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변화하는 만큼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바로 용어가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없던 말인데 새롭게 생기는 말이 적지 않다. 그런 말들을 알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무딘 사람들은 나와 깊은 상관이 없다 싶으면 그냥 지나치기에 익숙하지 않은 말들도 많다. 구지 요즘 용어가 아니더라도 정치나 경제, 사회 ,역사와 관련된 용어는 모르는 것이 많아서 늘 헤매기 일수이다. 중학교에 입학한 딸 아이의 국어 교과서를 보니 만만치가 않다. 문학작품이나 수필이 주를 이루던 과거의 국어교과서와는 달리 다양한 지문이 실려있었다. 다방면에서 이해력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국정교과서에서 검인정교과서로 바뀌면서 국어교과서만 근 90여권에 달한다는 말을 듣고 놀랐는데 이러한 지문이 저마다의 교과서에 실렸다면 이제 해석과 이해를 요구하는 어휘를 익히는게 중요한 문제가 될 것 같다. 그런 문제를 알고 있기에 이 책을 더욱 유심히 읽었던 것 같다. 어휘를 익힌다는 것이 쉽지 않고 조금은 딱딱하리라 생각했는데 이 책은 읽는 내내 지루함 없이 흥미롭게 읽었다. 책읽는 것을 낙으로 삼았을 법한 저자가 지식을 총동원해서 달변을 하는 느낌이다. 한 어휘를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어휘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는 형식도 마음에 든다. 의문이라는 것이 하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연이어지듯이 어휘도 하나를 알면 하나를 더 알 수 있는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 같다. 십대를 위한 어휘교과서라지만 나처럼 시사용어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읽은 후 중학생 딸아이에게 추천해 주어야겠다.
[열두 살 소녀의 새로운 가족 만들기 프로젝트] 아빠를 고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는 사람이 있을까? 부모와 자식은 하늘이 점지해준 인연이라고 하지만 요즘은 그런 말들이 모두 무색하다. 생물학적인 관계의 가족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의 가족이 탄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탄생을 위해서는 늘 고통이 뒤따른다. 가족의 탄생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아빠는 자신이 고르겠다고 다부지게 말하는 열두 살 소녀 은지는 이혼가정의 소녀이다. 이혼 가정이 많지 않았던 때에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이들은 기죽어 지내기 쉬웠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변했다. 당사자도 그렇고 주위에서 받아들이는 시선도 그렇다. 늘 힘없이 지내기보다는 자기 주장도 강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더 나은 가정의 결합을 위해 요모조모로 머리를 굴리기까지 하는 은지는 결코 나약한 아이가 아니다. 그렇지만 역시 가정의 해체와 결합의 과정은 아이들에게 늘 상처로 남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은지가 엄마에게 더 나은 아빠를 연결해 주기 위해서 바바리 코트가 어울리며 어우대 좋은 준구의 아빠보다는 뚱뚱하고 볼품없지만 엄마를 더 위해줄 것만 같은 창민의 아빠를 선택한다. 왜? 더 이상 엄마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가 보다. 엄마는 모두 친구로 남기로 하면서 다른 사랑을 또다시 꿈꾼다. 사랑은 별할 수 없다는 은지의 생각과는 달리 엄마도 언니도 사랑은 변할 수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다면서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 대부분 부모는 자식의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은연중의 상식에서 벗어나 은지의 엄마는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과 인생에 대해서 은지에게 이야기한다. 그 모습에서 엄마를 이해해야 하는 또 다른 제시를 받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모두 생각하는 삶이 다르기는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가족이라도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를 보듬어줄 수 있는 것 같다.
[뒤늦게라도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여 다행이네] "전래 동화는 수천 년에 걸처 조상들이 말하고 듣고 생각한 흙의 철학이고, 흙의 시고, 거룩한 꽃이다" -박영만 전래 동화는 말그대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들이기에 비슷하지만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한나라에서 지역마다의 이야기 차이는 그런가보다 싶지만 나라마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가 비슷한 경우는 정말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사는 곳은 달라도 기본적으로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슷한 전래동화가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다. 사파리의 방방곡곡 시리즈는 박영만 선생님이 수집한 [조선전래동화집]을 원작으로 하였다고 한다. 덕분에 전래동화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탄압받았다는 것과 박영만 선생님 같은 분이 있어서 이런 동화집이 전해질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알 수 있어서 늘 고마움을 갖고 대하는 시리즈이다. [밥 안 먹는 색시]는 옹고집이나 놀부보다 더 욕심많은 구두쇠 영감의 이야기이다. 색시가 밥먹는 것이 아까워 예순이 넘도록 장가를 들지 않았다니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다. 구두쇠 영감이 부리는 하인들은 얼마나 고생할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밥 안먹는 색시가 있다는 말도 안되는 헛소문을 믿고 색시를 들이는 것만 봐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영감이다. 색시를 맞이하고는 계속 밥을 몰래 먹지는 않는지 의심을 늦추지 않고 하인을 시켜 색시를 감시하도록 한다. 그러나 하인들은 색시의 편을 들어 거짓말만 하고 영감을 골탕먹이기까지 한다. 사람이 어찌 밥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가? 자신의 말도 안되는 아집을 혼줄이 난 후에야 깨닫고 색시에게 맛난 것을 사들고 가는 마지막 장면이 통쾌하고 우습기까지 한다. 당연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가끔 인색한 아집을 부리는 경우가 있다. 결국 자신의 아집으로 주변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혼줄날지도 모른다고 경고를 하는 옛이야기가 아닐까? 여하튼 그동안은 구두쇠로 말도 않되게 살았지만 예순이 넘어서라도 철들고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였으니 참 다행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길가의 꽃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나눠야 할 것 같다. 무심코 밟고 지나쳐도 모를만큼 지천에 널린 봄꽃들이 모두 사람들과 말을 건네받을 수 있다고 상상하지 정말 재미있다. 봄바람을 맞으며 살랑살랑 걷고 있는 나를 향해 "어디 가세요? 집앞에 우리 친구 민들레는 피었나요?" 생각만해도 즐겁다. 실은 들꽃들은 모두 우리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데 도시 생활에 정신없는 우리들이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아닐까? 저자는 "우리꽃세상"이라는 사이트를 열어 우리 꽃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자생식물원에서 연구를 한다고 한다. 정말 꽃과 하나가 되어 사는 사람인 듯하다. 큰아이 유치원에서 들꽃에 대한 수업을 하면서 처음 관심을 가졌을 때는 수많은 들꽃들의 이름은 모두 들꽃이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가 지날 수록 모두 같은 얼굴을 하더 들꽃들의 얼굴이 조금씩 달라보이기 시작하고 조금씩 그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가 있게 되었다. 저자의 글을 읽으니 들꽃의 이름을 불러주고 대화를 하는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도감에서는 사진을 통해 식물학적인 명칭이나 특징 등에 대해서 객관적인 정보를 얻는다면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인 목소리를 통해 들꽃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들꽃과 대화를 나누는 대화체가 아닌가 싶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알아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관심과 애정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화를 통해서 꽃들이 직접 알려주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귀에 쏙쏙 들어오며 정답게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정보도 배우지만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역시 들꽃을 대하는 정다운 태도를 배울 수 있었던 점이 아닌가 싶다. 도시의 자동차 매연에서도 꾿꾿하게 보티면서 꽃을 피우는 민들레, 꽃마리, 애기똥풀들을 그냥 '들꽃'이라고만 하기에는 너무 미안해진다. 지난 주말에 동네 뒷산에 아이와 함께 삽을 들고 나갔다. 민들레의 뿌리가 얼마나 긴지 살펴도 보고 봄꽃맞이를 해기 위해서였다. 볕이 따뜻해지니 마법처럼 땅속에 있던 들꽃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이런 신비함을 우리는 왜 깨닫지 못할까? 보라색의 제비꽃이 반갑게 맞아준다. 문패꽃, 앉은뱅이꽃, 오랑캐꽃... 꽃중에 이름이 가장 많은 꽃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잎만 봐도 제법 알아 볼 수 있지만 단풍잎을 한 남산제비꽃이 너무 보고 싶다. 좀더 시간이 지나서 열매를 맺을 때의 제비꽃도 눈여겨 보면 좋다. 씨앗이 '폭'하고 삼각형모양으로 씨주머니가 터지는 모양새를 찾아보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함께 나갔던 아들이 엄마가 좋아하는 제비꽃이라고 말해주었으니 제비꽃도 기뻐하지 않을까? 길에서 정말 흔하게 보는 이꽃이 쇠별꽃이다. 너무 흔해서 무시당하기 십상인 이 꽃도 자세히 들어다보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희고 작은 별이 이렇게 땅위에 내려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에 파는 돌나물은 아는데 길가에 흔히 핀 돌나물은 얼마나 알아볼까? 돌나물도 번식력이 강해서 심어만 놓으면 잘 자란다. 나중에 노란꽃이 핀다. 봄의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하는 산수유 나무의 꽃이다. 아파트 단지나 공원에서 요즘 흔히 보이는 꽃은 산수유다. 산수유와 비슷하지만 잎자루가 없이 가지에 딱 붙어서 핀 노란꽃은 바로 생강꽃이다. 산수유에 비해 생강꽃을 심은 곳은 별로 없어서 잘 보이지 않는게 아쉽다. 산에 가면 한참 피어있을텐데.. 이 꽃이름은 약간 민망하다. 개불알풀이라고 한다. 꽃중에도 개불알꽃이라고 있는데 풀꽃이 훨씬 귀엽고 이쁘다. 특히 파란빛이 얼마나 앙증맞은지 모른다. 이 꽃도 아이가 학교 가는 길가에 피어있는 걸 작년에 보고 올해도 유심히 보니 같은 장소에 또 피어있어서 반갑게 인사했다. 이것은 냉이다. 냉이와 꽃다지, 황새냉이를 비교하려고 했는데 황새냉이와 꽃다지는 못찍어서 작년에 찍은 사진으로 다시 한번 비교해보았다. 냉이는 씨앗주머니가 하트모양인 것이 특징이다. 하트를 뿅뿅 달고 있는 냉이. 이것만 가르쳐주면 아이들이 냉이를 쉽게 알아본다. 반면 황새냉이는 씨앗주머니가 다르다 . 삐죽삐죽 길게 나있고 아랫부분에 잎도 많은 편이다. 꽃다지는 노란꽃이라서 알아보기 쉽다. 꽃다지의 씨앗주머니는 약간 도톰하고 동글납작하다. 들꽃을 알아보는 것은 것은 작은 것에 대한 관심과 삶의 여유를 쌓는 일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나 역시 지속적으로 살펴보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 삶의 여유를 알려주고 싶다.
그래~~그땐 지옥이었지... 딸 셋에 아들 하나..엄마는 우리 넷을 데리고 한 달에 한 번쯤 대중 목욕탕을 다니셨다. 기쁨? 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한 권의 그림책을 보면서 잊었던 과거의 옛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아이와 얼마나 깔깔 거리면서 웃었는지 모른다. 지금이야 집에서 욕조에 뜨거운 물 받아놓고 목욕을 할 수도 있고 대중탕?이라기 보다는 놀이터와 휴식의 의미가 강한 사우나에 익숙한 아이들이 과거 목욕탕의 공포를 알기나 할까?^^ 지옥의 불구덩이를 연상하게 하는 시뻘건 표지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마귀의 손같은 깔깔한 이태리타올을 손에 낀 사람이 보인다. 누구일까? 물어보나 엄마겠지^^ 이 그림만 보면 지옥이 따로 없다. 아이들은 울부짖고 엄마들은 우는 아이들을 잡아서 때를 밀고 머리를 감기는 모습이 참~말로 지옥같다. 이제 막 목욕탕에 들어선 아이는 이 상황을 보고 겁을 잔뜩 집어 먹고 있을 게다. 이건 순전히 내 경험이지만 샴푸의 따가운 거품이 눈에 들어가도 절대 울어서는 안된다.
왜? 엄마의 사정없는 손길이 등짝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 머리를 감고 나면 좀더 어려운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운 탕에 들어가서 때를 불리는 일이다. 어른들은 먼저 들어가 "시원하다~"라는 거짓말을 하면서 아이들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뜨거운 물을 왜 어른들은 시원하다고 하는건지 정말 이해가 안되었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 보니 그 말에 100배 공감하게 된다. 훗~ 이 책에는 정말 재미난 그림들이 많이 있다. 끄거운 탕 속에서 나오면 가장 힘든 코스인 때밀기 미션이 기다리고 있다. 손에 따가운 때타올을 낀 엄마의 모습은 천사? 보다는 무서운 야수에 가까워서 공포스럽기까지 했는데 이런 아아들의 심정을 재미난 그림으로 표현했다. 우리 엄마는 아이 넷의 때를 밀고 머리를 감기고 나면 녹초가 되시곤 하셨다. 본인의 임무가 끝나면 첫째인 나에게 엄마 등을 밀라고 타올을 건네시는데 사실 나 또한 이 임무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이 동화책에서 보여준 것처럼 엄마의 등이 시베리아 벌판보다 더 넓게 보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미는지는 모르지만 엄마의 등 뒤에서 낑낑거리고 있으면 엄마는 "좀더 박박 밀어."라면서 주문을 하셨는데 그게 안되서 혼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힘든 과정이 따르는 지옥탕이지만 그곳을 따라가는 유일한 낙이 있다면 바로 지옥에서 벗어나 개운함을 느끼는 그 순간 엄마가 큰 맘 먹고 사주시는 바나나 우유 때문이다. 흰우유도 아니고 초코 우유도 아니고 그때는 왜 이렇게 바나나 우유에 꽂혔던지~~작가는 지금 엄마들의 어린 시절을 꽤 뚫고 있는게 분명하다. 호호 아이 넷의 때를 밀면서 쏟아지는 국수 다발에 연신 잔소리를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문득 그리워진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내 아이 몸 깨끗이 하는 건 매일 챙겨도 어린 시절 그렇게 나를 챙겨주시던 엄마의 등을 밀어드린지 너무도 오래 되었다는 생각에 죄송해진다. 이번 주말을 싫다는 친정엄마를 끌고 사우나에 한번 다녀와야겠자. 어린 시절 지옥탕이 지금은 천국으로 바뀌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