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대답들 - 10가지 주제로 본 철학사
케빈 페리 지음, 이원석 옮김, 사이먼 크리츨리 서문 / 북캠퍼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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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지 주제, 80명 철학자들의 사유를 통해 조망한 철학사

 

북캠퍼스에서 출판한 케빈 페리 지은이, 이원석 옮긴이의 <철학의 대답들>10가지 주제를 선정해 이에 해당하는 철학자들의 개요와 핵심적인 철학 내용을 소개한다.

 

저자인 케빈 페리 미국 리버사이드 시티 칼리지 인문학 교수. 주로 형이상학과 윤리학 분야를 연구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버클리)를 졸업했다. 특히 휴버트 드레이퍼스Hubert Dreyfus와 한스 슬루가Hans Sluga 의 지도로 하이데거, 니체, 푸코에 천착하며 정신 철학과 분석 철학의 배경을 주의 깊게 탐구했다. 하와이 대학교(마노아)에서 비교 철학 및 융합 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 철학의 대답들 책날개 중 ]

 

 

철학을 좀 더 쉽고 주제에 따른 개요를 충실히 소개하고 고대 철학자에서 최근 철학자까지 연대표를 이용하고 있어 한눈에 흐름을 파악하기 좋다. 주제에 따른 철학의 흐름과 주목할 철학자를 배치하는 이런 나열 방식은 참신하다.

 

이 책의 특징은 370페이지에 10가지 주제에 따른 80명의 철학자를 소개하다 보니 4~5페이지분에 한 명의 철학자의 약력을 소개하고 뒤이어 철학의 핵심 내용을 소개해 깊이 있는 설명을 싣기에는 부족하다. 개개인의 철학 서적을 별도로 접근하면 좀 더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다른 의미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하는데, 철학의 주요 주제에 있어 변곡점을 만든 철학자의 면면과 그들의 핵심 철학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80명의 철학자 중 모르고 있었던 이들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들이 철학을 알게 된다는 점은 장점이다.

 

철학은 무엇일까? 철학은 활동이다. 특정 맥락에서 반성하고 인간이 자신을 발견하는 세상을 분석하는 능동적인 추구다. 또 모든 것을 의심하는 것이 철학의 특성이기도 하다. 지식이란 무엇일까? 정의는 무엇이고 사랑은 무엇일까?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철학은 교육이다.

 

철학은 변화의 힘이기도 하다. 현실 문제를 다루고 비판하며 결국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 수많은 철학적 사유에 스민 이 요구는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욕구다. 루소가 말했듯이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에서나 사슬에 매여 있다.” 이는 18세기 말 막 태동한 영국과 독일 낭만주의의 구호였다. 비판과 해방은 한 끈의 양 끝이고 이 끝을 연결하는 것은 인간의 자유다. (5)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이데아론으로 우리의 삶과 인간 정신을 설명한다. 플라톤은 감각으로 지각한 세계는 현혹되기 쉽지만, 합리적 사고로 정밀하게 검토하여 발견한 이데아들은 그렇지 않다고 믿었다.

 

동굴의 비유는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영화 <매트릭스>를 통해 잘 나타난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꿈의 세계에서 깨어나 태어날 때부터 속아온 가상 세계를 나타내고 있다.

 

 

스웨덴 철학자 닉 보스트롬은 트랜스 휴머니니즘의 관점을 수용하며 우리의 유한성의 한계를 넘어 집단 이성의 힘을 증가시키는 포스트 휴머니즘의 경로를 추적하는 연구 활동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인간이라는 종은 세계적 재앙으로 실존적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첨단 과학 기술은 그와 같은 위기에서 우리를 보호하거나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부아르가 채택한 실존주의에 따르면 생물학적 본질은 인간의 한계를 규정하지만, 정체성까지는 결정하지 못한다. 즉 인간은 스스로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지만, 남성성과 여성성 자체는 사회적 산물이다. 사회적, 정치적 제도들이 성해석에 동기를 부여하지만 그와 같은 해석은 정체성과 가치를 책임지는 결정적이고 실존적인 선택을 통해 바뀔 수 있다. (77)

 

우리에게 <예루살렘의 하이이만>으로 한나 아렌트는 삶을 주제로 소개되고, <슈퍼 인텔리전스>로 집단 이성의 힘을 증가시키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연구 활동을 진행 중인 닉 보스트롬이 인간/자아 편에 소개된다.


러셀, 비트켄슈타인과 함께 해체에 이르는 철학적 담론의 길을 개척한 자크 데리다는 언어 편에 등장하고, 사랑3부작으로 유명한 알랭 드 보통과 트럼프의 출현으로 혐오가 확산을 경계한 <타인에 대한 연민>의 마사 누스바움을 사랑 편에 소개된다.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으로 무신론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슨은 신 편에 <죽음>의 셸리 케이건은 죽음 편에 소개된다.

 

철학에 관심을 가진 분 중 입문서를 고르고 있는 분이라면 <철학의 대답들>은 좋은 선택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열 가지 주제와 철학자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플라톤

시노페의 디오게네스

아리스토텔레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임마누엘 칸트

존 스튜어트 밀

프리드리히 니체

한나 아렌트

 

인간/자아

 

토머스 홉스

닉 보스트롬

르네 데카르트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미셸 푸코

찰스 테일러

캐서린 헤일스

 

지식/

 

데이비드 흄

에드문트 후설

에드먼드 게티어

앨빈 골드먼

엘리자베스 앤더슨

리처드 로티

마이클 폴라니

앨빈 플랜팅가

 

언어

 

고트로프 프레게

버트런드 러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마르틴 하이데거

윌러드 콰인

존 설

힐러리 퍼트넘

자크 데리다

 

예술

 

에드먼드 버크

에스텔라 로터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프리드리히 실러

먼로 비어즐리

아이리스 머독

아서 단토

자크 랑시에르

 

시간

 

플로티노스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존 맥태거트

엘레아의 파르메니데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앙리 베르그송

존 스마트

테드 사이더

 

자유 의지

 

에피쿠로스

존 로크

토머스 리드

로데릭 치좀

피터 스트로슨

데이비드 위긴스

토머스 네이글

피터 반 인와겐

 

사랑

 

마르실리오 피치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아네트 바이어

로버트 솔로몬

해리 프랭크퍼트

마사 누스바움

알랭 드 보통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보에티우스

토마스 아퀴나스

바뤼흐 스피노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폰 라이프니츠

찰스 하츠혼

앨런 와츠

리처드 도킨스

죽음

 

헤라클레이토스

루크레티우스

미셸 드 몽테뉴

알베르트 카뮈

버나드 윌리엄스

데릭 파핏

셸리 케이건

스티븐 루퍼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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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 - 일본군 강제징용자
김용필 지음 / 자연과인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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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강제징용자에 관하여

 

자연과인문에서 출판한 김용필 작가님의 <전범>은 일제 강점기 36년과 태평양전쟁으로 징용된 1,000만 명의 조선인에 관한 소설이다.

 

일제는 1,000만 명의 조선인 청장년들을 강제징용으로 징집하여 현역군, 학도병, 군속, 광산노동자, 군수품 제조공장, 위안부로 끌려갔다. 이 중 400만 명이 돌아오고 600만 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500명이 전범으로 처벌을 받았다. 더 통탄할 일은 돌아오지 못한 그들 중에 2,000여 명이 일본군 전쟁 영웅으로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되어 있다.

[ 전범 서문 중 ]

 

다른 기사에 의하면 야스쿠니 신사에는 일본의 침략전쟁에서 숨진 군인 및 민간인 2466,000여 명이 신사에 합사되어 위폐가 보관되어 있고, 이중 일제가 강제로 동원해 사망한 한국인은 약 21,000명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야스쿠니 신사에 추후 합사된 요시다 쇼인을 최고위로 모시고 있어 참배하고 공물을 보내는 행위는 그의 정신을 단 한 번도 버리지 않는 일본의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합사된 인물 중 독립운동에 가담한 분도 야스쿠니에 모셔져 있고, 반대로 현충원에는 친일 행각을 벌인 인물도 다수 모셔져 있어 최근의 파묘논란과 함께 법안 제정도 논의되고 있다.

 

이번 소설 전범은 특히 조부모 세대에 친일 행각을 벌인 자손들이 겪는 갈등은 보여준다. 당시 친일파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편승해 자연스레 기득권층으로 남을 기회가 생겼고, 막대한 재력으로 자손에게 양질의 교육 기회를 주어 지금까지 사회 지도층으로 활약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조상의 친일 행각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죄를 보상하고자 노력하는 후손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전범으로 판결받아 돌아오지 못한 분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처우해야 하는가?

 

야스쿠니에도 전범의 위폐를 따로 분리하자는 말은 곧잘 제기되지만 이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 소설은 관동군으로 끌려가 러시아군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의 찬 얼음 속에서 죽어간 10만 명의 조선인 청년과 태평양전쟁으로 희생된 600만 명 강제징용자들의 슬픈 애환을 잊지 말자는 안타까운 심정이 잘 나타난다.

 

소설의 시작은 지청천과 홍사익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당시 대한제국의 마지막 무관생도는 대략 50명 정도였다고 한다. 마지막 무관학교 생도 가운데 44명이 순종의 명으로 일본 육군중앙유년학교로 편입이 된다. 마지막 무관생도들은 도쿄 아오야마 묘지에 모여 통곡하며 다음과 같이 맹세했다고 한다.

일본이 가르쳐주는 대로 군사교육을 받고 훗날 조국이 부르면 독립전쟁에 나서자

[ 히스토리 블로그 중 ]

 

아오야마 묘지의 맹세를 같이한 지정천과 홍사익은 다른 길을 걸었다.

 

홍사익은 일본군 장교로 승승장구했고, 난징학살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고 필리핀 바탄에서 미군 포로 5만 영을 학살한 포로수용소장이었다.

 

당시 연합군 포로 7만 명을 잡아 110Km를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5만 명이란 포로를 학살하였다. 대부분 포로는 굶겨 죽였고 이동할 수 없으면 총살이나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

 

보르네오섬과 말레이반도에서도 죽음의 행진은 있었다. 일본군의 물밀듯이 영토를 확장했다. 필리핀 군도, 보르네오, 말레이반도를 점령한 일본은 수많은 포로를 잡았다. 일본에서는 포로로 잡히면 통상 자결하는 것이 일반적인 데 반해 연합군 포로의 형태는 일본군을 당황하게 했다. 너무 자연스럽고 떠드는 모습에 식량도 부족한 와중에 일본군이 생각한 아이디어가 포로의 수용소를 이동하게 하는 것이다.

애당초 동남아 지역을 100km 이상 행군을 시킬 때 사망자가 속출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홍사익은 필리핀 바탄의 포로수용소 소장이었다.

 

고지선은 자신의 조부 고준평이 조선총독부 고등 판사로 악랄한 친일 행각을 했다고 비판하며 조부의 죗값을 용서받으려고 징용자 보상청구 일을 자청했다.

 

김상혁의 조부는 홍사익 장군이 사랑했던 김현준 소령이다. 홍사익 장군은 김현준 소령이 와타나베의 팔을 자르고 도주했을 때 구해줬고 사또 마사노부에게 하극상으로 처형을 당할 때 구해준 은인이었다.

 

지선은 홍사익을 자신의 조부와 같은 악랄한 친일 행각자로 생각하고, 상혁은 지선의 조부는 악랄한 친일파지만 홍사익은 한국인 부하를 사랑한 인간적인 군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상혁의 도서 출간에 앞서 이를 저지하려는 일본은 남방군 장교의 사망 사건의 범인을 20년 전 상혁의 행방불명된 아버지 김강민이 범인이라 단정하고 상혁은 아버지의 행적을 찾아 나선다.

 

위안부로 끌려간 상혁의 할머니는 같이 위안부로 끌려간 친구를 만나지만, 그녀는 위증하는 간호장교를 죽이고 자신 역시 죽임을 당한다.

 

상혁의 할아버지 김현준 대위는 일본이 벌인 태평양전쟁의 주요 전장을 전전하며 당시 상황을 전한다.

 

홍사익과 이상우의 전쟁 중 수행하는 역할은 주목할만하다.

 

소설의 주인공이 들려주는 사연을 듣고 있으면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

징용되어 돌아오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BC급 전범으로 판결받고 심지어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어 있으면 너무도 억울하다.

 

일본군 강제징용자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벌인 태평양전쟁에 관심을 가진 분은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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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미술사 - 현대 미술의 거장을 탄생시킨 매혹의 순간들
서배스천 스미 지음, 김강희.박성혜 옮김 / 앵글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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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미술의 거장을 탄생시킨 매혹의 순간들

 

앵글북스에서 출판한 서배스천 스미 지은이 김강희 박성혜 옮긴이의 <관계의 미술사>는 현대 미술의 거장 마네와 드가, 마티스와 피카소, 플록과 드쿠닝, 프로이트와 베이컨이 서로 주고받은 영향이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내밀하게 추적한다.

 

퓰리처상 수상작가라는 명색에 걸맞게 교양서지만 한 편의 추리소설을 풀어가듯 이야기의 흡입력이 대단하다. 미술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19세기, 20세기를 빛낸 8명의 관계를 들을 수 있다.

 

서배스천 스미는 <워싱턴 포스트>의 미술 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이전에는 <보스턴 글로브>에서 미술 비평가로 일했으며, 같은 시기인 2011년에 퓰리처상 비평 부문을 수상했다. 2008년에도 같은 부문 차점자에 오른 적 있다.

[ 관계의 미술사 책날개 중 ]

 

서배스천은 2013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기타큐슈로 가는 신칸센을 타고 에드가 드가의 그림을 찾아간다. 미국에서 기타큐슈로 한 점의 그림을 찾아가는 여정은 어떤 기분일까? 기타큐슈에 머무르는 동안 나는 에드가 드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지도 몰랐는데, 역시 세상은 자신이 아는 경계 안에서 상호작용한다.

 

드가의 그림은 마네 부부의 그림이었고 놀라운 점은 그림의 오른쪽 한 켠이 잘려져 있었다. 오르세 미술관에 전시하는 인상파 화가의 작품에는 유독 절개 되어진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오래되고 보관을 잘못해 작품을 자른 줄 알았는데, 이번 드가의 그림에 구멍을 내고 자른 사람은 마네였다.

 

드가가 그린 마네 부부의 초상화를 받은 마네는 감추었던 부부의 비밀을 드가가 훤히 꿰뚫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마네는 부인 수잔 린호프와 부부로 지내는 동안 수많은 여성과 사이 좋게 지냈다. 그중 빅토르 뮈랑, 베르트 모리조와는 연인 관계였다.

 

마네는 상류층 부르주아였고, 수잔 린호프가 낳은 아들 레옹은 아버지가 마네인지 마네의 아버지 오귀스트인지 몰랐다고 한다. 저자는 마네의 집안을 생각하면 혼외자를 자식으로 들이지 않았던 당시 상류층 가문에서는 일반적인 사례라고 전한다.

 

인상파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네는 낙선재에 출품한 <풀밭위의 점심 식사>, <올랭피아>를 통해 비평가와 대중의 혹독한 비난에 시달린다.

 

1874년 클로드 모네가 <인상, 해돋이>를 전시회에 발표함으로써 규정된 인상주의는 서양 미술사에 가장 큰 변혁을 이룬 화파로 19세기 아카데미 회화의 진부함과 천편일률적인 주제에 반발해 당대의 현실을 표현했다.

 

획기적으로 당대의 현실을 전통적인 기법으로 표현하면서 인상주의의 선구자가 된 마네와 드가는 친구이자 동료였지만 작품에 있어서는 라이벌이었다.

드가는 마네가 가진 현실을 반영한 과감한 표현을 부러워했고, 마네는 드가가 가진 드로잉 실력에 감탄했다.

 

두 사람은 빛에 따라 변하는 사물을 표현하는 인상주의 방식과 당대의 현실을 주제로 삼았지만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

 

마네는 새로운 미술을 열기 위해 전통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당대의 현실을 표현하기 위해 거장들의 작품을 연구했다. 그는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도 주제에 있어서는 전통을 답습하지는 않았다.

 

마네는 벨라스케스를 따라 습작하길 좋아했다.

 

 

에드가 드가(1834~1917)는 인상주의 화가 중에서도 고독과 소외, 그리고 대중적인 즐거움을 표현해 인상주의의 선구자가 되었다.

 

드가는 특히 인상주의 화가들이 관심을 가졌던 자연스러운 빛의 효과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일시적으로 보이고 사라지는 현장감을 표현해 당대의 생활을 탁월하게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드가 역시 상류층 출신이고, 루브르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의 그림 앞에 마주한 마네와 드가는 서로 호감을 느꼈다. 드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화가는 마네이지만 작품을 훼손한 사건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틀어졌고, 후일 사건은 무마되었다. 하지만 둘의 사이는 결코 예전과 같아지지 않았고, 10여 년 후 마네는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 드가는 괴팍한 노인으로 고립되어 살다가 삶을 마쳤다. 드가는 예술적 상업적 성공을 거둔 후, 자신이 존경하던 앵그르, 들라크루아의 작품과 젊은 인상파 화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었다.

 

물론 마네의 작품도 공개되었는데, 유화 여덟 점과 드로잉 열네 점 그리고 예순 점 이상의 판화 등의 놀라운 규모였다.

 

인상파 화가의 그림이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많이 소장하고 있는 이유도 흥미로운데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드가가 소장한 작품이 우수한 품질임을 친구 로저 프라이를 통해 확인하고 재정난에 처한 런던 국립 박물관이 경매에 참여할 수 있도록 2만 파운드의 일회성 보조금을 지원해달라며 영국 재무부를 설득했다.

 

드가의 컬렉션이 경매가 열리는 날, 바깥에는 폭탄이 떨어져 경매참가자의 다수가 안전을 위해 경매장 밖으로 피신했다. 케인스와 친구였던 찰스 홈스는 제자리를 지켰고 상당한 작품을 런던으로 가져와 영국 국민이 혜택을 누리도록 했다.

 

드가가 마지막까지 마네의 그림들을 소장하고 있었던 것은 그의 예술사를 대변하는 증거이다.

 

 

그들의 천재성을 깨운 친밀함의 영역을 섬세하게 포착한 가장 지적인 예술사

[ 아담 그랜트 ]

 

 

<관계의 미술사>의 주인공은 남성 화가 8명이지만, 이들의 역경을 극복하고 예술의 경지를 드높이는데 여성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또한 그들은 탁월함을 믿고 지지한 후원자들의 지원은 이들 화가가 재능을 싹틔우는 자양분이 된다.

 

불현듯 당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고흐의 처지가 떠올랐다. 이 외롭고 고통스러운 화가의 고단했던 예술의 길이 떠오는르건 책에서 소개하는 화가들은 후원자의 믿음이 절대적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티스와 피카소의 경우, 펜을 늦게 잡았던 마티스에 비해 피카소는 어려서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이들을 만나게 한 스타인 가문의 사람들이 관심이 피카소에서 마티스로 옮겨질 때 피카소는 불안했다.

 

마티스는 아내의 부모님이 파리를 넘어 프랑스를 뒤흔든 금융사기에 연루되었다는 죄목으로 결국 길거리에 나 앉게 된다. 피카소의 트라우마는 13살 시절 여동생의 죽음이다. 동생이 디프테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무신론자였던 피카소는 신에게 기도하고 맹세한다. “자신의 동생을 살려준다면 자신은 두 번 다시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안타깝게도 동생이 사망하고 피카소는 신이 자신의 그림을 선택했기 때문에 동생을 데려갔다는 믿음이 자라난다.

 

피카소가 평생에 걸쳐 젊은 여인과 어린 소녀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피카소의 예술이라는 제단 위에서 희생자의 역할을 맡게 했던이유도 이 일화가 설명해준다고 리처드슨은 말한다.

 

마티스와 피카소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압박하기도 했으며 서로 다른 매력을 인정했다.

 

 

 

잭슨 폴록은 알코올 중독자였고 매일 밤 뉴욕의 거리를 휘청거리던 사람이었다. 이 걷잡을 수 없던 화가는 리 크래스너를 만나고 인생이 급반전한다. 당시 뉴욕에서 추상화가로 활동하던 그녀는 모두가 포기했던 잭슨 폴록을 뒷바라지하기로 했다. 그 후 그녀의 노력으로 잭슨 폴록은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 된,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 그리고 콜렉터이자 갤러리스트였던 페기 구겐하임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모인 셋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 후에 최고의 화가가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화가는 루치안 프로이트와 프랜시스 베이컨이었다. 베이컨의 놀라운 작품에 관한 내용이다. 성적 정체성에 대한 갈등으로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의 고통을 드러내는 작품은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회화>, <두 사람>이 그려내는 인간 본연의 날 것으로 표현되어 강렬함을 전했다.

 

이들 각각의 관계는 익숙한 하나의 역학 관계에 놓인다. 한 사람이 예술적 또는 사회적 면에서 부러울 정도로 뛰어난데 반해, 다른 한 사람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정체된 관계 말이다. 한 사람이 기꺼이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식이라면 다른 한 사람은 신중함이 지나치거나 이런저런 완벽주의가 뒤섞여서, 혹은 근성이 있거나 심리적으로 가로막히면서 뒤처지는 식이었다. 이렇게 능숙하고 대담한 동료와 마주하면서 다른 한 사람은 깨달음을 얻고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것들로부터 해방된다. 가능성의 틈이 열리는 것이다. 그리고 창작뿐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획득하고,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 관계의 미술사 책날개 중 ]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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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미술사 - 현대 미술의 거장을 탄생시킨 매혹의 순간들
서배스천 스미 지음, 김강희.박성혜 옮김 / 앵글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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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좋아하시면 강력 추천합니다. 현대 미술의 거장을 탄생시킨 매혹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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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사이에서 - 걸프 전쟁, 소말리아 전쟁, 테러와의 전쟁, 시리아 전쟁 세계통찰 시리즈 16
한솔교육연구모임 지음 / 솔과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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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걸프 전쟁, 소말리아 전쟁, 테러와의 전쟁, 시리아 전쟁

 

솔과나무에서 출판한 한솔교육연구모임의 <세계통찰 미국 : 전쟁과 평화 사이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과학 전쟁인 걸프 전쟁, 소말리아 어부가 해적이 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소말리아 전쟁, 테러와의 전쟁인 이라크 전쟁, 그리고 현재 많은 난민이 생기고 있는 시리아 전쟁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한솔교육연구모임으로 역사연구모임의 책에는 일종의 기대감이 있다. 아무래도 그룹으로 논조를 정해 책을 저술해 집단지성으로 여러 의견을 모은 관점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개인이 필자로 참여한 책은 저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지만 모임에서 저술한 책은 그런 점에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임에서 저술한 책에도 편향된 관점을 전달하긴 하지만 좀 덜하다는 느낌이다.

 

한솔교육연구모임에서는 미국과 중국을 시작으로 주요 대륙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역사, 문화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시리즈를 기획했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국가인 미국에 관한 책이고, 16권 중 15권에 해당하고 전쟁 편 4권 중 세 번째 책이다.

 

가장 큰 특징은 도감과 사진 자료를 많이 수록하고 있어 글로 읽었을 때 궁금한 시각적인 궁금증을 해소한다는 점이다. 알 자르카위,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생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라크 전쟁

 

이라크를 생각하면 사담 후세인을 떠 올릴 수밖에 없다. 이라크의 수재 출신으로 나세르의 영향을 명문 카이로 대학에서 수학했고, 석유수출기구의 탄생에 크게 이바지한 사담 후세인은 수니파였다.

 

이란은 시아파가 90% 이상을 차지하는 시아파 맹주 국가이고, 이라크는 시아파가 60%, 수니파가 40%인 시아파 다수 국가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의 비율이 엇비슷한데다 지도자인 후세인이 수니파 출신이라 이라크는 종파에 따른 갈등이 잠재해 있었다.

 

1979년 이란의 팔레비 왕조의 붕괴와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등장으로 강력한 시아파 중심의 신정국가 체제로 전환한 이란과 이라크의 갈등을 불 보듯 뻔했다. 호메이니가 이라크 내 시아파를 지원해 시위를 벌이자 사담 후세인은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담 후세인이 내세운 카드는 선제공격이었다. 이는 미국이 이란의 팔레비 왕조의 붕괴로 이란을 잃어버렸기에 사담 후세인에게 전쟁을 부추긴 측면도 있었다. 이스라엘이 채택한 공군을 활용한 선제 타격을 시도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한 이라크는 이란이 차츰 공세를 취해 수세에 몰렸다.

 

더구나 이스라엘 공군의 오시라크 원자력 발전소 타격으로 이란 공격에 집중되었던 이라크 공군은 이스라엘 방어로 양분되었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사담 후세인은 패전을 면하기 위해 1982년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하고 이란 내 점령지에서 철수를 시작했다.

 

쿠웨이트는 이란 이라크 전쟁 동안 같은 수니파 출신 지도자인 사담 후세인을 지원하지만, 이라크와 쿠웨이트 국경 지역에 있는 루마일라 유전의 석유를 이라크 몰래 시추해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에 이라크는 19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걸프 전쟁이 발발했다.

 

기존의 전쟁과는 달리 걸프 전쟁은 하이테크 무기의 시험 무대였다. 테드 터너의 CNN은 전투 장면을 24시간 실시간으로 보도해 전 세계 시청자를 충격에 빠뜨렸다.

 

 

소말리아 전쟁

 

1960년 소말리아 공화국이 탄생한 이후 통솔력 있는 지도자가 등장하지 않아 소말리아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습니다. 1969년 군인 출신 사이드 바레는 혼란을 틈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뒤 철권통치를 이어 갔다. 사회주의에 호감이 있었던 바레는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과 손을 잡으면서 미국과 적대 관계가 되었다.

 

바레는 정부 요직의 인사 파동이 있어 이를 타개할 정책으로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선택했다. 1977년 바레는 에티오피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오가덴 지역을 잠시나마 점령했다. 하지만 믿었던 소련의 배신으로 우위는 오래가지 못했다.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소련은 에티오피아에게 더 좋은 무기를 제공해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고 바레는 소련과 관계를 끊고 미국과 손을 잡았다.

 

1991년 반군이 수도 모가디슈로 밀려들자 겁에 질린 바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국외로 도망쳤다. 이제부터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각 부족 간 내전이 소말리아를 집어삼켰다. 내전은 소말리아를 석기 시대로 돌려놓았다.

 

1991년 바레 정권이 무너지면서 소말리아 국민을 지켜 줄 정부가 사라지자 외국의 대형 어선이 아무런 제약 없이 소말리아 영해를 무단으로 침입했다. 또한 유럽은 산업 폐기물을 수출해 주민들은 알 수 없는 질병으로 고통받기 시작했다.

 

환경 규제가 심한 유럽에서는 산업 폐기물을 버리는데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그러나 무정부 상태인 소말리아에서 군벌들에게 약간의 돈을 지불하면 산업 폐기물을 값싸게 내다 버릴 수 있었다.

 

소말리아는 출산율이 높고 일자리가 없다 보니 청년 중 제대로 된 일자를 가지고 있는 이가 거의 없는 지경이었다. 이들은 무기력하게 삶을 살기보다 해적이 되어 단번에 큰돈을 버는 것을 꿈으로 삼으면서 소말리아에는 해적이 되려는 사람이 넘쳐났다.

 

해적질을 위해 사람과 돈이 모이자 해적질은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군벌 역시 너나 할 것 없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해적질에 나서면서 소말리아에서 해적질은 최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이라크 전쟁

 

미국은 1991년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자국의 부활을 지구촌에 알렸다. 이라크는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이전의 풍요로운 삶을 이제는 누리지 못했다. 2000년이 되자 사담 후세인은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기 위해 석유 결제 대금을 달러화 대신 유로화로 바꾸려고 했다. 그는 미국에게 치명타를 주기 위해 세계적인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와 이란을 끌어들였다.

 

사담 후세인은 석유 수출 대금을 유로화로 받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의 국가 부채 규모가 2조 달러를 넘었고, 무역 수지는 매년 5천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적자를 보고 있었다. 만약 석유 대금을 달러화가 아닌 다른 통화로 결제하는 일이 벌어지면 미국은 막대한 부채를 상환할 길이 없어 국가 부도 사태에 이를 수 있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을 반드시 제거해야 했다.

 

그러던 중 아흐마드 찰라비라는 은행가가 후세인을 제거하고 자신이 권좌에 차지하려고 했고, 그는 이라크에 생화학 대량 살상 무기가 있다는 정보를 흘렸다.

 

미국이 내세운 명분은 이라크가 보유하고 있는 생화학 대량 살상 무기를 찾아내 이를 통제한다는 것이었다. 전쟁을 반대하는 세계적인 여론도 많았지만,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라크를 침공해 20일 만에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장악하고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종전 선언 후 이라크를 구석구석 뒤졌지만, 생화학 대량 살상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이라크를 공격한 것일까?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석유 자원 때문인데, 당시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석유매장량을 가지고 있었다. 베네수엘라의 저품질 석유와 달리 고품질이고 채굴도 비교적 쉬운 편이라 이라크의 석유 이권을 차지하기만 하면 그야말로 황금어장을 가지는 셈이었다.

 

다른 이유로는 미국 내 군사 복합체의 경제적 이익 때문이었다. 전쟁은 무기나 군사 장비 등을 만드는 업체에는 천문학적인 이익을 가져다주고, 군수업체들은 정부와 손을 잡고 무기를 판매한 이익을 나누었다. 매년 총기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이 학교나 거리에서 죽는 일이 발생해도 미국 정부가 총기 판매를 금지하지 못하는 이유가 미국 정부와 무기 업체, 총기 제작 업체들 전부 정경 유착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이라크를 장악해 중동 지역에 군사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21세기 전 세계의 패권을 장악할 군사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하고자 미국 정부는 그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동맹국들까지 전쟁에 끌어들였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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