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매 1 - 고우영 원작 동화
고우영 지음, 박신식 엮음, 이관수 그림 / 한국경제신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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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민중의 삶을 이해하는 디딤돌이 되길] 

 

작년인가 텔레비전에서 방송된 일지매가 인기몰이를 한 적이 있다. 아이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 일지매를 무척 재미있게 보았다. 그리고 나서 한번 책을 권해줘야지 했었는데 마침 이제야 일지매 책을 아이들 손에 주게 되었다. 

현재 모 방송국에서 하고 있는 일지매의 원작동화라고 해서 유심히 살피니 작년에 보았던 일지매와 내용이 다른 부분이 눈에 뜨인다. 일지매가 태어나서 청나라에서 지내다가 조선으로 돌아온다는 설정부터 다르다. 이렇게 처음부터 다른 이유가 뭘까 하니 일지매라는 인물에 대한 정확한 자료가 없기에 여러가지 다른 설정을 하게 되었기 때문인 듯하다. 이번에 아이들과 읽은 책은 고우영원작의 동화라고  하니 다른 책들보다 훨씬 기대되고 신빙성 있어 보인다 

지금 부모세대 가운데 고우영의 만화 한번 보지 않고 자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남학생들의 경우는 그의 만화를 더 많이 보았을게다. 이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고우영 만화를 바탕으로 아이들에게 동화형식으로 풀어쓴 글이다.  

첫부분을 읽으면서 기존에 보았더 일지매와 조금 다르다고 고개를 갸웃하던 아이들은 이내 홍길동과도 비슷하다고 한마디씩 거든다. 우리는 인물 중심으로 일지매이든 홍길동이든 말을 꺼내지만 이들 모두 신분제도가 있던 조선시대에 신분을 뛰어넘지 못하기에 약한 민중들의 편에 서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의적활동을 했던 이들이 아닌가? 

물론 비슷한 내용이 현재 텔레비전에서 방송되기는 하지만 역시 책이 주는 효과는 틀린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보여주는 화면보다 더 많은 상상을 하게 되고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책을 통해서 아이가 단순히 일지매의 스토리를 꿰는 것보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신분제도의 폐단과 약한 민중들의 삶을 이해하는 한 디딤돌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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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하고 쫀득~한 세계사 이야기 3 - 산업 혁명에서 21세기까지 생각이 자라는 나무 15
W. 버나드 칼슨 지음, 이충호 옮김, 최준채 감수 / 푸른숲주니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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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달로 접근하는 객관적인 세계사] 

 

말랑하고 쫀득한~이라는 재미난 수식어가 붙은 세계사 이야기란다. 푸른숲에서 나온 청소년 교양 도서를 살피니 이런 수식어가 붙은 책이 여러 권 보인다. 세계지리와 과학, 그리고 세계사 이야기에 이런 수식어가 붙은 걸 보니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좀더 쉽게 풀어주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려운 세계사가 정말로 말랑하고 쫀득하게 다가올까?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책검색을 해보아도 한국사에 대한 책은 저학년부터 볼 수 있도록 학습만화부터 주제로 접근하는 책까지 많은 책들이 나와있다. 이에 비하면 세계사책은 많이 나와있다 하더라도 한국사에 비해서는 그 수가 적기도 하고 서양서를 그대로 옮겨오는 부분도 없지 않아서 새로운 책이 나오면 더 주의깊게 살피게 되는 것 같다. 

영국의 옥스퍼드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생각하는 세계사 책이라고 한다. 카피 문구를 살피니 사건과 연도만 외우는 세계사는 가라고 당당히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외우기 중심이나 사건 나열이 아니라 이해를 돕겠구나 싶은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그렇지만 정작 책을 읽으면서는 다른 부분에서 새로움을 찾았었다. 그것은 대부분의 역사서가 인문학쪽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는 것과는 달리 이 책에서는 인류가 발달해가는 과정을 역사의 발전과정과 연관시켜 논리적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인류의 기술 발달이라는 과학적인 면이 주가 되어 인류의 변화 과정을 살피게 되니 자연계 쪽에서 바라보는 세계사라는 신선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 것 같다. 

또 한가지는 세계사라는 것은 서양 사람들, 특히 강대국에 의해서 기술된 승자의 역사라는 인식이 없지않아 있었다. 그래서 세계사를 볼 때는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책을 더더욱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의 경우는 서양 학자들에 의해서 쓰여지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우월함이나 편협한 관점에서 머물지 않고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이것 역시 기술이라는 과학적 발달을 근거로 인류사를 풀었기 때문일까? 청소년 층을 겨냥해서 나온 책이라고는 하지만 세계사에 어려움을 느끼는 성인들 또한 충분히 읽고 만족한 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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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님 달님 방방곡곡 구석구석 옛이야기 1
박영만 지음, 원유순 엮음, 남주현 그림, 권혁래 감수 / 사파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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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 가까운 전래동화를 읽어보자~]  

 

특별히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른이 되어서 그림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단 엄마가 되어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른이 되어서 그림책을 접하게 되는 첫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로 어른이 되어서야 그림책 읽는 즐거움에 푹 빠져있고 그림책의 묘미를 느끼는 어른이다. 

유아기 때 많이 접하게 되는 장르 중의 하나가 전래동화이다. 아이들은 유독 옛날이야기라고 하면서 전래동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각 출판사마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다양한  그림으로 전래동화를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 책을 고를 때는 그림체를 주로 보고 선택하게 되는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사파리에서 나온 방방곡곡 구석구석 옛이야기 시리즈를 대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한가지 알게 되었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오는 전래동화에도 원전에 가까운 작품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항일시대를 거치고 서구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원전의 형태가 많이 변형되거나 외곡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파리에서는 이런 변형된 작품이 아닌 원전에 가까운 전래동화를 아이들에게 들려주고자 독립운동가로 전래동화의 원전을 모으고자 노력했던 박영만 님의 <조선전래동화집>을 기초로 방방곡곡 구석구석 옛이야기 시리즈를 만들었다고 한다. 아..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동안 생각없이 읽어주었던 우리의 전래동화도 아이에게 제대로 선택해서 읽어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첫번째 권으로 나온 [해님 달님]은 박영만 님의 글을 원작으로 아기자기한 삽화를 선보이는 작품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별반 다른 부분은 없으나 이 작품에서는 그림체가 참 마음에 든다. 아이들의 그림책의 경우 너무 선명하고 화려한 색상이 많으면 처음에는 좋지만 자꾸보면 눈이 피로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이 작품에서는 톤을 조금 낮추고 화려한 색상보다는 약간은 수묵채색화의 느낌이 나고 남매의 엄마를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호랑이를 단순하고 희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고개를 넘을 때마다 호랑이에게 팔 다리를 하나씩 내주는 엄마의 신체를 표현한 부분도 자극적이거나 끔찍하지 않게 받아들이면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태초의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대한 우리 옛이야기. 둥근 달 속에서 호랑이를 향해 메롱을 하고 있는 오빠와 해가 되어서 부끄러워하는 누이, 드러누워 담배피는 호랑이의 모습까지 정말 아기자기하고 다정한 이야기를 연출하고 있는 맛깔스러운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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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말을 죽였을까 - 이시백 연작소설집
이시백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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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사투리 속에 담긴 농촌의 현실]

 

누가 말을 죽였을까?라는 제목도 흥미롭게 다가왔지만 낯선 이야기꾼인 이시백이라는 작가가 농총소설을 썼다는데 더 흥미로움이 느껴졌다. 농촌소설..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중고등학교 교과서 속에서 농촌계몽소설로 대부분 대했을 것이고 우리가 읽는 일반 소설 중에는 농촌을 그린 소설을 만나기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농촌소설이라면 시대를 타고 계몽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거나 혹은 어려운 농촌 생활, 지주와 소작인, 정부와 농민의 대립 같은 것이 생각난다.  솔직히 밝은 모습보다는 힘든 농촌생활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현실적인 상황 때문이겠다. 그러나 이 책의 표지를 보면 이런 생각은 싹 사라진다. 무척이나 밝은 노란빛의 표지를 보고 있으면 암담한 농촌의 현실보다는 다른 모습이 그려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모두 11편의 농촌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연작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서는 한 마을의 한집 한집을 들여다보는 느낌이 든다. 같은 마을에 살고 있지만 개개인의 집이 살아가는 모습이 다르듯 이 작품은 그런 느낌으로 읽게 되는 작품이다. 그렇게 다른 모습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은 모두 농촌마을에 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살아가는 모습이 도시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고 삶의 터전이 농촌이기에 이들이 갖고 있는 문제나 상황은 모두 그곳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각 집안의 안방에서 소소한 이야기를 살짝 들여다보는 느낌의 재미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작가의 구수한 입담이 맛깔스러운 사투리와 함께 하기때문에 더 진한 맛이 베어나는 것 같다.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은 때문인지 아니면 이런 글이 익숙하지 않은 때문인지 처음에는 글을 읽는데 약간 혼란스러웠다. 그러다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사투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해대는 등장인물을 조금씩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리고 왜 이시백이라는 작가를 '이야기꾼으로서의 소설가'라고 말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농촌의 현실은 정말 넘쳐나는 화기애애하지만은 않다. 분명 도시보다는 훨씬 소박한 사람들이 정으로 뭉쳐있는 곳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이들이 살아가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런 어려움들이 이 소설에도 곳곳에 묻어나지만 표현하는 방식이 어둡지는 않다. 홈쇼핑에 매달려 소소한 물건을 사들이는 아내의 모습이 못마땅해 택배를 다시 돌려보내는 남편, 외국인 아내의 요상한 행태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묵묵히 바라보는 남편, 데모를 하다가 자신들에게 약간의 이익이 되는 길을 택해 살짝 배신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농촌에서 현재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상황들이 보여진다. 

구수한 입담과 사투리 때문에 책읽는 맛을 느끼지만 솔직히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만은 않다. 우리 농촌의 삶이 그리 밝지만은 않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외국농산물은 물밀듯이 들어오지만 농가나 축산업가가 살아남기 위한 대책 하나 변변하게 세우지 못하고 오로지 도시 계발과 부동산활성화만 부축이고 있는 정부때문에 더더욱 마음이 편지 않다. 도시에 살면서 마치 먼곳의 이야기를 대하듯 그렇게만 받아들이게 되는 농촌의 이야기, 실제로는 그리 먼 곳의 이야기도 아니고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도 아닌데...진짜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작품을 읽으면 뭐라고 할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현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겠지..싶다. 그렇게 우리는 문학작품으로 뿐 아니라 현실로도 작품을 대할 줄 알아야겠다. 밝은 농촌의 이야기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오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안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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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호 아이들은 왜 학교가 좋을까? - 장주식 선생님과 하호분교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장주식 지음 / 철수와영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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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호 아이들의 가르침 먼 미래까기 이어지길....] 

 

시골 분교에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교사의 이야기는 언제 읽어도 마음 따뜻하다. 그런 따뜻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다. 나 역시 도시에 사는 한 사람이고 나의 자녀들도 도시의 학교를 분주하게 다니는 많은 아이들 가운데 한 일원이다. 난 모범생이었던가? 선생들에게 핀잔듣지 않고 지냈으니 얼추 모범생이었는지 모르지만 늘 가슴 한 구석이 텅 비어있는듯 혹은 떠도는 활기를 그리워하는 듯...나 역시 입시 지옥에서 허덕이던 도시의 한 학생이었다. 그래서인지, 부모가 되어서 아이를 키우면서 교육다운 교육을 하는 사람들의 소식에 목이 메인다. 현실 속에서 그들의 삶이 그다지 보편화 되지 못해서 더더욱 그러하리라... 

 아침이면 6시 즈음에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제일 먼저 라디오를 켜고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조금은 세상 돌아가는 폼새를 알자고 듣는 아침 방송에서 일제고사를 보지 않았다고 징계를 당한 시골초등학교장의 소식이 들려왔다. 일제고사..시작된지 얼마되지도 않은 일제고사가 초등학교에서부터 서열화를 시작하는구나 싶었는데, 이를 실시하지 않은 교사는 물론 학교장까지 이렇게 징계를 하는 행태까지 보인다니 가슴이 답답해지는 아침이었다.  그리고 나서 손에 든 책이 [하하 아이들은 왜 학교가 좋을까?]였다. 아이들 10중에 9은 학교가 재미없다고 하는데 학교가 좋다고 하는 아이들이 있으니 이 아이들은 왜 학교를 좋아할까 ? 어떤 이유에서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하호의 아이들은 선택받은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부러웠다. 부모든 교사든 아이들에게 교육을 하면서 가장 크게 가슴에 담은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보지 않을 수없다. 예전에야 학교에서 배운게 다라고 여겼지만 지금은 학교는 거쳐가는 곳이고 배우는 것은 학원에서 선행으로 그리고 평가는 학교의 시험을 통해서라고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학교가 주가 아니라 거쳐가는 관문과 최총 어느 대학을 나왔는가가 인생을 좌우하는 무시할 수 없는 잣대가 되었으니 그렇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다 알고 있다. 마음 한구석에 허한 부분은 바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육이 너무 부실한데서 온다는 것을... 

 자연에서 하늘을 벗삼고 땅을 벗삼아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글로 담아내는 하호의 아이들, 시험을 통한 경쟁보다는 나와 다른 표현을 하는 벗을 칭찬하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배워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슴이 찡해왔다. 이런 것이 교육인데 21세기의 최첨단을 살고 있다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배우게 하는가....우리 나라의 교육을 어디로 가는가...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호의 아이들과 그들을 자연의 순리대로 가르치는 교사의 일상을 보면서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와 미래 중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 눈 앞에 보이는 현재인지 혹은 100년이고 1000년이고 이어줄 미래의 끈인지...하호의 아이들에게 주었던 그 가르침이 빠르게 돌아가는 생활에서 소멸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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