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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항하는가 -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
세스 토보크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침묵이 아닌 표현의 필요성에 절감]
"뉴욕타임스 전격 연재 중단" 이라는 문구가 눈에 뜨인다. 어떤 식의 내용이 실렸을지 미루어 짐작할만 했지만 단지 짐작일 뿐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모두 미루어 짐작하는 직감이 발달해있다. 그렇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런 사람 가운데 한 사람으로 직감을 떠나 좀더 구체적으로 지구상에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에 대해 알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급진적이고 정치적인 예술가인 세스 토보크먼은 내겐 낯선 인물이다. 그의 약력을 통해 반세계화와 반전 운동을 펼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과 전세계 시민운동가들이 그의 만화를 포스터와 프래카드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아닌 시민의 편에서 어찌보면 무시되는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운동하고 있는 시민운동가들이 그의 편을 든다는 것만으로도 신뢰를 보내게 된다.
굵직한 선에 검은 색과 흰색을 사용하고 때로는 강렬한 붉은 색으로 핏빛을 연상하게도 하는 그림들. 사람들의 표정은 섬세하지만 강렬한 분노와 욕구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단 한번만 봐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토보크먼 만화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시민운동가들의 시위에서 쉽사리 그의 그림을 찾아볼 수 있는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다.
단지 책장을 넘기면서 그림으로부터 받는 강렬한 인상을 뒤로 하고, 그의 만화가 담고 있는 저항정신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나처럼 정치와 사회상황에 민감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쉽사리 알 수 있도록 자세하고 복잡한 것보다 전달하고자 하는 상황에 대해서 간단하고 명확하게 설명한다. 그의 글에서 찾을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국가와 개인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국가의 이익이라는 명목하에 개인이 누려야 할(이것은 인권과도 연관된다) 권리에 대해 교묘하고 철저하게 유린하는 현장을 포착한다. 여기서 말하는 개인은 권력층이나 부유층과는 대비되는 사회적 약자가 해당된다. 마치 내 일은 아닌듯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결국 이익을 얻는 몇몇을 제외한 모두가 사회적 약자이면 부당함을 당하는 자신임을 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토보크먼은 강렬하게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국가와 다국적기업 등에 항변하고 있다.
주변에서 흔히 듣던 구조조정의 실체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세계은행이나 IMF는 1970년대 빈곤국가에 많은 대출을 했다. 그러나 이런 대출은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환경파괴를 자행하게 되고 지금은 새로운 빚을 안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 그로인해 대출국은 다국적기업에 구조조정을 허락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이자율이 옾아지고 노조는 탄압되고 천연자원은 팔려나갈 수 없는 악순환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경제 정책의 일환으로 구조조정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이면을 살피고 우리의 미래를 그린다면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쓰러져가는 다른 기업을 사들이는 기업으로 유명한 사모펀드 회사인 칼라일 그룹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기업의 이윤밖에는 없다. 전쟁을 하든 사람이 얼마나 죽어가든 그것은 관심 밖이다. 그런 기업과 무관하지 않은 인물이 바로 부시와 오사마빈라덴이다. 그들의 석유를 둘러싼 이윤다툼이 결국 이라크전쟁을 발발하게 했다는 비난에 칼라인 그룹과 부시정권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국가와 권력의 이득을 위한 개인의 희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은 재정적자를 이유로 8곳의 소방관을 폐쇄한다는 정책에 브루클린 시민의 항쟁이나 이스라엘 국가가 네게브의 원주민인 배두인에게 구획을 정해 살게 하거나 마을에 거대한 발전소 유해성 쓰레기 매립지로 사용하면서 슬럼가로 만드는 일련의 행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런 이스라엘에 충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군인이 된다는 배두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비합리적인 이스라엘의 처사에 분노감이 인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항쟁은 나체의 힘이었다. 아이들 책을 통해서 케냐에서 나무를 심는 여인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왕가리로 알고 있었는데 그녀의 나무심기는 이유가 있었다. 케냐의 독재자가 농작물 대신 다국적기업이 원하는 커피재배를 강요하고 이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다국적기업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왕가리는 이에 항거해서 여인들과 농작물을 심고 저지하는 세력을 향해 나체시위를 하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여성의 나체를 보여주는 것을 최고의 저주를 퍼붓는 행위라고 한다. 이렇게 시작된 아프리카 여성의 나체시위는 다국적기업의 횡포에 그녀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용감한 시위였다. 가장 원초적이면서 솔직하고 진심이 담긴 그녀들의 시위에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그런데 세브런에서는 이런 여성들의 나체시위를 저지하기 위해 성폭행까지 감행되었다고 하니 문명과 개발을 가장한 거대 기업과 국가의 탐욕에 분노를 느낀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이라는 단어에 잠시 당황했다. 토보크먼이 지칭하는 우리는 미국인들이어서 미국상황이라는 것을 잠시 잊고 우리나라의 상황을 생각하다 돌아오곤 했다. 그러면서 토보크먼이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 우리나라의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인식하게 된다. 일자리 창출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4대강 개발이 그러하고, 항거하는 사람들을 무참히 저지하는 과정에서 목숨까지 앗아가버린 용산개발상황이 그러하고, 지금도 구조조정을 통해 잘려나가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생기니 말이다.
그러나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한탄이 아니다. 이런한 구조 속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니다"라고 말하고 항변하는 행동하는 태도가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작은 힘이라도 모이면 큰 힘이 되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미비한 변화가 결국 나비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토보크먼의 작품을 통해서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지만 가장 큰 배움은 역시 침묵이 아닌 표현의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이다. 그것이 촛불을 밝히는 시위이든, 혹은 인터넷에 글을 남기는 것이든, 책을 쓰는 것이든 침묵보다 우위에 있음이 분명하다. 자신의 경력을 인정받기 위한 표현보다 더 중요한 표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