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파도에 빠지다
아오바 유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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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우리를 설레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16세에 소설 스바루 신인상을 최연소 수상하며 데뷔한 아오바 유의 두 번째 장편소설!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는 저자가 데뷔작 이후 3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소설로, 사람은 무엇을 지침으로 삼고 살아가는지, 예전에 느꼈던 설렘과 열정은 어디로 갔는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한 답을 찾는 이야기다. 이는 곧, 청춘이고 청춘이었고 청춘일 우리들의 공통된 난제이자, 작가 자신의 고민이기도 하다.

[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 책날개 중 ]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가슴이 뛰거나 마음의 동요가 일었던 적이 있었나?’ 떠올려보니 과거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를 들을 때마다 힘솟는 에너지를 느꼈다. 응원가의 응원단장이 등장할 때 자주 사용되기도 해서 나에게 그대에게는 영웅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대기업 안내 데스크에서 계약직 사원으로 일하는 가와사키 하루키는 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회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유뷰브에서 화제가 된 the noise of the tide 라는 그룹의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는 곡을 듣고 묘하게 마음을 뒤흔드는 느낌을 받는다.

 

어딘가로 가고 싶고,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 어디까지든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편안한 생활에 굴복해 새로운 직장을 알아보거나 진취적인 목적을 가지고 생각했던 일을 미루고 있던 순간이라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를 듣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겨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과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했다.

 

the noise of the tide 그룹의 리드 보컬 기리노 줏타가 20181023일 사망했다는 홈페이지의 뉴스에 그녀는 충격에 빠진다. 1년 전 자신의 생일날 행복했던 순간에 다른 장소의 줏타는 사망한 것이다.

소설은 줏타의 인생을 다양한 사람의 시선으로 따라간다. 줏타와 관계된 사람이 느슨하게 얽혀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생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10대와 20대가 느끼는 불안과 외로움이 소설의 곳곳에 퍼져있다. 이를 극복하는 하는 힘은 다른 이와의 연결이다.

 

 

줏타는 어린 시절 기타를 치는 아빠를 동경했다. 아빠에게 물려받은 기타를 가지고 새로운 코드를 칠 수 있게 될 때까지 계속 연습했다.

 

소중한 건 반복해야 돼. 몇 번이든, 끝없이. 잊어비리지 않도록, 꺾이지 않도록,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몇 번이든, 끝없이. (66)

 

줏타가 파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계속 나아가기 위해 파도에 부서져 버린 아버지를 기억하고 그곳에 도달하려 노력하는 파도의 모습을 동경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수많은 갈래의 길에서 지난 시절 선택한 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선택을 앞두고 있는 사람은 어떤 심정으로 선택하는 것일까?

 

새까만 바다, 빛나는 별, 흔들리는 수면, 그리고 저 멀리 있는 수평선. 나쓰카와 줏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 끝에서 서로의 모습을 찾고 있다. 두 시선은 바다 너머로 평행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그 선은 언젠가, 수평선 한참 너머에서 다시 한번 얽힐 것이다. (103)

 

 

세이라는 늘 상대가 자신을 사랑하도록 꼬드겼다. 그건 일종의 훈련의 성과였다. 철 들 무렵부터 마음이 굶주려 있었던 세이라는 자기를 사랑해 줄 사람만을 가까이에 두려고 했다. 상대가 좋아하는 표정, 옷차림, 화장을 재빠르게 익히고 호의를 얻어내려고 기를 썼다. 그런데 막상 상대가 사랑을 주면 그 순간 마음이 식어버린다. 인간관계에만 집착하는 스스로가 허무하고, 열등감으로 마음에 구멍이 뚫리며 절대 행복해질 수 없는 스스로에게 절망한다.

 

줏타가 특별한 건, 그가 세이라를 받아들이면서도 사랑하려고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줏타는 음악에 필사적이고, 그 역시 채워지지 않는 결여에 허덕이고 있다. (134)

 

줏타는 세이라의 신이었다.

 

세 번째 장의 주인공인 세이라는 결여를 느끼고 항상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 트위터에 좋아요를 보며 살아있음을 느끼고 안도하는 자신을 돌아보면 죽고 싶어진다. 얼구도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알아봐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싸구려 감정의 파도에 휩쓸리며 하루를 살아 간다.

 

저자는 10대와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겪는 방황하는 감정을 절절히 표현한다. 아무래도 자신과 주변에서 경험하고 있는 감정이기 때문일거다. 놀랍게도 이 감수성이 뛰어난 소설의 저자인 아오바 유는 10대에 첫 장편소설을 썼고 이제 20세이다.

 

여러 주인공이 걸어가는 길을 하나둘씩 기리노 줏타와 그의 음악을 둘러싼 굴레에 얽혀 있다.

 

프롤로그 잠들지 못하는 밤_2019, 하루카

 

1장 잘 가 원더_2006, 나쓰카

2장 백설_2009, 세이라

3장 태어나다_2015, 마사히로

4blind mind_2018, 기타자와

5장 파안_2019, 히카리

 

에필로그 다시_현재, 세이라

 

목차 앞에 제시된 제목은 모두 노래 제목이라고 한다.

하루카와 나쓰카, 세이라, 마사히로, 기타자와, 히카리와 줏타와 연결고리를 생각하는 것도 흥미롭다.

 

마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밀려온다.

음악을 매개로 인생의 향방을 결정한 청춘의 이야기.

 

20대의 좌절과 갈등, 진로에 대한 고민은 비단 일본에서만 겪는 일은 아닐 것이다. 힘들어하는 10, 20대의 감정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는 한번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한때 우리를 설레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과거에 찍었던 사집첩을 꺼내놓고 그때의 감성으로 돌아가 당시 내가 했던 선택의 길들이 이어져서 오늘과 내일의 길 위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 잔잔한 파도에 빠지다 ]

 

바람이 멎은 새까만 바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이즈

예감은 아직 허상일 뿐

파도만이 반복되지

 

멀리서 울리는 천둥소리

물결치는 너의 원피스

마음을 흔들어놓네

견딜 수 없이 초조해

 

언제까지나 길 위에 서 있어

소원을 되풀이하면서

수평선 저 너머에서

다시 만나는 두 사람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잔잔한파도에빠지다 #아오바유 #김지영 #시월이일 #일본소설 #장편소설 #스바루신인상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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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 금욕과 관능의 미술사 해시태그 아트북
헤일리 에드워즈 뒤자르댕 지음, 고봉만 옮김 / 미술문화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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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은 색이 아니다.”

 

<검정 금욕과 관능의 미술사>의 저자인 헤일리 에드워즈 뒤자르댕 서양 미술사와 복식사 전문가다. 프랑스 에콜 뒤 루브르Ecole du Louvre와 런던 패션 학교London College of Fashion에서 공부했다. ‘패션과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 학술 대회의 성과를 Fashion, Society, and the First World War로 공동 출간했고, 현재 패션의 문화와 사회사를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앙리 마티스, 프랜시스 베이컨, 블루등이 있다.

[ 검정 금욕과 관능의 미술사 책날개 중 ]

 

저자가 서양미술사와 복식사 전문가에도 프랑스에서 학교에 다녔기에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를 선보인다. 고급 도화집으로 소개하는 작품은 검정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흥미롭다.

 

 

당신의 검정은 어떤 색인가.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에겐 분명 고유의 검정이 있다. 세상에는 단 하나의 검정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금욕적인 검정이 있는가 하면 슬픔이나 두려움을 자아내는 검정, 우아하거나 병적으로 보이는 검정 등 다양한 검정이 있다. 앙리 마티스의 검정에는 이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검정은 본래 다른 모든 색을 집약했다가 소멸시키는 색이다.”

[ 예술에서의 검정 중 ]

 

 

검정은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색이다. 옷장을 되돌아보니 나역시 알게 모르게 검정을 선호한다. 다른 색의 옷과 조화를 이루기 쉬운 색이고, 무채색의 가장 높은 명도를 가진 색이니만큼 다른 색을 모두 흡수했을 때 검정은 모습을 드러낸다.

 

태초에 인류는 검정을 숯을 태우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오랜 세월 검정은 인류와 함께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색이 검은색과 흰색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작 뉴턴은 프리즘을 통과한 색이 여러 개로 분할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중세 사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검정은 색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색의 정체가 빛이라면, 빛이 없는 검정은 색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정은 유럽의 왕실이 초상화에 사용되면서 이상적인 색으로 여겨졌고, 19세기에는 강렬한 귀족 이미지를 보여주는데 검정이 사용되었다.

 

검정은 삶의 애환을 드러내고, 꿈과 신화를 표현하고, 잠재의식의 세계를 말하고, 여성의 관능성을 강조하는 그림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검정의 가장 원초적이고 극적인 부분으로 표현될 때 일상에서 벗어나 차원이 이동하는 느낌이 든다. 영화 플레전트빌에서 검정 바탕의 화면은 감정을 가지게 되면 유채색이 된다.

 

로이스 로우리의 기억 전달자에서도 주인공의 사는 세계는 검정의 무채색이지만 감정을 경험할 때 유채색이 드러난다. 검정은 모든 감정을 흡수해버리는 듯 강렬한 색이다.

 

우리 영화에서도 홍상수, 이준익 감독은 검정의 사용을 적절하게 사용해 차원의 이동을 선보인다.

 

 

미술사에서는 검정을 가장 잘 활용한 집단은 빛의 화가들이다. 빛의 화가라고 하면 렘브란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떠오르지만, 검정을 가장 강렬하게 사용한 대표적인 화가는 카라바조다.

 

 

카라바조는 나르키소스에서 젊은 청년이 샘물에 몸을 숙여 매혹적인 어둠 위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을 포착한다. 카라바조는 나르키소스의 자세에 에로티시즘을 부여했고, 나르키소스의 근육은 육감적이다. 검은 화면 속 자신의 모습에 빠져있는 이 장면은 절망에 휩싸여 죽게 될 인물의 불길한 운명을 암시한다. 이전에는 물 위에서 내려다보는 나르키소스의 어두운 표정에 주목했다면, 이번 검정에서는 수면 아래 드러난 나르키소스의 절망에 주목하게 되었다.

 

 

렘브란트의 <여인의 초상>에서는 해상 무역의 발달과 상업의 발달로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로 거듭난 네덜란드의 부유함을 잘 드러낸다. 검정 드레스는 염료로 직물을 염색하기 쉽지 않고,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다. 렘브란트는 어둡고 거친 색조를 이용한 명암법으로 호평을 받았는데, 마침 검정이 대유행하는 시기였다.

 

 

낭만주의의 선구자인 제리코는 <메두사호의 뗏목>을 통해 실물보다 크게 그리면서도 빛의 대비에서 빚어지는 강렬한 효과와 생동적인 사실주의를 통해 엄청난 에너지와 강도 높은 감정을 표현한다. <메두사호>1810년에 진수된 프랑스 해군의 소형 구축함이었다. 선장의 무능함으로 난파된 메두사호는 400명이 구조되어야 하나 구명선에 올라탄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구명선에 올라올 것을 두려워하여 밧줄을 끊어버린다. 그 결과 10명만이 생존하고 제리코는 생사의 순간이 오가는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

 

제리코가 그린 것은 인간임을 포기하고 야만적인 충동에 몸을 맡긴 인간 군상이다. 그가 포착한 것은 어두운 색조가 그림 전체를 지배하는 인간성 너머에 있는 생존 본능이다.

 

들라크루아는 제리코가 <메두사호의 뗏목> 보도록 허락해 그림을 보자마자 충격에 빠져 미친 사람처럼 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아무것도 그를 멈출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마네의 <제비꽃 장식을 한 베르트 모리조>는 검정의 효과를 잘 드러낸 작품이다. 모리조의 눈동자는 실제로 초록색이지만 마네는 검정의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그녀의 눈동자를 검은색으로 그려 넣었다. 마네가 검정을 승화시켰을 때 모리조는 하양을 예찬하며 화답한다.

 

마네와 모리조가 서로 예술적 영향을 주고받으며 플라토닉 러브를 추구했는지 불분명하다. 베르트 모리조는 인상파 최초의 여성 화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이 그림의 모델로 등장한다. 그녀는 많은 예술가의 구애를 받았지만 1874년 에두아르 마네의 동생인 외제 마네와 결혼한다.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게르니카 학살의 참혹함을 전달하기 위해 간단한 모티프들을 사용했다. 폭격 당시 번쩍였던 섬광은 날카롭게 광선을 쏘아대는 천장의 전등으로 표현했다. 색채나 볼륨감을 배제하고 검은색과 흰색만을 이용해 죽음과 고통을 강조했다.

<게르니카>는 전쟁의 참혹함을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다.

 

 

가장 놀라운 검정은 리처드 세라의 <회로>에서 선보이는 강철로 만든 컴컴한 숲이다. 리처드 세라는 1960년대부터 철이라는 재료가 인간이나 공간에 맺는 관계에 천착하면서 작품 활동을 해 왔다. 그의 작품 <회로>는 관람객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그런 작품들 가운데 하나다.

 

작품의 제목으로 드러난 <회로>흐름이나 순환을 의미하지만, 컴컴한 색조의 강철판 모서리들은 각진 모양새가 위협적이고 정신을 어지럽힌다. 세라는 별것 아닌 것들로 우리의 가장 원초적인 공포를 깨운다.

 

 

검정은 가장 원초적이고 모순적인 감정을 반영한다.

어릴 적 홀로 어두운 방에서 느꼈던 두려움이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 낯선 이에게 품는 감정 같은 것 말이다.

검정은 무의 상태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말한다.

개인적인 것부터 보편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2014년 영국의 나노 연구 기업 서리 나노시스템즈 주식회사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검은 물질인 반타블랙을 개발했다. 검정이 나타내는 색의 범위는 더 확대되었다.

 

<검정 금욕과 관능의 미술사>를 읽는 동안 우리가 검정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인식의 틀이 시대에 따라 사회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추구하는 검정은 무슨 색이고, 그 의미는 무엇일지 되새겨본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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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한 번은 손자병법 -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화시키는 힘
우순링 지음, 이성희 옮김 / 이터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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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인생이 다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통하는 손자병법의 지혜!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불가능을 가능으로 변화시키는 힘

 

이터에서 출판한 우순링 교수님의 <인생에 한 번은 손자병법>은 손자병법을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의 창고이다.

 

저자인 우순링은 국립 타이완 사범대학 국문학과 박사, 타이베이대학 명예교수이며 주밍미술관 관장, 타이베이대학 교무과장과 중문과 학과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영역은 병법, 중국 철학, 미학이다. 예술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예술창작 활동에 직접 참여했으며, 이론적인 연구에만 치우칠 수 없어 주식 및 부동산 투자에도 직접 참여했다. 재소자의 심리 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 감옥을 찾아 재소자들을 위한 강연도 실시했다.

모르는 것일수록 더욱 실제로 참여하며 이해하려 한 그는 인생의 어떤 문제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다. 공자, 장자, 손자, 니체, 피카소……. 이들은 그가 함께 문제를 토론하는 친구들이 되었다.

[ 인생에 한 번은 손자병법 책날개 중 ]

 

 

이 책에서 설명하는 손자병법의 핵심은 4가지다. 첫째, 일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태도와 개념이다. 손자는 말했다. “전쟁 앞에서 경멸하는 태도를 거두어야만 비로소 전쟁에 대한 질문을 던질 자격을 갖추게 된다.” , 잘못된 태도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특히 각종 경쟁을 마주하며 우리는 필승 내지는 전승무패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만 한다. 그러면 이기지 못할 전쟁이 없게 된다.

 

둘째, 진리는 칼과 검이 된다. 손자가 말하는 병법에서는 진리를 기초로 삼을 것을 강조하는데 진리, 하늘, , 장수, 법도’, 이것이 전략적인 사상이 된다. 진리란 일종의 신앙이며 가치, 시비와 잘잘못을 가리는 가치관이고, 인간관계 처리와 정책 결정의 의거가 된다. 만일 전장의 장군이 진리로 무장하고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인물이라면 전략과 정책 결정 시에도 급변하는 상황 속에 놀라거나 조급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을 수 있고, 이로써 승리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는 승리를 가져다주는 도구요, 칼이며 검이다.

 

셋째, 실천이야말로 현 상태를 바꿀 기회가 된다. 손자병법에서는 실천과 행동을 강조한다. 성공의 길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지, 상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행동하고, 실행하며, 전략적인 사고방식과 기술이 조화를 이룰 때에만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실천이 가져다주는 힘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론은 반드시 행동에 굴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오직 진정한 행동만이 현 상태를 변화시킬 기회가 된다.

 

넷째,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밝혔다. “사랑 없이는 세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 손자는 전쟁에 관해 질문을 던졌다. 그중 하나는 꼭 싸워야만 상대를 이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는 만일 더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고 관용을 베풀어 대립을 종식한다면 더욱 많은 가능성이 실현될 것이며, 불패의 영토에 서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이야말로 학습의 기초이며, 교육의 핵심적 가치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이 세상에 참여하며 이 세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

[ 인생에 한 번은 손자병법 서문 중 ]

 

 

손자병법은 중국 춘추 시대에 살았던 전략가 손무가 오나라 임금 합려를 위하여 지은 책이다.

손무는 춘추 시대 제나라 사람이었지만, 오자서의 추천을 받아 오나라에서 빛을 발한다. 사람은 자신이 태어나는 곳은 정할 순 없지만, 자신이 뽐낼 무대는 선택할 수 있다. 당시 제나라는 4대 권문세가가 권력을 공고히 하고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었다. 손무에게는 개발되지 않은 자신의 능력을 펼칠 곳이 필요했다.

 

손자는 13편의 병법지도서를 오나라 왕에게 헌납했고, 왕은 군사 천재를 만난 다음, 오나라 궁궐에서 진짜 군사훈련으로 면접을 봤다. 오나라 왕 합려는 그의 진짜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궁중의 여인네 180명을 지목해서 지휘하도록 한다. 손자는 여인들에게 호령을 내리고 가장 성실하게 행하지 않는 두 명을 지목하는데, 그녀들은 오나라 왕이 총애하는 비빈이었다.

 

군법을 엄하게 집행하기 위해 손자가 두 비빈의 참수형을 실행했을 때, 합려는 기겁했다. 하지만 손자는 군령을 실행했고 오나라 왕은 상심했다.

 

시간이 지나 오나라 왕은 감정의 찌꺼기들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았다. 손자가 군사를 잘 다스린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장군으로 임명했다. 그 후 손자는 오나라 왕을 보좌해 서쪽의 초나라와 북방을 주름잡던 제나라와 진나라를 평정하는 대업을 완수했다.

 

저자는 손자가 성공을 이룬 경로도를 8단계로 분석하고, 각 단계별 해당하는 위인과 현대사회에서 적용할 수 있는 점을 소개한다. 이 책의 눈여겨 볼 점을 성공경로도의 분석이다. 원문을 수록하고 있지 않아 <손자병법> 원문과 더불어 같이 본다면 더 효과적이다.

 

 

1단계 정의 : 무엇이 문제인가?

 

정의는 자신이 부딪히고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여 효과적으로 임기웅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손자는 13편 중 제1편인 <계편>에서 병법이란 한 국가의 대사로서 죽는냐 사느냐에 관한 것이며, 멸망에서 구하여 생존케 하는 방도이니 반드시 살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손자는 전쟁을 4가지 면에서 정의했다. 첫째는 국가의 대사이며, 둘째는 국가 백성의 생사존망에 관계되는 것, 셋째는 명망에서 구하고 존속을 기도할 수 있는 방법, 넷째는 신중한 태도로 대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단계 준비 :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준비는 문제 해결을 위한 필요 조건이다.

 

3단계 비교 : 나는 이길 수 있을까?

전쟁은 두 세력의 대항이다. 강자는 이기고, 약자는 패한다.

 

4단계 장수 선발 : 누가 싸울 것인가?

준비와 비교를 끝내 자신이 우세하다는 것을 확정했다면, 이제는 전장에 나갈 수 있는 장군을 선택할 차례다.

 

5단계 목표 : 어떤 방향을 정해야 하나?

멸망에서 구하여 생존케 하는 것이 전쟁의 주요 목표다.

 

6단계 실해 : 어떻게 싸울 것인가?

목표가 확정되고 사상이 일치하는 장군도 찾아서 임무를 장군에게 넘겨주었다면 성공 경로도는 탁상공론에서 실행의 단계로 진입하게 된다.

 

7단계 속임수 : 적을 약화시키는 방법은?

손자는 말했다. “전쟁은 속임수다.” 군사를 이용한 전쟁은 일종의 상대를 기만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8단계 종묘에서의 승부수 계산 : 총체적인 평가

종묘에서의 승부수 계산이란 바로 총체적인 평가를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연구 영역인 병법, 철학, 미학, 투자에 관련한 내용을 손자병법의 통찰력과 연관해 설명하고, 4차 산업 혁명을 이끄는 기업과 기업인에 관한 소개도 흥미롭다.

 

허허실실을 통한 상대를 기만하는 방법과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한 정보원의 활용범위, 무엇보다 가장 강조하고 있는 점은 사랑이라는 점이다.

 

백전백승이 최상의 승리 방법이 아니다. 싸우지 않고도 적의 군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최상의 승리 방법이다.”라는 손자의 제안은 전쟁에 승리하더라도 그것이 가져오는 해악을 본 손자가 가진 근본적인 사고였다.

 

 

시간을 따져보면 <손자병법>2,500여 년 전에 쓰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병서 중 하나이다. 손자병법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지혜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수많은 응용서와 해석서가 존재한다.

 

어린 시절, 인기 티비 드라마로 직장인의 생활을 그린 <티비 손자병법>이 생각난다. 손자병법의 지혜가 실생활을 통해서도 활용할 수 있다.

 

우순링 교수의 <인생에 한 번은 손자병법>은 지난 시간 동안 경험한 다양한 문화적인 콘텐츠를 <손자병법>을 통해 잘 풀어낸 지식의 창고이자, 인생의 성공을 위한 지침서이다.

 

 

[ 목 차 ]

 

추천의 말 _ 나만의 무대를 만들어 내 운명을 변화시켜라!

 

1부 당신이 원하는 건 신분? 아니면 미래?

볼거리 많았던 면접, 오나라 궁궐의 군사훈련

쉽지 않은 역할, 백락(伯樂)오나라 왕

나는 준비되었습니다손자

모두 다 승자

 

2부 성공 경로도는 생각이 아닌 경험으로 획득한다

손자의 성공 경로도 8단계

여덟 경로, 사실은 한 경로

인생에 득이 되는 계산, 실이 되는 계산

 

1장 정의: 문제 대면하기,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

2장 진리: 가장 큰 영향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3장 하늘: 변화에 능숙하게 대처하기

4장 땅: 성장의 길 다지기

5장 장군: 지혜, 신뢰, 사랑, 용기, 엄격함을 갖출 것

6장 법도: 우주법칙이 구체화된 산물

7장 비교: 타인을 넘어서기 전 먼저 자신을 넘어설 것

8장 목표: 목표는 밖이 아닌 내 마음속에

9장 승리 8: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3부 소극적인 생각이 적극적인 생각보다 더 가치 있다

양면 보기

철저히 보기

 

4부 사랑 없이는 세계도 존재할 수 없다

완전한 보전 추구하기, 대립의 진흙탕에서 빠져나가라

완전한 보전은 생명 공동체

완전한 보전 추구는 생명의 잠재력을 촉발하는 길

완전한 보전을 추구하는 것은 사랑의 힘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인생에한번은손자병법 #손자병법 #우순링 #이성희 #이터 #고전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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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바꿔봅시다! - 염동연이 말하는 노무현 신화의 탄생
염동연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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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동연이 말하는 노무현 신화의 탄생

 

폴리티쿠스에서 출판한 염동연 전 의원의 <둘이서 바꿔봅시다>는 불꽃 같은 정치 인생을 남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과정을 그리고 있다.

 

[호칭이나 정치적인 입장은 저자인 염동연 전 의원의 기준과 입장으로 전합니다.]

 

 

노무현의 경선 승리 과정과 대선 과정에서 보여준 극적인 승리는 대한민국에서 눈에 띄는 정치 여정이었다. 염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에 나서는 결정적인 순간부터 두 사람의 교감한 장면과 이후 상황을 소개한다.

 

염동연 전 의원은 1946년 전남 보성군 벌교 출신이다. 잘 알려진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되었던 제석산 아래 홍교 다리 근처에서 태어났다. 소설 속 주인공 정하섭 가문이 양조장을 운영하는 지주 가문 출신인데, 염동연 의원댁도 보성에서 소주와 정종,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과 수산물 가공공장, 냉동 창고를 운영하는 집안이었다. 한마디로 흔히 말하는 금수저집안 출신이었다.

 

주목할만한 내용은 문덕면 태생의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염 의원의 조부는 서 박사보다 그의 친동생 서재창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가르쳤다. 서 박사는 갑신정변(1884)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조정에서는 서재창에게 형 서재필을 반역자라고 규탄하는 상소를 고종 임금에게 올릴 것을 강요했다. 만일 상소를 올리면 가족 모두를 살려주겠지만, 올리지 않으면 전 가족을 처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서재창은 이를 의연히 거부하고서 참형되었다. 그의 나이 불과 열아홉이었고, 역적으로 몰린 아버지와 어머니, 형수와 누이들은 관노가 되기 직전에 음독자살했다.

 

그의 조부는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서재창을 서 박사보다 훌륭하다고 평가하셨는데, 이는 염 의원이 정치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 큰 영향을 미친다.

 

그는 한국 외대 독어과에 진학해 대학교 1학년 때 운동권 선배를 만나 의식화 교육을 받게 되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신민당 김대중 후보의 장충단 공원 연설을 들었다. 이 연설을 대한민국 정치사의 한 획을 그었던 유명한 연설로 잘 알려져 있다. 국민의 뜻을 확인한 박정희 대통령은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한 순간이기도 하다.

 

김대중 후보의 ‘3단계 통일론은 큰 충격이었다. 그를 정치로 이끈 것은 19805·18광주 민주화운동이었다. 현장에서 참사를 지켜본 염 의원은 의료지원 활동을 했다. 이후 김대중 선생의 측근이자 고향 선배인 박준구 씨를 만나 정치에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김대중의 청년조직인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1980서울의 봄에 조직되었다. 김대중 선생은 ‘5·17 내란음모사건으로 체포 구금되었고, 5·18민주화운동이 터지자 연청 회원도 구속되었고 뿔뿔이 흩어졌다.

 

19876월 항쟁으로 5공화국은 막을 내렸지만, 김대중 김영상 야당 후보의 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상태에서 여당 후보인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되어 군부정권은 연장되었다.

 

1992년 세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서지만, 실패하고 1997년 네 번째 대선에서 승리한다.

 

1990년은 1월 대한민국 여당인 민정당, 야당인 통일민주당, 공화당이 민주자유당으로 합당한다. 당시 노무현은 자신을 정치로 이끌었던 김영삼의 정치적 결정을 따르지 않았고, ‘3당 합당호남을 고립시키는 정치적 야합이라며 합류하지 않았다.

 

노무현과 통일민주당 내 합당 거부파 (이기택, 김광일, 장석화, 김정길)과 당시 무소속이었던 이철, 박찬종과 함께 민주당을 창당했다. 이들은 속칭 꼬마민주당이라고 불렀다.

 

꼬마민주당은 19919월 신민주연합당과 통합민주당을 창당했다. 노무현이 제1 야당의 총재였던 DJ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염동연은 당시 연청 사무총장이었고, 노무현을 만난 시점은 이때 당시인 1991년이었다. 1946년생으로 동갑이었던 두 사람은 어느 날 노무현 후보가 연청으로 찾아와 자신도 연청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지 물어본다. 즉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염동연에게 노무현은 친구로 지내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두 사람의 우정은 시작되었다.

 

1993년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때, 당내 지지기반이 미약했던 노무현은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제15대 대통령에 취임한 19986월에 두 번째 지방선거가 있었다. 서울 시장 후보는 정치권의 핫 이슈이고 한광옥 후보가 서울 시장에 나가겠다고 가장 먼저 출마 의사를 밝혔다. 상대 후보인 한나라당 최병렬 후보와의 대결 구도에서 한광옥 후보는 지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고건 총리는 승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무현은 한광옥 후보 대신 자신이 서울 시장 후보에 나가겠다는 의사를 피력하지만, 당에서 고건 총리를 영입하겠다고 하자 깨끗이 물러났다.

 

꼬마민주당 시절 1996년 제15대 총선 때 종로구에 출마해 3위로 낙선한 노무현은 종로구 당선자 이명박이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 방지법 위반 혐의로 피소되어 의원직을 잃게 되면서 치르게 되는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3번의 낙선 끝에 10면 만에 현역의원으로 복귀한다.

 

노무현은 다음 총선에 부산으로 출마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19992월 다음 총선에서 부산에서 출마하겠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노무현은 1992년 제14대 총선에서는 부산 동구에서 출마해 떨어졌고, 1995년 부산광역시장 선거에서 패했고, 15대 총선에서도 서울 종로구에서 3위로 떨어졌고, 16대 총선에 또 떨어진 것이다.

 

노무현은 20004월 총선 때 부산 북·강서을 지역구에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했다.

당시로서는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선거에서 낙선한 후, 노무현은 농부가 어찌 밭은 탓하리오?”라며 유권자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런데 그게 새옹지마가 되었다. 그의 낙선이 국민에게 당선보다도 더 큰 감동을 준 것이다.

인터넷 상에 바보 노무현이라는 말이 회자됐고, 헌정사상 최초로 정치인에 대한 팬 카페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생겼다.

 

김대중 대통령은 총선 4개월 뒤 노무현을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했다. 김 대통령은 그해 12월 김중권 전 비서실장을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으로 지명했다. 노무현은 김중권을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해 사실상 DJ에게 반기를 들더니, 언론사 세무조사 때는 제1 야당의 대표까지 정면으로 비판하며 김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것이다.

 

노무현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면 복잡하게 앞뒤 사정 재지 않고 언제는 할 말을 하는 그런 정치인이었다.

 

생각해보면 특별한 경험이었다. 당내 기반이 미약한 후보가 대선 후보로 나서기까지 그를 지지했던 팬클럽의 응원이 없었다면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는 위치였다. 염동연은 동교동계 핵심 인물이었고, 그는 영남 출신의 호남 지지를 얻는 후보가 대선에 나가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노무현은 그가 생각한 적임자였다.

 

여의도 민주당 사무실 인근의 금강빌딩에서 사무실을 만들었고, 그들은 금강 캠프라고 불렸다. 그들의 최우선 목표는 금강 캠프를 전국적인 조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염 총장의 역할은 살림을 맡아서 재정적인 부분을 도맡았고, 당내 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노무현을 대선 후보로 받아들여달라고 부탁했다.

 

금강 캠프로 사람이 모였고, ‘아름다운 바보를 후원하는 팬클럽이 형성됐고, 노사모의 온라인 모임의 규모도 커졌다.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가장 선두에 선 사람은 한화갑, 이인제, 정동영, 노무현이었다. 경선에서 승리한 노무현은 정몽준과 대선 야당 후보 단일화를 이루어낸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20025월부터 11월 중순까지 6개월이 넘도록 압도적 1위를 달려왔다. 한나라당은 일찌감치 형성된 이회창 대세론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정권을 되찾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후보와 11월 말 후보등록일 직전에 가까스로 후보단일화를 했다. 정몽준 후보가 사퇴하면서 25%였던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은 44%로 껑충 뛰어 단숨에 이 후보를 제치고 1위로 부상했다.

 

그런데 어렵사리 이룬 후보단일화의 틀이 1218일 한밤에 깨졌다. 선거일은 불과 1시간 30분가량 앞두고 정몽준 대표가 돌연 노무현 후보의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노 후보는 정 대표의 집에 찾아갔지만 끝내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때 당시 언론은 생방송으로 이 상황을 보도했다.

 

마침내 선거일이 되었고, 참여정부가 탄생했다.

 

이제 20대 대통령 선거는 202239일 치러진다. 지금부터 계산해도 D-279일이다. 생각해보면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은 누구나 각본 없는 드라마를 통해 그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책임감도 막중한 자리이다. 지금부터 대통령 선거는 각 당의 대선후보 예비경선을 통해 진행될 것이다.

 

염동연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당선 과정과 당선 후 과정을 2권을 통해 후대에 전하기 위해 자신이 경험한 일을 책으로 남기기로 했다. 금강 캠프의 설립부터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했기에 기록을 남길 적임자 중 한 명임이 틀림없다.

 

저자는 앞으로 2권도 앞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지난 대통령 중 노무현 대통령에게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극적이었던 경선 과정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둘이서바꿔봅시다 #염동연 #노무현 #정치 #메디치미디어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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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를 뒤흔든 한국의 골프 여제들
오상민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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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골프 실종된 역사를 찾아서

 

소명출판의 오상민 저자의 <일본 열도를 뒤흔든 한국의 골프 여제들>은 전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한국의 골프 여제들의 오늘이 있기까지 선구자 역할을 했던 JLPGA에서 활약한 선수를 돌아보는 책이다.

 

오상민 기자님은 스포츠·레저 전문기자이다. 주로 골프를 가장 오랫동안 취재했다. 일본 골프 전문지 <슈퍼골프> 발행인과 편집장을 맡으면서 일본 골프계에서 활약한 한국 여자골프 선수들의 활약상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고 이제는 잊혀진 선수를 기록으로 남김으로써 한국 여자골프의 역사를 제대로 남기길 원한다.

 

한국 여자골프 역사엔 실종된 기록이 있다. 여자골프가 걸음마 단계였던 1980년대 초반 일본으로 건너간 1세대 선수들의 위대한 도전이다.

 

한국의 골프 시장은 미국이나 일본의 시장에 비해 규모도 작았고, 산업이라 불릴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골프에 대한 시선 역시 부자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었고, 환경을 파괴하는 골프장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았다.

 

이런 인식들이 바뀌게 된 건 IMF 시절 미국에서 들려온 박세리 선수의 우승 소식이었다. 그녀가 연못에 빠진 골프공을 치기 위해 신발을 벗어 던지고 발을 걷어붙여 페어에 공을 올려놓고 우승하는 장면은 전 국민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이후 박세리 키즈 열풍과 여자에게 골프를 가리켜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괜찮다는 인식이 퍼지고 한국 여자골프 선수들의 우승 소식은 차례로 들려왔다.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얼마나 인고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을지 생각하면 세계적인 선수들과 경쟁에서 이겨낸 선수들의 노력에 박수를 기울이고 싶다.

 

박세리 선수의 미국 진출 이전에 한국 여자 골프 선수가 해외에 진출한 사례는 쉽게 짐작이 가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과거 티비상으로 구옥희 선수가 일본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소식을 접하며 막연하게 자랑스럽다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일본 시장에 진출한 일과 완벽하지 않지만 진심 어린 행동으로 다가가 일본 여자 골퍼 그룹에 끼어들어 그들과 친교를 나눈 이야기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특히 일본 진출 1세대 선수 중 구옥희 선수가 일찍 세상을 떠난 일은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 일본에 진출한 선수들은 한국 선수는 언어도 잘 안되고 약소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언어폭력은 기본으로 당했다.

 

1985년 구옥희 선수의 JLPGA 투어 한국인 첫 우승은 기념비적인 사건이지만, 이제는 많이 잊혀진 역사다.

 

골프 한류의 숨은 조력자인 김애순 선수의 일본 진출기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대기만성형의 노력파였고, 첫 우승까지는 무려 14년이 걸렸다. 프로 데뷔 이래 이토록 오랜 기간 만에 우승한 사례는 거짓말 같은 기록이고 이 기록은 12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김애숙 선수는 일본인 트레이너인 야마다 게이이치와 결혼했다. 김애숙 선수는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미래가 불투명한 선수였지만, 일본인과 결혼하면서 모든 것이 술술 풀렸다. 대회 성적이 안정됐고 일본 사회에 완전히 융화되면서 다른 인생이 열렸다.

 

그녀는 완벽하게 일본 사회에 적응하며 일본에 진출한 한국 선수의 매니지먼트 업무에 눈을 뜬다.

 

2004JLPGA 투어 통산 6승의 신현주 선수와 만남이 그랬고, 이후 2014년 신지애의 JLPGA 투어 데뷔와 함께 KPS 매니지먼트 회사를 설립했다.

JLPGA 투어에서 활약한 신현주, 신지애, 안선주, 김하늘, 김영, 배희경, 강수연, 정재은, 강여진, 이 에스더, 김소영, 배선우 등이 KPS 소속으로 활동했다.

 

근래에도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 골프 선수로 이보미 선수가 선정되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2012년부터 일본 투어에 진출해 JLPGA 투어 판도를 흔들었다.

 

신지애 선수는 LPGA를 뒤로하고 JLPGA 투어에 참가해 경이적인 기록을 만들었다. 그녀는 한국, 미국에서 상금왕을 차지한 적이 있고, 일본에서 상금왕을 차지하면 한미일 3국 투어에서 상금왕을 차지한 선수가 된다. 신지애의 기록과 업적은 일일이 나열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한국 골프의 어머니 구옥희, 김만수, 김애숙, 이영미 선수를 1세대로 구분한다.

 

원재숙, 신소라, 고우순, 한희원, 이지희 선수를 2세대로 구분하고, 일본 투어 개방에 따른 신현주, 전미정, 김소희, 송보배, 임은아, 황아름, 이나리 선수를 3세대로 구분한다.

 

한국 여자골프가 세계 최강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박인비, 안선주, 김영, 강수연, 이보미, 신지애, 김하늘 선수도 3세대로 구분한다.

 

한때 한 해 동안 열리는 JLPGA 대회 30여 개 이상의 대회에서 외국인 선수가 절반 이상 우승을 차지한 때도 있고, 이들 중 대부분은 한국 선수였다. 일본은 자국 골프 시장의 침체와 시청률 하락, 골프인의 관심이 적어진다는 이유를 들어 외국인 선수에게 불리한 규정을 점차 도입한다.

 

이런 사정에도 한국 선수의 활약을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한다.

 

지금도 한국 여자골프 선수들의 활약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이들의 오늘이 있기까지 선배들의 뿌린 씨앗을 돌아본 시간이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일본열도를흔든한국의골프여제들 #오상민 #골프 #소명출판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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