를 정점을 한 장르의 히에라르키(조직, 계급 체계)가 존재했기 때문에 회화는 주로 종교적인 가르침이나 신화, 그리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목적으로 그려졌다. (p.5)

 

서양 미술사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미술 작품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닌 유럽의 역사를 아는 일이며, 그 다양성을 접하는 일이고, 그리스도교가 서양 문명에 끼친 영향을 아는 일이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다.

이 책에서는 각 국가의 시대, 그리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 중에서 루브르가 자랑하는 귀중한 보물을 선별해 보았다. (p. 12)

 

 

루브르 박물관에 대해 알아보자.

 

파리의 발상지인 시테섬에는 왕궁도 센강의 한 가운데 있었다. 프랑스의 존엄왕 필리프 2세가 마을을 방어하기 위해 1190년부터 성벽을 쌓기 시작했다. (p.24)

 

성벽과 방어를 위한 요새를 건축했는데 그것이 바로 루브르였다. 백년전쟁 후, 프랑수와 1(재위 1515~1547)가 루브르 성을 정식 왕궁으로 사용하기로 해 대대적인 재건축이 이루어졌다. 프랑수아 1세는 이탈리아 회화를 무척 마음에 들어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라파엘로 산치오, 그리고 피렌체파와 베네치아파의 그림을 수집했다.

 

프랑수아 1세의 집권을 기점으로 유럽 미술의 주도하는 나라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바뀌게 된다.

 

루브르는 루이 14(재위 1643~1715)가 베르사유를 새로운 왕궁으로 정하게 되어 왕궁의 역할을 마치게 된다.

 

계몽주의 시대인 18세기가 되자 유럽에서는 미술품의 일반 공개를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루브르의 미술관화가 현실이 된 것은 구체제 이후의 일이다.

 

오늘날 루브르는 수많은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 막대한 물량에 압도되기 쉽다. 관람할 경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계산하고 천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전에 찾아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그 작품을 중심으로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이드를 신청하는 것도 좋지만, 여유 있게 감상을 원하면 음성가이드도 효과적이다. 한가지 요령은 음성가이드가 다른 미술관과 달리 일본의 게임기 형식이라 학생이나 청소년이 있으면 훨씬 조작을 잘한다는 점이다.

 

루브르의 미술 작품만 제대로 감상해도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서양 미술사를 발전시킨 이탈리아를 알아보자.

 

저자는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이탈리아 화가에서 시작한다.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의 밑바탕이 되고, 르네상스를 꽃피운 나라다.

313, 밀라노칙령으로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후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열되었고, 476년 남하해 온 게르만 민족에 의해 서로마제국이 멸망했다.

 

그리스도교는 우상숭배를 금지해 종교미술로 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문맹인 유럽인들에게 효과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전달할 목적으로 종교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15세기 메디치가의 피렌체를 중심으로 다시 문예 부흥 운동이 일어난다. 르네상스 대표하는 3대 거장으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라파엘로 산치오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흥미롭다.

 

그중 라파엘로의 양식은 이후 서양 회화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피렌체와 더불어 베네치아 회화를 대표하는 베첼리오 티치아노, 틴토레토, 파올로 베로네세의 작품은 감각적으로 호소하는 색감이 인상적이다.

 

바로크 미술을 이끈 화가는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1571~1610)이다. 카라바조의 혁신적인 예술운동은 유럽 각지로 퍼져 나갔고 추종자를 양성했다.

 

우리가 유럽 여행을 다녀오면 기념품을 사고 싶듯 18세기 영국의 귀족도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기념하기 위해 카날레토의 그림을 구입했다.

 

이탈리아의 회화는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를 3대 거점으로 예술의 중심지로 번성하다 19세기 이후 프랑스 파리가 예술의 도시가 되었다.

 

 

프랑스 회화

 

니콜라 푸생(1594~1665)은 로마에서 활동하며 프랑스 미술의 규범으로 알려졌다. 1715년 루이 14세가 서거하자 '왕의 시대'는 끝나고 '귀족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건축이나 회화, 실내장식 또한 그러한 궁정 사람들의 취향에 맞춰 발달했다. 여성적인 기호를 가진 그들을 위한 회화는 색채가 아름답고 연애 지상주의적인 동향으로 변화했는데 이것이 바로 '로코코 회화'의 특징이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미술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로코코 회화를 대신해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를 시작으로 신고전주의가 시작되었다. 로코코 회화에서 '감성'으로 기울었던 미술이 다시 '이성'의 시대로 돌아온 것이다.

 

루브르에 전신 중인 프랑스 회화에서 인상적인 작품은 테오도르 제리코 (1791~1824),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는 색채를 중시하는 낭만파 화가의 작품이다.

 

이후 세계 미술을 주도하는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의 작품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따로 전시하고 있다. 저자는 오르세 미술관의 인상파 화가를 소개하는 작품도 흥미로울 거로 생각한다.

 

하루 한 작품씩 63일 동안 루브르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이해하고 서양 미술의 흐름을 알아간다는 점에서 유럽 여행을 앞둔 사람에게 이 책은 무엇보다 흥미로울 것이다.

 

루브르에서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에 담긴 의미를 알고 루브르를 방문하면 훨씬 더 많은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63일미술관 #기무라다이지 #김윤경 #한국경제신물 #루브르 #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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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교토에게 - 일본유학 에피소드
김희정 지음 / 프로방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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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 에피소드

 

프로방스에서 출판한 김희정 님의 <다시 교토에게>는 저자가 일본 교토에서 26개월 동안 유학하며 남긴 교토 여행 에세이이다. 현재 농림축산식품부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여행을 주제로 블로그와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다.

 

교토는 에도막부 이전에 오랜 시간 일본의 수도였기에 많은 문화재와 전통적인 역사 도시로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오는 곳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떠난 유학길이라 더 걱정되었을 것 같다. 부인은 직장에서 휴가를 낼 수 없어 아버지와 아들이 떠난 유학길이다.

 

문제는 아이가 학교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가 관건이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낯선 언어와 새로운 학교 친구에 초반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용기를 내어 아이와 함께 수업을 받고 통역을 해주며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도록 도와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제는 일본어를 더 잘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다. 편의점에서 직원과 능숙하게 일본어를 소통하고 아버지에게 필요한 부분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니 언어를 위한 유학은 확실히 어린 나이에 떠나야 더 잘 배우는 것 같다.

 

저자가 다니게 된 대학원은 도시샤 대학원이다. 우리에겐 윤동주, 정지용 시인이 다닌 학교로 잘 알려져 있고 지금도 그들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한국 관광객이 있는 전통 있는 학교이다.

 

교토에서 벌어지는 생활상은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 직장에서 휴대폰을 꺼내지 않는 모습, 식당에서 손님이 주문할 때까지 다소곳하게 기다리는 모습, 특정한 요일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리는 것처럼 우리와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다.

 

일본에서 집을 구할 때는 초기에 많은 돈이 들어간다. 매달 내는 월세(야칭) 이외에도 보증금(시키킹), 사례금(레이킹) 등 가짓수도 많다. 그중에서 보증금은 우리나라와 임대계약이 끝날 때 찾는 돈으로 꽤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게 된다. (p.35)

 

유학을 준비하는 위해 외국어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당시 서울의 호텔에서 만난 시타나카 상이 일본으로 유학을 온다는 말을 듣고 직접 교토까지 찾아와 보증인이 되어주었다.

 

교토에서 생활하는 동안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친해지게 된다. 그들과 교류하며 독도 문제와 위안부 문제와 같이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문제는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고 생활하려 한다. 가끔 일본인의 생각에 자리 잡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내용을 보면 황당하기도 하고, 일본인은 정말 왜 그런지 모르겠다. 외국에 나가면 더 애국자가 된다고 저자는 평소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문제지만 일본인에게 더 객관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독도와 역사 문제에 더 많이 공부해야 함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여행기에서 교토를 벗어나 오키나와현의 미야코지마와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데이트한다의 가모강과 언어의 정원의 신주큐코엔의 촬영지를 소개한다. 도쿄의 야경을 바라볼 수 있는 도쿄 도청 전망대, 롯본기 힐즈 전망대, 도쿄 스카이트리 전망대에서 선보이는 야경도 아름답다.

 

일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늘 가슴 한구석이 답답하다. 가까운 이웃 나라지만, 현재 한일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얼어붙어 있다. 일본 여행을 가지 못하기에 저자의 교토 여행기는 여행에 대한 대리만족을 가지게 한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자녀와 26개월 동안 유학 생활을 성공리에 마치고 귀국한 저자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이가 일본 학교에서 이루어낸 성과는 평생 지속하는 경험이 될 거로 생각한다.

 

일본유학을 생각하거나 워킹홀리데이를 생각하는 사람은 이 책을 통해 부동산을 계약하는 법과 유학에 관한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다시교토에게 #김희정 #프로방스 #일본유학 #교토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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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시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5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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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 스토리텔링, 모방, 비극, 에피소드, 카타르시스 개념의 탄생

마음에 각인되는 완벽한 이야기 구성의 기술

 

현대지성클래식의 믿고 보는 옮긴이 박문재 님의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을 읽고 예상과는 달랐다. 최근에 읽었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속 핵심소재가 되는 책이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2>이다. ‘시학 2희극을 다루고 있고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수도원의 한 수도사는 시학 2권이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인간의 마음을 흩트리는 웃음을 유발해 없어져야 할 책으로 등장한다.

 

시학일리아스형식으로 구성된 비극을 주제로 한 책이라고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은 생각과는 다르게 학문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한마디로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다루는 글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 역량은 측정하기 힘들 정도다.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학문 중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루는 분야는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심리학,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미학, 동물학, 식물학, 자연학, 철학사, 정치사이고 이 모든 학문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수립했다.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인 플라톤과 함께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위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84년에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방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니코마코스는 왕의 주치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릴 때 죽었다. 17세 때 어머니마저 여의자 후견인 프록세노스는 스승 플라톤이 있던 아테네의 아카데메이아로 그를 보냈고, 그는 거기에서 20년간 머물렀다. (책날개 중)

 

기원전 347년 플라톤이 죽자 아카데메이아를 플라톤의 조카 스페우시포스에게 맡기고, 소아시아 아소스의 왕에게 간다.

 

기원전 342년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의 초청으로 훗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된 왕세자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필리포스 2세는 그리스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을 불에 태워 없애버렸다. 왕은 아리스토텔레스를 모시기 위해 그의 고향을 새로이 건설해 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드로와 더불어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우스 왕조를 여는 프톨레마이우스도 가르쳤다. 그의 주요 저작은 다시 아테네로 돌아온 기원전 335년에 쓰였기에 제자를 가르치지 않고 저작에 몰두했으면 더 많은 학문 분야를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은 당시 시인의 본능에 따라 쓰고 대중이 재미로 즐기던 비극과 서사시를 하나의 철학이자 학문으로 끌어올렸다. 흥행하고 살아남는 이야기 및 서사에 담긴 비극-정화-즐거움코드는 지금도 여전히 인기 있는 구성 방식이다.

 

유럽 여행의 그리스 유적지에는 대규모 원형극장이 아직 남아있는 곳이 많다. 당대 패권 국가인 아테네 시민은 일과를 마치고 저녁 시간이 되면 극장에 모여 횃불 아래 경연을 펼치는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비극은 양념을 친 온갖 언어를 곳곳에 배치해, 낭송이 아니라 배우의 연기를 통해, 훌륭하고 위대한 하나의 완결된 사건을 모방하여 연민과 공포를 느기게 함으로써 그 감정의 변화(카타르시스)를 이루어내는 방식이다. (p.26)

 

마치 오늘날 일과를 마치고 티비 드라마를 보며 시청률과 인기순으로 연말 시상식을 하듯 그리스 희극, 비극 시인 역시 청중에게 감동을 주었다.

 

지금 현재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펜트하우스그리스 로마 신화오레스테이아를 빌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 등장하는 플롯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은 여전히 놀라운 사실이다.

 

시를 만들어가는데 모방으로서의 시와 모방 수단, 방식, 대상이 소개한다.

플롯의 필연성과 개연성과 플롯의 요소가 반전, 인지, 수난으로 이루어진 사실은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주인공을 생각하면 쉽사리 이해할 수 있다.

 

플롯의 목표는 공포와 연민이다. 공포와 연민은 시각적 요소에서 생길 수도 있지만, 사건의 구성인 플롯 자체에서도 발생한다. 플롯 자체에서 생기는 법이 더 낫고, 훌륭한 시인들은 이 방법을 사용한다. (p.50)

 

연민은 사람이 부당하게 대접받는 모습을 볼 때 생기고, 공포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불행해지는 모습을 보며 생긴다. , 연민은 부당한 불행과 관련되고, 공포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악한 자의 불행은 연민도 공포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훌륭한 각주이다.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내용을 소개하고 있어, 그리스 비극과 고전을 좋아하는 사람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하고 싶은 점은 하마르티아. 실수나 결함으로 번역한 하마르티아실수, 결함, 를 의미하지만 주로 실수착각정도로 잘못한 경우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성격상의 결함도 도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경우에는 하마르티아에 넣어도 된다.

 

하마르티아를 가진 위인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이다. 최종훈 님의 <부자의 역사>는 역사상 가장 부자들의 하마르티아를 극복하는 것을 주제로 부자를 살펴본다.

 

훌륭한 플롯은 <오디세이아>처럼 이중적 플롯을 전개해 나가다가 고귀한 등장인물과 악한 등장인물이 서로 정반대의 결말을 맞는 플롯이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관객의 약점 때문이고, 시인은 관객이 원하는 대로 작품을 쓰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은 언제부터 읽고 싶었던 분야의 책인데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을 통해 더욱 그런 마음이 커져만 갔다.

 

비극은 각각의 목적을 이루어내는 것과 관련해 서사시보다 우월하다. 따라서 비극은 자기 목적을 더 효과적으로 달성한다는 점에서 서사시보다 분명히 더 우월하다. (p.116)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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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거울 - 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
유성애 지음 / 미진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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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

 

미진사에서 출판한 유성애 님의 <철학자의 거울>은 특히 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을 담고 있다.

 

저자인 유성애 님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고, 15년째 공부모임을 이어오며 예술 관련 주제를 공부 중이다. <해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을 집필했고 예술과 관련한 다수의 논문을 썼으며, 문신저술상, 한국조각평론상을 수상했다. (책날개 중)

 

저자는 회화에서 철학자를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어느 시대에 철학자를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지 확인한 후 바로크 시대에 주목한다.

 

철학과 철학자는 무엇을 뜻하는가? 어원으로 찾아보면 철학Philosophy은 사랑함philos과 지혜sophia가 합쳐진 말이다. 철학은 잘 정리된 개념 체계를 뜻하지 않는다. 지혜의 사랑은 활동이다.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인간이다. (17)

 

철학자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바로크 시대에 철학자를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크 시대(17세기)는 르네상스 시대와 종교개혁 시기를 지나 기존의 지식을 독점하던 계층에서 더 넓은 계층으로 지식의 확장이 일어나던 시기이다. 예술가들 역시 기존의 주문을 받아 생산하던 생산자 역할에서 자의식이 싹트고 스스로 예술 활동을 시작한 시기이다. 음악으로 치면 귀족의 주문에 곡을 만들었던 모차르트에서 예술가의 독립성을 찾아간 베토벤의 시기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지식이 보편성이 가져온 다른 영향은 철학자에 관한 대중의 인식이 변했다는 점이다. 철학자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바티칸성당 벽화에 그려진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다. 벽화에는 고대 그리스의 걸출한 철학자들이 모두 등장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은 탄탄하고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크 시대 철학자를 가장 잘 그려낸 스페인 화가 후세페 데 리베라는 철학자를 연작으로 그려내지만, 그가 그린 철학자는 정돈되지 않은 얼굴과 가진 것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누더기 철학자의 모습이다. 철학자의 위상이 얼마나 변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리베라는 세상의 근본 원리를 원자에서 찾으려 했던 웃음의 철학자로 알려진 데모크리토스와 만물의 근원을 불로 꼽았던 우는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를 그렸다.

 

철학자가 과거의 지위를 잃어버린 건 16세기에 두드러진다. 중세의 철학자는 기독교 신학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철학은 신존재 증명, 신학 논쟁의 중심 학문으로 중요하게 다뤄졌다. 궁정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철학자는 궁정의 지원으로 연구와 교육을 이어갔다. 16세기 말부터 철학자와 궁정의 관계는 단절되기 시작했다. (51)

 

철학자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고립되어 갔다. 대항해 시대로 영토와 부가 가져다주는 열망을 맛본 유럽의 왕은 도덕적 관점을 주목하는 철학자의 간언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욕심을 더욱 내어야 했다.

 

견유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는 컵을 가지고 호숫가에서 물을 마시는 순간 옆의 소년이 컵이 없이 물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컵을 던져버린다. 스스로 컵을 버림은 과거 자신과의 단호한 결별을 뜻한다.

 

 

죽음은 화가가 즐겨 다루는 주제다.

 

바로크 시대 미술 작품에서 철학자와 일반인의 죽음을 그린 작품을 볼 수 있는데 죽음은 인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마지막 공부이다. 17세기 회화에서 죽음은 해골을 드러내고 모래시계, 다 타버린 초, 시들어진 꽃으로 표현한다. 마트에서 받은 영수증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바래지듯이 인간이 가진 의식도 서서히 사라진다.

 

철학자의 죽음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그림은 자크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이다. 이는 죽음 이후의 진실에 대한 철학자의 확신을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이다. 그림 속 소크라테스를 주목하는 청년들의 존재는 그의 사상이 제자인 플라톤으로 인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사망 당시 병으로 집에 누워있어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도 다비드가 플라톤의 모습을 그림 속에 삽입한 이유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바탕으로 플라톤이 구성하고 전해지는 이야기 때문이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죽어가는 세네카>(1612-1615)도 주목할 작품이다. 세네카는 스토아학파 대표 철학자이자 고대 로마 정치가다. 그는 반역 사건에 연루되어 네로 황제에게 자살을 명받아 죽음을 택했다. 죽는 과정은 매우 끔찍했다. 독약을 마시고 혈관을 잘라도 숨이 붙어 있었고, 끝내 증기탕에서 질식사했다고 전해진다. (154)

 

그의 죽음은 외부 힘에 짓눌린 비참한 삶보다 스스로 인생을 종결한 권리를 행사하고 신념에 따르는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의 죽음과는 의미가 다르다.

 

손에 쥔 비눗방울편에선 인생의 무상함을 나타내는 소재로 비눗방울을 소개한다. 인간이 권력을 추구하는 모습과 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아등바등하는 모습도 비눗방울처럼 터지기 쉬운 것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바로크 시대 회화에 드러나는 철학자를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신나는 시간이다. <철학자의 거울>에 소개되는 철학자와 작품의 도록을 부록 편에 별도로 수록하고 있어 잘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철학, 미술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철학자의 거울>을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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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탄생 돈의 현재 돈의 미래 - 돈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제이컵 골드스타인 지음, 장진영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돈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는가

 

부의 대이동 시대, 돈의 과거와 현재를 알면 새로운 기회가 보인다!”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화폐는 다름 아닌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 광풍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화폐는 탐욕과 교훈을 담고 있는 한 편의 드라마이다. 실체도 확인할 수 없는 비트코인의 감정가가 최고치를 경신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지폐를 사용한 적이 잘 기억나지 않는 모습에 흠칫 놀라게 된다.

 

우리는 실체가 없는 통장 계좌의 숫자를 가치를 교환하는 돈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럼 돈은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학창 시절 물물 교환의 시작되어 실물화폐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이 책 <돈의 탄생 돈의 현재 돈의 미래>를 읽는 순간, 인간의 역사에서 물물 교환의 증거로서 화폐를 발생했다는 증거는 확인되지 않는 말에 그럼 돈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저자인 제이컵 골드스타인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컴럼비아대학교 저널리즘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미국 공영라디오 NPR에서 경제 분야 팟캐스트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한 <플래닛 머니> Planet Money를 진행하고 있다. (책날개 중)

 

돈이 실존하지 않는 허구를 주장하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었을 때의 충격이 이 책은 더욱 상세하게 설명한다. 돈은 가짜다. 돈은 공유된 허구이고 기본적으로 영구불변한 사회성을 띤다. 바로 이 사회성이 돈을 돈답게 만든다. 다시 말해 돈은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허구이기에 돈일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국 통화를 시장에 막대한 양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돈의 기원은 무엇인가?

 

화폐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한 곳은 고대 그리스이다. 수백 개의 폴리스는 각각 시민 의회를 가지고 있었다. 폴리스 주민인 폴라이트 polite들은 자신의 교환 활동을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단이 필요했다. 그들에게 화폐의 필요성이 나타난 것이다.

 

오늘날 터키 지역에 해당하는 리디아인은 기원전 600년경 금과 은이 섞인 광물을 대량으로 채굴했다. ‘일렉트럼’ electrum이라 불리는 합금의 가치를 매기기 위해 누군가 일정한 일렉트럼을 일정한 크기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이렇게 리디아인은 합금으로 주화를 발명해 냈다. 그들은 은전과 금전도 주조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주화를 사용했다. 그러나 1271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등장하는 종이가 화폐로 사용된다는 기록에 유럽인들은 믿을 수 없었다. 실상은 이랬다. 중국에서 사용된 종이는 서기 105년에 환관 채륜이라는 궁중 공방의 책임자가 발명했다. 최초의 종이가 등장하고 불교의 경전을 퍼트리기 위해 인쇄술이 등장했다. 서기 994년경, 쓰촨성의 성도 청두에서 활동한 상인이 아이디어를 냈다. 철전을 가지고 다니며 물품을 구입할 때 영수증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상인들이 종이로 된 영수증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지폐가 중국 전역에 확산되자 교역이 활성화됐고 사람들은 더욱 많은 것을 배웠고 기술을 발전시켰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직업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17세기 후반 유럽의 부자들은 금세공업자들에게 금과 은을 맡겼다. 금과 은을 자신의 금고에 보관한 금세공업자들은 수백 년 전 쓰촨성의 상인들이 그랬듯 금과 은을 맡기 사람들에게 일종의 예탁 증서를 줬다. 금세공업자들은 금과 은을 맡기지 않아도 이자와 함께 갚겠다는 약속을 하면 오늘날 은행이 하는 대출을 하기 시작했다. 금세공업자들이 난데없이 지폐를 만들어 낸 것이다. 런던의 통화량은 갑자기 증가했고 영국의 화폐는 이렇게 등장했다.

 

 

혹자는 현대 자본주의가 탄생한 곳은 1600년대 초 암스테르담이라고 말한다.

 

네덜란드인은 향신료를 얻기 위해서 배를 타고 아프리카와 오늘날의 인도네시아까지 갔다. 인도네시아 말루쿠 제도로 상선을 보낼 때 필요한 자금은 거래를 통해 마련됐다. 다수의 부자가 함께 돈을 모아서 상선을 구입했다. 상선이 성공적으로 인도네시아까지 갔다가 향신료를 가득 신고 되돌아오면, 투자자는 약간의 수익과 함께 투자금을 돌려받았다.

 

1602년 네덜란드 정부는 무역 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설립했다. 동인도 회사의 본래 이름은 페레이너흐더 오스트인디스허 콤파니Vereenigde Oostindische Compagnie이고 줄여서 ‘VOC’라 불렸다. 사람들은 돈이나 인맥이 없어도 VOC에 투자할 수 있었다. 정부는 VOC21년 동안 사업을 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발부했다. 투자자들은 투자한 후 10년이 지나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10년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상선이 출항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상선에 대한 지분을 팔기 시작했다. 암스테르담 정부는 VOC 주식을 거래하는 장소를 지정해 버렸다. 이것이 바로 세계 최초의 증권 거래소가 된다.

 

자본시장의 발전에 있어 사람의 역할은 눈에 띈다. 파스칼과 페르마의 도박에 관한 확률론이 스코틀랜드에서 살인죄를 지어 유럽을 떠돌던 존 로의 도박판에 적용하여 그가 부자가 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극적이다. 그는 파리의 유명인과 어울리는데 그중 한 명이 루이 14세 사후, 루이 15세 때 섭정을 하게 되는 오를레앙 공작이다. 오를레앙 섭정 시대 동안 존 로는 루이 14세가 남긴 부채를 없애기 위해 화폐의 발행과 채권의 통합 및 인수를 통해 프랑스의 경제를 도약하게 한다. 그의 과도한 욕심을 프랑스의 자본시장에 타격을 주기도 하지만 그의 사상은 현대 자본주의 탄생의 초석이 된다.

 

미국은 1873년 금은본위제에서 금본위제를 도입하자 물가는 20년 동안 계속 하락했다. 자신이 가진 돈으로 점점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살 수 있게 된 부자들에게 좋은 시절이었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고 갈수록 공황이 극심해지자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통화량을 늘리는 방안으로 100년 동안 시행한 금본위제가 아닌 다른 통화정책을 선택하게 된다. 이로써 세계는 금본위제도에서 벗어났다.

 

우리는 이제 비트코인이 등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누가 비트코인을 발명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의 서명이 적힌 비트코인 논문이 배포된 이후 2009년 세계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은 비트코인의 가치를 인정하고 실질적인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아니 몇 년 사이 비트코인의 가치는 0달러에서 3천억 달러까지 성장했다.

 

돈은 여러 방향으로 변할 수 있다. 현금 없는 세상은 어느새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왔다. 2007년 케냐에서는 문자 메시지로 모바일 머니를 송금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2020년을 기준으로 중국의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 알리페이의 이용자는 대략 10억 명에 이른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해가 갈수록 유통되는 지폐의 양이 세계 경제 성장률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많은 지폐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개인은 현금 없는 사회로 변화하는 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현금 대신 수표를 상용한 경험이 있고, 지폐나 주화가 없어도 은행 계좌에 찍힌 돈을 상징하는 숫자를 기반으로 다양한 실물 거래, 금융 거래를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 돈의 형태는 어떻게 변화할지 추측하는 것은 흥미롭다. 앞으로 위기가 다가오면 인간은 새로운 화폐 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우리 후손은 신사임당이 그려진 지폐를 기념품으로 생각할 날이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은 이 책을 읽는 동안 느낀 점이다.

 

경제, 화폐, 돈의 역사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돈의 탄생 돈의 현재 돈의 미래>를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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