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추억을 더 담고 싶다]
딸과 어머니가 언제부터 가까운 사람이었을까? 내 기억만으로 더듬어 보면 어려서 엄마는 늘 공기처럼 내 옆에 있던 사람이어서 소중함도 존재감도 몰랐던 것 같다. 그러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엄마는 나를 아이가 아닌 딸로 대해주었던 것 같다. 엄마가 안고 있는 감성을 조금씩 내비쳤고 어른스럽게 나를 대해주는 엄마의 태도에 사뭇 놀라기도 했다. 그렇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에 내 감성이 어찌 엄마에게만 머물렀겠는가? 세상의 중심이 나였고 모든 세상의 고민 역시 나로부터 시작되었기에 엄마를 떠올린 시간이 적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결혼을 할 무렵 엄마는 처음으로 내게 눈물을 보이면서 꺼이꺼이 우셨었다. 평생의 한으로 남아있던 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결혼 전날 밤에 다 푸셨던 것 같다. 없는 살림에 하루 한 끼를 먹으면서 살아야 할 만큼 어려웠던 때가 있었기에 억척같이 몇 사람 몫의 일을 해야만 했던 엄마는 줄줄이 달린 아이들을 살갑게 대할 여유가 없었었다. 집이 곧 공장이었던 그때 꺼리낌없이 이곳저곳을 누비던 세 살 아이는 그만 기계에 손을 크게 다치고 말았다. 마치 초록모자 속 주인공의 언니처럼 손수건을 꼭 쥐고 다니던 딸에게 평생동안 안고 있던 미안함을 눈물로 쏟아내던 어머니...어머니와 딸의 거리가 좁혀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딸과 어머니는 가장 가까운 사이인 듯하면서도 내리 사랑을 깨닫기까지 참 먼 여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 같다. 아직도 그 깊이를 다 알수는 없지만 처음으로 비췄던 엄마의 마음이 충격처럼 오래도록 기억되는 것은 마음이 가까워지고 엄마이자 한 여인으로써 그 삶을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까막눈으로 평생을 살다 칠십이 가까워서야 어깨너머로 글을 깨우친 노모가 자신의 하루하루를 일기로 써내려간 흔적을 발견했을 때 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구지 말해 무엇하겠는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서 엄마의 글을 올리고 텔레비전에서 방송되기도 했지만 이제 한 편의 글로 엄마와 자신의 글을 내놓았을 때 이미 그들의 글을 개인이 아닌 모두의 마음을 울리는 글이 되었다. 글을 읽으면서 타인이 아닌 내 마음의 한쪽을 이미 그 속에 담아 놓고 읽는 듯했다. 이젠 안경너머로도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엄마가 이 책을 읽어도 나와 같지 않을까나? 하얀 쌀밥을 한 가득 담아 내미는 대신 소꿉놀이를 하듯 진달래 꽃을 한가득 담아 내놓은 듯한 표지 그림에 순간 가슴이 뭉클해진다. 친구와의 소꿉놀이 대신 엄마와의 소꿉놀이를 추억에 담아놓고싶은 생각이 든다. 더 늦기 전에 묵은 신김치 대신 바로 담근 김치 한 쪽 들고 엄마를 찾아가봐야겠다.
[시대가 지나도 전해지는 동화가 되길] 우연한 기회에 한국의 근대사에 대한 답사를 가질 기회가 있었다. 운현궁을 시작으로 주변을 돌면서 근대사를 듣는 가운데 지금의 수은회관 부근에서 방정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도 간략하게 들었다. 기억속의 방정환은 늘 어린이를 너무 사랑했고 어린이날을 만든 사람 정도로 기억되지만 일제강점기에 그가 펼친 다양한 활동은 늘 가려져있었던 것 같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다시 만년샤쓰를 읽으니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넉넉하지 못한 시대에 사람들은 저마다 좀더 마디가 시린 아픔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마음 가짐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은 정말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가 있다. 당시 일제감정기를 거치면서 우리 나라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여유롭게 아이들을 돌보고 창작활동을 하고 문화생활을 누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방정환 선생은 아이들에게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데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미래에 대한 꿈을 심어주려고 했던 분인듯 하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위트를 작품 속에서 찾으면서 절로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만년샤쓰는 눈이 안보이는 엄마가 옷 한 벌 남기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서 모든 것을 주엇듯이 자신의 양말과 옷을 벗어 엄마에게 전해준 창남을 통해 웃음과 감동을 준다. 정말 이 세상이 힘들어 죽겠다는 표현보다는 배고프고 힘들지만 주변을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이 조금은 지나친 듯하고 어설픈 듯해서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실성은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전해지지 않을까 싶다. 1부에 소개된 작품 가운데 읽어보지 않았던 낯선 작품을 읽을 수 있는 행운도 좋았지만 당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자 썼던 옛이야기가 담긴 2부도 좋았다. 아이들을 위해 구지 옛이야기를 재구성하거나 수집 활동을 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일제가 우리의 옛이야기 역시 왜곡시키거나 혹은 전해지는데 대한 거부감이 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늘 알고 있을 듯하지만 사실 전하려는 노력 없이 단절은 쉽게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너무 빠르고 현대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익숙한 지금의 아이들에게도 옛이야기, 만년샤쓰와 같은 지난 이야기도 꾸준히 전해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이번 재출간이 더욱 반가웠다.
[공포와 탄탄한 긴장감에 매혹] 개인적으로 공포영화나 공포소설을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어려서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를 읽고 몇날 며칠동안 밤마다 생각나서 고생을 한 기억이 있다. 그 기억때문인지 오랜동안 꺼리게 되는 장르였는데 성인이 된 지금 난 달라졌을까? 책을 읽기 전에 지은이 메리 다우닝 한이 '에드거 앨런 포 상'을 수상했고 유령이야기의 대가라는 말에 긴장했지만 어린이 도서관 사서를 한 약력에 끌렸다. 어린이 책에 관심이 많던 사람이라면 아이들의 감성을 잘 이해하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처음 읽게 된 메리 다우닝 한의 소설은 마치 영화를 보듯 장면이 연상이 되고 캐릭터의 표정이 떠올려지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공포소설이라는 장르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섬뜩한 공포감보다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을 가지고 위기에 처한 인물들을 관찰하게 되는 것 같다. 몰리와 마이클, 헤더는 재혼을 통해 가족이 된 아이들이다. 각자의 부모가 사랑을 했기에 결합을 통해 가족이 되었지만 진정한 가족임을 느끼기까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들 가정에도 풀어야 할 숙제가 있었다. 가장 어린 헤더는 세 살때 엄마의 죽음을 경험한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였다는 사실이다. 단지 엄마를 잃었다는 슬픔이 헤더를 지배하고 있을 거라는 추측 뒤에는 커다란 비밀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그 비밀을 알리가 없고 이 비밀이 탄로나는 날 아빠의 사랑이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새로운 가정이 형성되면서 자신을 향한 아빠의 사랑을 새엄마나 다른 형제에게로 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헤더가 언니인 몰리가 자신을 괴롭히는 것처럼 행동한다거나 교묘하게 부모를 속이는 장면은 공포영화에서 보았음직한 섬뜩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나 근처 묘지에서 찾은 헬렌이라는 유령을 통해 자신의 외로움을 위안받는 장면에서는 혹 헤더와 헬렌이 동일 인물이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상상까지 해보게 된다. 헬렌의 유령을 통해 몰리 가정을 파멸시키는 것은 아닐까? 과연 헤더는 어떻게 될까? 이 가족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지 않고 읽게 되는게 이 책의 매력이다. 결국 헤더 엄마의 죽음 속에 숨겨진 비밀이 밝혀지고 몰리가 그런 헤더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지키려고 하는 마음에 헤더는 헬렌의 영혼으로부터 자유로와지게 된다. 더불어 헬렌의 죽음 뒤에 가려진 화재와 진실 역시 해결는 이중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형식적으로 결합된 가족이 아니라 진정한 가족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서로의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조금은 공포스럽게 배웠지만 덕분에 더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단순한 혼령으로 등장한 헬렌이 헤더와 비슷한 비밀과 슬픔을 가졌던 인물이었고 혼령으로나마 부모와 다시 하나가 되는 과정을 그린 점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끔찍한 음모와 비열함이 주는 공포가 아니라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아이의 마음 속의 공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작가의 센스가 돋보인다. 처음 읽은 메리 다우닝 한의 작품이지만 탄탄한 구성과 긴장감에 매혹되어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는 것 같다. 어려서는 단지 두려움으로만 책을 읽었다면 지금은 무엇이 공포의 근원이 되는가를 조금은 생각하면서 읽었기에 긴장감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한 많은 영혼을 위한 소리] 얼마전 5.18 광주 민주화 운동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불과 10년 전만에도 폭동으로 여겨지면서 5.18사태로 불리었다. 겨우 민주화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이번 정권이 들어서면서 또 다시 평가절하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와서 적잖이 우려되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때의 진실에 근접하는 사실들을 알고 있지만 진상규명이나 관련자 처벌에 대해서는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과 비슷하게 답보를 하고 있음도 알고 있다. 우리나라 내부에서와는 달리 이제는 세계적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민주화운동으로 그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 이번 기록유산 등재의 일이 아닐까 싶다. 얼마전 5.18을 다룬 어린이 동화 한 편을 보았었다. 어린이들에게 역사의 한자락인 현실적인 사건을 접하게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픔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서 이번 작품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애매하게도 표지는 5.18이 연상되는 표지는 아니었다. 서편제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었으니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그러나 책을 읽은 다음에 작가가 담고자 한 것이 무엇임을 알며 왜 우리 소리를 내세웠는지 가늠하게 된다. 명창의 길을 걷고 있던 방울이는 이제 막 생리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몸의 변화에 조금씩 눈뜨는 소녀이다. 세상에 첫 걸음을 내딪는 것처럼 자신의 변화에 첫 걸음을 내딪는 아이, 모든 꿈을 소리에 담아 연습에 연습을 하며 고수인 민혁오빠와의 순수한 사랑을 키워가는 아이.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아이가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던 군인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자신의 영혼이 죽어가는 자신을 쳐다보는 장면에서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의 영혼이 오빠가 선물한 방울새의 몸을 빌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며 방울새의 시선으로 전하는 당시의 상황은 끔찍함보다 더 진한 슬픔이 느껴진다. 사라졌던 오빠 민혁이 득음을 하고 나타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민혁이 하는 소리는 구천을 떠도고 있을 영혼을 위한 것이었다. 너무도 한 많은 사람들의 삶이 많이 얽혀있기에 '정치적인'이라는 꼬리표를 달지 않아도 사람들의 가슴에 남을 이야기 중의 하나가 5.18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닐까? 너무나 끔찍해서 아이들에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지만 들려주어야 할 우리의 이야기이기에 담아낸 작가의 마음이 전해진다. 글로 다하지 못하고 말로 다 하지 못하지만 그 진실은 계속해서 전해질 것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따뜻해지는 가슴] 손안에 쏙 드는 사이즈에 저렴한 가격, 이에 비해 책의 내용이 좋아서 더더욱 마음에 드는 시리즈, 네버엔딩에서 새로운 책을 만났다. 김연지? 작가의 이름이 그리 익숙하지 않았지만 작가 약력을 보니 작품으로 많은 인정을 받은 작가인 듯하다. 총 5편의 작품이 실려있는데 단편이지만 많은 이야기와 감성을 끌어안고 있어서 작가의 이름을 다시 보게 되었다. <엄마는 누구 팬일까? >의 이야기는 나보다 배우를 너무 좋아하는 엄마의 이야기이다. 제목을 보고 배용준을 너무 좋아하는 딸아이 친구 엄마를 단번에 떠올렸다. 나이도 지긋하지만 소녀적인 감성이야 어디 갈까? 배용준은 너무 좋아해서 카페에도 가입하고 만남에도 참석하는 그 엄마가 참 신기해 보이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여하튼 다양한 생각이 떠올랐다.나이가 많든 적든 오빠가 되어 여고생처럼 팬의 입장이 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과거 사춘기 때의 느낌도 살짝 떠올려보고 딸아이 친구 엄마도 떠올려보았다. 쿠키를 구워 설레는 만남을 기다리는 과정을 바라보는 아이는 엄마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나보다 더 좋은가?를 얼마나 많이 되새겼을까? 그렇지만 엄마가 그 배우를 좋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을 알고 엄마의 가장 아픈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음을 알아가는 과정은 뜻밖이었다. 배우든 누구든 좋아하게 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특히나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된 사람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누구의 팬이었지? 왜 좋아했더라? 그때 우리 아이는 뭐라고 했지? 이런 저런 생각을 곰곰히 떠올려 본 이야기였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는 넉넉치 않은 형편에 늘 형의 옷과 신발을 물려 받던 동생이 새 신을 사기 위해 차곡차곡 모아 숨겨놓은 동화책 한 권이 없어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낡은 동화책이지만 이 책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그 과정에서 늘 새것만 입던 형이 자신을 위하는 마음도 몰래 엿보게 되는 과정이 전혀 식상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헌책방까지 가서 책을 찾는 모습에서 문득 청개천 헌책방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힘들 것 같지만 그 속에 가족을 위하는 사랑이 있기에 아름다운 세탁소가 되는 가정의 이야기였다. <우리 집은 달린다>는 집없이 트럭에서 지내는 아이와 아빠의 이야기이다. 엄마를 살리기위해 집까지 팔았지만 결국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트럭운전을 하며 지내는 아빠의 트럭 뒷칸이 자신의 방이자 집이 되어 버린 아이. 세상에서 동떨어진 느낌이지만 그런 느낌을 서로 보듬어줄 친구를 만나게 된다. 부끄러워 누구 하나 초대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집을 멋지다고 말해줄 수 있는 짝꿍을 만나 마음이 한층 커진 아이의 모습에 가슴이 찡해지는 이야기였다. 과연 이런 친구가 있을까? 나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해보게도 된다. 마지막 <엄마의 정원>은 2008년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판타지적 요소가 있는 이야기라서 다른 작품과는 다른 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사고로 엄마는 식물인간이 되었지만 엄마가 정말 식물처럼 병원 옥상에서 정원을 가꾼다는 설정이 특이했다. 마지막 5년 만에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아저씨를 보면서 엄마가 깨어날 날에 대한 희망을 가져본다. 김연진이라는 작가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과 따뜻한 긍정의 믿음을 갖고 있는 작가인 듯싶다. 모든 이야기에 아픔도 있지만 모두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해체되는 가정도 많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이야기도 많지만 사랑이 자리잡은 가족애를 만나면 늘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