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노인 - 나는 58년 개띠, '끝난 사람'이 아니다
이필재 지음 / 몽스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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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8년 개띠 끝난 사람이 아니다

 

몽스북에서 출판한 이필재 작가님의 <진보적 노인>은 저자가 지금까지 진보적 가치관을 고수하며 원칙주의자로 살아온 그의 삶과 철학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이필재 작가님은 58년 개띠생으로 우리나라 베이비붐을 대표하는 세대이고, 언론학을 전공해 중앙일보에서 오랜 시간 기자였고 시사잡지에서 직장생활을 했으며, 2013년 퇴직 후 언론 관련 기관, 학교에서 강의한다.

 

‘58년 개띠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조어가 될 만큼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세대다. 한국전쟁 후 베이비붐 세대의 대표였고, 이들이 청년일 때 우리나라는 농업사화에서 산업사회로 변화하는 시대였다. 이들이 은퇴를 맞이할 때는 생산가능인구가 부족할 수 있다고 했다. 은퇴 후 이들의 소비력이 국내 소비에 중요하다는 의미로 김난도 교수는 OPAL세대를 별도로 조망하기도 했다.

 

학창 시절 반공교육을 받으며, 초등학교 시절 한 반에 100여 명이 수업하던 시기라, 2부제 수업과 교육 현장에서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이들 세대의 2/3 이상이 보수적이라 알려져 있음에도, 저자는 확고한 원칙을 지키는 원칙주의자였다.

 

기자라는 직업이 촌지를 받았던 것이 관례처럼 여겨지는 시기에도 촌지를 받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켰다. 사회의 명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때로는 고교 선배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건네는 촌지도 다시 돌려준다.

 

기자라는 집단만큼 사회에서 받는 인식이 바뀐 집단도 없을 것이다. 신문이 여론을 이끌었던 시기와 민주화 운동을 불씨를 피어오르게 한 사람도 신문기자다. 어느 순간, 기레기(기자+쓰레기)에 이어 기더기(기자+구더기)라는 조어까지 생겨난 기자의 수난 시대다. 저자는 이를 기사 편집 간부들이 오너에게 종속되어 제대로 된 기사를 쓰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한국의 주류 언론이 지나치게 정파적이고 언론사주의 강력한 오너십이 작동하며 언론사주는 자본가로서 보수 기득권 세력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1995년 중앙일보 이찬삼 시카고 중앙일보 편집국장의 10회에 걸친 동토 잠행기를 연재했을 때 이를 문제 삼는다. 이찬삼 국장은 김정일 치하의 북한에 잠입해 국내 최초로 잠행 르포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 잠행이 진실이라고 주장하지만, 취재원을 보호한다는 원칙을 내세워 북한 통행증을 공개하지 않았다. 중앙일보 공정보도 위원회를 통해 이를 문제 삼았던 저자는 경제 주간지로 발령받았다.

 

그렇게 원칙을 지키면 일했던 기자 생활과 편집장을 거쳐 이제는 은퇴하고 경기도 별내로 이사한 후 저자는 아내가 하고 싶은 대학원 공부를 하는 동안 집안일을 한다. 설거지하기 위해 식기세척기를 들여놓고 건조기도 샀다. 집안의 빨래는 세탁기에 맡긴다. 한 사회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사회적 차별이 없어야 한다. 성희롱과 성차별이 만연한 남성 중심적인 조직 문화도 바꾸고 여성이 느끼는 유리 천장에 깨져야 한다.

장차 딸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남자는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한다.” 딸을 둔 남자 후배들에게 저자가 사석에서 하는 말이다.

 

책에서 저자가 인터뷰를 진행한 인물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또 다른 재미다. 이중 조관일 창의경영연구소 대표의 말은 새겨들을 만하다.

 

“85세에 독특한 노인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나이가 들면 꿈은 사라지고 목표만 남아요. 뭘 하든 세끼 밥이야 먹겠지만 사람은 살아가는 목표가 있어야 해요. 자기 의지로 태어난 건 아니지만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나의 역사를 써야죠.” (136)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하면서 죽을 때까지 현장에서 신발을 신은 채 죽기로 마음먹었다는 저자의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진보적 노인>은 평생을 언어 노동자로 살아온 사람의 인생이 녹아있는 수필집이다.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돌아본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지난 단면을 알고 싶은 사람은 <진보적 노인>을 읽어보길 바란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진보적노인 #이필재 #몽스북 #에세이 #중앙일보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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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고나가야 마사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박경수 외 감수 / 사람과나무사이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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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시리즈 네 번째 책!

 

영웅과 리더의 병든 뇌가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

 

사람과나무사이에서 출판하고 고나가야 마사아키 지은이, 서수지 님 옮긴이의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는 시리즈의 명성을 이어간다.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을 워낙 인상적으로 읽어 세계사의 흐름을 주제를 정해 서술하는 방식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번 저서 21인의 위험한 뇌도 세계사의 흐름을 주도한 영웅과 리더가 결정을 내릴 당시의 특히 뇌와 관련한 질환을 이야기한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백년전쟁을 프랑스의 승리로 이끈 잔 다르크다.

 

어느 날 홀연히 빛이 나타났다. 자기를 감싼 빛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황홀감에 사로잡혀 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천국을 다녀온 느낌을 가졌다. 이는 측두엽뇌전증을 가진 환자에게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첫 번째 증상이다. 열세 살 소녀가 프랑스를 구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고 오를레앙 전투에서 영국을 상대로 이끈 건 놀란만한 업적이다.

 

그녀가 일기토(장군끼리 일대일대결)에서 승리하고 당시 귀족이 행했던 작전 지휘를 수행한 모습은 놀랄만한 업적이다. 전장이 프랑스였다는 점과 프랑스군의 떨어진 사기를 천사의 계시를 받은 성녀가 같이 출전한다는 점이 병사의 사기를 북돋았다. 프랑스의 승리를 이끌었던 잔 다르크가 계시를 받은 모습은 후일 신경학자들은 측두엽뇌전증이라 진단한 것은 다른 면에서 흥미로운 사실이다.

 

영국군에 체포당해 이단 판결을 받고 화영을 당한 잔다르크의 죄명은 당대 여성에게 금지된 바지를 입은 죄, 남자처럼 머리를 짧게 자른 머리칼 등이었다. (31)

 

문학사에 있어 뇌전증을 앓고 가장 내밀하게 묘사한 작가는 도스토옙스키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2가지 사건은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하는 순간, 황제 니콜라이 1세가 사형을 중지하라고 한 일이다. 다른 하나는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8년 동안 하면서 겪은 체험이다.

 

1850년 그의 나이 29세에 첫 번째 발작을 일으켰다. 측두엽뇌전증은 이전 우리가 흔히 사용했던 말은 간질이다. 그는 비명을 지르고, 의식을 잃었고 팔다리에 경련이 생겼으며, 입에 거품을 물고 숨을 헐떡였다.

 

도스토옙스키는 이후 지속해서 집필을 마친 새벽 무렵에 주로 발작을 일으켰다. 측두엽뇌전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흔한 증상은 존재하지 않는 냄새를 느끼는 환취와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를 듣는 환청증상이다.

 

뇌전증은 뇌의 신경세포가 갑자기, 그리고 반복적으로 흥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질병이다. (39)

 

도스토옙스키가 황홀한 발작이 일어난 순간을 자신의 소설 작품에 생생히 묘사한 부분을 두고 뇌전증의 권위자는 대문호의 창작 능력이 빛을 발했다고 평가했다.

 

 

미국 남북전쟁의 가장 극적인 부분은 종전 시점에 북부군의 그랜트 장군이 보여준 장면이다. 그랜트 장군은 항복한 남군 장병들에게 매우 관대한 처분을 내려 미국 사회에 여러 의미에서 충격을 던졌을 뿐 아니라 미국사와 나아가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을 만드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무자비한 학살자로 유명한 그랜트 장군은 전장에 있는 동안 극심한 편두통을 앓았다. 남부의 리 장군이 보낸 종전 회담에 관한 편지를 받은 다음 날 그랜트 장군은 극심한 편두통을 앓고 난 후 회담에 나섰다. 편두통을 앓고 난 환자는 기분이 널뛰듯 오르내리는 기분 변화 증상이 나타난다.

 

회담 당일 전쟁은 끝났소. 반란군이 다시 우리 국민으로 돌아왔소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그랜트 장군의 관대한 처분은 향후 벌어질 수 있는 남부와 북부의 오랜 갈등과 반목을 봉합하는 기회가 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의학적 소견이라 전하지만, 상당히 믿을만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뇌 질환과 관련해 가장 치명적인 예시는 치매로 알려진 알츠하이머병일 것이다.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 중 하나인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의 교도서 감방 속 한쪽 벽을 차지하는 리타 헤이워스의 포스터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커진다. 포스터 속 리타 헤이워스는 마를린 먼로 이전 가장 유명한 여배우 중 한 명이었고 미국에서 알츠하이머와 연관되는 유명인이다.

 

그녀 이후 미국에서 알츠하이머를 대표하는 인물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다. 1994년 로널드 레이건이 자신이 앓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을 대중에 공개될 때 가장 놀랐던 사실은 그가 재직하는 동안 초기 증세가 나타나 경도 인지장애를 보였다는 점이다.

 

최근 신경세포를 공격하는 활성산소의 영향을 완화하는 등 푸른 생선과 레드 와인, 과일 등의 식품, 걷기 같은 과도하지 않은 유산소운동, 취미와 뇌를 자극하는 훈련, 삶의 보람을 발견하고 활력소가 되어줄 수 있는 활동으로 이를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정치, 예술, 스포츠 분야는 물론이고 고대신화 속 다양한 환자(?)들까지 등장한다. 저자는 치매, 뇌전증, 척수 질환, 수면 질환, 이상 운동 질환 등 대표적인 뇌 질환을 망라하여 자세히 설명하면서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절묘하게 녹여낸다. (6)

 

독일 제국이 자랑하는 전쟁영웅 힌덴부르크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이 된다. 그는 판단력과 책임감을 상실하여 중차대한 국가적 사안에 어리석은 결정을 반복하고, 마침내 히틀러와 나치스에게 권력을 송두리째 넘기게 된 배경에는 치매가 있었다. (14)

 

세계사를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을 맡았던 당사자의 질병이 미친 영향은 대단했다. 이 책은 그 지점을 잘 파악해 독자를 흥미롭게 한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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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의 시간 - 결국 현명한 자는 누구였을까
안석호 지음 / CRETA(크레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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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이고 개인의 삶을 뒤흔든 장벽의 운명사

장벽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막는가?

 

크레타에서 출판한 안석호 국제 분쟁 전문 기자님이 생생하게 경험한 장벽의 실체를 다루고 있는 <장벽의 시간>은 세계에서 주목할 20세기 다섯 개의 장벽을 소개하고 있다.

 

냉전의 상징베를린 장벽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이의 분리장벽, 미국의 멕시코 국경 장벽, 한반도 비무장지대에 만들어진 철책과 장벽,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장벽인 무역장벽이다. (8, 프롤로그 중)

 

다섯 개의 장벽을 어떤 계기에 의해서 누구 쌓아올렸는지 들여다보고 우리 사회에 적용할 부분을 파악하는 것은 불안이 엄습했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은 동독이 건설했다. 베를린 장벽의 생긴 원인이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인 독일을 분할 통치하고 특히 베를린은 연합국 승전국인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가 분할하는 과정이 계기가 되었다.

패전국을 분할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에서 연합국은 태평양 전쟁의 전범국인 일본을 분할하려 했고, 이 분할선이 한반도로 옮겨진 것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뼈아픈 역사다.

 

양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2차 세계대전후 소련의 공산주의를 막아야 하는 자유세계의 선봉장이 된 것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미국은 마샬 플랜을 통해 서독과 서베를린을 지원하기로 한다. 일차적인 과정은 화폐 개혁이다.

 

1948618일 어두운 밤하늘을 뚫고 11백 톤에 달하는 새로운 도이치마르크화를 싣고 3백 대 이상의 트럭이 서독의 비밀 장소로 향했다. 하루아침에 서독은 새로운 화폐를 사용하게 되었다.

 

승전국으로 가장 피해를 본 소련은 전후 배상을 톡톡히 받아내고자 했다. 독일에 전쟁 배상금으로 2백억 달러를 요구했고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나치 소유였던 기업 수백여 곳을 해체하고 수십만 대의 기계와 생산 설비를 몰수하고, 1만 킬로미터가 넘는 철도 선로까지 소련으로 가져갔다.

 

소련은 전승국으로서 얻은 국제사회 영향력을 더욱 확장하려 들었고, 루마니아와 헝가리, 유고슬라비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은 공산화했다.

 

서방 연합국은 긴장했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재무 장관 조지 마셜 국무장관이 발표한 유럽경제재건계획의 가장 선두에 서독이 자리했다. 서독에 막대한 경제 지원은 서독과 동독의 경제력의 차이를 가져왔다. 특히 서베를린의 경제 발전을 지켜본 동베를린 사람은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려 했다. 이런 물결이 차츰 심해지자 동독과 소련은 동베를린에 장벽을 설치하게 된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소련이 서베를린으로 진입하는 육로를 봉쇄한 경우이다. 미국을 필두로 하는 자유세계 진영은 항공편을 통해 서베를린 국민이 생존할 필수품을 전달했다.

 

하루 13백여 편의 수송기가 열 달 동안 수송기 178,228편의 식량과 물자, 연료 등 2326406톤을 실어 날랐다. 서베를린의 육로를 통제하면 서방 연합군이 철수할 거라는 소련의 계산은 빗나갔다.

 

흐루쇼프와 케네디의 치킨게임은 3차 대전 직전까지 간다. 케네디의 가장 큰 도박 중 하나인 쿠바의 공산정부를 전복하려는 피그만 침공 작전이 실패하고 소련은 이에 대한 분노로 핵미사일을 쿠바의 해군 기지에 설치하려 한다. 핵미사일을 실은 소련 선박은 미국 해군 함대 바로 앞까지 진군했고, 미국 B-52 전략폭격기는 소련을 즉각 공격할 핵폭탄을 싣고 공중 대기 중이었다.

 

일촉즉발 치킨게임은 소련이 핸들을 돌리며 피했다. 흐루쇼프가 쿠바 미사일 기지를 폐쇄하고 무기를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해상 봉쇄를 풀고 쿠바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때 당시 13일간의 쿠바 미사일 위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순간으로 꼽힌다.

 

미국은 소련을 경제적으로 와해시킬 작전을 진행한다. 소련의 경제가 석유가격에 기반하는 점에 착안해 사우디아라비아와 OPEC를 움직여 지속적인 유가 하락을 이끌어낸다. 이는 우리에게는 3저 호황의 기회가 되지만 1980년대를 끝으로 소련은 해체되기에 이른다. 소련의 해체로 독일을 가로막았던 장벽은 해체되었다.

 

지금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동독 출신이고 동독 출신의 정치인이 활약하고 있지만, 비율로 따지면 동서독의 격차는 여전하다. 통일된 동독 주민은 바로 서독처럼 잘 살줄 알았지만, 대기업의 위치와 경제 수준은 아직 서독에 미치지 못한다.

 

동독의 생활 수준은 이탈리아, 스페인과 비교하면 더 잘사는 것이 분명하지만 동독 주민의 비교대상은 오직 서독 주민이기에 상대적 박탈감도 여전하다.

 

 

 

이스라엘 장벽의 시작은 응축된 에너지가 불꽃에 의해 폭발하듯 생뚱맞은 드레퓌스 사건부터 출발한다. 유대인은 지난 2천 년 동안 디아스포라 이후 유대인들은 유럽과 북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 곳곳을 떠돌며 서러움과 박해를 견뎌야 했다.

 

유대인인 땅을 소유하기 힘들었고 농업에 종사할 수 없었다. 직업 선택가지 제한돼 중세시대부터 기독교인이 경멸하고 천시해온 고리대금업과 무역, 상업, 세무와 같은 직업이 유대인에게 넘겨졌다.

 

그런데 19세기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 시대가 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유대인들에게 금융과 무역을 지배해 부를 쌓아온 것이 기회가 되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우리에게 에밀 졸라를 먼저 떠오르게 하지만, 헤르츨이라는 이스라엘 국부가 이때 등장한다. 헤르츨은 드레퓌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을 확인하고 유대 민족이 피할 국가가 필요했다. 유대 국가 건설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1896년 그가 출판한 <유대 국가: 유대인 문제의 혀대적 해결 시도>는 팔레스타인을 독립국으로 넘겨달라는 시오니즘을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유대인들이 보여주는 방식은 전형적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에게 땅을 매입하고 절대 그들에게 다시 팔지 않는 방식으로 차츰 팔레스타인 지역을 장악한다.

 

벤구리온의 정치력과 바이즈만의 아세톤 화약 대략 생산법은 2차 세계대전 동안 폭탄이 부족한 연합국에게 화약 생산법을 알려주어 벨푸어 선언의 기초를 마련했고, 유대계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백작은 영국 외무장관 벨푸어에게 편지로 유대 민족국가 건설을 지지한다는 승인을 받게 된다.

 

문제는 영국이 1차 세계대전의 오스만제국을 분산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아랍권 지도자에게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지역에 아랍의 독립국 건설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랍권 지도자와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헨리 맥마흔이 밀약한 맥마흔 선언이었다.

 

이때 당시를 다룬 영화가 데이비드 린 감독의 <아라비아의 로렌스>이다. 벨푸어 선언과 맥마흔 선언에 이어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팔레스타인의 분쟁의 씨앗은 잉태되었다.

 

땅을 서서히 사들인 유대인은 빠르게 공동체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1919년에서 1923년 사이에 러시아 출신 유대인을 중심으로 약 35천 명이 이주했다. 이들은 집단농장 키부츠를 세우며 경제 공동체의 초석을 놓았다.

이후 폴란드 유대인 6만여 명 독일에서 약 165천 명이 팔레스타인으로 밀려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연합국은 승리했다. 팔레스타인 내 유대와 아랍의 문제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양측에게 그들만의 국가를 건설해주겠다고 약속한 영국은 이 문제를 유엔으로 넘겨버린다.

 

유대인은 반유대감정이 크지않고 실력자로 떠오른 미국에 막대한 자금력으로 로비 활동을 벌여 유대 국가 건설을 지지한다는 약속을 얻어낸다.

 

미국과 유엔은 팔레스타인 땅을 아랍과 유대 민족이 나눌 것을 제안했다. 팔레스타인의 44%를 아랍에, 56%를 유대에 나눠주기로 했다.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등 여러 종교에서 성지로 간주하는 예루살렘은 특별 국제 관리구역으로 지정했다.

당시 팔레스타인내 아랍 인구가 130만 명, 유대인이 약 60만 명이었고 비율로 치면 73 정도였다. 그런데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 땅의 절반 이상을 분할하게 한 것은 불합리했다. 당시 유대인이 소유한 땅은 전체 팔레스타인 땅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랍인들의 나라를 세우는 걸 돕겠다던 맥마흔 선언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유엔 결의안이 가결된 후 이스라엘은 건국했다. 벤구리온의 자경단 하가나를 근간으로 군대를 창설하고 입법기관도 조직하기 위해 서둘렀다.

 

1948년 유대인 극우조직 이르군이 예루살렘 인근의 작은 마을 데일 야신촌을 습격했다. ‘이르군조직원들은 집마다 들어가 팔레스타인 주민에게 무차별로 총격을 가했다. 순식간에 254명이 숨졌고, 아랍 주민은 이스라엘이 얼마나 무서운 나라인지 공포감을 체험했다.

 

야신촌 학살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여 뒤인 1948514일 시오니즘 지도자 하임 바이즈만은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이스라엘은 국경선을 확정하는 그린라인을 놓고 이웃 나라와 갈등을 반복하게 된다. 이른바 중동에서 일어난 이스라엘과 아랍 민족과의 중동 4차 전쟁의 서막에 올랐다.

 

결과는 모든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압도적인 우위를 나타내며 아랍 민족을 패배시켰고, 전쟁이 끝날 때마다 이스라엘 국경 내 기존의 팔레스타인 아랍 민족을 특별 구역으로 몰아넣었다.

 

하나는 요르단강 서쪽의 서안지구와 하나는 지중해와 맞닿은 가자지구이다. 이스라엘은 장벽을 세우고 서서히 아랍 민족을 고사시키는 전략에 들어간다. 이 전략은 지금도 지속적으로 시행되고 국경 장벽에 따라 하루 아침에 아랍 민족은 분할되기도 한다.

 

유대 민족의 나라 사랑은 대단하다. 2천여 년 동안 나라없는 설움을 겪은 그들은 영토 수호 의지가 남다르고, 남녀 모든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군인에 대한 존경을 보낸다. 전쟁이 날 때마다 전세계에서 이스라엘로 참전하기 위해 입국하는 유대 민족의 행렬은 그들의 영토 수호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예이다.

 

 

우리는 인간이 만든 극악의 장벽인 DMZ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대한민국 내에 기존의 장벽을 만들어온 영토를 전략적으로 침범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인이 토지를 매입하고 다시 팔지 않으면 그 땅은 우리 땅이라 할 수 없다. <장벽의 시간>을 읽는 동안, 인간이 만든 장벽을 만들 때보다 교류를 통해 더욱 발전한 것이 사실이다.

 

 

모두가 장벽의 역사에서 장벽이 가지는 의미를 심층 기사를 다루는 듯 하나에서 열까지 기록하고 있어 세계사와 개인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장벽의시간 #안석호 #크레타 #정치 #외교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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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국가 대한민국 - 부족주의의 노예가 된 정치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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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주의의 노예가 된 정치

 

인물과 사상사에서 출판하고 강준만 교수님이 집필한 <부족국가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정치 세력을 향한 일침이다. 근래 저술한 <싸가지 없는 정치>,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에서 진보세력에 관한 따끔한 조언과 더불어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의 결과는 그가 그동안 예측한 일들이 잘 들어맞는 듯하다. 이번 도서 <부족국가 대한민국>은 대한민국 정치세력이 지나치게 부족주의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정치적 부족주의의 문제는 집단에 대한 강한 소속감으로 나와 다른 집단에 대해 가지는 폭력과 적대감을 드러낸다는 점이다.

 

진보 논객으로 잘 알려진 저자는 진보세력에 관해 쓴소리를 쏟아내고 그의 외침이 다음 해 대선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투쟁의 대상이다

 

다른 사람들과 만나 그들이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아주 가치 있는 일이다. 이러한 소통은 전에도 그랬고 지금 이 시대에도 진보의 주요한 원천이다.”

[존 스튜어트 밀]

 

우리나라 정치를 양분하는 세력은 흔히 알려진 진보’, ‘보수로 대표된다. 세상에선 더불어민주당(민주당)진보로 부르지만, 사실 이는 민주당의 왼쪽에 있는 정의당을 비롯한 정당들에 큰 결례라는 저자의 말은 평소 상당히 동의하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정치사는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성립되었기에 유럽의 진보정당이 추구하는 목표에는 진보라고 표현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중립적 정당, 국민의 힘을 보수정당, 정의당을 위주로 한 정당을 진보정당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진보정당에 있어선 존재감을 드러낼 좋은 기회였는데, 양당 정치로 고착되고 있는 현 정치 상황에선 진보정당이 주목 받기는 어려웠던 걸로 보인다.

 

한국형 계급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부동산 문제의 처참한 실패로 적어도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고, 빈부 격차를 심화시킨 세력을 결코 진보일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도 동감한다. 부동산 문제가 아무리 글로벌 통화공급의 결과라 할지라도 부동산 임대차 3법은 누구를 위한 법인지 좀 더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걸로 보인다. 20여 년 전, 전세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하는 법안이 통과했을 때에도 전체 부동산 시장이 크게 동요했지만, 이 법안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장에 자리를 잡았다.

 

여당에서 통과시킨 임대차 3법은 시간이 지나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지 아니면 효용을 다해 수정되는 법안으로 재편될지는 국회를 주목해야할 점이다.

 

저자는 자신이 진보세력을 지속해 비판하는 이유는 너 잘돼라는 비판의 목적에 충실한 과정이라지만, 독자는 그렇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한가지 명확한 사실은 저자가 지적한 사실은 대한민국의 민심을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관한 금태섭 전의원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여당 중진 의원들조자 그 방송에 출연하려고 줄을 서서 그가 지휘하는 방향에 맞춰 앵무새 노릇을 하고 그의 눈에 들면 뜨고 눈에 나면 죽는 것이 현 여당의 현실이다.” (25, ‘정신적 대통령김어준의 비극 중)

 

김어준이 정신적 대통령이라면 그건 끊임없이 적과 악마를 만들어내야만 유지될 수 있는 자리다. 유시민은 최근(2021122)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의 금융거래 정보를 열람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과 관련한 사과문에서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했다고 고백했다. 김어준 역시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데엔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인물이지만, ‘악마화는 늘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대립하는 상대방은 온갖 부정적인 특성을 다 갖고 있을망정 결코 악마는 아니기 때문이다. (32, ‘정신적 대통령김어준의 비극 중)

 

대한민국 정치사가 어느 정도 성숙하고 있다는 방증은 보수-진보-보수-진보세력이 대통령선거를 통해 두 차례 이상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면 어김없이 전임 대통령에 대한 법적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인 입장이 다르지만 그 사람도 나와 함께 사회를 이루어가는 구성원이다. 종교보다 더 사람을 가르는 것이 정치라 여길만큼 정치적인 신념은 중요하지만 바뀔 수 있고, 정치적 견해를 바꾸었다고 해서 나와는 타협할 수 없는 사람은 아니다. 선거철만 되면 우리는 나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눈 가장 든든한 사람인 가족마저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상대방을 설득하려 노력한다.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보면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금전적 특혜를 주는 건 범죄행위다. ‘공사구분의 원칙은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는게 우리 사회의 합의지만, 그런 합의가 잘 지켜지는 것 같진 않다. 연고주의 넘어서 아예 부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부족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집단이 헌신하는 목표에 유리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만들어서 현실을 대대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 또 집단 정체성은 순응의 압력을 일으켜 사람들이 혼자서는 상상해본 적도 없는 일들을 하게 만든다.: [114, 에이미 추아(미국 예일대학 로스쿨 교수)]

 

부족주의는 경험적으로 어떤 장소에 대한 소속감, 그리고 어떤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인간은 원시사회에서 다른 부족과 전쟁이나 갈등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의 부족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 필요했다. 세상이 발달해 부족국가는 사라졌지만 부족 본능은 살아남았다.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발생하는 부족주의 본능은 특히 한국에선 뿌리가 단단하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이 가입하는 사회 관계망 비율로 확인되고, 엘리트 집단일수록 부족주의 성향도 강하게 나타난다.

 

부족주의가 진보 세력에 접목되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운동권 부족주의가 리더십보다 집단에 대한 충성도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 시절 그들의 투쟁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용기가 없어서 나서지 못했던 사람들은 나름의 역사적 부채 의식을 갖고 있기에 그들의 국정 운영에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119, 부족국가 대한민국 중)

 

현재는 진보 부족주의의 전성시대다. 명분과 당위의 포장을 더 앞세우고 더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부족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는 동안 보기에 흉한 부족주의 스캔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문명의 역사는 부족적 민족주의를 점차로 더 폭넓은 이해관계에 복속시켜온 연대기다.” (123, 피에르 트뤼도)

 

한때 민주당 내에서 쓴소리를 하는 조웅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을 가리켜 조금박해로 불렀는데, 이는 조금박해를 제외한 의원들의 상당수는 스스로 정당이라는 집단 부족의 꼭두각시가 되기를 자청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212, 금태섭의 이중 구속에 돌을 던질 수 있는가? )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적 부족주의는 상대방과 공존하며 전진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리 앞에 다가오는 거대한 도전을 생각할 때면 우리 정치세력의 갈등이 불만스럽다. 조금만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면 거대한 파도가 다가옴이 느껴진다.

 

당장 세계에서 모범을 보인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K-방역도 예방백신을 효과적으로 수급하지 못해 곤란을 겪고 있다. 백신 계약 초기에 상황을 지켜보다 늦게 체결한 계약이 부메랑이 된 것이다. 과거 신종플루 백신을 필요보다 더 많이 공급계약을 체결해 백신 재고로 감사를 받고 비난 여론이 치솟아 이번 계약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안타까운 점이다.

 

이 책은 저자가 진보세력에 대한 쓴소리로 가득한 책이다. 강준만 교수님은 정치권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을 자신의 관점으로 이야기한다.

 

정치에 관심을 가진 독자는 최근에 이슈가 된 여러 정치, 경제, 사회적 사건을 깊이있는 시각으로 다시 돌아볼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부족국가대한민국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정치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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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0 - 강화도조약 Ominous 본격 한중일 세계사 10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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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에서 출판하고 굽시니스트 김선웅 작가님이 저술한 <본격 한중일 세계사 10 강화도조약>은 서양 천하를 둘러보고 온 일본 집권 세력이 강화도 조약을 맺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과거 한중일 역사 교과서가 공동으로 제작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세 나라의 국민이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아 내심 기뼜는데, 일본이 이번에 모든 교과서에 수록한 역사를 왜곡한 교과서를 전면 제작하는 모습을 보고는 20년 동안 그들이 단계적으로 꾸준하고 음험하게 준비해온 과정을 완성하는 모습이 이제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한중일이 공동 역사 교과서를 편찬해 학교에서 채택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바램일까?

 

 

이번 <본격 한중일 세계사 강화도조약>1870년대 혼란스러운 프랑스 정국을 시작으로 한다. 이와쿠라 사절단은 미국을 거쳐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보며 일본이 배울 수 있는 나라를 고민한다. 그들은 이념 갈등으로 내전이 벌어지고 민주주의와 사상의 자유를 백성이 고민하는 프랑스는 본받을 나라가 아니라고 단정한다.

 

사절단은 독일의 비스마르크 수상이 초대한 파티에서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국제사회의 논리에 독일이 최근 힘을 과시하는 모습을 배우라는 말에 독일처럼 힘을 키우기로 결심한다.

 

사절단은 귀국후, 요직을 차지하고 군제를 개혁한 후 전국에서 징병제를 통해 3,272명의 병사를 충원한다.

 

이들은 해외 원정의 첫 번째 목표물은 대만으로 정한다.

187112월 류큐 미야코섬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가다가 대만에 표착한 후 그곳의 파이완족에서 류큐인 54명이 참수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청나라에 자기 국민이 살해당했으니 대만에 군대를 보내 사건을 조사하려 한다. 이로써 류큐와 대만을 집어삼킬 첫걸음이 시작된다.

 

18745, 일본 정토군 3,600명은 대만 남부 헝춘반도에 상륙 류큐 표착민 학살 사건의 주범인 무단사 마을의 추장 아록고와 그 아들을 사살한다. 이어서 한 달 동안 주변 원주민 마을들을 불태우며 토벌 작전을 진행한다.

 

해군이 없는 청조는 일본의 대만 침략에 맞설 해양 전력이 없었다.

이에 주청 영국 공사 웨이드의 주선으로 이호앙과 오쿠보가 베이징에서 협상에 임해 187410월 청일양국호환조관을 체결하고 류큐를 복속한다.

 

 

다음은 조선이다. 조선에 국서를 보냈지만 4년 동안 대답이 없고 오히려 동래부사 정현덕은 일본은 무법지국이라한다. 이에 일본은 조선이 쓰시마에만 허용했던 왜관을 동래에도 설치하고 국서를 수납하라고 요구하며 18729월에는 군함 2척과 병력을 이끌고 입항한다.

 

왜관에 쳐들어온 일본 병력을 격퇴해야 했지만, 당시 조선은 강화도 지역을 지키는 것에 부산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1875920일 일본 운요호는 식수가 떨어진 긴급 구난 상황에는 영해, 영토에 진입할 수 있다는 국제법을 내세워 강화도 앞바다로 진입하나. 작은 보트를 타고 진입하려는 순간 조선 수군은 이들을 향해 대포를 발포하고 이들은 다음날 아침 초지진으로 포격을 개시한다.

 

운요호는 오후 영종도 앞바다에 정박하고 22명의 군인으로 영종진을 함락한다. 운요호 사건을 보고받은 조정은 조일수호조규 즉,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다.

 

 

이 책은 강화도 조약에 이르기까지 조선, 청조, 일본의 국내 정치상황을 주도 세력의 권력 투쟁 과정을 보여준다.

 

 

조선

 

 

조선의 경우, 고종의 즉위 과정과 흥선대원군의 섭정 동안 이루어진 일과 고종의 친정을 위해 대원군 세력의 실각을 보여준다.

 

명성황후와 대원군 세력이 돌이킬 수 없는 원수가 되는 사건을 민승호 대감 집에서 일어난 폭탄테러 사건으로 보고 있다.

 

187515, 민승호는 생모의 모친상으로 휴직 기간 중 뇌물인 줄 알았던 선물 상자를 개봉하는 순간, 폭탄이 터져 본인과 아들, 양어머니가 사망하게 된다. 이 양어머니가 중전인 명성황후의 생모였다. 중전은 대원군 세력이 저지른 일이라 의심하고 친흥파 세력을 모두 제거하고 경복궁과 흥인군 자택에 방화 사건이 일어나고 대원군의 측근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일본

 

 

일본의 경우, 이와쿠라 사절단이 떠난 29개월 동안, 유수 정부의 수석 참의 사이고 다카모리는 제도 개혁과 새로운 정책을 발표하며 빠르게 정권을 장악한다.

 

각의를 장악해 정치 권력을 손에 넣고, 육군 대장 근위도독이 되어 육군을 손에 넣고, 에토 신페이와 손잡고 사법 권력을 손에 넣고, 누가 봐도 그 야심을 의심치 않을 수 없지. (79, 메이지 6년 정변 중)

 

국내 세력을 평정하고 권력을 장악한 사이고 정한론을 논의하고자 조선에 직접 특사로 가고자 한다.

 

이와쿠라 사절단이 귀국해 국내 경제 발전에 집중해야 한다고 하자 삿쵸(사쓰마, 조슈)를 기반으로 한 이와쿠라 세력과 사이고 세력 간 충돌은 불가피했다. 이와쿠라는 열세인 세력 균형을 회복할 핵심을 알고 있었다.

 

천황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천황 칙답을 발표해 사이코 세력을 몰아낸다.

 

청나라

 

 

청나라는 서태후가 권력을 차지하고 호남 출신의 섬감총독 좌종당과 안휘 출신의 북양대신 이홍장 세력을 이용해 서로 견제하는 형국이었다.

 

1862년에 터진 감숙성과 섬서성의 이슬람 반란이 13년 동안 지속되었고, 더 서쪽의 신장위구르 지역은 1860년대 중반 청조에 대한 복속에서 벗어난 지 10년이 되어 독립국을 건설하려 했다.

 

이홍장과 유명한 해방새방(海防塞防) 논쟁을 벌이게 되는데, 좌종당은 러시아를 경계했기 때문에 러시아의 남하에 맞서 북방의 방비를 주장했고, 이홍장은 영국 세력을 경계했기 때문에 해안지대의 방비를 주장한 것이다.

 

신장위구르의 독립은 몽골이 무너지고 만주가 무너질 수 있어 청조는 이를 막기에 혈안이 되었다.

 

서태후는 국방 예산을 8:2로 신강 원정이 중요하게 여겨 돈을 몰아준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둘러싼 한중일의 당시 상황을 나라별로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한중일을 이끌었던 인물에 관해 개별적으로 알고 싶은 점들이 생겨 당시 인물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찾아보기로 생각했다.

 

세계사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본격 한중일 세계사>시리즈를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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