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나무 이야기-눌와출판사>

 

 

가을빛으로 물든 궁궐을 간다는 기쁨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쌀쌀한 날씨에도 들떠 있던 주말 아침이다. 궁궐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얻은 것도 역시 행운인 듯하다. 몇 년 전에 눌와에서 하는 한강생태이야기를 따라갔었고 작년에는 운 좋게도 유홍준교수님과 함께 하는 부여여행에도 참여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올해는 마지막이라는 궁궐의 나무이야기에 함께 했으니 눌와와의 인연이 있기는 한가보다.

 

오랜만에 찾은 창덕궁은 사실 후원이 너무 궁금했지만 이번 일정에서 후원은 제외하고 창덕궁만 돌아보기로 했다. 궁궐을 찾을 때면 건물이나 역사 이야기가 중심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생태, 그 중에서도 나무를 중심으로 하는 특별한 테마로 궁을 둘러보게 되었다.

 

 

 

처음 뵙게 된 박상진 교수님 조용조용한 말씀에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머금고 열심히 설명해주시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니 우산이 차지하는 공간만큼 서로 간격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스쳐지나치던 궁궐의 나무와 의미에 대해서 들을 수 있는 생각에 불편함도 잊었던 것 같다.

 

창덕궁에는 수많은 나무들이 있겠지만 동궐도에도 나와있는 나무들의 모습까지 찾으면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또  하나의 재미였다. 창덕궁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나무는 돈화문 좌측에 있는 커다란 회화나무이다. 서원같은 곳에 가면 이 회화나무가 무척 많이 심어져있다. 일명 선비나무라고도 하는데 그 이유를 잘 몰랐었는데 오늘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회화나무는 오랫동안 살 수 있는 나무이고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자유롭게 뻗는 모습 때문에 학자수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유분방하게 학업의 세계를 펼치라는 의미인가 보다. 돈화문옆에 있는 회화나무는 동궐도에 그려져있고 수명은 3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돈화문 오른쪽에는 복사 나무가 있다. 우리가 먹는 복숭아는 후에 들어온 것이고 이 복사나무가 원래 우리나라 산천에 나는 복숭아라고 한다. 산에서 보는 개복숭아가 바로 이 나무라고 하니 유심히 본다. 봄에 분홍빛의 꽃의 피우던 그 복숭아 나무의 잎이 이렇구나 하며 자세히 본다. 궁궐 내에 복숭아 나무를 심은 것은 귀신을 쫓기위한 의미가 아마 더 크지 않았을까 싶다.

 

세번째로 발걸음을 옮겨서 본 나무는 봉모당의 향나무이다. 이 나무는 몇해전 태풍의 영향으로 가지가 부러져서 더 유명해진 나무이다. 창덕궁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이고 수명은 700살이 넘었을 거라고 한다. 근처에 임금님의 어진을 모시던 선원전이 있는데 그곳에서 제사를 할 때 이 향나무를 사용했을 거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종묘에서도 제를 위해 심어졌던 향나무를 본 기억이 난다. 태풍의 영향으로 꺽인 모습이 안스럽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동궐돌에 그려진 향나무 모습과 비슷하게 되었다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그리고 부러진 가지 저 쪽에는 원숭이의 옆모습을 하고 있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웃음을 주게도 한다.

 

 

멀리서 보면서는 도무지 무슨 나무인지 몰랐던 또 하나의 나무는 궐내각사의 뽕나무이다. 친잠이라고 해서 왕비는 비단짜는 일을 중히 여기고 누에를 치고 옷감을 짯다는 것은 유명하다. 과거 문헌에 창덕궁에는 1000여 그루가 넘는 뽕나무가 있었다고 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비단짜는 일에 대한 중요성이 높았던 것 같다. 집에서 아이들과 누에를 길러본 경험이 있어 뽕잎을 먹이로 주곤 했는데 이렇게 밖에 나와서 보니 그래도 못알아보네~.

 

 

바로 옆 구선원전의 측백나무는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 나무였다. 어딘지 다른 나무와 달리 주위를 더욱 고즈넉하고 기품있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나무같았다. 과거 중국에서는 북경 명13릉의 주위에 측백나무를 심어 권위를 상징했다고 한다. 이곳 구선원전은 과거 임금의 어진을 모시던 곳이니 당연히 신성시 되었을 것이고 주위에는 측백나무를 심어 그런 기품과 권위를 나타냈는가 보다. 나무가 높고 특이해서 더욱 그런 인상을 주는 듯하다.

 

 

 

 

 

 

금천교 옆에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친근한 느티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정자나무라 하여 마을 입구에 심어 마을 사람들에게 그늘이 되어주고 마을입구를 나타내기도 하는 대표적인 나무가 바로 느티나무이다.  느티나무는 홀로 클 때는 가지를 옆으로 넓게 뻗어 자라고 나무 재질도 좋아서 고려 중기 이전에는 모든 대표적인 목재 건축에는 느티나무가 쓰였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해인사 대장경판전의 건물이나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도 모두 느티나무라고 한다. 보통 질 좋은 오래된 소나무를 궁궐의 목재로 쓴다고 알고 있었는데 소나무보다는 느티나무 목재로 훨씬 좋다고 한다. 다른 나무와의 경쟁에서 강하지 못한 탓에 목재로 쓰일 수 있는 기회도 더 줄었구나 싶다.

 

오래된 느티나무는 부름켜 사이의 빈공간은 그냥 썩은 공간처럼 비어있다고 한다. 그 공간이 뚤리면 보기 싫어서 시멘트를 발라놓기도 한다는데 오늘 그 모양새를 처음 제대로 관찰하고 놀랐다. 그냥 스쳐지날 때는 수피겠거니 했는데 자세히 보니 시멘트라서 이걸 어찌 해석해야하나 싶었다. 인간이 보기에 좋도록 하는 것이 나무에게도 좋은 것만은 결코 아니기때문이다.

 

 

 

 

금천교에 자리잡은 또 하나의 나무는 바로 버드나무이다. 구지 설명하지 않아도 축 늘어진 잎들이 '나 버드나무요~'라고 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버드나무때문에 딱딱하고 권위적인 궁의 입구에서 조금 여유러움과 부드러움을 전해받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때 빨리 돌아오라는 정표로 보냈다는 버드나무는 궁에서는 어떤 의미로 심어졌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인정전을 마주하고 있으면 용마루 부분에 특이한 문양을 찾을 수 있다. 고종때 중건한 창덕궁의 인정전 용마루에는 오얏꽃무늬가 보인다. 대한제국의 황제가 된 고종이 당시의 시대조류에 맞춰 상징적인 문양으로 사용했었다는 오얏무늬는 자두나무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얏은 자두꽃이라고 한다.

 

 

 

궁에서 가장 깊숙한 곳은 왕비가 살던 곳이라고 한다. 구중궁궐의 깊은 곳에서 밖을 내다볼 수 없는 왕비를 위해 항상 뒤편에는 화계를 만들어놓았다는데 이곳 대조전의 화계 역시 갖가지 꽃나무가 많이 심어져있다. 가을이 오는 문턱에서 정신없이 피어버린 곂꽃의 옥매가 인상적이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너 왜그러니?"하고 한마디 건넬 참이다.

 

 

 

 

봄에 가장 먼저 열리는 열매가 바로 앵두라고 한다. 앵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임금이 바로 세종이다. 세종이 앵두화채를 너무 좋아했다고 하는데 아들 문종이 아버지를 위해서 앵두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한다.  대조전 화계에 있는 앵두나무도 가을을 담아 곱게 물들어 있는게 너무나 아름다웠다.

 

 

동궁이 학문을 익히던 자리이자 내의원 자리이기도 했던 성정각 부근에 커다른 살구나무가 눈에 뜨인다. 매화가 양반들의 나무라면 살구나무는 서민들의 나무라고 한다.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든 살구나무와 매화나무. 여하튼 살구나무는 초여름 과실이 서민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고 씨는 약재로 쓰였다고 한다.

재미난 것은 목탁을 만드는 최고의 나무가 바로 살구나무라고 한다. 그러니 살구나무는 정말 쓰임새 많은 서민들이 좋아할 만한 나무인듯하다.

다음은 살구나무꽃과 구분이 힘든 매화나무. 꽃이 피는 봄이 아니라 가을이라서 잎으로 구분하기는 여간힘들지 않다. 자시문 앞의 매화나무는 선조 때 명나라에서 선물받은 나무이고 지금의 나무는 손자뻘 정도 되는 나무라고 한다. 보통 매화가 겹꽃이라면 이 나무는 여러 겹의 만첩홍매라고 하니 봄에 와서 보면 그 화려함을 알 수 있으려나? 꽃을 보지 못해 아쉽다.

 

 

길게 늘어진 잎이 능수버들 같아서 이름 지어진 능수벚나무란다. 역시 꽃이 피어있지 않으면 구분조차 힘든 나무들.

 

선비들이 좋아했던 나무가 회화나무라면 제대로 공부하는 선비는 앞에는 회화나무를 심고 뒤에는 바로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쉬나무~ 이름도 정말 특이하다. 쉬나무 열매에서 기름을 얻을 수 있으니 뒤에는 쉬나무를 심어 밤에도 글을 읽고 정진하고자 했다  한다. 그러니 앞에만 회화나무가 심어져있고 뒤에는 쉬나무가 없으면 공부 안하는 거짓선비가 되는 셈인가?^^

 

 

낙선재 쉬나무 옆에는 특이하게 생긴 또 하나의 나무가 있는데 바로 시무나무란다. 이들도 생소한 시무나무는 십리마다 심어거 거리를 알려준 나무라고 한다. 오리나무는 오리마다 심고 시무나무는 십리마다 심었다고 한다.

 

 

낙선재 옆의 소나무. 우리나라 산천에 가장 많은 나무 중의  하나가 소나무가 아닌가 싶다. 사실 아이와 생태 공부를 하면서 잎이 두 개면 우리나라의 적송이라고 가르쳐주었었는데 오늘 적송이라는 말이 틀렸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우리나라의 소나무를 보통 적송이라고 하는데 틀린 말이지만 이제는 일반화되어버렸다는 말에 놀랐다. 산에는 대부분 미국에서 수입한 리기다 소나무뿐인데 우리나라 소나무 이름도 제대로 몰랐다니 부끄럽기도 하다.

 

여하튼 가을이라는 이름을 달고 궁궐의 나무를 탐닉하러 온 나들이는 정말 최고였다. 그동안 궁궐을 역사의 대상으로만 보느라 건물 이외의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이유가 있고 사연이 있는 나무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개중에는 동궐도에 그려진만큼의 나이를 가지고 있는 나무들도 있고 그 나무를 지금의 내가 마주한다는 사실이 또한 신기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다음에 올 때는 아이들에게 궁궐에서 만난 나무들의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

 

 

 

곱게 물들 화살나무도 구경하고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나무를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나오는 출구에서 오늘 처음으로 만났던 회화나무의 가지들이 자유롭게 뻗어있는 모습을 다시 한번 감상하면서 창덕궁 나들이를 마쳤다.

 

생태와 궁궐, 문화재에 대한 책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눌와 덕분에 오늘도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어서 너무 반갑고 흐뭇했다.집에 와서 보니 눌와에서 받은 책갈피와 궁궐사진을 담은 옆서가 얼마나 이쁘던지.... 애써부신 모든 분들게 감사하다는 기억 간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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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계곡 모중석 스릴러 클럽 35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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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처음 끔찍한 비틀린 인간의 욕망>

 

평소 스릴러물을 즐겨보는 편이 아닌데 얼마전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일본 스릴러물을 읽고 깜짝 놀랐다. 뒤늦게 눈 뜬 스릴러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고 할까?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이번 작품은 익숙한 미국이나 일본 작가가 아니라서 관심이 갔다. 나라마다 작가마다 모두 표현해내는 발식이 다를거라는 기대감이 컸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소개를 보니 안드레아스 빙켈만은 이미 <사라진  소녀들>이라는 전작을 통해서 스릴러 물에서는 인정을 받고 많은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는 독일작가인가 보다. 나로써는 그의 작품을 처음 읽게 된다.

 

지옥계곡, 얼마나 험하고 끔찍하면 이런 명칭이 주어졌을까 싶은 지옥계곡에서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한 소녀가 등장한다. 뛰어내리려는 소녀의 마지막 순간 그녀의 손을 잡고 놓치 않으려는 로만의 손길도 뿌리친채 죽음을 택한 라우라. 그녀를 둘러싼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라우라의 죽음과 더불어 그의 절치이었던 친구들은 모두 어떤 날의 사건을 떠올린다. 모두가 함께 지옥계곡을 등반하기 위해서 찾았던 날. 배탈로 등반에 참여하지 않고 남은 마라, 그리고 나머지 일행은 등반을 하지만 홀로 여자인 라우라를 배려하지 않고 무리한 날씨에 등반을 감행하던 중, 지친 라우라를 우연히 하산하는 남성에게 부탁하게 된다. 모두가 짐작하듯이 이 남자와 라우라 사이에는 묘한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라우라의 죽음과 함께 주변의 친한 친구들이 알 수 없는 사람에게 무자비하게 살해당하고 공포를 느껴야 한다. 이런 가운데 라우라의 죽음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수사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등장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라우라의 손을 잡고 있었던 로만 역시 이 문제에 얽히게 된다. 친구들에게는 함구한채 묘한 긴장감과 히스테리를 부리던 라우라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하나씩 밝혀지면서 우리는 뜻하지 않은 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가 폐소공포증을 가지고 있음에도 미군특수부대원이었던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살인마의 라우라에 대한 비틀린 집착이 그녀와 주변을 인물을 압박하는 과정이 가장 큰 긴장감으로 다가오게 된다.

 

책의 구성 중간중간 아프가니스탄에서 살인마의 심리와 상황을 묘사한 부분이 유난히 눈길이 간다. 남들과 다른 생각과 사고를 지닌 살인마의 심리에 집중하면서 섬뜩함을 느끼게 한 구성이 돋보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예상 가능한 전개와 마지막 라우라가 남긴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단서를 찾는 과정이 너무 설정적이었다 싶다. 그래도 계곡의 생생한 모습을 전하기 위해 몇번이고 험한  계곡을 등반했다는 작가의 열의는 묘사적인 부분에서 충분히 드러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작품. 기대를 하고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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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1
최상희 지음 / 비룡소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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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 세상과의 소통을 담은 이야기>

 

 

10월의 끝무렵 모든 것이 붉은 가을 빛으로 물드는 즈음, 올해 읽은 최고의 책 가운데 한 권으로 꼽고 싶은 책을 만났다. 예상하지 못하고 만나게 된 책 가운에 이런 반짝이는 책을 만나면 얼마나 행복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모른다.

 

사실 제목은 그리 끌리지 않았다. 책 제목에 칸트가 나오다니...철학자의 이름을 거론할만큼 딱딱하고 건조한 내용이 아닌가 하면서도 제목에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화사한 표지 그림과 색채에 뭔가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다.

 

책장을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책 속의 칸트가 누구인지 금방 감지하게 된다. 얼마전 많은 사람들의 호응 속에 따뜻한 감성을 불러일으킨 착한 의학드라마가 생각났다. 세상에 비해 너무도 순수하고 따뜻한 어린아이같은 시선을 가진 아스퍼거 증후군의 의사가 주인공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폐증을 지닌 인물이 주인공이었고 우리는 기존 편견에서 조금 벗어나 그들을 조금 이해하고 바라보게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는 두 명의 칸트가 존재한다. 세상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특정 병명을 이야기하기보다 이렇게 표현하는 작가의 시선이 정말 마음에 든다)17살의 형 '나무', 그리고 나무가 만나게 되는 노령의 숨은 건축가 칸트이다.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는 나무의 동생 '열무'

 

이들이 엮어 내는 이야기는 특이하다. 시간관념에 투철한 산책광이었던 칸트처럼 건축가 칸트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않고 산책을 즐기는 묘한 인물이다. 어린 칸트인 나무 역시 정해진 규칙에 의해서만 세상과 소통하고 그 규칙이 어긋나면 견디지 못해한다. 이 둘이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산책자 칸트에 관심을 보이고 관처럼 보이는 그의 집을 두 형제가 방문했을때, 건축가 칸트는 달갑지 않았을게다. 그러나 자신의 세계에 갇힌 어린 나무를 보고 그는 집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하나씩 가르쳐준다. 집을 지을때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는 법을 하나씩 배우는 것은 나 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주위에 대한 관심과 소통의 시작이라는 것을 건축가 칸트는 알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묘미는 이들이 나누는 대화들이 아닌가 싶다. 일상적인 대화라기보다는 철학적, 아니 철학적이라기보다 상대의 마음이 어떨까를 섬세하게 생각하면서 읽게 되는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든다. 읽는 독자 역시 상대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세상과 다시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만든다.

 

세상과 등지고 자신에게 벌을 주면서 살아가고 있는 건축가 칸트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런 칸트에게 치유의 손길을 내주는 형제와 다시 세상으로 나가는 칸트들, 그리고 세상의 순리처럼 이어지는 일들에 마음속에 잔잔한 물결이 일게 된다. 이들의 대화에 빙그레 미소짓고 음유시인같은 대화에 눈물이 흐르게도 만드는 이야기였다. 칸트의 집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결국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의 닫힌 세계에서 또 한번 벗어나 세로운 세상을 만나게 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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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 - 위기의 순간을 사는 철학자들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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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를 위한 더 나은 실패>

 

 

사실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하게 된다. 경제나 정치, 철학을 논할때는 대부분의 사람이 부담스러워하듯 나 역시 그렇다. 이 글은 작가가  메일이나 전화 등으로 저명한 사람들과 대담을 하고 신문에 연재한 글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엮은 책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에 대한 고민과 대담을 했을까 그게 먼저 궁금해진다.

 

지금은 전 세계가 경제 위기를 논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 IMF를 겪었지만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정리해고를 당하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예상보다는 빨리 헤쳐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 세계가 위태롭고 세계의 가장 강국이라고 여기던 미국조차도 국가제정의 위기를 겪을 정도니 지구촌 전체가 경제 살얼음판을 겪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 없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다루어지는 책은 아무래도 집필과정이 있기에 한반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저자는 그런면에서 신문 연재를 통해 발빠르게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고 그것을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 글을 읽기는 쉽지 않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철학이나 경제 등의 문제보다 당장 나에게 어떤 잇점이 있고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 쉽게 풀어주지 않으면 공감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파국을 이야기할때 좌절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 더 나은 실패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어렴풋면서도 한편으로는 강하게 와닿는다.  이 말을 역설적으로 지금 견디기 힘든 이 때가 바로 넘어야 할 산이고 그래야 더 나은 미래를 만날 수 있기에 낫게 실패하라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좌절하기 전에 실패를 감지하고서라도 넘어서려는 의지 때문에 나은 실패를 할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 이 책 역시 천천히 여러번 곱씹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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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클래식 보물창고 25
조지 오웰 지음, 전하림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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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를 위한 개인의 도구화, 디스토피아 현재인가 미래인가?>

 

 

국가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개인은 있는가? 적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개인의 자유와 행복은 중요한 문제이다. 국가를 위해서 개인이 존재하고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그렇게 한다고 배웠다. 개인의 도구화, 수단화..그런 말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는 엄청난 말들을 많이 들어왔다. 개인사찰. 사찰이 무엇인지 낯설었던 즈음, 그것은 정치적인 용어이고 그런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국가를 위해 개인이 사찰당했다는 말을 듣고 경악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안일한 생각은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우리보다 훨씬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사생활 보호에 끔찍했던 미국에서조차 개인의 이메일까지 사찰한다는 의혹을 받은 사실을 우린 알고 있다. 과연 국가를 위해 개인의 모든 것을 감시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작금인지, 이 시점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조지 오웰의 <1984>라는 작품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풍문으로만 들었지 조지 오웰의 작품을 제대로 읽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동물농장>이나 <1984>의 문학적 가치는 읽지 않은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지만 왜 그렇게 이슈화 되었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제국주의와 식민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이 작품이 탄생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작품이 쓰여진 시기는 1949년. 그는 1949년에 1984년 디스토피아 세상을 작품으로 그려냈다. 그가 바라보는 디스토피아는 어떤 세상인가? 적어도 그가 경험한 사회체제의 모순을 담아내기에는 충분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를 위해 개인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재창조되고 조련되어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작품에 담아내는 과정에서 그는 현대사회에서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개인사찰의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다룬다.

 

<1984>속의 국가 오세아니아에서의 모든 사람들은 텔레스크린을 통해서 사상검증을 받고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지배받는다. 영화 속에서나 나올 듯한 상황을 작가는 그리고 있다. 그 사상을 검증받는 시스템이나 통제하는 시스템 ,그리고 그야말로 다시 인간을 다시 학습시키는 과정까지 적나나하게 그려져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화 속에서 미래의 가상 세계를 세우고 인간의 분신인 콜론을 통제하는 영화들도 모두 이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져 든다.

 

더욱 놀란 것은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서 계속 되는 조련 속에 등장하는 '2분간 증오' 시스템이나 당원과 당을 위한 감정조차 실리지 않는 최소한의 목적만 담은 신어의 등장은 경악하기에 충분하다. 정말 이런 세상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렇지 않다고 단언하지 못함에 당황스럽다. 주인공인 윈스턴이 불온한 사상의 행동으로 실천하게 되는 것이 일기쓰기라니. 생각의 획일화가 필요한 세상에서 자유로운 생각은 불온한 사상의 시발점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만큼 생각의 획일화가 가져다주는 위험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작가는 인간성 말살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권력의 무한 독제라고 한다. 권력을 쥐기 위해서는 복종화된 인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당시는 전체주의에 대한 경고로 쓰여진 작품이지만 현 시점에서 과연 그러한 경고가 전체주의나 사회주의에만 해당되는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사상의 문제가 아니고 어쩌면 모든 것은 권력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권력을 쥐기 위해서 사상 검증이 필요하고 그를 위해서 사찰이 필요하고 감시가 필요하니 개인의 자유는 무지불식간에 침해되는 것이다.

 

가장 편한 것은 말하는대로 따르는 것이다. 마치 초등학교 교실에서 선생님의 말에 저항하지 않고 따르는 것이 가장 편하고 잘 이끌어지는 모범적인 반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 보여지지 않는 권력이 있음을 우린 알고 있지 않은가 싶다. 다른 생각이 어우러지면 분명 시끄럽고 혼란스럽지만 그 과정을 거쳐야 모든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사회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60년이나 지난 작품이지만 시대적배경이나 고민이 결코 지난 세대가 아니라는 공감을 하게 된다. 20세기 최고의 작품이라 일컫는데는 이런 연속성의 이유가 큰 몫을 차지하는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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