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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암살 미스터리 3일 1
이주호 지음 / 예담 / 2010년 7월
평점 :
[역사 속에 숨겨진 진실에 대한 또 다른 상상의 힘]
주말에 왕릉에 다녀올 기회가 생겼다. 서울을 벗어나 파주에 있는 서오릉과 동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의 원에도 다녀왔다. 평상시에 웬만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스스로 왕릉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때마침 도서관 행사로 열린 답사에 해설가 선생님과 동참했기에 이런 기회가 생긴 것이다. 동이라는 드라마 덕에 사람들은 숙종과 인현왕후, 장희빈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드라마상에서야 주인공인 숙빈최씨를 순하고 후덕한 인물로 그리지만 실제로 그러지 않았음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치열한 궁중 암투에서 살아남으면서 희빈 장씨의 눈앞에서 잉태까지 하고 왕자를 생산했으니 어지간히 독한 인물이 아니겠는가?
평소에는 비공개인 숙빈최씨의 원에는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된 때문인지 수풀도 무성하고 인적이 드물었다는 느낌이 선명했다. 궁중에서도 가장 낮은 계급이었던 무수리출신이었던 숙빈 최씨는 후에 임금이 된 영조의 어머니였다고 하더라도 왕후의 신분으로 상승되지는 못했다. 미천했던 그녀의 신분에서 숙빈으로까지 책봉되면서 아들에 의해 잘 가꾸어진 원까지 조성된 것만해도 영조의 노력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녀의 무덤 앞에서 왕과 신하의 권력의 줄다리기를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 나라의 왕과 그 왕을 받드는 신하 ,표면적으로 왕의 권세가 높은 듯하지만 때로는 왕까지 갈아치울 만큼 개미군단의 힘을 발휘했던 신하들의 파벌은 실로 대단했다.
사도세자와 영조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조선왕조역사의 가장 큰 사건으로 남아있다.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담아 죽였으니 세상에 이런 변이 어디있겠는가? 이 작품은 조선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던 사도세자의 죽음 전 3일을 둘러싼 정치적 상황을 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거대한 미스터리극으로 끌고 가고 있다. 책을 대하기 전까지는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단순히 노론세력과 남인 세력의 다툼에서 남인이 패한 것 정도로만 생각했지 어떤 각본이 있을 것인가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그러나 작가의 상상력 덕분에 단순한 죽음을 너머 권력의 대립에 대해 좀더 날카롭게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
영조는 늘 독살에 대한 공포를 안고 살았던 인물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신분에 대한 열등감, 경종 독살설에 대한 루머, 노론의 기세에 대한 경계 등 그의 주변을 둘러싼 정세에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데 반면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등극을 도왔던 절대세력인 노론과는 상반되는 남인, 소론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영조 입장에서 자신과는 반대편인 듯, 자신의 정권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 되지만 어찌보면 아버지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노론세력에 대한 경계를 갖추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준비작업을 하고 있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는 사도세자와 함께 중국에 갔던 인물들이 차례로 살해되고 무엇인가 알리려는 암호를 남김으로써 이 죽음의 배후와 죽어가는 인물에 대한 연관성. 그리고 이미 알고 있지만 이런 살해의 징후가 후에 사도세자를 어떻게 죽음으로 몰아가는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마지막에 이 살인사건을 조장했던 배후인물에는 아버지 영조가 자리잡고 있었음이 밝혀지는 순간, 거짓 병세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던 영조에 대한 배신감마저 생기게도 된다. 그렇게 자신의 아들을 시험하고 확인해야 했던가에 대한 의문, 또한 영조와 사도세자를 단순한 파벌싸움의 희생양이 아닌 다른 각도에서도 더 심도있게 상상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3일간의 수사행적을 따라가는데 모두 날짜와 시간 순서에 의해 배열되기 때문에 소설을 읽는데 긴장감을 더했던 것 같다. 또한 남겨진 단서를 파헤쳐가는 과정에 글자의 배열, 고문서에서 연관되는 문구를 찾아가는 것 등 현대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과정을 통해 역사추리극의 효과를 높였던 것 같다. 조선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의 하나였던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3일, 작가의 추리 외에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또 다른 역사적 사실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는 또 하나의 가정을 열어 놓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