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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들꽃과 민초, 진정한 생태를 말한다.]
들꽃에 관심을 갖고 하늘보다 땅을 보며 걷는 재미를 알게 된지 벌써 6년째다. 큰아이 덕분에 전형적인 도시엄마 딱지를 떼고 싶어서 도감을 사서 봄마다 들로 산으로 다닌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다. 그렇지만 자연은 늘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올봄에 눈마주치고 '나, 이제야 너 알아보겠다~'했던 들꽃이 다음해가 되면 다른 모양새로 인사하는 듯해서 '누구세요?'를 반복하게 되니 말이다. 그렇게 몇 년이 흘러야 지나치다가 몇년 만에 만난 벗처럼 그제야 알아보는 눈을 키울 수 있으니 말이다.
[사계절 생태놀이]란 책으로 유명한 작가 강우근은 그냥 아이들 책에서 만난 생태작가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에 만난 강우근의 <들꽃이야기>는 내게 새로운 생태를 보는 법, 작은 들꽃을 통해 인생을 말하고 듣는 법을 알려준 고마운 책이다. 그동안 내가 보아왔던 들꽃은 책속의 도감사진과 길가의 들꽃을 얼굴과 이름을 맞추면서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정도였다. 이제야 알아보고 조금 더 반가워하면서 들꽃이름을 불러주는 정도였을 뿐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났으면 달라졌으려나~ 아니, 어쩌면 안다는 자만감으로 관심이 덜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런 내게 강우근은 들꽃을 통해 인생과 진정한 생태를 바라보는 법에 대해서 들려주었다.
봄여름이 되면 늘 외래유입 동식물 때문에 생태계가 위험해진다는 기사를 보곤 했다. 돼지풀이나 서양등골나물 등등 우리가 알고 있는 생태계 교란식물의 이름이 이제는 다섯 손가락을 훌쩍 꼽게 된다. 기사 덕분에 길가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이 식물을 뽑아 없애야 된다고 목소리 높여 말했다. 그러나 작가는 그보다는 좀더 원초적인 생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동식물이 나쁘다라고 이야기하는데는 우리 토종 동식물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란다. 토종민들레는 서양밀들레에 자리를 내주고 등골나물은 서양등골나물에 자리를 내주는데 이런 과정을 살펴보면 결국 인간의 환경파괴가 그 전도자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환경에 민감한 토종식물은 사람의 손이 타는 개발 앞에 쓰러져가지만 강한 외래식물들은 파괴된 곳까지 그 뿌리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무엇이 나쁘다를 외칠 것이 아니라 산 속에 길 하나, 골프장 하나 짓는 그것부터 멈추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진정한 생태는 환경파괴가 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지 유입된 외래식물을 뽑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이 한 장 차이지만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말이 아니던가..
청계천을 둘러싸고 생태하천이라고 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서울시와 생태학자들간에 공방이 오간 적이 있다. 작가의 들꽃이야기를 읽고나면 생태라는 말을 얼마나 우리가 남용하고 무심하게 듣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1급수에 살고 있는 각양각색의 물고기를 청개천에 갖다 풀면 청계천이 생태하천이 되는가? 인공의 손길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때에 생태라는 말은 무색하게 들리게 된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생태는 인간을 기준으로 얼마나 유익할가를 따지는 이기적인 잣대는 아닐까? 자연이 유지되기 위한 생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보조수단으로 바라는 생태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많은 들꽃이야기 중에서 유독 기억나는 것은 '다닥냉이와 이주노동자의 현실'이다. 귀화식물인 다닥냉이의 영어명칭은 poor mom's pepper이라고 한다. 겨울에 나는 다닥냉이를 나물로 먹으면 쌉싸름한 맛이 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귀화잡초이지만 굶주린 이들의 배를 채우기도 하고 사막이 아닌 이상 살아남아가는 다닥냉이와 같은 귀화잡초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험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의 삶과 비슷하기도 하다. 다닥냉이 사이로 줄지어 있는 이주노동자의 모습이 아주 인상깊은 삽화로 남아있다.
민초들의 삶은 늘 들꽃과 잡초로 비유된다. 누군가 돌보지 않아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들풀의 그것과 같이 때문이다. 길가에 너무 흔하게 밟혀서 그 생명력에 대해서 고민해보지 않았던 들꽃이 오늘따라 인생의 철학자처럼 느껴진다. 보잘 것 없지만 가장 근원적인 삶을 형성해나가는 들꽃의 인생을 통해서 삶의 가치를 느껴보게 된다.
참, 한가지 이 책을 읽으려면 사진이 있는 들꽃도감을 함께 보기를 권한다.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도 들꽃은 구분하기 힘든데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도통 모를 들꽃들이다. 도감을 펼치고 실제 사진을 보면서 길가에서 한번쯤 보았음직한 녀석에게 인사도 건네면서 작가의 특징적인 삽화와 글을 살펴보길 권한다. 또 한가지는 욕심내서 단번에 읽지 않았으면 한다. 보고 싶은 들꽃부터 골라서 봐도 되고 드문드문 봐도 되지만 여러번 가까이 하면서 들꽃의 이름을 한번씩 더 불러보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