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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상처, 또 다른 삶의 성숙으로]
얼핏 보기에 '파괴'라고 읽었는데 옆에서 책을 흘낏 보던 남편이 "파과? 도대체 무슨 뜻이야?"라고 묻는다. 자세히 보니 정말 '파괴'가 아닌 '파과'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 하고 검색을 해보니 의외의 서로 다른 두가지 뜻이 나온다. 흠집난 과실, 또 한가지는 성교에 의해 처녀막이 터지는 걸 의미한단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그 단어를 제목으로 했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그래서 이 작품이 제목으로 인해 더욱 궁금증을 갖게 만든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이들이 등장한다. 조각, 류, 투우 등등 현실적인 이름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했는데 설정도 일상적인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 주인공의 이름은 조각, 마치 삶이 조각조각 파편으로 흝어져버린 듯한 60대 여성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그녀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조각이라는 이름과 그 나이 또래의 여성에게서 보이지 않는 강인한 몸이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나 귀기울이게 된다.
방역업체 직원이라는 그녀는 더러운 곳을 청소하는 방역과는 거리가 먼 방역을 하고 있다.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청소해주는 방역, 청부살인을 하는 것이다. 60대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여성이라. 주인공의 나이와 직업, 모든 것이 생소하면서 어딘가에서 한번쯤 보았음직한 영화의 몇몇 장면이 겹쳐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려서부터 가족과 떨어져 청부살인업자로 키워지는 그녀의 삶의 단편들이 담담하게 소개된다. 주인공이 남다른 성장기를 감정에 치우쳐 서술하기 보다는 예상치 못한 액션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서 마치 액션 영화의 단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영화 속에서 봤던 킬러 레옹이 옆집 마틸다에게 애정을 갖고 그녀를 보호하고, 영화 회사원의 주인공이 다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애쓰듯이 주인공 조각에게도 냉철한 킬러의 본능을 흔드는 순간이 다가온다. 다른 가족을 보호하고 싶은 묘한 느낌. 설명할 수 없는 애정으로 그녀는 자신의 적과 마주하게 된다. 물론 그 적도 그녀가 남긴 킬러의 업보처럼 보여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극의 말미도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어린 아이를 구하고 그녀가 장렬하게 전사할 것인가? 아니면 홀연히 떠날 것인가였는데 이 작품에서는 제목에서처럼 파과의 흔적을 남겼다.
킬러로써 감정에 휘둘리고 오점을 남기는 듯했지만 결국은 성숙의 정도를 넘어 새롭게 농익는 삶을 보여주고자 했는가 보다. 잘은 모르지만 정, 그전과는 다른 삶에 대한 애정이 그녀에게는 상처로 혹은, 새로운 삶에 대한 성숙으로 담은 마지막 장면이 쿨 하다. 그녀의 나이가 무색하게 느껴지는 마지막이 아니었는가 싶다.
일상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는 소재이고 인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한장면을 대하듯, 조금은 동떨어져서 여유롭게 바라보게 된다.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삶을 향해 상처받으면서 성숙해가는 새로운 인물의 이야기를 말이다. 우리가 60이 되었을 때, 새로움 보다는 삶이 견고해지고 단단해졌으리라 생각되는 그 순간에 상처받으면서 성숙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생긴 아집과 습관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지만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단단하다고 느끼는 그 즈음에 상처와 함께 또 다른 성장, 성숙을 하게 될 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